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봉. 강소국(强小國)을 꿈꾸며: SBS(Small-But-Strong) country. 삼성경제연구소. 2001.5.31.

작지만 강한 나라, 소위 “강소국(强小國)”이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었다. 우리와는 조건이 많이 다른 미국, 일본, 독일 같은 강대국의 발전사례를 따라갈 게 아니라, 처해 있는 입장이 우리와 유사한 “강소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만든 신조어다.

당초는 “강소국” 대신에 “벤처국가”라는 말을 사용했다. 초고를 가지고 몇몇 교수님들과 세미나를 하는 과정에서 “취지는 좋지만… 많은 한국의 벤처기업이 실패했거나 어려움을 겪었는데 한국도 그러자는 이야기냐”라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관련자료] 한국의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하여. 윤순봉. 2001.4.27._84p

은유가 적절치 못했다는 생각에 숙고를 거쳐 “강소국”으로 바꾸었다.

“작지만 강한 나라”를 뜻에 따라 순서대로 쓰면 소강국(小强國)이 맞지만 소강상태(小康狀態)라고 할 때의 “소강”으로 오인될 수 있어 글자 앞뒤를 바꾸어 “강소국”으로 최종정리했다. 영어로는 small-but-strong country, 약자로 “SBS country”로 썼다.

강소국에 대한 고민은 2000년에 발간한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라는 글을 쓰면서 시작했다.

[관련자료] [book]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 윤순봉. 2000.12.31.

그 후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의 [제3부 대안모색: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하여]에서 마지막 부분에 [제9장 강소국을 향하여]를 포함했으나 내용이 채 여물지 못했다는 판단이 들어 최종본에서는 제외시켰다. 원본을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제3부 대안 모색 :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하여

제2부 말미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경제의 재도약 가능성은 지금부터 우리가 하기에 달린 조건부 미래다. 그래서 제3부에서는 앞서 여러 주제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학습된 다양한 견해와 이론, 특히 성장이론에 기반해서 향후 한국경제가 성장잠재력을 유지하고 확충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
먼저 제8장에서는 자본과 노동을 추가적으로 동원하고 지식과 기술 그리고 인적자본의 질적 수준을 높임으로써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그리고 제9장에서는 경제위기 이후에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영미식 자본주의체제의 대안으로 ‘강소국(强小國)’이라는 새로운 국가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제9장 강소국을 향하여

마지막 장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경제는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거 수십 년간 이어져 오던 경로 의존성을 버리고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최고의 국가들에서나 작동되는 국가운영시스템이 과연 작고 약한 우리나라에 정착되고 제 기능을 발휘할 것이냐 하는 점에 대해 냉철히 고민해보아야 한다. 답은 ‘no’다.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국가모델은 ‘강소국(强小國)’이다.

그 후 상당 기간 묵혀 놓았다가 강소국에 대한 아이디어를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 싶어 다시 꺼내 일부 자구를 수정하고 참고문헌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글을 마무리했다.


p.s.

반응은 거꾸로였다.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는 전문적 경제학 용어가 많이 들어 있어 별 반응이 없었지만 강소국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대단했다.

급기야 백과사전(두산백과사전)에 까지 등재되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바로가기


원문보기_78p


[목차]

제1장. 글을 시작하며

제2장. 한국을 강소국으로 만들자

  1. 한국은 현재 약소국이다
  2. 한국의 국가 비전은 작지만 강한 강소국

제3장. 강소국의 요건

  1. 창업가정신이 충만한 나라
  2. 기동성을 갖춘 나라
  3. 강한 의지로 선택과 집중을 실행하는 나라
  4.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끈끈한 협력체제를 구축한 나라

제4장. 강소국의 프랙탈은 경박연개(輕薄連開)

  1. 가볍다: 경(輕)
  2. 얇다: 박(薄)
  3. 연결되다: 연(連)
  4. 연다: 개(開)

제5장. 글을 마치며: 다시 도전하자

참고문헌


제1장. 글을 시작하며

800cc 마티즈 엔진에 4500cc 에쿠스의 차체를 얹는다면 어떻게 될까? 에쿠스가 얼마나 안락하고 고급스러운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마티즈 엔진의 52마력으로는 2,165kg를 견인하기에 힘이 부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일어나고 IMF와 미국 재무부 그리고 월스트리트라는 삼인방이 합작해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한국 사회 깊숙이 이식시켰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에서나 작동할 수 있는 경제사회 시스템을 규모가 채 2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국에 심어도 제대로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다. 삼인방의 주장에 부화뇌동하여 영미식 자본주의시스템과 그 아류는 모두 선(善)이고 기존에 있던 한국의 경로의존성은 모두 악(惡)이므로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여러 논객이 앞장선다. “자본시장을 더욱 개방하라, 외자만 유입된다면 헤지펀드라도 좋다, 무역장벽을 더욱 낮추어라, 기업은 부채비율을 낮추어라,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라, 재벌을 해체하라, 벤처만이 살 길이다, 우량기업과 부동산을 해외 자본에 매각해도 결국 한국 땅에 있으면 한국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월스트리트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아니면 알고서도 또 다른 목적 때문인지 사실 왜곡에 앞장선다.

남 탓할 일만은 아니다. 한국적 자본주의시스템만 정립되어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다. ‘한국적’이란 개념을 사용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핵심역량(core competence) 개념을 빌려와서 설명해보자.[1]

첫째, 과거 한국 경제를 성장시킨 주요한 역량이어야 한다.

둘째, 그 역량은 미래의 한국 경제에 적용해도 잘 돌아가야 한다.

셋째, 남들과 다른 차별성이 있고 복제하기 힘들어야 한다.

넷째, 확산성이 커야 한다.

이런 게 뭐가 있을까? 필자는 한국 경제가 그간 거둔 성과와 그 원인을 바탕으로 미래에도 통할 핵심역량을 찾고자 한다. 우선 한국이 가진 물리적 조건에서 논의를 시작하자.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다.

첫째, 과거 한국이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작은 나라’라는 조건을 효과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가 리콴유(李光耀)의 지휘 아래 일거에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둘째, 미래 세상을 지배할 키워드 중 하나가 작다(small)는 것이다. 반도체를 작게 만들어 집적도를 높일수록 부가가치가 높다. 예전에 GM이 “큰 것은 좋은 것”이라는 자만심에 사세가 기울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미래의 구호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가 되어야 할 것이다.[2]

셋째, 작은 것은 대개 가볍고 빠르다. 잘만 활용하면 차별적인 사회시스템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넷째, 작다는 개념은 다각적으로 응용할 수 있다. 산업에서도 경박단소(輕薄短小)가 이미 성공의 요인이 되었으며 경영에서도 “큰 조직을 작은 조직처럼” 운영하는 게 큰 숙제다. 요컨대 작다는 핸디캡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이를 국가 차원에서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강소국(强小國)이다. “작지만 강한 나라”로 풀이할 수 있다. 뜻에 따라 순서대로 쓰면 오히려 소강국(小强國)이 맞지만 小强이 소강상태(小康狀態)처럼 오인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글자 앞뒤를 바꾸었다. 영어로는 Small-but-Strong country, 약자로 SBS country로 쓸 수 있겠다.

한국은 경제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튼튼한 체력을 가꾸며 달려왔지만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어두워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다. 몸 전체가 망가진 것은 아니고 잘못 넘어져 코가 조금 내려앉았다. 하지만 세계적인 명의를 자처하는 IMF는 한국이 넘어진 것은 기초체력이 부실하고 온몸이 병들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거의 반강제로 입원시켜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코만 조금 높이면 될 일을 아예 내장까지 드러내야 할 판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기어 다니다가 일어서기까지 최소 천 번은 넘어져야 한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다시 넘어지면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일어서는 방법도 체화하고 다리 근육도 튼튼해진다. 어린애가 처음 일어서다가 넘어져 코를 찧었다고 해서 다시는 일어서지 말라고 하면 그 아이는 영원히 기어 다닐 수밖에 없다. 방바닥에 담요를 깔고 가구 모서리마다 스티로폼을 붙이면 될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번 넘어졌다고 해서 영원히 기어 다닐 것인가? 훌훌 털고 일어서서 다시 도전할 것인가?


제2장. 한국을 강소국으로 만들자

1. 한국은 현재 약소국이다

먼저 정의부터 하자. 국가를 크기나 역량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대개 강대국(强大國)과 약소국(弱小國)의 두 가지로 나눈다. 강(强)이란 힘이 세다(strong)는 뜻이고 약(弱)은 힘이 약하다(weak)는 것이다. 대(大)는 크다(big)는 것이고 소(小)는 작다(small)는 의미다. 따라서 강대국(强大國)은 크고 힘이 센 나라(big-and-strong country)이며 약소국(弱小國)은 작고 힘이 약한 나라(small-and-weak country)다.

분류 잣대와 관련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겠지만 먼저 대소(大小)의 잣대에는 국적별 또는 동일언어권별 인구나 국토면적 등이 있다. 일단 여기서는 그 잣대를 국적별 인구수로 하고, 인구가 1억 명이 넘으면 대국(大國)으로, 그 미만이면 소국(小國)으로 한다. 물론 대중소(大中小)의 셋으로 나눌 수도 있다. 1억 명 이상이면 대국(大國), 5천만 명 이상이면 중국(中國), 그 아래면 소국(小國)이다. 한국의 인구는 2000년 말 현재 4,612만 명이므로 소국에 해당한다. 물론 남북통일이 되면 중국이 될 것이다.

강약(强弱)의 잣대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인당 GDP를 기준으로 삼는다. 인당 GDP가 1만5천 달러 이상이면 강국(强國)이고 그 미만이면 약국(弱國)이다. 강중약(强中弱)으로 나누면 2만 달러 이상을 강국(强國), 1만 달러 이상을 중국(中國), 그 미만을 약국(弱國)으로 나눌 수 있다. 2000년에 한국의 인당 GDP는 9,628달러이므로 아깝지만 약국에 포함된다. 요컨대 한국은 현재 작고 힘이 약한 약소국(弱小國)이다.

유엔 통계를 잣대 삼아 보다 엄밀하게 분류할 수도 있지만 상식과 동떨어진 결론이 나온다. 전 세계 201개 국가를 3분의 1씩 대중소 또는 강중약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지표의 상위 3분의 1 수준인 67위를 보면, 인당 GDP는 크로아티아로 4,242 달러이고 총 GDP는 스리랑카로 159억 달러다. 인구는 말리가 1,168만 명이고 국토면적은 가봉이 258㎢이다. 이를 근거로 크로아티아와 스리랑카를 강국에 포함시키거나 말리와 가봉을 대국으로 분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은 인당 GDP(8,871 달러)가 51위, 총 GDP(4,069억 달러)는 13위, 인구(4,707만 명)는 26위, 국토면적(99㎢)은 89위이므로 이미 강대국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전술한 잣대를 따를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국가 유형을 3X3으로 나누면 [표 1]처럼 된다. 2X2로 나누어도 한국은 약소국에 포함된다. 강대국에는 미국, 일본이 들어가고 약대국은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이다. 강소국은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등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도국과 후진국은 약소국이다.

[표 1] 대중소-강중약으로 분류한 국가 유형

굳이 대중소 또는 대소로 나누는 이유는 소국의 국가전략이 대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반드시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국이 인구가 4천만 명이 넘는데 인구가 5백만~1천5백만 명밖에 되지 않는 네덜란드(2000년 기준 1,590만 명)나 스웨덴(888만 명), 스위스(721만 명)나 핀란드(517만 명) 같은 소국에 굳이 포함시키느냐고 비판할지 모른다.

이들 나라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비교적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고 훌륭한 리더가 나오면 나라 전체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오히려 프랑스(5,945만 명)나 영국(5,954만 명), 독일(8,201만 명) 같은 중국(中國, middle country)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대소를 나누는 기준으로 인구와 면적 같은 정량적인 잣대를 사용할 수 있지만 관점을 바꾸어 정성적인 요인을 사용할 수도 있다.

첫째, 내수시장이 작아 독자적인 힘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는 나라는 소국이다. 이 잣대에 따르면 미국이나 일본은 당연히 대국이다. 자국 인구도 많고 내수시장 규모도 충분히 크며 경제 전체에서 수출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2000년 기준 미국 12%, 일본 11%). 극단적으로는 다른 나라와 교류하지 않고 자력만으로도 강국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자국 인구도 작고 내수시장 규모도 열악하므로 혼자 힘만으로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으며 경제의 많은 부분을 해외수출에 의존해야 하므로 소국일 수밖에 없다. 2000년 기준으로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은 52% 수준이며 강소국은 대개 48~67% 수준이다(네덜란드 67%, 스웨덴 52%, 핀란드 48%, 스위스 48%). 즉 강소국의 잣대에는 이른바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의 개념이 녹아 있다.

두 번째, 지식의 외부성이라는 잣대를 살펴보자. 주지의 사실이지만 토플러는 권력의 원천이 힘에서 돈으로 그리고 지식으로 이동한다고 했다.[3] 우리 사회도 이미 자본주의(資本主義)에서 지본주의(知本主義) 로 이동하고 있는 조짐이 곳곳에 보이고 있으며 그 추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물리적인 생산요소의 투입이 중요했다면 미래에는 지식화, 정보화의 시대가 전개될 것이고 인적 자본과 그 속에 체화된 기술이나 지식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국가 차원에서도 경쟁력의 원천이 군사력에서 자본력으로, 다음에는 지식창출 역량으로 이동할 것이며 성장잠재력 역시 지식에 기반을 두게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경제성장이론은 크게 축적론과 융화론으로 대별된다.[4] 신고전파 경제학자는 경제성장이란 자본이나 노동 같은 물리적 생산요소의 축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축적론자로 불린다. 융화론자의 입장은 다르다. 경제성장에서 자본이나 노동 같은 생산요소가 축적되면서 기여하는 부분도 크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질적인 차원에서 학습, 기업가정신, 혁신 등을 통해 이루어진 기술진보가 기계, 설비, 장비 같은 물적자본 속으로 녹아들거나 노동력에 체화되고 경제 내부에 내생화된다는 소위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 또는 융화론(assimilation theory)을 주장한다.

융화론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스탠퍼드대학교의 로머(Romer 1993, 1996)에 따르면, 경제성장의 원천이 되는 아이디어(idea)는 개발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일단 개발하고 나면 이를 널리 확산하는 데는 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5] 로머는 생산요소를 사물(thing)과 아이디어(idea)로 나누고 물적자본이나 노동 이외의 모든 무형적인 생산요소(지식, 기술 등)를 아이디어에 포함시킨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가치는 시장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내수시장이 큰 나라는 작은 나라보다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더 큰 유인효과를 가지며, 그 결과 시장 규모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보다 더욱 빨리 성장할 수 있고, 특히 작은 나라에서 큰 나라의 특성인 통제나 규제가 심할 때에는 성장이 둔화된다고 로머는 설명한다.

하지만 한국은 내수시장도 작고 통제와 규제도 만만치 않으므로 결국 지식창출에서 상대적으로 열위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인구도 성장잠재력과 직결된다. 인구 계산도 과거처럼 국경이나 민족으로 구분하기보다는 동일언어권으로 기준이 바뀔 것이다. 융화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지식의 외부성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되고 지식의 외부성은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동일언어권 내에서 활발히 일어날 것이다. 같은 지식이나 기술이 창조되더라도 그 지역이 영어권이냐 또는 한글권이냐에 따라 확산되는 범위에 큰 차이를 보이며 창조에 대한 인센티브도 달라진다.

테크노 스릴러 소설의 대표주자 격인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은 『쥬라기공원』과 『잃어버린 세계』라는 화제의 소설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크라이튼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은 책 인세뿐 아니라 영화 판권, 캐릭터 판매로까지 연결되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이미 판매 부수가 1억 부를 돌파했다. 만일 『쥬라기공원』과 『해리 포터』가 한국에서 한글로 출간되었다면 지식의 외부성이 그만큼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언어권에 따라 창조의 대가에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한국의 4천만 명이라는 적은 인구는 경제성장에서 비교열위 요인이다.[6]

세 번째, 외교력을 기준으로 보면 주변국가 사이에서 중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다면 역시 소국이다. 한국은 이제껏 동북아시아에서 외교적으로 중심이었던 적이 없다. 근대 이전에는 중국의 변두리 국가였으며 근대 이후에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한때는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기까지 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주변강국 리스트에 미국이 추가되었다. 현재도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이라는 주변 4대 강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위상을 찾을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한국은 소국으로 분류된다. 단순히 한국의 인구가 프랑스나 영국과 비슷하다고 해서 한국이 대국이거나 프랑스나 영국이 소국일 수는 없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외교상 유럽대륙에서 중심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스웨덴이나 핀란드처럼 인구가 적다고 해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소국이 후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스웨덴이나 핀란드도 십 수 년 전에 외환위기에 봉착하여 나라 전체가 중진국으로 전락할 위기를 겨우 넘긴 적이 있다. 물론 인구가 작으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내수시장 규모도 작고 지식의 외부성이 일어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도 있다.

결국 한국은 인구, 내수시장 규모, 지식의 외부확산 가능성, 외교상 주도권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한국은 대국이 아니라 소국이다.

2. 한국의 국가 비전은 작지만 강한 강소국

한국의 현재 위상이 약소국이라면 한국의 미래 국가비전은 강대국이 아니라 당연히 강소국이 되어야 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소국이 하루아침에 대국이 될 수는 없다. 언젠가 남북이 통일되면 비전을 강소국에서 강대국으로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일이 되면 인구에서 대국의 반열에 낄 수 있으며 지식의 확산성이나 내수시장 규모 그리고 외교력이 확대되기 때문이다.[7] 하지만 그것은 미래 이야기고 지금으로서는 강소국이 우리의 비전일 수밖에 없다.

강소국은 태생적으로 시장이 협소하고 자원이 빈곤하다.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무조건 대기업을 흉내 내다가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한국이 태생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무작정 강대국을 흉내 낸다고 미래가 보장될 리 없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은 더 이상 우리의 벤치마크가 아니다. 그들은 경제규모 면에서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 강대국으로 GDP 규모에서 미국은 우리의 21배, 일본은 10배, 독일은 5배나 된다.[8] 이럴진대 세계 최고 최대의 국가인 미국이나 독일에서 성공을 거둔 월스트리트식 또는 라인식 자본주의체제를 여과 없이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인천대학교의 이찬근(2001)은 영미식 자본주의체제가 한국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든다.[9] “무엇보다도 미국은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이 강한 나라이다. 특히 미국은 큰 땅과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미국은 개방체제를 택하더라도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다양한 민족간에 일종의 위계적인 계층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수용될 수도 있다. 또한 미국은 달러화의 패권적 지위와 영어 사용의 본국이라는 이점을 살려 금융서비스업을 글로벌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독특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은 무역적자가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각국의 자본이 미국으로 모여드는 극히 특수한, 그 어떤 나라도 복제할 수 없는, 미국만의 고유한 조건을 향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미국모델이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이 강하다는 사실은 미국모델을 쉽게 추종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함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모델을 무작정 따라가다가 경제사회의 파탄을 겪은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멕시코이다.”

한국은 이제까지의 경로의존성을 바탕에 깔고 우리 독자적인 자본주의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바로 강소국 모델이다. 벤치마킹을 하더라도 인구나 GDP 규모가 비슷한 나라 중에서 우리가 잘만하면 추격할 수 있는 나라가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등이다.

물론 이들 강소국이 우리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소 기준에서 보면 미국이나 독일, 일본보다는 유사점이 더 많다. 대기업 속에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나름대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 생존하는 것처럼 한국도 강소국 모델을 발전시켜나감으로써 강대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제3장. 강소국의 요건

1. 창업가정신이 충만한 나라

1) “한국은 모험가적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

강소국이라는 말이 낯설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미 개발경제 시절에 비슷한 모델을 경험한 바 있다. 충만한 창업가정신으로 무장하고[10] 노동집약산업을 거쳐 장치산업을 니치로 삼아 여러 일류기업을 일구어냈다. 전자,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 같은 산업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여 설비와 장치를 갖추고 효율성을 철저히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개발경제시스템은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한민족 유전인자 속에는 강력한 창업가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1979년에 서울의 동대문시장을 방문한 MIT의 홀로몬 교수는 “한국은 내가 방문해본 나라 중에서 모험가적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라고 언급했다.[11]

페얼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 살고 있는 61개 소수민족 집단 중에서 이스라엘 사람과 한국 사람의 자영업률(self-employment rate)이 가장 높다.[12]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개발경제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정부가 일일이 민간에 개입할 수도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경제개발을 위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할 수도 없다.

국가 차원의 산업합리화정책도 구시대 유물로 전락했고 외부 환경도 바뀌었다. 문을 안에서 닫아걸고 한국 내부에서만 경쟁하던 시절은 벌써 막을 내렸으며 개방화 시대에는 개발경제 방식이 더욱 통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강소국 모델을 창조해내야 한다. 강소국에 대한 벤치마크는 몇 있지만 경로의존성을 무시한 채 그대로 복제할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2) 저위험, 고수익(low-risk, high-return)이라는 속임수

축적론자의 눈에는 기업이란 그들이 직면한 환경에 적응해야 생존할 수 있으므로 근본적으로 경영환경이 기업행위를 결정하며 기업은 수용자일 뿐이다.

하지만 융화론자인 컬럼비아대학교의 넬슨에 따르면, 경제성장에서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생산요소의 일부로서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객체라는 관점보다는 혁신을 이루는 주체이기 때문이다.[13]

융화론자는 동아시아의 기적적인 성장요인 중 첫 번째로 창업가적 의사결정을 꼽는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기업인이 창업가적인 의사결정과 환경변화를 학습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새로운 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경제기적을 일구어냈다는 것이다.[14]

창업가정신의 핵심은 도전이다. 위험을 감수하며(risk-taking) 도전해서 성공하면 도약하고 실패하면 망한다.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도전한다. 이른바 고위험, 고수익(high-risk, high-return)이다. 한국은 개발경제 시절에 위험을 감수했고 다행히 성공했다. 수많은 기업인이 불모지에서 맨주먹으로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고 여러 성공사례를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성공과 실패가 교차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 소위 ‘기적(miracle)’이라고 일컬어질 만한 대성공을 일구어냈다. 하지만 모두 과거지사다. 한국에서 더 이상 위험 감수는 힘들게 되었다.

지난 3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IMF와 월스트리트의 합작으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를 한국 사회 깊숙이 이식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사회 전반에 걸쳐 실패(시장실패, 금융실패, 기업실패, 정부실패 등)가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감독체제를 철저히 정비하면 사회가 안정되고 다시 재도약을 할 수 있다는 논리 아래 한국의 경로의존성과는 전혀 이질적인 영미식 자본주의체제가 한국 사회 깊숙이 접목되었다. 요컨대 위험을 회피(low-risk)하면 고수익이 보장(high-return)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위험(low-risk)을 택한 국가가 고수익(high-return)을 이루어낸 예는 인류 역사상 없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높은 수익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무모하게 위험을 감수한 결과로 한국민 모두가 외환위기라는 고통을 당했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위험감수에 대해 동물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low-risk) 실패 가능성은 낮아지지만 결코 고수익은 올릴 수 없다(low-return)는 사실이다.

이찬근(1999)도 한국민 대다수가 서구적 산업화의 완성을 희구한다면 위험부담이 큰 분야에 기민하게 거대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고유의 특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15]

“자기자금만으로는 상대를 추격할 수 없기에 차입경영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과도한 부채에 대해서는 담보대출, 상호지급보증 그리고 복합경영이라는 기존의 안정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유수 기업에 대한 외자의 경영권 지배를 막기 위해서는 상호지분 보유에 의한 안정주주의 확보가 절실히 요구된다. 족벌지배가 밉다고 한국의 재벌체제가 갖는 고유의 강점을 대안도 없이 포기해서는 안된다.”

요컨대 무사 안전한 경제운영을 하면서 높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 경제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환상 속의 그림일 뿐이다.

3) 한국 특유의 자본주의체제가 필요

현재 한국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낮은 경제성장(low-risk, low-return)에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다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재도약을 시도(high-risk, high-return)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저위험, 저수익(low-risk, low-return)을 채택하고 있는 선진국은 대개 매년 2% 성장하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3%대 이상이면 호황, 1% 대 이하면 불황이라고 한다. 반면에 고위험, 고수익(high-risk, high-return)을 택하는 개발도상국은 잘하면 7~8% 정도 성장할 수 있으며 소득이 2만 달러를 넘는 경우 4~5% 정도는 성장할 수 있다. 200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9,628달러다. 매년 1인당 국민소득이 2~3%씩 성장하면 2010년에는 1만2천 달러 내외, 2020년에는 1만6천 달러 수준의 중진국이 된다. 반면에 2010년까지 매년 7~8% 성장한 후 2020년까지 4~5% 성장하면 2010년에는 소득이 약 2만 달러, 2020년에는 3만1천 달러 내외가 되므로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현재처럼 저위험(low-risk)을 채택할 경우에는 나라 전체가 안정되고 위기에 처할 확률은 낮아지겠지만 선진국 대열에는 영원히 낄 수 없다.

물론 선진국의 화려한 제도나 세계 표준에 혹하고 마음이 쏠릴 수는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방식은 강대국인 미국에서나 작동할 수 있는 예외적인 시스템이지 한국 같은 약소국에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이제껏 외환위기를 당한 대부분의 국가에 IMF와 미국 재무부의 주도로 영미식 자본주의체제가 이식되었지만 성공사례는 찾을 수 없으며 지금도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면 걱정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무작정 흉내 내다가는 망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수십 년간 이어져오던 개발경제방식의 경제사회 시스템이 미래에도 제대로 작동할 리는 없으므로 과거로의 회귀는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의 길을 찾아 우리 독자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 대안 중 하나가 강소국 모델이다.

강소국의 첫 번째 요건은 창업가정신이다. 사회 전 부문에 도전의식이 충만하고 국민 모두가 과감히 위험 감수를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의 대부분 기업과 산업에서 창업가정신이 거의 소멸 직전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굳이 IMD나 WEF가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를 인용하지 않아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우리 스스로 잘못해서 외환위기가 일어났으며 한국은 선천적으로 내부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는 채권자의 논지를 우리가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 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크루그먼이나 알윈 영(Alwyn Young) 그리고 IMF의 영향이 크다.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한다면 이는 창업가정신에 어긋난다. 우리가 위험을 감수했으니 실패 사례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대범하게 넘기고 다시 일어나 도약해야 한다. 재도약을 위해서는 국가 원수부터, 공직자, 기업인,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든 곳에서 소멸되고 있는 창업가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극단적으로 대비하는 감은 들지만 각국의 사회 시스템을 크게 나누면 수비를 강화하는 시스템과 도전을 촉진하는 시스템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미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들어선 선진국은 대개 수비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고도성장을 하는 개발기 또는 성장기에 있는 나라는 도전적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아직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채 미치지 못하는 약소국 상태에 있으므로 중진국 또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설 때까지 당분간은 도전을 촉진하는 사회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외환위기라는 실책을 범한 대가로 우리는 IMF와 대주주 국가로부터 수비적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강요받았다. 그 결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 사회가 성숙사회에나 어울리는 안전 위주의 사회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이른바 조로(早老)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창업가정신의 소멸에서부터 패자부활 기회의 박탈, 자본가를 백안시하는 풍토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도전의식이 급격히 소멸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 주체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전정신을 함양시키는 ‘국가 차원의 혁신 시스템(national innovation system)’을 개발해야 한다.

소국은 태생적으로 여러 가지 핸디캡을 안고 있다. 보유자원이 빈약하고 기술 표준을 장악하기 힘들며 강대국으로부터의 규제에 자유로울 수 없고 언어 장벽이 높은 등 혁신활동을 저해하는 여러 가지 장애요인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를 상쇄하고 도전을 장려할 수 있는 유인정책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4) 패자부활전: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개별기업 단위로 보면 도전하는 과정에서 실패와 성공 사례가 엇갈릴 것이지만 나라 전체적으로 보아서 실패 기업보다 성공 기업이 많으면 전체는 성공으로 평가된다.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도태시켜버린다든지 실패한 창업가를 몰염치범으로 몬다든지 하는 관행도 종식되어야 한다. 값비싼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만일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박탈된다면 창업가정신은 사라질 것이고 국가 전체는 패배의식에 젖게 될 것이다.

경영 구루(guru)인 톰 피터스는 『혼돈 위의 번영』이라는 명저에서 ‘국민총실패율(GNF: Gross National Failure rate)’이라는 재미있는 개념을 제안한다.[16] 국민총실패율이 높을수록 성공할 수 있은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많은 창업가가 기록적인 수준의 고용을 창출했지만 이는 기록적인 실패를 동반하고서 이루어졌다고 톰 피터스는 주장한다. 그는 실패가 중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빠른 혁신을 이루어야 하지만, 혁신이란 한번도 실험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다루는 일이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실행을 통해서만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복잡성을 다룰 수 있으며, 복잡성의 증가에 직면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시도는 항상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 빠르게 실행하려면 보다 많은 실패를 빨리 해보아야 한다. 요컨대 혁신의 속도를 극적으로 가속화시키려면 실패의 속도와 양을 극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상당히 공감 가는 주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이며, 설사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그 과정에서 학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단 실패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고착화되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실패를 숨김으로써 작은 실패가 은폐되고 축적되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패를 범하게 된다. 또는 자료나 성과를 왜곡하여 실패를 성공으로 둔갑시키거나 확대해석 또는 부분해석을 한다. 특히 리더 입장에서는 현상에 대한 허위보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실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5) 공격이 가장 좋은 수비

식상한 이야기지만 공격만큼 좋은 수비는 없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공격보다는 수비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첫째, 공격은 수비보다 힘이 든다. 수비는 현재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도 가능하지만 공격을 하려면 새로운 지식이 추가로 요구된다. 둘째, 공격에는 많은 자원이 소요된다. 군사전략에서도 고지를 점령하려면 공격 측이 수비 측보다 최소한 다섯 배 많은 전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셋째, 공격에는 위험이 따른다. 수비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지만 공격을 하다가 실패하면 책임추궁이 뒤따른다. 넷째, 대개 수비자가 공격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 국가 전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로 수비를 전담하는 분야인 지원부서, 예산부서, 인력부서 등은 공격을 하는 측보다는 우월적인 지위와 힘 또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다섯째, 모처럼 마음먹고 공격을 하고 싶어도 제반 법령이나 규제로 인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체적인 분위기를 수비 위주로 몰고 가는 원인 중 하나는 ‘감점주의’다. 평가방법에는 ‘감점주의’와 ‘가점주의’가 있는데 감점주의에서는 못하면 벌을 주지만 가점주의에서는 잘하면 상을 준다.

창업가정신이 충만해 있는 3M 같은 기업에서는 당초 목표 중에서 실패한 것은 무시해버리고 가장 잘한 것만을 추려서 이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스포츠에서도 과거에는 탁구 선수나 테니스 선수 중에서 수비 전문 선수가 우승을 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는 공격을 위주로 하는 선수가 우승을 휩쓴다.

현재 우리 사회도 감점주의에 젖어 있다. 성공에 대한 칭찬은 박하지만 실패에 대해서는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도전정신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감점주의에서 가점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상관없이 도전하는 자에게 손뼉을 쳐주어야 하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도록 힘을 북돋워주어야 한다. 오히려 도전하지 않고 눈치만 살피면서 남에 대한 비판만 일삼는 자들이 질타의 대상이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무너져 내린 남미와 우리 한국이 다를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한민족 모두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창업가정신이다. 이를 되살려서 성장잠재력으로까지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선진국으로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2. 기동성을 갖춘 나라

1) 한민족은 기동성 있는 민족

벤처기업이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대기업보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먼저 실행함으로써 기회를 선점하는 것이다. 히트앤런(hit & run) 전략을 통해 대기업보다 한발 앞서감으로써 기회 선점의 이점을 누린다. 마찬가지로 강소국도 문제가 생기면 기동성 있게 처리하고 기회가 생기면 재빨리 포착해간다.

네덜란드, 이스라엘, 스웨덴, 핀란드 같은 강소국 모두가 천부적으로 기동성을 지닌 나라이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바다를 통해 세계 지배에 나선 국가이며 이스라엘은 유사 이래 대부분의 세월을 나라 없이 방랑생활을 하면서 강력한 환경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스웨덴은 바이킹의 후예며 핀란드는 몽골계통의 핀족이 만든 나라다. 이들 모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인자를 지니고 있다. 유목민이 가장 중시하는 미덕은 기동성이다.

인류역사상 최고의 강소국은 역시 칭기즈칸 시대의 몽골족이다.[17] 『워싱턴포스트』는 1995년 12월 31일 송년호에서 지난 밀레니엄 동안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칭기즈칸을 뽑았다. 이미 7백년 전에 오늘날의 인터넷에 해당하는 범세계적인 정보통신망을 구축했다는 이유에서다. 전 세계 인구가 3억 명이었던 그 당시 몽골족은 1억 명을 지배했다. 전체 몽골족 숫자는 1백만 명이었으며 병사 수는 20만 명이었다.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던 몽골족의 저력은 기동성에서 나왔다.

상대성이론에서 에너지는 엠시스퀘어(E=MC2)다. 에너지는 질량(M)과 속도(C)의 제곱에 비례한다. 칭기즈칸의 몽골기마군단은 20만 명으로 질량(M)에서는 보잘것없었으므로 그들이 기댈 곳은 오직 기동성을 높여 속도전을 구사하는 것이었다. 병사마다 말을 세 마리씩 지급해서 의식주를 직접 싣고 다님으로써 병참라인을 줄였다. 소의 육포를 말려 가루로 만든 보르츠라는 식량을 소의 방광에 넣어 장기식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18] 몽골 말이 하루에 달릴 수 있는 거리인 1백㎞마다 역을 세워 피지배지역 전체를 거미줄처럼 엮고 의사소통의 속도를 높이는 역전제도도 기동성 향상에 기여했다. 이처럼 그들은 기동성을 바탕으로 유라시아를 제패했다.

2) 되살려야 할 한민족의 유목민 기질

인류학적 구성을 보면 한민족은 유목민인 북방계 몽골리언이 주류다. 북방계 몽골리언이 대략 80% 그리고 남방계 몽골리언이 20%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남방계의 원형은 4만~2만5천 년 전 남아시아, 남태평양 제도 등에 거주했으며 눈이 크고 쌍꺼풀이 발달했고 긴 팔 다리와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졌다.

북방계는 남방계 중 일부가 3만 년 전에 몽골고원, 고비사막, 티베트로 이동했다. 강풍과 추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눈이 작아지고, 습기가 차 얼어붙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체모가 감소했으며 체열손실을 막기 위해 다부지고 뭉툭하게 체형이 바뀌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몽고인, 중국 한족, 한국인 등이 북방계이고 일본, 베트남, 태국, 중국남부인 등이 남방계다.[19]

이처럼 한민족은 주류가 북방계고 일본민족은 남방계다. 북방계는 기동성을 중시하는 유목민이고 남방계는 농업적 근면성을 높이 사는 정주민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농업적 근면성과 완벽함 그리고 품질을 추구하던 일본이 상대적인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속도를 중시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기동성 있는 북방계가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껏 인류의 역사는 정주민 중심으로 기술되었지만 그 뒤안길에는 유목민족의 역사가 숨어 있다. 알 수도 없는 곳에서 홀연히 나타나 고대 서아시아의 제국을 무너뜨린 뒤 갑자기 북방으로 돌아간 스키타이족, ‘신의 채찍’으로 불리며 게르만족을 밀어내면서 ‘영원한 수도’ 로마를 위협했던 훈족, 멀리 북방 바이칼 호 근처에서 일어나 한 세대도 채 지나기 전에 문명사회의 꽃이었던 베이징과 바그다드와 키예프를 함락시켜버린 몽골족.[20] 이들 유목민이 세계 정복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것은 지금부터 불과 3백년 전의 일이다.[21]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일으킨 정주민의 생산성 향상에 밀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유목민족의 혼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한국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20세기 말 인류가 새롭게 창조한 가상공간(cyber space)을 지배하는 자는 정주민이 아니라 유목민일 것이다.

유목민은 극도로 험난한 조건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기에 패배를 모르는 왜소하고 단단한 체격이 초원에 의해 형성되었다. 고원지대의 매서운 바람, 혹심한 추위와 타는 듯한 더위는 주름진 눈매, 높이 솟은 광대뼈, 숱이 없는 머리털로써 그들의 얼굴을 조각했으며 힘줄이 불거진 그들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22]

이러한 북방계 몽골리언의 유전자가 우리의 핏줄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고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모바일 기기,[23] 급속히 확산되는 인터넷전용라인(ADSL), 테헤란로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디지털 열풍, 이 모든 이상 현상은 우리가 유목민족의 후예라는 관점에서 해석 가능하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한(韓)은 칭기즈칸의 ‘칸(khan)’과 같은 의미다.[24] 우리 속에 억제되어 있던 유목민족의 기질에 어떻게 불을 지펴 국가경쟁력 강화로 연결시킬 것인가? 그리고 국가 전체적으로 디지털 시대의 최고 덕목인 기동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역시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다.

우리 한민족은 기동성에 있어 주목 받고 있다. 예컨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2000)라는 책에서,[25] 문화적인 전통인지 아니면 역사적인 배경 때문인지 또는 순전히 유전인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민족의 행동은 대단히 민첩하다고 소개했다.[26]  한국은 이른바 ‘뜨거운 지역(hot zone)’으로서 대단한 성장 엔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만약 인터넷으로 무장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 교포와 연결된다면 소위 ‘사이버 부족(cybertribe)’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그는 예견한다. 사이버 부족이란 스피드와 창의력, 창업가적 재능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모두 겸비한 집단으로 엄청난 부를 창출할 것이라고 프리드먼은 덧붙인다.

3) 경제 주체도 기동성을 발휘해야

국가경영에서 의사결정의 기동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관료주의(bureaucracy) 때문이다.

소니의 도이 토시타다 본부장은 관료주의란 “조직을 진정으로 아끼는 수많은 구성원이 ‘이대로 가다가는 조직이 망한다 망한다’라고 하면서 결국은 집단적으로 망해버리는 병”이라고 정의했다.[27] 구성원이 문제도 알고 위기의식도 있으며 처방도 알고 있지만, 망한다고 목소리만 높이다가 결국은 전체가 망해버린다는 것이다. 관료주의를 뿌리뽑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직학자인 캔토니는, 관료주의를 어디서나 뿌리만 내리면 번창하는 ‘민들레’에 비유한다.[28] 민들레(dandelion)란 말의 어원이 ‘사자의 이빨(dent de lion: tooth of lion)’이듯[29] 관료주의를 제거하는 일은 사자의 이빨을 뽑는 것만큼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인물이 미국의 고어 부통령이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통령이라는 자리를 맡으면서 미국의 장기발전에 초석이 되는 세 가지 일을 해냈다. 하나는 정보 초고속도로를 구축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보호 개념을 확산시킨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정부를 대대적으로 개혁하여 작고 강한 정부를 실현시킨 일이다. 소위 NPR이라고 불리는 정부개혁작업은 가히 감동적이다.[30] 물론 고어의 논리성과 냉정함보다 부시의 어눌함과 인간미에 미국 국민이 손을 들어주었지만 아마 역사는 고어의 세 가지 업적을 기릴 것이다. 아무튼 그는 미국 행정부에서 성공적으로 관료주의를 몰아내고 정부를 재창조했다.

작지만 강한 강소국에서는 정부도 작지만 강해야 한다. 작다는 것은 당연히 규모를 말하는 것일 터이지만 강하다는 것은 힘이 세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본주의(知本主義)에서 정부의 힘은 당연히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지식으로써 국민을 선도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전략을 세우고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사회적 역량을 구축하여 민간 부문이 옳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하고 자본주의 정신을 고취하여 창업가의 혼에 불을 댕겨야 한다.

산업이나 기업 부문에서도 기동성이 중요하다. 특히 기업으로서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정주민의 신중함보다 칭기즈칸 같은 유목민의 기동성이 요구된다. 복잡계 이론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소위 ‘잠금(lock-in)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31]

잠금 현상이란 일단 선발자가 시장에 먼저 진입하여 시장을 선점해버리면 후발자가 이를 뒤엎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론이다. 현실 경제에서 잠금 현상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비디오에서 VHS 방식이 베타 방식을 이긴 사례라든지, 원자력에서 경수로 방식이 중수로 방식을 이긴 사례, 자동차에서 오일 자동차가 수증기 자동차를 이긴 사례 등 수없이 많다. 산업화 시대에는 속도보다 질(質)이 우위를 점했다. 다소 늦더라도 완벽한 품질을 값싸게 만들어내면 고객은 만족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는 속도가 최고의 선(善)이다. 기동성만이 시장과 고객을 보장해준다.

“당신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얼마나 빠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제리 양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32]

4) 신속한 사회적 합의

소국 경제는 내수시장이 좁아 해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민함이 요구된다. 실기(失機)할 경우 경제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지대하므로 스피드와 타이밍이 중시된다. 소국은 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으므로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동자가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협력체제를 가동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의 합의와 의사결정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선진의 강소국은 강력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사회 전체적인 협력 메커니즘을 쉽게 작동시킨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노사 간의 갈등에서도 노사정(勞使政)이라는 세 주체의 합의를 바탕으로 국정 의사결정에서 기동성을 보인다. 강소국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는 여야 정치권을 막론하고 노사 모두가 동참한다. 네덜란드는 ‘바세나 협약(Wassenaar Accord)’이라는 노사정 협약을 이루었다.

네덜란드는 GDP 성장률이 1981~1982년에 연속해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제조업체의 도산이 속출하는 등 이류 국가로 전락할 조짐이 나타나자 경제재건을 위하여 사회통합에 나선다. 당시 루버스(Lubbers) 내각은 과도한 사회보장세 부담과 무리한 임금 인상 그리고 노사 간 갈등으로 인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에 루버스는 사회통합을 위해 발벗고 나선 결과 1982년에 소위 바세나 협약이라는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한다. 바세나 협약의 기본 취지는 기업의 과도한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대가로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불필요한 노사분규를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경영자 단체가 수용한 사항은 노동시간을 5% 단축하고 노동기회를 재분배하여 고용을 창출하되 사회보장세의 골격은 유지하는 것이었다. 노동자 측이 수용한 사항은 고용주의 사회보장세 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노동자의 부담분을 늘리고 임금 물가연동제의 시행을 2년간 유보하는 것이었다.

바세나 협약 이후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1983~1984년에 9% 감소하는 등 임금상승률이 둔화되었지만 기업경쟁력이 빠르게 회복됨으로써 기업의 투자수익률은 1982년의 5%에서 1995년에는 17%로 급상승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경우 인구가 4,613만 명으로 강소국보다 훨씬 많지만 1억 명을 넘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적으므로 사회적 합의도출이 보다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으며 단일민족에 한글이라는 동일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점도 있으므로 하기에 따라서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기민한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간의 갈등, 이해집단 간의 갈등으로 사회전체가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가는 현상은 조속히 극복해야 할 과제다.

3. 강한 의지로 선택과 집중을 실행하는 나라

1) 창업가의 의지

1980년대 일본의 소형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석권하고 엄청난 이익을 내자 미국은 일본의 전략을 벤치마킹한다. 미국 측이 내린 결론은 상품개발 순서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전통적 전략대로 고객의 니즈(needs)를 파악하고 설계를 한 다음 마지막으로 부품의 원가절감에 들어간다. 일본은 이와 달리,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 후 먼저 목표 이익을 정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를 거꾸로 맞추어간다. 요컨대 미국은 합리적인 자원배분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을 택한 데 비해 일본은 먼저 의지(목표이익)를 정한 후에 모든 것을 이에 맞추어가는 역추진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는 소국에 시사하는 바 크다.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봐야 이미 수백 년에 걸쳐 자본과 노동력을 축적해온 선진국을 추격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모험을 걸어야 한다. 먼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원대하게 설정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성장하되 영원히 후진국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는 선진국이 되고자 모험을 걸 것인가에 대해 국가 차원의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만일 선진국의 길을 택했다면 안정 위주의 전략과 시스템은 포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일어날 수 있으나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재도약을 모색해야 한다.

목표는 다소 무모해도 좋다. 개발경제 시절처럼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성해내던 창업가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자본이 모자라면 저축을 조장하고 국내에서 해결이 안되면 국가 원수라도 해외로 나가 자본을 빌려와야 한다. 노동력이 모자라면 여성 인력을 동원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외국인 인력을 들여와야 한다. 기술이 부족하면 국내에서 개발하되 그게 어렵다면 해외에서 빌려오든 사오든 해야 한다. 전 국민이 힘을 합해 자원을 동원하여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2) 선택과 집중을 통한 니치 산업의 육성

경영원칙 중에 중점주의(重點主義, vital few)라는 말이 있다. 그 반대가 망라주의(網羅主義, usual many)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고 하면 실제로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곳을 망라하여 힘을 분산하기보다는 정말 중요한 곳에 전력을 집중시켜 성공하면 나머지 다른 것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논리가 중점주의다. 중점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맥을 짚고 힘을 모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가 철옹성으로 자랑하던 마지노선이 독일군의 공격으로 하루 만에 맥없이 무너졌다. 당시 프랑스는 탱크를 보병 지원용으로 배치했던 데 비해 독일군은 탱크만으로 별도의 기갑부대를 구성하여 힘을 집중시킴으로써 쉽게 마지노선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산업 부문에서 선택과 집중의 결과는 니치 산업으로 귀결된다. 선진국과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는 산업은 가능한 한 피하되 미래 성장전망이 높은 니치 산업을 찾아내야 한다. 일단 대상 산업이 정해지면 세계 시장 제패를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신속히 달성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강소국의 예를 보면 그들은 국가 차원에서 주력산업을 선정하고 국가의 힘을 집중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금융, 유통·물류, 전자, 화학 분야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스웨덴은 정보통신, 자동차, 기계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한다. 스위스는 정밀기계, 금융, 화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핀란드는 정보통신에서 앞서가고 있다.[33]

네덜란드의 경우 국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에 대해서는 개별기업에 직접적인 지원을 한다. 1980년대에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철강회사 후고벤스(Hoogovens)가 구조조정을 할 때 총소요자금 27억 길더 중 정부가 3분의 1이나 지원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전체의 R&D 지출 중에서 46%를 정부가 부담하고 있어 미국의 23%나 영국의 33%를 크게 상회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이 국가 차원에서 니치 산업을 선정하여 전 세계에 공표하는 자체로도 이익이 될 수 있다. 반도체, 철강, 조선 산업에서 보듯이 과거 한국이 힘을 집중한 분야에서는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던 성공사례가 세계 기업인의 뇌리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진 제국이 우리가 선정한 니치 산업에 진출하거나 확장을 할 때 한국의 국가전략을 도외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자유시장주의자나 신자유주의자는 당연히 비판을 할 것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정부가 구시대적으로 산업정책을 세우고 민간에게 강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자유시장은 강대국처럼 내수시장이 충분하고 시장 내부에서 완전경쟁이 작동하는 나라에서나 가능하다. 우리는 국내에서 완전경쟁이 작동할 만큼 시장이 크지 못하다.

1997년 한보 사태를 보자. 만일 월스트리트에서 한보 사태가 터졌다면 부도가 나든 매각이 되든 하루아침에 결론이 나고 다음 날에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시장 규모가 이를 충분히 흡수할 만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좁은 우리 시장에서는 거의 1년에 걸쳐 논쟁이 이어졌고 결국은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작동했으며 지금까지도 미결 상태로 남아있다. 대표적 강대국인 미국에서나 통하는 완전경쟁시장을 좁디좁은 한국에 적용해봐야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역할을 과거의 개발경제 시대로 되돌리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전략도, 방향도 없이 민간의 의사결정과정에 사사건건 개입하던 과거악을 반복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더욱 강해져야 할 기능은 전략수립과 방향 제시 그리고 사회적 역량 강화 또는 인프라 제공이다. 우리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산업을 니치로 삼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격렬한 논쟁을 거쳐 방향을 정한 후에 민간을 설득하고 독려하여 나라의 자원이 그쪽으로 집중될 수 있도록 촉진책을 써야 한다. 그리고 제도와 법률을 정비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다만 조심할 일은 우리와 경쟁상품을 갖고 있는 선진국이 우리를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구조조정의 혼란에 빠져 있을 때는 강 건너 불 보듯 하겠지만 막상 우리가 팔을 걷어붙이고 경쟁력 강화에 매진한다면 그들은 다시 긴장할 것이다.

과거의 “제2의 일본 침공”이라는 신문 헤드라인 대신에, 언젠가 “몰락한 한국의 재반격”이라는 타이틀이 실릴지도 모른다. 경쟁력 강화 과정에 정부의 후방지원이 따를 것이고 이에 대해 WTO에 제소도 할 수 있으며 한동안 접어두었던 슈퍼 301조라는 무소불위의 보검을 다시 꺼내 휘두를 수도 있는 일이다.[34]

요컨대 정부는 기존의 과정 관리자(process-controller)의 역할을 넘어 이제는 지적 자극자(intellectual-stimulator), 원칙 설정자(rule-setter) 그리고 인프라 제공자(infra-provider)로서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4.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끈끈한 협력체제를 구축한 나라

강소국은 ‘매력 있는(attractive)’ 나라이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나라다. IMD가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상위 10개국 중에서 여덟 자리를 강소국이 차지한다.[35]

IMD는 국가경쟁력을 “국가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영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순위를 보면 미국(1위)과 캐나다(9위)를 제외하고는 싱가포르, 핀란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홍콩, 아일랜드, 스웨덴, 스위스 등 강소국이 8개 포함되는데, 이들 나라는 전통적인 강국인 독일(12위), 영국(19위), 프랑스(25위), 일본(26위)보다 우위를 점한다. 한국의 순위는 28위이다. 강소국에서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들 나라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국가 역량을 보유했다는 의미다.

강소국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절묘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서로 적대적인 상충(相衝)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힘을 합하는 상생(相生) 관계를 맺음으로써 시너지를 내고 있다.

1)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反)대기업 정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선(善)이고 대기업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이런 선악의 개념이 성립한다면 중소기업이 성공하여 규모를 키워 대기업이 되면 성공했다는 이유로 선에서 악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또한 기업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공정거래법을 살펴보자. 과거 공정거래정책에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 같은 여러 규제를 통해 중소기업을 보호했지만, 국내 시장이 전면 개방되자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대부분은 외자계 선진기업에 빼앗겨버리고 결국은 국내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 현상만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한국 최대기업보다 매출이 수십 배나 되는 외자계 기업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활동을 하는데 비해 한국 기업은 단지 국적이 한국이고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각종 규제를 받음으로써 손발이 묶인 채 세계 초일류기업과 경쟁을 해야 할 입장이다. 세계화와 개방화 시대에는 공정거래정책의 잣대도 세계화되어야 한다.

혹자는 대만을 사례로 제시하며 중소기업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왜곡된 주장이다. 대만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처럼 대기업 중심체제를 갖추지 못하는 대만 경제의 한계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우리 경제가 대만 경제를 따라갈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경로의존성 때문이다. 일단 대만의 중소기업 중심형 체제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체제라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수 십 년간 내려온 한국 경제의 경로의존성을 무시하고 대만 식으로 사회 시스템을 바꿀 경우 얻을 수 있는 장점보다는 그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대기업을 전부 중소기업으로 만들 수도 없다. 포항제철이나 현대자동차를 중소기업으로 잘게 나눌 수는 없는 일이며 설사 나눈다 해도 존속이 불가능하다.

둘째, 신뢰의 범위 문제다. 후쿠야마는 그의 명저 『신뢰(Trust)』라는 책에서 한국과 대만 사례를 상세히 다루었다.[36] 사회적인 신뢰 기준으로 보면 선진국의 경우에는 신뢰의 연결고리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 있는 반면 후진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대부분 신뢰의 범위가 가족 단위로 국한되어 있으며 한국이나 대만의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유독 한국만은 국가 지도자가 직접 개입하여 신뢰의 범위를 국가 전체로 확산시킨 결과 이례적으로 대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고 불행하게도 대만에서는 가족 단위의 중소기업만 탄생했다는 것이 후쿠야마의 주장이다. 대만의 중소기업은 의지의 결과가 아니지만 한국의 대기업은 ‘의지와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후쿠야마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대만의 중소기업 중심 체제를 따라가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오히려 퇴보에 해당한다.

이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양 기둥이 되어야 한다. 특히 양자가 끈끈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시너지를 내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2) 국내 대기업은 세계 수준에서는 중견기업

일단 세계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대부분의 한국 대기업은 세계 수준에서는 중견기업에 불과하다. 국내 최대 규모이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삼성전자도 시가총액에서 보면 미국 GE의 16분의 1, 시스코의 6분의 1, 지멘스의 3분의 1 수준이니 다른 대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37]

삼성전자가 세계 굴지의 전자업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쟁을 펼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벤처기업의 경영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벤처기업의 성공은 위험 감수를 딛고 나오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기업만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거 몇몇 대기업이 위험 감수의 대가로 도산을 하고 국가경제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다시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도록 대기업을 꽁꽁 묶어 놓고 있다.

강소국의 예를 보자. 대부분의 강소국에서는 핵심 대기업이 국가경제 전체를 견인한다. 내수시장이 협소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고유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가지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가는 소수의 대표기업(global player)이 수출을 주도하면서 사회 전체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쉘 석유회사와 ING 금융그룹, 유니레버나 필립스 같은 기업이 네덜란드 경제를 이끌고 있다. 에릭슨과 볼보가 스웨덴을 견인하고 있으며 노키아는 핀란드의 주력부대다. 크레디트 스위스나 네슬레, UBS와 ABB가 스위스의 대표기업이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즈』 발표에 따르면 글로벌 500대 기업 중에서 네덜란드 기업이 14개, 스위스가 11개, 스웨덴이 7개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기업은 고작 4개만이 500대 기업에 속해 있을 뿐이다.

[표 2]처럼 네덜란드와 스위스에서는 상위 10대 기업의 매출을 합하면 그 나라의 GDP를 초과하며 핀란드와 스웨덴의 경우도 60%를 넘어선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는 10대 기업의 매출이 GDP의 44% 밖에 되지 않는데도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단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경제력 집중’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논지 아래 ‘5대 재벌’ 또는 ‘30대 재벌’로 분류하고 총액출자제한 제도와 같은 갖가지 차별적인 규제를 강제하면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차별 현상까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표 2] 강소국과 한국의 10대 기업 매출 비중(2000년 기준, 단위: 억 달러)

강소국에서는 자유경쟁을 저해하지 않는 한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에 규제를 하는 사례는 어디에도 없으며, 오히려 대기업의 노력과 성과를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네덜란드는 우량 대기업에 국왕이 “로열(Royal)”이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붙여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열-더치 쉘, 로열-더치 페트롤리엄 등이 이러한 영광을 누리고 있다.자료: Hoover’s online.

로열-더치 기업은 해외로 나가 네덜란드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외자를 획득해옴으로써 일단 파이(pie)를 키운 후에 국내에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파이를 적절히 배분해오는 지혜를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경우는 대기업 자체를 백안시(白眼視)하고 해외에서 외화를 가장 많이 벌어오는 우량기업에 대한 약점을 월스트리트까지 날아가 공개함으로써 파이 자체를 줄어들게 하는 우(遇)를 범하고 있다.

이처럼 강소국에서 여론은 대기업에 매우 우호적이다. “일류 기업이 일류 국가를 만든다”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있다.

핀란드는 노키아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하나 나오면서 나라 전체가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일등 국가로 부상하게 된 사례다. 핀란드 국가 전체를 기준으로 노키아의 매출이 24%(정보통신산업의 40~50%), 수출이 20%, 민간 R&D 투자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에 핀란드 정부는 노키아의 경쟁력과 국제적인 역량을 국가 전체의 경쟁력으로 연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핀란드 수상 직속기구인 과학기술정책이사회(VTTN)에 노키아의 COO가 외부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하는 등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에 깊이 간여한다. 그리고 노키아의 경영진은 핀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세계 3대 일류국가를 건설한다는 ‘Finland in 2015’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3) 미들업앤다운형 생태계 구축

물론 우리의 몇몇 중소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재미있는 화젯거리를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두 가지 작은 아이디어로 전 국민을 부양할 만큼 외화를 벌어들일 수는 없다. 그나마 세계 차원에서는 중소기업이지만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대기업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지식과 자원 그리고 해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반이 취약한 국내 중소기업이 세계 시장을 제패하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이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바는 무엇인가? 상생의 정신 아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끈끈하게 협력하는 소위 ‘미들업앤다운(middle-up & down)형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벤처생태계는 대개 톱다운(top-down)형과 보텀업(bottom-up)형으로 나누어진다. 리더십 이론이나 R&D 경영이론에서는 톱다운과 보텀업이 곧잘 대비된다. 리더십 이론에서 톱다운은 위(top)에서 일방적으로 전략을 정하고 밑(bottom)에서 이를 일사불란하게 따라가는 방식이고 그 반대가 보텀업이다. R&D에서 톱다운은 인텔처럼 차기 연구개발 목표를 명확히 하고 전 조직이 힘을 합해 일사불란하게 신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반면 보텀업은 3M처럼 현장의 자발적인 연구개발을 장려하고 다양한 연구개발을 진행하다가 그 중에 히트제품이 나오면 이를 중점적으로 육성해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특성은 벤처생태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보텀업형이란 테헤란로에서 열풍처럼 일어나고 있는 자생적 벤처일 터이고 톱다운형은 대기업에서 스핀아웃되거나 자회사로 독립된 벤처일 것이다.

양자는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다. 창의성이나 기동성 측면에서는 당연히 보텀업형이 우위를 보이겠지만 자원 조달이나 경영의 안정성 측면에서는 톱다운형이 우위를 보인다.

테헤란로의 벤처기업이 훌륭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도 시장 선점이나 이익 창출에 실패하고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경영위기에 봉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기업에서 스핀아웃된 벤처는 아이디어나 기술이 부족하거나 실기(失機)하여 시장을 잃는다. 수익 차원에서 보면 보텀업형 벤처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만큼 도산의 가능성도 높지만 톱다운형 벤처는 상대적으로 큰 수익도, 큰 손실도 내지 않고 고만고만한 경영을 하는 것이 주류다. 그렇다면 양자 간의 장점만을 결합할 수는 없을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새로운 협력체제 유형으로 이른바 미들업앤다운형을 제안한다. 노나카가 제시한 미들업앤다운형 연구개발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이다.[38] 인텔과 같은 톱다운형 R&D에서 볼 수 있는 효율성과 일사불란함, 그리고 3M의 보텀업형 R&D가 가지는 다양성과 자율성이라는 장점을 가미한 방식이 미들업앤다운형 R&D 방식이다. 먼저 톱(top)에서는 연구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개념이나 큰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면 미들(middle)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실험을 통해 연구개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내고 톱이 제시한 방향에 맞는지 검증을 한다. 방향이 맞는다면 현장(bottom)에서 실제로 구체적인 R&D에 착수하는 것이다. 노나카는 일본이 미국을 추월한 경박단소(輕薄短小)형 가전제품이나 소형 자동차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발되었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자원낭비도 줄어들고 시행착오가 없어지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나 자율성은 상당 부분 보장되는 것이다.

이를 벤처 생태계에 대입하면, 미들업앤다운형 생태계란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일단 대학이나 연구소에서는 미래의 기술 발전방향이나 선진국의 기술동향 등을 세밀하게 조사 연구하여 개괄적인 기술개발 방향을 정한다. 그리고 대기업은 이를 벤처기업이나 창업가에게 설명해주고 또한 그들이 원하는 구체적인 기술에 대해서도 소개하며 그 기술의 개략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언질을 준다. 그러면 벤처창업가는 큰 방향 내에서 기술개발 계획을 세우고 사전에 대기업 측과 협상을 통해 대강의 일정과 기술의 시장가치 등을 정한다. 그리고 R&D 과정을 거쳐 실제로 기술이 개발되면 대기업과 공동으로 상품화를 하든지 아니면 대기업이 기술을 매각하든지, 아니면 벤처캐피털이나 엔젤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유치하여 직접 상품화로 연결시킨다. 이러한 선순환 고리가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대기업과 벤처기업은 상충관계가 아니라 상생관계 아래서 보다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며 국가 전체적으로도 자원의 낭비나 시행착오로 인한 손실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미래의 기술 발전방향이나 경쟁상대의 기술개발 동향에 대한 조사는 스탠퍼드대학교 등 역내 여러 대학과 연구소가 담당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기업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벤처창업가에게 설명하고 벤처창업가는 이에 맞추어 사업계획을 수립한 후 기술개발 또는 상품화에 성공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수익에 대해 대기업과 사전에 개괄적인 협의를 한다. 그리고 그 범위 내에서 열심히 기술개발에 몰두하여 신기술을 개발하고 상품화에 성공하면 이를 대기업 측에 매각한다. 최근 추세는 새로 설립되는 벤처기업 중 80% 이상이 애당초 나스닥까지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주식이 상장되면 이미 벤처기업이 아니므로 벤처창업가로서는 대규모 기업을 운영하는 것보다는 매각대금을 종자돈으로 삼아 또 다른 기술개발에 전념하는 것이 오히려 배짱에 맞는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실리콘밸리의 모습도 미들업앤다운형 벤처생태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겠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를 중심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긴밀한 협력의 장(場)을 마련함으로써 정보통신 강국(强國)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대학을 중심으로 연구소와 기업이 밀집하여 형성된 거대한 과학단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자 역할에 맞도록 분업과 산학협동을 함으로써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핀란드는 정보통신, 임업, 금속, 화학 등 8개 산업 클러스터를 선정하고 19개의 과학단지를 구축하고 있다. 예컨대 정보통신 클러스터는 헬싱키, 핀란드 남서부, 울루(Oulu) 지역, 템페레(Tampere) 등 10개 과학단지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스웨덴의 스톡홀름 북서부에 위치한 시스타 사이언스파크(Kista Science Park)는 세계 무선인터넷의 산실로서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 2위의 IT 산업단지다. 여기에는 에릭슨, 노키아, 인텔, 모토로라, 지멘스, HP, 컴팩, IBM 등 700여 개의 기업과 2만 8천 명의 노동력, 3천 3백 명의 학생이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도 미들업앤다운형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벤처기업 또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대학과 연구기관, 그리고 벤처캐피털과 엔젤투자자가 어우러져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우리 특유의 생태계를 형성해가야 할 것이다.


제4장. 강소국의 프랙탈은 경박연개(輕薄連開)

1. 가볍다: 경(輕)

강소국의 프랙탈[39]은 경박연개(輕薄連開)로 요약된다. 가볍고 얇고 연결되고 열린다는 의미다. 그 반대는 중후단폐(重厚斷閉)로 무겁고 두껍고 단절되고 닫힌다는 것이다.

강소국에서는 상품(product)과 자원(resource)은 가볍게, 계층(hierarchy)은 얇게, 과정과 시스템(process and system)은 연결되게, 문화(culture)는 개방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이는 국가운영에서부터 정부, 산업, 기업, 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가볍다는 개념은 상품과 자원에 적용된다. 강소국이 되려면 그 나라가 만들어내는 상품이 무거운 것에서 가벼운 것으로 바뀌어야 하며 여러 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도 가벼워야 한다는 의미다.

먼저 상품에 대해 살펴보자. FRB의 그린스펀 의장은 한 나라의 수출품 무게에서 이른바 ‘대체효과(substitution effect)’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40]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있어서 아이디어와 지식 그리고 정보기술 등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며 기존의 무게를 대체한다는 것이다. 소형화된 마이크로칩 등을 통해 지식과 정보기술이 각 제품에 더 많이 설계되어 들어갈수록 상품은 더 가벼워지고, 생산성은 더 올라가며, 더 비싸게 팔리고,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나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 나라의 강인함과 활력 그리고 총체적인 국력을 재는 잣대로서 ‘GDP의 무게’를 사용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의 단위당 GDP의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다. 듀퐁과 같은 기업은 각 사업본부에 이른바 ‘㎏당 주주가치’라는 측정치를 매년 산출토록 하고 있다. 과거에 생산요소는 주로 무게를 가진 유형자산이었다. 토지는 전형적인 유체물이며 자본도 기계나 설비 또는 공장으로 형상화되는 것이고 노동도 인간이라는 유체물이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부상하는 아이디어나 지식 그리고 정보기술은 모두 지식으로 총칭할 수 있으며 이는 무형자산으로 무게가 없다. 따라서 생산요소 중에서 지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상품의 무게는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산업별로 보면 농업이나 광업 그리고 공업과 같은 전통산업은 유형자산을 만들어내는 데 비하여 서비스업이나 금융업 그리고 소프트 산업이나 디지털 산업은 무게가 없는 무형자산을 만든다.

그러면 한국의 산업이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무게가 나가는 기존의 전통산업을 모두 버려야 하는가? 이제껏 한국 경제를 지탱해오던 철강, 자동차, 조선, 유화, 반도체 산업을 하루아침에 모두 버리고 금융, 소프트, 디지털 산업으로 가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 방향으로 간다는 큰 원칙은 정해놓되 단계를 밟아 점진적으로 가야 한다.

그 방안 중 하나가 ‘0.5차 더하기’다. 1차 산업인 농업은 1.5차 산업으로 가고 2차 산업인 제조업은 2.5차로 가는 것이다. 1차 산업의 산물인 수박을 그냥 팔면 1만 원을 받지만 네 조각을 낸 후 랩으로 포장하여 하나당 4천 원씩에 판다면 1만6천 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중에서 6천 원이 지식을 부가시킨 대가다. 마찬가지로 제조업에도 지식을 부가하면 2.5차가 될 수 있다. 과거 가장 전형적인 제조업체였던 IBM이 그들 스스로 “IBM means service”라고 표방하고 나선 것은 벌써 십 수 년 전의 일이다. 현재 그들은 컴퓨터를 판매하여 얻는 이익보다는 정보통신기술과 관련된 문제해결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이 훨씬 더 크다.

최근 하드(hard) 산업에 소프트(soft)를 부가하는 사례가 급증한다. 예컨대 중장비를 만드는 고마쓰(小松)의 계열기업으로 후쿠시마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빅렌털이라는 회사가 있다. 빅렌털은 총 1천6백 대의 렌털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8백 대에는 엔진의 가동상황 등을 감지하는 센서를 부착하는 등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장착하여 각종 사고발생 여부를 확인한다. 가령 새벽에 엔진이 가동되면 그 정보가 렌털 장비 소유주의 핸드폰으로 연결되는데 만일 장비 소유주가 가동한 것이 아니라면 이는 도난과 같은 이상상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소유주가 원격조정으로 엔진을 끌 수 있다. 그리고 렌털 장비를 ‘집중관리 시스템’으로 연결하여 장비가동률을 높인다. 과거에 렌털 장비는 소유주가 개인적으로 고객관리를 했는데 이를 중앙집중관리함으로써 가동률이 40%에서 78%까지 올라갔다. 이러한 높은 가동률은 요금 인하로 연결되고 다시 수요 확대로 이어지는 등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빅렌털은 2년 만에 후쿠시마 현에서 동종업계 수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는 전형적인 하드 제품인 중장비에 GPS라는 디지털 기술과 중앙집중관리체제라는 지식을 붙임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인 사례다.

IT주택을 보자. 일본의 부동산회사 동양 아렉스는 마쓰시타(전자), 세콤(보안), 가지마(건설) 등과 제휴하여 IT주택을 만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냉장고에서 식품이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주문하고, 휴대용 정보단말기로 목욕물을 데우거나 방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며, 변기가 소변의 당을 검사하여 병원에 송신하는 등 지식과 정보 기능을 갖춘 주택을 만들어 고가로 판매한 것이다. 그리고 설비가 파손되면 가정용 인터넷 서버가 정보를 송신하여 이를 24시간 내에 보수해주며 하우스 클리닝 등 유지관리도 대행해줌으로써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하드에 소프트를 부가하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우리도 모든 산업에 지식을 부가시키는 0.5차 더하기 운동을 벌이자. 다음으로 조직이 보유하는 자원을 가볍게 해야 한다. 예컨대 기업의 경우에는 인적자본이든 물적자본이든 또는 부동산이든 설비나 기계든 가능한 한 적게 가져감으로써 몸집을 줄여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구호는 통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부 조직 역시 자원은 가볍게 가져가야 한다. 공직자의 절대숫자도 작아야 하며 정부가 집행하는 예산 규모도 더욱 작아져야 한다. 이제 정부는 규모나 숫자가 아니라 국가전략을 제시하고 국민을 선도하는 소위 지식창조 능력으로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즉 작지만 강한 정부를 말한다. 규모가 크다는 것은 복잡하다는 의미이고 복잡함은 비효율, 관료주의, 의사소통의 단절 같은 많은 부작용을 가져온다. 구소련이 좋은 예가 된다. 거대하고 중앙집권적이며 전형적인 톱다운 시스템을 가졌던 소련은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했다. 큰 것은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이 느리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유연성과 신속성이 요구되는데 규모가 장해요인으로 작동하는 것이다.[41]

2. 얇다: 박(薄)

계층(hierarchy)이 얇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형식적으로 수직적 계층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과 계층 상하 간의 의사결정이나 의사소통 단계가 줄어드는 것이다.

먼저 형식적인 계층 변화부터 살펴보자. 이미 10여 년 전에 다트머스대학교의 퀸이 『지적 기업』라는 책에서 예견했듯이,[42] 최근에 여러 조직의 형태가 점차 ‘수평적인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 수직조직이 수평조직으로 전환되는 데는 디지털 기술이 기여한 바 크다.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조직이 외부 관계자와 의사소통하는 데 들어가는 이른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두껍고 수직적인 대규모 조직은 와해되고 얇고 수평적인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모한다. 예를 들면 은행에서 고객 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창구에서 텔러가 처리하면 1.07달러가 든다. 이를 우편으로 하면 0.73달러, 전화로 하면 0.54달러, ATM으로 하면 0.27달러가 드는데 인터넷으로 처리하면 0.01달러가 든다. 거래비용이 백 배 이상 절감되는 것이다.[43]

시카고대학교의 코즈의 주장에 따르면,[44] 조직이란 조직 내부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관리비용(bureaucratic cost)과 조직 외부와 거래를 하는 데 소요되는 거래비용이 같아지는 점에서 조직의 규모가 결정된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거래비용이 급격히 줄어들면 그만큼 조직의 규모는 작아지고 모든 것이 외부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극단적으로 거래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지구상에는 국가나 조직의 존재 이유가 없어질 것이지만 이는 가상적인 상황이고, 아무튼 거래비용이 감소하면서 대규모 두꺼운 조직은 허물어지면서 더욱 얇아지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조직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이나 의사소통의 단계가 줄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중간관리 계층을 축소해야 한다. GE의 웰치 회장은 자신이 조직을 바꾸기 위해 가장 먼저 시도한 개혁이 관리 계층을 줄이는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와 가진 인터뷰에서 “관리자 계층은 조직이 갖는 약점을 은닉하여 평범하게 만든다. 따라서 사내에 존재하는 불필요한 부문이나 부서를 폐지함으로써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필터를 제거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UA의 전 CEO인 칼슨(Edward E. Carlson)은 조직의 중간관리 계층을 모래시계의 병목처럼 의사결정의 흐름을 막고 밑에서 올라오는 아이디어를 차단하는 스펀지와 같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중간 계층은 자칫 잘못하면 정보와 업무의 흐름을 단절하고 사실 전달을 왜곡시킬 여지가 크다.

재미있는 사실은 8억 명의 신자를 가진 가톨릭 교회의 계층이 다섯 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긴즈버그는 『인간의 규모를 넘어: 위험에 처한 대기업』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45]  “조직에 대해 글을 쓴 많은 사람들은 가톨릭을 서방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큰 조직으로 언급해왔다. 가톨릭은 1천5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도력과 힘을 지닌 굳건한 위치를 확보하고 유지해왔다. 가톨릭의 주요한 조직적 특성은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조직계층을 피해왔다는 것이다.”

중간계층 축소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의사결정 권한 자체를 아래로 위양하는 것이다. 아예 중간계층을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톰 피터스는 성공적인 권한위양을 위해 세 가지를 권고한다.[46]

첫째, 진정으로 권한을 위양한다.

둘째, 권한을 위양한 후에 자기도 모르게 ‘간섭’하지 않는다.

셋째, 권한위양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공유된 비전에 대한 결의를 진작시키며, 상호 신뢰와 존중을 장려한다. 유의할 점은 권한위양이 무질서나 혼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권한위양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요구된다.

첫째, 권한을 위임 받은 대리인은 스스로 실행하고 보고하되 상사는 매우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

둘째, 상사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명확한 방향(비전)을 가지고 이를 대리인(부하)과 공유해야 한다. 즉 대리인은 상사의 비전을 실행하는 화신이 되어야 한다.

셋째, 상사는 진정으로 대리인을 신뢰해야 한다. 대리인이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상사는 자신의 권한을 위양함으로써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제대로 권한을 위양할 수만 있다면 의사결정의 질과 속도는 급속히 나아진다. 중간계층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의사소통이나 의사결정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들며 현장에서 가까울수록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정보의 왜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요컨대 디지털 시대를 맞은 조직은 과거의 두꺼운 조직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얇고 네트워킹된 조직으로 전환해야 하며 중간계층 축소와 권한위양의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

3. 연결되다: 연(連)

연결된다는 의미를 살펴보자. 내수시장이 넓고 보유자원이 많은 대국(大國)이야 극단적인 경우에는 외부와 협력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소국(小國)은 내수시장도 좁고 보유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강소국이 되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연결(連結)을 통하여 시장을 넓히고 힘이나 자원을 빌리며 외부와 시너지를 만드는 상생(相生)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47]

강소국에서 연결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국가 간의 연결은 외교관계로 나타날 것이고 산업이나 기업 간의 관계는 글로벌 차원의 협력체제로 나타날 것이며 국민 차원에서는 개별적인 네트워크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국가 간의 외교 관계가 꼬일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을 우리는 외환위기 과정에서 생생히 목도할 수 있었다. 1997년에 미국과 자동차 시장 개방에 대해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국 대표가 책상을 치고 나온 해프닝이라든지 독도 문제로 일본에 대해 외교상 사용할 수 없는 극언을 하는 등 난맥상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외채 유동성 부족 상태에 빠지자 미국과 일본에 손을 내밀었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하고 결국은 IMF 체제까지 가게 된 사건은 외교문제에서의 난맥상이 경제문제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다. 물론 외교관계에서 명분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 대가로 실리를 잃게 된다면 양자 간의 저울질에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는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라는 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이므로 이들과의 연결고리를 어떤 식으로 만들 것인지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어떤 니치를 찾아 국가의 존재가치를 높일 것인지 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산업이나 기업 차원에서 외부와의 교류와 연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경제개발 초창기에는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선진기업의 하청생산기지로서 협력관계를 가졌다. 이후에는 선진 기술을 도입하고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여 대단위 공장을 만든 뒤 품질이나 효율 또는 수율 관리로 운영의 탁월성(operational excellency)을 추구하는 장치산업형 대량생산 체제를 통해 주로 생산기술 향상에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후진국이나 개도국의 저인건비 공세에는 도저히 당할 수 없으며 자본집약적 산업에서도 중국의 급속한 추격을 받고 있어 향후 5년 내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제품에서 중국에 추월을 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연구개발 차원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과 겨루기에는 아직 요원하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히 “잘해보자”라는 구호만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연결을 잘 활용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경제를 이른바 ‘연결의 경제(economy of connectivity)라고 한다. 연결의 경제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더욱 성가를 높이고 있으며 언스트앤영의 스탠 데이비스 같은 이들은 현대를 ‘연결된 시대(connected age)’로 표현하기도 한다.[48] 컴퓨터가 광대역(broadband)을 통해 연결되기 시작하자 디지털의 효용은 폭발적으로 향상되었다. 통신분야 칼럼니스트인 조지 길더(George Gilder)는 “광대역의 폭은 1년에 3배씩 넓어지지만 비용은 동일하다”라는 이른바 ‘길더의 법칙(Gilder’s law)’을 내놓았다.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양과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전기(NEC)의 고바야시(小林) 회장이 1977년 인텔컴(INTELCOM) 회의에서 C&C(computer and communication)라는 신용어를 제시하면서 컴퓨터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연결될 것이라고 예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어떻게 컴퓨터가 연결되느냐 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하지만 급기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정보전달 매체가 출현했고 이제는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고서 의사소통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조지 길더가 『텔레코즘』이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거리의 소멸’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49]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에서는 전달되는 지식이나 정보가 소위 수확체증의 법칙을 작동시킴으로써 신경제라는 새로운 현상까지 만들어내면서 인류복지 증진에 큰 기여를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터넷이 만든 가상공간(cyber space)이라는 신대륙은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한히 넓은 공간이며 아직도 많은 땅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현실 세계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국토를 보유하고 있지만 가상공간에서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무한한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4. 연다: 개(開)

연다는 의미는 닫는 수단인 벽과 경계를 허문다는 뜻이다. 소국은 내수 기반이 취약하고 국적자본의 축적이 미약하므로 어차피 수출을 통해 밖에서 돈을 벌어와야 하고 외자를 국내로 유치해야 하므로 문호를 열지 않고서는 강소국이 될 수 없다.

열림에는 양적인 열림과 질적인 열림이 있다.[50]  양적으로 열린다 함은 안과 밖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문을 얼마나 많이 만들고 얼마나 넓게 만들 것이냐 하는 차원이다. 질적인 열림이란 그 열린 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유무형의 자원이 서로 오가느냐 하는 문제다. 진정으로 열기 위해서는 형식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도 열려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열렸다 해도 실질적으로는 닫힌 경우가 있다. 박물관에서 귀중한 보물을 열린 공간에 전시하면서 주위에 도난방지용 레이저 경보기를 설치해두면 실질적으로는 닫힌 공간이 된다. 일본이 미국에 대해 시장개방을 하고서도 교묘한 시장관행이나 유통체제를 통해 실질적인 무역장벽을 쳤던 사례도 이에 해당된다. 그와는 반대로 단세포 생물의 경우에 표면은 세포막으로 되어 있어 형식적으로는 닫혀진 상태지만 삼투압 현상을 통해 외부의 물질이 세포 내부로 유입되므로 실질적으로는 열려 있는 상태다.

열면 무엇이 좋은가? 우선 첫째, 싼값에 상품이나 서비스 그리고 자본을 사용할 수 있다. 무역시장과 자본시장이 개방되면 세계 시장에서 상품이나 서비스 그리고 자본을 구할 수 있으므로 한정된 내수시장에 비해 더욱 다양하고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

둘째, 정보와 지식의 소통이 원활해진다. 인터넷이 그토록 빨리, 왕성하게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인터넷 표준이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인구가 적어 지식의 외부성으로 인한 수확체증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 확산가능성을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한국인이 영어라는 실질적 세계공용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가까운 미래에는 중국어가 영어만큼 중요도가 높아질 것이다.

셋째, 창조력이 배양된다. 창조란 서로 다른 차원의 지식을 상호 결합하는 데서 나온다고 볼 때 열림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 더욱 많이 유입되면 그만큼 창조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버클리대학의 도시문제 전문가인 색서니언은 『지역 우위: 실리콘밸리와 루트128의 문화와 경쟁』이라는 책에서 실리콘밸리가 보스턴 루트 128을 앞서게 된 요인으로 개방성을 지적한다.[51]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술 회사, 벤처캐피털 공동체, 은행 공동체, 대학연구소 공동체 그리고 지방정부 간에는 거의 장벽이 없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지만 보스턴 루트128에서는 기업문화가 비밀이 많고 자족감이 높으며 위험회피 성향이 크다는 것이다.

넷째, 열면 당연히 다양성이 증가한다. 인류가 수백 만년 동안 멸종하지 않고 종족을 유지할 수 있는 비밀도 다양성에 있다. 근친 결혼을 하면 혈우병 같은 유전병이 자주 나타나듯이 다양성이 소멸된 순혈주의의 결과는 종종 멸종으로 귀결된다. 닫힌 시스템 속에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만을 생각해온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은 창조를 할 수 없다. 환경변화가 안정적이던 산업화 시대에는 순혈주의와 충성도만으로도 성장이 가능했지만 디지털 시대에서 이종문화와 잡종문화를 통한 다양성 확보 여부가 생존의 관건이다.

하지만 무조건 연다고 능사는 아니다. 1997년에는 OECD에 가입한다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자본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외환위기라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맞이했다. 그리고 지난 3년 반 동안 한국의 자본시장은 과거에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양적이나 질적인 차원에서 더 이상 개방할 수 없을 만큼 모든 문을 열었다.

IMF와 앵글로색슨 국가는 이처럼 한국이 세계화의 흐름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고 있지만 세계화가 반드시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앵글로색슨 국가는 자기들 입장에 맞도록 세계화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세계화의 장점을 살리려면 모든 국가가 모든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생산요소나 생산결과물이 자유롭게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앵글로색슨 국가는 자기들이 비교우위력을 가진 상품이나 서비스 또는 자본에 관련된 시장은 개방하면서도 비교열위 상태에 있는 노동시장은 개방하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만일 무역시장과 자본시장이 개방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노동시장도 개방되어야 하고 후진국의 노동력이 미국이나 영국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어야 하며 자유롭게 일자리를 가질 수 있어야 양자 간의 형평이 맞는 것이다. 이처럼 앵글로색슨 국가가 세계화의 논리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도록 각색한다면 한국과 같은 약소국은 당연히 자본시장과 무역시장을 개방하면서 방충망을 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 영미식 또는 독일식 자본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고유의 경로의존성에 입각해서 한국의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서 강소국 모델을 제시했다.


제5장. 글을 마치며: 다시 도전하자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안정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이 요구된다.

안정을 택하면 성장을 포기해야 하고, 성장을 택하면 안정을 희생해야 한다.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다가는 두 마리 모두 놓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안정을 추구하고 성장을 포기하면 남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진정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크루그먼의 예견처럼 소련 사례의 재현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한 번 좌절을 맛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선진국 되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단 한번에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아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번 넘어졌으니 다시는 일어서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주문은 애당초 어른 되기를 포기하겠다는 처사다.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제법 이룬 것도 있다고 큰소리 치기는 하지만 세계 전체 자본주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막 걸음마를 시도하는 유아 단계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넘어지는 과정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만약에 외환보유고라는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가볍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인데도 중상을 입고 IMF라는 의사에게 치료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넘어졌다고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아갈 수는 없다. 재활치료도 하고 다리 근육도 튼튼하게 만들어 다시 일어나야 한다. 물론 앞으로도 넘어지겠지만 안전장치만 잘 설치해두면 다시 일어나서 재도약할 것이다.

안정과 성장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언젠가 선진국 되기를 원한다면 성장을 택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전의 활력을 되찾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 한다. 물론 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시도조차 포기하기에는 이제껏 우리가 쌓아온 노력이 너무 아깝다.

천혜의 자원 없이 한국이 언젠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 전체가 강소국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 원수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도전의식과 창업가정신이 충만해야 하고 모든 의사결정이 기동성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니치 산업을 선택해서 자원 투입을 집중시켜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상충관계에서 탈피하고 미들업앤다운형 협력체제를 구축해서 시너지를 내야 한다. 그리고 강소국의 프랙탈은 경박연개(輕薄連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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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ahalad, C.K. and Hamel, G. (1990). “The core competence of the corporation”. Harvard Business Review (v. 68, no. 3), pp. 79–91.

[2] Thiaville, A. (1999. 6). “Small Is Beautiful”. Science (New York) (0036-8075), 284 (5422), p. 1939.

[3] Toffler, Alvin (1990). Power Shift. New York: Bantam Books.

[4] 윤순봉 (2000). 『크루그만 신드롬의 신화: 동아시아 성장한계론의 한계』.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5] Romer, Paul M. (1993). “Idea Gaps and Object Gaps on Economic Development”. Journal of Monetary Economics, 32: 543~573, December; Romer, Paul M. (1996). “Why, Indeed, in America? Theory, History and the Origins of Modern Economic Growth”. NBER Working Paper No. 5442, January.

[6] 베이징어권의 인구가 7억 3천만 명, 영어권이 4억 3천만 명, 스페인어권이 2억 7천만 명, 그리고 힌디어권, 아랍어권, 포르투갈어권, 벵갈어권, 러시아어권이 1억 6~8천만 명, 일본어권과 독일어권이 1억 2천만 명이다. 그러나 영어를 이차 언어로 사용하는 인구가 3억 5천만 명에 달하므로 이를 합치면 영어는 베이징어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쓰이는 언어가 된다. 영어를 가르치는 나라는 100여 개국, 공식어로 지정한 나라는 70여 개국이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00. 1. 24)). 사이버스페이스 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다소 차이가 난다. 2000년 말 인터넷 사용인구 2억 8천만 명 중에서 영어가 1억 8천만 명, 일본어가 2천 7백만 명, 독일어가 1천 9백만 명, 중국어가 1천 6백만 명, 한국어가 1천 5백만 명이다(이티포캐스츠 조사 결과).

[7] 2000년 남북한 인구를 합하면 6,950만 명(남한 4,707만 명, 북한 2,243만 명)으로 세계 16위가 되며 국토면적은 219㎢(남한 99㎢, 북한120 ㎢)로 세계 71위가 된다(유엔통계 기준).

[8] 1999년 각국 GDP는 미국이 83,510억 달러, 일본이 40,789억 달러, 독일이 20,792억 달러, 한국이 3,979억 달러이다(World Bank (2000. 8. 2).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Database).

[9] 이찬근 (2001). 『국경은 없어도 국적은 있다: 세계화와 국민경제의 긴장』. 미출간 원고.

[10] 창업가정신은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을 대개들 기업가정신(起業家精神)으로 번역하지만 起業家를 企業家로 간혹 오인하는 경우가 있어 이 글에서는 “창업가정신”이라고 쓴다.

[11] 김인수 (2000). 『모방에서 혁신으로』. 시그마인사이트컴.

[12] Robert Fairlie와 Bruce Meyer의 연구로, 『포춘』(1994. 10. 3). “Entrepreneurs and Ethnicity” 수록 내용을 김인수(2000)에서 재인용.

[13] Nelson, Richard R., and Edmund Phelps (1966). “Investment in Humans, Technological Diffusion, and Economic Growth”. American Economic Review, 56: 69~75, May.

[14] Nelson, Richard R., and Howard Pack (1997). “The Asian Growth Miracle and Modern Growth Theory”. World Bank, October; Hobday, Michael (1995). Innovation in East Asia: the Challenge to Japan. London: Edward Elgar.

[15] 이찬근 (1999. 8. 27). “한국, 고도성장 포기했나”. 『조선일보』.

[16] Peters, Tom (1987). Thriving on Chaos. New York: Alfred A. Knoph.

[17] 물론 나중에는 강대국(强大國)이 되었다.

[18] 신현덕 (1998). 『징기스칸은 살아 있다』. 도서출판 강.

[19] 카츠시 토쿠나가 (1996). “조직적합성 항원의 유형으로 본 동아시아 민족들의 기원과 확산”.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

[20] 르네 그루세(1998).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김동호, 유원수, 정재훈 역. 역자 서문. 사계절.

[21] 르네 그루세(1998).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김동호, 유원수, 정재훈 역. 사계절.

[22] 위의 책.

[23] 테헤란로나 대학가를 가보라. 과거 삐삐의 보급률은 거의 포화상태까지 갔고 최근 어른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생, 중학생까지 모바일폰을 목걸이로 걸고 다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다. ‘모바일’은 유목민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24] 몽골어로 ‘징기스’는 ‘넓은 바다’라는 뜻이요, ‘칸’은 넓은 바다를 다스리는 ‘대왕’이라는 뜻이다.

[25] Friedman, Thomas L. (2000).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26] 프리드먼은 한국 외에도 민첩성을 보이는 지역으로 이탈리아 북부 지역, 텔아비브, 상하이, 베이루트, 인도 방갈로르 지방을 지목하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은 이미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되었으며 상하이와 방갈로르 지방은 최근에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27] 天外何郞 (1989). 『大企業病とべんちゃーはざまで』. 講談社.

[28] Cantoni, Craig J. (1993). Corporate Dandelion. New York: Amacom.

[29] 잎사귀 모양이 사자 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그러한 모양이다.

[30] NPR은 시작 당시 National Performance Review라고 했으며 어느 정도 정부 재창조가 이루어지자 명칭을 National Partnership for Reinventing Government로 바꾼다. 상세한 내용은 www.npr.gov를 참고하라. 정부 재창조와 관련하여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31] lock-in은 ‘고착(固着) 현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32] Yahoo의 설립자인 제리 양(Jerry Yang)이 2000년 5월 22일 Cisco EBC에서 한 발언이다.

[33] 혹자는 핀란드의 인구가 채 5백만 명밖에 되지 않고 산업도 노키아와 같은 한두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강소국 개념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이나 영국에서 통하는 신자유주의를 한국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물론 핀란드도 강소국 중 하나이지만 이는 극단적인 사례이며 당연히 한국의 벤치마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인구 규모도 어느 정도 되고 주력산업도 다양한 네덜란드나 스위스와 같은 강소국 사례는 한국에 훌륭한 벤치마크가 된다. 핀란드와 같은 예외적인 사례를 거론하면서 세계 최대, 최고의 나라인 미국에나 어울리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한국에 접목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심한 논리비약이다.

[34] 교역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행위로 미국이 무역에 제약을 받을 경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보복할 수 있도록 허용한 미국 통상법을 말한다. 1988년 미국 종합무역법에 의해 신설된 한시적 조항으로, 1974년 제정된 미국 통상법 301~309조까지를 일반 301조(Regular 301)로 부르는 것과 구분해 ‘슈퍼 301조’라고 부른다(연합인포맥스 참고).

[35] IMD (2001). The 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 2001.

[36] Fukuyama, Francis (1996). Trust: the Social Virtues & the Creation of Prosperity. Free Press.

[37] ‘포춘 500대 기업’에 따르면 1998년의 매출은 GE가 1,116억 달러, 지멘스가 753억 달러, 히타치가 719억 달러, 삼성전자가 279억 달러다. 매출 랭킹은 삼성전자가 전자 업종에서 11위를 기록했다. 『Hoover’s On-Line』에 따르면, 시가총액에서는 삼성전자가 282억 달러로 GE(4,608억 달러)의 16분의 1, 시스코(1,705억 달러)의 6분의 1, 지멘스(810억 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기준일: GE 2001년 2월 28일, 지멘스 2000년 말, 삼성전자 2001년 1월 말 한국증권거래소 기준).

[38] Nonaka, Ikujiro and Hirotaka Takeuchi (1995). The Knowledge-Creating Compan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39] 프랙탈(Fractal)이란 ‘자기 유사성의 무한한 반복’을 의미한다(제임스 글릭 (1993). 『카오스-현대과학의 대혁명』. 박배식, 성하운 역. 동문사). 해안선을 지상 100 ㎞에서 본 모습이나 1㎞ 위에서 본 것이나, 그리고 100m 위에서 본 것이나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축소하거나 확대해도 같은 형태가 반복되는 것을 프랙탈이라 한다. 따라서 프랙탈을 잡아내면 전체의 윤곽이 대략 파악되는 것이다.

[40] Friedman, Thomas L. (2000).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41] 윤순봉 (1994). 『대기업병』. 삼성경제연구소.

[42] Quinn, James Brian (1992). Intelligent Enterprise: Knowledge and Service Based Paradigm for Industry. Free Press.

[43] 〈www.bankrate.com〉 (1999. 1. 12).

[44] Coase, Ronald H. (1960). “The Problem of Social Cost”. Journal of Law and Economics, 3: 1~44; Ronald H. Coase는 시카고대학교 법학부 교수다. 1960년에 경제의 제도 구조와 기능에 대해 거래비용과 소유권이 갖는 중요성을 발견하고 해명한 공로로 199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45] Ginzberg, Eli and George Vojta (1985). Beyond Human Scale: The Large Corporation at Risk. Now York: Basic Books

[46] Peters, Tom (1990). “Get Innovative or Get Dead”.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Fall.

[47] 두 개의 객체가 가진 힘이 결합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서로 만나서 충돌하는 경우를 상충(相衝)이라 하고 둘이 별 상관없이 철로처럼 나란히 나아가는 방식이 공생(共生)이며 서로 힘을 합해 시너지를 내고 양자가 win-win 할 수 있다면 상생(相生) 관계다.

[48] Davis, Bob and David Wessel (1998. 9. 24). “Markets under Siege – Limits of Power: How Global Crisis Grew Despite Efforts of a Crack U.S. Team”. Wall Street Journal.; Davis, Bob and David Wessel (1998. 9. 25). “Markets under Siege – Crisis Crusaders: Would-Be Keyneses Vie over How to Fight Globe’s Financial Woes”. Wall Street Journal.

[49] tele는 그리스말로 ‘멀다’는 의미이며 cosm은 ‘세계관’이라는 뜻이다. 조지 길더는 Telecosm이라는 책에서 “먼 거리를 가깝게 연결시켜주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50] 윤순봉, 장승권 (1995). 『열린 시대 열린 경영』. 삼성경제연구소.

[51] Saxenian, Anna Lee (1994). Regional Advantage: Culture and Competition in Silicon Valley and Route 128.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