윤순봉. “한국의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하여”. 경쟁력연구회 발표자료. 2001.4.27.

[목차]

1. 국가경영 차원의 전략: 벤처국가를 위하여

한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한국을 벤처국가로 만들자

1) 벤처국가의 요건 # 1: 창업가정신

이미 우리가 경험한 벤처국가
Low-Risk/High-Return?
정기적금과 주식펀드
Low-Risk는 한국이 남미로 전락하는 지름길

2) 벤처국가의 요건 # 2: 기동성

몽골족은 기동성으로 유라시아를 제패
정주민과 유목민

3) 벤처국가의 요건 # 3: 선택과 집중

창업가의 의지
선택과 집중을 통한 니치 산업의 육성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4) 벤처국가의 요건 # 4: 대기업과 벤처의 미들업앤다운형 결합

벤처기업만이 대안인가
대만의 중소기업형 모델이 우리의 벤치마크인가?
보텀업형 벤처와 톱다운형 벤처
미들업앤다운형 벤처
M&A는 권장되어야 한다

5) 벤처국가의 요건 # 5: 도전을 촉진하는 사회시스템

투명성의 실체: 월스트리트 자본의 한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
경영 의사결정 행위는 과학인가? 예술인가?
부채비율 한도 축소는 성장률 저하로 직결
안행형 사업구조: 기러기와 독수리
패자부활전: 국민총실패율

6) 벤처국가의 프랙털: 경박연개(輕薄軟開)

정부 차원의 경박연개(輕薄軟開)
모든 경영조직 운영을 경박연개(輕薄軟開)로

2. 성장요인별 추진 전략

1) 물적자본의 확충

자본의 양적 확충
자본 흐름의 속도 제고
개방된 금융시장에 최소한의 방충망이라도 쳐야 한다
과잉투자와 기업경쟁력

2) 노동력의 양적 확충

여성인력 활용에 주목
외국인인력의 유입

3) 노동력의 질적 향상

지식과 기술
미들업앤다운형 지식창조
연구 생태계의 붕괴
모방지식과 창조지식 그리고 감성
우리의 교육
시장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대학교육

3. 성장과 안정


원문보기_text 84p


본 장에서는 앞서 여러 주제를 검토해오는 과정에서 살펴본 다양한 견해와 이론, 특히 성장이론에 기반해서 향후 한국경제가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을 살펴본다.

먼저 총체적인 국가경영 전략으로 ‘벤처국가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성장요인별로 성장잠재력 확충방안을 검토한다. 물적자본과 노동력의 증대, 그리고 지식 축적에 대해 검토한다.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현재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지고 있는 외환위기와 경제위기의 역사를 패자의 입장에서 재조명하는 동시에 크루그만과 IMF 신드롬의 허상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 확충에 대한 긴 이야기는 훗날을 기약한다.[1]


1. 국가경영 차원의 전략: 벤처국가를 위하여

한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권력이 힘에서 돈으로 그리고 지식으로 이동한다고 했다.[2] 우리 사회도 이미 자본주의(資本主義)에서 지본주의(知本主義)로 이동하고 있는 조짐이 곳곳에 보이고 있으며 그 추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과거는 산업화 시대였고 물리적 생산요소 투입이 중요했다면 미래에는 지식-정보화 시대가 전개될 것이고 인적자본과 그 속에 체화된 기술이나 지식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경쟁력의 원천이 군사력에서 자본력으로, 다음에는 지식창출 역량으로 이동할 것이며 성장잠재력도 지식에 기반을 두게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내생적 성장이론의 창시자인 스탠퍼드대학교의 로머[3]의 주장에 따르면, 경제성장의 원천이 되는 아이디어(idea)란 개발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일단 개발하고 나면 이를 널리 확산하는 데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 아이디어의 가치는 시장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내수시장이 큰 나라는 작은 나라보다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더 큰 유인효과를 가지며, 그 결과 시장규모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보다 더욱 빨리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작은 나라에서 큰 나라의 특성인 통제나 규제가 심할 때에는 성장이 둔화된다는 게 로머의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은 내수시장도 작고 통제와 규제도 만만치 않다. 결국 지식창출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인구도 성장잠재력과 직결된다. 인구를 계산하는 기준은 과거처럼 국경이나 민족으로 구분하기보다는 오히려 동일언어권으로 바뀔 것이다.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지식의 외부성’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고 이러한 지식의 외부성은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동일언어권 내에서 활발히 일어날 것이다. 같은 지식이나 기술이 창조되더라도 그 지역이 영어권이냐 또는 한글권이냐에 따라 그 확산되는 범위에서 큰 차이가 나며 창조에 대한 인센티브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테크노 스릴러 소설의 대표주자 격인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은 『쥬라기 공원』과 『잃어버린 세계』라는 화제의 소설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크라이튼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은 책 인세뿐 아니라 영화 판권, 캐릭터 판매로까지 연결되었기에 가능했다. 최근에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해리포터』 시리즈는 이미 판매 부수가 3천5백만 부를 돌파했다. 만일 『쥬라기 공원』과 『해리포터』가 한국에서 한글로 출간되었다면 지식의 외부성이 그만큼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언어권에 따라 창조의 대가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런 점에서 보면 4천만 명이라는 한국의 적은 인구는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베이징어권이 7억 3천만 명, 영어권이 4억 3천만 명, 스페인어권이 2억 7천만 명, 그리고 힌디어권, 아랍어권, 포르투갈어권, 벵갈어권, 러시아어권이 1억 6~8천만 명, 일본어권과 독일어권이 1억 2천만 명이다.[4] 이러한 통계를 놓고 보면, 지식의 외부성이라는 관점에서 영어권역은 우위를 점할 것이고 한글어권은 절대적 열위에 처하게 된다.

한국은 내수시장 규모, 인구, 지식의 창출량 등 여러 측면에서 강대국이 아니라 소국이며 이는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장해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 전체를 벤처국가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을 벤처국가로 만들자

벤처국가라는 용어에 대해 오인할 여지가 있으므로 먼저 그 정의부터 제시한다. 벤처국가란, 단순히 대기업 또는 전통기업보다 벤처기업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벤처국가란 창업가정신을 바탕에 깔고 국가를 운영하는 개척적이고 도전적인 국가를 말한다. 대기업 속에서 벤처기업들이 입지를 확보하고 생존하는 것처럼 한국도 열강들 가운데서 살아남아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흉내 내다가 어려움을 겪듯이 한국이 무작정 강대국 흉내를 낸다면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은 더 이상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경제규모 면에서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 강대국이다. GDP 규모에서 미국은 우리의 21배, 일본은 10배, 독일은 5배이다.[5] 따라서 양보다는 질적인 측면에서 추격할 수 있는 나라를 골라서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 인구 규모나 전체 GDP 규모가 비슷한 나라 중에서 우리가 잘하면 따라잡을 수 있는 나라가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이다. 이 나라들이 바로 벤처국가의 모델이다. 이를 ‘강소국’이라 칭하기로 하자.[6]

벤처국가의 특성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첫째, 창업가정신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둘째, 기동성이 있다. 셋째, 산업 차원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니치(Niche) 산업을 키우고 있다. 넷째,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협력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소위 ‘미들업앤다운(middle-up & down)형 기업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다섯째, 사회 전체적으로 도전을 장려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경박연개(輕薄軟開)의 체질을 보유하고 있다.


1) 벤처국가의 요건 # 1: 창업가정신

이미 우리가 경험한 벤처국가

벤처국가라는 용어가 낯설기는 하지만 이미 우리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제1세대 벤처국가의 모습을 경험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충만한 창업가정신으로 무장하고 장치산업을 니치로 하여 많은 일류기업을 일구어냈다. 전자,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 같은 산업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여 설비-장치를 갖추고 효율성을 철저히 점검해가는 과정에서 제1세대 벤처국가는 성공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는 모든 국민이 창업가였다. 어린이는 장래에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들어가면 모두 사장이 되는 야망을 품었다. 마치 한민족 모두의 유전자 속에 창업가정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1979년에 서울의 동대문 시장을 방문한 MIT의 홀로몬(Herbert Hollomon)은 “한국은 내가 방문해본 나라 중에서 모험가적 성향이 가장 큰 나라”라고 말했다.[7] 페얼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61개 소수민족 집단 중에서 이스라엘 사람과 한국 사람의 자영업율(self-employment rate)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8]

그러나 지난 3년간 외환위기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안타까운 일은 한국 특유의 창업가정신이 거의 소멸 직전까지 왔다는 사실이다. 남미처럼 영원히 중진국에 머물 것이냐 아니면 다시 선진국을 향해 재도약하느냐 하는 변곡점에 서 있는 한국은 지금 역사의 획을 긋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더 이상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는 통하지 않는다. 정부가 일일이 민간에 개입할 수도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개발을 위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할 수도 없다. 국가 차원의 산업합리화정책도 구시대 유물로 전락했다. 이제 새로운 벤처국가 모델을 창조해야 한다. 강소국이라는 모델이 있지만 경로 의존성을 무시하고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Low-Risk/High-Return?

컬럼비아대학교의 넬슨과 펠프스[9] 교수에 따르면, 경제 성장에서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생산요소의 일부로서 생산 과정에 투입된다는 객체 차원보다는 혁신을 이루어가는 주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생적 성장이론 주창자들[10]은 동아시아의 기적적인 성장요인 중 첫 번째로 ‘창업가적 의사결정’을 꼽는다. 신고전파 성장이론주의자들은, 기업이란 근본적으로 그들이 직면한 환경에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으므로 환경이 기업 행위를 결정한다고 본다. 그러나 내생적 성장이론주의자들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기업인들은 창업가적인 의사결정과 환경변화를 학습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새로운 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경제 기적을 일구어냈다.

창업가정신의 핵심은 도전정신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서 성공하면 크게 되고 실패하면 망한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전열을 재정비해서 다시 도전한다. High-Risk/High-Return이다. 박정희 정권은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 이하 위험감수)을 했고 성공했다. 수많은 기업인이 불모지에서 맨주먹으로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고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공과 실패가 교차했지만 전체로 보면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 소위 ‘기적(miracle)’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위험감수가 불가능하다. 지난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IMF와 월스트리트 합작으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가 한국 사회 깊숙이 이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Low-Return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Low-Risk만을 부각시킨다. 과거의 위험감수 결과가 외환위기로 귀결되면서 한국 국민 모두가 위험감수에 대해 거의 조건반사적인 거부감을 보인다. 투명성의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등장한다. 기업경영을 유리처럼 투명하게 하고 외부에서 철저히 감시하며 주요한 경영의사 결정과정에 사외이사가 직접 개입한다면 외환위기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물론 외환위기 같은 실패사례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성공사례가 있었고 전체로 보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유독 실패사례에만 초점을 맞추어 다시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제시스템 모두를 Low-Risk 체제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패사례만 보면 그들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그들 주장대로 하면 실패야 줄어들겠지만 성공 가능성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높은 수익을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큰 함정이 숨어 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높은 수익을 낼 수 없다. Low-Risk/Low-Return 아니면 High-Risk/High-Return 중 택일해야 한다. Low-Risk/High-Return을 이루어낸 국가는 인류역사상 어디에도 없다. 어떻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가?

정기적금과 주식펀드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크게 달라진 인식 중 하나가 예금보장제도에 대한 것이다. 과거에는 어떤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든 원금은 보장해주었다. 은행의 신탁예금에 돈을 맡겨도, 증권회사의 투자펀드에 돈을 맡겨도 고객들은 당연히 원금이 보장되는 것으로 여겼고 금융기관도 적자를 감수하고 여러 편법을 동원하여 원금을 보장해주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안전하게 확정금리를 받으려면 은행에 정기적금으로 돈을 맡기되 낮은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Low-Risk/Low-Return이다. 대신에 높은 수익률을 원하면 위험감수를 한다는 조건으로 증권회사의 투자펀드에 돈을 맡긴다. 물론 잘되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잘못되면 원금까지 날린다. High-Risk/High-Return이다. 만일 높은 수익률을 확정적으로 보장해주는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가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허위다. 실제로 일부 사설펀드가 이런 방식으로 고객의 돈을 모아 잠적해버린 사례도 있었다. 고객은 둘 중에 한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높은 수익률을 원하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안정성을 원하면 낮은 금리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간 부문에서는 자명한 사실이 국가 경제 전체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 다시는 시장실패나 기업실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견제하고 감시하면 우리 경제가 안정되고 그 후에 다시 고도성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Low-Risk를 택하고서 High-Return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무사 안전한 경제운영을 하면서 높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경제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환상 속의 그림일 뿐이다.

Low-Risk는 한국이 남미로 전락하는 지름길

과연 한국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낮은 경제성장에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다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재도약을 시도할 것이냐 하는 선택 문제부터 국가전략 차원에서 정해야 한다.

Low-Risk/Low-Return을 채택하고 있는 선진국은 대개 매년 2% 성장하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3% 대 이상이면 호황, 1% 대 이하면 불황이라고 한다. 반면에 High-Risk/High-Return을 택하는 개발도상국은 대개 7~8% 정도는 성장한다. 2000년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8,581달러다. 매년 국민소득이 2~3%씩 성장하면 2010년에는 10,460~11,532달러, 2020년에는 12,751~15,498달러가 된다. 7~8% 성장하면 2010년에는 소득이 16,880~18,526 달러 2020년에는 33,206~39,996달러가 된다.[11]

현재처럼 Low-Risk를 채택할 경우에는 영원히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없다는 점을 솔직히 밝혀야 한다. 물론 선진제도는 좋다. 부채비율 축소, 벤처기업 양성, 기업지배구조 개선, 투명성 제고, 소액주주 감시제도, 사외이사제도 등 세계 최대-최고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선진제도는 보기에 그럴듯하다. 이처럼 선진국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면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벤처기업이 대기업 흉내 내다가는 망하기가 더 쉬운 것처럼 국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길을 독자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벤처국가에서 요구되는 첫째 요건은 창업가정신이다. 사회 전 부문에 도전의식이 충만하고 국민 모두가 과감히 위험감수를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산업과 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패배의식에 젖어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우리 스스로 잘못해서 외환위기를 당했으며 한국은 선천적으로 내부결함을 안고 있었다는 승자의 강변을 우리가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해버리는 것은 벤처정신에 위배된다. 우리가 위험을 감수했으니 실패사례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대범하게 넘겨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일어나 재도약을 해야 한다. 재도약을 위해서는 국가 원수부터, 공직자, 기업인,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든 곳에서 소멸되고 있는 창업가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2) 벤처국가의 요건 # 2: 기동성

벤처국가의 두 번째 요건은 기동성이다. 벤처기업이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핵심 비결은 대기업보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먼저 실행함으로써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히트앤런(Hit & Run) 전략을 통해 대기업보다 항상 한 발 앞서감으로써 기회선점의 이득을 누린다.

벤처국가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기면 기동성 있게 처리하고 기회가 생기면 재빨리 포착해야 한다. 네덜란드, 이스라엘, 스웨덴, 핀란드 같은 강소국 모두가 선천적으로 기동성을 지닌 나라이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무적함대를 통해 식민지 확보에 나섰고 이스라엘은 태생적인 유목민으로 역사 이래 강한 환경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스웨덴은 바이킹의 후예며 핀란드는 몽골계통의 핀족이 만든 나라다. 이들 모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의 민족성을 강하게 띈다. 유목민이 중시하는 미덕 중 하나가 기동성이다.

몽골족은 기동성으로 유라시아를 제패

인류역사상 최고의 벤처국가는 역시 칭기즈칸 시대의 몽골족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995년 12월 31일 송년호에서 지난 밀레니엄 동안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칭기즈칸을 뽑았다. 이미 7백년 전에 오늘날의 인터넷에 해당하는 범세계적인 정보소통망을 구축했다는 이유다. 전세계 인구가 3억 명이었던 그 당시 몽골족은 1억 명을 지배했다. 몽골족은 전체 1백만 명이었으며 병사 수는 20만 명이었다.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던 몽골족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바로 기동성이다.

상대성이론에서 에너지는 엠시스퀘어(E=MC2)다. 에너지는 질량(M)과 속도(C)의 제곱에 비례한다. 칭기즈칸의 몽골기마군단은 20만 명으로 질량(M)에서는 보잘것없었다. 그들이 기댈 곳은 오직 기동성을 높여 속도전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병사마다 말을 서너 마리씩 지급해서 의식주를 직접 싣고 다녀 병참라인을 줄였다. 소의 육포를 말려 가루로 만든 보르츠라는 식량을 소의 방광에 넣어 장기식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12] 몽골 말이 하루에 달릴 수 있는 거리인 1백 킬로마다 역을 세워 피지배지역 전체를 거미줄처럼 엮고 의사소통의 속도를 높이는 역전제도도 기동성 향상에 기여했다. 그들은 기동성 하나로 유라시아를 제패했다.

국가경영에서 의사결정의 기동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관료주의(Bureaucracy) 때문이다. 소니의 도이 토시타다(土井利忠) 본부장은 관료주의를 “조직을 진정으로 아끼는 수많은 조직원이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조직이 망한다 망한다’라고 하면서 결국은 집단적으로 망해버리는 병”으로 정의한다.[13] 조직 구성원들이 문제도 알고 위기의식도 있으며 처방도 알고 있지만, 망한다고 목소리만 높이다가 결국은 전체가 망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관료주의를 뿌리뽑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관료주의는 어디서나 뿌리만 내리면 번창하는 민들레에 곧잘 비유된다.[14] 민들레(dandelion)란 말의 어원은 ‘사자의 이빨(dent de lion: tooth of lion)’이다.[15] 관료주의를 제거하는 일은 사자의 이빨을 뽑는 것만큼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인물이 고어 부통령이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통령 자리를 맡으면서 미국의 장기 발전에 초석이 되는 세 가지 일을 해낸다. 하나는 정보초고속도로를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보호 개념을 확산시킨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정부를 대대적으로 개혁하여 작고 강한 정부를 실현시킨 것이다. 소위 NPR이라고 불리는 정부개혁작업은 가히 감동적이다.[16] 물론 미국 국민은 고어의 논리성과 냉정함보다 부시의 어눌함과 인간미에 손을 들어주었지만 아마 역사는 고어의 세 가지 업적을 기릴 것이다. 아무튼 그는 미국 행정부에서 성공적으로 관료주의를 몰아내고 정부를 재창조한다.

우리 정부도 ‘작지만 강한 정부’를 창조해야 한다. 작다는 것은 당연히 규모를 말하는 것일 터이지만 강하다는 것은 힘이 세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본주의(知本主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힘이나 자본 대신에 오로지 지식으로 국민을 선도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전략을 세우고 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사회적 역량을 구축하여 민간부문이 옳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한다. 지적 자극을 통해 창업가정신에 불을 댕겨야 하는 것이다.

정주민과 유목민

산업이나 기업 부문에서도 기동성이 중요하다. 특히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정주민(定住民, sedentary)의 신중함보다는 칭기즈칸 같은 유목민(遊牧民, nomad)의 기동성이 요구된다. 복잡계 이론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소위 ‘잠금(lock-in)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잠금 현상이란 일단 선발자가 시장에 먼저 진입해서 시장을 잠가버리면(선점해버리면) 후발자가 이를 뒤집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론이다. 현실경제에서 잠금 현상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비디오에서 VHS 방식이 베타 방식을 이긴 사례라든지, 원자력에서 경수로 방식이 중수로 방식을 이긴 사례, 자동차에서 오일 자동차가 수증기 자동차를 이긴 사례 등 수없이 많다. 산업화 시대에는 속도보다 질(質)이 우위다. 다소 늦더라도 완벽한 품질을 값싸게 만들어내면 고객은 만족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는 속도가 최고의 선(善)이다. 기동성만이 시장과 고객을 보장해준다.

우리 한민족은 대표적인 유목민족인 북방계 몽골리언이 주류를 이룬다. 북방계 몽골리언이 대략 80% 그리고 남방계 몽골리언이 20%로 구성되어 있다. 남방계의 원형은 4만~2만5천 년 전 남아시아, 남태평양 제도 등에 거주했으며 눈이 크고 쌍꺼풀이 발달했고 긴 팔다리와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졌다. 그리고 남방계 중 일부가 3만 년 전에 몽골고원, 고비사막, 티베트로 이동하여 북방계를 이루었다. 북방계는 강풍과 추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눈이 작아지고, 습기가 차 얼어붙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체모가 감소했으며 체열 손실을 막기 위해 다부지고 뭉툭하게 체형이 바뀌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몽고인, 중국 한족, 한국인 등이 북방계이고 일본, 베트남, 태국, 중국 남부인 등이 남방계다.[17]

한민족은 주류가 북방계고 일본민족은 남방계다. 북방계는 기동성을 중시하는 유목민족이고 남방계는 완벽함을 높이 사는 정주민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완벽함과 품질을 추구하던 일본이 우위에 섰다. 그러나 속도를 중시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기동성 있는 북방계가 우위를 점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이제껏 인류의 역사는 정주민 중심으로 기술되었지만 그 뒤안길에는 유목민족의 역사가 숨어 있다. 알 수도 없는 곳에서 홀연히 나타나 고대 서아시아의 제국을 무너뜨린 뒤 갑자기 북방으로 돌아간 스키타이 족, ‘신의 채찍’으로 불리며 게르만족을 밀어내면서 영원한 수도 로마를 위협했던 훈족, 멀리 북방 바이칼 호 근처에서 일어나 한 세대가 채 지나기 전에 문명사회의 꽃이었던 북경과 바그다드와 키예프를 함락시켜버린 몽골 족.[18] 이들이 세계의 정복자 자리에서 내려온 것은 지금부터 불과 3백년 전의 일이다.[19]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일으킨 정주민의 생산성 향상에 밀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유목민족의 혼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한국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20세기 말 인류가 새롭게 창조한 가상공간(cyber space)을 지배하는 자는 정주민이 아닌 유목민일 것이다.

유목민들은 극도로 험난한 조건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기에 패배를 모르는 왜소하고 단단한 체격이 초원에 의해 형성되었다. 고원지대의 매서운 바람, 혹심한 추위와 타는 듯한 더위는 그들의 주름진 눈매, 높이 솟은 광대뼈, 숱이 없는 머리털로써 그들의 얼굴을 조각했으며 힘줄이 불거진 그들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20] 이러한 북방계 몽골리언의 유전인자가 우리의 핏줄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고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모바일 기기,[21] 급속히 확산되는 인터넷 전용라인, 테헤란로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디지털 열풍, 이 모든 이상(異常)현상은 우리가 유목민족의 후예라는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한(韓)’은 칭기즈칸의 ‘칸(Khan)’과 같은 의미다.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던 유목민족의 기질에 어떻게 불을 지펴 국가경쟁력 강화로 연결시킬 것인가? 그리고 국가 전체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최고 덕목인 기동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다.


3) 벤처국가의 요건 # 3: 선택과 집중

벤처국가와 벤처기업의 공통점은 보유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유자원이 적은 벤처국가가 강대국이나 대기업과 같은 방법으로 자원을 동원하고 배분해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시도는 이룰 수 없는 허황한 꿈이다. 뭔가 달라야 한다.

우선, 힘을 집중시킬 대상 목표를 선택하고 자원을 집중시킨다.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보유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유자원이 없더라도 우리가 설정한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즉 자원의 배분보다는 창업가의 의지(Intention)가 더욱 중요하다.

창업가의 의지

1980년대 일본의 소형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석권하고 엄청난 이익을 내자 미국은 일본의 전략을 벤치마킹한다. 미국 측이 내린 결론은 상품개발 순서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전통적 전략대로 고객의 니즈(needs)를 파악하고 설계를 한 다음 마지막으로 부품 원가절감에 들어갔다. 일본은 이와 달리,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 후 먼저 목표 이익을 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를 거꾸로 맞춰갔다. 요컨대 미국은 합리적으로 효율성, 효과성을 높이는 방식을 택한 데 비해 일본은 먼저 의지(목표 이익)를 정한 후에 모든 것을 이에 맞추어 가는 역추진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는 벤처국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노력해봐야 이미 수백 년에 걸쳐 자본과 노동력을 축적해온 선진국을 추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모험을 걸어야 한다. 먼저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원대하게 정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성장하되 영원한 개발도상국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는 선진국이 되고자 모험을 걸 것인가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만일 선진국의 길을 택했다면 안정 위주의 전략과 시스템은 포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일어날 수 있으나 이에 좌절하지 말고 재도약을 해야 한다.

설정하는 목표는 다소 무모해도 좋다. 이제껏 우리는 자신이 보유한 자원과 역량만큼 성장해야 한다는 서구적인 합리성을 뛰어넘어 꿈과 야망을 갖고 무리하게 자원을 동원하고 역량을 키워내는 공격적인 전략모델을 채용해왔다.[22]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처럼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해냈던 창업가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자본이 모자라면 저축을 장려해야 하고 국내에서 해결이 안되면 국가 원수라도 해외로 나가 자본을 빌려와야 한다. 노동력이 부족하면 여성 인력을 동원하고 그도 안되면 외국인 인력을 들여와야 한다. 기술이 부족하면 국내에서 개발하되 그도 안되면 해외에서 사오든 빌려오든 해야 한다. 전 국민이 힘을 합해 자원을 동원하여 원대한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니치 산업의 육성

구체적인 예를 보자. 산업 부문에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의지의 결과는 니치 산업으로 귀결된다. 선진국과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는 산업 대신에 미래 성장전망이 높은 니치 산업을 찾아내야 한다. 일단 대상 산업이 정해지면 세계 시장 제패를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당연히 시장자유주의자들은 반대할 것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정부가 구시대적인 산업정책을 세우고 민간에게 강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자유시장은 강대국처럼 시장에서 완전 경쟁이 작동하는 나라에서나 가능하다. 우리는 국내에서 완전 경쟁이 작동할 만큼 시장이 크지 못하다. 1997년의 한보사태를 보자. 만일 월스트리트에서 한보사태가 터졌다면 부도가 나든 매각이 되든 하루아침에 결판이 나고 다음 날에는 잊혀버렸을 것이다. 시장 규모가 이를 충분히 흡수할 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은 우리 시장에서는 거의 1년에 걸쳐 많은 논쟁이 일어났고 결국은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작동했으며 지금까지도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미국 교과서에서나 통할 완전 경쟁 시장을 좁디좁은 한국에서 주장해봐야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역할을 과거로 되돌리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전략도, 방향도 없이 민간의 의사결정 과정에 사사건건 개입하던 과거를 반복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더욱 강해져야 할 기능은 전략 수립과 방향 제시 그리고 인프라 제공이다. 우리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산업을 니치로 잡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격렬한 논쟁 과정을 거쳐 방향을 정한 후에 민간을 설득하고 독려하여 나라의 자원이 그쪽으로 집중될 수 있도록 촉진책을 써야 한다. 그리고 제도와 법률을 정비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과정 관리에는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 과거악(過去惡)의 망령이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국가 차원에서 니치 산업을 선정해서 전 세계에 공표하면 그 자체로도 이익이 될 수 있다. 반도체, 철강, 조선 산업에서 보듯이 과거에 한국이 일단 힘을 집중시킨 분야에서는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던 성공사례가 세계 산업가들의 뇌리에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진국이 우리가 선정한 니치 산업에 진출하거나 확장을 할 때는 한국의 국가전략을 도외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기존의 전통산업과 굴뚝산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 수준의 철강, 조선, 반도체 산업을 하루아침에 모두 버리고 금융, 소프트, 디지털 산업으로 가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언젠가 간다는 방향은 정하되 단계를 밟아 점진적으로 가야 한다. 그 방안 중 하나가 ‘0.5차 더하기’다. 1차산업인 농업은 1.5차산업으로 가고 2차산업인 제조업은 2.5차산업으로 가는 것이다. 수박을 그냥 팔면 1만 원을 받지만 네 조각을 낸 후 포장해서 하나당 4천 원씩에 판다면 1만6천 원을 벌 수 있다. 이 중에서 6천 원이 지식을 부가시킨 대가다. 마찬가지로 제조업에도 지식을 부가하면 2.5차산업이 될 수 있다. 과거 가장 전형적인 제조업체였던 IBM이 그들 스스로 서비스산업이라고 표방한 것은 벌써 20년 전 일이다. 현재 그들은 컴퓨터 하드기기를 판매해서 얻는 이익보다 정보통신기술과 관련된 문제 해결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이 훨씬 더 크다. 우리도 일단은 모든 산업에 지식을 부가시켜 0.5차 더하기 운동을 벌이자.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좀 더 넓게 보자. 국가경영 차원에서 ‘경쟁력’이라는 화두의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현재 우리는 나라의 절반이 구조조정의 혼란에 휩싸여 있고 나머지 절반은 대선 정국의 개막에 몰두해 있다. 여기서는 정치 측면은 논외로 하고 구조조정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자.

구조조정이란 과거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그간 쌓였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다. 혹자가 “역사에는 압축은 있지만 생략은 없다”라고 주장한 것처럼 우리가 당연히 치르고 넘어가야 할 홍역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그래야 ‘역사의 생략’으로 인한 부작용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국력을 구조조정에만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방식의 구조조정은 아무리 잘해봐야 원상복귀를 이룰 수 있을 뿐이다.

이제는 구조조정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좀 더 전향적으로 생각해서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이라는 과제의 많은 부분이 저절로 해결된다. 구조조정 과제 중 상당 부분이 불황과 고금리로 인한 기업도산과 금융기관 부실로 인해 만들어진 악순환 고리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어 많은 돈을 외국으로부터 벌어올 수만 있다면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구조조정 문제의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한국에 포항제철이나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10개만 있다면 구조조정이 왜 필요하겠는가? 모두 스스로 풀릴 문제다.

구조조정도 하고 경쟁력도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는 것이다. 물론 몽상가들의 머리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경영원칙 중에 중점주의(重點主義)라는 말이 있다. 그 반대가 망라주의(網羅主義)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고 하면 실제로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 중요한 곳에 전력을 집중시켜서 성공하면 다른 것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논리가 중점주의다.

시골에서 고구마 뿌리를 캘 때 보면 아마추어는 호미로 뿌리를 하나씩 캔다. 반면에 베테랑 할머니가 고구마 줄기를 찾아 쭉 당기면 고구마 뿌리 여러 개가 따라서 올라온다. 맥을 짚고 힘을 모아야 한다. 제2차대전 때 프랑스가 철옹성으로 자랑하던 마지노선이 독일군의 공격으로 하루 만에 맥없이 무너졌다. 당시 프랑스는 탱크를 보병 지원용으로 배치했던 데 비해 독일군은 탱크만으로 별도의 기갑부대를 구성하여 힘을 집중시킴으로써 손쉽게 마지노선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다만 한가지 조심할 일은 우리와 경쟁상품을 갖고 있는 선진국들이 우리를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구조조정의 혼란 속에 빠져 있을 때는 강 건너 불 보듯 즐기고 있겠지만 막상 우리가 팔을 걷어붙이고 경쟁력 강화에 매진할 경우 그들은 다시 긴장할 것이다. 과거 “제2의 일본 침공”이라는 신문 헤드라인 대신에, 언젠가 “몰락한 한국의 재반격”이라는 타이틀이 실릴지도 모를 일이다. 경쟁력 강화 과정에 정부의 후방 지원이 따를 것이고 이에 대해 WTO에 제소도 할 수 있는 일이며 한동안 접어두었던 슈퍼 301조라는 무소불위의 보검을 다시 꺼내 휘두를 수도 있는 일이다.

요컨대 맥을 짚고 선택을 통해 힘을 집중시키면 니치 산업도 크고 경쟁력도 향상될 것이다.


4) 벤처국가의 요건 # 4: 대기업과 벤처의 미들업앤다운형 결합

벤처기업만이 대안인가

현재 우리의 정서로 벤처기업은 선(善)이고 대기업은 악(惡)이다. 이러한 선악 개념이 성립한다면 만약에 벤처기업이 성공해서 대기업이 되면 이는 무엇인가? 대기업은 악(惡)이니 모두 망해야 하고 벤처기업만이 유일한 대안인가? 벤처기업만으로 국가 경제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작년 초 코스닥 주가의 붕괴로 증명되었다. 결코 벤처기업을 비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벌 흉내를 내던 몇몇 사이비 재벌이나 정경유착 또는 도덕적 해이를 범한 일부 대기업이 도산했다고 해서 모든 대기업을 악(惡)의 표상으로 몰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연 벤처기업만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과연 테헤란 열풍을 일으킨 주역들이 해외에서 얼마나 돈을 벌어왔는가? 최근 들어 벤처 생태계 내부에서도 거품이 제거되고 사이비 벤처들이 정리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에 특허를 출연하고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많은 벤처기업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만으로 한국경제가 지탱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공정거래정책에서 중소기업 고유업종 같은 여러 규제를 통해 중소기업을 보호했지만, 국내 시장이 전면 개방되자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대부분은 외자계 선진기업에 빼앗겨버리고 결국은 국내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 현상만 일어났을 뿐이다. 이제는 공정거래정책의 범위도 내수시장 기준에서 세계 차원으로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

이제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서로 적대적인 상충(相衝) 관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상생(相生) 관계를 맺도록 함으로써 서로 간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대만의 중소기업형 모델이 우리의 벤치마크인가?

혹자는 우리도 대만처럼 하면 중소기업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주장한다. 대단한 왜곡이다. 대만인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한국의 대기업 중심체제를 대단히 부러워하고 있으며 한국을 흉내 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한계점을 안타까워한다. 우리 경제가 대만 경제를 흉내 내야 한다는 논리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경로 의존성이고 다른 하나는 신뢰의 범위 문제다.

먼저 경로 의존성을 보자. 일단 대만의 중소기업 중심형 체제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체제라고 가정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수십 년간 내려온 한국의 경로 의존성을 무시하고 대만 식으로 사회 시스템을 바꿀 경우 얻을 수 있는 장점보다는 그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대기업 몇 개만 도산해도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데 한국의 대기업을 모두 도산시킬 것인가? 아니면 전부 중소기업으로 쪼갤 것인가? 중소기업으로 쪼갤 업종이 있고 아닌 업종이 있다.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 대부분은 후자에 속한다. 포항제철이나 현대자동차를 중소기업으로 잘게 나눌 수는 없는 일이며 설사 나눈다 해도 존속이 불가능하다.

둘째 신뢰의 범위 문제다. 후쿠야마는 그의 명저 『신뢰』라는 책에서 한국과 대만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었다.[23] 사회적인 신뢰 기준으로 보면 선진국의 경우에는 신뢰의 연결고리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있는 반면 후진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우는 대부분 신뢰의 범위가 가족 단위로 국한되어 있으며 한국이나 대만도 이에 포함된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은 박정희라는 지도자가 직접 개입해서 신뢰의 범위를 국가 전체로 확산시킨 결과 대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지만 대만의 경우는 가족 단위의 중소기업밖에 발전할 수 없었다는 것이 후쿠야마의 주장이다. 대만의 중소기업은 의지의 결과가 아니지만 한국의 대기업은 의지와 선택(intention & selection)의 결과다. 후쿠야마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대만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퇴보에 해당한다.

그러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활로는 무엇인가? 벤처기업과 대기업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양 기둥이 되어야 한다. 특히 양자가 끈끈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시너지를 내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보텀업형 벤처와 톱다운형 벤처

벤처기업은 대개 톱다운(top-down)형 벤처와 보텀업(bottom-up)형 벤처로 나누어진다.

흔히 리더십이나 연구개발 차원에서 톱다운과 보텀업이 곧잘 대비된다. 리더십에서는 위에서 일방적으로 전략을 정하고 밑에서 이를 일사불란하게 따라가는 방식이 톱다운이요, 그 반대가 보텀업이다. 연구개발 차원에서 톱다운은 인텔처럼 차기 연구개발 목표를 명확히 정하고 전 조직이 힘을 합해 일사불란하게 신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반면 보텀업은 3M처럼 현장의 자발적인 연구개발을 장려하고 다양한 연구개발을 진행하다가 그중에 히트제품이 나오면 이를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특성을 벤처기업에도 대입시킬 수 있다. 보텀업형 벤처란 테헤란로에서 열풍처럼 일어나고 있는 자생적 벤처일 것이고 톱다운형 벤처는 대기업에서 스핀아웃되거나 자회사로 독립된 벤처일 것이다.

문제는 양자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개발이나 기동성 면에서는 당연히 보텀업형이 우위에 서겠지만 자원조달이나 경영의 안정성 면에서는 톱다운형이 우세를 보인다. 테헤란로의 수많은 벤처기업이 훌륭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도 시장 선점이나 이익 창출에 실패하고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경영위기에 봉착한다. 대기업에서 스핀아웃된 벤처는 아이디어나 기술이 부족하거나 실기하여 시장을 잃는다. 수익 차원에서 보면 보텀업형 벤처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만큼 도산의 가능성도 높지만 톱다운형 벤처는 상대적으로 큰 수익도, 큰 손실도 내지 않고 고만고만한 경영을 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양자 간의 장점만을 결합할 수는 없을까?

미들업앤다운형 벤처

새로운 벤처기업의 유력한 유형으로 미들업앤다운형을 제안한다. 이는, 노나카가 제시한 미들업앤다운형 연구개발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다.[24] 인텔 같은 톱다운형 기술개발에서 볼 수 있는 효율성과 일사불란함에 3M의 보텀업형 기술개발이 가지는 다양성과 자율성이라는 장점을 가미한 방식이 미들업앤다운형 연구개발 방식이다. 먼저 톱에서는 연구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개념이나 큰 방향만 제시한다. 그러면 미들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실험을 통해 연구개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내고 톱이 제시한 방향에 맞는지 검증한다. 방향이 맞는다면 구체적인 연구개발에 들어간다. 노나카는 일본이 미국을 추월한 경박단소형 가전제품이나 소형 자동차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발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고객이 없는 기술개발로 인한 자원 낭비도 줄어들고 시행착오가 없어지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나 자율성은 상당 부분 보장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벤처기업에 대입해보자. 미들업앤다운형 벤처란 다음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 일단 대기업은 미래 기술의 발전방향이나 선진국의 기술동향 등을 세밀하게 조사 연구하여 개괄적인 기술개발 방향을 정한다. 그리고 이를 벤처기업이나 창업가들에게 설명하고 또한 그들이 원하는 구체적인 기술에 대해서도 소개하며 그 기술의 개략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언질을 준다. 그러면 벤처기업가는 큰 방향 내에서 기술개발 계획을 세우고 사전에 대기업 측과 협상을 통해 대강의 일정과 기술의 가치 등을 정한다. 그리고 R&D 과정을 거쳐 실제로 기술이 개발되면 대기업과 공동으로 상품화를 하든지 아니면 대기업이 기술을 매각하든지, 아니면 벤처캐피털이나 엔젤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유치하여 직접 상품화로 연결시킨다. 이러한 선순환 고리가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상충관계가 아니라 상생관계 아래서 보다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며 국가 전체로서도 자원의 낭비나 시행착오로 인한 손실이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 미래 기술의 방향이나 경쟁 상대의 기술개발 동향에 대한 조사는 스탠포드대학교 등 역내 여러 대학이 담당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기업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벤처기업가들에게 설명하고 벤처기업가는 이에 맞추어 사업계획을 수립한 후 기술개발 또는 상품화에 성공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수익에 대한 큰 줄거리를 대기업과 사전에 협의한다. 그리고 그 범위 내에서 열심히 기술개발에 몰두하여 신기술을 개발하고 상품화에 성공하면 이를 대기업 측에 매각하는 것이다.

최근 추세는 새로 설립되는 벤처기업 중 80% 이상이 애당초 나스닥까지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주식이 상장되면 이미 벤처기업이 아니므로 벤처기업가들로서는 대규모 기업을 운영하는 것보다는 매각대금을 종잣돈으로 삼아 또 다른 기술개발에 전념하는 게 오히려 자기들의 배짱에 맞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리콘밸리의 모습도 미들업앤다운형 벤처기업의 한 가지 유형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우리도 나름대로의 미들업앤다운형 벤처모델을 개발하고 벤처기업과 대기업, 대학과 연구기관, 그리고 벤처캐피털과 엔젤 투자자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우리 특유의 생태계를 형성해가야 할 것이다.

M&A는 권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M&A와 관련된 문제다. M&A에도 당사자 간 협상으로 이루어지는 우호적인 M&A와 매수자가 일방적으로 기업사냥에 나서는 적대적 M&A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모든 M&A가 적대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오인하여 무조건 M&A는 나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벤처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특히 M&A가 권장되어야 한다.

벤처기업은 모험을 감수한다는 특성이 있으므로 대기업에 비해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나 비록 실패한 벤처라도 그 실패 사례는 다음 기술을 개발할 때 대단히 값진 자산이 되며 그 과정에서 많은 기술과 인적자본이 축적된다. 그런데 M&A를 통해 다른 기업에 매각할 수 없다면 결국 실패한 벤처기업은 청산과정에서 빚잔치를 통해 모든 노하우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풍토가 확산되면 나라 전체의 창업가정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 반면에 M&A가 활성화되면 비록 실패한 벤처기업이라도 그동안 투여된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보상받을 수 있고 축적된 노하우도 사장되지 않으며 후진에게 과감히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창업가정신을 북돋워주는 역할 모델이 되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가령 영업 중인 빵집을 매각한다면 작으나마 권리금이나 기술료 등 무형자산에 대한 가치를 챙길 수 있겠지만 문을 닫아건 폐업상태에서 매각을 한다면 무형자산에 대한 가치는커녕 시설 철거비까지 매각자가 부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M&A는 나쁜 것이라는 우리의 선입견은 불식되어야 하며 M&A야말로 벤처기업을 활성화시키는 주요 수단 중 하나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5) 벤처국가의 요건 # 5: 도전을 촉진하는 사회시스템

극단적으로 대비하는 감은 들지만 여러 국가가 가지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크게 나누면 수비를 강화하는 시스템과 도전을 촉진하는 시스템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미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들어선 선진국들은 대개 수비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반면 개발기 또는 성장기에 있는 나라들은 도전적 시스템을 택한다.

우리 경제는 아직 국민소득이 만 달러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 상태에 있으므로 중진국 또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설 때까지 당분간은 도전을 촉진하는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라는 실책을 범한 대가로 우리는 선진국들로부터 수비적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강요받은 결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 사회가 노년층에나 어울리는 안전 위주의 사회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소위 ‘조로(早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창업가정신의 소멸에서부터 투명성 문제, 부채비율 축소, 안행형 집단체제의 붕괴, 패자부활 기회의 박탈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도전의식의 싹까지 없애버리는 시도가 완결 단계에 와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투명성의 실체: 월스트리트 자본의 한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

먼저 투명성 문제다. 1997년 12월 8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글을 보자. “루빈 장관은 한국 구제금융 방안에 이빨(강경조건)이 들어가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IMF는 지난 50년 동안 위기국가에 엄격한 요구를 해왔지만 한국에 대한 조건은 과거 때보다 훨씬 강경한 것이었다. 특히 루빈 재무장관의 완강한 요구 때문에 한국 정부는 기업회계의 투명성 같은 분야에서도 IMF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IMF는 시장 개방, 정부역할 축소 등 미국식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따라서 IMF는 미국 정책의 볼모로서, 폐쇄적이고 귄위주의적인 아시아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여기서 기업의 투명성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다. 미국은 1997년 말 IMF와 협력하여 한국의 자본시장을 거의 전면적으로 개방시키는 동시에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도록 한다는 합의문을 한국 정부로부터 받아낸다.

그런데 IMF와 월스트리트 자본이 주장하는 투명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일부 개념상 혼란이 일고 있다. ‘투명성’이라는 용어가 주는 뉘앙스 때문에 투명한 것은 선(善)이요, 불투명한 것은 악(惡)이라는 식으로 투명성 문제가 선악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얼마 전 대우의 분식결산 문제가 불거지면서 기업경영은 무조건 투명해야 한다는 일방적 논리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투명성의 대상은 대개 두 가지다. 회계처리의 투명성과 의사결정의 투명성이다. 여기서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회계처리의 ‘투명성’이라는 용어와 회계처리의 ‘불법성’ 또는 ‘부당성’이라는 용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투명성이란 정보의 공개 여부에 관한 것이고 부당성-불법성은 정보 처리의 적합성 또는 적법성에 대한 것이다. 대우의 분식결산은 회계정보를 불법적으로 조작했으므로 불법성-부당성을 범한 것이지 투명성 문제와는 상관없다. 투명성은 회계정보를 제3자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공개 여부에 관한 것이므로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따라서 기업경영의 회계처리 내용과 주요 의사결정을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공개하는 것은 선(善)이고 그렇지 못하면 악(惡)이라는 강변은 성립하지 않는다. 요컨대 우리가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택하면 투명성이 필수조건이지만 독일식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투명성은 선택조건이다.

IMF 체제 아래 한국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한국의 자본주의체제가 독일식에서 영미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먼저 전통적으로 한국경제체제의 기반이 되어온 독일식과 월스트리트에서 작동하고 있는 영미식의 차이점을 보자.

과거 독일식에서 기업은 투자 재원을 대주주나 은행으로부터 조달하는 간접금융 방식에 의존했다. 반면 영미식에서는 증권시장 같은 직접 금융시장에서 투자재원을 조달한다. 직접 금융시장에서 자본을 제공하는 측은 대상기업의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투자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기업 측에 내부 자료를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따라서 독일식에서는 은행과 대주주에게만 정보를 제공하지만, 영미식에서는 증시에 참여하는 모든 소액주주에게까지 내부 정보를 공개한다. 그리고 이처럼 증시에 관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내부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소위 ‘투명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다시 말해 월스트리트가 요구하는 투명성 제고란 한국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가 불투명하니 이를 투명하게 고치라는 소위 선악 차원이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에 은행이나 대주주에게만 공개하던 내부 정보를 증시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까지 공개하라는, 다시 말해 정보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들 월스트리트 자본이 한국 시장에 진입하여 손쉽게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기법을 활용하여 한국 기업에 투자를 하고 싶은데 이를 위해서는 해당 기업의 정보 확보가 선결조건이기 때문에 나온 요구로 볼 수 있다. 독일식에서는 기업내부 사정을 만천하에 밝힐 필요는 없다. 대주주와 은행에 대해서만 투명하면 된다.

요컨대 IMF와 월스트리트가 요구하는 기업의 투명성이란 기업의 속사정을 누구에게까지 공개할 것이냐 하는 ‘정보 공개의 범위 확대’를 의미한다. 한국이 과거처럼 독일식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면 투명성은 필요 없다. 굳이 영미식 체제로 전환하려다 보니 투명성 문제가 부각되는 것이다.

1997년 IMF가 한국의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요구한 네 가지 사항을 다시 보자. 독립적인 외부감사, 완전 공시, 기업집단의 결합재무제표 공시, 국제회계원칙을 적용한 재무제표 작성 등 IMF가 요구한 네 가지 모두가 선악이나 도덕적 차원과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순전히 월스트리트 자본이 한국에서 투자를 손쉽게 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관련된 사항이다.

IMF가 한국에 요구한 투명성 관련 사항은 IMF의 전통적 처방인 소위 ‘워싱턴 합의’의 열 가지 항목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조건이다. 다시 말해 투명성 요구는 한국에만 특별히 추가시킨 급조된 요구조건이다. 일부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미국 기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도 상세히 다루었지만 한국 기업을 헐값 세일로 인수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치밀한 사전포석이다.

세계은행의 스티글리츠 수석부총재[25]는 IMF가 주장하는 동아시아의 투명성 부족에 대해 반대의 뜻을 명확히 한다. 아시아 위기로 인해 투명성 문제가 부각되었지만 투명성 부족이 위기를 야기했다는 증거는 부족하며 세계에서 투명성이 가장 높았던 스칸디나비안 3개국에서도 외환위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동아시아 국가의 투명성은 위기를 당하지 않은 다른 국가의 평균 수준이며, 동아시아 국가는 30년간 급성장을 해오면서 위기 직전에 투명성이 증가했을지언정 낮아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편다.[26]

브라운대학의 웨이드[27] 역시 투명성 부족이 한국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편다. 그는 먼저 서구 금융기관과 IMF의 요구를 정리한다. 아시아 정부는 은행과 대기업들에게 묵시적인 보증을 함으로써 무분별한 투자가 일어나고 수익성이 낮아지는 가운데 정부의 보증이 없어지자 은행과 기업이 붕괴되었으므로, 한국의 대기업은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결합재무제표, 공시제도 강화, 상호지급보증 폐지 같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IMF의 요구다. 이러한 관점은, 만일 채권자가 그들의 채무자에 대해 더 좋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더욱 ‘투명’했다면, 채권자는 묵시적인 정부 보증을 덜 신뢰했을 것이고 대출도 줄였을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을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웨이드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국제투자가들 스스로 고수익의 기회를 잡기 위해 아시아로 몰려들었으며 그들은 공개된 자료를 통해 위험신호를 명확히 읽을 수 있었다. 예컨대 1996년 1월 BIS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가 1995년 상반기에 급속히 부채가 증가해서 337억 달러가 되었고 그중 3분의 2가 현지 금융기관이 새로 일으킨 차입이었다. 은행 간 단기대차 중 1995년 중순 기준으로 64%가 단기차입이었다.”

웨이드는 그 외에도 정보가 투명했다는 많은 증거를 제시한다. 그의 주장은 투명성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은행가들이나 국제투자가들이 위험신호를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IMF나 BIS의 실무자 계층에서는 경고신호를 울리려고 했으나 고위층이 이를 가로막았다. 세계은행의 인도네시아 주재관이 1997년 가을에 방문한 울펜손 총재의 연설문을 준비하면서 인도네시아 경제의 심각한 문제점들에 대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포함시켰는데도 울펜손 총재가 이를 삭제했고 대신에 인도네시아와 아시아의 기적을 더욱 부각시키는 내용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경영 의사결정 행위는 과학인가? 예술인가?

기업경쟁력 차원에서 회계의 투명성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주제가 의사결정의 투명성이다. 자칫 이 문제를 잘못 다룰 경우 한국은 창업가정신이 근본적으로 훼손될 위험이 크다.

기업경영에서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CEO와 경영층의 역할인 경영상 핵심적인 의사결정 행위에서 과학이 개입할 여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직관의 영역이며 때로 창조적 예술의 영역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것이나 정주영 회장이 조선사업을 시작한 것은 직관과 동물적 감각에 의존한 창업가정신의 발로였다.

1990년대 초에 세계 최고 수준의 AT&T 벨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연구의 주류가 전자통신기술이었지만 연구소 한편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퀘스트라는 조직을 만들고 경영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들의 연구 주제 중 하나가 직관경영(直觀經營)[28]이었다. 당시 구미의 여러 선진기업이 목표 경영[29]에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 그들은 경영자의 직관력을 높일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유수의 비즈니스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온 MBA들이 과학적인 경영관리기법을 활용하여 CEO를 열심히 보좌했지만 현실경영과 괴리된 처방이 나오고 급기야는 일본의 약진이 두드러지자 구미기업 일각에서는 과학적 관리기법에 대한 자성론이 나왔고 극복 방안으로 직관 경영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예술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 경영 의사결정도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만약 어떤 CEO가 과학이나 논리로 해석되는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면 그는 MBA 출신의 스태프가 해야 할 일을 CEO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오랜 경륜과 동물적 감각 그리고 총체적 사고가 결합되어 나오는 경영자의 직관이야말로 지식 차원을 넘어서는 지혜(知慧)에 해당하는 것이다.

영미식 자본주의체제에서 요구되는 의사결정의 투명성 강화란 경영자의 의사결정 행위에 대해 월스트리트와 개미군단을 포함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내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만일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시작할 무렵 지금처럼 월스트리트와 소액주주들까지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만 했다면 애당초 한국에서는 반도체 사업이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 LG전자, 포항제철, 현대조선소, 현대자동차도 현재 이 땅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식에서는 대주주와 주거래 은행만 설득하면 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에 대주주나 은행은 믿을 수 있는 CEO에게 전권을 위임한다. 따질 게 있더라도 CEO의 의지와 얼굴 표정에서 성패를 읽어내며 개별 사안에 대해 일일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은 요구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물론 영미식에서도 GE의 웰치처럼 주주들로부터 경영전권을 위임받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예외다. 대부분은 월스트리트 투자가들을 일일이 설득해야 하고 분기마다 나오는 실적에 따라 CEO의 희비가 엇갈린다. 1992년 GM의 CEO였던 로버트 스텐펠은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실격 판정을 받고 취임 2년 만에 회장실을 떠났다. 뒤이어 IBM의 존 에이커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제임스 로빈슨, 웨스팅하우스의 폴레고도 같은 길을 걸었다.

MIT의 석학들은 Made in America라는 명저에서 1980년대 미국이 일본에 뒤지게 된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거론한 바 있다.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가장 큰 약점은 이른바 ‘참을성 있는 자본(patient capital)’이 적다는 것이다. 단기수익을 좇는 탓에 기업의 단기성과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투자가들은 주식을 팔아 치운다. 그 기업의 주가는 떨어지고 자본조달비용은 그만큼 커진다. 분기별 실적에 CEO의 목줄이 좌우되기 때문에 CEO들로서는 초단기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으며 장기간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거나 위험부담이 큰 사업을 일으킬 수 없었다는 게 그들의 지적이다. 예외적인 기업이 GE였고 GE는 현재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만일 삼성전자가 이처럼 외부로부터 분기별로 평가받고 이에 따라 CEO의 수명이 결정되었다면, 수십 년간 적자를 낸 후 이제야 겨우 이익을 내기 시작하는 반도체사업은 이 땅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제는 영미식 체제 아래서 더 이상 도전적인 사업을 벌일 수 없게 되었다. 단기 시각으로만 움직이는 외부감시자가 위험 감수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며, 경영자도 더 이상 직관에 의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스스로 자신들의 치부라고 반성하는 방향으로 한국이 왜 나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알 길 없다.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독일 같은 선진국이라면 그래도 일부분 수긍이 간다. 그러나 한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채 만 달러도 되지 않는 개발도상국이다.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해서는 절대로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없으며 영원히 중진국에 만족해야 한다. 과연 이것이 원하는 바이고 구조조정의 목표인가? 만일 영원히 중진국에 머물기를 원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향으로 사회-경제시스템을 고치고 안정적인 성장을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만일 높은 성장을 하고 언젠가 선진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다시 도전적으로 사업을 펼쳐야 한다. 만일 그 과정에서 실패를 하더라도 전 국민이 이를 감싸주고 힘을 북돋워주어야 한다.

물론 일부 사이비 대기업이 전횡을 저지르는 것까지 눈감아주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만약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가 실패하면 그 기업을 도산시키면 될 일이다. 그 와중에서 CEO와 경영자가 탈법적인 행위를 했다면 법적 조치를 취하고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CEO의 의사결정 착오로 경영이 위기에 봉착한다면 이는 법적 소송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는 투자가들도 CEO의 비전과 능력을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은행으로부터 차입을 해서 사업을 벌인다면 이는 은행이 견제하면 된다. 1997년 이전에는 대마불사라는 신화가 존재했지만 이제는 대기업이라고 해서 아무런 검증 없이 부실한 투자에 마구 자금을 빌려줄 금융기관은 이미 한국에 없다. 상부에서 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창구 담당부터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 철저히 따져서 사업성이 있으면 대출이 나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도전적인 사업을 벌일 수 없다. 대출해준 기업이 도산하면 그 책임은 은행이 져야 한다.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치렀고 이러한 학습 결과는 이미 한국경제시스템 내에 체화되었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채비율 한도 축소는 성장률 저하로 직결

다음은 부채비율 문제다. 일반상식과는 달리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이 해외로부터 조달한 대규모 부채나 그로 인한 높은 부채비율은 한국 외환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소위 제3세대 외환위기 모형에서는 ‘헷징되지 않은 대규모의 외화표시 단기부채’가 외환위기의 촉발요인이었다.

크루그만도 처음에는 높은 부채비율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가[30] 나중에는 말을 바꾸어 부채비율이 문제가 아니라 대규모 부채가 외환표시로 되어 있는 데다가 헷징을 하지 않은 것이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31] 동아시아가 부채를 통해 많은 자본을 조달하여 의욕적인 투자를 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높은 부채비율로 인해 외환위기가 촉발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브라운대학교의 웨이드도 크루그만과 견해를 같이 한다.[32] “세계은행은, GDP 대비 부채비율이 48% 이하이면 저위험으로, 58~80%이면 중위험으로, 80% 이상이면 고위험으로 보는데 1995년에 인도네시아는 57%, 태국은 35%, 한국은 22%이었다. 세계은행은 수출 대비 부채비율이 18%를 위험선으로 보는데 1995년에 인도네시아는 31%, 태국은 12%, 한국은 1994년에 7%이었다. 한국의 취약성은 부채규모 때문이 아니라 만기가 1년 미만인 단기부채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1996년 말 기준으로 거의 70%에 달했으며 이는 개발도상국 평균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크루그만이나 웨이드의 관점에 비추어 볼 때, 만약에 해외차입금을 장기로 빌려 왔더라면, 아니면 차입금 중 일부만이라도 원화로 계약했더라면, 아니면 외화표시부채를 헷징만 했더라면, 아니면 감독기관이 현상만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외환위기는 촉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높은 부채비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후적으로 외환위기 이후에 일어났던 두 가지 부작용 때문이다. 하나는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대규모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고 원화가 대폭 평가절하되자 IMF가 원화안정을 위해 한꺼번에 이자율을 올린 결과 부채에 대한 지급이자가 급증하고 기업 수지가 일시에 악화된 것이다. 다른 하나의 부작용은 위기발생 과정에서 국제투자가들이 만기대출을 추가로 연장하지 않거나 조기상환을 요구하면서 기업이 안고 있었던 달러표시 부채의 상환부담이 급증한 것이다. 요컨대 높은 부채비율은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한 게 아니라, 외환위기가 총체적인 경제위기로 증폭되는 과정에서 사후적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사후적 부작용도, 만약에 삭스의 주장처럼 IMF가 한국에 고금리 정책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한국이 대외 유동성 부족 상황에 처했을 때 선진국들을 독려하여 긴급융자를 주선했거나 해외투자가들을 설득하여 만기대출을 연장하고 조기상환 요구를 막아주었다면 그렇게까지 파괴적인 부작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앞으로 한국이 외환위기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높은 부채비율은 한국경제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채비율을 낮추는 정책은 만에 하나 한국경제가 다시 외환위기 상황에 빠질 때 사후적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정책이지 외환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정책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위기 촉발 이후 높은 부채비율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기업의 부채비율을 낮추도록 한 정책은 심각히 재고되어야 한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IMF가 한국에 적용한 부채비율 축소 조치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브라운대학교의 웨이드는 1998년 3월에 “아시아 위기: 고부채 모델 對 월스트리트-재무부-IMF 복합체”라는 글을 발표한다.[33]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웨이드는 월스트리트와 미 재무부 그리고 IMF의 3자가 협력하여 아시아의 고부채 모델을 해체하고 나선 데 대해 큰 우려를 보낸다. 아시아의 고부채 모델은 아시아 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에서 스스로 개발해낸 독특한 자본주의 모델인데도 3자 복합체는 이를 위기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붕괴시키는 대신에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이식하려 한다는 것이다. 웨이드는 아시아가 고부채 모델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두 가지로 든다.

첫째로, 저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일반 가정들은 대부분 안전성이 높은 은행에 저축을 하고 은행은 가계와 정부가 돈을 빌리지 않는 한 기업에 대출해줄 수밖에 없다.

둘째로, 아시아 기업이 세계 유수의 다국적기업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원의 집중이 필요한데 주식시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은행으로부터 투자재원을 차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시아의 금융구조는 종종 은행, 기업, 정부 간 긴밀한 협력을 요구한다. 서구인은 이러한 시스템을 ‘정실 자본주의’라고 비아냥거리며 무시하지만 이는 높은 저축률로 확보된 자본을 기업에 중개해주는 데 있어 기업, 은행, 정부 간 장기적 협력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 산업정책 조율을 위해 은행과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수출실적이 좋고 경쟁력 있는 기업에 많은 인센티브를 준다. 높은 가계저축률, 높은 기업 부채비율, 은행-기업-정부의 협력관계, 국가산업정책, 경쟁력이 강한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 이들을 바탕으로 기업은 차입경영을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선진국들은 지금이야 한국에 대해 큰소리를 치지만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국민소득 수준이었을 때는 매우 높은 부채비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예컨대 1996년 말 현재 한국의 상장 제조업체의 부채비율은 351.5%인데, 일본도 일인당 국민소득이 9,143달러이던 1980년의 부채비율은 385.4%로 오히려 한국보다 더 높았다.

이처럼 부채비율이 논쟁의 대상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상품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금줄이 막힐 경우 바로 생산량 감소로 연결되고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부채비율 축소 정책이 한국경제 회생이나 성장잠재력 향상에 과연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심각히 고려해야 할 시기다.

더욱이 근본적으로 이러한 부채비율 축소 문제는 한국이 어떠한 자본주의 모델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중차대한 문제와 직결된다. 기업이 금융기관에서 차입하거나 사채발행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면, 기업으로서는 투자 절대규모를 줄이든지 아니면 주식시장에서 증자를 해야 한다. 이는 한국이 과거 55년간 유지해왔던 독일식 자본주의체제를 포기하고 영미식 체제로 전환한다는 뜻이다.

기업 입장에서만 보면 간접자본(부채)보다는 직접자본(자기자본)에 대한 자본비용 부담이 더 과중하다. 간접자본(부채)의 이자율은 대개 사전에 확정되어 있는 반면, 직접자본(자기자본)의 배당률은 기업실적에 따라 연동한다. 그런데 기업이 도산할 경우에는 먼저 부채를 갚고 나머지를 주주가 나누게 되므로 주주 입장에서는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으므로 대개 이자율보다는 배당률이 높은 것이다. 또 부채에 대해 지급되는 이자는 비용으로 인정받지만 배당금은 세후이익에서 나누는 것이므로 법인세만큼 비용부담이 늘어나므로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어진다. 다시 말해 기업이나 투자자 측에서 보면 간접자본(부채)으로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이 직접자본(자기자본)으로 조달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양자 간의 유불리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논쟁이 전개되고 있으며 과거 1970~1980년대에는 독일식이 우세를 보였고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는 영미식이 우위를 보였지만 미래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는 여러 연구자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의 경우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선택권이 IMF 측으로 넘어가 버림으로써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 전환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월스트리트에서 보편화된 소위 카지노 자본주의가 한국의 금융시장에 쉽게 발을 붙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과거 간접금융 관행에서는 설사 금융시장을 개방해도 해외 선진자본이 한국 시장에 발붙일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 ‘가계-은행-기업’이라는 삼각구도 속에서 가계는 여유자금을 은행에 저축하고 은행은 기업에 대출해주며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다시 가계에 임금을 지급했다. 이러한 순환고리 속에서 선진 금융자본이 개입하려면 시티은행처럼 한국에 직접투자를 하여 금융기관을 설립하고 이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얻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러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국부가 유출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국내 투자재원이 늘어나고 선진경영기법이 한국으로 이전된다는 긍정적인 측면 또한 매우 크다.

그러나 카지노 자본주의가 한국에 접목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계-은행-기업’이라는 삼각구도 속에 증권시장이 개입하여 ‘가계-은행-증시-기업’이라는 사각구도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여기다가 IMF의 요구로 국내 금융시장이 더욱 개방되면서 월스트리트 자본이 국내에 직접투자를 하지 않고서도 국내 주식시장에 참가하여 금융수익을 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과거에는 우리와 별 상관없이 여겨졌던 미국 증권거래소나 나스닥의 주가 변동이 한국의 증시나 코스닥거래소의 주가 변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들까지 미국 증시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것이나, 국제투자가들이 투자액을 조금만 늘이거나 줄여도 한국 증시가 출렁이는 것도 모두 이러한 체제 전환의 결과다. 월스트리트의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기술과 장바구니 기술이 맞붙어 누가 이길지는 명확한 일이다. 월스트리트 자본은 뛰어난 금융기술로 세계 자본시장을 제패하고 있으며, 특히 월스트리트 자본이 한국 금융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경우 이에 맞서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금융기관이 아직 한국에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므로, 국내 금융시장이 월스트리트 자본에 장악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IMF를 통해서나 직접적인 경로로 영미식 모델을 전파하고자 한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대개 IMF 체제에 들어갔던 나라는 여지없이 영미식 모델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미국의 압력을 버텨냈다는 사실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1980년대 일본의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미국 시장을 급격히 잠식해 들어가자 미국은 무역대표부(USTR)를 앞세워 일본의 시장 개방을 요구했고 급기야는 일본의 재벌체제까지 문제 삼는 등 영미식 자본주의체제의 이식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압력을 극복하는 데 앞장선 장본인은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아닌 일본의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일본식 자본주의체제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확산이 가능한 모델이라는 점을 이론화해냄으로써 미국의 공격을 훌륭히 막아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안행형 사업구조: 기러기와 독수리

다음은 한국 고유의 장점이었던 집단체제에 대한 것이다. 선진제국이 IMF의 이름을 빌어 한국의 전통 시스템 중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핵심적인 사항 중 하나가 ‘집단체제’다. 일대일로 싸우면 경쟁상대도 되지 않는데 한국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힘을 합해 한꺼번에 덤벼오니 만만치 않은 위협 상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그들은 한국의 집단체제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해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 핵심은 대기업의 ‘안행형(雁行型) 사업구조’에 대한 것이다.

안행형이란 기러기가 나는 모습을 말한다. 기러기는 잡식성 철새로 계절이 바뀌면 먹이를 찾아 수십만 킬로미터를 날아간다. 기러기가 이동할 때는 한 마리씩 따로 나는 게 아니라 독특한 무리를 이룬다. 무리 지어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모습을 한자로는 기러기 ‘안(雁)’ 자에 갈 ‘행(行)’ 자를 써 안행형(雁行型), 영어로는 ‘flying geese style’이라 한다.

동아시아 경제에서 안행형은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동아시아 전체로 보아서는 일본이 선두에 날아가고 그 뒤에 한국과 대만이 따라가고 마지막으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따르고 있다. 안행형은 한국의 산업발전 과정에도 적용된다. 산업화 초기에는 경공업이 산업을 선두에서 이끌었고 다음에는 중화학공업이, 그리고 최근에는 전자산업과 자동차가 선두에 나와 있다. 이는 대기업 집단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초기에는 무역, 제당, 모직 사업이 선두에 섰고 거기에서 생긴 자본 여력으로 가전, 통신, 레저 산업으로 진출했으며 최근에는 반도체, TFT-LCD 같은 전략부품 산업이 대기업집단을 이끌고 있다.

기러기가 안행형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누군가가 디자인한 게 아니라 수십만 년에 걸쳐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거나 또는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진화의 결과다. 동물학자들이 기러기 떼가 나는 모습에서 찾아낸 몇 가지 재미있는 행태가 있다. 첫째, 안행형으로 날 때는 혼자 나는 것보다 70%를 더 많이 날아간다. 둘째, 제일 앞에서 무리를 이끄는 선두 기러기는 미리 정해진 우두머리가 아니라 그 당시 가장 체력이 좋은 기러기이며 어느 정도 날아가다 지치면 다른 튼튼한 기러기가 선두를 교체한다. 셋째, 선두 뒤를 따르는 나머지 기러기들은 꽉꽉 울어대면서 선두 기러기에게 힘을 북돋워 준다. 넷째, 독수리 같은 맹금류가 공격하면 한두 마리가 희생양이 되고 다른 기러기들은 살아남는다. 다섯째, 기러기 중 한두 마리가 다치거나 힘이 빠지면 중간에 낙오하게 되는데 이때는 몇 마리가 함께 남아 돌봐주고 다시 원기를 찾으면 다른 기러기 떼에 합류해서 이동한다.

이처럼 기업집단의 경영 행태와 기러기 떼가 나는 모습은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 안행형 경영도 누가 정해주었거나 교과서에 나오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의 대기업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진국의 거대 초국적기업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이다.

그런데 위기과정에서 안행형 경영으로 인해 몇 가지 부작용이 노출되자 이를 버리고 모든 기업집단이 개별기업 차원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세계로 나아가 선진국의 초일류기업과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기러기 몇 마리가 다치고 지쳤으니 기러기 떼를 모두 해체해야 하며 한 마리 기러기가 독수리와 과감히 맞서 싸워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진배없다. 무리 지어 살아가던 기러기 떼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혼자서 독수리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혹자는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처럼 각 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하면 될 것 아니냐고 강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도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다른 계열기업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한 자본여력을 바탕으로 근 십 년 넘도록 적자를 보전해준 뒤에야 결실을 거두게 된 것이다. 과거에 한국과 경쟁상태에 있던 선진의 경쟁기업이 한국에 대해 가장 두려워했던 것 중 하나가 대기업집단의 안행형 경영방식이다. 포드나 GM으로서는 현대자동차 하나는 우스운 경쟁상대지만 현대그룹 전체가 대항해오면 두려웠던 것이고 NEC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사의 입장에서는 삼성전자 하나쯤은 가볍게 이기겠는데 삼성그룹 전체가 뒤를 봐주니 버거운 경쟁상대라는 것이다. 만일 안행형 경영방식이 아니었다면 자동차산업과 반도체산업은 지금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치거나 다친 몇 마리 기러기 때문에 기러기떼 전체가 멈출 수만은 없다. 몇 마리는 남겨두고 날아가야 한다. 그러나 기러기 몇 마리가 다치고 지쳤다고 해서 기러기 떼를 해체하고 한 마리씩 따로 날아가야 하는가?

물론 안행형 경영방식은 문제점과 부작용도 안고 있다. 그렇다면 부작용과 문제점을 고쳐나가면 될 일이지 이를 통째로 해체시켜 버리려는 시도는 과연 누구에게 좋은 일을 시켜주는가 냉정히 판단해보아야 한다.

패자부활전: 국민총실패율

다음은 패자부활전에 대한 이야기다. 개별기업 차원에서 보면 도전하는 과정에서 실패와 성공 사례가 엇갈릴 것이지만 나라 전체로 보아서 실패보다 성공이 많으면 전체는 성공이다. 특히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시켜버린다든지 실패한 기업가를 몰염치범으로 몬다든지 하는 행태는 자제해야 한다. 값비싼 실패의 대가는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데도 만일 창업가정신까지 상실하면 다시 일어서기를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박탈된다면 국가 전체에서 창업가정신은 사라질 것이고 모두가 패배의식에 젖게 될 것이다.

경영 구루인 톰 피터스는 『혼돈 위의 번영』이라는 명저에서 ‘국민총실패율’[34]이라는 재미난 개념을 제안하며,[35] 국민총실패율을 높여야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많은 기업가가 기록적인 수준의 고용을 창출했지만 이는 기록적인 실패를 동반하고서야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실패가 중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빠른 혁신을 이루어야 하지만, 혁신이란 한번도 실험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다루는 일이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실행을 통해서만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복잡성을 다룰 수 있으며, 복잡성의 증가에 직면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시도는 항상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 빠르게 실행하려면 보다 많은 실패를 빨리 해보아야 한다. 요컨대 혁신의 속도를 극적으로 가속화시키려면 실패의 속도와 양을 극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상당히 공감 가는 주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이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그 과정에서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일단 고착화되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실패를 숨김으로써 작은 실패가 은폐되고 축적되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패를 범하게 된다. 또는 자료나 성과를 왜곡하여 실패를 성공으로 둔갑시키거나 확대해석 또는 부분해석을 한다. 특히 리더 입장에서는 현상에 대한 허위보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실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공격만큼 좋은 수비는 없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공격보다는 수비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첫째, 공격은 수비보다 힘들다. 수비는 현재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도 가능하지만 공격을 하려면 새로운 지식이 추가로 요구된다. 둘째, 공격에는 많은 자원이 소요된다. 군사전략에서도 고지를 점령하려면 공격 측이 수비 측보다 최소한 다섯 배 많은 전력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셋째, 공격에는 위험이 따른다. 수비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지만 공격을 하다가 실패하면 책임 추궁이 뒤따른다. 넷째, 대개 수비자가 공격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 국가 전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로 수비를 전담하는 분야인 지원부서, 예산부서, 인력부서 등은 공격을 하는 측보다는 우월적인 지위와 힘 또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다섯째, 모처럼 마음 먹고 공격을 하고 싶어도 제반 법령이나 규제로 인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체적인 분위기를 수비 위주로 몰고 가는 원인 중 하나는 ‘감점주의’다. 평가방법에는 ‘감점주의’와 ‘가점주의’가 있는데 감점주의는 못하면 벌을 주는 체제이고 가점주의는 잘하면 상을 주는 것이다. 창업가정신이 충만해 있는 3M 같은 기업에서는 당초 목표 중에서 실패한 것은 무시해버리고 가장 잘한 것만을 추려서 이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스포츠에서도 과거에는 탁구 선수나 테니스 선수 중에서 수비 전문 선수가 우승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는 공격을 위주로 하는 선수가 우승을 휩쓴다.

현재 우리 사회도 감점주의가 우세를 보인다. 잘 하는 것에 대한 칭찬은 박하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회 전체 분위기를 도전적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는 감점주의에서 가점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상관없이 도전하는 자에게 손뼉을 쳐주어야 하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비난하지 말고 힘을 북돋워 주어야 한다. 오히려 도전하지 않고 눈치만 보면서 남에 대한 비난만 일삼는 무책임하기 그지없고 실행력을 상실한 자들을 질타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도전을 촉진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걸림돌이 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살펴보았다. 창업가정신, 투명성, 부채비율, 안행형 집단체제, 패자부활전 등과 관련해서 도전의식의 싹을 없애버리는 풍토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벤처국가의 꿈은 바닥에서부터 무너져 내릴 것이다.


6) 벤처국가의 프랙털: 경박연개(輕薄軟開)

정부 차원의 경박연개(輕薄軟開)

벤처국가의 프랙털[36]은 경박연개(輕薄軟開)로 요약된다. 자원은 가볍게, 계층은 얇게, 과정과 시스템은 유연하게, 문화는 개방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는 국가 운영에서부터 정부, 산업, 기업, 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벤처국가에서 정부 차원을 보자. 첫째, 자원(Resource)은 가볍게 가져가야 한다(輕). 공직자의 절대숫자도 작아야 하며 정부가 집행하는 예산 규모도 더욱 작아져야 한다. 공권력이나 정부예산을 무기로 국민 위에 군림할 게 아니라 국가전략을 제시하고 국민을 선도하는 소위 지식창조 능력으로써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즉 작지만 강한 정부를 말하는 것이다.

둘째, 정부조직은 얇아야 한다(薄). 층층시하(層層侍下)의 두터운 관료조직이 획기적으로 얇아져야 정보 왜곡이 줄어들고 의사결정의 속도와 질이 향상된다. 그 결과 정책결정의 질과 기동성이 올라간다. 이름도 채 알 수 없는 수많은 위원회와 외곽조직도 과감히 정비되어야 한다. 나라 전체에서 부가가치를 만드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데 그 위에 군림하며 ‘콩 놔라 팥 놔라’ 호통만 치는 훈계 집단도 사라져야 한다.

셋째, 의사결정과 집행과정이 유연해야 한다(軟). 톱다운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이를 기계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집행해가는 관행은 타파되어야 한다. 건전한 토론문화가 정착되고 이를 통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결론이 도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지부동형 행정 스타일보다는 필요한 서비스를 능동적으로 창출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스타일로 전환되어야 한다. 벤처국가에서는 공직자도 창업가정신 아래, 도전을 하고 그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국민 전체에 돌아가는 전체 파이를 크게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넷째, 공직문화가 열려야 한다(開). 고시라는 관문만 통과하면 평생 동안 철밥통이 보장되며 외부수혈 인력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폐쇄적인 닫힌 문화로는 열린 시대, 디지털 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 핵심적인 공직에 특정 지역, 특정 학교 출신자가 몰려 있으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면 국가경영이 동창회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다. 같은 분위기 속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만을 생각해온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집단 속에서 창조적 발상이 나오기는 어렵다.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 경박연개(輕薄軟開)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벤처국가의 초석이 될 것이다.

모든 경영조직 운영을 경박연개(輕薄軟開)로

경박연개(輕薄軟開)는 기업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첫째, 기업이 보유하는 자원은 가능한 가벼워야 한다(輕). 인적자본이든 물적자본이든 또는 부동산이든 설비-기계든 가능한 한 적게 가져감으로써 몸집을 줄여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개막으로 인해 외부와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대규모 조직은 급격히 와해되고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모한다. 예를 들면 은행에서 고객 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창구에서 텔러가 처리하면 1.07 달러가 든다. 이를 우편으로 하면 0.73달러, 전화로 하면 0.54 달러, ATM으로 하면 0.27달러가 드는데 인터넷으로 처리하면 0.01달러가 든다. 거래비용이 백 배 이상 절감되는 것이다.[37]

시카고대학교 코즈(Coase, 1960)의 주장에 따르면 조직 내부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관리비용(Bureaucratic Cost)과 조직 외부와 거래하는 데 소요되는 거래비용이 같아지는 지점에서 조직의 규모가 결정된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거래비용이 급격히 줄어들면 그에 비례해서 조직의 규모는 작아지고 모든 것이 외부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극단적으로 거래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지구상에는 국가나 조직의 존재 이유가 없어질 것이지만 이는 가상적인 상황이고, 아무튼 거래비용이 감소하면서 대규모 조직이 급격히 와해되어 더욱 작아질 것이다. 조직의 모습은 ‘키 큰 조직’에서 ‘납작한 조직’ 또는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

둘째, 조직은 얇아야 한다(薄). 조직에서 의사결정이나 의사소통의 질과 속도는 조직의 두께와 깊은 관련성이 있다. 중간 단계가 많을수록 정보는 왜곡되거나 망실되고 전달이 지연된다. 그리고 의사결정의 권한은 현장으로 위양되어야 한다. 현장에서는 정보왜곡이 일어나지 않고 실시간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프로세스와 시스템은 유연해야 한다(軟). 최근처럼 경영환경과 고객 니즈가 급변하는 시대에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유연하지 않고서는 기업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넷째, 기업문화는 개방적이어야 한다(開). 환경변화가 안정적이던 산업화 시대에는 순혈주의와 충성도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했지만 디지털 시대에서는 이종문화와 잡종문화를 통한 다양성 확보 여부가 생존의 관건이다.

이러한 경박연개(輕薄軟開)라는 프랙털은 국가, 정부, 산업, 기업 등 전 부문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여기까지는 국가 차원의 미래전략으로서 벤처국가라는 새로운 개념 틀을 제시하고 이를 이루어나가기 위해 요구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살펴보았다. 다음은 성장이론과 관련해서 한국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2. 성장요인별 추진 전략

신고전파 성장이론에 따르면 성장의 원천은 물적자본과 노동력이며 내생적 성장이론에서는 인적자본과 지식-기술을 성장의 원천으로 본다. 여기서는 네 가지에 대해 차례로 살펴본다.

1) 물적자본의 확충

성장잠재력이라는 엔진에서 휘발유 역할을 하는 자본의 확충 문제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자본의 절대량을 늘린다는 양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확보된 자본이 원활하게 유통되어야 한다는 질적인 측면이다. 신고전파 성장이론에서는 자본의 양적인 증가만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지만 내생적 성장이론에서는 확보된 자본이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투자되고 또한 투자된 자본이 산출물화되고 다시 투자재원으로 재활용되는 자본의 유통속도 문제도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자본의 양적 확충

먼저 양적인 측면부터 살펴보자. 자본을 확충시키는 재원은 국내 저축과 해외자본의 유입이다. 국내 저축을 늘리려면 가계저축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개발 초기처럼 다시 국가적인 구호로 내걸고 저축장려 운동을 펴자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므로 국내 저축률 증가는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이식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 아래서는 가계의 잉여소득이 은행 대신에 증시로 흘러 들어가도록 유인체계가 구축되고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한다.

하지만 해외자본 유치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다. 미국 경제가 경착륙일지 연착륙일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유럽 경제나 일본 경제도 초호황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매력적인 신흥시장도 눈에 뜨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국적자본이 딱히 투자할 대상도 마땅치 않으므로 우리의 노력에 따라서는 외자유입이 상당 규모로 이루어질 여지가 있다. 이는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몇 가지 착안점이 있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경제가 정치논리에 휘둘려 왜곡되지 않고 경제논리 그 자체로써 작동된다는 점을 국제투자가들이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지’하는 것과 ‘주장’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가 아무리 입으로만 경제논리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외쳐봐야 국제투자가들이 믿어줄 리 없다.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한두 가지 사례로 믿어달라고 눈 가리고 아웅 해봐야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논리가 국가 전 부문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이러한 관행이 체화되는 단계까지 가야 국제투자가들은 비로소 자본을 움직일 것이다. 잘못되면 그들도 자본을 맡긴 전주로부터 엄중한 책임 추궁을 당하기 때문이다.

둘째, 기업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국제투자가들이 투자를 하는 잣대는 투자수익률이다. 더욱이 한국은 정치적인 위험, 남북 간의 전쟁위험, 과거 외환위기를 당했던 전례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기업들이 세계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셋째, 양질의 해외자본에 대해서는 체질적인 거부감을 없애야 한다. 우리가 해외에 투자해서 외화를 벌어오는 것은 좋은 일이고 남이 우리한테 투자해서 돈을 벌어가면 나쁘다는 감정은 앞뒤가 맞지 않다. 철저히 이윤을 추구하는 국제투자가들이 국민감정 여하에 따라 투자 의사 결정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미칠 수 있다. 한국 자본이 영국 윈야드에 진출했을 때 영국 여왕이 직접 나와 치사를 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적대감만은 버려야 한다. 특히 장려해야 할 부분은 외국인직접투자(FDI)다. 이들은 선진의 지식-기술을 국내에 이전해줄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시 부화뇌동해서 한국을 탈출할 일도 없다.

자본 흐름의 속도 제고

다음은 자본확충의 질적인 측면을 보자.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부채비율 200% 한도 규제를 즉시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에는 자금이 넘쳐나지만 돈이 갈 데를 찾지 못해 부동자금 형태로 증시를 혼란시키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공채에 몰리다 보니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는 것이 모두 이 때문이다. 또 우체국에 자금이 몰리는 것도 자본의 유통속도를 급격히 떨어뜨린다. 우체국은 대출기능이 미미하므로 대출을 통한 통화재창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돈이 사장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미래에 높은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나 지식을 창조해도 투자재원이 없다면 이를 실현시키지 못한다. 200% 한도 규제는 과거에 몇몇 대기업의 실책을 이유로 한국의 모든 기업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선진 경쟁기업들에게만 좋은 일을 시킬 뿐이다.

둘째, 국내 금융기관을 조속히 정상화시켜야 한다. 자본중개를 업으로 하는 금융기관이 구조조정의 와중에 휩싸여 있는 상태에서 자본유통이 제 속도를 낼 수 없다. 물론 현재도 진행 중에 있지만, 최악의 경우 금융기관의 중개기능 마비가 산업기반의 붕괴로 연결되면서 실물경제가 위기에 봉착하면 그 대가는 다시 금융기관 부실로 증폭된다. 이러한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 그때는 백약이 무효다.

셋째, 금융기관의 영업영역을 국내 전용과 국내외 겸용으로 구분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누가 무슨 의도로 정했는지 모르지만 BIS 비율이라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절대법으로 인해 은행들로서는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되면서 자금의 유통속도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만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BIS 비율을 지키지 못하는 은행이 세계 경제를 혼란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그들 은행의 영업영역을 국내로 제한하고 그들에 한해 BIS 비율 잣대를 하향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어차피 현재 우리의 금융 실력으로 해외에 나가 선진금융기관과 맞붙어 대규모의 수익을 올릴 수도 없으며 다만 거래중개용 또는 외환결재용으로 해외영업을 해야 한다면 일부 은행만 해외영업을 하면 된다.

혹자는 이런 식으로 은행이 분류되면 국내 전용 은행에서 대규모의 자금 유출이 일어나 한순간 도산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있다. 조만간 금융시장에서 겸업화, 디지털화, 개방화가 가속되면 어중간한 은행보다는, 모든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다국적 종합금융회사나 또는 니치시장을 찾아 특화된 분야에서만 사업을 벌이는 전문금융사가 상대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한다. 국내 전용 은행은 과거처럼 남들 흉내내기를 포기하고 나름대로의 니치를 찾아 고객만족에 주력하면 충분히 독자생존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개방된 금융시장에 최소한의 방충망이라도 쳐야 한다

금융시장 개방[38]은 양날을 가진 칼이다. 사용하기에 따라 약으로 또는 독으로 작용한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우리는 약인 줄 알고 먹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독이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일 우리 금융시장이 조금만이라도 덜 개방되었다면 외환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무지했던 탓도 있지만 IMF 같은 자본시장 자유화를 주창하는 세력들에 의해 우리가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위기 당시 일부 논쟁이 있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이 수긍한다. 매사에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크루그만이나 삭스조차 한국의 위기가 무리한 금융시장 개방으로 인해 촉발되었다는 점에서는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IMF는 한국의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1997년 7월에 발표한 <IMF 1996/97년 연차보고서>에서 “한국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자본시장 자유화에 대해 지지를 보낸다. 자본시장 자유화는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은행금리를 낮출 것이다. 해외로부터의 자본유입을 늘리기 위해서 환율변동 상하한 폭을 넓히거나 또는 없애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의 원화선물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다. 또 점진적인 자본시장 자유화보다는 신속하고 완전한 자본시장 자유화가 한국에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이다”라고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을 칭송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IMF는 입장을 바꾸어 한국의 금융시장 개방이 미흡했던 것이 위기의 원인으로 작동했다고 주장하면서 IMF 지원금융을 조건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방도를 요구하고 약속을 받아낸다. 그후 금융시장 개방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결국 IMF의 피셔는 1998년 9월 10일 워싱턴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열린 연방예금보호협회 관련 심포지엄에서, 한국에서 단기 국제자금 흐름의 자유화가 위기를 촉발시킨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시인한다.[39]

이렇게 보면 한국은 금융시장 개방의 전형적인 희생물이며, 이를 알고서도 추가적인 개방 강요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힘 없는 국가일 따름이다. 만일 재협상을 요구하면, 금융시장 개방을 통해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는 월스트리트로서는 IMF를 동원해 반대에 발벗고 나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최소한 방충망이라도 쳐야 한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지만 파리와 모기도 따라 들어온다는 등소평의 말을 상기하자. 특히 저질의 해외자본이 유입되는 것에 대해서는 적대감도 충분히 표현하고 제도적으로도 유입을 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나쁜 돈이란 범죄단체와 연결된 자본이나 돈세탁 자본, 그리고 헤지펀드도 이 부류에 넣을 수 있다. 헤지펀드는 월스트리트의 지원 아래 세계 최고의 정보와 기술로 국내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으며, 특히 위기상황에 발생하면 ‘소 떼 이론’에서 촉발제 역할을 한다. 소 떼 중에서 사자의 공격을 제일 먼저 감지한 소가 도망을 가면 다른 소는 막연히 부화뇌동하여 도망을 치듯이 헤지펀드가 빠지기 시작하면 다른 건전한 펀드들까지 소 떼처럼 탈출하기 때문이다.

과잉투자와 기업경쟁력

여기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과잉투자에 대한 논쟁이다.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IMF와 대주주 국가들은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과잉투자 문제를 거론하고 이를 총체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할 근거로 적절히 활용한다.

그들의 주장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자본투자율(GDP 대비)은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투자에 대한 효율성이 점차 낮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에 한국과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자본투자는 GDP의 40%에 달했지만 투자효율성은 낮아지는데 IMF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40]

첫째, ‘과잉투자’로 인해 투자 효율성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자본투자와 자본소득(이윤, 배당수입, 이자수입, 임대수입 등)을 비교할 때, 만일 장기간에 걸쳐 자본소득이 자본투자를 하회한다면 이는 자본축적을 통해 생기는 소득보다는 기존에 축적된 자본을 유지하는데 투자재원이 소요되는 것이며 이러한 현상을 과잉투자 상태로 규정한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 사이에 자본투자가 GDP 대비 25%에서 40%로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소득이 GDP 대비 55%에서 40%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을 IMF는 한국에서 자본투자의 효율성이 하락하고 있다는 증거로 든다.

둘째, ‘산출물 순증가 대비 자본투자’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산출물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자본투자가 많아진 것이므로 역으로 그만큼 투자효율이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1990~1995년에 한국, 태국, 홍콩에서 이 비율이 거의 두 배로 올라갔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IMF는 이들 국가의 경제가 노동집약에서 자본집약적으로 극적인 전환을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싱가포르의 경우를 제외하고 홍콩, 인도네시아, 태국에서는 경제구조가 전환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반도체, 철강, 자동차, 선박 같은 산업에 자본이 과도하게 투자되었으며 이들 대부분이 낮은 투자수익률을 보임으로써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가 해외로부터의 직접차입을 허용한 것은 재벌이 수익성보다는 성장과 시장점유율을 경영의 우선순위에 놓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한국의 생산량이 전 세계 차원에서 볼 때 미미했던 개발 초기에는 적합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한국이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공급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이들 산업에서 과잉설비와 경쟁으로 인한 문제가 커지면서 심각한 이윤율 하락을 경험했다.”

이러한 IMF의 주장의 합리성을 검증해보자.

먼저 IMF의 첫 번째 주장은, 동아시아에서 과잉투자 때문에 GDP 대비 자본투자 비율은 높아진 데 반해 자본소득 비율이 낮아짐으로써 자본의 투자효율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위기의 원인이므로 과잉투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러한 주장은 전형적인 신고전파 성장이론주의자들의 관점이다. 그들은 경제성장이 단순히 자본이나 노동 같은 생산요소의 투입만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지만,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보면 기술진보야말로 경제성장의 핵심동인이다. 만일 동아시아에서 많은 기술진보가 일어나서 성장에 기여했다면 GDP 대비 자본수익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자본투자의 효율성을 판단하기 위해서 IMF가 제시한 것처럼 GDP 대비 자본투자와 자본소득을 비교하는 방식은 기술진보가 거의 없었던 후진국에나 적합한 지표이지 동아시아처럼 획기적 기술진보를 보인 나라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방식이다. IMF나 신고전파 성장이론주의자들이 설탕이나 양복지를 만들다가 이제는 반도체, 철강, 자동차, 선박까지 만들어내는 한국에 대해 기술진보가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다른 이야기다.

백 번 양보해서 과거보다는 투자수익률이 낮아졌다고 하자. 그래도 자본수익률이 경쟁국가보다 높다. IMF의 주장에 따르면 동아시아가 1970년대에는 엄청난 수익률을 올리다가 1990년에는 수익률이 마치 땅으로 떨어진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자본수익률은 1980년대 중반에 22%에서 1994년에 14%로 낮아졌지만 미국계 해외투자가 전 세계적으로 평균 11%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IMF 주장은 근거가 없다.

IMF의 두 번째 주장은 1990~1995년에 한국에서 ‘산출물 순증가 대비 자본투자 비율’이 거의 두 배나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 경제가 노동집약에서 자본집약적으로 극적인 전환을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언급을 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그러나 한국이 주력산업으로 삼고 있는 반도체, 철강, 자동차, 선박 같은 산업이 자본집약적 산업이라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므로 한국경제가 노동집약에서 자본집약적으로 극적인 전환을 한 것이므로 자본의 투자효율이 낮아졌다는 주장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두 가지 논지에서 IMF가 주장하는 ‘과잉투자론’이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과잉투자가 위기의 핵심원인이라는 관점은, 외환위기 발생 후 IMF가 동아시아에 대해 총체적 구조조정을 요구하게 되는 핵심 논리로 활용된다. “장기적 관점에서 동아시아가 직면한 근본 문제는 투입 위주의 성장에서 효율성 제고를 통한 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위기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한 제도적 취약성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1990년대에 투자율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수준까지 뛰어 올랐다거나 기업의 과다한 부채 의존, 이익률 하락과 과잉설비, 부동산 시장의 거품과 특히 금융 부문의 비효율이 일어났다. 이번 위기를 경기순환 과정에서 생긴 단순한 에피소드로 보고 곧 성장률이 회복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위기는 근본적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모든 부문에 걸친 개혁이 필요하다. 이것이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구조조정과 제도개혁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IMF의 논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는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분야에서 과잉투자가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투자효율이 떨어졌고 급기야는 외환위기를 당하게 되었으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잉투자를 해소하는 등 전반적인 구조조정과 제도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IMF의 주장에 대한 허실을 살펴보자. 먼저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GDP 대비 자본투자율이 높으며 이러한 자본축적을 통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자본투자 수익률이 점진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등 투자효율이 저하되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투자효율이 저하되는 이유가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부문 등에서 일어난 과잉투자 때문이며 그로 인해 외환위기가 초래되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따라서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98년 이후에 실제로 진행된 산업구조 개편이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에 기여한 바는 없으며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을 따름이다. 철강, 조선 분야에서는 투자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반도체와 자동차 부문에서는 회사 간 통합이 이루어졌지만 설비 규모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등 위기극복과 과잉투자 해소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리고 IMF와 대주주 국가들의 의도대로 몇몇 기업은 해외자본에 아주 헐값에 팔렸다.

둘째,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메모리 반도체나 TFT-LCD 같은 전자 분야에서의 약진 때문이었다는 데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는 반도체 부문의 과잉투자가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과 정반대 결과이다. 반도체 부문이 과잉투자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효자 역할을 했다.

셋째, 보다 근본적으로는 ‘과잉투자’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국가 단위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 네 가지 산업 공히 전 세계적으로 여러 나라의 여러 기업이 생산에 참여하고 있으며 생산품의 소비는 국제무역을 통해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과잉투자 개념은 글로벌 차원에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비로소 성립된다. 따라서 IMF나 그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한국 내부에서 과잉투자가 일어났다는 주장은 WTO를 통해 전 세계 시장이 열린 글로벌 시대에는 성립하지 않으며 북한처럼 국경을 닫아건 폐쇄경제체제에서나 성립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네 가지 산업 모두 전 세계 차원에서 과잉투자가 일어났다고 강변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예를 볼 때 설득력을 잃는다. 일본도 네 가지 산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일본에서도 외환위기가 일어났어야 했고 IMF나 대주주 국가들은 일본에 대해서도 투자해소를 요구했어야 했다.

넷째, 한 걸음 더 나아가 글로벌 차원에서 과잉투자가 일어나는 산업이야말로 미래 기대수익성이 높은 분야다.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체제에서 각 기업이 투자결정을 함에 있어서 핵심요인은 투자수익률이며, 결국 특정 산업에서 글로벌 차원으로 투자가 많이 일어났다는 것은 전 세계 경제주체들이 그 산업의 미래 수익성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이 조선, 자동차, 반도체 산업에서 증설을 했을 때 선진국 또는 선진기업이 과잉설비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이러한 경쟁심리의 발로이며 한국이 수익성 높은 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투자규모가 크더라도 높은 투자수익률만 올릴 수 있으면 투자는 더욱 확장되어야 하고 반드시 그래야만 전체 국부가 올라간다.

그러면 투자수익률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되었으나 주요인은 구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주기적인 성격이 강하다.[41]

첫째, 선진국의 산업생산 증가율이 1995~1996년 초에 크게 둔화되면서 이들 국가로부터의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 과거부터 아시아의 수출은 선진국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움직여왔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둘째, 대다수 아시아 통화가 연계되어 있는 달러의 가치가 상승함으로써 수출이 감소되었다. 1996년에는 엔-달러 환율이 1995년 4월의 최저치로부터 50%나 상승하면서 일본 기업에 비해 대다수 아시아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급속히 낮아졌다.

셋째, 세계 반도체 시장이 불황에 빠졌다. 메모리 칩의 가격이 1996년에 80% 이상 하락함으로써 전자제품이 수출의 큰 몫을 차지하는 한국과 싱가포르는 특히 심한 타격을 받았다.

넷째,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이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긴축통화정책을 펴면서 동아시아 역내의 수요가 위축되었고 역내 교역비중도 줄어들었다.

다섯째, 만일 경쟁력이 문제였다면 수입이 가속되었겠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수입도 수출만큼 급감했다. 한국은 연간 수출 증가율이 1995년 30%에서 1996년에는 4%로 크게 둔화되었지만 수입증가율도 32%에서 11%로 줄었다. 동시에 중남미 같은 다른 개발도상국의 수출증가율도 줄었다.

요컨대 한국에서 대규모 투자가 있었고 투자수익률이 점진적으로 하락하기는 했지만 이는 과잉투자 때문이 아니며 과잉투자가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므로 이를 근거로 한 구조조정도 설 땅을 잃은 공허한 주장이다. 물론 한국 일부에서 부적절하고 무분별한 투자가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한보나 기아가 대표적인 사례지만 이는 ‘과잉투자’ 문제가 아니라 ‘부적절하고 무분별한 투자’의 사례다.


2) 노동력의 양적 확충

경제성장의 원천으로서 노동력의 절대량 확충 문제에서는 크게 기댈 게 없다. 과거에 노동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은 대개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한국은 전후에 대대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펼쳐 출산율이 감소하면서 인구증가율이 둔화되었고 의료수준 향상을 통해 평균수명이 늘어난 결과 생산활동가능인구가 증가했다. 둘째, 여성이 노동에 참가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불완전 고용상태에 있던 농업종사자가 제조업으로 이동하면서 제조업종사자의 수가 인구증가율 이상으로 늘어남으로써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셋째,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면서 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한 반면 실업률은 1995년에는 거의 완전고용 수준인 2.0%까지 낮아짐으로써 노동력의 효율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더 이상 출산율을 낮출 수도 없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기야 하겠지만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농업부문 종사자의 도시 이동도 한계에 달했으므로 마지막 남은 것은 여성인력의 노동참가율을 늘리는 길밖에 없다.

여성인력 활용에 주목

여성인력의 활용 문제를 평등과 인권 차원에서 풀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그리고 여성인력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미국은 60.0%고 영국은 54.4%, 싱가포르는 52.7%나 되는데 한국은 47.4%밖에 안 된다는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더욱 풀리지 않는다.[42] 얼마 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선진국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제성장 차원에서 이제는 여성인력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국내에서 노동력을 추가로 확충할 길이 없으며 따라서 경제성장도 한계에 봉착한다는 당위론적 접근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신고전파 성장이론을 기준으로 보면, 여성인력이 경제성장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여성인력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보면,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여성인력의 생산성 향상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같은 직종에서 생산성을 높이거나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직종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후자의 경우에 단순히 고부가가치 직종의 남성인력을 대체한다면 경제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43]

이렇게 보면 과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여성인력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일이고, 둘째는 여성인력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야 하며, 셋째는 여성이 더 잘할 수 있고 부가가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일단 여기서는 성차별이나 남성인력의 기득권 보호 문제는 당연히 해결된다고 전제하고 성장이론 측면에서만 살펴보자.

첫째,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문제는 여성인력이나 남성인력 모두 차이가 없다. 열심히 교육훈련을 시키고 지식을 함양하면 된다. 그리고 동일한 임금 수준에 남성인력보다 여성인력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데도 성차별이나 여성인력 차별 때문에 남성인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는 여성인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둘째, 여성인력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숙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여성 유휴인력이 180만 명 이상이며 이 중에서 165만 명이 취업의사를 가지고 있지만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소위 잠재실업자다. 이들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가사와 육아를 직장생활과 병행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호하는 취업형태는 자영업보다는 임금근로이며 전일제보다는 시간제다. 가사문제는 남편과 분담하면 어느 정도는 해결되겠지만 육아문제는 그리 쉽게 풀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보육에 관련되는 비용을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이는 오히려 여성인력의 경제활동 참가를 가로막을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비용부담의 증가를 꺼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업장별로 탁아시설을 마련하여 취업모가 안심하고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는 일은 필요하지만, 비용은 원칙적으로 수혜자가 부담해야 하며 다만 정부 차원에서 이를 보조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인력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세상은 점차 논리보다 감성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올리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감성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한 수 위다. 고용관련업(헤드헌터, 기업 인사담당),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고객서비스 같은 분야에서 여성인력이 감성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여성노동력 문제는 평등이나 인권 차원보다는 경제성장 차원으로 다루는 게 오히려 문제해결이 쉬울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가야 할 목표는 명확히 정하되 단계를 밟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외국인인력의 유입

외국인인력은 몸을 쓰는 단순 노동인력과 머리를 쓰는 지적 노동인력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단순 노동인력을 유입시킬 때는 대단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 외국인을 유입하지만 이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파생효과를 낳을 것이다. 한국으로 가족을 데려올 수도 있고 한국 내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정착할 수도 있다.

우리 국민의 배타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다. 전 세계에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개방화 시대에 외국인들에게 이러한 배타성을 보이는 우리 문화가 글로벌 문화와 충돌하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독일에서 터키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정착해서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과제다.

반면 지적노동력은 절대수가 부족하므로 적극적 유입을 검토해야 한다. 선진국의 지적노동력을 직접 유입하기에는 연봉 등 조건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중국인이나 인도인 중에서 우수인력을 유치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이들은 디지털 분야에서 특히 강점을 보이고 있다.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와 경쟁상대가 될 나라들은 해외로부터 우수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무던 애를 쓰고 있다.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아일랜드는 2005년까지 3만 2천 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고 아일랜드를 ‘인력자유지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중국도 해외유학파 인력에 대해서는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등 파격적 조치를 취하면서 기초과학, 군사, 금융을 21세기의 사활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 대학은 기업처럼 인수합병, 해외 대학과 제휴, 최고 수준의 해외 교수 초빙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정보-통신 기술 인력 등 고급두뇌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 기술자의 취업을 위해 필요한 H-B1 비자의 발급 제한을 2000~2003년까지 철폐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독일도 인도의 기술인력을 중심으로 해외인력 2만 5천 명을 채용하기 위해 외국인 기술자에게 3~5년간 유효한 특별노동허가증(그린카드)을 발급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오히려 의사나 엔지니어 같이 해외취업이 용이한 고급기술자들이 자녀교육 등의 문제로 해외 이주를 모색하고 있는 사례가 곳곳에서 눈에 뛴다. 정보-통신 기술 분야에서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 등지로 우수인력이 대거 유출되면 ‘정보-통신 기술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44]

그리고 재외 한국인 석학을 데려와야 한다. 유대인들은 수백 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 미국에서 부통령 후보로 나올 만큼 입지를 굳혔으며 학계도 시카고대학교를 거점으로 하여 동부 아이비리그의 중앙부까지 장악하고 있다. 유대인 학자들은 안식년을 받으면 조국인 이스라엘로 달려가 후학들에게 선진 첨단학문의 진수를 전수해준다.

우수한 재외 한국 학자들을 비난하기 전에 그들에게 조국이 돌아올 만한 여건을 마련해주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돌아와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지, 학문적 성과를 제대로 평가해주는지, 언론이나 정계를 기웃거리는 것에 대해 더 큰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지, 지적충돌을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토론문화가 존재하는지 등 짚어볼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진국에서 성공한 학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연구에 몰입할 수 있고 후학들에게 이를 전수해주는 공간을 갖는 것이다.


3) 노동력의 질적 향상

노동력 확충에서 양적 측면은 노동참가인구의 절대숫자를 늘리는 일이지만 질적인 차원에서는 노동력의 인적자본(human capital)을 향상시키고[45] 지식을 축적하는 일이다.

앞서 한국이 남미와 차별화될 수 있는 요인으로 창업가정신과 교육훈련을 거론했는데 이들 모두 인적자본에 관련된 테마다. 이 두 가지가 상실되면 우리는 남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는 남미의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는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나라 전체에서 창업가정신이 소멸되고 있으며 교육도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창업가정신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생산요소로서의 인적자본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훈련과 지식 그리고 기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지식과 기술

정보화 시대, 기술혁명, 지본주의(知本主義) 사회, 디지털 사회라는 유행어에서 읽을 수 있듯이 세기말을 보내고 세기초를 맞는 우리에게 지식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신고전파 성장이론에서는 지식이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았지만 내생적 성장이론에서는 지식이 경제성장의 핵심요인이다.

시카고대학교의 로버트 포겔은 한국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고급두뇌 중심의 인적자본을 양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마에 겐이치도 한국경제가 유망한 편이나 선진국 진입에 시간이 필요하며 확고한 리더십 속에서 인재육성과 지식산업 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46]

지식이란 첨단과학이나 첨단이론에서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최근에 지식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인류가 살아가는 모든 양태에서 이전보다 더 높은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지식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매일 아침 남산의 아스팔트 길을 빗질하는 청소부라도 낙엽이 하루 중 어느 시간에 가장 많이 떨어지는지를 파악해서 그 직후에 빗질을 한다면 누가 인정을 하든 말든 지식인이다. 수박 농사를 짓는 농부가 수박을 밭떼기로 팔지 않고 포장도 하고 상표도 붙여 좀 더 비싸게 팔면 역시 지식인이다.

지식에는 형식지와 암묵지가 있다. 형식지란 눈에 보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다. 컴퓨터 사용 매뉴얼, 박사학위 논문,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 등이 형식지다. 반면 암묵지는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사람의 몸속에 체화되어 있다. 도자기를 만드는 지식은 장인과 도제 간에 암묵적인 상호이해와 손끝을 통해 이전되므로 그 과정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사람에 따라 습득하는 질과 속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노나카에 따르면, 지식이란 암묵지가 형식지로 되고 형식지가 암묵지로 되는 과정에서 가장 원활히 창조된다.[47] 독일에서 자동차 정비소나 시계수리점에서 고장난 부분을 수리하고 기술자에게 “마이스터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대단히 좋아한다. 자신을 장인으로 존중해준 데 대한 자긍심이다. 우리 주변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암묵지가 곳곳에 잠재되어 있다. 이를 어떻게 형식지로 만들어 확산시키고 부가가치의 원천으로 발전시켜갈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과제다.

미들업앤다운형 지식창조

최근 지식국가 또는 지식경영과 관련해서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현상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지식국가나 지식경영은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수단이 목적화되면,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무엇을 위해서 하는지를 망각하게 된다. 지식국가는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고 지식경영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식에는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이 있다. 무조건 지식축적량이 많다고 해서 경쟁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나 조직의 목적에 부합하는 지식의 양이 많아야 하고 그 지식이 경쟁력 향상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지식의 질적인 측면이다.

지식의 질적-양적 확충을 위해서는 톱다운식 접근과 보텀업식 접근이 있을 것이다. 톱다운식이란 국가 차원에서 지식이 필요한 분야와 이를 축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국가 전체가 역할을 분담해서 일사불란하게 지식을 축적해 가는 방식이다. 반면 보텀업식은 일단 국가 전체의 분위기를 지식창조가 잘 일어날 수 있도록 조성하고 모든 국민이 모든 분야에서 지식을 창조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톱다운식은 일사불란하게 지식을 창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창조란 그 속성상 누가 강요하면 될 것도 안 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효율성(efficiency)이 떨어진다. 반면 보텀업식으로 하면 지식이 창조되는 절대량은 많아질지 모르지만 국가경쟁력 강화에 직결되는 지식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효과성(effectiveness)이 낮아진다. 잘만 하면 효과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식이 앞서도 여러 차례 언급된 미들업앤다운식이다. 특히 국가전략의 기본 방향을 벤처국가로 채택한다면 미들업앤다운식은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다. 지식창조 분야에서도 국가 전체 차원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벤처국가 차원에서 힘을 모아야 하는 니치 산업을 정하듯이 국가경쟁력 강화에 꼭 필요한 지식창조 분야를 먼저 설정한다. 그리고 학계와 현장, 공직자가 모여 큰 방향을 정하고 이를 전 국민에게 알린다. 정부로서는 지식창조 과정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고 전체 방향에 맞는 지식창조가 일어나는 사례에 대해 유인책을 제공한다. 그리고 산업, 기업, 학계, 자본가들이 원활하게 협력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과 분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맡는다. 학계와 산업계 그리고 기업은 그 위에서 활발히 지식창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방향성 있는 지식창조가 이루어지면서도 자원의 낭비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연구 생태계의 붕괴

외환위기 이후 눈에 보이지 않게 붕괴되고 있는 분야가 연구업종이다. 여기서도 소위 신자유주의적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존에 연구를 제대로 하던 곳은 더욱 번성하고 반면에 연구업적이 미미하던 곳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대덕에 있는 많은 연구소가 연구인력을 줄이거나 문을 닫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경제경영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외자계 컨설팅펌의 약진이 눈에 두드러진다. 높은 연봉과 이적료로 기존 연구소의 우수인력을 대규모로 스카우트해가고 있다.

연구업종도 생태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큰 연구소, 작은 연구소 그리고 국책 연구소, 민간 연구소가 어우러져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연구를 충실히 할 때 전체 생태계는 존속된다. 큰 연구소 한두 개만 남아 독과점을 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가 강건할 수 있는 바탕에는 워싱턴을 중심으로 산재되어 있는 천여 개의 크고 작은 연구소가 생태계를 이루면서 공생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리티지나 브루킹스, 랜드 같은 대규모 연구소는 총체적인 국가전략 제시와 연구산업 인프라 구축에 주력한다. 한편 작은 연구소는 니치 연구분야를 찾아 전문성 있는 연구를 한다. 특히 부러운 것은 공화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민주당의 많은 관료가 브루킹스연구소에 내려와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그림자 행정부를 구성하여 정책대안을 내면서 국가발전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다시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헤리티지 연구소가 그 역할을 하는 체제가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어 양당 중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상대 당 행정가는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모방지식과 창조지식 그리고 감성

이미 한국은 몇몇 분야에서 선진을 모방하는 단계가 지났으므로 이제는 창조적 지식이 요구된다는 지적은 진부한 이야기지만 진실이다.

최근 디지털 경제에서 화두 중 하나는 컨테이너(container)와 콘텐츠(contents)의 주도권 싸움이다. 컨테이너란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고 콘텐츠란 컨테이너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뉴스페이퍼(newspaper)라는 단어에서 보면 뉴스(news)는 콘텐츠고 페이퍼(paper)는 컨테이너다.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이 갖는 위력이 파괴적인 것은 AOL은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를 갖고 있고 타임워너는 세계 최대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 간의 싸움에서 당분간은 컨테이너가 우위를 점하겠지만 몇 년이 지나면 콘텐츠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무어의 법칙과 길더의 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이란 인텔의 공동창립자인 고든 무어(Gorden E. Moore)가 1965년에 만든 법칙으로 정보의 처리속도나 저장 용량이 18~24개월마다 배가되지만 그 원가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286에서 386, 486을 거쳐 펜티엄으로 가는 과정이나 메모리 반도체가 1메가에서 4, 16, 64를 거쳐 256메가로 가면서도 무어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몇십 달러씩 하던 반도체가 최근 3~4달러 선을 오르내리는 것도 그 예다.

길더의 법칙은 디지털 컬럼니스트인 조지 길더(George Gilder)가 만든 것으로, 통신의 성능과 속도가 12개월마다 세 배씩 증가하는데 그 가격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통신비용도 몇 년 지나지 않아 거의 공짜 수준으로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양 법칙에서 시사하는 바는 정보를 처리하고 보관하고 전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급속히 낮아짐에 따라 컨테이너를 통해 얻어 들일 수 있는 부가가치가 점차 축소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콘텐츠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콘텐츠의 부가가치는 창조성에서 나온다. 누구나 모방할 수 있는 콘텐츠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쓰레기로 전락할 것이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이고 차별화되는 콘텐츠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콘텐츠에도 이성적인 콘텐츠와 감성적인 콘텐츠가 있다. 이성적인 콘텐츠라 함은 이 책처럼 필자의 주장을 전달하는 것이고 감성적인 콘텐츠는 음악이나 영화처럼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이성적인 콘텐츠가 상당히 강세를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이성적인 콘텐츠는 지금에야 학습(learning)의 대상이 되지만 조만간 접근(access)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과거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학습의 대상이라고 열심히 외웠던 것들(한국의 인구와 면적, 미국의 수도 등)이 이제는 인터넷에서 검색엔진만 돌리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접근의 대상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학습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들도 조만간 접근의 대상이 되면서 이성적인 콘텐츠는 점점 부가가치가 낮아질 것이다.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남이 흉내를 낼 수 없는 창조적이고 감성적인 콘텐츠다. 요컨대 창조와 감성이 미래 부가가치의 원천이다.

우리의 교육

하지만 현재 우리의 교육은 창조성과 감성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 무조건 교실에 모아놓고 열심히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학생들의 자괴감만 더 키울 뿐이다.

선진국의 학교는 학생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더욱 북돋워주는 역할을 한다. 공부는 그중 한가지 항목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로지 공부만 잘해서, 상대적으로 좋다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로 친다.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는 국가경쟁력 향상에 가장 기여도가 높은 부분이다. 미국 상무부, 교육부, 노동부 등이 공동 작업한 <21세기 직업에 요구되는 21세기 기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물리적인 시설에 대한 투자보다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생산성 향상이 더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나온다. 기업이 시설투자를 10% 늘리면 생산성이 3.6% 향상되지만 교육훈련 투자를 10% 늘리면 생산성이 8.4% 올라간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래도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점이다. 모든 부모가 자식은 자기보다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생활의 기반인 논밭과 소를 팔아서 대학을 보낸다. 이러한 교육열은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강력한 에너지로 작동한다. 마이클 포터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교육열은 선진 8개국과 신흥공업국 두 나라 중에서 가장 높다.[48]

교육훈련을 통한 인적자본 양성은 초기 조건에 따라 선순환 또는 악순환 고리에 빠진다. 시카고대학의 루카스[49]에 따르면, 초기에 경제 전체의 인적자본 축적량이 적다면 생산 역량도 적을 것이고 따라서 장기적으로 인적자본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지 않을 것이므로 경제 전체가 악순환 고리에 빠진다.[50] 이와 반대로 초기에 경제 전체의 인적자본 축적량이 많다면 쉽게 산출물을 늘릴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더 많은 자원을 인적자본 축적에 할애할 수 있으므로 높은 성장률이 지속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높은 교육열이라는 천혜의 조건은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지지 못한 한국만의 장점이지만 최근 들어 교육현장에서는 시행착오가 빈번히 일어나고 그 대가도 너무 비싸게 치른다. 우리의 교육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원인을 찾아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교육외적인 요인이 교육현장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또한 큰 문제일 것이다.

최근 우리 교육이 기반에서부터 급격히 무너져 내리면서 조기유학 열풍이 불고 있다. 중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오로지 대학을 가는 징검다리 역할만 하며 이미 교육 본래의 기능은 상실했다. 경제교육의 예만 보더라도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대학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개념이 거의 다 수록되어 있고 학생들은 이를 달달 외우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학생들은 암기하는 기계가 되어버렸다.

이런 환경에서 초등학교부터 일고 있는 조기유학 바람은, 일부 유행적인 성격도 있고 실패사례도 있지만 경제적 형편이 허락하는 한 떨쳐버리기 힘든 유혹이 되었다. 학업성적이 미진한 학생들만 도피성으로 조기유학을 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물론 도피성도 없지 않겠으나 상류층의 상당 부분이 조기유학을 보내고 있다.

과거에는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되돌아오면 학연이 없어서 뿌리를 내리기가 힘든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조기유학생의 규모가 증가하여 자체적으로 학연을 맺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조기유학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내재하고 있다. 그들이 성장해서 한국에 돌아오기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해외에서 공부를 시켰는데 그 결과 다수의 학생이 무국적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이들을 자율적으로 이 땅에 돌아오게 할 방도는 없을까?

시장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대학교육

시장에서의 절대자는 고객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시장에서는 이러한 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이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원치도 않는 상품(인적자원)을 대량으로 출하하고 정작 원하는 상품은 공급이 달리는 실정이다. 수급불균형의 양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고학력 인력이 양산되는데도 수요가 없다. 박사학위를 따고서도 실업자로 전전하고 있으며 대졸자가 고졸이나 전문대졸 학력의 직업에 지원하는 하향취업 사례도 빈번하다. 둘째, 전공이 맞지 않는다. 정보기술 등 최근 수요가 폭증하는 핵심지식산업에서는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인문사회 계열에서는 실업자가 넘쳐난다. 셋째, 기업의 요구수준에 부응하는, 상대적 질 저하 현상도 심각하다. 이는 교육 수준이 퇴보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기업이 너무 앞서 가는 탓이다. 국내 선두기업은 세계 최고수준의 기업들과 이미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선진국의 기업에는 세계 최고수준의 교육을 받은 양질의 인력이 공급된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상품을 40개나 창출했다면 우리 대학에서도 세계 최고의 학과가 몇이라도 나와야 손발이 맞는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 원인은 교육시장에 고객만족 개념이 없고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의 고객은 사회다. 학문을 위한 학문, 교육을 위한 교육은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다.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 자동차의 렉서스가 벤츠를 누른 것도 고객만족 덕분이다.[51] 세계 最高-最古의 자동차 회사인 벤츠는 인류의 자동차 문화를 창조해왔고 고객들에게는 자동차 문화라는 게 무엇인지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도요타는 “고객은 항상 옳다. 고객이 원하면 지옥까지 간다.”라는 고객만족 슬로건을 내걸었다. 고객의 니즈는 진리라는 자세로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것이다.[52] 고객만족은 장사치나 하는 것이고 교육이란 숭고한 것이며 무지몽매한 국민을 일깨우는 일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인센티브 체제가 재정비되어야 한다. 법대-의대로 우수인력이 몰리는 이유는 대학을 졸업하고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고 의사가 되면 쉽게 명예나 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53] 이런 풍조를 극복하고 벤처국가의 기풍을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수비수보다 공격수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인센티브를 누려야 한다. 지식을 창조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며, 이를 해외에 내다 팔아서 외화를 벌어오는 사람들이 우대받아야 하는 것이다.


3. 성장과 안정

1997년 말에 시작된 경제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안정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이 요구된다. 안정을 택하면 성장을 포기해야 하고, 성장을 택하면 안정을 희생해야 한다.

현재 국가 차원의 전략이나 사회시스템은 모두 안정 일변도로 나아가고 있다. 견제와 균형, 투명성 강화, 과잉투자 회피는 善이고 이를 반대하면 惡이다. 그러나 안정을 선택하면 성장은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一言半句도 없다. 안정을 추구하고 성장을 포기하면 남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실패하면 크루그만의 예견처럼 소련의 사례가 재현된다. 진정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한번 좌절을 맛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선진국 되기를 포기할 것인가?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단 한번에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아기는 어디에도 없다. 한번 넘어졌으니 다시는 일어서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주문은 애당초 성장을 포기하겠다는 처사다.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제법 이룬 것도 있다고 큰소리 치기는 하지만 세계 전체 자본주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막 걸음마를 시도하는 유아 단계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넘어지는 과정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만약에 외환보유고라는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가볍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인데도 중상을 입고 IMF라는 의사에게 치료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넘어졌다고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재활치료도 하고 다리 근육도 튼튼하게 만들어 다시 일어나야 한다. 물론 앞으로도 넘어지겠지만 안전장치만 잘 설치해두면 다시 일어나서 언젠가는 재도약할 것이다.

안정과 성장은 선악 문제가 아니라 선택 문제다. 언젠가 선진국 되기를 원한다면 성장을 택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전의 활력을 되찾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 한다. 물론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시도조차 포기하기에는 이제껏 우리가 쌓아온 노력이 너무 아깝다.

천혜의 자원 없이 한국이 강소국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 전체가 벤처국가로 재탄생해야 한다. 국가원수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도전의식과 창업가정신이 충만해야 하고 모든 의사결정이 기동성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니치 산업을 선택해서 자원투입을 집중해야 한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상충관계에서 탈피하고 미들업앤다운형 협력체제를 구축해서 시너지를 내야 한다. 사회 시스템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도전을 촉진하고 패자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벤처국가의 프랙털은 경박연개(輕薄軟開)다.


[1] 본 장은 필자의 아이디어를 단순히 제안하는 것이므로 가볍게 읽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필자의 기억에 의존한 사례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참고문헌(reference)을 달지 않았다.

[2] Toffler, Alvin (1990). Power Shift. New York: Bantam Books.

[3] Romer, Paul M. (1993). “Idea Gaps and Object Gaps on Economic Development”.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32(December), 543~573.; Romer, Paul M. (1996). “Why, Indeed, in America? Theory, History and the Origins of Modern Economic Growth”. NBER Working Paper No. 5442, January 1996. 여기서 Romer가 말하는 아이디어란 무형의 지식이나 기술까지 포괄한다. 그는 생산요소를 사물(thing)과 사고(idea)로 나누고 물적자본이나 노동 외의 무형적인 생산요소 모두를 아이디어로 표현한다.

[4] 그러나 영어를 이차 언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3억 5천만 명에 달하므로 이를 합치면 영어는 베이징어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쓰이는 언어가 된다. 영어를 가르치는 나라는 100개국, 공식어로 지정한 나라는 70개국이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2000.1.24)). 그리고 사이버스페이스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다소 차이가 난다. 2000년 말 인터넷 사용인구 2억 8천만 명 중 영어가 1억 8천만 명, 일본어가 2천 7백만 명, 독일어가 1천 9백만 명, 중국어가 1천 6백만 명, 한국어가 1천 5백만 명이다(이티포캐스츠 조사 결과).

[5] 1999년 각국의 GDP는 미국이 83,510억 달러, 일본이 40,789억 달러, 독일이 20,792억 달러, 한국이 3,979억 달러이다(World Bank (2000. 8. 2).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Database).

[6]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으로 사회시스템을 실험해간다. 동성 간 결혼을 최초로 인정했고 마약 복용을 합법화했으며 최근에는 안락사까지 허용했다. 스웨덴, 핀란드는 디지털 하드웨어에서 최고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7] 김인수 (2000). 『모방에서 혁신으로』 시그마인사이크컴에서 재인용.

[8] Robert Fairlie and Bruce Meyer의 연구로, Fortune(1994. 10. 3). “Entrepreneurs and Ethnicity” 수록 내용을 김인수(2000)에서 재인용.

[9] Nelson, Richard R., and Edmund Phelps (1966). “Investment in Humans, Technological Diffusion, and Economic Growth”, American Economic Review, 56(May), 69~75.

[10] Nelson, Richard R., and Howard Pack (1995), “The Asian Growth Miracle and Modern Growth Theory”, Mimeograph. (Reversion. The Asia Miracle and Modern Growth Theory, The World Bank, October 1997.); Hobday, Michael (1995). Innovation in East Asia: The Challenge to Japan, London: Edward Elgar.

[11] 물론 아무리 위험을 감수한다 해도 향후 20년간 지속적으로 7~8% 성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개 2만 달러 수준이 되면 성장률은 점진적으로 체감할 것이다.

[12] 신현덕(1998). 『칭기즈칸은 살아있다』. 도서출판 강.

[13] 天外何郞 (1989). 『大企業病とべんちゃーはざまで』. 講談社.

[14] Cantoni, Craig J. (1993). Corporate Dandelion. Amacom.

[15] 잎사귀 모양이 사자 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모양이다.

[16] NPR은 시작 당시 National Performance Review라고 했으며 어느 정도 정부재창조가 이루어지자 명칭을 National Partnership for Reinventing Government로 바꾼다. 상세한 내용은 http://www.npr.gov를 참고하라. 정부재창조와 관련해서 엄청난 사례를 목격할 수 있다.

[17] 카츠시 토쿠나가 (1996). “조직적합성 항원의 유형으로 본 동아시아 민족들의 기원과 확산”,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 토쿠나가는 분자유전학자이다.

[18] 르네 그루세 (1998).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김호동 역. 역자 서문. 사계절.

[19] 위의 책.

[20] 위의 책.

[21] 테헤란로나 대학가를 가보라. 이제는 한물갔지만 삐삐의 보급률은 거의 포화상태까지 갔고 최근에 모바일폰도 어른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생, 중학생들까지 목걸이로 걸고 다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모바일은 유목민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22] 이찬근 (1998. 6. 4). “폴 크루그먼의 생산성 신드롬”. 『한국경제신문』.

[23] Fukuyama, Francis (1996). Trust: The Social Virtues & the Creation of Prosperity. Free Press.

[24] Nonaka, Ikujiro and Hirotaka Takeuchi (1995). The Knowledge-Creating Compan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5] Stiglitz, Joseph E. (1998. 2. 27). “The Role of 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s in the Current Global Economy”. Address of Senior Vice President of World Bank to the Chicago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6] Furman, Jason, and Joseph E. Stiglitz (1998). “Economic Crises: Evidence and Insights from East Asia”. Brookings Papers on Economic Activity.

[27] Wade, Robert (1998. 6. 1). “From Miracle to Meltdown: Vulnerabilities, Moral Hazard, Panic and Debt Deflation in the Asian Crisis”. Institute of Development Studies.

[28] MBI: Management by Instinct.

[29] MBO: Management by Objectives.

[30] Krugman, Paul (1999. 1). “Balance Sheets, the Transfer Problem, and Financial Crises”. <web.mit.edu/krugman/www/>.

[31] Krugman, Paul (1999. 9. 12). “Analytical Afterthoughts on the Asian Crisis”. <web.mit.edu/krugman/www/>.

[32] Wade, Robert (1998. 6. 1). “From Miracle to Meltdown: Vulnerabilities, Moral Hazard, Panic and Debt Deflation in the Asian Crisis”. Institute of Development Studies.

[33] Veneroso, Frank, and Robert Wade (1998). “The Asian Crisis: The High Debt Model vs. the Wall Street-Treasury-IMF Complex”. New Left Review, 228, 3/4.

[34] GNF: Gross National Failure Rate.

[35] Peters, Tom (1987). Thriving on Chaos. Alfred A. Knoph.

[36] 프랙털(Fractal)이란 수학에서는 차원분열도형을 말하며 복잡계 이론에서는 동형반복(同形反復) 현상을 말한다. 해안선을 지상 100킬로미터에서 본 모습이나 1킬로미터 위에서 본 것이나, 그리고 100미터 위에서 본 것이나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축소하거나 확대해도 같은 형태가 반복되는 것을 프랙털이라 한다. 따라서 프랙털을 잡아내면 전체의 윤곽이 대개 파악되는 것이다.

[37] <http://www.bankrate.com/&gt; (1999. 1. 12).

[38] ‘금융시장 개방’이라는 용어와 ‘자본시장 자유화’라는 용어 간에는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같은 말로 사용된다. 자본시장 자유화는 세계화를 주도하는 자들이 주로 사용하는데 자칫 ‘자유’라는 용어가 주는 뉘앙스로 무조건 좋은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한국 입장에서 표현하는 ‘금융시장 개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39] Fischer, Stanley (1998). “In Defense of the IMF: Specialized Tools for a Specialized Task”. Foreign Affairs, July/August.

[40] International Monetary Fund (1998. 10). World Economic Outlook, October 1998. Washington: International Monetary Fund.

[41] The Economist (1997.3.1.), “Asian Miracle: Is It Over?”.

[42] 여성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1999년 기준이다(노동부 (2000). 『여성과 취업』).

[43] 여기서 여성인력이 남성인력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경우를 터부시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평등과 인권 문제는 접어두고 단순히 노동력과 인적자본은 성장이론상 생산요소 중 하나라는 차원에서만 문제에 접근하면 전체 노동투입량이 증가하지 않으므로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44]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은 고학력자의 해외 유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에 속한다. IMD의 2000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고급인력 유출’ 항목에서 한국은 대상국가 47개국 중 30위로 아일랜드, 싱가포르, 홍콩보다 못한 것으로 나온다.

[45] 다소 어감이 이상하지만 내생적 성장주의자들은 사람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을 구분한다. 양적 측면은 노동(labor) 또는 원노동(law labor)이라고 표현하며 노동 또는 원노동에 체화되고 내재된 지식이나 기술을 인적자본(human capital)으로 표현한다.

[46] 경향신문(1997. 4. 4).

[47] Nonaka, Ikujiro and Hirotaka Takeuchi (1995). The Knowledge-Creating Compan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그들은 암묵지가 형식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외부화(externalization)라고 부르고, 반대로 형식지가 암묵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내면화(internalization)라고 칭한다.

[48] Porter, Michael (1990). The 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 Free Press. 선진 8개국은 덴마크,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웨덴, 스위스, 영국, 미국이며 신흥공업국은 싱가포르와 한국이다.

[49] Lucas, Robert E. Jr. (1988). “On the Mechanics of Economic Development”,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22(1), 3~42, North-Holland.

[50] 노동력은 재화를 생산하는데 투입하거나 교육을 받는데 사용되며 양자는 서로 배타적이다. 교육도 자원투자의 일종이므로 인적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교육훈련 시간을 늘릴수록 산출물은 적어진다. 만일 어떤 경제주체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수 없다면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투자를 줄일 것이고 현재 생산과 소비를 택할 것이다.

[51] 1992년 미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J.D.Power의 고객만족도(CSI: Customer Satisfaction Index) 조사에서 도요타의 렉서스는 벤츠를 누르고 1위 자리에 올랐다.

[52] 최근에는 벤츠도 고객만족 경영에 주력하여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53] 1997년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응시자는 34,555명이며(교육개혁위원회 1998), 전공학과와 관계없이 많은 고급인력이 고시준비에 몰두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