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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1835, 스코틀랜드 手織工의 아들로 출생
  • 1848,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로 이주, 어려서부터 방적공․기관조수․ 전보배달원 등에 종사
  • 1853,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 근무하는 동안, 침대차회사, 철도기재제조회사, 운송회사, 석유회사 등에 투자하여 거액의 이윤을 획득
  • 1865, 철강 수요증대를 예견하여 독자적으로 철강업을 경영
  • 1872, 베서머제강법에 의한 홈스테드제강소 건설
  • 1870년대부터 석탄․철광석․철도․선박을 아우르는 철강 트러스트를 형성
  • 1892, 카네기철강회사 설립
  • 1901, 모건系의 제강회사와 합병하여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지배하는 US스틸사를 설립
  • 은퇴 후, 교육과 문화사업에 몰두. 카네기 工科大學(이후 멜론 대학과 합병해 카네기멜론대학), 카네기교육진흥재단에 3억 달러 이상을 투자
  • 시대적 배경
  • 미국경제의 고성장기이자 화학, 전기, 내연기관, 철도 등이 중심이 된 2차 산업혁명 시기로 철강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던 시대

성장 과정

어린 시절부터 온갖 험한 일을 하면서 “어떤 일이든 힘껏 하면 그곳에서 인생의 광명이 발견된다”는 시인 바이레스의 금언을 되새김

어렸을 때 토끼와 비둘기를 길렀는데, 친구들에게 토끼가 먹을 풀을 뜯어오면 토끼에게 풀 뜯어온 사람의 이름을 붙여주겠다고 제의하여 큰 호응을 얻어냄. 그는 훗날 이 일을 기억하며 “내가 모든 대상을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재능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회상

면직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절친한 친구 보비가 해고당하자, 그를 복직시켜주지 않으면 자신도 퇴직하겠다고 말하여 결국 같이 해고당함. 보비는 평생 그의 조력자가 됨


주요 업적

美國의 철강왕으로서 20세기 초 미국 경제성장의 핵심 소재인 철강생산을 담당. 화학물질을 이용한 고품질 강철 생산방식을 도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

은퇴 후 교육과 문화사업에 3억 달러 이상을 투자


후대에 미친 영향

자기 노력에 의해 자수성가한 起業家(entrepreneur)로 미국 資本主義의 象徵的 人物이 되었으며, 전형적 미국 경영자상을 창출


리더십 특성

① 資本主義 정신에 투철한 낙관적 起業家

숙련 직조공이었던 아버지가 기계화로 인해 실업자가 된 후 미국으로 이주

아버지가 평생 배운 기술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어린 시절에 목격

슬픔 속에 미국으로 떠나면서 어린 카네기는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스스로 맹세

미국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도 자본주의 생리와 특성을 체득하고 빠르게 적응

1859년 전신회사 株式 10주를 산 후 최초의 배당금을 수령

“나는 봉투를 열었다. 10달러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수표를 내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마에 땀 흘려 일해서 번 돈이 아니라 최초로 자본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었다. ‘유레카!’ 하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것이 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구나!’” 카네기의 回想

자본주의 생리를 깨달은 뒤, 카네기는 確信과 信念에 차 어떠한 주저도 없이 성장과 번영을 향한 그의 목표로 一路邁進

“인생에서 실패할 것이라든가 어떤 야망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든가 이런 의심은 카네기의 마음속에 들어갈 틈이 없었다.”(버튼 헨드릭스, 카네기 전기 작가)

② 能力 있는 부하를 발굴하여 同業者로 승격

그는 능력 있고 성과를 거둔 젊은 직원들을 자신의 동업자로 승격시켜 회사주식을 부여

처음 자신의 형제, 친구, 동료에게만 나누어 주었던 주식을 유능한 직원들에게까지 확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主人意識이 노력과 창의성을 끌어내는 가장 훌륭한 방법임을 인식. “자기 배를 가진 어부와, 품삯을 받는 어부는 일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항상 강조

그는 지속적인 效率改善을 요구하여 근로자들을 노예처럼 다루었다고 비난받기도 했으나 근로자들은 스스로가 노예처럼 일함. 성과를 올릴 경우 카네기로부터 확실한 보상을 받을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

휘하의 인력을 꾸준히 관찰하고 재능을 조기에 감지, 適材適所에 배치

카네기는 자기 공장에 근무하는 인력들 중 재능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독수리눈(eagle eye)’을 가졌다고 자부

“나는 증기기관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훨씬 복잡한 기계인 人間을 알려고 노력했다”

③ 계산된 危險甘受, “한 바구니에 계란을 모두 넣어라”

原價會計를 적용하여, 지멘스 평로(Siemens open heart furnace)[1]의 손익을 측정한 후 도입, 주먹구구식 혁신이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된 혁신 추구

카네기는 미국 최초로 원가회계 시스템을 도입하여 생산단위당 원가를 계산, 지멘스 평로 도입 시 原價節減分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도입 타당성을 확인

평로 초기 설치 시의 막대한 비용 때문에 경쟁사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경제성을 간파한 카네기는 기회를 선점하여 경쟁우위를 확보

카네기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부를 축적한 대담한 사업가였으나, 면밀한 계산과 계획의 뒷받침 없이는 경솔한 행동을 범하지 않음

※그는 “開拓은 수지가 맞지 않다(Pioneering don’t pay)”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는 그가 위험회피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먹구구식의 모험을 경계한 것

포트폴리오 투자보다는 選擇과 集中을 강조, “계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넣어라, 그리고 잘 지켜보라.”

기업가정신과 튼튼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선점하고, 전력투구하는 올인(all-in) 전략을 구사

미국의 鋼鐵王으로 옆길을 보지 않고 초지일관. 金融을 근간으로 광범위한 다각화를 추구한 J.P. 모건과 자신을 비교하여 “그는 자신의 파트너를 사들이지만, 나는 길러낸다.”고 自評


[1]지멘스 평로(Siemens open heart furnace): 獨逸의 칼 윌리엄스 지멘스가 1861년 축열원리(산화가스를 가열에 다시 활용하는 방법)를 적용해 만든 반사로인 평로를 발명. 이후 1864년 프랑스의 피에르 에밀 마르탱이 상업적으로 사용가능한 평로를 개발. 두 발명자의 이름을 딴 지멘스-마르탱 평로법은 1870년대 이후 주요 제강법으로 자리잡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