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국”과 관련해서 언론에 보도된 주요 내용을 정리 수록한다. [pdf 273p]



2005-09-07 [인적자원개발 혁신 추진] 외국에선 어떻게 [서울경제신문]

세계 각국은 미래 전략적 차원에서 인적자원 개발 관련 국가 기능을 강화하고 지식 및 인적자원 분야의 창조 및 활용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체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특히 시장의 불안정성 및 교육훈련에 대한 장기 투자로 인해 민간에서 양성하기 어려운 첨단 과학기술인력 및 고부가가치 전문 서비스인력을 국가에서 직접 육성해 체계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ㆍ영국ㆍ일본 등 선진국들은 지식기반경제 구축을 위해 평생학습, 직업능력 개발 등 인적자원개발체제(HRD) 사업을 국가 핵심전략으로 삼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공계 대학생 연구지원기반 구축, 차세대 혁신주도자 육성 등을 국가혁신전략에 포함시킬 정도다.

브라질ㆍ인도ㆍ러시아ㆍ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도 세계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회 인프라 확충, 교육제도 개선, 성장동력 다변화 등을 꾀하고 있다. 인도는 ‘인디아 비전 2020’에서 고용 및 교육을 가장 중요한 국가사업으로 꼽는다. 중국은 오는 2020년 세계 3위의 경제대국 건설을 목표로 개혁ㆍ개방 확대, 지역간 균형발전, 산업구조 고도화 등을 추진 중이다.

강소국으로 일컬어지는 핀란드ㆍ타이완ㆍ싱가포르 등도 교육과 직업훈련을 통해 비교우위 분야의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핀란드는 지속적인 교육훈련을 통한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 등 13개의 미래전략을 제시하고 있으며 대만은 10대 국가발전전략에 e세대를 위한 인력개발을 중요 과제로 포함시켰다. 싱가포르 역시 미래전략으로 인적자원 혁신을 통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핵심적인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ㆍ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도 지식기반경제의 4대 구성요소로 경제체제, 정치제도, 디지털 정보기술 등과 함께 인적자원 개발을 꼽고 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제의 경우 평균 교육연수 1년이 증가하면 국내총생산(GDP) 1%가 증가한다는 연구보고도 있듯 앞으로 인적자원 개발 없이 국가의 미래란 기대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도 이번 HRD 혁신을 통해 재정투자의 효율성 제고는 물론 국가 성장동력의 핵심인 우수 인적자원의 체계적인 양성 및 활용이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5-08-24 “경제 어렵지만 조금 가면 된다” [서울경제신문]

노무현 대통령은 당면한 경제 어려움에 대해 “경기 문제는 시간의 문제”라며 “국민들이 어렵겠지만 조금 더 가면 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경기 활성화를 하라는 요구가 많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임을 국민들이 용납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처음 취임했을 때 카드, 부동산, 북핵 문제 등으로 미래를 대비하기 어려운 여건이었기에 여유가 없었다”며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해) 위기를 극복했다면 국민들이 조금 섭섭해할지 모르기 때문에 위기를 한 고비 넘겼다는 수준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과 이를 위해 걸림돌이 되는 위기 요인을 해결하는 것”라고 지적하면서 미래의 전략을 유럽의 강소국에 비유해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미래의 전략은 유럽을 보면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 몇 개의 강소국이 크게 성공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특징은 이들 모두 사회적 대타협에 성공했다는 것”이라며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5-06-29 삼성위협고령화·통일비용, 3 극복과제” [이데일리]

우리나라가 2015년까지 앞으로 10년동안 10대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3대 도전과제로 ▲성장하는 중국경제의 위협 ▲고령화 진전에 따른 성장활력 약화 ▲막대한 통일비용 발생 등이 꼽혔다. 또 이 기간 동안 우리에게 주어질 3대 기회로는 ▲중국, 인도 등 아시아국가 부상에 따른 시장확대 ▲아시아 지역 산업재편에 따른 산업거점국가로 변신 ▲IT투자의 생산성 증대 효과 가시화 등이 예상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9일 국회 시사포럼 창립 1주년 기념 `2015년 10대 선진국 진입전략-매력 있는 한국` 정책발표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연구소는 이 같은 기회의 활용여부에 따라 우리나라가 경제성장률 2.6%의 장기불황 국가가 되거나 성장률 6.3%, 1인당 국민소득 3만 5000달러 이상의 선진국 대열합류가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아시아시장, 산업거점, IT투자효과가 마지막 기회

연구소는 우선 도전과제 중 중국의 경우 전세계 자본을 계속 끌어들이면서 높은 성장률과 함께 고부가가치 첨단산업 발전을 가속화, 한국 입지는 갈수록 약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소는 “중화학, 자동차 등 대부분 주력산업에서 수년 내에 우리나라와 대등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면서 “중국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중국시장에서의 경쟁격화로 국내 한계산업 퇴출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고령화 진전으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부족해지면서 성장둔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소는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7%(2000년 기준)에서 20%로 증가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24년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생산가능인구 증가율은 2017년부터는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통일관련 비용도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일이 된다면 이후 10년동안 북한주민 기초생활보장과 북한경제산업화 지원 등에 모두 546조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진단했다. 연구소는 “급작스런 통일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준비자금 적립이 필요하다”며 “남북경협자금 등 북한과의 경제협력, 상호교류를 위한 자금은 앞으로 계속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연구소는 이 같은 도전과제를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동안 주어질 `마지막 기회의 창` 3가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우리 경제에 위협요인이 된 중국이나 인도 등 아시아국가들의 부상을 시장확대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소의 주장이다. 연구소는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부흥에 참여할 기회가 많고 동북아는 성장잠재력이 높은 거대 소비시장”이라며 “중국과 인도는 향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위협요인이자 기회요인이라는 평가를 내린 셈이다.

연구소는 아시아 지역 산업거점의 가교역할이 가능하다는 점도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기 하기 위해 활용해야 할 중요한 기회라고 평가했다. 아시아지역에는 다양한 산업이 혼재해 있어 산업재편으로 거점국가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고 한국은 아시아 각국의 IT산업 격차를 잇는 가교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소는 “우리나라가 IT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첨단 가전제품을 바로 적용해 볼 수 있는 매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글로벌차원의 디지털테스트베드(global digital test-bed)로 발전함으로써 다양한 첨단기술이 활발하게 교류되는 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특히 향후 10년은 IT투자의 생산성 증대효과가 가시화할 수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기회를 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경우 90년대 장기호황은 IT투자를 통한 자본심화나 IT발전에 따른 총요소생산성 증가에 크게 의존한 것으로 연구소는 추정하고, 우리나라도 90년대 후반부터 집중됐던 국내 IT투자에 따른 생산성 증대효과가 가시화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소는 “시장을 중시하는 제도개혁이 이뤄질 경우 IT투자가 생산, 고용, 기업 및 산업구조, 생산성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예상된다”며 “북유럽 강소국들도 IT투자가 일정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인당 GDP증가가 둔화됐다가 일정수준을 넘어서면서 다시 증가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 같은 `마지막 기회의 창` 활용여부에 따라 우리 경제는 ▲퇴보 ▲현상태지속 ▲도약의 세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형 서비스업 육성, 영세중기 등 취약부분 보강해야

시나리오에 따르면 ▲`퇴보`의 경우 생산성 후퇴와 성장률 2.6%, 경제규모 15위, 인당 GDP 45위, 장기불황에 북한 체제 붕괴시 최악상황을 맞게 된다. ▲`현상태 지속`의 경우 생산성 답보, 성장률 4.1%, 경제규모 12위, 인당 GDP 31위, 선진국 진입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도약`의 경우에는 생산성 대폭 개선, 성장률 6.3%, 경제규모 10위, 인당 GDP 26위, 국민소득 3만 5000달러를 달성하면서 선진국에 합류한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도약국가가 되기 위한 5대 전략방향과 12개 정책아젠다도 제시했다.

연구소는 ▲혁신주도형 성장기반구축 ▲인적자원 업그레이드 ▲시장기능강화 3安(안심, 안전, 안락) 확보 ▲개방과 신뢰 등을 5대 전략방향으로 꼽았다.

12개 정책아젠다는 ▲집중형 기술혁신추구 ▲한국형 서비스 산업육성 ▲핵심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혁신 ▲3대 최약부문 연착륙 ▲시장친화형 정부실현 ▲금융 인프라 기능 복원 ▲영구적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등이다.

연구소는 특히 한국형 서비스산업 육성과 관련해서는 ▲비즈니스서비스(제조업 경쟁력 제고) ▲문화 관광(고용창출) ▲의료 서비스(손끝 기술 활용) 등 3대 핵심서비스를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해외파 우수인력 적극 유치 ▲남해안 관광클러스터 개발 ▲동북아관광허브개발 ▲영리법인의 의료기관 설립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통한 의료수요 제고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연착륙을 시도해야 할 3대 취약부문으로는 영세중소기업, 농업, 재래시장 등을 꼽았다.


2005-06-21 [산업 다이제스트]KOTRA22 유럽 클러스터설명회 [파이낸셜뉴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의 발달된 산업 클러스터 시스템 현황을 국내에 소개하고 산업단지공단 등 국내 유관기관과 유럽 클러스터 관리기관의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KOTRA는 22일 서울 염곡동 본사에서 유럽 강소국들의 유망산업 클러스터 운용 방안 및 성공요인을 살펴보고 국내 유관기관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유럽클러스터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이 설명회에는 오스트리아 자동차부품 클러스터 관리업체인 TMG, 스웨덴의 동계자동차테스트 클러스터 운영주체인 SPGA, 네덜란드 첨단기술 클러스터인 레이덴 사이언스 파크 등이 참가한다.


2005-05-18 [기자수첩]실속 있는 中企 대책이 이뤄지길 [머니투데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경쟁력 격차 확대는 국내 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혀왔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부품 소재 산업이 자체적인 기술 혁신 능력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중소기업이 경제정책의 핵심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협력 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했고 17일에는 중소기업인대회에 참석,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16일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앞다퉈 중소기업과의 상생 원칙을 발표했다. 이들이 제시한 내용은 협력사에 대한 부품 및 연구개발, 운영자금 지원방안 등 잘만 실천할 경우 서로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유용한 방안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대기업 실무자 급에서 이러한 실천 원칙들이 원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경영진은 상생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실무자 급에서는 여전히 원가절감이 가장 큰 숙제이며 실적이다.

따라서 실무자들은 여전히 부품 가격을 후려칠 수 밖에 없고 이는 부품 업체들의 기술 개발 능력을 봉쇄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대기업들이 눈앞의 이익을 우선하기보다 장기적인 국익 차원에서 내부 실천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해외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각국의 중소기업 정책은 금융 지원에 집중하기보다 기술 개발 등 질적인 경쟁력 차원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품 연구 개발 능력이 우선돼야 한다. 아일랜드, 핀란드, 스웨덴 등 강소국으로 불리는 각국 정부는 이를 적극 실천하고 있었다. 국책 연구소와 대학 연구소에 연구 자금을 지원하고, 연구소는 개발한 기술을 기업들에게 전수해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었다. 물고기를 직접 잡아 주기보단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노무현 대통령이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지원을 핵심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밝힌 점은 매우 반갑다. 한국 풍토에 맞는 기술 개발 지원을 통해 독자적인 혁신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김경환 기자


2005-04-27 [세계의 대표기업] 정부ㆍ시민ㆍ기업은 하나‘ [머니투데이]

한 나라의 대표 기업을 통해 그 나라 경제·사회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는 시대다. 토요타와 소니는 일본경제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한편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드러낸다.

마이크로소프트와 GE, 월마트는 미국이 왜 세계경제를 지배하는지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독일은 대표기업 BMW를 품에 안고서 신뢰와 품격이라는 브랜드 효과를 누린다. 발렌베리그룹은 스웨덴 경제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정부·사회·대중들과의 ‘연대의식’ 위에 우뚝 서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발렌베리그룹에 대한 스웨덴 국민의 애정과 존경은 ‘한국적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다. 마그누스 블롬스트롬 스톡홀름 경제대학 교수는 “발렌베리는 스웨덴 정부의 친기업정책과 국민들의 애정을 기반으로 5대째 경영권을 유지하며 에릭슨, 사브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키워냈다”며 “스웨덴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더 우대하는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톡홀름 현지에서 만난 기업가와 학자,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업에 대한 대중 정서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뷰를 하다가 `왜 그런 게 질문의 대상이 돼야 하는지’를 의아해 하는 그들이 거꾸로 질문공세를 퍼붓는 바람에 곤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블롬스트롬 교수 역시 ‘반기업 정서’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되풀이 설명을 요구했다. 스톡홀름의 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크리스티나 소더버그(35)씨는 “발렌베리가 시민단체와 대립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개인의 부를 세금과 공익활동으로 사회에 환원하면서 자연스럽게 명예를 쌓고 있는 그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발렌베리가문의 150년 사업력에 왜 질곡이 없었을까. 스웨덴 국민과 정부는 부침 속의 발렌베리를 돕고 응원하며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한 기업으로 끌어올려 그 과실을 당당히 나눠갖고 있다.

국가경쟁력이 세계 최상위권으로 급부상한 아일랜드는 정보기술(IT)과 나노산업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야심 찬 산업 정책을 펼치고 있다. 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A)의 브랜단 할핀 해외 홍보 담당관은 “이미 아일랜드는 세계적인 첨단기술업체들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됐다”며 “이제는 아일랜드인이 경영하는 아일랜드 국적의 기업이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 체제를 갖춰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태생 기업가인 브라이언 멕코이(38)씨도 “현재 아일랜드 벤처기업 경영진의 3분의1이 다국적 기업에서 옮겨온 사람들”이라며 “그들로부터 배운 엔지니어와 경영진이 이제 아일랜드에 기업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제조업 불모국가였던 이곳에 반도체 회사 엑실과 소프트웨어기업 로코코 등 연평균 100%가 넘는 초고속 성장을 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유럽의 강소국들은 철저한 기업우대 정책으로 대표기업을 육성하며 기업을 경제의 기본 축으로 키워나가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대다수 국가에서 대표기업들은 경제성장률을 몇 배나 뛰어넘는 성장속도를 유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로 커지고 있다. ‘토요타’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은 단순히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을 바라보는 자랑스러움’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 어려운 10년 불황의 시기에도 토요타는 일본경제의 활력을, 일본기술의 승리를 상징하는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었다.

토요타가 있는 한 일본 제조업 신화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은 토요타의 지난 2003 회계연도(2003년4월-2004년3월) 매출 17조2947억엔(11.6% 성장)과 순익 1조1620억엔(54.8%성장)이 주는 일본경제 성장엔진으로서의 의미보다 더욱 강렬하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업체 SAP의 지난해 매출은 75억1450만 유로, 전년보다 7% 성장했다. 또 다른 대표기업 BMW의 매출도 6.8% 늘어난 443억3500만 유로를 기록했다. 이들 두 회사가 없었다면 지난해 1.6% 성장한 독일경제는 제로 성장 근처로 후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의 대표기업들이야 말로 세계시장을 압도하는 미국 경제력의 원천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은 ‘시장을 만들어내는’ 기업이다. 이들이 새로운 PC운영체제와 새로운 CPU를 만들어내야 범세계적 연관 산업이 함께 움직인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지난 해 13.5% 성장한 1523억63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호황기를 구가한 지난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4.4%의 3배가 넘는 성장이다. 4년째 미국 매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월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11% 증가한 2881억8900만달러. 특히 지난 회계연도에는 102억7000만달러의 순익을 기록, 유통업체로는 처음으로 ‘100억 달러 클럽’에 들어갔다.

사상 최대 재정적자로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의 올해 적자 예상 증가폭과 비슷한 규모다. 월마트 정도 되는 대표 기업이 몇 개만 더 나오면 그들의 세금만으로 미국의 재정 적자를 상쇄시킬 정도가 된다.

거꾸로 대표기업이 흔들리면서 국가 경제의 진로와 정체성이 함께 흔들리는 사례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필립스의 가전 신화가 무너지면서 네덜란드 경제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엔론의 회계부정으로 인한 몰락이 한동안 미국 경제를 충격에 빠뜨린 데 이어 최근 GM이 그 전철을 밟을 조짐을 보이고 있고 델타항공마저 부도위기에 직면했다. 대표기업의 쇠락은 수십만의 실업자와 생산·소득의 감소로 이어져 국가 경제에 치명타가 된다.

일본 경제계는 요즘 ‘일본 10대 전자업체의 순익을 합해도 삼성전자 하나만 못하다’는 탄식 속에 부단히 전자·전기산업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여론이 소니와 도시바, 마쓰시다에 “이대로 꺾이고 말 것이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인내와 애정의 눈으로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일본의 가전신화가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격려에 다름 아니다.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는 지난해 매출이 2003년에 비해 1% 감소한 292억6700만 유로를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각각 14%, 11%나 줄었다. 지난 2000년까지만 해도 연 평균 5%대 성장률을 자랑했던 핀란드의 GDP성장률은 지난해 3.1%로 뚝 떨어졌다. 노키아의 실적 부진이 핀란드의 경제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묘하게도 노키아의 부진과 핀란드 국민정서의 이반이 교차하고 있는 걸 목격하게 된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샐러리맨 까리 마케라이넨(31세)씨는 “노키아는 최근 10여년간 휴대폰 신화를 만들었지만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현실감각이 무뎌졌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 만난 학생들로부터도 “노키아가 거만해졌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한때 핀란드 경제성장의 3분의 1을 끌어가던 대표기업 노키아. 국민들의 애정이 떠나는 것과 노키아 경영 부진의 함수관계를 되돌아보게 된다.

특별취재팀 기자


2005-04-25 [한국식 경영, 세계로 나가다] 팀제가 주목받는가 [내일신문]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20세기 미국 산업자본주의 상징,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로 대표되는 미국 자동차 업계가 요즘 위기를 맞고 있다. 반면 현대자동차와 도요타를 앞세운 아시아 기업들이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19~20세기를 이끌어왔던 서구 기업들의 위기는 아시아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이다. 이 기회를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21세기 글로벌 리더 기업’으로 가는 길이 달려 있다. 도약과 도태의 갈림길에서 지금 당장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지 본지는 ‘한국식 경영, 세계로 나가다’라는 주제 아래 길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근대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1776년 ‘국부론’을 출간했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자유경쟁의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발견했다. 이 시장과 더불어 스미스는 산업혁명을 통해 중상주의적인 귀족과 관료를 대신해 경제를 운용할 새로운 주체로 부르주아가 등장할 것을 예견했다. 바로 이 해부터 시작해서 1900년 사이의 약 120여년 동안 자본주의(Capitalism)와 기술(Technology)은 이 지구를 정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했다. 피터 드러커 식 구분에 의하면 이 시기가 바로 ‘역사의 경계’에 해당하는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 시기이며 인류는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대를 활짝 열게 된다.

아담 스미스와 에드워드 기번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1776년은 우연히도 미국 독립운동이 시작된 해이고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증기기관을 완성했다. 이 시기를 통해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말하는 ‘소외’, 새로운 계급과 계급투쟁이 발생했고 궁극적으로 공산주의가 탄생했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시장경제의 작동원리와 부르주아의 탄생을 예견했다면 바로 그 해 영국의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은 ‘로마제국쇠망사’를 출간, 1200여년의 장대한 역사를 강성한 국가로 존속한 ‘로마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두 사람이 서로 절친한 사이였던 스미스나 기번 모두 ‘옛 세계가 새 세계로 바뀌려는 전환기’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사색했으며 저술활동을 폈다. 이들이 죽고 난 후 영국은 자동차, 철도 등 오늘날 산업자본주의 문명의 토대가 되는 대부분의 발명품들이 창조되는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접어들었다. 스미스가 교환과 분업, 시장의 원리를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한 영국의 미래를 발견했다면 기번은 로마사의 재해석을 통해 인도와 중국까지 식민지로 거느린 대영제국의 미래를 예견한 셈이다.

에드워드 기번은 융성하고 있던 자기의 조국 영국은 과연 로마에서 무엇을 배워야 한다고 보았을까.

현대차에서 발견하는 로마의 원리

미국 중국 인도 터키 등에서 성공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융합과 통합을 통해 성장한 회사다.

현대자동차가 중국인이나 인도인 터키인 등 현지인들과 융합하고 통합을 통해 함께 제품을 만들고 품질을 개선하고 시장을 개척해 제품을 판매하지 못했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인류사에서 융합과 통합이 이룩할 수 있는 효과와 시너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국가가 로마이다. 로마의 역사는 주변 부족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융화시키고 동화시켜 나간 역사다. 다른 민족에게 고대사회에서 절대권력이라 할 수 있는 원로원 의석과 시민권을 제공하며 동화시킨 나라는 라틴족의 로마가 거의 유일무이하다.

고대 그리스 출신의 역사가이고 후대에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영웅전’의 작가이기도 한 플루타르코스(기원전 46~120)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그 역시 로마에 정복당한 그리스 출신으로서 정복자 로마를 관찰하면서 “저 나라가 어떻게 해서 지성의 그리스를 이기고 융성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면서 원인을 찾았다. 그 결과 플루타르코스는 ‘패자까지 포용하여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생활 방식이야말로 로마가 융성한 원인’이라고 단언한다. 플루타르코스의 모국인 그리스에서는 그리스인이 아닌 민족은 바르바로이(야만인)라고 불렀을 뿐 아니라, 같은 그리스인 사이에서도 스파르타 출신이 아테네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반면 로마는 같은 라틴족에 대해서는 출신지를 따지지 않고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적국 출신일 경우에는 일정 기간 로마에 거주하기만 하면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다만 로마는 이기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것은 아니고 확실히 이기고 나서 관용을 베푸는 식이었다고 한다.

현대차도 도요타를 이길 수 있다

로마는 또 중앙의 권력에 속국의 엘리트가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로마법은 그래서 인류사 최초로 ‘종족법’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로마는 이처럼 융합을 통해 동맹국이나 피정복 국가의 주민들로부터 이들의 인적자원과 문화, 앞선 기술 등을 끊임없이 흡수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갈리아인)이나 게르만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이들 민족보다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개방적인 성향이 아닐까”라고 결론짓는다.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광대한 제국도 아니고, 200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 있는 유적도 아니며,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상대를 포용하여 자신에게 동화시켜 버린 로마인의 개방성(생각과 시스템)이 아닐까.

현대차가 자본력과 브랜드에서 GM에 못 미치고 기술력에서 아직 도요타에 못 미치지만 중국과 인도 터키 등에서 이들을 제치며 나아가고 있는 진정한 이유도 이것과 같은 게 아닐까.

로마가 우리 가슴에 와 닿는 이유

7~8년 전 우리나라 독서계에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가 쓴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국난이라고 이야기하는 IMF 환란을 맞아 과거 40~50년간 남북분단 이후 경제개발 시대를 지탱해주었던 패러다임이 무너지면서 ‘생각의 공황’을 겪고 있던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아 읽은 이유는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가 로마사를 통해 찾고자 했던 문제의식이 IMF 환란 이후 정치와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혼란을 겪으며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자 했던 우리 사회의 ‘화두찾기’에 적절한 일침을 주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탄생해 기원후 서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약 1200년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존속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오랫동안 강대국으로 존속한 국가는 아직까지 없다.

지구상 두세 개 이상의 대륙에 걸쳐 강성한 대제국을 건설한 사례는 로마 이후에도 몇 번 있다. 13~14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해 ‘팍스 몽골리카’를 실현한 몽골제국과 오스만투르크 제국, 18~19세기 ‘세계의 공장’이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자신했던 대영제국이 있었지만 1~2세기를 지탱한 정도에 불과하다.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를 구현하고 있지만 21세기를 맞아 아시아와 EU의 도전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언제까지 유지할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새 진로의 모색

로마사가 환란을 겪으며 참담한 심정에 빠져 있던 우리나라 식자층들의 가슴에 더 특별히 다가왔던 이유는 따로 있다. 로마가 강대하고 오랫동안 존속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어떻게 가장 약체인데다 못난 민족이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장대한 역사를 만들어냈느냐가 더 관심을 끌었다. 로마는 약 3000명의 독신자들이자 약체인 라틴족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그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었을까.

근현대사에 걸쳐 우리나라는 항상 ‘약소민족’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강대국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화된 시장경제에서 경제와 금융에서마저 우리나라의 약한 위상을 재확인시켜주었다는 데서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변화와 경쟁의 세기인 21세기를 맞아 우리나라가 약소국으로부터 진정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2000~2001년 학계와 경제계에서 21세기 한국경제의 미래 청사진으로 ‘강소국’론이 등장, 유행했다. 노키아라는 세계적인 기업을 배출해 IT강국을 건설한 핀란드나 노쇠한 대영제국의 그늘에서 쇠락한 아일랜드가 미국으로 이민해 성공한 창업 1세대들의 투자로 다시 경제를 일으킨 사례 등을 벤치마킹하자는 주장이다. 국제적인 비교지표인 국내총생산(GDP) 규모나 무역 및 수출규모 등에서 세계 12, 13위를 다투는 한국경제의 규모는 강소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약소국의 지위에서 벗어나 21세기 경제강국을 지향하자는 방법론 모색 차원이라 여겨진다.

과거의 역사는 시대가 제기하는 과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나침반을 구하고자 하는 오늘을 사는 현세의 인간들에 의해 항상 재해석되곤 한다.

로마사는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의 강대국으로 등장한 영국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연구됐다. 산업혁명으로 유럽의 중심으로 등장하고 있던 시절 영국의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쇠망사’를 통해 “어떻게 하면 멸망하지 않고 강대국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를 집중 탐구했다.

독일의 역사가 몸젠(Mommsen, 1817~1903)의 로마사 연구는 산업혁명의 후발국 독일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로마사가 특별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팍스 아메리카나를 통해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과 새롭게 부상하는 동북아의 강자 중국, 그리고 세계 2위의 경제강국 일본 사이에 끼어 우리나라가 군사 외교 경제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중국과 인도의 급부상 등으로 당장 10년 뒤 한국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런 처지인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로마인 이야기는 가슴에 깊숙이 와 닿는다.

왜냐하면 라틴족의 로마도 가장 약자였으며 분단된 한국 역시 미국 중국 일본에 비해 약자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글로벌 경제에서 특히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업계에서 미국 일본의 자동차 업계에 비해 아직 한국의 자동차 업계는 약자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안찬수 기자


2005-04-23 ‘부정(不正) ‘()- 경영의 출발점이자 [스탁데일리]

삼성경영원칙은 바로 이건희 회장의 윤리경영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윤리경영이야말로 이회장의 확고한 신념이자 경영철학의 출발점이다.

이회장이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은 1989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시작된다. ‘부정은 암이고 그것이 있으면 회사는 반드시 망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특히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도덕성이 결여된 기업에서는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없고 나와도 반갑지 않다”며 도덕불감증 타파를 역설했다. 삼성이 도덕성, 예의범절, 에티켓이라는 ‘삼성헌법’을 만든 것도 도덕불감증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삼성 경영진들이 이 회장에 대해 CEO(Chief Ethics Officer 최고윤리경영자)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회장은 이후 끊임없이 ‘윤리경영’과 ‘정도경영’을 주문한다.

지난날 그의 어록을 들여다보자. 이 회장은 1993년 7월16일 일본 오사카 회의에서 “인류에 도움이 되고 국제사회에서 미움 안 받고 한국 민족을 위해, 한국 국가를 위해서, 한국 재계를 위해서, 내 개인 생명과 내 개인 재산을 바치고 나간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듬해인 94년 1월 3일 신년하례식에서는 “경영진은 수단 방법 안가리고 이기면 된다는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한다. 좋게 싸게 빠르게 만들어서 이익을 내고 배당하고, 남는 자금은 사회환원 및 문화사업을 해야 하는 것이 기업본연의 자세다. 어떠한 경우에도 불법은 절대로 안된다.”며 정도경영을 역설했다.

또 1995년 6월22일 사장단회의에서도 “최고경영자는 눈에 안보이는 책임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인지하기 바란다. 국민과 나라는 이제 대기업을 하나의 장사꾼이나 일개 기업으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회장의 윤리경영철학의 백미로 꼽히는 “비정도(非正道) 1등보다는 정도(正道) 5등이 낫다”는 발언은 2001년 6월말 열린 비(非)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다.

이회장은 당시 삼성증권 직원들의 약정액 경쟁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직원이 불행하고 고객이 불행한 회사가 잘 되겠습니까. 2등, 3등이 문제가 아니라 5등까지 내려가도 좋으니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으세요.”라고 개혁을 주문한다. 바로 삼성증권의 ‘약정경쟁중단’이 발표되는 순간이었다.

2002년 5월 금융계열 사장단회의에서도 윤리경영을 강조하며 카드사의 가두판매 중단을 지시했다. 이회장은 2002년 10월 24일 비전자계열 사장단 회의에서 “각사가 고객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신뢰받고 존경받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앞장서 달라”고 거듭 윤리경영을 강조했다.

그러나 2003년 ‘신경영 2기’를 맞이하면서 이회장의 윤리경영 주문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이회장은 ‘국민소득 2만달러’ ‘강소국모델’ ‘나라 위한 천재키우기’ 등 화두를 던져갔다.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신경영 10년간 강조해 온 데다 그룹 임직원들이 철저히 실천하는 만큼 이에 대해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리경영과 윤리적 기업활동은 ‘삼성인’이라면 기본중의 기본이라는 설명이다.


2005-03-28 [‘선진 한국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스웨덴의 경우 [서울경제신문]

“합리적 토종자본 육성으로 강소국 일궜다.’

강소국의 세계적 모범인 스웨덴이 경제 개방과 토종 경제 보호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 경제에 해법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금융시장 개방에 따른 부작용 여부와 기업지배구조 문제 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이를 합리적 사회통제장치로 풀어가고 있는 스웨덴이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은 지난 83년 금융시장 개방을 시작한 이후 89년 7월부터는 외환규제 및 외국인투자, 외자도입 등에 관한 빗장이 모두 풀린 상태다. 그러나 놀랍게도 개방화된 선진국 스웨덴에도 우리나라의 재벌에 필적하는 대그룹인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이 존재한다.

발렌베리 그룹은 5대째 세습해오며 에릭슨과 사브, SE은행, 스카니아 등 스웨덴의 세계적인 유망 기업들을 끌어안고 있다. 그룹 소속 상장기업만 해도 14개로 이들의 총 주식가액은 현지 증권시장 시가총액의 40%를 넘어설 정도다.

발렌베리 그룹은 이들 각 그룹사를 적은 지분비율만으로도 완벽하게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가 대주주 등 장기보유자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주당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 사민당 아래에서 이처럼 재벌체제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8년 스웨덴의 노동단체와 재계가 계급적 대타협을 이룬 짤츠바덴 협약에서 비롯된다.

사민당 정권은 이를 근거로 발렌베리 가문의 기업지배권을 인정해주는 대신 가문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85%를 세금으로 징수하는 등의 합의를 이뤄냈다. 이에 따라 발렌베리 그룹은 경영을 통한 이익을 세금으로 내 사회에 공헌하고, 고용창출과 기술개발로 국가 경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실천해오고 있다.

스웨덴은 이후에도 발렌베리 그룹을 국익 차원에서 육성하기 위해 거의 특혜라고 불릴 정도의 파격적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스톡홀름 시만 해도 지난 70년대 조성한 IT산업단지 ‘시스타사이언스파크’(이하 시스타)에 에릭슨을 유치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임대만이 가능한 시스타 내 토지의 소유권 일부를 에릭슨에 넘겨줬다.

이 같은 조치는 특혜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후 에릭슨의 협력업체들을 비롯해 경쟁사인 핀란드의 노키아까지도 입주하는 등 총 650여개 IT관련 기업들이 들어서면서 시스타는 북유럽의 실리콘밸리로 성장했다.

스웨덴 정부의 ‘발렌베리 사랑’은 현대 국제금융자본의 끊임없는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차등의결권 제도 등은 반시장적이라는 게 주된 공격 논리다. 세계적인 경제 부국 스웨덴의 경제실험은 아직도 진행중인 셈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민당은 발렌베리 그룹을 국영기업화하는 방안을 구상했던 적도 있지만 글로벌경쟁이 불가피한 업종의 특성을 감안해 토종자본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선택을 했다”며 “다만 이 같은 선택이 가능하려면 우리나라 재벌그룹들이 경영투명성과 변칙 경영권 상속 등의 비도덕적 굴레를 벗어나 사회적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5-03-23 정운찬 총장, “한국 모델은 강소국가강중국가” [스탁데일리]

정운찬 서울대총장이 평소 ‘강소국(强小國)론’을 주창해 온 삼성에서 ‘강소국가-강중국가론’을 강조, 눈길을 끌고 있다. 정총장은 이날 삼성 본관에서 열린 삼성 사장단 회의에 초청연사로 참석,“ 우리는 비록 규모는 세계 1등이 아니더라도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을 알차게 다져서 우리사회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는 강건한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강한 실력을 갖춘 `강소국가(强小國家)’ 또는 `강중국가(强中國家)’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일류국가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강소국론은 바로 삼성 이건희 회장이 2년전부터 정재계를 향해 던져놓은 화두다. 이 회장은 2003년 9월경 전경련의 한 회장단 모임석상에서 ‘강소국가’을 강조했다.

당시 이회장은 “20세기에는 물리력이 강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지만 21세기에는 경제력이 강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면서 “핀란드와 스웨덴 등 강소국을 좋은 예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장 총장은 ‘강소-강중국’의 대표적인 모델로 아일랜드를 꼽았다. 그는 “10~20년 전만 해도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던 척박한 아일랜드가 국민소득 3만달러의 강소국이 된 비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실용적인 사고방식, 또 일관된 정책’이라고 분석한다”고 덧붙였다.

장총장은 “실용적인 사고방식, 정권은 바뀌어도 한결같은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힘은 훌륭한 인적자원에서 나온다”며 대학구조조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2005-03-23 정운찬 총장 한국 아일랜드 모델로 가야” [머니투데이]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삼성그룹 사장단 앞에서 경제, 사회, 교육 분야를 통틀어 한국의 현 주소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정 총장은 23일 삼성 본관에서 열린 삼성 사장단 회의에 초청연사로 참석해 강연한 자리에서다. 강연에 앞서 배포한 자료를 통해 정 총장은 “우리나라는 선진국 진입을 코앞에 두고 휘청거리며 적신호를 보이고 있다”며 “경제성장은 일부 대기업의 힘에 의존할 뿐이며, 중산층은 붕괴해가고 서민들은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총장은 “다른 나라가 100년 이상 걸린 산업화를 겨우 40년여만에 달성하는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평가도 받았고 일본 소니사가 자존심을 접고 ‘삼성을 배우자’고 할 만큼 산업기술력을 인정받았다”고 평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렸으며 영화 등 문화예술계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정 총장은 현재 우리사회가 중요한 고비에서 분명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명문대생이 카드빚 때문에 강도로 돌변하고 실업문제 등으로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매일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초등학생까지 폭력서클에 가입하고 가족끼리 살해청부를 한 엽기적 사건이 일어나고,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사람이 늘면서 세계 1위의 저출산국이 됐다”고 최근 문제점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정치적, 제도적 민주화는 이뤘지만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능력은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져 일어난 것”이라며 “무리한 수술과 극약처방보다는 기초 체력부터 탄탄히 다져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총장은 “우리는 세계 1등이 아니더라도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알차게 다져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강건한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강한 실력을 갖춘 강소국가(强小國家) 또는 강중국가(强中國家)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류국가의 모습”이라고 제시했다.

대표적인 강소국으로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한 아일랜드를 꼽았다.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던 척박한 아일랜드가 국민소득 3만달러의 강소국이 된 비결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바로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실용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된 정책’이 오늘의 아일랜드를 일구었는데 이 같은 힘은 무엇보다 훌륭한 인적자원에서 나온다”고 정 총장은 파악했다.

정 총장은 “우리가 한 걸음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정체와 퇴보의 늪에 빠져들 것인가 하는 전환기의 기로에서 교육의 문제에 더 큰 관심과 고민을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대학은 규모의 경제가 대학에도 적용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양적 팽창에 집착하다 보니 `너무 커서 좋은 제품이 나오기 힘든 산업’이 돼 버렸지만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지 못한 채 구조조정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며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대학 구조조정의 기본 원칙은 학생들에게 훌륭한 교육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대학만이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인구가 2억8000만명인 미국의 최상위권 10개 사립대가 1년에 배출하는 학생이 1만명 남짓인데 4700만명인 한국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신입생 수는 해마다 1만5000명에 육박한다”며 “등록금을 마냥 올릴 수도 없는 현실에서는 대학 규모를 축소하는 데서부터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입학정원을 3800여명에서 3200명선으로 17% 줄인데 이어 가능하면 정원을 더 줄여갈 것이라고 정 총장은 밝혔다.

또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교육의 질적 강화를 위해 올해부터 1700명의 대학원생들에게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장학금 전액과 최소 생활비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 총장은 대학교육의 주요 과제로 △대학규모 축소와 대학별 특성화 △기초교육 강화를 통한 전문교육의 내실화 △첨단분야와 기초학문의 균형 육성 등을 제시했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2005-03-17 <여적> 강소국 [경향신문]

‘빈사의 사자상’만큼 스위스의 어제와 오늘을 상징하는 것도 드물다. 프랑스혁명 때 죽어간 스위스 용병들을 기린 것이다. 남의 싸움에 용병으로 나가 피흘리지 않고는 먹고살 길이 없었던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스위스의 부는 중립에서 나온다. 유럽의 정치지형에 따라 전쟁을 수용하는 중립에서 전쟁을 거부하는 중립으로 옮겼을 뿐이다. 그 경계에 이 사자상이 자리한다.

‘작은 부자 나라’ 스위스를 남들이 배우려 해도 잘 안 되는 건 빈사의 사자상이 없기 때문일 터이다. 삼성그룹은 2000년부터 강소국(强小國)이란 신조어를 유행시켰다. 인구와 국민소득에 따라 대중소, 강중약의 9개 범주로 나누어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잡아보자는 취지다.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 등이 강소국 모델로 꼽혔다. 이들은 교육과 사회보장 수준은 높은 반면 노사분규는 적고 특정가문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은 높다. 거대 민간기업으로서는 매력적인 의제설정을 한 셈이다. 하지만 강소국 배우기가 우리 몸에 맞지 않기는 강대국 뒤쫓기와 다를 바 없다.

약소국의 설움이 뼛속에 각인된 우리에게 선진국은 베껴서라도 뒤쫓아 올라야 할 사다리 위의 ‘무엇’이었다. 걷어차기를 당하면서도 강대국으로의 사다리를 앞만 보고 올랐다. 그렇게 어느덧 우리는 누군가가 오르려는 ‘한국형 발전모델’이 되었고, 환란도 겪었고,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디지털 한류’를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한국의 힘’을 들여다보아 ‘강중국(强中國) 모델’을 새로 만들자는 논의는 울림이 약하다. 베끼기에 길들여진 탓이다.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강소국 학습론’을 다시 꺼냈다. 그는 ‘밖으로 열린’ 공부하는 관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재직 중 프랑스어 사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였다. 밖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자신을 살피지 못한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외부로 열린 학습은 종종 오독(誤讀)을 낳는다. 자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오독은 천박한 자화상을 그릴 위험이 다분하다. ‘타산지석’이란 이름으로 ‘오독의 오류’가 반복되지 말았으면 한다.

유병선 논설위원


2005-02-21 [CEO 특강] “경쟁력 있는 기업 대표선수로 키우자” [한국경제신문]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 [능률협회 최고경영자 세미나]

“경영환경의 변화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변화의 양상도 사전에 예측하기 힘들어집니다. 10년전만 해도 규모가 큰 기업들은 무리한 투자만 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경영환경의 변화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하면 아무리 탄탄한 대기업도 하루아침에 몰락해 버립니다. 경영환경이 그만큼 각박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는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규모가 작은 ‘다윗 기업’도 트렌드를 잘 읽고 유연성 있는 경영을 하면 얼마든지 ‘골리앗 기업’을 꺾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능률협회 신년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세계 굴지의 전자업체들 사이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던 삼성이 10년 만에 매출과 영업이익 5배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변화를 빨리 읽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라=최근 경영환경의 변화 중 가장 뚜렷한 것은 ‘IT혁명’이다. IT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신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신상품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들고 다닐 수 있어야(Mobile) 하며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돼야(Ubiquitous)하고 한 번에 나를 수 있는 정보량이 많아야(Broad band)한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세계시장 점유율 2위의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도 이 같은 환경의 변화를 미리 읽고 기획력을 집중한 덕에 탄생한 제품이다.

IT 시장은 아직 기회가 많다. 배터리 디스플레이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PDA 텔레매틱스 등이 대표적인 유망 사업군이다.

반드시 전체 기술을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경쟁업체가 모방하기 어려운 요소 기술만으로도 충분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콘텐츠 사업도 향후 발전 가능성이 큰 사업군이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닌 콘텐츠다. 방송용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보자. 방송용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방송국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독점 콘텐츠였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무선통신사업자 휴대폰사업자는 물론 군소 콘텐츠 사업자도 방송용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소비자가 열광할 수 있는 콘텐츠만 개발하면 군소 콘텐츠 사업자도 방송국를 누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번 개발한 콘텐츠는 방송, 휴대폰, 유·무선 인터넷 등에 모두 활용할 수 있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핀란드형 ‘강소국’으로 한국을 발전시켜야=내수시장이 없고 국토가 좁으며 인구가 적은 한국은 유럽의 강소국형으로 발전해야 경쟁력이 생긴다. 핀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등 유럽의 강소국들은 공통점이 있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나라의 대표선수로 과감히 육성했다. 기업규제를 최소화했고 국민들도 이런 정책을 믿고 따라주고 있다. 이 같은 환경하에서 핀란드는 노키아, 스웨덴은 발렌베리그룹을 대표기업으로 육성, 강소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다.

아일랜드는 국민의 지지 아래 1천2백개가 넘는 외자기업을 유치했고 전체 수출의 75%를 외국기업이 담당할 만큼 충실한 결실을 맺었다.

한국도 유럽 강소국처럼 몇 가지 핵심사업을 고르고 여기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분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정책으로 신규 유망사업을 규제해서는 곤란하다.

전지와 디스플레이 분야는 공급능력 강화를 위해 투자가 더 이뤄져야 하고 홈네트워크와 차세대 자동차 등 아직 수요가 없는 분야는 국가가 국내에서 신규수요가 발생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콘텐츠 소프트웨어 바이오 분야는 인재육성이 경쟁력의 핵심인 만큼 교육 인프라 확충에 주력해야 한다.

정리=송형석 기자


2005-02-04 [오늘과 내일] 自虐 경제관이젠 버려야 [동아일보]

2001년 여름, 때 아닌 강소국(强小國) 바람이 불었다. 핀란드나 아일랜드처럼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그 바람은 그해 6월 필자를 더블린에 실어다 놨다. 아일랜드는 과연 ‘유럽의 기적’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나라였다. 20% 가까운 실업률에 시달리던 유럽 최빈국(最貧國)이 불과 10여 년 만에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1인당 국민소득에서 영국을 앞지르기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외자유치 시스템과 공무원들의 친절은 세계의 ‘교과서’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교통 통신 등 인프라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더구나 외국기업을 빼고 나면 기업다운 기업이라고는 없는 쭉정이 경제였다. 아일랜드 모델은 부산 하나 정도라면 몰라도 4800만 명을 먹여 살리려다가는 금방 힘에 부칠 ‘미니 엔진’이었다. ‘유럽의 기적’도 ‘한강의 기적’ 앞에서는 초라했다.

아일랜드뿐이 아니다. 20세기 후반에 산업화 시동을 건 나라 중 한국만큼 눈부시게 경제를 일으켜 세운 곳은 없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기업들의 성과는 특히 두드러진다. 그런데도 우리 스스로 우리 경제와 기업을 보는 눈은 자학(自虐)에 차 있는 듯하다.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대기업을, 재벌(財閥)이라는 이름 아래 탐욕적이고 전근대적인 이미지 속에 가두어 놓고 있다. 친(親)기업은 친(親)재벌, 곧 양심을 팔고 기득권을 편드는 행위로 매도된다. 한국 대기업의 경영에 대한 수식어는 독단경영, 황제경영, 문어발경영, 빚더미경영 등 부정과 비하 일색이다.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에서 성공사례로 연구하고 있는 한국 대기업 고유의 경영전략과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우리 용어가 단 하나라도 있던가.

자학은 분별없는 외제선호 증상을 수반한다. 정부 여당은 미국식 기업지배구조와 집단소송제를 개혁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떠받든다.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 참모진은 네덜란드 노사모델이 좋다, 아일랜드식 선진사회협약을 추진하겠다, 독일식 강중국(强中國) 발전모델이 필요하다는 등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만국의 모델이여 집합하라’고 외칠 참인가.

물론 이유 없는 자학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이런 증상을 일으키고도 남는 심한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쇼크)였다. 한국형 경제성장과 경영모델에 대한 반성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졸업한 지 이미 3년 반이 지났다. 실패의 교훈은 경제유전자 안에 새겨야겠지만, 자학에서는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작년에 순이익을 100억 달러 이상 낸 순수 제조업체는 세계에서 도요타자동차와 삼성전자 2개뿐이라고 한다. 소니 등 일본 10대 전자·전기업체의 순이익을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의 절반밖에 안 된다. 이런 기업을 만든 것은 미국식 지배구조도, 네덜란드식 노사모델도, 독일식 연구개발도 아니다. 일부 정부부처와 시민단체가 자학해 마지않는 우리 모델이다.

천광암 논설위원


2005-01-31 [선진 한국의길 투명사회협약 만들자]<1>협약은 선택이 [서울경제신문]

지난 1월 3일 서울 안국동의 한 카페에는 고건 전국무총리와 김상근 반부패국민연대 회장을 비롯한 수십명의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이날 이름조차 생소한 ‘투명사회협약’ 체결을 정치권과 경제계, 정부에 전격 제안했다.

이에 가장 먼저 화답한 쪽은 경제계. 1월 5일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은 “시민사회단체가 제안한 투명사회협약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동참의지를 밝혔다. 이어 정치권도 여·야가 앞다퉈 무(無)정쟁의 원년, 상생의 정치를 선언하면서 투명사회협약 제안을 환영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투명사회협약’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노 대통령은 1월 1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투명성 지수는 OECD30개국 중에서 24위에 불과하다”며 “최근 시민사회에서 제안하고 있는 ‘반부패 투명사회협약’은 매우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 왜 투명사회협약인가. 또 물과 기름 같던 정치·경제·시민단체들이 무슨 까닭으로 ‘투명사회협약’ 체결을 합창하는 걸까. 이들은 “우리 사회가 선진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전의 발목을 잡아왔던 부패문제를 극복하고 투명한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한 목소리로 답한다.

◇‘투명’ 없이는 선진사회도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기존의 성장과 발전방식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한국사회 전반이 ‘부패의 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들은 모두 ‘부패극복’을 외치며 시작했지만 거의 예외 없이 정경유착, 친인척 비리 등 거대부패로 정권 말기를 마감했다. 부패는 선진사회 성장의 걸림돌이다.

지난해 10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4.5점으로 조사대상 146개국 중 47위에 그쳐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1위 핀란드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인 데다가 일본,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훨씬 뒤졌다. 특히 부패인식지수 1위 핀란드를 비롯해 덴마크(3위), 스웨덴(6위), 스위스(7위), 노르웨이(8위), 네덜란드(10위) 등 10위권 안에 든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른바 ‘강소국(强小國)’이었다.

최근 들어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정부·여권에서 핀란드 같은 강소국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몇 년 전부터 핀란드를 모델로 한 강소국 패러다임을 강조해왔다. 이처럼 정부와 재계가 강소국을 귀감으로 삼는 이유는 핀란드가 국가경쟁력, 학업경쟁력 등 모든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패문제 해결 없이는 강소국도 선진국도 공염불일 뿐이다.

반부패국민연대 김정수 상임정책위원은 “유럽에서는 사회 갈등과 위기를 협약으로 극복해온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며 “그런 사례를 염두에 두고, 우리 사회의 부패 문제를 정치·경제·사회의 각 주체들이 심각하게 인식하고 부패 방지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협의틀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추진배경을 설명했다.

◇정·재계·시민단체 등, ‘클린사회’ 합작 기대= 투명사회협약은 시민사회의 주도로 정계, 재계, 공공부분, 시민사회 등 각 영역에서 세부과제를 구축하고 공동의 의제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와 조인을 거쳐 실천과 점검, 확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같은 투명사회협약은 정치부문·공공부문·기업부문·시민사회영역 네 분야에 걸쳐 우리 사회 전반에 ‘클린’ 열풍을 몰아올 전망이다.

특히 정치권은 올해 들어 유난히 ‘민생경제 우선’, ‘무정쟁’ 등 상생정치를 경쟁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우선 양당 대표는 서로 싸우지 말고 민생·경제를 생각하는 상생 정치를 하자고 서로에게 제안하고 국민에게 약속함으로써 모처럼 화해 무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부패는 공공부문, 정계, 혹은 재계의 어느 일방만을 감시하거나 혹은 이들 각각의 선언적 약속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 정경유착 등의 거대부패를 극복하고 나아가 이 사회에 만연한 부패친화적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정치, 경제, 공공부문 공동의 협력과 참여가 필수불가결하다.

반부패국민연대 김거성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시민사회는 정부와 기업의 대항세력으로 성장했지만, 이제는 시민사회 내에서도 투명성을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와 기업을 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면·복권은 국민동의가 관건”= 투명사회협약의 최대 관심사는 정치인과 경제인에 대한 사면·복권문제이다. 그러나 ‘투명사회협약’을 발의한 시민단체들은 “말도 꺼내지 말라”는 입장이다. 정치권과 재계도 “사면·복권 문제는 협약과 별개의 문제”라고 못을 박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부패를 딛고 선진사회로 가는 변화의 기폭제라고 할 수 있는 투명사회협약을 논의하자면 ‘과거의 짐’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고 갈 수 밖에 없다. 정치권과 경제계는 사면·복권 문제를 공론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들의 시선 때문에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할 뿐이지, 내심은 조속히 매듭지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투명사회협약을 경제인 사면의 도구로 삼을 생각은 없다”면서도 “다만 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대외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경제인의 사면과 과거의 분식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빨리 풀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투명사회는 신성장동력= 지난달 3일 시민사회단체 대표 146명이 제안한 ‘투명사회협약’도 사회 전반의 반부패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사회 각계 구성원의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협약을 맺어 그동안 불가피하게 양산돼온 부패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투명사회의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김상근 반부패국민연대 회장은 “사회협약은 부패극복과 투명성 제고를 통해 한국사회를 보다 성숙한 단계로 진전시키기 위한 사회 각 분야의 자발적 협약”이라며 “사회협약을 맺고 이를 지속적인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면 반부패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이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문성진·이진우·김창익·전용호 기자


2005-01-07 [특파원칼럼] 아일랜드의 성공 비결 [조선일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2005년에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은 곳은 초강대국 미국도, 유럽의 선진국들도 아닌 유럽 변방의 작은 나라 아일랜드이다.

1980년대만 해도 아일랜드는 ‘살기 좋은 나라’이기는커녕, 그 나라 사람들조차 살 수가 없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던 땅이었다. 하지만 10년 고도성장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대의 강소국(强小國)으로 변신했다. 그 성공 비결을 알아보려고,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최근 북한 외무성 대표단까지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정작 아일랜드를 방문하면, ‘이 나라가 한국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인구가 한국의 10분의 1도 안 되고, 한국과는 달리 산업화 단계를 거치지도 못했다. 그래서 도로 등 사회 인프라는 한국보다 못한 곳도 많다.

IT(정보통신) 선진국이라는데 한국처럼 집집마다 초고속 인터넷과 첨단 휴대전화로 중무장한 것도 아니다. 과거 10년의 성공처럼, 미래 10년의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이런 외형적 모습에 ‘아일랜드의 발전상에는 잘못 알려진 허상이 많다’며 실망하고 돌아가는 한국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아일랜드에서 배워야 할 것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단기 완성’ 같은 속성 성공법은 아닌 것 같다.

아일랜드에 취재 갔을 때 현지 주재원들이 한결같이 칭찬하는 기관이 있었다. 바로 IDA(아일랜드 산업개발청)라는 곳이다. 아일랜드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외국기업 주재원 자녀들의 학교 문제까지 상담해줄 정도로 서비스 정신이 투철했다.

IDA의 해외홍보담당 브랜단 할핀씨는 아일랜드의 숨은 성공 비결과 관련, “우리나라의 목표는 한결같이 일자리! 일자리! 일자리였다.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은 결코 바뀐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산업화가 안 된 바람에 자본도 기술도 없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서 경제를 일으키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외국인 투자에 호혜적인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할핀씨는 “한국은 자국 산업이 많아 외국 자본이나 외국 기업에 거부감도 많겠지만, 아일랜드의 경우 자국 산업기반이 전혀 없다는 약점이 오히려 외국 기업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경제 시대에 작은 나라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실용적 사고방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일랜드가 고도 성장을 이루게 된 산업 전략이 ‘족집게 과외’처럼 우리에게 꼭 들어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두 나라는 경제규모도, 발전단계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을 일구어낸 그들의 지혜는 분명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아일랜드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일관되게 최우선에 놓고,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와 실용적 사고로 전 세계에 흘러다니는 외국 자본을 자기 땅으로 끌어들여 그 목표를 달성했다.

새해에는 나라 경제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어려울 때일수록 오히려 문제 해결은 쉬울 수 있다. 문제의 우선 순위가 명쾌해지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얼마나 절박한지 다 같이 공감하는 것이 첫째요, 우리끼리 문 걸어 잠그고 고민할 게 아니라 좀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글로벌 경제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 그 방법이다.

姜京希 파리 특파원


2004-12-31 [가자! 2005] 인재가 경쟁력이다 [매일경제]

“현재의 인적자원으로는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이 불가능하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맡아온 인적자원의 고도화가 절실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휴먼캐피탈과 성장잠재력’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 투입으로 인한 경제성장률 증가분이 70년대 2.2%포인트에서 90년대 후반에는 0.5%포인트로 현저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의 질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기간이 12.34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인데 비해 교육수준의 증가율은 70~80년대 1.3%에서 90년대 전반 1.1%, 90년대 후반0.6%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정권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90년대 핀란드와 아일랜드, 스웨덴 등 강소국들의 1인당 소득이 크게 증가한 데는 우수한 인적자본이 큰 역할을 했다” 며 “교육제도 개선을 통한 인적자원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 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은 현재의 획일적인 평준화 개념에서 탈피해 사립학교의 자율권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류장선 서강대 총장도 “획일적인 수능시험처럼 정부가 교육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는 군대식 규율 속에서 세계와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며 “우리나라 교육은 타율화에서 자율화로 바뀌어야 한다” 고 말했다.

대학교육에서도 우수한 인력의 이공계 진출과 기업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을 위해 산·학 연계를 확대하는 노력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방대학이 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한 재교육을 담당해 노동의 질을 업그레이드하고 재취업의 기회를 주는 것도 인적자원 활성화를 위한 좋은 방안” 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용 베인&컴퍼니코리아 대표는 “외국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 이직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지만 한국의 직장인들은 아직도 과거 지식으로 10~20년을 버티는 경우가 많다” 며 “개인의 업무역량 강화도 시급한 과제” 라고 말했다.

출산율 하락으로 인한 인구구조의 고령화도 인적자원의 질을 낮추고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김동석 KDI 연구위원은 “현재의 저출산 기조가 유지되고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1.5%를 지속할 경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10년 4.21%에서 2020년 2.91%로 급격히 떨어진다” 며 “피부양 인구의 급증이 저축률 하락을 불러일으켜 성장률을 낮추게 된다” 고 설명했다.

양희승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출산 인센티브제도와 영유아 교육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며 “고령인력을 적극 활용하도록 이들에 대한 직업기회를 확대하고 연금구조도 보험료율 인상이나 연금급여 수준 인하와 같은 대폭적인 개선이 시급하다” 고 주장했다.

<이승훈 기자>


2004-12-30 [2005 신년기획-강소국 정책운용 사례경제기업 위한 정책 국가경쟁력 원천 [파이낸셜뉴스]

북유럽의 강소국(强小國) 핀란드는 ‘경쟁력 있는’ 국가로 정평 나 있다.

핀란드의 경쟁력이 어떤 수준에 있는지는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해마다 발표하는 경쟁력 순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2004년 경쟁력보고서에서 핀란드는 성장경쟁력지수는 1위, 기업경쟁력 지수는 2위였다.

특히 핀란드는 공공제도, 거시경제환경 및 기술혁신 등을 포괄하는 성장력경쟁지수에서 지난 4년동안 내리 3년간 1등을 차지해 각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핀란드는 성장률 등 거시지표 관리가 잘되는 나라이며 부정부패가 없고 기업이나 국민들이 기술혁신에 적극성을 띤 나라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설문조사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마주하고 있지만 한 나라의 경제정책 입안이나 투자결정을 할 때 유용하다는 평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핀란드는 ‘예측이 가능한’ 투명한 사회로 공인 받고 있다고 해도 크게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이는 ‘장기불황’의 늪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는 한국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부동산 시장 정책을 비롯, 정부의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등 정책의 불확실성이 큰 탓에 기업이 의사결정을 신속히 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한국 경제는 고용감소와 개인소득 감소, 가정붕괴가 장기불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지는 오래다.

때문에 한국이 빠진 난국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경기부양, 기업들의 자신감 회복과 투자활성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예측가능성’이 높은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부정부패가 낮은 데다 기업 경영은 법치와 계약관행을 따르는 환경에서 이뤄지고 있고, 인구의 노령화에 대비해 재정흑자 기조도 유지하고 있다고 WEF는 극찬하고 있다. 한마디로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나라가 곧 핀란드인 셈이다.

핀란드가 웅변하듯 ‘예측가능한 국가’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이 탁월한 나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각국은 기업 경영의 전 지구화, 세계 경제의 통합, 운송수단의 혁신, 유연한 노동시장의 추구라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창의성을 더욱 더 많이 요구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국가는 고도성장을 향유하고 있는 반면 이 같은 변화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교육제도의 개선에 자원을 충분하게 할당하지 못하는 국가는 급속하게 뒤처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500만명이 조금 넘는 인구에 교역액은 1000억 달러 수준인 핀란드는 세계 104개국중 최상위 국가에 올라있다. 정책결정의 배경을 알 권리가 헌법에 보장돼 있는 핀란드는 부정부패가 거의 없는 유리알 같은 투명사회다.

여기에 더해 핀란드는 교육개혁, 경제 중심의 정치, 기업 중심의 정부정책, 노사구분 없는 인간중심사회 구현을 추구해 ‘예측가능한 국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다.

핀란드는 청년실업률이 30%를 넘고,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업종 기피현상이 만연한 데다 이념논쟁이 판을 치던 지난 90년대 교육개혁을 단행, 기술 중심 사회로 도약하는 터전을 마련했다. 능력에 따라 졸업생의 30% 정도가 직업고교로 진학하게 하고 나중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었다.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은 국제노동기구(ILO)총회에서 “세계 최고의 국제경쟁력을 갖게 된 비결은 교육에 있다”고 자랑할 정도였다.

경제 중심의 정치를 편 것도 오늘날의 핀란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핀란드 정치인들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전 정권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해 정책의 일관성을 뒷받침하는 포용성을 보였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 수석연구원은 “핀란드는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실익을 정확히 따져 중장기적인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평가했다.

한시가 급한 경제 관련 법안이 있다면 긴급히 의회를 소집, 정부와 기업을 든든히 지원한 게 핀란드 정치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기업 중심의 정부 정책도 주효했다. 일례로 핀란드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세계 유수의 기업들을 한곳에 모아 연구개발(R&D), 부품생산, 완성품제작, 마케팅까지 공동작업을 펼치도록 지원했다. 이를 위해 핀란드 정부는 기업도시가 들어설 지역을 관리하는 비전제시자(Vision Provider, VP)와 VP가 만든 정책을 풀어나갈 시스템 통합자, 회계사, 변호사 등 각종 지원서비스를 맡는 전문요소 공급자가 한 몸이 돼서 움직이도록 했다. 기업이 살아야 국가와 국민이 살 수 있다는 논리에 바탕을 둔 정책이었다.

기업도 노사 상생의 묘안을 찾은 것도 경쟁력의 토대가 됐다. 노사분규가 거의 없다는 게 핀란드 노사관계를 가장 잘 보여준다.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국가별 경제안정지수(ESI)에 따르면 스웨덴 노동자 다음으로 핀란드 노동자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서는 시장 중심의 철저한 노사관리가 효험을 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업주가 나서 노동자들의 복리후생을 걱정하고 정부는 시의적절하고 시장 중심적인 노동정책도 펴면서 거들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기업경영에 대한 투명성을 제고해 주고 노동자들은 설령 기업주가 초과 이익을 냈다 하더라도 당초 노사합의된 선을 넘지 않는 게 오늘날 핀란드의 노사 양측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세계 11대 무역국, 반도체와 자동차 등 세계 일류 상품을 쏟아내고 있는 한국은 아쉽게도 20위권 후반에 머물러 있다. 경쟁국인 싱가포르가 7위, 홍콩이 8위, 그리고 대만이 11위인 데 비하면 턱없이 낮은 점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노동시장 효율성은 아프리카 수준보다도 못한 85위로 쳐졌고 금융시장은 67위로 평가되는 등 비관적인 요소가 적지 않아 동북아의 금융 허브가 되려는 국가의 꿈은 꿈으로 그치는 게 아니냐는 염려도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은 거시경제 관리가 잘돼 4위로 평가됐고 기술혁신을 잘 받아들이는 기술 용이성은 12위여서 미래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 김종일기자


2004-12-06 유럽국가도 영미식 모델 접목 모색 [서울경제]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

노무현 대통령이 6일 프랑스 방문 중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성장 위주의 미국식 이론에 너무 치우쳐 있어 복지를 중시하는 유럽식으로 옮아갈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경제모델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최근 유럽식 모델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 고유의 경제모델이 상당 부분 무너지고 미국식 경제모델이 급속히 도입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승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IMF 관리 체제하에서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건전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미국식이 급속히 도입됐다”며 “이에 따라 부실과 비효율이 많이 제거됐지만 동시에 대외의존 심화, 경기변동폭 확대 등 불안정성이 심화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회적으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고 이해집단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점 역시 미국식 모델의 부작용을 꼽힌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기존의 자유 시장경제에 유럽식 ‘사회적 시장경제’ 이념의 접목이 시도되면서 갈등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우선 유럽식 모델의 우월성과 관련한 논쟁이다. 복지와 분배를 중시하는 유럽식 모델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90년대 이후 미국,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서 유럽 국가들조차 영미식 모델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는 게 요지다. 특히 경직된 노동정책으로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으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기 때문.

유럽 경제의 대표 주자 격인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실업률은 10%를 웃돌아 미국의 4%대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사회복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젠다 2010’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식 모델의 접목을 꾀하고 있는 한 사례다.

유럽식 모델 채택과 관련한 또 하나의 우려는 유럽과 우리나라의 문화적·역사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유럽은 ‘프랑스 혁명’의 예에서 보듯 시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이 성숙돼 있고 사회적 배려와 합의의 문화가 발달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제도가 잘 정비돼 있지 않고 경제의식이 낙후해 유럽식 제도 도입에 상당한 진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간경제 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노사안정과 사회통합을 추구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도입, 운영했으나 노사간 이해와 타협 부족으로 성과가 지지부진하다”며 “생산적 복지 개념을 도입했지만 성장-분배간 논란만 가중시키면서 국력을 낭비하는 등 유럽식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지 적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네덜란드·아일랜드 등 소위 유럽의 강소국들은 인구가 400만~800만명으로 산별교섭이 가능하고 사회안 전망이 잘 확충돼 있어 사회적 합의가 비교적 수월하다”며 “우리는 노사 관계가 지역별 중심으로 노조가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해 이들 국가의 노동정책을 그대로 옮겨오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동안 미국식 성장 위주 정책으로 부작용이 많았던 만큼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목소리가 많다. 문제는 그 속도와 정도다. 유 연구위원은 “그동안 미국식 성장에 치중해오는 과정에서 소득 분배 구조의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어서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실업연금·퇴직연금·평생교육 등을 확대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북구 유럽처럼 세금을 소득의 50~60%씩 부과하는 것에는 반발이 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혜경기자


2004-11-01 <사설>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문화일보]

‘개혁 무지개’ 좇다가 나라가 흔들린 20개월

노무현 정권이 공식출범한 뒤 20개월은 파란·충돌·대립·갈등·분열의 연속이었다. 노 정권 임기 5년의 60개월 중 3분의 1이 지난 오늘 우리 앞에 놓인 노 정권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기불황, 주한미군 감축이 상징하는 한미동맹 재조율과 북핵문제에 따른 안보불안,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의 대혼란 등. 일제강점의 국치와 한국전쟁의 민족적 재앙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폐허였다. 이를 피와 땀으로 극복하며 국가적 골조들을 세우고 발전시켜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치르면서 세계인을 향해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나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우리의 국가적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 경제, 외교, 안보가 근본부터 도전을 받으며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하루 하루 목격하며 살고 있다. 이런 질곡의 늪에서 개인은 개인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 한국인과 한국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오늘 문화일보 창간13주년을 맞아, 이런 국가적 위기가 노 정권 재임 20개월만에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은 노 정권의 분열적·정략적·근시안적인 국가경영에 그 원인과 배경이 있음을 거듭 밝히고자 한다. 현 정권은 마치 무지개를 좇아 뛰어가듯이 깃발을 세우고 질주하면서 국민에게 따라오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탈민족화, 세계화, 정보화의 시대감각을 익힌 국민의 다수는 근·현대사에서 정체불명의 깃발을 따라가다가 개인도, 나라도 파탄이 난 국가들의 역사적 경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항하고 반대하고 있다. 개혁의 깃발에 국민이 안심하고 먹고 살면서 나라를 튼튼히 지킬 수 있는 방책들이 함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권의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따라가다가 자칫 경제·외교·안보가 더 흔들릴 것 같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현정권은 정권과 국민, 지지세력과 반대세력간의 불화와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를 획기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문화일보의 창간기념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 지지도가 24%로 떨어진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정권에 대한 지지세력은 점차 소수화하고 있고, 그러면 그럴수록 정권은 지지세력만을 결집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통계적 입증이다. 국가지도력의 지지기반 유실이 헌정불안을 더 키우고 있다.

노 대통령은 순리와 정도에 따라 국민 대화합 조치를 취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결정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의 여운을 남기지 말고,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화합을 위한 당위적 선택이다. 국보법 폐지, 신문법, 과거사 규명법, 사학법 등 국민을 편가르고 있는 4대 법안도 국회에서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국민이 정부와 함께 경제·안보 회생에 전심전력할 계기가 열릴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마음을 비우고 발상을 새로이 해야 한다. 개혁의 깃발에 탈이념, 탈폐쇄주의의 성격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념갈등과 국론분열을 막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과 정권이 새로운 통합의 깃발 아래 다시 뭉쳐 국가적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反기업정서 차단해야 꿈 이룰 수 있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오늘 창간 13주년을 맞아 우리는 이 명제를 거듭 강조한다. 기업의 의욕이 지금처럼 움츠린 상황에서는 선진사회의 꿈도, 강소국(强小國)의 꿈도 허망하다는 것이 우리의 절박한 인식이다.

정부는 조만간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재정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연기금 등 민간자본을 무려 7조~8조원이나 투입한다. 그런데 이런 야심찬 경기대책이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 4%대를 5%대로 1%포인트 끌어올리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믿어지겠는가. 물론 1%포인트라도 높여보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하지만 주변국들의 성장률 추이와 비교해 본다면 현정부가 얼마나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서 아시아 경쟁국 중 최하위권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2·4분기 성장률이 5.5%인데 비해 싱가포르는 12.5%, 홍콩은 12.1%로 우리보다 2배 이상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 대만 역시 7.7%였다. 이런 추세는 내년에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라는 게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하지만 기업으로 눈을 돌리기만 하면 경제를 살릴 방법은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우리 기업들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현금이 6월말 기준으로 무려 44조원에 이른다. 이 막대한 자본을 투자로 돌릴 수만 있다면 내년도 전망치 3~4%대보다 훨씬 높은 8~9%대까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의 투자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라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부여당 측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 주체는 어차피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가계와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데 정부 혼자 나서봐야 자칫 일본정부의 ‘잃어버린 10년’을 되풀이할 뿐이다. 가장 먼저 기업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환경의 조성을 바라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치가 권력욕구에 의해 움직이듯 기업은 이윤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법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기업의 이윤동기를 자극하는데 집중돼야 한다. 투자수익에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갖가지 정부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고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하게 확산되고 있는 반(反)기업정서를 차단해야 한다. 또한 경제전문가의 70% 가까이가 현 정권의 경제정책을 좌편향으로 인식한데 대해 정부여당은 커다란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다음으로는 기업활동을 옥죄면서 외국자본에 비해 국내기업을 역차별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와 대기업그룹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등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사회를 분열과 대립으로 몰고 가는 정치·이념적 문제 역시 기업과 소비자들로부터 활력을 앗아가는 요인들이다. 그만큼 현 경제위기 상황은 상당부분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시중에 나도는 ‘정치발(發) 불황’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반기업정서나 규제가 계속되는 한 기업활동은 위축되고 덩달아 일자리는 해외로 떠나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이윤추구 활동을 보장하고 자극함으로써 고용은 늘고 사회는 풍요를 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적 공헌이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04-10-19 [기고] 실패를 공공자산화 하자 [서울경제]

누구나 알고 있음 직한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은 숱한 발명품을 만들어낸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먹고산 사람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그는 전구 하나를 발명하기 위해 무려 2,000번이 넘는 실패를 겪어야 했다. 전구를 발명한 후 “거듭되는 실패를 하는 동안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라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단호히 “실패라뇨. 전 단지 2,000번의 과정을 거쳤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그가 말년에 남긴 명언 아닌가. 그가 남긴 명언 속에는 실패하며 배운 경험이 결국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배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과연 이 명언은 유효한가.

최근 몇 년간 국내외 경제가 침체하면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특히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이들이 실패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며 창업에 도전하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혹한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진국이라고 해서 우리와 다를 것은 없다. 미국 기업들도 나스닥에 입성하기까지 생존율은 고작 5%대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기업이 명멸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실패한 경영인이 설 자리는 없다. 한번 실패한 경영인으로 낙인 찍히게 되면 가혹할 정도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또는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거나 아예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일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는 동안 우리 사회는 기형적인 직업불균형 문제를 낳았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기조가 팽배한 만큼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이른바 ‘사(士)’자가 든 직업만을 선호하게 되면서 우리의 미래를 음울하게 만들고 있다. 요즘 사회문제로 부각된 이공계 기피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선진사회는 실패한 기업인의 경험을 높이 사고 있다. 실패한 기업인이 취업 또는 재기하기 위해 준비할 경우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패한 사람을 힐난하기보다는 그의 경험을 공공자산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서는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이 실패할 경우 탈출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나스닥시장보다 무려 스무 배가 크다는 M&A시장이다.

미국 기업의 경우 대체로 창업 단계부터 ‘나스닥에 상장시키기보다 어느 단계에서 M&A를 하겠다’는 것을 목표를 설정한다. 코스닥시장 등록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우리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실패를 목표로 창업하는 셈이다. 창업 자체를 사회적 공헌으로 인정해주는 나라일수록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대체로 작지만 강한 기술경쟁력을 갖춘 강소국의 경우가 이와 같다.

우리 사회도 한때 창업에 대한 열풍이 거세게 불던 시기가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벤처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팽창하던 시절에 우리도 강소국을 꿈꿨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창업은 한낱 허튼 꿈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부재한 것은 우리 사회가 희망을 키우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이공계 기피현상과 맞물린 이러한 현상을 떨치기 위한 사회적 대안마련이 강력히 요구된다.

우선 젊은이들이 실패를 먹고 자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때 붐을 이뤘던 실험실 창업, 대학생 창업 등이 다시 활성화돼야 한다. 더불어 실패의 위험을 덜어주기 위해 융자가 아닌 투자 방식의 자금조달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M&A시장의 활성화는 필수적 사인이다. 건전한 인수합병을 통해 기술집적을 이룰 때 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패가 수용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 얼마 전 정부와 여당이 ‘벤처 패자부활론’을 제기했다. 매우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성공과 실패가 모두 공공자산으로 인정될 때 우리 사회는 한층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4-10-15 국가경쟁력 뜨는 나라, 지는 나라/나라빚 줄고 적극적 FTA 칠레 급부상 [동아일보]

“칠레는 뜨고, 한국과 베트남은 추락하고, 핀란드는 계속 잘나가고….”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13일 올해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하면서 국가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WEF가 국가경쟁력 순위를 매기면서 1등부터 꼴찌인 104등까지 국가별로 석차를 매겨 발표하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북유럽=북유럽 국가는 ‘전체 1등’을 차지한 핀란드를 포함해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5개국이 10위 안에 들었다. 노르웨이는 지난해 9위에서 6위로 뛰어올랐다.

이 때문에 WEF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북유럽 국가가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선두권을 휩쓸었다”며 ‘북유럽 돌풍’을 별도로 소개하기도 했다.

북유럽 국가가 이처럼 좋은 성적을 기록한 것은 무엇보다 재정의 건전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일찌감치 고령화사회를 예견하고 재정에 두꺼운 ‘방화벽’을 쌓아놓은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WEF는 분석했다. 이와 함께 부패가 거의 없고 법의 지배가 철저히 준수되고 있는 것도 강점으로 꼽혔다.

▽떠오르는 칠레와 추락하는 한국=올해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는 칠레의 급상승이 눈길을 끌었다. 칠레는 지난해 28위에서 올해 22위로 올라섰다. 남미 최우등국인 칠레는 국가채무 비중이 크게 낮아지고 다른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WEF는 칠레에 대한 별도보고서를 내는 한편 ‘스타 국가’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국가경쟁력 순위 하락폭이 가장 컸던 국가는 베트남. 지난해 60위에서 77위로 17계단 하락했다. WEF는 이에 대해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기술 분야에서의 부진을 들었다.

한국도 18위에서 29위로 11계단이 떨어졌다. 거시경제 환경 등 모든 평가분야가 악화된 것이 이유였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41위에서 47위로 하락했는데 사법부의 독립성 약화가 그 이유로 꼽혔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대중영합적 정책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베네수엘라는 하위권인 82위에서 85위로 더 추락했다.

▽국가경쟁력 순위 변동의 의미=WEF는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하면서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국가경쟁력의 의미가 더욱 커졌다고 지적했다. 국경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동시장이 유연하고 기업하기에 좋은 제도적 사회적 인프라를 갖춘 국가에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높은 국가에 기업들의 투자가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높은 국가는 더욱 많은 외국인투자를 유치해 결과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1년 사이에 국가경쟁력이 11계단이나 떨어진 한국으로선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종식기자


■핀란드 경쟁력1위 비결

‘유럽의 강소국(强小國)’ ‘노키아랜드(Nokialand)’로 불리는 핀란드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04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WEF는 “핀란드가 거시경제 환경과 공공부문지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민간영역에서도 신기술을 받아들이고 혁신을 이뤄나가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의 소국이지만 경쟁력만큼은 미국을 앞서는 핀란드가 WEF의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올해뿐만이 아니다. 작년과 2001년에도 1위를 차지해 최근 4년 동안 1위를 세 차례나 차지한 저력을 갖고 있다.

핀란드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핀란드 경쟁력의 원천은 크게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유지하는 국가의 리더십 △정보화 사회를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설정하고 정보통신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정부 정책 △정부조직을 작고 효율화하고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며 규제를 완화하려는 노력 등으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핀란드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국가 리더십으로 꼽힌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핀란드 정부는 1990년대 초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R&D) 투자비율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도 중장기적인 정책의 일관성을 지켰다”고 말했다.

차지완기자


2004-10-15 한국정치학회 정기학술회의/ 작지만 강한 나라 아일랜드를 주목하라” [한겨레]

작지만 강한 나라. 우리 국민이 꿈꾸는 미래다. 그러나 ‘강소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있다. 바로 사회적 협약이다. 이는 정부·노동·자본이 국가의 장래를 함께 모색하고, 여기에 필요한 양보와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약속이다.

한국정치학회(회장 심지연)가 14일부터 이틀 동안 사회협약을 통한 ‘작지만 강한 나라’의 미래를 모색하는 정기학술회의를 열고 있다. 경남대 서울캠퍼스에서 진행되는 이번 회의에는 네덜란드·아일랜드·스웨덴·벨기에 등 ‘강소국’ 학자들이 두루 참가해 자국의 경험을 전했다. 이 가운데서도 바쓰 대학의 에먼트 오코너 교수가 전하는 아일랜드의 사례는 대단히 흥미롭다.

아일랜드는 외세의 침략과 피식민지 경험 등 역사적 배경은 물론 △강대국(영국) 경제에 대한 종속구조 △분권화·파편화된 노조운동 △계급정당이 아닌 포괄정당 중심의 정당체제 등 사회체제 구성에서도 한국과 닮았다. 아일랜드가 오늘의 한국처럼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던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이때 저성장·고실업·재정적자의 악순환에 일대 전환을 이룬 것은 87년 노·사·정이 타결한 ‘국가재건협약’이었다.

이후에도 아일랜드는 지금까지 4개의 노사정 협약을 추가로 체결하는 동시에, ‘국가경제사회협의회’를 구성해 국가발전전략의 기본을 세웠다. 그 성과로 87년 이후 200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은 239% 성장했고, 95년부터 2001년까지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평균 9%를 유지했으며, 실업률은 90년의 18%에서 2000년 4%로 급감했다. 사회협약이 무엇이기에 유럽 변방의 작은 나라를 이렇게 탈바꿈시킨 것일까.

강명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대외적 취약성’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는 발표논문에서 “유럽의 작은 나라들이 번영을 누리는 비결은 자신들의 국가체제가 외적환경 변화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국내적 합의를 통해 대처하지 않으면 생존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강 연구위원은 “이런 국민적 합의의 대표격은 노사협력”이고, 이제 “노동 부문의 동의·참여를 통한 노동시장의 개혁 없이는 경제의 질적 전환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작은 나라를 위협하는 외적 변화의 핵심은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다. 마인섭 교수(성균관대)는 “경제선진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는 개방과 상호의존을 특징으로 하는데, 대외의존도가 높은 비선진신흥산업국인 한국은 대외의 위협에 극히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경우엔 새로운 경제모델 창출을 위해서도 사회협약이 절실하다. 마 교수는 “성장을 저임금 노동시장에 의존하고, 국가가 자원을 동원하며, 소수 대기업이 소수 전략산업에 의존하는 권위주의적 국가주도 산업화의 발전모델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의 산업구조에서 지속적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은 노사정이 위기인식을 공유하고, 각자의 이기적 목표를 유보하며, 미래의 국가경쟁력 회복에 합의하는 ‘경쟁력 연대’”라고 제안한다. 사회협약이 단순히 산업평화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발전모델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강명세 연구위원은 사회적 동반관계 경험이 빈약했던 아일랜드의 사례를 분석하며, “아일랜드의 기적은 집권세력의 인식의 전환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아일랜드 엘리트들이 시도한 발상의 전환을 한국이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통 사민주의 국가들이 갖췄던 조건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이를 ‘정부’가 지혜롭게 채워나간 교훈을 본받으라는 이야기다.

***정부구실이 중요했다

1970년대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네덜란드는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이라는 노사대타협을 통해 극적으로 회생했다. 그 뼈대는 임금억제·노동시간 단축·고용창출을 노사가 서로 약속하고, 정부가 조세감면 및 건전재정정책 실시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특히 96년 도입된 ‘유연안정성 협약’은 기업에게 정규직 해고규정 완화를 허락하는 대신,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이라고 해석할만한 이 협약으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비정규직 확대를 노동과 자본이 함께 저지했다.

아일랜드는 국가발전 전략을 노사대타협을 통해 일궈냈다. 87년 국가재건협약의 결과, 노사정은 사회경제정책·임금·고용 등 경제의 중장기 주요 목표는 물론, 노동자보호·장기실업대책 등 노동권익 보호 및 복지정책에도 합의했다. 그 이전까지 노사간 반목과 대립이 극심했던 아일랜드는 이런 대협약을 바탕으로, 빈곤추방 등 각종 사회개혁 의제까지 성취했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정부의 구실에 있다. 협약에 익숙지 않았던 노사를 한자리에 모으고 이들의 양보와 희생을 뒷받침할 산업·조세·복지정책을 추진하는 동시에, 계급정당이 수행할 정치적 갈등 조정까지 정부가 떠안았던 것이다.

“현재까지 (한국이 채택할) 가장 현실적 대안은 네덜란드와 아일랜드에서 발견된다”(강명세)는 지적도 이로부터 비롯된다. “정부는 조직노동(노조로 대표되는 정규직노동)의 합의에 기초해, 시장을 통한 민간부문의 일자리를 창출하되, 비조직노동(비정규직노동)의 보호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마인섭 교수는 “아일랜드와 네덜란드의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위기의식의 공유를 사회협약의 탄생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단순한 법·제도의 개선을 넘어, 노사의 경쟁력 연합을 창출하는 고도의 정치적 과정이었다는 점”이라고 짚는다. 노무현 정부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안수찬 기자


2004-10-14 [WEF평가 한국경쟁력 11단계 추락] 기업 체감환경 나빠져 [한국경제]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순위가 올해 11단계나 곤두박질친 것은 최근의 국내 경제위기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져 향후 성장잠재력 감퇴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책 불확실성과 불안한 노사관계로 기업 활동이 크게 제약받고 있는 한국 경제의 현주소가 냉정한 평가를 받은 셈이다.

◆’비정상적 금융환경’이 문제

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 순위가 크게 떨어진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거시경제 환경지수가 낮게 평가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경기후퇴 전망이 우세하고, ‘신용접근의 곤란’ 등 애로가 쏟아져 나온 것. 실제 한국의 거시경제 환경 지수는 지난해 23위에서 올해 35위로 무려 12단계가 떨어졌다.

국내 기업들이 신용접근에 대한 애로가 많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최근의 중소기업 자금난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시중 자금이 은행으로만 고이며 생산적인 기업자금으로 흐르지 않고 안전한 국채 투자 등 머니게임에만 쏠리는 비정상적인 금융시장도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 중 하나였다는 얘기다.

◆악화되는 체감 경영환경

기업활동의 애로사항에 대한 WEF 설문조사 결과, 한국의 경우 ‘정책 불안정’ ‘비능률적인 관료제’ ‘경직된 노동관계법규’ ‘자금조달 어려움’ ‘세제 관련법규(Tax Regulation)’ 등이 주된 문제점으로 꼽혔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강화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 등 대기업 ‘규제 드라이브’가 기업들의 체감 경영환경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WEF 등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선 현지 기업들의 경영환경에 대한 설문결과가 크게 반영된다”며 “기업들이 느끼는 경영환경이 그만큼 악화됐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기업경쟁력 지수는 93개 대상국 중 지난해(23위)와 유사한 수준인 24위로 평가돼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기업환경과 관련, 특히 경쟁력이 낮게 나타난 분야는 △모성보호 관련법률이 여성 고용에 미치는 영향(1백2위) △외국노동 고용의 용이성(99위) △입법기관의 효율성(81위) △은행의 건전성(77위) △농업정책 비용(77위) 등이었다.

◆’선택과 집중’에 해법 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뒷걸음질 친 반면 전통적으로 국가경쟁력이 강한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 강소국들은 여전히 높은 순위를 자랑했다.

핀란드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국가경쟁력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스위스 아이슬란드 등이 대거 10위권 내에 올라 ‘강소국 모델’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됐다.

이영선 연세대 교수는 이에 대해 “경제력 집중 완화에 신경 쓰기보다는 ‘선택과 집중’ 논리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키워 국부를 늘리고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유럽강소국 모델의 강점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라며 “한국도 유럽강소국의 실용적인 기업관과 경제관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병석 기자


2004-10-14 [40대가 말한다] [한국경제]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 강소국을 직접 둘러보고 “국가경쟁력을 높이자” 시리즈 집필에 참여했던 국가경쟁력플랫폼 소속 김광두 서강대 교수, 이영선 연세대 교수, 이필상 고려대 교수가 결산 좌담회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엔 지난 3년간 주(駐)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하다 지난 8월말 귀국한 이경태 전 대사도 참석해 유럽 강소국의 경쟁력 비결과 한국이 얻어야 할 교훈 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계민 한국경제신문 논설주간 사회로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 내용을 정리한다.

<>이계민 논설주간(사회)=먼저 유럽 강소3국을 둘러보고 가장 인상적으로 느끼신 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죠.

<>이필상 교수=이번에 돌아본 나라들은 이념 성향을 떠나 “경제를 살려, 우선 잘먹고 잘살자”는 실용적 공동체 의식이 무척 강했습니다.

모든 나라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전후해 경제위기를 겪었는데 모두 극복하고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공통점도 있었죠. 세계 경제는 이렇게 소용돌이 치는 데 우린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싸움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사실 우린 공동체 의식을 잃은 지 오래지 않습니까.

<>김광두 교수=그 나라들이 갖고 있는 갈등 해소구조가 무엇보다 부러웠습니다.

모든 나라가 나름의 갈등이 있긴 했지만 유럽 강소국들은 잘 해결해 나가는 구조가 있었죠. 거기엔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있었습니다. 부패하지 않고 겸손한 모습은 계층간 갈등을 완화시키는 완충역할을 했습니다.

국민 전체가 하나의 국가 비전에 대한 합의를 갖고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기술과 분야만을 선택해서 집중 투자해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그런 컨센서스가 있었지요.

<>이영선 교수=솔직히 말해 우리와는 한 차원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오랜 민주주의 역사, 합리적인 타협문화, 건설적인 정치 등이 우리와는 정말 달랐어요. 우리도 그런 경제 외적인 “사회적 틀”을 갖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경태 전 대사=지난 3년간 OECD 대사로 유럽에 근무하면서 그들의 사회문제 해결 방식에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작년 봄 프랑스에선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교사와 공기업 근로자들의 파업이 있었죠. 파업과정에서 시위도 벌어졌지만, 매우 평화적이었습니다.

또 예정대로 딱 1주일만 파업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조용해지더군요. 그 사이 정부는 개혁안을 일부 수정해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시행하더라구요.

우리와 비교해 갈등해소 시간이 짧고 비폭력적이라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측 모두 타협 용의가 있고 자세가 돼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회=갈등 해결 방식을 비롯해 우리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김 교수=유럽 강소국들과 비교해 정치시스템과 정당이 크게 다릅니다. 유럽 강소국에선 여야 모두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으려 합니다. 유럽연합(EU)통합에 따라 다른 회원국들과의 경쟁압력도 작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한국 정치권은 세계의 흐름에 상대적으로 둔감합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적 이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당리당략과 선거전략 차원에서 국가의 중요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부터 바로 잡아야 해요.

<>이영선 교수=기업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여도 문제입니다.

유럽 강소국들은 기업 경영활동만큼은 철저히 자유를 보장합니다. 저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이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간섭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나 복지도 법인세보다는 소득세를 많이 걷어 해결하더라구요. 기업 부담을 최소화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한 배려였습니다.

한국과 달리 정부는 경제력 집중 완화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기업간 경쟁의 무대가 “국내”가 아닌 “글로벌”로 바뀐 상황에서,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경제력 집중은 문제가 안된다는 식이었죠. 반기업 정서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필상 교수=정부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정부가 위기의 실체를 보지 않고 낙관만 하고 있으니 국민이나 기업 정부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겁니다. 정책에 대한 신뢰도 적고요. 그러다 보니 공동체 의식은 물론 사회적 응집력도 약해지는 거예요. 정부가 먼저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국민들이 공감하는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 전 대사=한국은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속도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지금의 복지를 이루는 데 1백여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한국은 성장도 압축해서 일궈냈으니 복지도 짧은 시간에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복지는 각 나라의 실정에 맞는 속도로 가야 하고, 복지를 위해서라도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때 유럽 좌파가 복지의 속도를 빨리 하려다가 모두 포기했지요.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좌파의 노선수정이 이뤄졌고, 영국 노동당이 오른쪽으로 가기 시작했지요. 그것이 “제3의 길”입니다.

<>사회=노사관계로 논의를 좁혀 볼까요. 최근 정치권에선 네덜란드식 대타협 모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럽 강소국의 노사관계에선 무엇을 배울 수 있었습니까.

<>이필상 교수=네덜란드는 협력적 노사관계의 토양이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선 노사가 적이 아니었습니다. 기업을 잘 키워 서로 이익을 나누는 문화가 있었지요.

한국의 경우 노사간 적대감이 큰 게 사실입니다. 우린 과거 정경유착으로 부(富)가 집중되는 현상이 생겼고, 이에 대해 근로자들과 중소기업들의 피해의식이 컸습니다. 그게 사회 분위기로 고정됐지요. 그 응어리를 풀지 않고서는 타협도 합의도 불가능합니다.

서로 그간의 과오를 진솔하게 반성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노사정 합의도 쉽게 될 겁니다.

그런 점에서 유럽 강소국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는 배울 만했습니다. 우리도 정치권 대기업 지식인 등 지도층부터 나서서 반성하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이영선 교수=네덜란드의 노사협력은 노와 사가 모두 합리적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컨대 최근 조기퇴직 가능연령을 둘러싼 네덜란드 노사의 견해차는 6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서로 합리적인 계산하에 협상안을 내놓기 때문에 차이가 클 수 없습니다.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타협도 쉽지요. 우리도 어떻게 노사가 합리성을 갖게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김 교수=죽기 살기식 대결보다는 양보하고 타협하는 합의문화가 중요합니다.

네덜란드의 경우 폴더(Polder)라는 간척지를 만들면서 국민들 사이에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그런 합의문화를 형성했지요. 또 정부가 노사 대화에 성급하게 끼어드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네덜란드의 노사협력 모델은 노사가 대화로 문제를 풀고 결론을 낸 뒤 정부가 정책적으로 도와줄 것이 있으면 그때 나서는 방식입니다.

<>사회=얘기를 들어보니 국가경쟁력이라는 게 누구 하나만 잘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국민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가 모두 변화해야 하는데, 어떻게 변해야 할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시죠.

<>김 교수=우선 정치권이 변해야 합니다. 현재 정치권엔 “국내형” 지도자가 너무 많아요. 반면 세계적 변화를 읽고 대처할 수 있는 “글로벌형” 지도자가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질서에 맞게 행동하기 보다는 내부 정치투쟁에 골몰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부 정치인의 “갈등 조장형” 리더십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의식도 세계화돼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세계의 변화나 다른 나라의 움직임에 자극받고 자세를 가다듬어야 국가경쟁력을 높여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이영선 교수=한국이 경쟁력을 높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 곳곳의 갈등구조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우리 모두 한배에 탔다”는 공동체 의식을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공동체 의식은 결국 정치권과 정부의 지도력이 먼저 나서 만들어야 합니다. 편 가르기를 중단하고 “함께 노력하자”는 지도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특히 최근 문제가 야기된 원전센터 부지 선정이나 쌀시장 개방 등은 정치권이 리더십을 갖고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이필상 교수=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 “히든 카드” 하나씩을 꺼냈으면 좋겠습니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인정하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성장엔진인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관료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기업 규제를 철폐해 기업활동을 자유롭게 해줘야 하지요. 대기업은 투자에 적극 나서 일자리를 만드는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야 빚도 갚고 소비도 늘어 경제가 선순환합니다. 대기업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국민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을 겁니다.

근로자들도 그동안의 집단이기주의나 지나친 피해의식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특히 고액 소득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월급을 깎더라도 실업자나 비정규직 근로자와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카드를 꺼냈으면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경제주체가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며 한발씩 뒤로 물러나야 비로소 공동체 의식이 싹트고 한 마음으로 뭉칠 수 있습니다.

<>이 전 대사=유럽 국가들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미국보다 낮은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봐야 합니다.

첫번째는 미국보다 복지지출이 많았기 때문이죠. 한번 정착된 복지제도는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복지 향상의 속도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도 우리 실정에 맞게 속도조절을 해야 합니다. 또 지난 1990년대 미국이 경쟁력을 높인 요인을 잘 봐야 합니다. 정보기술(IT)을 경제 전체에 잘 응용한 결과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한국은 희망이 있지요. 한국의 IT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 아닙니까. 이를 어떻게 이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정리=차병석 기자


2004-10-11 [국가경쟁력을 높이자] <6> 시장과 정부 역할 [한국경제]

지난 2월초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가족소유 기업인 소시지 그룹의 상속자 주시 살로노야(27)는 제한속도 25마일 도로에서 시속 50마일로 차를 몰다 경찰에 적발됐다. 이때 그가 뗀 “딱지”의 벌금은 무려 21만6천달러(약 2억5천만원)였다.

경찰은 그의 연간 소득이 1천3백만달러(약 1백50억원)라는 점을 들어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다. 교통범칙금도 소득세처럼 위반자의 소득에 비례해 물리는 핀란드의 독특한 벌금 제도에 따른 것이다. 가진 자는 그만큼 사회에 많이 기여해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유럽식 복지개념과 평등사상이 강한 사회민주주의 전통의 핀란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놀라운 건 이런 ‘평등지향적’ 풍토에서도 세계 제일의 정보통신 회사인 노키아 같은 기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분배와 평등보다는 경쟁과 차별을 먹고 사는 기업이 어떻게 핀란드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복지국가의 대표격인 스웨덴에 인구비례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기업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나라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이지만 국영 기업은 거의 없다. 일반 제조업은 물론 병원 학교 철도 등 공공성이 강한 부문에서 조차 민간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복지왕국 북유럽 국가들을 방문하기에 앞서 필자는 몇가지 선입견과 함께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국민의 복지 유지를 위해선 스웨덴 핀란드 등의 경제는 정부에 의해 전적으로 운용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국가들에서 시장은 무슨 역할을 맡고 있을까.

경제발전에 있어 기업가의 혁신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단했던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혁신이 대부분 대기업에서 일어나고, 이에 따른 대기업의 확대는 대기업에 대한 반감을 불러와 민주주의에 의해 자본주의가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오랜 민주주의의 전통을 지닌 이 북유럽 국가들에서 과연 슘페터의 예언은 적중하고 있는가.

이러한 선입견과 의문들은 첫 방문국인 핀란드에서부터 조금씩 깨지고 풀리기 시작했다.

핀란드는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정부기관의 이름조차 ‘경쟁청'(Finnish Competition Authority)이라 불렀다. 그만큼 경쟁을 강조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 경쟁청은 민간 기업뿐 아니라 심지어 공공부문의 경쟁상태까지도 점검한다. 이들에게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키아가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하더라도 경쟁적 시장구조를 갖고 있다면 문제삼지 않는다.”(마르티 비르타넨 경쟁청 부국장).

그렇다고 대기업의 독점적 기업활동을 방치하는 건 아니다. 시장 효율성이 유지될 수 있게끔 실질 경쟁이 벌어지도록 정책을 추진한다.

스웨덴도 발렌베리 가문의 지주회사에 의한 대기업 소유집중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이 가문은 5대를 이어가며 에릭슨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시에 많은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길러냄으로써 스웨덴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에서 정부는 무엇인가.

우선 이들은 복지국가를 표방하므로 높은 재정수요를 위해 많은 세금을 걷어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된 세원(稅源)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세가 아니라 개인소득세란 점이 특이하다.

국민들은 소득의 거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 이것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이룬 것임은 물론이다.

정부는 이 재정수입을 통해 국민들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한다. 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으로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기본적 생활을 보장한다.

복지 이외에 정부가 큰 역할을 담당하는 부문은 교육이다.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시행할 정도로 교육을 정부가 책임진다. 스웨덴과 핀란드 네덜란드는 정보기술(IT)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정부가 이 산업을 특별히 선별 지원한 것은 아니다.

이들 국가에 차별적 산업정책은 없다. 단지 국가경쟁력을 위해 교육과 R&D에 자원을 집중 배분하는 등 기업 경영활동을 간접 지원할 뿐이다.

자본주의가 노동자 계급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칼 마르크스의 예언이 오류였던 것처럼, 자본주의가 대기업의 확대에 따라 민주주의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슘페터의 예언도 유럽 강소국들의 경험에 의해 부인되고 있는 셈이다.

헬싱키·스톡홀름=이영선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2004-10-11 [국가경쟁력을 높이자] 한국에 주는 교훈 [한국경제]

‘참여정부’가 ‘국민의 정부’와 정책 노선을 같이 한다고 보면 우리 경제는 6년 이상 진보적 정치세력에 의해 운영돼 왔다. 그것은 국민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져들고 국가경쟁력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이제 참여정부는 비슷한 정치 이념에 의해 운영되면서도 경쟁력이 높은 유럽 강소국들로부터 정부와 시장의 바람직한 역할을 배워야 한다.

우선 진정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언가를 인식해야 한다. 유럽 강소국들은 세계적 경쟁 속에서 국민들의 복지를 위한 길이 바로 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국가경쟁력은 기술혁신에 있고, 기술혁신은 자유로운 기업활동에서 출발한다고 믿었다.

경제력 집중 그 자체를 문제 삼아 대기업 활동을 억제하기보다는 대기업의 확장이 경쟁을 저해하는지, 또 경제적 효율성을 해치는지만 따진다.

기업이 경쟁력을 갖게 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 과감한 시장개방과 규제철폐를 단행해야 한다. 개방과 규제철폐는 시장의 확대를 의미한다. 이는 산업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 지원정책도 폐기돼야 함을 의미한다. 기업의 기술혁신은 정부의 간섭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정부의 역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 노와 사가 충분한 대화를 갖게 하고 정부는 철저히 법을 집행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국민의 복지향상을 표방한다면 이에 대한 비용은 국민세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음을 설득해야 한다.

개인소득세와 재산세를 올려야 한다. 단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법인세는 올려선 안 될 것이다. 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으면서 복지체제를 갖춰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2004-10-08 [국가경쟁력을 높이자] <5> 갈등을 화합으로 [한국경제]

“바세나르 협약은 깨졌습니다.”

헤이그에서 만난 잔 브링크호르스트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이 툭 던진 말에 필자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노·사 화합모델의 전형으로 네덜란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이 협약이 깨지다니….

1990년대 장기호황을 누리던 네덜란드 경제가 2001년부터 침체 국면에 접어들어 2003년 마이너스 성장(-0.8%)을 보이자 지난해 10월 노·사·정은 향후 2년간 임금을 동결키로 하는 내용의 ‘제2의 바세나르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조기퇴직 가능연령 등 세부사항에 이견이 생겨 노조측이 이 협약의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

노·사 관계는 기본적으로 갈등 구조다.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적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경제는 이 갈등 구조가 화합으로 조정됨으로써 지속적인 성장을 이뤘다. 유럽 강소국들은 이떻게 갈등을 화합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노조의 경영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약간 다르다. 네덜란드는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노사정책 방향이 설정되는 관행을 갖고 있다. 이것이 노조의 경영참여를 허용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듯한데, 실제 기업경영에서 노조의 동의나 합의가 필요하지는 않다.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의 경우 이사회에 근로자 대표가 참여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경영권 참여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들은 경영진의 의사를 노조측에 전달하는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다른 요인들이 있는가.

핀란드경제연구소 파시 소르요넨 경제분석팀장은 핀란드 국민들의 강한 공동체 의식을 지적했다.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전 국민의 지속적인 투쟁 과정에서 강한 애국심이 형성됐고, 이것이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화합을 유지하게 한다.”

이런 공동체 의식의 발로는 네덜란드도 비슷하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상당부분이 해수면 보다 낮은 간척지다. 폴더(polder)라고 불리는 이 땅은 네덜란드 국민의 자연에 대한 공동투쟁의 상징이다. 네덜란드의 협력적 노사관계를 ‘폴더모델’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1980년대초 노사대립, 재정적자 등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을 ‘네덜란드의 기적(Dutch Miracle)’으로 바꿔 놓은 바세나르 협약도 그 같은 공동체 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공동체 정신과 타협 문화의 밑바탕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가 잘 지켜져 온 이 나라들의 정신적 유산이 깔려 있다. 이들에겐 왕과 귀족들이 전쟁의 선두에 서서 싸운 역사가 있다.

현역 여성 법무부 장관이 병실이 꽉 차서 병원 복도에서 산고를 치러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총리 부부가 수행원 없이 지하철을 타고 영화관을 찾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나라에서 계층간 불화가 생길 수 있겠는가.

핀란드를 대표하는 정보통신 회사 노키아의 테이자 쇼스테트 인력팀장은 “부패 없는 투명한 사회와 이러한 여건에 맞춰 구축될 수 있는 투명한 기업이 노·사 간 타협을 쉽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 없는 나라로 국제투명성기구가 인정한 핀란드의 풍토에서 타협과 화합은 자연스럽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조가 정치성을 띤 투쟁을 할 명분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세나르 협약의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극단적 대립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화와 타협으로 잘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깨졌다(Broken)’는 말에 어리둥절해 한 필자에게 브링크호르스트 장관은 꽤 자신 있게 말했다.

헤이그(네덜란드)·헬싱키=김광두 서강대 교수·국가경쟁력연구원장


2004-10-08 [국가경쟁력을 높이자] 투명한 경영. 강한 공동체의식 배워야 [한국경제]

한국의 노사관계는 극단적 대립관계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등에선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왜 한국에서는 투쟁으로 얼룩지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은 국민들의 세금부담이 늘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수준의 한국 국민들이 3만달러대의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낼 수 있을까는 따져볼 문제다.

현재 유럽 강소3국의 실효 개인소득세율은 30%로 한국의 5.9%보다 5배 이상 높다. 오히려 공동체 의식의 회복에서 노사화합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좋을 듯싶다. 월드컵 응원 때 나타난 공동체 의식만 있다면 노사갈등의 해결은 쉽지 않을까.

우리도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지배 위협을 받거나 지배당해 본 쓰라린 경험이 있다. 고구려 역사를 깔아뭉개는 중국의 오만과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억지를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 강소국들에선 넘치는 것들이 우리에겐 모자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그렇다. 권력자와 부유층은 특권의식에 비해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가운데 권력부패 정경유착 기업비리 등이 나오면서 법과 원칙의 존재 의미를 의심케 한다.

이러다 보니 근로자와 일반 서민들 또한 집단적으로 자기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극한 투쟁을 벌이곤 한다. 이런 서민들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지도자들도 있다.

우리도 제도적으론 네덜란드와 비슷한 노사정위원회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작동이 제대로 안 된다. 구성원들이 서로 불신하고, 이들의 불신을 조정해야 할 정치지도자들이 소승적 차원에서 구성 집단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 모두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상호 신뢰를 쌓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유럽 강소국에 가득 차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투명한 권력과 기업, 강한 공동체 의식 등을 배워야 한다.


2004-10-07 이건희 삼성회장 전경련 월례회의 다음주 참석할 [서울경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다음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전경련 회의 참석은 내우외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경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7일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전경련 회장단 회의 참석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으나 가급적 참석할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1년여만이며 2003년에도 9월에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최근 3년간 1년에 한 번꼴로 전경련에 출석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재계의 리더인 이 회장이 이번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 어떤 ‘화두’를 던질지 주목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전경련 나들이는 어려운 경제상황에 회장단이 공조체제를 취함으로써 재계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전경련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회장은 지난해 회장단 모임에서는 ‘강소국으론’을 강조했다. 그는 “20세기에는 물리력이 강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지만 21세기에는 경제력이 강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면서 “핀란드와 스웨덴 등 강소국을 좋은 예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 재계의 관심을 끌었었다. 전경련 회장단 회 의는 매월 둘째주 목요일에 개최돼왔으며 관례대로라면 오는 14일 10월 월례회의가 열리게 된다.

문성진기자


2004-10-06 [국가경쟁력을 높이자] <3> 정부가 할일 [한국경제]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자동차를 타고 서쪽으로 30분을 달리면 에스푸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난 한적한 4차선 도로를 달리다 만나는 이곳에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가 있다. 6∼7층 높이의 회색빛 연구동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이 곳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3백여 기업의 5천여명 연구인력이 일하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고 조용했다.

“북유럽 최대의 민간 인큐베이터 단지로 매년 80여개의 벤처기업을 배출한다.” 이곳에서 사업개발 자문역을 맡고 있는 투오마스 마이살라 씨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 명성에 짐작이 간다.

“여기서 창업한 벤처기업이 평균 매년 50%씩 성장하고 창업후 2년 뒤까지 86%가 살아 남는다”는 말엔 더욱 그렇다.

이 단지는 대학 기업 연구소 등 산·학·연이 만나 첨단 기술 비즈니스라는 꽃을 피우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클러스터(산업단지)다. 핀란드엔 이런 클러스터가 19곳이나 있다. 모두 헬싱키 공대 등 유명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기업과 연구소들이 모여 아이디어와 기술을 공유하고 상업화하는 산·학·연 협동의 장(場)이다. 기술 강국 핀란드 경쟁력의 산실이기도 하다.

핀란드에서 산·학·연 협동이 활발한 데에는 정부의 뒷받침이 결정적이다. 가진 것이라곤 사람 밖에 없는 핀란드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 남는 길은 오직 기술경쟁력뿐이라고 판단하고 일찌감치부터 연구개발(R&D)과 인력양성에 꾸준히 투자해온 것.

국가경쟁력이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는 유럽 강소국들은 정부가 R&D와 교육 등 경제의 ‘기초 체력’에 집중 투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 활동에 필수적인 고급 기술과 양질의 인력을 공급하는 토대를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탄생했고,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이 강해진 것이다.

실제 유럽 강소국 정부의 R&D 투자는 세계 최고다. 핀란드는 지난 2002년 총 48억유로(약 7조원)를 R&D에 투자했다. GDP의 3.46%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핀란드 정부는 90년대 초 경제위기 때도 오히려 R&D 투자를 늘렸다. 허리 띠를 졸라 매야 할 때 R&D예산을 늘리기 위해 노사가 복지예산을 줄이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로 들어온 돈을 R&D에 쏟아 부었다.

네덜란드 정부도 작년 9월 총리를 위원장으로 주요 대학 총·학장, 필립스 등 주요 기업 대표 등 18명이 참여하는 ‘기술혁신 위원회’를 여왕 칙령으로 만들 만큼 R&D에 ‘올인’하고 있다.

교육투자 역시 R&D 못지 않다. 좁은 국토에 대외 의존도가 높은 네덜란드는 생존을 위해선 잘 교육받은 인력이 필수적이란 걸 일찍부터 깨닫고 교육에 힘써왔다.

특히 외국어 교육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시키기로 유명하다. TV프로그램도 절반이 영어로 진행되고 외국영화는 아예 더빙을 하지 않는다. 덕택에 국민 중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전체의 77%,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각각 59%와 15%에 달한다. 국민들의 외국어 구사능력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다.

1982년 바세나르협약을 탄생시켰던 네덜란드 루트 루버스 내각은 교육개혁도 단행, 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키우는 데 교육의 초점을 맞췄다.

“이공계 중심의 실전형 교육을 위해 1986년 3백개 중등 교육기관을 80개의 고등기술 교육기관으로 통폐합했다. 지금도 대학의 학과 정원은 국가 전체의 노동시장 상황과 국가의 인력 양성 수요에 맞춰 엄격하게 정해진다.”(한스 하우트데이크 네덜란드 경제부 전략연구국 부국장)

핀란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전 과정의 학비를 국가에서 부담하는 건 물론 매달 2백59유로(약 37만원)를 생활비로 주기까지 한다. 때문에 교육비가 국민총생산(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2%에 달해 OECD 회원국 중 최고다.

문맹률 0%, 대졸이상 학력 보유자가 전체 국민의 13%에 이르는 핀란드의 높은 인적자원 경쟁력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니다.

과감한 교육투자는 국민들의 높은 생산성으로 돌아온다. 지난 90년대 후반 연평균 국민경제생산성(한 나라의 불변 국내총생산을 취업자 수로 나눈 값)은 핀란드가 6만6천달러, 네덜란드는 5만8천달러로 미국(6만1천달러) 일본(7만9천달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국은 2만5천달러 수준이다.

“업종별 산업정책이나 개별 기업 규제책을 버리고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을 뒷받침하는 데 힘쓴 정부야말로 유럽 강소국들의 높은 경쟁력 비결 중 하나다.”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발 코롬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연구부문장의 말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웅변해주고 있다.

에스푸(핀란드)·헤이그(네덜란드)=차병석 기자


2004-10-05 국가경쟁력을 높이자 <2> 협력하는 노사..”春鬪 뭔가요” [한국경제]

물류 강국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 항구도시 로테르담. 지난달 20일 이 곳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전체 근로자의 절반인 3만여명 노조원들이 정부의 연금 축소계획에 반대해 24시간 시한부 파업을 한 것. 협력적 노사관계를 취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기자에게 파업소식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밍코 반헤이즌 로테르담항 홍보역은 의외로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놀랄 필요 없다. 지난해 노사정이 합의한 2년간 임금동결에 따른 후속 협상에서 정부와의 이견으로 노조가 항의성 시위를 한 것일 뿐이다. 조만간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것이다.”

내용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부 및 사용자측과 노조간 쟁점은 조기은퇴 가능연령. 현재 법정 정년이 65세인데, 조기은퇴 가능연령으로 정부는 62.5세를 주장하고 노조는 62세로 맞서고 있다.

정부는 근로자들이 좀더 일을 하도록 해 퇴직연금 지급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고, 노조는 가급적 일을 덜 하고 연금을 좀더 받겠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양측의 간극은 6개월에 불과해 절충과 타결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모(馬)아니면 도(豚)’식의 극한대결에 익숙한 한국 기자에겐 더욱 그랬다.

“네덜란드의 노사관계는 극과 극의 주장으로 벼랑 끝까지 치닫는 한국과는 다르다. 때론 파업이란 긴장도 있지만 서로 절충 가능한 대안을 내놓고 협상을 벌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곳에선 매년 봄 이뤄지는 기업의 노사협상을 ‘춘협(春協)’이라고 부른다. 한국처럼 춘투(春鬪)나 하투(夏鬪)란 말은 아예 없다.”(엄근섭 주 네덜란드 한국대사)

노사의 이런 합리성은 ‘협상 결렬보다는 차선의 합의가 낫다’는 실용주의적 태도와 전통에서 비롯된다. 바로 그런 전통의 밑바탕엔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노사와 정부가 ‘사회적 협약’이란 대타협을 통해 고비를 넘겨온 지혜가 있다.

스웨덴의 경우 노동자와 기업주 간 평화로운 협력에 관한 기본 약정인 ‘살트셰바덴 협약'(1938년)과 ‘성장협약'(1999년), 핀란드엔 노·사·정이 노동시장 개혁과 실업축소를 약속한 ‘사회적 협약'(1995년)이 있다. 네덜란드에는 1982년 맺어진 ‘바세나르 협약’이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은 눈여겨볼 만하다.

네덜란드는 1970년대 말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 직후 노조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와 실업 급증, 방만한 사회보장제도 등으로 고비용 고실업 적자재정의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에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초 2차 오일쇼크까지 덮쳐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속 고물가)을 겪는다.

1982년 정권교체로 출범한 루트 루버스 연립내각은 이 위기극복의 돌파구를 노사 대타협에서 찾았다. 정부는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게 위기 극복의 첩경이라고 판단하고 노·사·정 협상을 시작했다. 결국 서로가 손해 보는 파국보다는 한발씩 양보해 실익을 챙기는 게 낫다는 타협 정신이 발휘돼 전격 합의가 이뤄졌다.

“노·사·정 대타협엔 해수면보다 낮은 국토를 간척하며 생존해온 네덜란드 사람들만의 강한 공동체 의식이 뒷받침됐다. 또 정부의 탁월한 조정력과 리더십도 한몫했다. 루버스 내각은 과감한 경제개혁 의지를 분명히 하고 노사 협상을 압박했다. 예컨대 정부는 먼저 예산을 동결하고 노사합의 실패에 대비해 강력한 임금동결 방침을 발표했다.”(구스예 돌스마 네덜란드 경영자연합회 노사관계 담당자)

당시 노조는 물가상승률보다 1% 포인트 낮은 수준에서 임금을 동결했다. 대신 기업들은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줄여 기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했다. 정부는 노와 사에 각각 소득세와 법인세를 깎아줘 고통을 덜어줬다.

“완전 승자도, 완전 패자도 없는 합의였다. 노·사·정 모두가 공동 승자라면 승자였다. 바세나르 협약은 네덜란드를 위기에서 건져냈을 뿐 아니라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도약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로베르트 반 스카근 네덜란드 경제부 대외경제협력국 부국장)

명분과 대결보다는 실용과 상생을 추구하는 노사관계야말로 오늘날 유럽 강소국의 튼튼한 국가 경쟁력에 주춧돌이 된 셈이다.

로테르담·헤이그(네덜란드)=차병석 기자


2004-10-04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 기업 살리고 교육혁신해야 산다 [한국경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은 과연 무엇인가.’

국내 중견 경제·경영학 교수와 공무원, 그리고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구성된 매우 특별한 취재단이 지난달 스웨덴행 비행기에 오르며 가슴에 품었던 화두는 ‘국가 경쟁력’이란 단어였다.

스톡홀름에서 유럽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가(家)를 취재하면서도, 핀란드 헬싱키의 간판 산·학·연 클러스터인 오타니에미 사이언스 파크에서도, 세계 최대 항만인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항을 둘러볼 때도 교수와 공무원과 기자의 머리 속을 채웠던 것은 바로 이 물음표였다.

해마다 7월이 되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발표할 때면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세계 12위 경제규모는 어디로 가고 경쟁력은 언제나 낙제생을 면치 못한다. 올해의 경우 대상국 60개국 가운데 35위로 한국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노사관계는 60위로 꼴찌, 대학 교육의 질은 59위로 뒤에서 두 번째….

30여년간 개발연대를 쉼없이 달려왔던 나라가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이다지도 지리멸렬해진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 강소국들은 왜 그리도 탄탄한 국가경쟁력을 자랑하는가. 보잘것없는 자원, 좁은 내수시장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언제나 톱 클래스의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 강소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반기업 정서를 끊어내고 교육의 질을 높여라.’ IMD 평가 결과도 그랬지만 현장 취재를 통해 공동 취재단원들이 하나같이 내렸던 결론은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내고 교육을 혁신하는 것 외에 다른 지름길은 없다’는 것이었다.

자원이 빈약한 개방형 소국이라는 경제 환경, 국민소득 1만달러대에서 경제 위기를 맞았던 점 등 한국은 유럽의 강소국들과 비슷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미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의 경험과 성과는 그래서 결코 흘려 보낼 수 없다.

제국을 경영했던 영국과 한 해 관광수입이 4백억달러를 넘나드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한국의 벤치마킹 대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열심히 일해 기업을 일구고 부(富)를 일군 자에 대한 존경이 넘치는 그런 나라들이 우리의 모델일 수밖에 없다.

한경은 이번 취재 결과를 총 8회에 걸쳐 게재한다. 국내 대표적 학자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경쟁력 플랫폼’ 소속 김광두 서강대 교수, 이영선 연세대 교수, 이필상 고려대 교수,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소속 공무원, 그리고 한경 기자들이 함께 둘러본 유럽 강소국들의 이야기를 생생하면서도 깊이 있게 전달한다. / 스톡홀름·헬싱키·로테르담=차병석 기자


2004-10-04 [국가경쟁력을 높이자] <1> 기업이 국가다..기업인이 존경 받는 당연 [한국경제]

‘북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푸른 발틱해가 내려다 보이는 시내 한 켠에 빨간 벽돌로 지은 3층짜리 시(市)청사가 있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 축하연이 열리는 곳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이 시청사 건물 2층 복도 한복판엔 청동으로 만들어진 흉상 하나가 있다.

주인공은 스웨덴 최대의 재벌인 발렌베리그룹의 2대 회장 K. A. 발렌베리(1853~1938).

시 청사 건물에 왠 재벌의 동상일까.

“1923년 이 건물을 지을 때 모자라는 예산을 발렌베리가 댔다. 그 감사의 표시로 그의 흉상을 만든 것이다. 재벌의 동상을 스톡홀름의 상징인 시청사 안에 세워 놓았다고 해서 곱지 않게 보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발렌베리는 이 나라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인 중 한 명이자 자랑거리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될 게 없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은 명쾌했다.

기업인이 국민적 사랑을 받고, 반기업 정서가 아니라 ‘친기업 정서’가 넘치는 나라. 이것이 유럽 강소국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다.

정치적으론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색채가 짙지만 기업가와 기업은 질시가 아닌 신망의 대상이다. 지난 7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보자.

‘기업에 대한 신뢰’ 부문에서 1위는 유럽 강소국의 간판 핀란드가 차지했다. 2위는 덴마크, 3위는 오스트리아로 상위권을 유럽국가들이 휩쓸었다.

한국은 몇위일까. 총 60개국 중 51위였다.

유럽 강소국에선 각 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지만 ‘집중 완화’ 주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정거래법이나 증권거래법상 규제도 당연히 없다.

오히려 ‘선택과 집중’이란 논리 아래 이들 기업은 국가경제의 버팀목으로 각광받는다.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 핀란드의 노키아, 네덜란드의 필립스, 유니레버 등이 그렇다.

실제로 세계적 정보통신 기업인 노키아는 핀란드 총수출의 20%, 증시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한다. ‘핀란드에선 대통령 총리 다음으로 힘센 사람이 노키아 최고경영자(CEO) 요르마 올릴라’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노키아의 힘을 빼야 한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핀란드경제연구소(ETLA)의 파시 소르요넨 경제분석팀장은 “핀란드 경제력이 노키아에 집중된 게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노키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핀란드에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오너십을 인정하고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네덜란드는 창업주 후손 등이 경영권을 가질 수 있도록 지배주(priority share)라는 특별주식을 인정해 준다. 필립스의 경우 오너가 1백년 이상 단 10개의 지배주를 갖고 경영진 선임은 물론 경영 전반을 통제해 왔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일반주식에 비해 10배의 의결권을 갖는 차등주를 제도화해 경영권을 보호해준다. “경영권을 보장해 줄 테니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 등은 걱정 말고 기업이나 열심히 키우라는 배려다.”(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 헤슬링 이사)

기업에 대한 이 같은 전폭적 후원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우선 국민들의 실용적 사고방식이다.

“기업이 잘 돼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많이 내 복지가 향상되면 결국 국민에게 이익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정영조 주스웨덴 한국대사) 또 기업들 스스로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큰 요인으로 꼽힌다.

발렌베리 재단의 경우 매년 약 1억달러의 기부금을 공적인 교육과 연구개발(R&D)에 지원한다. 게다가 발렌베리가(家)는 스톡홀름에 있는 고급 휴양 별장을 사용하지 않을 땐 비워두지 않고 회사 직원들에게 빌려준다. 그만큼 재벌에 대한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다.

핀란드가 지난해 반부패지수 1위 국가로 꼽힌 것이 입증하듯 기업의 투명경영은 기본이다.

물론 유럽 강소국의 경우 복지비용 때문에 세금부담이 크다는 점 등 기업애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규제 없이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다는 기업친화적 환경은 기업들에 최대의 매력 요인임에 틀림없다.

이런 친기업적 토양이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결국 유럽 강소국들의 국가경쟁력을 강하게 만든 원천인 셈이다.

스톡홀름·헬싱키=차병석 기자


2004-10-02 [사설]10 한국 位相 교육에 달렸다 [동아일보]

경제 규모로 본 세계 속의 한국은 작지만 강한 강소국(强小國)의 면모를 보인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1위이고 교역 규모는 12위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 꼴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50위에 국제경쟁력, 삶의 질, 투명성·부패지수는 중하위에 불과하다.

D램 등 몇몇 ‘효자 수출품’ 덕분에 덩치는 커졌으나 머리와 가슴이 빈약한 비만아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인구 1000명당 연구개발인력 20위, 1만명당 발표논문 수 29위의 빈약한 성적이 이를 말해 준다. 중국과의 핵심 기술 격차가 2.1년으로 좁혀진 상황에서 2년 후, 또는 10년 후 한국은 어떻게 글로벌 경제시대를 살아갈 것인가.

해답은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세계인과 경쟁해야 하는 지식정보시대엔 그 나라의 휴먼캐피털이 경제를 좌우한다. 국토 면적 109위의 작은 나라에서 경제 성장과 국가 발전을 이끌 원동력은 우수 인재밖에 없다.

그러나 GDP 대비 민간부문 교육비 지출 세계 3위의 교육열을 지녔음에도 교육의 질과 효과는 실망스럽다. 이공계 졸업생 비율이 세계 1위지만 과학기술 논문 수는 14위에 토플점수는 하위권이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이 지경인지 정부와 교육계는 반성해야 한다.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도록 교육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고는 국민소득 1만달러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모든 분야가 세계 최고를 바라보고 뛰는데 교육만 예외일 수 없다. 학교간 교사간 경쟁과 평가를 도입하고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주되 낙후 지역 학교에는 더욱 과감한 지원을 하는 등 교육 개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10년 뒤 한국 위상(位相)은 바로 오늘의 학교 교실에 달려 있다.


2004-09-15 한경연 우리는 규제실험국공정법 맹비난 [이데일리]

[edaily 김병수기자] 15일 오후 국회 정무위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가 예정돼 있는 가운데, 국내 대기업의 입장과 논리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이 참여정부의 `시장개혁 로드맵`에 대한 성토의 장(場)을 마련,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한경연은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장개혁 로드맵의 대안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시장개혁 로드맵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발표자로 나선 한경연 조성봉 박사는 “시장개혁 로드맵은 과거의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을 투명성을 모토로 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정책으로의 전환을 시사하고 있으나 결국 대기업규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규제실험국이냐”고 따지고 “이는 대기업 규제의 상설화 의도”라고 진단했다.

조 박사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기업의 자율적인 노력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공정위는 이를 규제로 해결하려고 한다”면서 “소유·지배 괴리도, 투명성 지수, 책임성 지수, 심지어는 설문조사 결과도 측정기준으로 삼는 회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출자총액제도는 브레이크에, 기업들이 투자처를 찾는 것은 엑셀레이터에 해당된다”면서 “정부가 투자를 유도하겠다면 브레이크에서는 발을 떼야 하지 않겠냐”면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또 “공정위는 경쟁촉진 정책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면서 “oecd 보고서에서도 공정위가 재벌규제를 금융 및 자본시장 감독기구에 맡기고 경쟁정책에 집중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위의 패소비율이 일부 패소를 포함해 55.6%에 달하는 것은 제한된 인력을 경쟁정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대기업규제를 병행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공정거래법을 통해 지주회사의 설립과 운용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는데, 문어발식 확장을 우려하는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계획경제도 아닌데, 기업의 형태도 정부가 디자인할려고 하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우리나라는 자본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고 따라서 선진국처럼 할 수 없다”면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은 금융회사로 하여금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게 함으로써 외국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면서 “강소국을 지향하는 우리도 이를 적극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토론에 나선 최정표 건국대 교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및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 재벌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외국인 지분이 높아지면서 경영권 안정이 문제인데, 이로 인해 출자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남(계열사)의 돈으로 총수의 경영권을 안정화시키겠다는 것으로, 우리나라 재벌처럼 경영권이 계속 대물림되는 상황에서 남의 돈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겠다는 데, 이것이 설득력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회사와 경영권이 안정돼야 투자가 이뤄진다”면서 투자를 위해 재벌의 경영권 유지가 더 시급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한편, 최 교수의 “투명경영을 확보할 수 있는 지배구조개선과 출자총액제도의 빅딜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말에도 한경연 조성봉 박사는 “로드맵의 기본취지”라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2004-09-14 삼성경제연구소 경제 재도약하려면…’ 한국경제]

미래산업에 대한 준비 부족과 고령화, 노사갈등으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5%대에서 4%로 하락하는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제도, 인프라를 서둘러 구축하지 않으면 “영원한 2류 국가”로 전락할 것으로 우려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3일 서울 여의도 산은캐피탈 강당에서 의정연구센터 소속 소장파 국회의원 50명과 기업 경영자 50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제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 제언”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밝혔다.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 진입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기(1990∼1995년)에는 7.0%였고 1만달러 달성 이후(1996∼2003년)에도 5.4% 수준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부터 2010년까지 잠재성장률은 4.0%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이란 추가적인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는 고용 상태에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말한다. 잠재성장률이 4%로 떨어졌다는 것은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성장잠재력이 약화된 원인으로는 △내수 침체와 수출신장세 둔화 △미래 신(新)산업 결여 △낮은 고용률 △고비용 △고령화 △사회적 갈등 등이 꼽혔다.

고물가와 고용 불안으로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바닥을 헤매고, 수출을 주도하는 반도체 휴대폰 등의 뒤를 이을 만한 신산업이 떠오르지 않아 미래 경쟁력도 불투명하다고 삼성연은 지적했다.

◆강소국(强小國)형 성장전략을

삼성연은 한국 경제가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성장 친화적인 정책으로 ‘파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서는 네덜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강소국의 성장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나라는 △역량 집중 △위험 감수를 통한 역동성 제고 △사회 합의를 통한 방향 설정으로 위기를 돌파한 경험을 갖고 있다.

삼성연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미래 유망산업 발굴을 위한 5대 과제’와 ‘제도·인프라 구축을 위한 5대 과제’ 등 10대 긴급 과제를 제시했다.

미래 유망산업 발굴을 위한 과제로는 △디지털 칸(한국의 디지털 실험장화) △네오 뉴딜(IT인프라 구축에 재정 투자) △소프트산업의 성장엔진화 △관광산업 활성화 △농업의 1.5차 산업화 등을 제시했다.

경쟁력의 기반을 이루는 제도·인프라 구축을 위한 과제로는 △세계화 △작지만 강한 정부 △글로벌 관점의 균형 발전 △관계지향형 금융중개시스템 △중소·벤처기업 자생력 배가 등을 제안했다.

김동윤 기자


2004-09-14 삼성, 경제 재도약 10 긴급과제 심포지엄 / 디지털글로벌화 고삐 죄어야” [국민일보]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경제가 미래산업에 대한 준비 부족, 노동인구 고령화, 노사갈등 등에 발목이 잡혀 잠재성장률이 5%대에서 4% 수준으로 하락하는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또 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디지털, 소프트웨어, 글로벌화 등에 집중하는 ‘강소국(强小國·작지만 강한 나라) 전략’을 열쇠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3일 서울 여의도 산은캐피탈에서 국회 소장파 의원들이 주축을 이룬 의정연구센터 등 국회의원 50명과 기업 경영자 50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 제언 심포지엄’을 열었다.

연구소측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한 이후인 1996∼2003년에 5.4%였지만 올해부터 2010년까지는 4.0%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성장률이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완전고용 하에서 자본까지 모두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의 추정치인 잠재성장률이 4%로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단기적으로 경제주체들의 경제의지 복원을 위한 즉각적이고 추가적인 감세,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통한 소비·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연구소는 저성장의 근본 해결책으로 △디지털 칸(Digital Kahn·한국의 디지털 실험장화) △네오 뉴딜(IT 투자) △소프트 산업의 성장 엔진화 △관광산업 활성화 △농업의 1.5차 산업화 등 5가지 정책을 제시했다.

또 경쟁력의 기반을 이루는 제도·인프라 구축을 위해 △세계화 △작지만 강한 정부 △글로벌 관점의 균형 발전 △관계지향형 금융중개시스템 △중소·벤처기업 자생력 배가 등 5가지 정책도 추가로 제안했다.

디지털 칸이란 세계 최고의 디지털 기술 수용도를 지닌 우리나라를 세계적 디지털 테스트베드(실험장)로 활용, 디지털에 관한 한 한국을 칸(Kahn·왕)으로 만들자는 전략이다. 일본 아키하바라(가전제품)나 스웨덴 시스타사이언스파크(모바일)가 관련 제품 시험장이 되면서 고용창출 등의 효과를 거둔 전례가 있다.

네오 뉴딜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투여되는 정부 재정을 미국 뉴딜정책처럼 사회간접자본(SOC) 등 건설부문에 투자하는 대신 수요기반이 충분하고 상당한 기술이 축적돼 있는 IT 부문에 집중하자는 것.

소프트웨어 산업의 성장 엔진화는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실현될 경우 붕괴할 수밖에 없는 제조업의 공백을 지식·감성·서비스·예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핵심경쟁력인 소프트산업으로 메우자는 제안. 연구소는 전통 제조업에도 소프트 요소를 더해 제조업의 서비스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밖에 연구소는 FTA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농업의 자생력 회복을 위해 1차 산업인 농업에 지식산업이나 서비스산업의 장점을 덧붙여 1.5차 산업으로 키우자는 전략도 내놓았다.

김찬희기자


2004-09-14 잠재성장률 4%대로韓國 ‘1 빠졌다/삼성영원한 개도국경고 [서울신문]

한국경제에 대한 우울한 통계와 전망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안팎으로 비틀거리는 우리 경제의 ‘종합검진’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3일 서울 여의도 산은캐피탈 강당에서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제언’ 심포지엄을 열고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의 부재, 고령화, 노사갈등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4.8%에서 2004∼2010년 4%로 하락,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9년 동안 허우적대고 있는 ‘마의 1만달러’ 장벽이 더욱 장기화될 공산이 커 선진국 진입은커녕 영원히 ‘2류국’으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있다고 경고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외환위기 이후 소득격차가 늘고 있는데다 정치적 세대교체에 따른 이념대립이 심화되고 있고, 과도한 이념대립으로 실질적인 미래의 준비는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소는 한국 경제가 현재 경기침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 소득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과 고임금·고비용 구조도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지적했다.

내수침체의 주요 원인인 가계부채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청년층 고용률은 30.8%로 미국(53.9%), 일본(40.3%)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심각한 상황이다.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90∼1997년 0.286에서 1998∼2003년 0.315로 악화됐다.

향후 전망은 더욱 암울했다. 우리의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이 2002년 77개인 반면 중국은 787개로 증가했고, 생산거점의 탈한국 러시 현상도 계속될 전망이다. 반도체와 휴대전화의 뒤를 이을 신산업에 대한 해답도 준비되지 않았다.

고령인구 비중은 2020년 15.1%로 늘어나고 고령화 등 인구요인만으로도 잠재성장률이 2030년이면 3%로 낮아질 전망이다. 세계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조사대상 60개국 가운데 최하위였고 출자총액제한, 부채비율 200% 등 각종 규제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연구소는 향후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통해 현 정권의 ‘경제관’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념대립을 넘어 ‘정치의 계절’에서 ‘경제의 계절’로 전환해야 하고 정부의 직접적 개입보다 자율적 경쟁 환경이 필요하며, ‘나눠먹기식’ 분배정책 대신 기업가가 모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부사장은 “한국이 마의 1만달러를 돌파하고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분배정책보다 성장이 효과적”이라면서 “경제주체간의 ‘발목잡기’를 벗어난 사회적 합의, 역량의 집중, 과감한 위험감수 등으로 우리의 환경에 걸맞은 강소국형 성장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같은 전망에 대해 재정경제부 이승우 경제정책국장은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지만 정부가 보는 잠재성장률 공식수치는 여전히 ‘5%내외’”라고 말했다.

안미현 류길상기자


2004-09-03 삼성 내년 유럽 매출목표 200”/이건희회장 헝가리서 전자사장단회의 [서울신문]

삼성은 유럽시장 공략을 강화해 전자 관계사의 내년 유럽 매출을 200억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삼성은 동유럽 사업장을 방문 중인 이건희 회장 주재로 1일(현지시간) 헝가리에서 전자사장단회의를 갖고 ▲동유럽, 서유럽, CIS(독립국가연합) 등 유럽 3대 경제권별 특성화된 경영전략 추진 ▲차별화된 감성마케팅 전개 ▲유럽 강소국과 선진기업의 글로벌전략 벤치마킹 등 유럽시장 확대를 위한 3대 전략을 마련했다고 2일 밝혔다.

삼성 전자 관련 계열사의 유럽시장 매출은 2002년 90억달러, 2003년 120억달러를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0%가량 늘어난 16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 매출목표는 올해 예상액 대비 25%가량 늘어난 것이다. 이번 사장단회의는 국가별로 다양한 특성이 있는 유럽시장에서 브랜드와 디자인, 기술력 등 첨단분야의 경쟁력 우위를 무기로 최고급 시장을 선점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삼성 측은 설명했다.

이 회장은 회의에서 “기업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치밀한 전략과 세계 일류 수준의 기술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며 유럽연합(EU) 시장 확대를 위해 지금까지의 전략과 인식을 재점검할 것을 주문했다.

이번 헝가리 회의에는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부회장, 최지성 사장, 삼성SDI 김순택 사장, 삼성전기 강호문 사장 등 전자계열 사장단과 삼성전자 구주전략본부장 양해경 부사장, 구주총괄 김영조 부사장 등 유럽담당 경영진들이 참석했다.

삼성은 현재 유럽에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코닝, 삼성SDS, 삼성네트웍스 등 전자 관련 6개사가 16개국, 총 46개 지역에 진출해 있다.

박건승기자


2004-09-03 삼성 유럽시장 본격 공략 나섰다 [조선일보]

삼성그룹은 세계 최대 단일 경제권으로 부상한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지역별로 특화된 경영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유럽시장 확대 3대 전략’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삼성은 내년도 전자 계열사들의 유럽지역 매출을 올해보다 25% 증가한 200억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삼성은 1일 오후(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이건희(李健熙) 회장 주재로 ‘전자 사장단 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삼성의 유럽시장 확대 3대 전략은 ▲서(西)유럽은 소비시장, 동(東)유럽은 생산기지, CIS(독립국가연합)국가는 천연자원 조달거점으로 각각 특화된 전략을 세우고 ▲이 회장의 관심 분야인 애견·승마 대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등 감성 마케팅을 구사하며 ▲핀란드·네덜란드 등 강소국들과 선진 기업에 대한 벤치마킹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유럽 각국에 흩어져 있는 삼성 공장들은 조만간 모두 동유럽 쪽으로 이전할 전망이다.

감성 마케팅과 관련, 그동안 삼성은 유럽에서 ‘삼성 네이션스 컵’이란 이름으로 국가대항 승마대회를 후원해왔으며, 영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애견 품평회인 ‘크러프트 애견 쇼’도 지난 93년부터 지원해왔다.

삼성그룹 전자계열사들의 유럽매출은 2002년 90억달러, 2003년 120억달러를 각각 기록했으며, 올해는 작년보다 30% 가량 늘어난 160억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내년도 매출목표는 올해보다 25% 가량 늘어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이날 “기업간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치밀한 전략과 세계 일류 수준의 기술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면서 “EU(유럽연합)의 확대는 시장 확대라는 기회와, 경쟁 심화라는 위협을 동시에 가져다 주므로 지금까지의 전략과 인식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헝가리 회의에는 삼성전자의 윤종용(尹鍾龍) 부회장, 이윤우(李潤雨) 부회장, 최지성(崔志成) 사장, 삼성SDI 김순택(金淳澤) 사장, 삼성전기 강호문(姜皓文) 사장 등 전자계열 사장단과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李在鎔) 삼성전자 상무가 참석했다.

삼성그룹은 현재 유럽에 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기·삼성코닝·삼성SDS·삼성네트웍스 등 전자 관련 6개 회사가 16개국, 총 46개 지역에 진출해 있다.

최홍섭기자


2004-09-02 삼성 내년 유럽 매출 200 목표(상보) [머니투데이]

삼성그룹이 내년도 유럽지역 매출 목표를 올해 예상매출액 대비 25% 증가한 200억달러로 책정하는 등 올림픽 마케팅 효과를 살려 유럽시장 공략을 본격 강화한다.

특히 삼성은 ▲유럽지역을 동·서유럽·CIS(독립국가연합) 등 3개 경제권으로 나눠 권역별로 특성화 경영을 펼치는 한편 ▲차별화된 ‘감성 마케팅’으로 최고급시장을 공략하고 ▲유럽 강소국 선진기업의 글로벌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등 ‘유럽시장 확대 3대 전략’을 집중 추진하기로 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일 헝가리 현지에서 ‘전자 사장단 회의’를 주재, EU확대와 함께 큰 변혁이 예상되는 유럽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올해 동유럽 등 지의 10개국이 EU에 추가 가입해 유럽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단일 경제권으로 부상하게 됐다”며 “EU의 확대는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가져오므로 전략과 인식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한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부회장, 최지성 사장, 삼성SDI 김순택 사장, 삼성전기 강호문 사장 등 전자계열 사장단은 유럽시장의 환경변화를 분석, 전망한 후 내년 유럽지역 매출 2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다.

삼성의 전자 관련 회사들의 유럽 매출은 지난 2002년 90억달러에서 2003년 120억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 보다 30% 정도 증가한 160억 달러로 예상되며 삼성은 내년 목표를 다시 25% 늘려 잡는 등 공격 경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방침이다.

삼성은 유럽 전역에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코닝, 삼성SDS, 삼성네트웍스 등 전자 관련 6개사가 16개국, 총 46개 거점에 진출해 있다.

한편 삼성은 유럽지역을 소비시장(서유럽), 생산기지(동유럽), 천연자원 공급원(CIS) 등 특성 별로 나눠 연구개발과 경영관리 전반을 차별화하는 특성화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감성 마케팅을 강화해 최고급 소비자층 공략에 나서는 동시에 올림픽 스포츠 마케팅과 휴대폰, 모니터로 높아진 브랜드 파워를 디지털 TV 등 첨단 디지털 분야 시장 선점에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이밖에 삼성은 네덜란드 필립스 등 유럽 강소국 선진기업들에 대한 벤치마킹과 함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성화용 기자


삼성, 유럽 공략 강화 배경은.. [머니투데이]

삼성이 헝가리 현지에서 사장단회의를 열어 ‘유럽시장 확대전략’을 구체화한 것은 가입국 확대로 비중이 커지고 있는 EU 경제권에서의 시장 선점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다.

특히 대성공으로 마무리 된 올림픽 마케팅의 탄력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도와 함께 서유럽의 프리미엄급 소비자들에게도 충분히 먹혀들 수 있는 최고급 브랜드로 성장했다는 자신감도 배경에 깔려 있다.

이건희 회장은 EU가입국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시장의 확대’ 이면서 동시에 ‘경쟁의 심화’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기회와 경쟁의 시장 유럽에서 ‘글로벌 베스트’로 공인 받기 위해 ‘2005년 매출 200억달러’를 1차 목표로 설정했고,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달성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3대 전략 구체화 = 헝가리 사장단 회의에서 구체화된 삼성의 3대 전략은 유럽시장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다.

우선 삼성은 EU가 루마니아, 불가리아는 물론 CIS 국가로 경제권이 확대되면서 소비시장(서유럽), 생산거점(동유럽), 천연자원(CIS)을 모두 갖춰 자급자족 경제권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경제규모로 보면 EU 전체의 5%에 불과하지만 성장성이 높고 이머징 마켓으로 기대되고 있는 동유럽을 전략적 생산기지로 활용하면서 신규사업을 적극 발굴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연구개발(R&D), 마케팅, 디자인, 경영관리 등 경영 전반을 지역별로 특성화· 현지화한다는 방침하에 현지 핵심인력을 발굴, 육성하는 데도 힘을 쏟기로 했다.

한편 삼성은 세계 최고급 시장인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감성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채택했다. 다민족, 다국가의 특성을 띤 유럽 최고급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브랜드, 디자인, 기술력의 조화를 통해 고객의 감성에 호소하는 세련된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특히 이 회장이 일찍부터 추진해온 애견·승마에 대한 지원사업을 감성마케팅의 한 축으로 활용해나갈 방침이다. 삼성은 유럽 각국에서 개최되는 삼성 네이션스컵 승마대회와 영국 버밍햄에서 열리는 크러프트 도그쇼를 후원해 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왔다.

이밖에 유럽 강소국 모델을 삼성에 녹이는 작업도 계속해나갈 방침이다. 네덜란드의 필립스, 핀란드의 노키아, 스웨덴의 에릭슨 등 소국에서 사업을 시작해 세계 초일류로 성장한 기업들로부터 배울건 배우고 협력관계도 넓혀 미래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최고급 브랜드’ 자신감 = 삼성이 유럽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부상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데는 까다로운 유럽의 소비자들을 공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휴대폰과 모니터의 브랜드 이미지는 세계 정상급이고 여기에 아테네 올림픽 마케팅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브랜드 파워는 한층 탄력을 받아 커지고 있다. 삼성은 이 흐름을 타면 디지털 가전시장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어떤 제품이건 유럽시장은 보수적인 소비층이 두터워 파고 들기가 쉽지 않지만 삼성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며 “예상을 넘는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유럽의 시장환경도 급변하고 있는 만큼 현지 사장단 회의를 통해 전략을 재점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성화용 기자


2004-08-02 “한국경제 강소국 있다” [서울경제]

외국 자본은 한국 경제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영미식 자본주의만이 우리 경제의 돌파구일까.

지난 주 화요일(7월27일)부터 5일 연속 방영된 KBS 스페셜 ‘한국경제 제3의 길’(오후10시)은 경제 관련 국내 시사 다큐멘터리로는 편성과 내용 모두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었다.

자칫 단발성으로 끝날 법한 내용을 한 주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다뤘고, 노사 어느 한 편으로 기울지 않으면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보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제작진은 김영삼 정부 이후 10여년간 우리 경제 정책의 밑바탕이었던 ‘세계화’ 주장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접근했다. 미국을 비롯해 멕시코 영국 한국 등 영미식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채택한 국가들에서 하나같이 제조업이 죽어가고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프로그램은 베네룩스 3국, 스칸디나비아 반도국가 등 이른바 ‘강소국’ 벤치마킹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노동부분(3부) 제작을 맡은 김영환PD는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국내경제학계에 주로 포진해 있다 보니, 우리와 공통점이 전혀 없는 미국식 제도가 주류인 것처럼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PD는 “자본력의 미국, 기술력의 일본, 노동력의 중국 등 강대국들에 둘러 쌓인 우리로선 강대국들의 뒤를 따르기보단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강소국’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제3의 길’은 국내 공중파 프로그램에선 처음으로 참여연대식 재벌개혁에 문제점을 제기했다. 프로그램은 이들이 주장하는 주주자본주의가 빈부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을뿐더러, 단기실적만을 쫓는 게 우리 경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 수 등이 주축인 대안연대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제작진 측은 “그간 주류 언론에서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적이 거의 없었다”며 “이들뿐 아니라 취재 과정에서 만난 외국 석학들이 지적한 우리 경제 구조의 위기에 대해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이상훈기자


2004-07-01 [특별기고]위기의 대한민국, 강소국핀란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신동아]

위기의 대한민국, ‘강소국’ 핀란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냉철한 실용주의, 창의력 개발, 지속적 개혁으로 국가경쟁력 키워라

핀란드는 한반도 크기의 1.5배, 인구 510만명의 조그만 나라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은 세계 최상급.

2001년엔 종합적 복지지수 면에서 세계 2위로 평가받기도 했다. 1999년 국가경쟁력이 38위로 떨어졌다 2003년 겨우 25위에 턱걸이한 한국이 핀란드에서 배울 교훈은 무엇인가.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의 성공비결을 분석했다.

핀란드는 주어진 환경의 열악함을 딛고 일어서 세계 최상급의 국가경쟁력을 일궈냈다. 북구에서도 가장 동쪽, 러시아 접경지대에 위치한 핀란드는 한반도의 1.5배 크기에 510만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다. 하지만 국가경쟁력으로는 여러 영역에서 이미 세계 최상급에 속한다.

특히 종합적 복지지수로 볼 때는 2001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마련한 인간개발보고서에서 세계 2위로 평가받았다. 그만큼 핀란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되었으며 희망찬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세력 사이, 북극권에 가까워 농업조건이 불리하고 아름다운 호수와 삼림 이외엔 특별한 부존자원도 없는 땅에 자리잡은 핀란드인의 삶이 처음부터 그렇게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우리 민족 못잖게 많은 역경을 극복해야 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전쟁 초기 나치 독일과 연합했던 대가로 소련에 카렐리야의 절반을 빼앗기고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따라서 1970년대까지도 국민의 일부가 간호사 등 일자리를 찾아 취업이민을 떠나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핀란드는 드디어 산업화된 복지국가로 변신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1990년대 초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 여파로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률이 20% 이상 치솟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고, 수년에 걸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1995년 당시 핀란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고 국가경쟁력은 18위였으나, 국가경쟁력은 비록 26위로 그들보다 낮지만 세계 13위의 경제규모와 높은 성장률로 바짝 추격해오는 한국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의 성공비결을 알아내려 대학 총장단이 문교부 장관 인솔 아래 한국을 방문하는가 하면 그때까지 애써 이룩해놓은 복지국가체제를 대폭 수정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몇 년 사이 핀란드는 다시 한번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활용하는 데 성공해 세계 1등국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사회주의의 이상을 혁명 없이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리의 성실한 수용을 통해 달성한 것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우리는 마치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에 걸리기라도 한 듯 10년 넘게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1999년 38위로 떨어졌다 2003년 25위로 겨우 회복한 국가경쟁력 순위나마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핀란드인의 불굴의 정신 그렇다면 핀란드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는 일은 우리와 별 관계도 없는 듯한 먼 나라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무엇인가 배울 것을 제공하는 상대를 연구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학문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유익할 뿐 아니라 절대 필요한 일이다. 이제부터 핀란드인의 사고방식과 일처리 방식을 한국인의 그것과 비교 관찰해볼 기회를 가졌던 상식인의 견지에서 핀란드의 발전경로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식기반경제로 국가간 승부가 가려지는 오늘의 현실에서 어느 나라에서고 인적자원 이상으로 중요한 자원은 없다. 인구 500만명을 겨우 넘는 핀란드가 세계 1등 복지국가를 건설했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높은 위상을 차지하게 된 것은 적은 수의 국민이 각기 제 나름의 능력을 최대한 발굴해내고 그것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문화·정치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들이 밟아온 역사적 경로와 그 결과 형성된 정신적 풍토, 곧 종교적·도덕적 자질, 사회의식, 정치적 이상 등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설명되기 어렵다.

핀란드 사람들은 흔히 자기들의 정체성을 S자로 시작하는 3개의 낱말, 즉 시수, 사우나, 시벨리우스(Sisu, Sauna, Sibelius)로 표현한다. 그중에서 길고 음산한 겨울을 지내는데 필수적인 사우나나 핀란드인의 애국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에게도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시수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시수는 핀란드 국민 특유의 불굴의 정신을 말하는 것으로, 순탄치 않은 역사를 거치면서 단련된 외유내강의 기질, 무쇠와도 같은 정직과 강건함이라 할 수 있다.

언어와 종족으로 보아 핀란드인의 조상은 바이킹족이나 동슬라브족과 확연히 구분되는 원시적 산림족이었다. 그러나 13세기경부터 핀란드는 스웨덴의 행정체제 속으로 흡수됐고, 19세기초 러시아제국 내 핀란드공국으로 그 지위가 바뀌기 전까지 약 600년간 스웨덴의 일부였다. 언어와 종족이 다른 스웨덴인의 지배구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변경지대의 이민족으로 차별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오늘날에도 정치적·문화적으로 핀란드와 가장 가까운 나라는 스웨덴이지만 운동경기에서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상대로 인식되는 것 또한 스웨덴인 것은 이런 역사적 관계가 남긴 정서적 유산이다.


2004-06-22 [살고 싶은 한국 만들자] [헤럴드경제]

국민사랑이 기업 키운다 다시 기업가 정신이다

세계적 기업 뒤엔 ‘뜨거운 국민사랑’ 있다

기업인 국내선 죄인취급 여전… 무책임한 비판도 일쑤

勞使政 손잡고 親기업 사회분위기 조성 의욕 돋워야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기업도시 포럼에 참석했던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얼마 전 방문했던 핀란드에서 받은 깊은 인상을 털어놨다.

“핀란드 사람들은 세 가지 자랑거리가 있다고 하더군요. 하나가 시벨리우스이고, 또 하나가 사우나, 그리고 노키아였습니다. 국민경제에 기여도가 큰 기업이 국민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라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도 의정활동의 중요 사항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힘쓰겠습니다.”

시벨리우스는 조국 핀란드가 러시아의 속국으로 있던 19세기 말 교향시 ‘핀란디아’를 작곡해 핀란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작곡가이고, 사우나는 핀란드 특유의 증기목욕법으로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만큼 핀란드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정작 흥미를 끄는 것은 노키아라는 기업이 국민의 자랑거리라는 점이다.

◆국민사랑이 기업 키운다=실제 우리 국민도 국내 기업을 통해 자부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주로 해외다. 유럽의 관문인 프랑스 드골공항에 내려서 바라보는 삼성 휴대폰 애니콜 대형 조형물이나, 중국 베이징 거리를 다니며 보는 LG의 광고판, 미국의 고속도로를 다니며 만나는 현대자동차를 보면서 긍지를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은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국내에 들어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압축성장 과정의 산물인 한국의 고유한 경영관행은 비윤리적으로 몰리고 있고, 기업인들은 죄인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매출액을 늘리고, 이윤을 많이 내면 경제력 집중 문제가 거론돼 그런 일련의 경영활동은 타 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존터전을 뺏는 행위로까지 취급받는다. 삼성 LG 현대차는 입사는 하고 싶지만 좋은 인상의 기업은 아니라는 설문 결과는 이 같은 점을 함축적으로 나타내준다.

핀란드 국민이 자랑거리인 노키아는 실제로 핀란드 정보기술(IT)제품 수출의 70~80%, IT제품 생산의 45%를 점유하고 있으며 IT산업 고용인력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또 핀란드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3%, 전체 수출의 24%, 전체 세수의 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 사람 그 누구도 노키아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문제삼지 않는다. 오히려 노키아는 핀란드 정부의 중장기 국가비전 수립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일부 임원은 외부 전문가로서 총리 직속기구인 과학기술정책이사회에 참석해 국가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

노키아를 능가하는 삼성전자는 국가 전체 수출액의 14.8%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구·개발(R&D)비는 12월 결산 463개 상장사 전체 R&D투자의 40.1%에 이른다. 임직원 수는 463개 상장사의 7.37%에 다다른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경제정의를 외치는 시민단체의 주요 타깃으로 법적 소송과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의 불법, 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기업의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무책임한 비판도 처벌받아야 한다” 면서 “기업이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칭찬과 격려와 사랑을 보내주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친(親)기업정서 조성 필요=재계 관계자들은 최우선적으로 친기업적 사회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경제성장에 기여도가 높은 기업에 대해 사회적 후원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 기업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이 사회전반적으로 흐르는 한 기업·기업인들의 투자의욕은 꺾이고 보람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현재 사회 분야별로 친시장적·친기업적 네트워크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교수, 언론인, 법조인 등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활용해 친시장·친기업적 사회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는 것.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시장경제이념과 친기업 정서 확산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기업들이 국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 쪽에서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 정부가 모두 참여해 기업의 역할과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례로 핀란드에서는 현재 ‘기업가정신 앙양 10년계획(Decade of Enrepreneurship 1995~2005)’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 부처와 경영자단체, 노동계, 학계 등이 참여해 기업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데 힘을 쓰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대기업에 왕실에서 로열(Royal, 네덜란드어로는 Koninklijke)이라는 칭호를 부여해 사회적 존경을 유도하고 있다. 현재 로열더치셸그룹 등 250여개 기업이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같은 프로그램들이 네덜란드와 핀란드를 강소국(强小國ㆍ작지만 강한 나라)으로 이끄는 밑바탕이 됐으리라는 추론은 쉽게 할 수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의 현재 처지나 사정을 살펴볼 때 핀란드나 네덜란드 등 유럽 강소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면서 “기업과 기업인의 의욕이 꺾여서는 경제가 살 수 없다” 고 말했다.


존경받는 기업 되려면

경영성과+사회적 책임·윤리 덕목 갖추고 고객·주주·근로자 등 신뢰 확보할 때 가능

미국의 포천 지(誌)가 매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을 발표할 때 쓰는 평가항목은 ①기업의 혁신성 ②기업 자산의 운용 ③글로벌화 ④경영의 질 ⑤임직원의 능력 ⑥제품 및 서비스의 질 ⑦장기적인 투자가치 ⑧재무적 투명성 ⑨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이다. 그렇다고 ①이 가장 중요한 항목은 아니다. 포천 지는 혁신 등 효율적인 경영을 통한 우수한 경영 성과 달성은 단지 존경받는 기업의 70%를 충족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 등으로 나타난 기업의 사회적 리더십이 존경받는 기업의 나머지 30%를 결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적 책임, 윤리 등이 기업의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매출, 이익 등 재무적 성과만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약속받는 시대는 가고 이를 뛰어넘어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의 신뢰가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삼성 현대차 포스코 등 세계적인 기업으로 커가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이 최근 사회적 책임, 윤리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시대 흐름을 쫓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낱말이 ‘존경받는 기업’이다. 기업이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경영성과가 탁월해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성호 상무는 “재무적 성과는 기업이 존경받기 위한 요건”이라며 “성과가 없으면 기업의 사회공헌 실현이 어렵다” 고 말했다.

실제로 포천 지는 ‘존경받는 기업’ 후보에 연매출 80억달러(9조5000억원 정도) 이상을 하한선으로 긋고 있다. 역으로 포천 지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들은 S&P500기업의 배에 달하는 성과를 기록하고 있고, 전경련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기업들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주가, 이익이 크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전제조건을 충족한 기업들이 윤리경영, 투명경영,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고객, 주주, 투자자, 종업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확보할 때 존경받는 기업이 나온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대기업 가운데 ‘존경받는 기업’이라고 불릴 만한 기업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오히려 ‘반기업정서’의 역풍을 맞아 기업·기업인이 죄인으로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을 뒤집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은 더욱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한 연구원은 “사회구조, 정치 수준, 국민정서 등을 탓하기에 앞서 기업들이 먼저 기업 시민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나서야 한다”면서 “최고경영진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하고, 사회공헌도 먼 장래를 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정리=우인호 기자(ino@heraldm.com)


2004-06-17 [재출항! 한국 어디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 강소국 [서울경제]

네덜란드는 지난해 노사간 합의를 통해 3년간 임금을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2001년부터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돌아선 후 급기야 지난해에는 마이너스 성장(-0.8%)을 나타내자 이대로 가면 안되겠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들어 추가적인 임금 삭감 논의가 불거지자 노사가 서로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네덜란드의 노·사관계는 다시 중대한 기로에 섰다. 네덜란드는 폴더 모델(Polder Model)로 불리는 사회적 협의 체제를 통한 노사협력에 힘입어 유럽 최대의 물류기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물가상승 등 고도성장의 후유증과 노동시장의 경색을 걱정하는 처지다. 경기 침체로 재정이 줄어들자 정부는 긴축 정책으로 돌아섰다. 그 결과 복지혜택이 줄어들어 노동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노사정 협의체인 사회경제협의회(SER)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덕분에 SER 관계자들도 다시 바빠졌다. 불황으로 노·사간의 쟁점이 늘어나자 이들을 중재해야 할 SER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다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폴더 모델로 위기 극복=네덜란드는 흔히 ‘유럽의 작은 거인(Little Giant)’으로 불린다.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1 수준이나 무역규모로는 세계 8위다. 네덜란드는 유럽대륙 전체 수입 물량의 60%, 수출물량의 30%를 취급하는 ‘유럽의 관문(Gate)’이기도 하다. 지표면이 바다보다 낮은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물류·화훼·금융산업 등을 중심으로 10년이상의 장기 호황을 구가했다.

네덜란드가 이처럼 작지만 강한 강소국(强小國)의 전형으로 성장한 것은 강력한 경제개혁 때문이다. 네덜란드 역시 80년대 초까지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방만한 사회보장 제도로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노사 갈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급기야 81~82년에는 2년 연속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기록했다. 기업의 도산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실업률은 12%까지 높아졌고,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6.2%까지 치솟았다.

네덜란드 정부와 노사는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82년 11월 ‘바세나르(Wassenaar)협약’으로 불리는 노사간 대합의를 일궈냈다. 당시 노동계대표가 바로 네덜란드 전 수상인 코크(Kok)다. SER의 레오 파세 박사는 “ 노사정 3자간 협의를 통해 고임금 등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파트 타임제를 도입하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개혁안들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사회보장 개혁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종 임금의 70%까지 지급되던 실업수당을 법정임금의 70%로 줄이는 동시에 수혜기준도 강화했다. 이에 따라 70년대만 해도 8%를 웃돌던 임금 상승률이 ▦83년 –0.5% ▦84년 –2.8% 등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임금 등 비용 감소는 결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강소국 모델, 위기 속에 다시 한번 위력 발휘할까=네덜란드는 복지를 중시하는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강력한 개혁의 리더십을 발휘해 국가역량을 경제에 집중시킨 결과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사태 이후 유럽 전역에 밀어닥친 경제 침체로 네덜란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에는 실질경제 성장률이 -0.8%까지 떨어졌고, 실업률은 5.1%로 뛰어 올랐다. 네덜란드 노사정은 다시 일어서기 위해 SER을 중심으로 노동·복지 개혁 문제를 놓고 활발하게 논의를 진행 중이다.

아직은 노사정이 서로 만족할 만한 결과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크리스 드리셍 네덜란드 노총(FNV)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초부터 노사정 3자간에 임금을 추가로 삭감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지난달에 협상이 무산됐다”며 “정부와 사용자측이 조기 은퇴와 이에 따른 사회보장을 약속했던 기존 안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협상이 깨졌다는 것은 현재 상태로서는 ‘폴더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노사정이 따로 내놓은 협상안을 서로 거부한 채 갈라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들은 노사정이 과거처럼 합리적인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요한 반 위젤씨(무역회사직원)는 “네덜란드는 사회공동체주의의 역사적 전통이 깊은 나라”라며 “지금 당장은 문제점이 많을지 모르지만 노사정간의 자연스러운 협의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김정곤특파원


▷개방·경쟁우선 정책 노동시장도 유연화

유럽의 강소국들이 보유한 경쟁력의 원천으로는 ▦개방과 경쟁을 우선시하는 자세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 ▦유연한 노동시장 ▦효율적 복지시스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곧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외국인들의 투자가 늘어났고, 이를 발판으로 경제적 번영의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 80년대 초반 아일랜드는 20%가 넘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15%가 넘는 실업률로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로 간주됐다. 노사갈등은 심했고 외국 기업들은 보따리를 싸 철수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선(先) 성장, 후(後) 분배’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외자유치에 주력했다.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를 낮추고 양질의 노동력을 값싸게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또 사회협약을 통해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동시에 노사안정을 추구했다. 그 결과 90년대 들어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네덜란드 역시 바세나르 협약 체결을 계기로 경제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결과 90년대 들어 경제성장, 고용창출, 정부 재정 등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렸다.

이들 국가는 국민대통합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복지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강소국들은 불리한 경제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조금씩 희생하고 노력하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가 추진한 경제개혁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이들 국가의 경험을 교훈 삼아 시행착오를 최소화 하되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나 정치·경제적 실정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성장 우선 정책에 무게를 두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 갈등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상욱 KOTRA 암스테르담 무역관장은 “유럽 국가들의 사회합의 전통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며 “한국의 특수한 역사·경제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후 여기에 맞는 사회통합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4-06-09 “中企정책 전면 재검토를” [한국일보]

경기 부진과 생산비 상승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정부 주도의 지원형 정책에서 벗어나 창업과 혁신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8일 ‘선진국의 중소기업 정책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창업·혁신 지원에 중점을 두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중소기업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시장중심형 중기 정책을 시행중인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의 직접지원 제도를 폐기하고 혁신형 중소기업에 자본금의 3배까지 보증을 제공하는 ‘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 프로그램’을 시행, 세계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생력 배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독일은 중소기업 연구진에 대한 인건비 보조 등 특화 분야에 매진하는 ‘장인 정신’을 강조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별 정책 대신 클러스터(산업단지)별 지원책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강소국'(强小國)인 핀란드는 이공계 대학에 대기업·중소기업간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사이언스 파크’ 조성과 정보통신 클러스터 관련 중소기업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이갑수 수석연구원은 “한국도 창업·혁신 지원을 중기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중기 전담은행을 지역별로 설치하는 등 핀란드형 클러스터 육성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병률기자


2004-06-08 재출항! 한국 어디로] 강소국에게 배운다 [서울경제]

‘작지만 강한 국가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을까’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인 미국과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는 중국. 그 틈새에서 영토나 인구 규모도 크지 않고 내세울만한 천연자원도 없는 한국 경제가 살아 남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세계화 흐름 속에서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전략수단은 공격성과 국가의 ‘매력’을 높이는 방법”이라며 “특히 네덜란드, 아일랜드, 핀란드 등 강소국의 사례를 볼 때 성공 뒤에도 지속적으로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국가전략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균형적 전략화훼 등 전통산업 고부가화 노사정합의로 사회갈등 해소

네덜란드는 지난 80년대 초 대외적으로는 교역조건이 악화되고 내부적으로는 복지후유증까지 겹치면서 경제위기를 맞았다. 네덜란드가 택한 방법은 기존의 장점을 살리면서 새로운 산업 흐름을 주도하는 ‘균형적 전략’.

전통 산업인 낙농업과 화훼산업을 고부가가치화시키는 동시에 필립스를 선두로 디지털기업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했다. 유럽 최고 수준의 항만과 공항시설을 갖추고, 노·사·정 3자간의 사회적 합의구조를 통해 사회갈등을 ‘시스템’ 안에서 해결한 것도 외국인 투자자가 볼 땐 매력적인 요소였다.

82년부터 18년간 경제개혁을 거친 결과 네덜란드는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조화를 동시에 달성했고 90년대 들어 유럽의 모범생으로 공히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아일랜드-적극적 개방선진 외국기업 유치에 사활 美의 對유럽투자 23% 집중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아일랜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서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아일랜드는 외국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방정책은 미국 등 세계 유수의 하이테크 기업들을 아일랜드로 끌어들였다.

델, IBM, 매킨토시, 마이크로소프트, 모토로라, 코카콜라 등 유럽시장을 겨냥한 거대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둥지를 틀었다. 미국의 대유럽 투자의 23%가 아일랜드에 집중됐다.

이제 아일랜드는 유럽연합(EU)에 새로 합류하는 동유럽 국가의 부상에 대비한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다. 선진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고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보다 정교한 국가개발계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핀란드-효율적 교육산학협력 등 실용적 교육정책 정보화사회에 성공적 적응

핀란드의 경쟁력은 효율적인 교육시스템을 통해 정보화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데서 출발했다. 광범위한 의무교육 체계와 직업교육, 산학협력을 독려하는 정부의 실용적인 교육정책은 핀란드의 인재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했다.

여기에 정부의 강도 높은 개방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정보통신산업은 전통산업인 목재, 제지산업을 제치고 핀란드의 대표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세계적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노키아는 현재 전체 수출의 24%, 국내총생산 (GDP)의 30%를 책임진다. 또 500대 기업의 3분의 1이 외국인기업 또는 외국인지분 50% 이상의 기업일 정도로 핀란드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로 평가 받고 있다.


2004-05-17 [창간 16대한민국 새틀을 짜자]1 정체성을 찾아서 [한겨레]

■스웨덴 /재벌-사회 대타협통한 공존모색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7월 유럽 최대 재벌인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을 방문했다. 당시 삼성 쪽은 “북유럽 강소국 모델을 둘러본 것”이라고 밝혔지만, 재계에서는 ‘대재벌과 사회의 공존 모델’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행보로 이해했다.

발렌베리는 가족 대주주들이 5대에 걸쳐 오너 경영을 해온 대표적인 재벌가이자, 스톡홀롬 증시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는 14개 대형 상장기업을 거느린 유럽 최대의 기업집단이다.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 에릭슨,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 자동차회사 사브 등이 주력 계열사다.

이런 재벌가의 엄청난 경제력 집중에 대해 정작 스웨덴 국민들의 정서는 부정적이지 않다. 지난 3월 방한한 요란 페르손 총리는 이에 대해 “대기업 오너들이 국가 경쟁력을 위해 투자하고,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은 1920년대까지 세계 최고 파업률을 보이며 극심한 계급 대립을 겪었지만, 30년대 사민당 집권 이후 ‘노사 대타협’을 이뤄 국가의 모습을 확 바꿨다. 노동이 차등주식제도 등 자본의 경영권을 인정하고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자본은 세금을 더 내고 노조와 사회의 감시를 받아들였다. 정부는 세금 감면과 복지 확대로 화답했다. 발렌베리의 부와 경영 세습은, 고율의 소득 누진세와 노조의 경영 참여를 수용하고 불황기엔 적극적인 고용 투자에 나서는 등 사회와의 ‘공존의 약속’을 충실히 지킨 대가인 셈이다. 네덜란드·벨기에·노르웨이·핀란드 등 인접 국가들도 스웨덴과 유사한 계급 타협을 통해 강소국 모델을 정착시켰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노사는 서로가 활발히 침투할수록 대립의 모순이 약화된다는 것을 이들 국가는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2004-05-12 [동아광장] 국가경쟁력 괜찮은가? [동아일보]

알프스산맥을 병풍처럼 두른 스위스의 레만 호수. 짙푸른 물, 그 위에 떠 있는 하얀 요트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절경을 빚어 내고 있다. 로잔…. 레만 호반(湖畔)에 있는 아름다운 고도(古都)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와 올림픽 박물관이 있어 올림픽 관련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신었던 운동화도 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IMD, 60개 나라중 35위 평가▼

경제 경영 전문가들에게도 로잔은 친근한 도시다. 한계효용이론을 주창한 로잔학파는 경제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바 있다. 요즘엔 이곳에 있는 국제경영개발원(IMD)이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함에 따라 주목을 받는다. 이 보고서는 국가경영에 대한 성적표 성격을 띠고 있다.

IMD는 로잔 시내에 있는 소규모 교육 및 연구기관이다.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몇몇 연구진이 해마다 국가경쟁력 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있다. 이런 자그마한 기관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여러 자료를 내놓고 있으니 스스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강소국(强小國) 스위스의 특성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하겠다.

몇 년 전에 로잔을 방문했던 추억을 떠올리면 낭만적인 감흥에 젖어야 할 법한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IMD가 밝힌 한국의 낮은 국가경쟁력 탓이다.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국가경쟁력은 인구 2000만명 이상의 30개국 가운데 작년과 같은 15위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대상국 60개국 중에서는 작년 37위, 올해 35위로 엇비슷하다. 올해 전체 순위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던 싱가포르(2위), 홍콩(6위), 대만(12위)보다 훨씬 뒤졌다.

부문별로 따지면 걱정스러운 점이 수두룩하다. 노사관계에서는 60위로 작년에 이어 2년째 꼴찌다. ‘대학교육이 경제적 수요를 충족하는가’라는 항목은 59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가 55위, 정부의 경제운영 성과가 49위다.

성적이 좋은 부문도 적잖다. 초고속통신망(1위), 기업의 개혁마인드(3위), 경영진의 국제경험(5위) 등 통신 인프라와 기업 부문이다.

한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가. 노사관계, 교육, 정부 등이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음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가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외국인의 눈엔 한국은 노사관계가 매우 불안정한 나라로 비친다. ‘친노(親勞)’ 성향 인물로 분류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경제 상황이 불안하지 않은데 왜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해도 투자 결정 당사자인 외국인과 국내 기업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투자를 꺼린다. 불안하지 않음은 주장 대신 객관적 상황으로 증명돼야 한다.

인적자원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데도 교육 효율성이 뒤떨어진 나라로 평가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평준화 교육이란 명분 때문에 인재들은 창의력, 수월성(秀越性)을 발휘하지 못하고 뒷덜미를 잡히고 있다.

피터 로랑지 IMD 학장은 자주 한국을 찾는다. 작년 10월 방한 때는 한국의 문제점으로 강경한 노조, 정부 관료의 부패, 기업하기 힘든 환경 등을 들었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유연한 사고(思考)’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달에 서울에 와서는 “부패를 없애고 교육 현장에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정부가 민간 경쟁력 옥죄어서야▼

어떤가. IMD의 보고서와 충고가 옳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국제적으로 비교해서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정부와 권력자들이 그나마 경쟁력이 높은 민간부문을 옥죄고 그걸 ‘개혁’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다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것 아닌가. 열등생이 우등생을 가르친다고 나서는 상황과 마찬가지 아닌가.

로잔에서 바라보는 한국, 레만호수 물빛처럼 청신호로 바뀌었으면….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2004-04-26 ‘흑백시대가로지르기] <10>성장과 분배의 윈윈전략이병천 교수의 동반성장과 균형발전론 [동아일보]

《서민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민주노동당이 17대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1960년대 이래 한국의 경제정책 기조인 ‘성장 제일주의’를 ‘분배와 참여’로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가 더욱 거세지게 됐다. ‘성장’과 ‘분배’는 경제정책 수립의 기본축이지만, 이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과학계의 진보적 지식인의 한 사람인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52)는 “발전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충분히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善循環)’을 달성할 수 있다”며 ‘동반 성장과 균형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 공장 입구서 멈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이 교수는 최근 총선 결과를 보면서 “시대가 정말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낙후됐다고 비판받아 온 정치 분야조차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 하지만 이 교수가 보기에 경제 분야에는 여전히 변화를 가로막는 높은 장벽이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공장의 입구에 멈춰 서 있습니다.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 분야로까지 파급되기 어려운 단층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거죠.” 그는 국내의 소수 기득권 계층과 국제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민 대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성장 제일주의가 여전히 정당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 경제는 개발독재시스템으로 움직였어요. 그런 경제시스템을 발전적으로 전환시켜야 할 시점을 놓친 채 1987년부터 97년까지 약 10년간 허송세월을 보냈지요.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모델로 구조조정을 하긴 했지만 지금 그 결과 ‘빨간 신호등’이 켜졌습니다.” 이 교수가 지적하는 ‘빨간 신호등’이란 경기 침체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대내적 불균형과 불평등, 대외적 종속과 국민경제 불안정의 경향이다.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이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1997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빚어낸 것이란 지적이다. 이 교수는 더 이상 이 개혁방향을 지속해서는 안 되며 성장과 분배, 성장과 참여, 성장과 고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동반 성장, 혁신 주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 인간의 자발적 에너지가 성장 동력

이 교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을 우선 노동에 대한 획기적 발상전환에서 찾는다.

“노동을 결코 비용 관념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고 대우하면서, 이 노동하는 인간능력의 ‘자발적 에너지’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이 교수는 특히 노동자에 대한 ‘교육혁신’을 강조한다.

교육혁신을 통해 인간능력의 계발을 이뤄야 노동과 자본의 양적 투입방식을 넘어 ‘창의를 기반으로 한 성장체제’로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전환을 위해 “이제 희생의 교대가 필요하며, 경제적 기득권 계층이 일대 양보를 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그동안은 성장 제일주의와 그 성장의 부산물인 ‘국물’에 대한 강조로 대중을 동원해 왔지만, 이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동반 성장하는 노사평화체제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 4일 일하고 4일 쉬는 유한킴벌리 모델

그는 이런 성공 사례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결합시켜 성장체제로 이행한 유럽의 네덜란드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4개국에 주목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인정하되 노동자가 휴직 상태에 들어가면 복지제도를 통해 거의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보장해 준다.

이에 비하면 “미국의 신경제는 20 대 80의 양극분열 체제이고, 금융 거품이 극심한 시장독재-저(低)복지 시스템”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국내 유한킴벌리의 ‘4조 2교대 근무제’도 이 교수가 꼽는 좋은 모델이다. 4일 일하고 4일 쉬는 이 방식은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증가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업모델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무엇보다도 “이 모델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미 합작기업인 유한킴벌리는 비(非)상장기업이기 때문에 단기이익 창출 압박에 그다지 시달리지 않고 장기적 관점의 투자를 가능케 하는 이른바 ‘인내(忍耐) 자본’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요 조건 중 하나로 “금융의 민족화와 사회성 및 공공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강소국 덴마크 성공비결

“노동시장 다양하게, 복지체제 관대하게”

많은 사람들이 유럽 경제실적 둔화의 주범으로 과다한 복지비용과 노동시장 경직성을 지적한다. 나아가 미국식 신경제를 그 대안으로 내세우며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적극 추진했던 아일랜드를 유럽의 성공모델로 내세우곤 한다. 그러나 최근 아일랜드에 투자했던 다국적기업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내부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아일랜드도 바람직한 사례가 아니라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이병천 교수는 “유럽 경기침체의 보다 중요한 요인은 과다한 복지비용이 아니라 미래의 성장 동력에 대한 저투자와 그로 인한 저생산성”이라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4개 강대국의 경기침체와는 대조적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 고용확대, 복지제도 확충, 노동시간 유연화, 유급 자유시간 증대 등 다방면에서 청신호를 나타내고 있는 4개 강소국 즉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에 주목한다. 이 교수는 이들 강소국의 성공비결로 사적·공적 비용의 절감, 복지체제와 노동시장의 구조개선, 미래의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든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연구, 교육, 정보기술 등 인간에 대한 투자라는 것.

이 교수는 이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 사례를 보이고 있는 덴마크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첫째, 유연한 노동시장과 관대한 복지체제에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결합돼 노동시장 개혁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둘째, 노동시간 시스템의 유연성을 획기적으로 증대해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인간’을 넘어 다중적인 생활을 하며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셋째, 광범위한 중소기업과 국내 시장의 확대를 기반으로 국민경제의 내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김형찬기자


2004-03-30 강소국 아일랜드 비결머리 대사에 듣는다 / 작년 외국인투자 417억달러 유치” [동아일보]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와 노사(勞使) 파트너십으로 국가를 개조했다.”

폴 머리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24일 서울 중구 남창동 아일랜드 대사관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직 진행 중인 아일랜드 경제기적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일랜드는 최근 삼성전자 황창규(黃昌奎) 사장이 한국경제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지목한 유럽의 ‘강소국(强小國)’중 하나.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3만6000달러로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2위. 국민소득은 10년 만에 갑절이 됐다.

최근 5년간 국내총생산(GDP) 연평균 증가율은 8.4%로 한국(4.6%)의 2배에 가깝다. 인구 400만명의 아일랜드가 지난해 유치한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417억달러. 12억 인구의 중국이 570억달러를 유치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아일랜드 경제성장의 비결은

“아일랜드는 1950년대까지 폐쇄적 경제체제를 유지했다. 65년 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73년 EU에 가입했다. 69년 아일랜드투자청(IDA)을 설립해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에 나섰다. 이후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는데

“실업률이 최고 18%까지 올라갔고 통화위기까지 경험했다. 노사간 사회적 파트너십을 추구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당시 위기를 극복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질이 높아졌고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확보했다. 생산성이 증가하고 투자도 확대됐다.”

―노사간 파트너십이 가능했던 이유는

“성숙한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모두가 함께 문제를 풀겠다고 생각했다. 노사 파트너십을 통해 처음에는 임금수준만 결정했지만 지금은 복지제도, 세금 등도 다룬다.”

―외국기업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산업은 외국기업이 기반을 닦았지만 기술이전과 확산으로 지금은 소프트웨어 기업의 절반 이상이 국내기업이다. 세계적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일자리 4만5000개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과의 경제협력 전망은

“외국기업과의 파트너십을 추구하기 위해 98년 ‘기업 아일랜드(Enterprise Ireland)’를 설립했다. 한국에도 올 1월 지사를 설립했다. 아일랜드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을 유치하기보다는 첨단 연구개발 중심의 협력을 원한다. 가령 한국이 자랑하는 하드웨어와 무선통신 기술을 아일랜드의 소프트웨어 기술과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기기자


2004-03-26 디지털시대 T자형인재 필요삼성전자 황창규 사장 연세대 특강 관심 [문화일보]

“핀란드의 각종 위원회에는 노키아가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각종 위원회에) 우리가 참여하려 하면 정경유착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스타급 경영인’으로 꼽히는 황창규(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의 25일 공개강연 내용이 관심을 끌고 있다.

황사장은 이날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대학생을 상대로 열린 ‘국민소득 2만불 시대와 기업의 역할’ 특강에서 “헬싱키를 노키아 타운으로 부를 정도로 노키아는 핀란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며 “이 같은 성원이 협소한 가용국토 면적과 내수규모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를 강소국(强小國)으로 만들었다”고 역설했다.

황사장은 이어 “북아일랜드의 경우 정부가 기업의 시녀처럼 일한다”며 “변변한 자국 브랜드 하나 없는 이 나라는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를 대거 유치해 지난해 1인당 GDP 3만불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기술력과 관련, 황사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주 유럽 출장 때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HP 최고경영자(CEO)인 피오리나로부터 ‘삼성전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반도체 칩을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전화를 30여분간 받았다”고 공개하며 “세계 디지털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일본 소니사의 플레이스테이션 등 주요 3개 부문도 모두 삼성전자의 칩으로 이익을 내고 있다”고 자랑했다.

또 삼성전자가 올해 노키아에 1조원을 웃도는 반도체를 공급할 계획이며,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8GB급 플래시메모리 개발을 완료해 판매에 나선다고 밝혔다.

바람직한 인재상에 대해 황사장은 “디지털시대에는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I)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희생, 봉사정신(-)을 겸비한 T자형 인재가 필요하다”며 이는 뛰어난 기술과 실력을 바탕으로 조직과 조화를 이루는 팀플레이를 소화해냄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인재라고 설명했다.

황사장은 이어 대학의 바람직한 역할을 묻는 학생들의 질문에 “산업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대학이 기업과 똑같이 산업에 기여할 필요는 없으며, 대학에서 나오는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황사장은 끝으로 “국경을 초월하되, 국적은 분명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말로 이날 강연을 마쳐 청중 1200여명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권선무기자>


2004-03-21 세계 100브랜드 살펴보니… [매일경제]

◆글로벌 톱브랜드에서 배운다◆

전세계 휴대전화 이용 인구 3명 가운데 1명은 ‘노키아’ 제품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노키아의 국적이 핀란드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도 적지 않다. 전자업체 필립스는 알아도 필립스의 국적인 네덜란드를 모르는 소비자도 많다.

노키아와 필립스는 이미 자기 나라 이미지를 뛰어넘은 글로벌 브랜드로 위상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로벌 톱 브랜드는 국가 이미지에 한 발 앞서 오히려 국가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 조사 전문기관 ‘인터브랜드’에서 매년 선정하는 세계 100대 브랜드 분포는 경제 선진국 현황과 거의 비례해서 나타나고 있다.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2003년 100대 브랜드 가운데 미국 국적을 가진 기업이 62개로 압도적이다. 브랜드 강국이 바로 경제 강국임을 보여준다. 브랜드 강국 2위 역시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7개)이다. 프랑스도 7개로 일본과 같이 브랜드 강국이고 독일 6개, 영국 5개 순이다.

국내총생산(GDP) 4766억달러(2002년 기준)의 한국에는 100대 브랜드가 하나에 불과하다. 세계 25위에 올라있는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108억달러.

한국보다 GDP 규모는 작아도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은 세계 100대 브랜드에 한국보다 많은 기업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GDP 4168억달러로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네덜란드에는 전자업체 필립스와 맥주회사 하이네켄, 석유회사 쉘 등 3개 브랜드가 있다.

스위스(GDP 2695억달러)에도 식품회사 네스카페와 네슬레, 시계제조업체 로렉스 등3개 브랜드가있다. 한국 경제 규모의 절반 수준(GDP 2393억달러)인 스웨덴에는 가구회사 이케아와 휴대전화업체 에릭슨이 있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에도 브랜드 가치 세계 6위 기업 노키아가 있다. 노키아는 핀란드를 대표하고 핀란드를 먹여살린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이들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은 모두 2만5000달러 이상으로 한국의 2배를 넘고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 강소국이 된 배경에 세계 톱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 원동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 정보기술(IT) 산업 경기를 주도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의 도요타·혼다와 독일의 벤츠·BMW는 세계 자동차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일본 소니는 전자제품의 트렌드를 주도한다. 프랑스의 루이뷔통과 이탈리아의 구치는 세계 패션산업의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세계 1위 브랜드 코카콜라의 가치는 704억달러에 달한다. 무형자산인 브랜드 가치만으로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 338억달러의 2배를 웃돈다. 코카콜라는 1886년부터 지금까지 117년이 지나도록 전세계 20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는 ‘해가 지지 않는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95년 브랜드 가치 상위 10위 이내 기업 가운데 지난해에도 10위권을 유지한 기업은 코카콜라와 마이크로소프트, IBM, 말보로 등 4개에 불과했다. 한국 기업도 하기에 따라서 톱 브랜드로 얼마든지 올라설 수 있다는 얘기다.

척 브라이머 인터브랜드 회장은 “시장에서는 언제나 1, 2위 브랜드만 살아남는다”며 “3위는 언제 탈락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들이 최고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별취재팀 = 윤경호 기자 / 전병득 기자 / 조시영 기자 / 손일선 기자>


2004-03-09 브레인웨어를 키우자] 5. 정부와 기업도 책임 있다 [서울경제]

대학이 구조조정 바람에 휘말리고 있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에다 성장둔화로 대졸 인력에 대한 수요마저 줄어들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은 속속 문을 닫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대학은 올해 정시모집에서 입학정원을 제대로 충원치 못해 친구 1명을 등록시키면 1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눈물겨운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정원의 50%를 채우지 못하면 교육부의 각종 지원사업에 아예 손도 내밀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고육지책까지 동원된다.

지방대를 중심으로 신입생을 제대로 충원치 못하는 대학이 속출함에 따라 이제 대대적인 통폐합은 대세로 굳어졌다. 이공계 대학은 이 같은 대학사회의 구조조정으로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잇단 신설 및 증설로 이공계 대학이 지나치게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조정 돌풍은 이공계 대학간의 경쟁을 촉발시켜 궁극적으로는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이런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바로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균형발전정책 때문이다. 그래서 학부제에 이어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이공계 교육의 떨어뜨릴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무차별적인 지원은 이공계 대학의 하향 평준화 가져올 수도=참여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의 과학기술 혁신역량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03년 27%에 그쳤던 국가 연구개발(R&D)예산의 지방지원 비율을 오는 2007년까지 40%로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의 R&D 지방 지원사업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바로 대학이다. 정부가 지방의 산·학·연 연구개발 역량 강화, 지방의 우수 과학기술인력 양성 등을 중점적인 사업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정부의 지방대 지원은 국내 이공계대학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뿐 아니라 하향 평준화를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곧 문을 닫을 대학이 살아 남게 될 뿐 아니라 연구역량이 미흡한 대학에 국민의 세금을 지원할 경우 자원의 낭비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국가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지방대 지원에 들어갈 경우 대학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방대 지원은 구조조정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성화 교육을 위한 환경 조성해야=중소기업은 즉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산업인력을 필요로 하는 반면 대기업들은 종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특정 대학에서 이런 상충된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종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려면 수학, 물리학 등 기초과학에 치중해야 한다. 그 대신 현장실습 등 실무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에 필요한 시간이나 자원은 크게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내 이공계 대학들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각자 여건에 맞는 특성화 교육에 나서도록 정부가 유도하는 것이 시급한 이공계 교육 대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민구 서울공대 학장은 “국내 이공계 대학들이 차별화된 교육목표를 통해 산업현장 또는 연구개발 전문 인력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도 병행해야=이공계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방향도 제고할 필요가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자 이공계 대학 진학자에 대한 장학금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지원대책은 아니다. 대다수 국내 대학이 운영재원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은 보다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술의 복합화, 융합화 현상이 진전됨에 따라 새로운 학과목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높지만 재원 부족으로 학과목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학전체 경비 가운데 인건비가 약 70%내외에 이르기 때문에 이런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

한송엽 서울공대 교수는 “정부가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해서 의대로 진학할 학생이 공대로 오지는 않는다”면서 “실험장비, 신규 학과목 개발 등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분야에 정부가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핀란드 교육개혁 통해 강소국 발돋음

핀란드는 스웨덴 등과 함께 대표적인 강소국(强小國)으로 꼽힌다. 핀란드는 현재 노키아 등 정보기술(IT) 관련 업체들을 거느리고 전세계 IT 산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핀란드가 강소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데는 교육개혁이 큰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70년대초까지만 해도 핀란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에도 못 미쳤다. 핀란드는 지속적인 교육개혁을 통해 이런 소득정체현상을 타개했다. 핀란드는 지난 80년대 초 각 지역별로 1개의 공과대학을 설립해 이를 중심으로 대학과 기업이 한데 뭉쳐진 기술거점형 도시(technopolis)를 구축했다. 이런 기술거점형 도시가 오늘날 핀란드의 성장을 일궈낸 배경이다.

핀란드는 특히 90년대 들어 전국의 200여개 전문대학을 29개로 통폐합한 후 4년제 현장특화대학을 설립했다. 이 현장특화대학은 철저한 맞춤식 교육으로 산업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 현장특화대학은 연구중심대학과의 역할 분담을 통해 핀란드 산업혁신 역량을 끊임없이 높여 나가고 있다.

손욱 삼성인력개발원장은 “우리 정부도 교육개혁을 통해 특성화된 대학을 육성해 기술혁신 능력을 높여 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필요한 인력요건 제시해야 `맞춤식 교육`도 발전 산업현장에서 이공계 대학 교육에 대한 불만이 쏟아질 때마다 대학 교수들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다.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육성하려면 기업의 협조와 지원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대학을 비난하기만 할 뿐 정작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필요한 협력은 외면한다.

한민구 서울공대 학장은 “인력의 수요자인 기업들이 구체적인 요건을 제시해야 대학도 특성화 노력을 통해 이런 요건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들은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산업연구원(KIET)가 지난 2002년 기업과 대학간의 교류 빈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분기별로 1회 이상 대학과 교류하는 기업은 9.8%에 불과했다. 특히 조사대상 기업 가운데 61%는 아예 대학과의 실질적 교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기업은 대학에 대해 욕만 늘어놓을 뿐 교육 개선을 위한 요구나 협력은 외면하는 셈이다.

◇기업, 획일적인 채용기준을 버려야=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이공계 대학 졸업자를 채용할 때 평가기준으로 삼는 것은 토익(TOEIC)점수 등 영어실력과 학점 평점이다. 일정한 영어실력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학점 평점을 선발잣대로 삼는 것은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특히 지난 97년부터 학부제가 실시되면서 전공이수학점이 크게 줄어든 데다 그나마 어려운 과목을 기피하는 경향이 일반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학점 평점을 잣대로 직원을 채용하는 것은 기업 스스로 유용한 인력을 선발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한민구 학장은 “기업들이 획일화된 채용기준을 고집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고급물리학을 듣고 `C`학점을 따느니 차라리 기초물리학을 듣고 `B`학점을 따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손욱 삼성인력개발원장은 “이공계 인력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인사부서보다는 현업 책임자가 자신의 부서에 필요한 인력을 선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특히 석·박사급 고급인력의 경우 학교와 자주 접촉해 창의력을 갖춘 인력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학협력 위한 상시적 기구 필수=현행 이공계 인력양성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산업현장의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기업은 원하는 인력을 확보하려면 대학에 구체적인 요구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기업과 대학이 수시로 이런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창구가 없다.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의 경우 기업 스스로 산업별 협의회를 구성해 특정산업에 필요한 교육훈련 수요를 분석하는 동시에 교육 프로그램 운영 및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기업은 협의회를 통해 필요한 인력수요 및 교육내용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학은 이런 요구를 반영해 교육과정을 끊임없이 개선하는데 노력한다.

정진화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교육과정을 입안하는데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대학은 여기에 맞춰 인력을 양성하는 `주문식 교육`이 산업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현장 설비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해야=보통 반도체를 만들려면 300가지 공정을 거쳐야 하지만 대학에서 이런 공정에 필요한 설비를 일일이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들이 흔히 대졸 신입사원들의 컴퓨터 활용능력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표시하면서도 현장 적응능력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가용자금이 넉넉치 않아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고가장비를 갖출 형편이 못 된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기부를 통해 이런 고가 장비를 갖추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대안은 보다 활발한 산학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창경 한양공대 교수는 “이공계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기업이 학생들로 하여금 현장설비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경제신문·산업기술재단 공동기획 <특별취재팀 >


2004-03-08 내일 방한 페르손 스웨덴 총리 e메일 인터뷰 /고용훈련 투자로 파업 줄였다” [동아일보]

《9일 방한을 앞둔 예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사진)는 “정부는 친(親)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은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르손 총리는 한국에 앞서 일본 방문길에 나서기 직전인 5일 본보와의 단독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2001년 5월 외국정부 수반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연합(EU) 대표부를 이끌고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했다. 스웨덴은 인구 900만명에 불과하지만 에릭슨, 볼보, 사브, ABB 등 세계적 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강소국(强小國)으로 불린다. 스웨덴 모델은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이 ‘주식회사 한국’의 미래성장 모델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끈다.

이번 인터뷰는 △스웨덴 모델과 기업-정부 관계 △차등(差等) 의결권으로 대표되는 스웨덴의 독특한 기업지배구조 △평화적 노사관계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의 원인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페르손 총리는 이번 아시아 방문기간 중 북한 방문을 추진했으나 마지막 순간 무산되었다고 스웨덴 외무부는 5일 밝혔다.》

―1970년대까지 세계 각국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80년대에는 일본, 90년대에는 미국이 최상의 모델로 부각됐는데….

“스웨덴 모델은 급속한 구조 변화, 유연성, 산업 기술의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인플레이션에 대응한 경제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과도한 연금 등 과거 단점들은 보완됐다. 지난 10년간 스웨덴의 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실업률도 4%로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스웨덴 모델은 세계화시대에도 유효하다는 말인가?

“세계화는 그간 계속되어 왔다. 최근 들어 좀 더 강조되고 속도가 빨라졌다. 복지국가를 처음 세웠던 30년대와 마찬가지로 국제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교육 투자를 늘리고 평생교육을 강화해 국민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갖추도록 한다. 생명공학과 같은 세계 첨단 과학기술 산업을 선도함으로써 스웨덴 모델은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한 체제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제조업의 평균 생산성 증가율은 미국을 앞서고 있다.”

―스웨덴의 기업-정부 관계는 어떠한가?

“좋다. 더욱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기업과 정부의 결정은 국가 발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양자간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기업과 정부는 사회와 경제를 위해 다른 역할을 하고,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의견 불일치가 나타난다. 상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정부는 기업을 북돋워야 하고 기업이 잘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또 기업은 바로 다음 분기(分期)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10대 기업의 매출액이 국내총생산의 65%를 차지할 만큼 스웨덴의 경제력은 집중돼 있다. 특히 발렌베리 가문이 지배하는 기업이 스웨덴 주가 총액의 40% 이상을 점하고 있지만 스웨덴 국민은 발렌베리 가문에 호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경험이 있다.

“대기업 오너들이 국민과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그들이 기업의 경쟁력 확보에 충실하고 이를 위해 투자하는 것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 또 역할의 중요성과 관계없이 종업원을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의 가장 중요한 산업을 발전시키고 자금조달 기능을 수행했다.”

―스웨덴에는 차등 의결권제도가 존재한다. 통신 산업의 강자인 에릭슨의 경우 심지어 의결권이 표당 1000배나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도 많은 상장기업들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에 대해 장기적 이해를 가진 오너가 있는 게 중요하다. 나라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장기적 발전을 도모하는 오너가 기업이 급속히 성장하는 국면에서도 지배권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이 제도의 목적이다. 스웨덴은 외국기업에 개방적이다. 지난 10년간 많은 외국기업들이 스웨덴 기업을 인수했다. 볼보나 사브의 자동차 부문도 미국 기업들에 넘어갔다.”

―스웨덴에서 파업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인가?

“스웨덴 모델 덕분이다. 전통적으로 스웨덴 노동자와 노조는 구조적 변화, 새로운 기술 도입, 개방을 지지해 왔다. 해외 언론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생산 과정을 합리화하고 이에 따라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왜 노조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의아해한다. 노조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낡은 기술’이라고 답한다. 스웨덴 노조가 변화를 수용하는 이유는 이들이 재취업을 위한 훈련을 받고, 실직 중에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적인 노사관계를 위한 방안이 있다면….

“기업과 정치인이 피고용자들이 구조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변화를 통해 얻게 되는 기업과 사회의 이익을 실직한 개인과 가족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 모든 나라에서 기업이 피고용인들의 교육과 훈련에 보다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스웨덴이 외국인 직접투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는 이유는….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지식기반 경제를 갖추고 있다고 OECD 연구는 밝히고 있다. 우리 경제의 핵심은 노동자의 숙련도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자동차, 첨단 과학기술, 생명 과학 산업 분야가 우수하고 특히 연구개발(R&D) 기능의 경쟁력이 탁월하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발틱 연안 국가, 유럽 시장 진출을 꿈꾸는 기업들은 스웨덴을 진출기지로 삼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방한이 북핵 문제와 관련이 있나?

“스웨덴과 유럽연합(EU)은 6자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자적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지난 번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남북한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고 2003년까지 미사일 실험을 중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김 위원장을 다시 볼 기회가 오면 추가적 논의를 할 수 있기 바란다.”

―한국경제와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 국민이 보여준 경제적 성과와 민주주의의 진전에 깊은 인상을 받고 있다. 한국은 많은 다른 나라들의 귀감이다. 양국간 우호와 경제협력이 증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용기기자·국제정치경제학박사

▼페르손 스웨덴 총리 주요 약력▼

△1949년 출생(55세) △외레브로대 수학(사회학 정치학 전공) △1979∼1984년 국회의원 △1985∼1989년 카트리네홀름 시 의회 집행위원장 △1989∼1996년 교육부, 재무부 장관 등 정부 및 국회 요직 역임 △1996년∼현재 총리(사회민주당 총재)


2004-03-01 함께 이룬 성장 [SBS] <8뉴스>

<앵커> SBS 경제기획 ‘2만 달러의 비밀!’ 경제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바꾼 아일랜드와 핀란드, 네덜란드 세 나라의 성공비밀을 현지에서 직접 취재했습니다.

이른바 강소국,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인지 먼저 노사정 대타협을 성공적으로 이끈 아일랜드의 사례를 집중 분석합니다. 최대식 기자입니다.

<기자> 인구 5백만, 서유럽의 작은 나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시내로 들어서면 아일랜드가 일궈낸 경제 기적의 상징이 눈길을 끕니다. 더블린 최대의 번화가인 오코넬가입니다.

영국 넬슨 해군제독의 동상이 서 있던 이 곳에는 지난 10년간의 고속 경제성장을 기념하는 120m짜리 첨탑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지난 90년대 아일랜드는 유럽 평균의 두 배가 넘는 고속 성장을 구가해 왔습니다. 87년 8천 달러대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2002년 이미 3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같은 기간 17%를 웃돌던 실업률은 3.5%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1980년대 중반까지 서유럽의 지진아로 불렸습니다. 19세기 말 대기근으로 백만명이 굶어죽었고, 7백년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변변한 공장 하나 갖지 못했습니다.

부존자원도, 경제전략도 없던 아일랜드는 70년대 말 2차 석유파동 이후 급격히 내리막 길을 걸어 87년, 최악의 위기를 맞습니다. 노동자들은 17%가 넘는 살인적 실업률에 시달려야 했고, 국가채무는 국고의 130%를 웃돌았습니다. 직장들은 속속 문을 닫았습니다.

[존 스위니 대학졸업생들 가운데 상당 수가 거의 40%가 해외로 다시 빠져나간다는 사실에 심한 충격을 받았죠. ]

침몰 직전의 아일랜드를 일으켜 세운 것은 위기 의식을 공감한 노사정의 대타협이었습니다. 맥카신 객관적인 위기 상황이 노사정 모두를 위태롭게 했습니다.

각 부문은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독자적인 극복방법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변화는 정치권에서 시작됐습니다. 총리실 산하 국가경제사회위원회는 임금상승률을 3년간 2.5% 이내로 묶고 소득세율은 내리는 국가재건 프로그램을 내놨습니다. 여기에 당시 야당 당수였던 알란 듀크스가 집권당의 재정삭감안을 적극 지지하며 가세합니다.

이른바 탈라전략, 듀크스는 집권당의 경제정책에 반대만 해오던 야당의 관례를 과감히 벗어던진 것입니다.

알란 듀크스 집권당의 재정삭감 문제에 반대해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결국 경제적으로는 불합리한 정책을 정략적인 이유만으로 추진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치권이 힘을 합하자 아일랜드 노조도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스스로의 희생과 양보를 받아들였습니다.

피터 카셀 당시 노조원의 60% 정도가 찬성했고 나머지 40%는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업과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기 보다는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업들은 더 많은 일자리를 약속했습니다.

[브랜단 버틀러 극한 위기 속에서 합의가 이루어졌고..]

노사정 모두가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서로가 신뢰를 바탕으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87년 10월 국가부도라는 벼랑 끝 위기 속에서, 아일랜드 노사정은 자신들의 미래를 바꿔놓은 사회연대협약에 합의했습니다.

아일랜드의 사회적 합의는 3년에 한번씩, 지난 18년 동안 6차례나 이어져 왔습니다. 위기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합의가 아일랜드의 경제 부흥을 이끈 첫번째 열쇠가 됐던 셈입니다.

SBS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최고경영자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정부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려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올해로 우리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만 달러의 덫에 걸린 지 10년째를 맞습니다. 아일랜드의 기적은 다 함께 위기를 인정하고 힘을 모았다는, 평범하지만 쉽지 않은 교훈에 있습니다.

최대식 기자


2004-02-23 틈새서 기회 찾아야 [매일경제]

◆盧 대통령 취임1돌 매경 특별인터뷰◆

중국과 일본의 경제식민지나 착취시장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 중국과 일본의 발전은 한국 장래에 무조건 이롭다. 한국은 얼마든지 부자나라 옆에서 잘 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나라다. 아일랜드는 우리보다 훨씬 나쁜 환경에서도 잘 살고 있다. 중국이 직접투자 블랙홀이라는데 한국 기업이 많이 들어간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공동화 염려가 있지만 우리는 고급 일자리를 찾아 빨리 대응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중국이 쫓아온다고 어쩌란 말이냐. 한국도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유럽에는 강소국이 많다. 일본이나 중국보다 덩치는 작지만 우리나라는 위치가 얼마나 좋은가. 서울로 치면 명동자리를 딱 차지하고 있다.


2004-02-04 [사설] (4일자) ‘한국적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한국경제]

3월 주총 시즌이 다가오면서 기업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어떤 특정 모델 한가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 기업이나 산업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결정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EU·일본의 기업지배구조 동향과 시사점’이란 전경련 보고서와 유럽 정치경제학회가 주는 뮈르달상을 받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발표한 ‘한국 금융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비판적 평가’ 논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전경련 보고서는 단일 경제권으로 묶인 유럽에는 모두 35개의 다양한 지배구조 모델이 있으며 일본에서도 미국식 지배구조를 가진 회사의 경영성과가 나빠지면서 다시 ‘일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소니 등 미국형 지배구조를 채택한 1백56개사 중 흑자기업 비율(지난해 3분기 기준)은 54.5%인데 비해 도요타 등 일본형 구조를 갖고 있는 2백51개사 중에는 72.9%가 흑자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장 교수도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 정부가 추진한 개혁은 90년대 경제자유화 과정에서 남아있던 과거 경제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영미식 체제로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는 단기적인 경제 위축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벌들의 내부 거래 봉쇄는 부채비율 규제와 함께 한국 기업의 강점인 공격적인 수행능력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실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델 중 하나로 여겨지는 유럽의 ‘강소국(强小國)’들은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영미식과는 상이한 지배구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스웨덴 핀란드는 자국 기업들이 외국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험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주식을 1주1표, 1주10표 두가지로 구분해 창업주가 1주10표를 행사하는 ‘차등 주식제도’를 운용하기도 한다.

최근 열린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선 미국 기업인들조차 외부의 지나친 경영통제는 기업의 효율성을 저해한다며 경영투명성만을 강조하는 기업 지배구조개선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일부 기업에서 벌어지는 비리는 지배구조와는 상관없는 윤리적인 문제로, 이는 규제강화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우리도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2004-01-19 [일자리를 만들자] (3) 외국은 어떻게 했나 [국민일보]

‘산업평화―>고용창출’ 강소국 됐다

고용 없는 성장, 심각한 청년실업, 국내 기업 해외 이전, 극렬한 노동운동, 외국인 투자 감소….

우리나라가 현재 겪고 있는 악순환을 1980년대 아일랜드와 네덜란드는 앞서 겪었다. 그리고 지금 유럽의 대표적인 강소국(强小國)이 된 두 나라는 노·사·정이 한 몸이 돼 ‘산업 평화’를 구축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국가 경쟁력 제고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나갔다.

◇노·사·정이 함께 만든 ‘산업 평화’=과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는 공업국으로 가는 문턱에서 항상 좌절하는 ‘가난의 대명사’ 같은 나라였다. 80년대 노조의 극심한 파업과 시위로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매년 수십만 명이 이민을 떠났다. 당시 국가 채무는 GNP의 120%, 실업률은 18%나 됐다.

최악의 경기 후퇴로 국가 파산 위기감이 닥쳤을 때 아일랜드 사무원 노조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접근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87년 정부·기업·노조간의 ‘사회 연대협약’으로 발전했다.

7개월의 긴 시간 동안 노·사·정 대표가 머리를 맞댄 결과물인 ‘사회 연대협약’은 크게 임금구조 개편 및 임금 인상 자제, 소득세 인하, 기업 일자리 창출을 주요 골자로 하는 ‘산업 평화선언’이다.

파업과 실업의 악순환에 지친 노조는 물가 인상분을 넘지 않는 임금 인상이라는 사실상의 임금 동결을 먼저 제안하고 나섰고, 기업들은 고용 창출을 약속했다. 여기에 정부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외국인 투자 유치로 화답했다.

이 같은 노·사·정의 결단으로 국가 도산의 벼랑까지 몰렸던 아일랜드는 90년대부터 고도 성장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98년 2만3498달러, 99년 2만6106달러, 2000년 2만6200달러, 2001년 2만7136달러로 성장했고 실업률은 98년 7.8%, 99년 5.7%, 2000년 3.9%, 2001년 4.9%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84년 경제활동인구의 14%에 이르는 실업률과 ‘노동 없는 복지’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네덜란드 역시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과 복지체제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실업 감소와 복지비용 축소를 달성해냈다.

82년 집권한 루버스 정부는 노사가 서로 의도적으로 상대를 무시할 경우 기득권을 뺏는다는 ‘협박’을 해가며 노사 협약의 새로운 장을 연 ‘바세나르 협정’을 이끌어냈다.

노사 대표가 협동과 합의를 중시한다는 원칙 아래 만든 바세나르 협정은 임금인상 억제, 근로시간 단축(주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을 통한 고용 창출, 물가연동 임금인상제 폐지, 노사 중앙교섭 강화, 세금 감면 및 기업 보조 확대 등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바세나르 협정은 업종·사업장별로 720여개의 단체협약을 추진하고 협약을 어기는 파업 등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령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82년부터 96년까지 15년 동안 연평균 고용증가율이 1.6%를 기록, 유럽연합(EU) 평균치인 0.4%의 4배에 달했다. 임금인상 억제와 노동 집약적 서비스업 성장, 일자리 재분배로 시간제 근로자가 크게 늘고 여성의 사회 진출도 크게 증가했다.

이후 네덜란드의 노사는 93년 임금인상 억제, 단체협상 분권화, 근로시간 단축(주 38시간에서 36시간으로)을 통한 인적자원 개발 확대, 근로세 부담 경감,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강화를 골자로 하는 ‘신노선 협약’을 체결했다.

또 국가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자 지난해 10월17일에는 올 5월까지 임금을 인상하지 않는다는 임금 동결 합의도 이끌어냈다. 이 같은 노력으로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97년 5.81%, 98년 4.23%, 99년 3.20%, 2000년 2.61%, 2001년 3.30% 수준으로 낮아졌다.

김찬희기자


2004-01-17 [일자리를 만들자] (2) 장기 실업 시대 [국민일보]

일자리 감소 및 실업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청년층 고실업 현상은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제조업 중심에서 정보기술(IT)이나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산업구조의 변화추세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외환위기로 실업대란이 발생했을 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하기보다는 공공근로 사업이나 취업 보조금 지급 등 일시적인 대책에 더 신경을 써왔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는 중대한 전환점이자 기회이기도 했으나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구조조정’이라는 급한 불을 끄는 데만 급급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수출신장률에도 불구하고 고용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내수가 부진한 것도 고실업을 부채질하고 있다. 통계청의 산업별 취업자 통계를 보면 고용창출효과가 높다는 도소매·음식숙박업의 일자리가 지난해에는 1년 전에 비해 14만6000개나 줄어 농림어업(-11만9000개), 제조업(-3만7000개)보다도 상황이 심각하다.

경제전문가들은 내수가 부진한 원인으로 정부의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을 꼽고 있다.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투자가 일어나야 하는데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이나 철도파업 등에서 보듯이 노조친향적으로 비쳐지는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을 기업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신용불량자가 360만명이 넘는 현실에서 보듯이 미래소득을 앞당겨쓴 후유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고, 가계대출 급증에 따른 소비위축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여 정부가 계획중인 서비스업 위주의 일자리 창출방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런 저런 불확실한 국내상황은 우리보다 인력이 싸면서 투자환경이 좋은 중국 등 이웃나라로의 제조업 이탈 러시까지 부추기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중국에 진출한 63개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기업환경이 한국보다 좋다고 응답한 기업이 전체의 49.2%를 차지했고, 10명 중 6명은 국내 고용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국내 공장을 축소하겠다는 업체는 44.3%, 향후 5년내 국내공장을 폐쇄하겠다는 업체는 19.0%를 차지해 제조업 공동화의 우려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근래 들어 국내에 공장준공식을 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없는 것 같다”면서 “일자리 창출은 국가와 기업 전체의 경쟁력이 커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외환위기 당시 기존 직장인의 퇴출이 최대 이슈였다면 현재는 대졸자를 비롯한 청년층 실업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국가경제 전체적으로도 젊은이들의 실업확대에 따른 소득저하는 고령화 사회로 진행될수록 늘어나는 각종 사회보장 비용을 누가 감당하느냐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청년실업의 추세는 실업자가 매년 누적되고 이 가운데 고학력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1999년 전체 실업자 가운데 41.7%였던 연평균 청년실업자는 2000년 44%, 2001년 45.9%, 2002년 48.2%로 늘어나더니 지난해에는 49.3%로 절반에 육박했다. 대졸 이상 고학력 실업자 비중은 99년 20.5%에서 지난해 31.2%로 껑충 뛰었다.

역시 대기업 중심의 노조원 고용보호와 이에 따른 경력직 선호는 이같이 청년층의 고실업을 고착화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97년 300명 이상 사업장의 경우 채용자 구성비가 신규 63.1%, 경력 29.2%였으나 2001년에는 각각 22.1%와 62.3%로 정반대로 돌아섰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장상수 상무는 “과거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 북유럽의 강소국들도 우리와 비슷한 노사갈등 경험을 했으나 비교적 발빠르게 대처했다”면서 “우리 정부도 뒤늦게나마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생각하고 있으나 올해 양대 노총의 신년사를 보면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2004-01-11 2 달러 시대의 기술혁신전략 [서울경제]

한국경제는 지난 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이후 8년 동안 “마(魔)의 1만불 함정(trap)”에 빠져있다. 우리 경제가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도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경제사에 유례없는 연평균 10%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하였으나 이렇듯 지난 10년 가까이 국민소득 1만 달러에 머물러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소득 1만 달러에 이르기 위해 우리경제는 섬유, 철강,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등 주력제조업을 중심으로 대량생산과 가격경쟁력을 비교우위로 하는, 즉 노동자본 등의 생산요소 투입의존형(factor-driven) 성장전략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범용 중급상품 중심의 저가 대량 생산방식은 노동 등 요소가격의 경쟁력 약화와 세계적 공급과잉 속에 시장경쟁의 어려움과 함께 수익성 약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한 90년대 중반부터 선진경제의 메가트렌드가 기존의 노동과 자본위주의 투입의존형 생산방식에서 기술과 지식 중심의 혁신의존형(innovation-driven) 생산방식으로 패러다임이 급속히 전환되고 있으나 우리경제는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왔던 게 사실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선진국들은 22개국으로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에 이르는 기간은 약 9년 정도였으며, 그 중 에너지 부국을 제외한 G7 국가와 북유럽 강소국의 2만 달러 달성의 경험적 시사점은 경제개방과 경쟁, 경제 및 기업의 투명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국가전략산업의 선택과 집중 진흥, 국가기술혁신체제의 구축 등으로 설명 된다.

선진국들의 2만 달러 달성 과정에서 기술혁신의 중요성과 우리경제의 2만 달러 달성을 위한 혁신주도형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에 비추어, 우리나라는 그 동안 연구개발에 대한 예산지원과 투자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기술혁신역량과 성과가 크게 미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가기술혁신전략 및 정책자체에 대한 새로운 개혁과 혁신이 긴박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의 R&D투자는 약 16조원(GDP의 2.9%)으로 미국의 1/20, 일본의 1/10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다중특허건수가 저조하고, SCI 제출 논문 수는 OECD국가 중 15위이나 논문인용회수는 편당 0.2회로 57위에 그쳐 있으며, 기술의 수출·도입 비율은 0.07(미국 7.25, 일본 2.13)에 불과 하는 등 R&D 효율성이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국가기술혁신역량으로 대표되는 산·학·연 연계가 미흡하며, 대학은 수요위주의 우수인력 양성과 기술개발 및 상품화 기여를 통한 산업혁신엔진 역할 수행 등의 선순환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혹독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산업기술정책은 아직 선진국의 클러스터와 같이 산업정책과 지역정책이 유기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 단선적이고 후진적인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돌파한 핀란드와 스웨덴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 북구 강소국은 강력한 기술혁신을 통해 90년대 초 경제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이들 국가는 국가혁신체제(National Innovation System)구축을 통해 국가혁신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는 나라이며, 혁신형 클러스터 구축, 산학연관 협력시스템 구축 등을 실천하여 2003년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국가경쟁력 순위 1위와 3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은 경제성장의 범위에서 복지정책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정책선택 하에 자동차, 통신, 바이오 등 전략산업을 선택 집중 진흥하기 위해 기술혁신집적지역과 첨단기술단지 27개를 조성하는 등 국가혁신체제를 구축하였다. 노키아로 대표되는 핀란드는 통신 바이오 등 국가전략산업들을 선정하고 오울루테크노폴리스 이노폴리 등 산학연관협력을 기술혁신의 근간으로 10개 첨단과학단지를 통한 세계일류상품개발에 성공한 국가다.

핀란드, 스웨덴의 사례와 경험에서 보듯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한국경제가 혁신주도형 경제로 신속하게 전환되어야 하며, 혁신주도형 경제의 요체인 국가혁신역량의 배양을 위해 국가기술혁신투자의 지속적 확대와 효율성 제고, 국가혁신체제 및 지역클러스터의 조속한 구축운영, 새로운 산학연복합체를 근간으로 하는 우수 기술인력 양성, 독자기술 확보 및 세계일류상품 개발 등 기술혁신의 선순환구조가 조속히 정착될 수 있어야 한다.

<최홍건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총장 >


2004-01-10 강소국 경제자유지수 높다 – ‘기업하기 좋은나라‘ 1 홍콩-2 싱가포르 [문화일보]

“작지만 강한 나라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미국 워싱턴의 보수정책연구소인 헤리티지재단과 월스트리트 저널이 9일 공동 발표한 ‘2004년 경제자유지수(IEF)’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콩이 155개국 가운데 올해로 10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평가됐다. 2위는 싱가포르, 3위 뉴질랜드, 4위 룩셈부르크, 5위 아일랜드, 6위 에스토니아, 7위 영국, 8위 덴마크, 9위 스위스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경제가 가장 자유로운 나라 1위에서 9위까지를 모두 작은 나라들이 휩쓴 셈이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본, 중국과 같은 경제규모가 큰 나라들은 각각 10위, 38위, 128위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IEF란 각국 기업들이 각종 규제나 제약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는가를 측정한 것으로 이번 조사는 무역정책과 정부의 경제에 대한 간섭, 지하경제규모, 지적재산권보호, 대외시장개방 등 10개 요소에 근거,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2년 조사 때의 52위에 비해 6단계나 상승, 46위를 차지했지만 여전히 상위권에 오르지 못하고 중위권에서 헤매고 있는 수준이다. 북한 역시 지난 2002년에 이어 꼴찌 자리를 지켰다.

이와 관련, 10년째 IEF를 조사한 헤리티지재단의 마크 마일스 국제무역 및 경제센터 국장은 9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혁신적인 작은 나라들이 큰 나라들이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며 “IEF 순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국가들은 실제로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마일스 국장은 이어 “한 지역의 경제자유화가 이웃에도 경쟁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예컨대 중국정부의 경우 홍콩과 가장 근접한 지방을 중심으로 경제를 자유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이 IEF 1위를 고수하는 비결로는 실제 홍콩 관료 가운데는 사업가 출신이 많으며 이들은 정부의 기업에 대한 저세금·저규제 접근 방식에 매우 우호적인 사실 등이 꼽혔다.

윤성혜기자


2004-01-01 2만달러 시대를 향하여/ 5%성장땐 2008 高地안착‘ [세계일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는 이제 선진국의 징표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처럼 1995년 1만달러 고지에 올랐다가 외환위기라는 불의의 일격을 당해 여태껏 1만달러 초입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라로서는 2만달러의 벽이 높아 보일 수밖에 없다. 이미 2만달러 수준에 오른 선진국들은 어떤 경로를 거쳤고, 우리가 이 대열에 합류하려면 그들의 어떤 점을 배워야 할까.

우리보다 앞서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한 나라는 모두 24개국.

이 가운데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을 제외한 22개국은 2만달러의 소득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그 중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스위스 미국 덴마크 아일랜드 일본 아이슬란드 등 8개국은 3만달러 이상의 고지로 도약했다.

2만달러 달성 국가를 대별하면 선진국인 G7(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과 북유럽 강소국(룩셈부르크 아일랜드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자원부국(카타르 호주 아이슬란드), 아시아 모범생 홍콩과 싱가포르로 나누어진다.

이들 24개국이 1만달러 달성 이후 2만달러로 도약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8.9년. 5년 이내에 2만달러로 올라선 나라는 싱가포르와 이탈리아, 홍콩, 일본 등이다.

일본과 이탈리아는 각각 엔화와 리라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긴 사례이고, 홍콩과 싱가포르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도약대로 삼았다.

또 다른 2만달러 달성 국가들의 공통점은 성장률 둔화와 국민들의 복지욕구 분출 등 경제불안 요인을 극복한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80년 1인당 국민소득 9500달러로 1만달러 문턱에 갔다가 고질적인 영국병의 부담으로 84년 7000달러대로 주저앉았으나, 마거릿 대처 총리의 강력한 노조개혁과 민영화 정책으로 견실한 성장세로 돌아서 87년 1만달러에 진입한 뒤 9년 만에 2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네덜란드 역시 78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한 뒤 83년 9000달러로 떨어지는 위기를 겪었으나, 임금인상 억제를 골자로 하는 노사 대화합 선언을 도출하며 90년대 들어 빠른 속도로 회복될 수 있었다.

싱가포르나 홍콩은 자원 부국에 비해 불리한 여건에서 출발했으나 수출입국을 표방하면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 자원 빈국의 한계를 극복한 케이스. 유럽의 모범국 아일랜드의 예를 통해서도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 과정에서 수출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아일랜드의 국민소득 대비 수출 비중은 1980년 38.8%에서 2002년 71.8%로 급증했다. 수출이 아일랜드 국민소득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2만달러 국가가 될까. LG경제연구소는 2012년을 우리나라가 2만달러 시대를 여는 해로 추정했다. 물론 이는 2003년부터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4.7%, 물가상승률 2.3%, 환율 매년 1.0% 하락(원화가치 상승)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 경제가 성장활력을 잃고 환율상승 등에 시달려 경제성장률 연 3.5%, 물가상승률 2.0%, 환율상승률 1.0%를 기록할 경우 2020년이나 돼야 2만달러가 가능하다고 LG경제연구소는 전망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월 국회에 보고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우리 경제가 연평균 5% 이상의 성장을 지속하고 원·달러 환율이 절상되고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연평균 2%대에서 안정될 경우에는 2008년쯤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무역협회 무역연구소는 지난 7월 2010년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고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연평균 수출 증가율 11% 기준으로 수출액 3800억달러를 유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성공한 아일랜드

유럽의 변방인 아일랜드. 인구 400만명의 소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가 넘는 부자 나라다. 인텔과 IBM, 마이크로 소프트, 화이자 등 1000개가 넘는 첨단 외국인 투자기업이 아일랜드에 들어와 왕성한 경제활동을 펼치고 있는 덕분이다. 2002년 현재 수출의 75%, 국내총생산(GDP)의 35%, 고용의 8.5%를 이들 해외 투자기업이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이들은 아일랜드 고도성장의 주역이 됐다.

그러나 오늘의 아일랜드가 저절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 국운의 분수령이라 할 1987년. 실업률은 20%에 육박했고, 물가상승률(15%)과 공공부문 부채(국민총생산의 1.3배)는 유럽 1위였다.

정부가 임금인상을 3년간 2.5%대로 묶고 법인세 감면 폭 확대를 골자로 한 국가재건 프로그램을 마련하자, 노조는 이 프로그램이 노동자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음에도 흔쾌히 동참의사를 밝혔다. 당시 야당이었던 아일랜드 통일당도 집권당의 대폭적인 재정삭감안에 대해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며 보조를 맞췄다.

노사정 대타협은 1990년대 들어 경제기적을 연출해 냈다. 정보통신 제약 의료 화학 금융부문 등에서 내로라하는 세계적 다국적기업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30% 안팎의 법인세를 부과할 때 아일랜드 정부는 이를 10%로 낮추는 등 외국기업들을 위한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며 적극적인 유인공세를 폈기 때문이다.

외국기업들이 현지인을 고용하면 보조금을 지급했고, 외자유치 전담기구를 두고 전 세계를 돌며 투자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찾아내 접촉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아일랜드는 1994년부터 99년까지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연평균 8.7%씩 성장했다. EU 평균 경제성장률의 3배를 웃도는 수치다. 87년 1만달러에도 못 미치던 1인당 국민소득은 불과 8년 만에 2만달러를 훌쩍 뛰어넘었고, 2001년에는 3만1000달러를 넘어섰다.

▲실패한 아르헨티나

‘남미의 진주’로 불렸던 아르헨티나. 세계 3대 곡창지대인 팜파스 대평원을 품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1930년대 스페인과 이탈리아보다 잘사는 나라였다. 이미 1974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175달러에 이를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부국이었으나 지금은 중하위권 국가로 추락했다. 아르헨티나는 80년 국민소득이 다시 8000달러선까지 올라갔지만 오래지 않아 2000달러선으로 곤두박질쳤고, 97년 8000달러 수준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2002년 2000달러선으로 떨어졌다. 수십년 동안 성장과 퇴조를 반복하는 M자형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아르헨티나가 1만달러 수준에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점을 꼽는다. 전통적으로 경쟁력이 있던 농축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기득권층의 개혁 저항도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잡은 요인이다. 실제 알폰신 대통령은 83년 천정부지로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화폐개혁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아우스트랄 플랜(Austral Plan) 을 발표하며 자유시장경제체제 도입에 나섰으나 좌초했다.

특히 노조의 벽을 넘지 못한 사실은 아르헨티나의 불행이었다. 45년 친 노동자 정책을 편 페론당 집권 후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정부가 주도한 노동개혁 조치들은 실패로 돌아갔고 기업들은 과다한 노동비용을 견디다 못해 속속 해외로 탈출했다. 89년 조기 대선을 통해 메넴 정부가 들어섰지만, 메넴 정부 또한 무분별한 정부지출에 따른 공공부채 과다 문제로 2001년 12월 950억달러의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조남규기자


2003-12-22 삼성 신경영 신화 계속된다 [헤럴드경제]

김영사 ‘이건희 개혁 10년’ 펴냄

李회장 ‘초일류’ 경영ㆍ용인술 등 심층분석 본지기자 전현직 CEO 방문 증언청취 저술

“내 혼이 담긴 제품이 불타는 걸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더군요. 불도저가 재를 밀고 갈 때 각오랄까. 결연함이 생깁디다.”

1995년 삼성전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시대로 불량 휴대폰 화형식을 행했다. 이때 소각된 제품은 당시 삼성전자 총 이익 5%에 해당하는 500억원어치. 7년 후 휴대폰사업은 3조원의 이익을 내는 부문으로 성장했다. 그 동안 삼성의 세전 이익은 99년 2300억원에서 2002년 말 15조원으로 66배 증가했다. 브랜드 가치 또한 같은 기간 31억달러 세계 100위에서 108억달러 25위로 뛰어올랐다. C+에서 A-로 급상승한 것이다.

‘안 하는 듯 다하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영철학을 총정리한 ‘이건희 개혁 10년-삼성 초고속 성장의 원동력'(김영사·1만2000원)이 출간됐다. 지난 5~10월 본지 연재분을 한데 묶은 책이다. 87년 회장 취임 후 93년 신경영을 내걸고 개혁을 추진, 삼성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올려놓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직 양(量)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장단에 맞서 품질을 강조한 이회장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삼성만의 아이덴티티 구축에 주력했다. 핀란드 스위스 등 강소국은 벤치마킹 대상. 이 회장은 스웨덴의 경우10대 기업 매출이 GDP의 65%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외환위기 때 이 회장은 65개 계열사를 45개로 축소하는 버림의 경영을 택했다. 그러나 분사 및 외주로 인력감축을 1만2000명 수준에서 억제했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이 회장의 초일류주의가 나타난 대표적인 예. 주방에서 청국장을 끓여도 거실에서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삼성병원은 지하 4층까지 햇빛이 든다.

이 책에는 떠났던 사람도 다시 찾아 쓰는 이 회장의 용인술 등이 실려 있다. 연구 부문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농부가 씨 뿌릴 종자를 먹는 것과 같다는 이 회장의 지론도 나와 있다. 본지 김성홍(정경부), 우인호(산업부) 기자가 썼다.

윤승아 기자


2003-12-20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세계 경제주역 8인에 [매일경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세계경제에 영향력 있는 8인의 경제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다. 뉴스위크는 세계경제포럼(W약력)과 함께 특별호 ‘이슈 2004’를 통해 이 회장을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잡지는 ‘누가 힘을 가졌는가(Power: Who’s Got It Now)’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회장을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고 소개했다. 이는 이 회장이 평소 말수가 적어 그가 던지는 말 한 마디에 커다란 무게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그가 주장한 ‘강소국으론‘ ‘천재경영론’이 많은 인사에 의해 인용되고 있으며 이 회장이 이끄는 삼성을 다른 기업들이 벤치마킹하는 등 사회·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뉴스위크는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가진 8인의 경제인들이 위기 해결사, 사회 개혁자, 빈민 구제자로서 글로벌 시대의 사회 전반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 리스트(The Godfathers List)’라는 제목으로 묘사된 8인의 경제인은 이 회장 외에 △프랑스의 클로드 베베아르 전 악사그룹 회장 △중국의 장 루이민 하이얼그룹 회장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 텔맥스텔레콤 회장 △영국의 존 브라운 BP 회장 △일본의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 회장 △이탈리아의 베네통 가문 △베네수엘라의 구스타보 시스네로스 시스네로스그룹 회장 등이다.

베베아르 전 악사그룹 회장은 프랑스에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면서 경영자 교체 등 기업의 문제해결 과정에 단골로 구원 요청을 받는 인물이다. 장 하이얼 회장은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이얼그룹을 세계 5대 가전업체로 성장시켰다.

슬림 텔맥스텔레콤 회장은 멕시코 정부 및 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브라운 BP 회장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영국이 러시아 석유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졌다.

오쿠다 도요타 회장은 일본 게이단렌이 정치인들에게 후원금 지급을 재개하는 작업을 주도하는 등 일본 정치권에 영향력이 막강하다. 베네통 가문은 텔레콤에서 타이어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총리조차도 이 가문을 존경할 정도로 이탈리아에서 입지가 강력하다.

미국의 부시 가문과 막역한 사이인 시스네로스 시스네로스그룹 회장은 베네수엘라에서 야당 성향의 TV 채널을 소유하면서 현지 정치권에 대한 영향이 큰 것으로 뉴스위크는 묘사했다.

<윤경호 기자 / 한주한 기자>


2003-11-13 작은 강국 핀란드 세계1 경쟁력 비결은 교육” [서울경제]

북유럽의 강소국인 핀란드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국가로 평가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KOTRA는 13일 펴낸 보고서에서 “핀란드 경쟁력의 원천은 교육에 있다”면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핀란드의 고급인력을 얻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핀란드를 세계 1위의 경쟁력 보유국으로 지정할 당시 핀란드 내에서 조차 고용감소와 제조업 탈출 등의 현상을 지적하며 WEF의 경쟁력 측정 방법이 잘못 됐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그러나 저임금이 경쟁력의 전부가 아니며 특히 대부분 산업이 첨단화되는 상황에서는 핀란드처럼 고급인력을 많이 보유한 나라의 경쟁력이 높을 수 밖에 없다고 분석됐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의 젊은 인력 가운데 83%가 대학이나 전문대학 이상의 고학력자들로, 아시아 개도국의 고학력자 비율이 전체의 6% 가량임을 감안할 때 핀란드는 인구가 520만명 뿐이지만 고급인력 면에서는 인구 7,000만명의 개도국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KOTRA 관계자는 “외국기업들이 핀란드 기업을 적극 인수하려고 하는 것도 고급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핀란드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적극적인 교육정책을 펴며 학비부담을 거의 지우지 않는 것이 주효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손철기자 >


2003-11-12 [월드 베스트 & 퍼스트] 에이드인 코리아 세계일류 뛴다 [파이낸셜뉴스]

‘1등만이 살아남는다.’

유럽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호수의 나라 핀란드. 서울 인구의 절반 정도인 500여만명에 ‘숲 반, 호수 반’인 이 나라는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경쟁력 있는 ‘경제국가’로 많은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말 발표된 ‘다보스포럼’의 국제경쟁력 순위에서 초강대국 미국을 추월, ‘세계 경쟁력 1위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핀란드를 벤치마킹 모델로 지목하면서 ‘강소국으론’(强小國論) 이라는 화두를 계열사 사장단들에 던진 바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 핀란드의 성공에서 ‘일등 경쟁력’을 확보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진리를 일찍이 간파한 것이다.

한국 국가경제력은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3위, 교역규모기준으로는 세계 11위다. 과거처럼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던 단순 생산으로는 세계 시장을 상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수출산업구조의 변화가 필요하고 전략 수정도 필요하다.

흔히 얘기하듯 기술개발로 세계 일류상품을 만들고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면 된다고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단지 우리가 부단히 지향해야 할 원칙에 불과하다.

◇기업들, 일등·일류를 향해 총력=글로벌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등과 초일류만이 살아 남는 시대가 다가왔다. 대기업의 총수들도 글로벌 경쟁시대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일등 경쟁력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메이드인 코리아= 저가상품’ 이라는 이미지를 지구촌에서 완전히 씻어내고 ‘베스트 국가, 세계 일등 기업’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반도체와 휴대폰, 디지털 TV, 냉장고와 에어컨 등 백색가전 분야에서 이미 일등대열에 올라섰다. 삼성전자의 애니콜은 글로벌 브랜드로 정착된 지 오래다. 기술력과 디자인에서 세계 시장을 리드하는 일등 상품이 됐다. 무엇보다 일부 지역과 국가에서는 노키아를 앞설 만큼 세계 시장 제패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LG전자의 디지털 TV도 북미의 디지털방송 확대와 함께 각광받는 일등상품으로 꼽힌다. 일본및 유럽 유수기업과 벌인 품질경쟁에서 한발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대차의 경우 상트로(국내명 아토스)가 98년 첫 판매된 이후 지난 3년간 인도 소형차(길이 3401∼4000㎜급)시장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일류상품의 이미지를 높여가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밀림에서 힘이 센 짐승만이 생존할 수 있듯이 세계시장에서 일등기업과 일등상품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지구촌에서 글로벌 일등기업을 구축하기 위한 기업체들의 노력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져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2010년까지 세계일류상품 1000개 발굴=정부는 지난 2001년부터 세계시장 점유율이 5위 이내에 포함돼 있거나 2∼3년 안에 5위 이내에 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각각 ‘현재 세계 일류상품’과 ‘차세대 세계 일류상품’으로 지정해 이의 생산업체에 각종 지원을 해주는 정책을 펼쳐오고 있다.

지금까지 154개 품목이 현재 일류상품으로, 199개 품목이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각각 지정됐다. 정부는 2010년까지 1000개 세계 일류상품 발굴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수출 비중이 50%를 넘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일류상품이 많이 만들어져야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번성해 나갈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일류상품 육성책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 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50대 수입품 중 중국은 데이터처리기기, 기계부품, 영상기기 등 15개 품목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반면, 한국은 무선통신기기 단 1개뿐이라는 KOTRA의 조사 결과는 정부의 정책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오히려 선진국 시장에서 팔릴 만한 상품이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산자부가 지난 2001년과 지난해 상반기 일류상품으로 선정된 99개 품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0%에 이르는 69개 품목이 선정 당시보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증가했다. 품목수는 줄어들었지만,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이들 품목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들이 추진중인 일류상품전략에 승부를 건다면 우리도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

/ 윤경현기자


2003-11-05 세계경제포럼 보고서 인적개발 힘쓴 나라 국가경쟁력도 높다” [국민일보]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경제포럼(WEF)이 해마다 발표하는 국가별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순위는 2000년 28위, 2001년 23위에 이어 올해 18위에 올라 3년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제네바의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한국의 순위 상승은 기술 지수에서 고득점을 얻었기 때문이며, 다른 평가 항목에서 점수를 높이지 않는 한 더 이상의 순위 상승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분야별 평가를 보면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20위 안에 진입한 것은 바로 기술 부문에서 6위를 차지한 덕분이다. WEF보고서는 한국은 기술 부문의 세부 평가 항목에서 ISP(인터넷 서비스) 부문에서 1위, 인터넷 사용 인구는 2위, 학교 내 인터넷 접속 및 정부의 ICT(정보기술산업) 정책은 각각 4위로 평가됐다.

그러나 보고서는 한국의 거시경제 환경지수나 공공기관 지수, 국내 기업환경 지수 등에서는 종합순위와 비슷하거나 이를 밑돌았고 앞으로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지적했다. 한국은 사법의 독립성(29위), 세금제도(47위),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42위), 민간부문의 여성 취업(100위), 출산휴가 관계 법령(97위)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경쟁력 순위에서 핀란드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 국토는 작아도 경제력은 무시할 수 없는 이른바 ‘강소국’들이 상위를 차지했다. 강소국의 강점은 바로 인적 자원 개발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에 따르면 교육부문 투자를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결과, 이들 국가는 EU 평균을 웃돌았다.

유엔국제무역개발회의(UNCTAD)의 올해 세계투자보고서에 따르면 GDP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비중(FDI 수행지수)이 모두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높은 것도 강소국만의 또 다른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WEF 평가 기준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평가 기준을 탓할 것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제네바=연합


2003-09-17 1년만에 전경련회의 출석 이건희회장 강소국論강조 [문화일보]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1년만에 참석해 주목을 끌었다. 이 회장은 16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지난해 9월 참석한 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3개월만에 열린 이 회의에 참석한 뒤 이어 열린 간담회와 만찬모임을 직접 주관했다. 이회장은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로 재계 총수들의 모임을 주도했다. 이 회장은 이날 만찬장에서 ‘강소국으론’을 강조했다.

그는 “20세기에는 물리력이 강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지만 21세기에는 경제력이 강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면서 “핀란드와 스웨덴 등 강소국을 좋은 예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전경련 회의 참석은 내우외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경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전경련 나들이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 회장단이 공조체제를 취함으로써 재계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전경련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관계자는 “이 회장이 그동안 회장단 회의에 자주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1년에 한두번 정도는 꼭 나갔다”고 말했다.

한편 재계 원로들과 주요 기업 총수들은 이날 회의에서 현 경제상황을 ‘40년만의 최악’수준에 해당하는 난국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경제난국 극복에 최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2만달러 달성이 중요하고 실천은 기업이 해야 한다”며 “다만 과거 대처 영국총리, 박정희 대통령등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조철현기자


2003-08-22 [불황은 없다] 끝없는 기술개발 강소국 숨은 비결 [한국경제]

우리나라의 성장 저하 요인으로 흔히 좁은 국토와 부족한 인력이 지적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결코 경제개발을 가로막는 절대적 요소는 될 수 없다.

핀란드·스웨덴·네덜란드 등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좁은 국토와 비교적 적은 인구밀도를 가지고도 성공적인 기술혁신으로 현재 부국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이들은 인구 1000만명 미만의 나라지만 국민 1인당 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세계 최고의 부국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이들 나라가 각각 대내외적인 경제위기를 거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술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개발과 투자 때문이다.

80∼90년대에 걸쳐 핀란드와 스웨덴은 옛 소련의 붕괴와 함께 큰 시련을 맞았다.

이 시기 이들 나라는 몰락해 가는 기업 회생을 위해 무리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보다는 신기술에 대한 지원과 투자에 고개를 돌렸다.

그 결과 현재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정보통신(IT), 디자인 등을 비롯한 지식 기반 산업이 탄탄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핀란드는 93년 국가산업전략을 수립, 과학단지 조성에 박차를 가했으며, 94년부터는 산업 인프라스트럭쳐 구축에 힘쓰고 있다.

스웨덴 또한 연구개발(R&D)예산을 확대하며 첨단사업을 육성했다.

특히 스웨덴의 R&D 예산은 국내총생산(GDB) 대비 3%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2002년 포천지가 선장한 ‘글로벌 1백대 기업’에 로열더치셀 ING그룹 등 6개 기업을 올려놓은 네덜란드의 국가 경쟁력 핵심은 헤이그에 자리잡은 ‘네덜란드 과학연구소(NWO)’다.

실용주의와 합리성을 바탕으로 씽크탱크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곳에서는 네덜란드의 대학 및 연구소들과 협의핵심연구과제를 도출하고, 과제수행을 위한 과학기술의 로드맵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즉, 이들 국가의 성공은 원천기술에서 탈피, 기술과 생활을 위한 미래산업 육성에 대한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혁신을 통해 미래를 열어가는 국가들 앞에 좁은 국토와 열악한 인적·물적 자원은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었다.

벤처열풍의 거품이 빠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진정한 기술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도약이 필요한 때이다.

무엇보다 IT, 반도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술력을 발판으로 좁은 국토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향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군소기업들의 발걸음에 정부나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2003-08-22 [불황은 없다] 과감한 투자틈새공략 호황 보증‘ [한국경제]

극심한 내수부진과 인력난으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중앙회가 지난 7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8월중 중소제조업 경기전망은 극심한 내수위축과 노사관계 불안, 북핵문제 상존 등 경제 불확실 요인으로 인해 중소제조업 체감경기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은 있기 마련이다.

지난 99년 한국경제신문사는 ‘작지만 강한기업 50’이란 책에서 중소기업이 거대기업과 비교해 △신속한 의사결정 △짧은 자금회전 기간 △전문화가 가능 △빠른 변신 △시장이 작아도 가능 △돈독한 인간관계 등에서 강점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불황기에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소 벤처기업들은 과감한 투자, 틈새시장 공략, 독특한 아이디어 개발 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과감한 투자와 기술개발로 도어록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매일테크노전자의 경우 현재 중국, 일본, 유럽 등에 대한 수출계획과 함께 많은 국가들로부터 수입 문의를 받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디지털 도어락 제품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아웃소싱기업인 ‘스탭스’는 1998년 삼성전자에서 분사할 때만해도 삼성전자의 복리후생, 총무업무 대행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파견·업무대행·생산 도급 등 전문화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업계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코리아아이비씨의 경우 틈새시장을 노린 제품 개발로 불황을 극복하고 있다.

금, 은, 동의 금속 메탈에 탄소 소재인 카본을 이용해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메탈 포토는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위에서 열거한 예처럼 중소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많은 자금력과 고도의 두뇌를 필요로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와 함께 산학연컨소시엄, 기술지도사업처럼 정부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기술개발지원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다.

정부도 중소기업들이 기술개발에 힘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참여정부가 목표로 삼고 있는 강소국 중 하나인 스웨덴의 R&D 예산은 매년 국내총생산(GDB) 대비 3% 이상으로 세계 최고다. 스웨덴은 이를 바탕으로 국민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

현재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발벗고 나선 자자체의 다양한 지원제도도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대구광역시는 중진공 대구·경북지역본부와 함께 매년 30여 개의 유망 중소기업을 선도 중소기업으로 지정해 육성하고 있다. 지정된 기업은 3%포인트 낮은 우대금리로 대구시 지원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기술·경영에 대한 컨설팅도 무료로 제공받는다.

또한 강원도와 중진공 강원지역본부는 중소기업 네트워크 조성과 벤처창업 인프라스트럭처인 창업보육센터(BI)를 연계지원하고 있다.

아웃소싱업계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스탭스 박천웅 대표는 이 같은 요소들 외에도 “중소기업들은 특정사업·특정기업의 의존형에서 벗어나 시대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고 특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며 중소기업들이 전문성 확보에도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3-08-22 [기업하기 힘든 나라]<5> 기업과 시민, 함께 가는 [동아일보]

《1995년 10월 영국 동부의 클리블랜드 윈야드. 삼성전자는 TV와 전자레인지 등 복합전자공장 준공식을 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직접 준공식에 참석해 삼성전자가 영국에 공장을 세워 준 것을 치하하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꼭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삼성전자 공장이 있는 거리는 아예 ‘삼성 애버뉴’ 라고 이름을 바꿔 주었다. 당시 준공식에 참석했던 삼성 관계자의 회고. “영국 진출 첫 해에는 당연히 적자를 볼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익이 났다. 알고 보니 공장 설립 첫 해 각종 세제 감면혜택을 주면서 근로자에 지불한 임금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가로 감면해 줬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 대우에 감격했다”고 말했다.

7월 20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와 삼성이 합작해 설립한 할인점 홈플러스 서울 영등포점으로 직행, 점포를 둘러보았다. 국가 지도자가 앞장서서 기업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기업 ‘기(氣)’ 살리기=영국은 그것도 모자라 2001년부터 정부, 기업, 언론이 함께 ‘반기업 정서 퇴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90년대 심한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미국에 비해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기업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없는 원인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국민들에게 부(富)에 대한 부정적 인식, 기업에 대한 막연한 반감 등 문화적, 정서적 배경이 있다고 보고 정부 관료들과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함께 해결책을 모색했다.

최근 영국은 학교 수업시간에 기업 현장체험 프로그램을 넣고, 교사들도 회사를 방문해 견학하는 행사를 활발히 하고 있다. 또 대기업 경영진이 직접 나서서 지역사회 중소기업과 친분을 도모하고, 지역대학 교수들에게 기업의 자문을 부탁하며, 기업 임직원들이 직접 각급 학교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고 있다.

영국 정부와 함께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컨설팅업체 액센추어의 한국사무소 한봉훈(韓鳳勳) 사장은 “영국은 기업에 대한 친근감을 조성하기 위해 민관(民官) 합동으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몽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액센추어 측은 중국 캐나다 러시아에서도 각국 정부와 함께 비슷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 기업인 다시 태어나야=기업과 기업인이 먼저 대오각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정경유착, 분식회계, 탈법 상속 등은 한국 사회에서 기업인들이 지탄받는 대표적인 이유들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金尙祚·한성대 교수) 소장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것은 반 기업 정서가 아니라 반 기업인 정서”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기업 총수들은 5% 안팎의 소수 지분을 가지고 마치 기업이 개인의 것인 양 전횡함으로써 주주, 근로자,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침해해왔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또 “노조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나라는 독일을 포함해 세계 어디에도 없다”면서 “그러나 근로자들에게 기업 경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근로자들을 감시자이자 협력자로서 활동하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톨릭대 경제학과 곽만순(郭晩淳) 교수도 “검증받지 않은 경영권 세습과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이용한 편법 증여, 불법적인 부(富)의 상속 등이야말로 비정상적인 노조문화를 만든 하나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인들이 정정당당히 세금을 내지 않거나 주주의 평가를 회피하니까 노조도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또 기업이 정계나 정부보다 변화가 빠른 집단이므로 정치권력이나 정부를 탓하기에 앞서 기업이 윤리경영, 투명경영, 올바른 기업지배구조 등을 실천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변화를 선도해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영자를 ‘스타’로=사회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부분도 많다. 곽 교수는 “기업을 부도덕과 비윤리의 온상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면서 “생산적 기업과 부실한 기업, 건강한 기업인과 부도덕한 기업인을 구분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본시장이 제대로 작동해 불량 기업을 제대로 솎아줘야 하며 외부 감사나 신용평가도 엄정해야 한다는 것.

세정(稅政)이나 사법적 접근, 금융감독 등이 투명하고 공평무사하게 집행돼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곽 교수는 “시민단체가 재벌의 편법 상속을 감시 고발하는 것은 과도기적 행태”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朴容晟) 회장은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는 기업인들을 스타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본받으며 닮고 싶은 경영인상(像)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박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이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보람과 성취욕을 느끼고 수십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데 바로 그런 사람이 스타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엘리트들이 고시촌으로, 의과대학으로만 몰려가서는 한국의 장래가 어둡다”면서 “기업의 CEO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孫炳斗) 고문은 캠페인이라도 벌이자고 제안했다. ‘기업사랑이 나라사랑’이라는.

신연수기자 / 이강운기자


▼외국의 기업 대우 사례▼

1987년 한국 기업인 새한미디어가 아일랜드에 진출할 때의 일.

당시 새한 직원들은 현지에서 운전면허를 딸 때 외자유치 기관인 아일랜드산업개발청(IDA) 담당자가 면허시험장까지 따라와 도와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마 후 한 번 더 놀랄 일이 생겼다. 직원들이 출퇴근할 때 불편해하자 IDA 담당자가 “출퇴근용 미니버스를 개조해서 좌석수를 늘리면 두 번 왕복할 필요가 없어 훨씬 편할 것”이라며 직접 차량 판매회사에 문의해서 개조 절차를 일일이 확인해준 것이다. 아일랜드의 공무원들이 기업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80년대 후반까지 서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혔던 아일랜드는 최근 1인당 국민소득에서 영국을 앞질렀다. 10여년 만에 이렇게 급성장한 배경에는 정부의 공격적인 외자 유치 정책과 함께 기업을 소중하게 여기는 공무원들의 서비스정신이 깔려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80년대 불황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업 경영 활동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는 나라 전체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이 고성장의 비결”이라고 지적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 박상용 매니저는 “노사나 통상문제 등 기업과 관련된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 조직이 한 곳에 통합돼 있어 정책 조율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뤄진 것도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짧은 기간에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비결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뿐이다. 아일랜드를 비롯해 이른바 강소국(强小國)으로 꼽히는 국가들은 하나같이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규제를 개혁하며 기업가 정신을 높이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국가와 기업이 건강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기업 가운데에는 ‘로열 더치’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곳이 많다. KLM 등 다국적기업에서 소규모 제빵업체에 이르기까지 250여개에 이른다. 국가 경제에 기여한 기업을 뽑아 이런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기업인들에게는 더 없는 영예다.

필립스 코리아 유재순 상무는 “네덜란드 국민은 왕실을 친구처럼 좋아하기 때문에 기업가들은 자신의 기업에 ‘로열’이라는 말이 붙으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정책은 기업가들이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유럽 최고의 외자 유치 실적을 자랑하는 스코틀랜드에는 ‘스코티시 엔터프라이즈’라는 독특한 기관이 있다.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을 가리지 않고 스코틀랜드 내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마련된 조직이다.

스코틀랜드투자개발청(SDI) 장헌상 한국 대표는 “스코티시 엔터프라이즈의 직원들은 신분은 공무원에 가깝지만 인사 정책은 민간기업과 비슷하다”며 “외자 유치를 포함해 기업 활동에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 등의 실적을 평가해 고과에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석민기자


2003-08-12 “삼성, 소프트 경쟁력 키워라“..이건희 회장, 톱제품 비교전시회서 강조[한국경제]

“디자인과 브랜드 등 소프트웨어에 승부를 걸어라”

이건희 삼성 회장이 11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개막된 ‘2003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에 참석,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할 것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날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자 관계사 사장단 20여명과 함께 전시된 5백82개 세계 유명 전자제품을 직접 둘러보며 이같이 주문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 제품의 성능과 기능의 차이는 줄어드는 대신 디자인 브랜드 등과 같은 분야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소프트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또 “21세기 기업의 생존요건인 월드베스트 제품을 늘려 나가기 위해서는 세계 초일류 제품의 핵심 기술과 장·단점 차이를 비교해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통한 기술 경쟁력 확보가 제품과 기업의 생존 원천이라고 역설했다.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강소국(强小國)을 방문하고 지난달 말 귀국한 이 회장은 사장단에 “북유럽 강소국들이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대기업을 키워 2만달러 시대를 달성한 것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모델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소득을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끌어올리는 것이 국가와 기업의 염원이 된 상황에서 시장을 이끄는 첨단기술을 확보해 어려운 경제여건을 극복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전시회장엔 강소국 벤치마킹을 위해 핀란드 노키아 부스와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의 일렉트로룩스 부스가 별도로 설치됐다.

특히 이 회장이 핀란드 스웨덴 일본 등 해외 현지에서 직접 구입한 최첨단 휴대폰, PDP, 홈시어터 제품 20여점도 함께 전시됐다.

이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진 제품과의 비교를 통해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지난해에도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를 직접 관람하고 세계 일류화를 위한 신 월드베스트 전략을 추진할 것을 지시했었다.

지난 91년에는 미국 LA 호텔방에서 삼성과 도시바의 VTR를 부품 하나까지 분해해 함께 있던 임원들에게 비교, 분석해 보이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는 93년 월드베스트 전략을 기치로 신경영을 선언한 지 10년만에 D램 TFT-LCD 모니터 등 모두 19개 품목의 세계 일등 제품을 확보한 상황에서 임직원들에게 첨단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미래기술 개발의 방향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8백평의 전시장에 4개 제품관(디지털미디어관 정보통신관 생활가전관 반도체관)과 2개 테마관(미래기술관 디자인관) 등 6개 전문 전시관이 마련돼 총 80개 제품군에 걸쳐 5백82개 제품이 전시된다.

전시장에는 삼성과 소니 마쓰시타 히타치 샤프 등 일본 제품과 제너럴일렉트릭(GE) 인텔 노키아 등 분야별 세계 최고기업의 제품이 총망라돼 선보인다.

전시회는 이달 말까지 비공개로 진행되며 모두 2만여명의 삼성 임직원이 관람할 예정이다.

삼성은 전시회가 끝난 뒤 제품들을 경기도 용인 그룹연수원 ‘창조관’과 삼성전자 각 사업장으로 나눠 상설 전시할 계획이다.

강동균 기자


2003-08-12 세계적 대기업 키워야 2 달성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선일보]

이건희(李健熙·얼굴) 삼성그룹 회장은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되려면 북구(北歐) 강소국(强小國)들처럼 세계적인 대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은 11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개막된 ‘2003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에 참석, “국민소득을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끌어올리는 것이 국가와 기업의 염원이 되었다”면서 “핀란드와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대기업을 키워 2만달러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 참석과 북유럽 방문을 마치고 지난달 말 귀국한 이 회장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북구를 둘러보니 세계적 대기업을 키우는 전략이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란 점을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또 “앞으로 제품의 성능과 기능의 차이는 줄어들 것”이라며 “하지만 디자인과 브랜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므로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라”고 윤종용(尹鍾龍)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지시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강소국 벤치마킹을 위해 정보통신관내에 핀란드 ‘노키아’ 부스, 생활가전관에 스웨덴 ‘일렉트로룩스’ 부스를 별도로 설치했다.

/崔弘涉기자


2003-08-11 이건희 회장 강소국 보고 배워라” [파이낸셜뉴스]

삼성은 IOC총회 참석과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강소국(작지만 강한 나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건희 삼성회장의 특별지시로 그룹 핵심임직원 2만명이 참석하는 ‘2003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를 11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여름휴가를 북유럽 순회로 대체하며 ‘제2의 신경영 전략 세우기’에 골몰했던 이회장이 귀국 후 내놓은 강소국 벤치마킹의 ‘첫번째 카드’라는 점에서 재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멍석 깔테니 보고 배워라=삼성은 월드베스트 전략 추진 10주년을 맞아 11일부터 이달 말까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안에 전시장을 4개 제품관과 2개 테마관 등 6개 전문 전시관으로 나눠 총 80개 제품군ㆍ582개 제품을 비교 전시에 들어갔다.

이번 전시회는 삼성이 지난 93년 월드베스트 전략을 기치로 신경영을 선언한지 10년만에 임직원에게 첨단기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미래 기술 개발의 방향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킨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이 회장은 이날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자관계사 사장단 20여명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 보며 “21세기 기업의 생존요건인 월드베스트 제품을 늘려 나가기 위해서는 세계초일류 제품의 핵심 기술과 장단점 차이를 비교해 현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연구개발(R&D)을 통한 기술 경쟁력 확보가 제품과 기업의 생존 원천임을 뜻하며 이를 위해서 끊임없는 벤치마킹만이 살길임을 일깨우는 말로 풀이된다.

특히 이 회장은 핀란드, 스웨덴과 일본 등 해외 현지에서 직접 구입해온 최첨단 휴대폰, PDA 등 제품 20여점도 이번 전시회에 함께 전시할 만큼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 통째로 벤치마킹= 약 한 달간의 강소국 투어 기간 동안 이회장의 머릿속에는 ‘강대국에 비해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가 작은 한국이 잘사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고민만이 가득했다.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 북유럽의 강소국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게 이 회장의 결론이었다.

강소국이란 인구와 국토 그리고 자원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 대열에 들어선 경제선진국을 말한다.

이 회장은 이날 사장단과 함께 한 자리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대기업을 키워 2만달러 시대를 달성한 북구 유럽 강소국들이야말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강소국 벤치마킹론은 단순히 기술력을 갖춘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경제를 핵심 대기업이 선도하고 정부는 과감한 규제완화로 뒷받침한 정부와 기업간 관계설정부터 북유럽의 뛰어난 복지환경도 통째 이회장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이번 북유럽 순회기간 동안 이 회장이 덴마크와 네덜란드 등의 복지시설과 사회간접을 살펴본 것 역시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삼성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회장은 이번 북유럽 방문을 통해 지난 2001년 삼성이 내세웠던 강소국의 성공 교훈을 다시 정리해 구체적 실천방안을 마련토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지용기자


2003-07-30 [이건희 개혁 10] 호암 삼성 냄새 빼라? [헤럴드경제]

지난 90년 이후 이 회장이 한번도 빠짐 없이 참석하는 행사는 매년 6월1일 ‘호암상 수상식’이다. 수상식 후 열리는 만찬도 본인이 직접 주재한다. 이 회장이 호암상에 이처럼 관심이 높은 것은 단순히 선대회장에 대한 존경심과 효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

“강소국의 선두 주자인 스웨덴의 경쟁력의 원천은 ‘노벨상’이다. 노벨상으로 얻는 스웨덴의 국가 인지도는 소니나 IBM을 능가한다.” 이 회장은 90년대 중반 비서실 팀장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불쑥 이런 얘기를 꺼냈다.

이 회장은 호암상을 노벨상에 버금가는 상으로 키우기 위해 호암상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고 여긴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91년 첫 수상자가 결정된 그 해 2월 말. 당시 이수빈 비서실장과 김순택 비서팀장 등 삼성 수뇌부는 수상자와 이 회장의 자리배치 문제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수상자를 단상으로 올리고 이 회장을 포함한 그룹 수뇌부 자리를 단하로 하자는 안과 그 반대의 안을 놓고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당수 비서실 팀장들은 이 회장 내외를 단상에 수상자를 단하로 하자고 주장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이 회장은 수상자를 단상으로 올리도록 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비서팀에 근무했던 A모 상무의 얘기.

“이 회장은 당시 ‘수상자가 고객’이라는 한마디로 실무팀의 고민을 덜어줬다”고 회고했다.

삼성복지재단에서 관할하던 호암상 관련 업무를 분리해 97년 호암재단을 설립한 것도 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이 회장은 이 상의권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급적 ‘삼성 냄새’를 제거해야 한다고 보고 별도 재단을 설립토록 했다.

재단 설립 이후 실무진 사이에서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수여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그전까지 수여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비서팀에 지시해 호암재단 이사장이 수여자가 돼야 상의 권위가 높아진다는 자신의 의중을 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암상 수상 행사를 3월 22일 삼성그룹 창립기념일에서 재단설립일인 6월 1일로 바꾼 것도 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작은 노력.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은 “호암상의 위상과 권위를 높이기 위해 설립자인 이 회장의 관심이 매우 높다”며 “수상자 선정과정에서 간섭이 일절 없다”고 말했다.

호암재단은 노벨상을 목표로 노벨재단을 끊임 없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수상 대상자를 한국인에서 한국계로 넓혀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수상할 수 있도록 했다.

김윤철 호암재단사무국장은 “호암상 수상자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호암상 수상자 가운데 3, 4명이 노벨상 추천 후보에 올라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성홍 기자


2003-07-24 유럽 방문중인 이건희 회장 실버타운장례시설 들러[매일경제]

북유럽을 방문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최근 덴마크와 네덜란드 등을 추가로 방문했다.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개최지 회의 참석 후 스웨덴과 영국 핀란드를 들렀던 이 회장은 이후 덴마크와 네덜란드 복지시설과 사회간접시설을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특히 스웨덴에서 노후복지환경을 갖추고 있는 실버타운 필 트라드(Pil Trad)와 스톡홀름의 장지시설인 우디 랜드(Woody Land)를 주의 깊게 봤다는 전언이다.

현지에서 이 회장을 안내한 가이드에 의하면 “이 회장은 실버타운이 스톡홀름 시내 중심부에 있는 데 대해 감탄했다”고 전했다.

실버타운이 주로 교외에 있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웨덴이 실버타운을 이처럼 도심에 둔 이유는 실버타운을 이용하는 노인들에게 소외감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은 이미 삼성생명공익재단에서 주관해 최고급 노인시설 ‘노블 카운티’를 경기도 용인에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는 특히 스톡홀름 인근 야외박물관에 1700년대 초등학교 과학 실험 기자재들이 전시된 것을 보고 일찍부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스웨덴의 지혜를 높이 평가했다는 전언이다.

이 회장은 바이킹족의 후예인 스웨덴이 척박한 자원환경 속에서도 이 같은 지혜와 노력으로 국민소득 2만달러를 일찍 달성해낸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이에 앞서 핀란드에서는 세계 1위의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를 방문해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과 욜릴라 노키아 회장은 모바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양측의 협력과 제휴를 강화하기로 했다. 삼성 측은 노키아에 이미 모바일용 칩을 공급하고 있다.

한편 이 회장은 이번 북유럽 방문을 통해 2001년 삼성이 내세웠던 강소국의 성공 교훈을 다시 정리해 실천방안을 마련토록 지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북유럽구상’으로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의 모델이 됐던 강소국들로부터 다시 한 수 배우자는 것이다.

삼성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설정했던 북유럽의 강소국은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핀란드 등으로 인구 5000만명 이하에 빈약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해낸 국가이다.

<윤경호 기자>


2003-07-24 삼성 사회복지사업 확대하나..이건희 회장 유럽 실버타운 방문[한국경제]

한 달 간의 유럽투어를 마치고 이번 주말께 귀국하는 이건희 회장의 ‘유럽 구상’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달 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회의 직후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덴마크 등을 잇따라 방문, 현지기업과 산업현장 사회간접시설 복지시설 등 관심 분야를 집중적으로 둘러봤다.

재계는 이 회장이 이들 국가를 ‘강소국(强小國·작으면서도 강한 나라)’으로 규정하고 오랫동안 방문을 준비해왔다는 점에서 이 회장이 귀국 후 풀어놓을 ‘신경영 2기’ 사업 구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회장은 가장 먼저 스웨덴으로 건너가 발렌베리가(家)를 방문했다.

발렌베리는 1856년 창업 이후 무려 5대에 걸쳐 오너경영을 유지하면서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ABB 사브(SAAB) 스카니아 등 세계 초일류 기업들을 키워낸 스웨덴의 대표적인 기업가문이다.

이 회장은 ‘크누트&앨리스 발렌베리 재단’의 페테르 발렌베리 이사장과 지주회사인 ‘인베스트AB’의 마르쿠스 발렌베리 대표 등과 만나 이들이 오너경영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비결을 들었다.

이 회장은 완벽한 노후복지체제를 갖추고 있는 스웨덴의 실버타운 ‘필트라드’와 장지시설 ‘우디랜드’도 둘러봤다.

이 회장은 “노인촌이라고 해서 고립시키면 안 된다. 시내나 일반인들이 드나들기 용이한 곳에 있어야 하고 그런 삶이 보이게 해야 한다. 또 실버타운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노후복지시설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삼성은 이미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삼성생명공익재단을 통해 경기도 용인에 최고급 노인시설 ‘노블카운티’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은 또 핀란드의 대표기업 노키아를 방문했다. 노키아는 핀란드의 경제를 이끄는 대표기업.

이 회장은 강소국의 거대기업으로서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에 큰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와 함께 네덜란드의 화훼산업과 물류시설,덴마크의 낙농시설과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연결된 말뫼육교, 폐기물처리장 등 강소국의 주력산업과 인프라도 둘러봤다.

김성택 기자


2003-07-23 [이건희 개혁 10] 강소국 국민정부에 던지는 메시지? [헤럴드경제]

[이건희 개혁 10년]

강소국 論은 국민-정부에 던지는 메시지?

기업을 ‘대표선수’로 키운 유럽 통해 전혀 딴판인 국내 실상 보여주려한 듯

이 회장이 ‘주식회사 한국’의 미래 성장 모델로 강소국을 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주변환경과 여건이 우리와 매우 흡사하다.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모두 지정학적으로 우리와 닮은 꼴이다. 이들 국가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지중해 연안의 강대국을 옆에 두고 있고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약소국들을 끼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라는 강대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개발도상국들이 주변에 있는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경제구도도 유사하다. 몇몇 대기업이 국가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지난 2000년 기준으로 노키아를 선두로 한 핀란드의 10대 기업 매출액은 826억달러로 이 나라 GDP(1183억달러)의 70% 수준. 스웨덴의 10대 기업 매출은 1218억달러로 GDP 1886억달러의 65%다. 우리나라 삼성전자 등 10대 기업은 2083억달러로 4574억달러의 46%다.

기업에 대한 인식과 정서 면에서는 우리와 딴판이다. 한국에서는 경제력 집중이라는 여론이 형성된 반면, 이들 강소국에서는 오히려 ‘대표선수’를 국민들이 키워 나간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자국 기업에 유리한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 ‘차등주식제도’를 마련, 기업가의 안정적 경영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 제도는 주식을 ‘1주1표, 1주10표’의 두 가지 종류로 나눠 창업자가 1주10표를 행사하는 주식을 보유하게 함으로써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자국 기업을 보호토록 하고 있다. 반면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경제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전환하면서 사외이사 도입, 소액주주권 강화 등 대기업 오너들에 대한 견제에 치중하고 있다.

강소국의 경우 대기업의 사회공헌도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핀란드의 경우 노키아의 경쟁력과 국제 경험을 국가 전체의 경쟁력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총리 직속기구인 ‘과학기술정책이사회’에 노키아의 임원을 참석시키고 있다. 또 정부가 추진 중인 2010년 세계 3대 일류 국가 건설을 위한 ‘Finland in 2015’ 프로젝트에이 회사 경영진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제도가 시행된다면 대기업과 정부의 유착이라는 여론이 형성될 게 뻔하다”고 말한다.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는 경제 시스템도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이다. 스웨덴은 하루 24시간 1주일 7일간 쉬지 않고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24/7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핀란드는 기업 설립에 대한 허가나 통보절차를 대폭 단축했다. 지난 96년 6주 걸리던 기간을 최근에는 2주로 단축했다고 한다. 이 나라는 특히 자국민들의 기업 이해도를 높이고 기업가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Decade of Entrepreneurship 1995~2005’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강소국 모델은 IMF 위기 이후 국내에 이식된 ‘월스트리트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일종의 대안이다. 경영 투명성만을 지고지순의 가치로 고집하고 있는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는 한국의 대표선수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며 이는 곧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강소국 모델은 이 회장이 국가와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라는 게 기자의 느낌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IMF 위기 이후 삼성의 기업가치가 높아지면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제력 집중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삼성을보호하겠다는 ‘기업인 이건희 회장’의 보호 본능도 물론, 포함돼 있을것으로 판단된다.

김성홍 기자


2003-07-18 삼성노키아 협력강화 논의..이건희 회장, 올릴라 회장 만나 [한국경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세계 최대의 휴대폰 회사인 노키아의 요르마 올릴라 회장과 만나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은 이 회장이 16일(현지시각) 핀란드 헬싱키의 노키아를 방문, 올릴라 회장과 만나 세계 이동통신 산업을 선도하는 두 기업이 기술 개발 및 미래시장 개척 등에서 협력을 보다 강화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노키아 방문에는 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 황창규 메모리사업부 사장, 이기태 정보통신 총괄 사장이, 노키아 측에서는 마티 알라후타 휴대폰 부문 사장,페르티 코르호넨 휴대폰 부문 부사장 등이 배석했다.

노키아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메모리 전량을 삼성전자로부터 구매하는 대형거래처로 개인정보기능을 강화한 ‘커뮤니케이터’에는 업계 처음으로 D램을 채용하는 등 삼성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휴대폰 분야에서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노키아의 휴대폰 OS(운용시스템)를 채용했으며 4세대 휴대폰용 OS개발을 위해 심비안사에도 함께 출자하는 등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이 회장은 올릴라 회장과의 오찬에서 “인구도 적고 국토도 크지 않은 핀란드가 노키아 같은 IT(정보기술)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강소국이 된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한편 지난 6월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참석차 출국한 이 회장은 이달초 스웨덴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가(家)의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 등을 만나 새로운 경영 및 기업지배 시스템에 관해 논의했다.

이 회장은 유럽 주요국가들을 방문한 뒤 이달 하순 귀국할 예정이다.

김성택 기자


2003-07-17 [이건희회장 노키아 방문의 의미는] 노키아 지식경영 [파이낸셜뉴스]

삼성의 적과의 동침은 이뤄질까. 삼성이 지식경영의 대명사로 존경받는 노키아와 협력체계 구축에 나서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지난 16일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노키아 본사를 전격 방문, 요르마 올릴라 회장을 만났다. 이회장은 이 자리에서 소프트웨어 등의 기술분야와 미래시장 공동개척 등을 상호 협력키로 의견을 모았다고 삼성은 전했다.

이회장은 특히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강소국인 핀란드에 대한 벤치마킹에 커다란 관심을 표명했다.

◇지식공유 기업 노키아=노키아는 연간 1억5000만대의 휴대폰을 팔아 세계시장 35%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다. 노키아는 협업으로 지식을 창조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그래서 ‘개방적 지식공유’를 지식경영의 첫째 덕목으로 꼽고 있다. 사내는 물론 경쟁사와 끊임없는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노키아의 경영전략이다. 어쩌면 삼성과의 상호협력관계를 유지하려는 것도 여기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노키아는 1년 전 모바일 폰 사업부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시분할다중접속(TDMA) ▲모바일 초기 제품(Entry Products) ▲모바일폰 ▲엔터테인먼트 & 미디어 ▲이미징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모바일 확장(Enhancement) 등 8개 부문으로 세분했다.

이 같은 시스템 개편은 곧 몇 달러에 불과한 베이직(Basic) 휴대폰에서 수백 달러에 이르는 프리미엄(Premium)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 같은 협업은 경쟁사와도 이뤄진다. 300여개 모바일, 정보기술(IT), 콘텐츠 업체들과 협력한 오픈 모바일 얼라이언스(Open Mobile Alliance)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이런 개방성이 있기에 가능했다.

노키아의 성공에는 요르마 올릴라 회장의 리더십도 큰 몫을 했다. 올릴라회장 리더십의 핵심은 ‘신뢰’를 바탕으로 인재와 가치를 존중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다. 노키아의 경쟁력을 지탱하는 또 다른 핵심 지식창구는 디자인센터. 14개국에 흩어진 디자이너 100여명은 마치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처럼 정보를 공유하며 신모델을 만들어낸다.

◇2만달러 강소국 벤치마킹=이회장은 요즘 ‘2만달러 시대’의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다. 그는 ‘신경영 선언’ 10주기 때에도 소득 1만달러 시대의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분발과 천재급 두뇌 양성의 필요성을 역설한바 있다.

이회장은 “지금 우리 경제는 과거 선진국이 겪었던 것처럼 ‘마(魔)의 1만달러 시대 불경기’에 처해 있다”며 “우리가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일류 선진국이 될 수도,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안에 2만달러로 가지 못하면 1만달러도 지키기 힘들 것”이라며 “제 몫을 찾기보다는 파이를 조속히 키워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돌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회장은 “2만달러 시대로 가자는 것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지 삼성만 잘 살자는 뜻이 아니다”며 “국가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데 삼성이 앞장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가 핀란드를 비롯, 스웨덴 등을 방문하는 것도 국민소득 2만달러 조기 달성을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이회장은 ‘마의 국민소득 1만달러의 덫’을 현명하게 탈출했던 이들 나라의 경험과 성공요인 등을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5분기 연속 3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4분기에 총 1187만9000대의 휴대폰을 팔아 시장점유율 10.5%로 3위를 기록했다.

2위 업체인 모토로라와의 격차를 지난해 1·4분기 6.4%에서 올해 4.2%로 좁혔다. 4위인 지멘스와의 격차는 지난해 0.8%에서 3%대로 벌려놓았다. 노키아는 35%의 점유율로 1위를 고수했고 모토로라는 14.7%로 2위를 차지했다.

따라서 삼성과 노키아가 효율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게 되면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이 2위로 진입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 김승중기자


2003-07-10 삼성유럽식 경제모델 성과한계분석 “/”유럽·영미식 절충이 강소국 모델” [한국일보]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주주중심 시장경제, 외자유치.’

삼성경제연구소는 9일 ‘유럽식 경제모델의 성과와 한계’라는 보고서에서 1970∼80년대에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었던 영국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유럽의 국가들이 이 같은 개혁 드라이브로 경제성장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대륙식 경제모델은 영미식(영국, 아일랜드), 유럽강소국(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에 비해 경제적 성과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영미식은 자원의 효율적 분배, 편리한 자금조달,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에서 우위에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유럽대륙식의 경우 분배의 형평성은 영미식보다 우월하지만, 노동시장 경직성 등으로 인해 경제적 효율이 낮아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강소국들은 이들 2가지 모델을 절충시킨 독특한 발전모델을 보유, 위기 극복에 성공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전후 유럽경제의 모범생으로 각광받았던 독일은 경직된 노동시장, 과도한 사회복지 등으로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영국은 70년대까지 노동당의 친노조정책으로 빈번한 파업 등 전형적인 ‘영국병’으로 신음했지만 80년대 집권한 보수당 대처수상의 노동개혁 등으로 유럽 제1의 투자유치국으로 거듭났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네덜란드도 한 때 기업도산으로 인한 노사갈등 심화 등 ‘네덜란드병’을 앓았지만 82년 ‘바세나협약’에서 임금인상 억제(최대 2.5%이내 인상), 파업자제 등 대타협을 이뤄내 성장과 실업문제 해결 등 두마리 토끼 잡기에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오승구 수석연구원은 “효율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중시하는 영미식 경제모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노사 등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중시하는 유럽 강소국 모델의 장점을 흡수,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조기에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의춘기자


2003-07-07 [특집4] 외국에서 배운다, 유럽의 허브 네덜란드 [매일경제]

히딩크 감독으로 더 유명해진 네덜란드. 튤립이나 풍차를 떠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강소국(强小國)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말은 ‘물류허브국가’다. 국토는 좁아도 물류에 관해서라면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다.

로테르담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유럽의 젖줄 라인강이 북해와 만나는 항구 로테르담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부두나 다름없다. 네덜란드 국내총생산(GDP)은 전 유럽 5%에 불과하다. 그러나 로테르담은 유럽 물동량40% 이상 거쳐가는 대표적인 ‘허브항’이다. 지난해 이 곳을 통한 화물은 총 3억1460만톤으로 세계 최대다. 부산항 3배를 웃도는 수치다.

항구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허브라 해도 지나친 얘기가 아니다. 유럽에 진출한 미국과 아시아 기업 가운데 각각 57%, 56%가 네덜란드에 유통센터를 뒀다.

구주 총괄본부를 영국 런던에 둔 삼성전자도 물류본부만큼은 네덜란드를 고집한다. 노키아, 에릭슨 등 세계적인 통신브랜드 휴대폰이나, 삼성전자 TV, 모니터 등도 네덜란드에서 유럽으로 퍼진다.

네덜란드가 유럽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요인이 뭘까. 우선 지리적 요건이 좋다. 네덜란드는 유럽 주요국가와 인접했다. 이탈리아에서 스칸디나비아, 러시아에서 아일랜드까지 3억5000만명 인구의 심장부에 자리잡았다.

탄탄한 인프라(Infra)도 강점이다. 육로, 철로, 수로가 교차하는 완벽한 교통망을 갖췄다. 항구로 반입된 화물은 5개 간선도로망으로 유럽전역에 48시간 내 배달된다. 열차도 4개 철도노선으로 550개 터미널로 퍼진다.

■ 기업, 정부와 세금수위 협상 ■

정부도 유연하다. 네덜란드는 기업이 세금부과 수위를 놓고 정부와 협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다. 한번 결정되면 이에 대해 시비를 거는 단체도 없다.

네덜란드도 시련을 경험했다. 지난 70년대 말 정부지출확대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17%로 치솟았다. 80년대는 노사분규가 이어졌다. 이 때 노조총연맹 대표가 네덜란드 재계 대표를 만나 이른바 ‘와세나르 협약’을 만들었다. 이 안을 들고 노조 대표는 노조를 설득하고,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세금경감 등 정책으로 화답했다. 그 뒤 네덜란드는 르네상스를 맞게 됐다.


2003-07-04 삼성, 스웨덴 발렌베리벤치마킹회장 내주 방문 [한국경제]

삼성이 스웨덴 최대 그룹으로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ABB 등 세계적 기업을 계열사로 둔 발렌베리(Wallenberg)의 벤치마킹에 나선다.

이를 위해 이건희 회장이 발렌베리가(家)를 직접 방문한다.

삼성은 3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체코에 머물고 있는 이건희 회장이 내주초 스웨덴으로 건너가 발렌베리그룹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이번 방문기간중 발렌베리의 대표 재단인 ‘크트&앨리스 발렌베리 재단’ 페테르 발렌베리 이사장과 발렌베리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트AB’의 마르쿠스 발렌베리 대표, SEB은행의 야콥 발렌베리 대표 등과 만날 예정이다.

이 회장의 발렌베리 방문에는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과 김준 삼성 구조조정본부 비서팀장 등이 동행한다.

이 회장은 발렌베리 가문이 1856년 창업 이후 무려 5대에 걸쳐 오너경영을 유지하면서도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ABB, 사브(SAAB), 스카니아 등 세계 초일류 기업을 키워낸 경영시스템에 대해 들을 예정이다.

특히 대주주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면서 투자기관 및 일반주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안과, 오너경영인과 전문경영인 간에 적절하게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도 상호 의견을 나눌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또 발렌베리 가문에 경제력이 집중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존경받고 정부와 협력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경영권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는 체제를 모색하고 있는 삼성의 고민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또 정부가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반대하고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발렌베리 가문에 큰 관심을 보여 오래전부터 이번 방문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삼성측은 이 회장이 스웨덴을 통해 강소국(强小國)의 성공비결도 파악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택 기자


2003-07-04 국민소득 2만달러 언제쯤매년 7% 성장해야 2012 가능 [동아일보]

경제계와 정부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라는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은 언제쯤 2만달러에 도달할 수 있고 앞서 이룬 나라들은 어떤 경로를 거쳤을까.

LG경제연구원은 3일 ‘2만달러 시대 언제 도달하나’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2012년경 2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10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 4.7%, 물가상승률 2.3%, 환율은 연간 1%씩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다.

그러나 만일 경제성장률이 연간 3.5%(물가상승률 2%, 환율상승률 1%)에 머물면 2만달러 진입은 2020년 이후로 늦춰지는 등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것으로 이 보고서는 예상했다.

먼저 국민소득 2만달러를 이룬 나라는 모두 24개국. 이들이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도약하는 데는 평균 8.9년이 걸렸다.

이 보고서는 2만달러 달성국들은 강대국, 북유럽의 강소국, 자원 부국(富國) 등 3가지로 나뉜다고 분석했다.

강대국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세계 경제 및 정치를 주도하는 나라들. 강소국에는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스위스 덴마크 등 북유럽의 강소국들과 아시아의 홍콩 싱가포르가 해당된다. 세 번째는 카타르 쿠웨이트 등 산유국과 자원부국.

이 보고서는 ‘마(魔)의 1만달러 장벽’, 즉 성장률 둔화와 사회갈등을 극복하고 2만달러로 올라선 대표적인 나라로 영국과 네덜란드를 꼽았다.

신연수기자


2003-06-25 [이건희 개혁10] 유럽 강소국 일류를 경험하라 [헤럴드경제]

‘해외 방학’보낸 인재 국제화 大軍으로

신경영 선언 바로 전해인 1992년 8월 중순. 독일 프랑스를 방문하고 귀국하는 길이던 이건희 회장이 수행 중인 임원들과 스위스 취리히에 여장을 풀었다. 이 회장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임원들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이학수 비서실 재무팀장(현 구조조정본부장), 김순택 비서팀장(현 SDI 사장), 양해경 삼성물산 프랑크푸르트 지사장(현 물산 구주전략본부장·부사장)은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이 회장 앞에 모였다. 창밖을 내다보던 이 회장이 입을 열었다. “나 혼자 쉬고 있을 테니 여러분은 유럽의 독종과 생존, 그리고 일류문화를 경험해 보도록 하세요.”

‘독종’, ‘생존’ 생경한 말을 들은 수행임원들이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제서야 이 회장은 짧게 한마디 건넸다. “특별휴가요.” 임원이 출장 중 특별휴가라니. 진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양 부사장의 회고. “회장께서 갑자기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이르면서도 바티칸 시티의 근위병으로 용병까지 파견하며 수입을 올리는 스위스의 ‘독종근성’, 독일이라는 강대국에 치이면서도 BNO 등 경쟁력 있는 기업이 존재하는 덴마크의 ‘생존본능’, 대기업 없이 관광으로만 겨우 연명하는 게으른 오스트리아의 ‘타산지석’을 직접 느껴보라고 하더군요. 급히 일정을 짰습니다. 특별휴가이긴 했지만 월요일부터 공식일정이 다시 시작돼 금요일 저녁에 출발, 일요일 밤에 돌아오는 2박3일간의 강행군이었습니다.” 졸지에 특별휴가를 받은 임원들은 ‘소국의 생존’ ‘생존을 위한 독종’을 테마로 스위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 북부→덴마크를 거치는 인프라 기행을 한다.

그 이전만 해도 임원들은 통상 출장을 오면 업무상 거래선만 만나고 바로 다음 행선지로 출발하는 것이 관례. 유럽에 출장을 수십 번 와도 에펠탑 한 번 보기가 힘든 현실이었다. 이 회장은 바로 이 같은 통념을 깨고 나선 것이다. 외국 출장을 많이 간 게 국제화가 아니라 출장 간 나라의 인프라, 문화 등을 보고 직접 체험하는 것이 국제화라는 의미다.

이 사건 이후 삼성 임원들은 해외출장을 가면 비즈니스를 끝낸 뒤 2~3일간의 인프라·문화 체험을 의무적으로 하게 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신경영 선언 당시 이 회장이 수백 명에 이르는 그룹사 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 런던 도쿄로 불러 세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손욱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은 이렇게 전한다. “당시 재무팀에선 호텔비 문제로 난감해 했지만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 등 일류호텔에 그 많은 임원들을 다 불러 재우고 낮에는 인프라를 구경하라고 했던 것도 직접 체험하며 국제화의 안목을 키우자의 의도였습니다.”

특별휴가는 신경영 선언 이후엔 임원들을 대상으로 1년간 해외에 나가견문을 넓히도록 하는 ‘21세기 CEO과정’이라는 제도로 정착되기에 이른다.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은 “초기엔 회장이 임원들의 국제화 수준 미달을 질책하며 만들라고 한 제도여서 일부 계열사가 뜻을 잘못 이해하고 나가야 할 사람을 추천하는 등 옥석이 구분되지 않는 우여곡절도 겪었다”면서 “회장은 가르쳐서 중용하겠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한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안복현 물산 사장, 송용로 코닝 사장, 최도석 전자 사장 등이 바로 ‘21세기 CEO과정’ 멤버들이다.

최고경영자(CEO)의 부인도 국제화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이대원 미래전략위원회 위원장은 “회장께서 가족이 함께 국제화돼야 삼성의 국제화 수준과 나라의 국제화 수준이 높아진다며 출장갈 때 부인을 동반해서 가기를 자주 권유했다”고 전한다.

실제 삼성은 95년에 강진구 전자 회장의 부인 등 그룹 CEO 부인 22명으로 구성된 문화기행단을 구성, 유럽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이뤄졌다.

국제화된 인력양성에 대한 이 회장 깊은 관심을 나타내는 일화 하나. 비서실 인사팀장을 역임했던 에스원 이우희 사장의 전언이다. “94년인가 회장께서 집무실로 부르더군요. 현명관 비서실장을 비롯해 비서실 팀장들이 죄다 모여 있었는데 회장께서 그해 지역전문가로 선발된 인력들의 인사고과표, 어학성적표 등을 하나하나 꼼꼼이 체크하더니 ‘A급을 보내라고 했더니 어떻게 B, C급이 대다수냐. 당장 아쉬울지 몰라도 우수인력을 지역전문가로 키워야 삼성이 국제화되고 세계일류가 된다’며 나무라시더군요.” 사장단과 비서실 인사팀은 결국 그해 지역전문가를 다시 선발하는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지역전문가제도는 3년차 이상의 사원, 대리급 인력을 1년간 해외로 보내 자율 프로그램하에서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히도록 하는 제도. ‘1년간 월급 주고 해외 내보내 놀고 먹게 하는’ 파격적인 조치는 국제화에 대한 이 회장의 확고한 신념의 결과라는 평가다.

이우희 사장은 “지역전문가는 회장이 10~20년을 내다보고 키운 국제화인력”이라고 설명한다. 지역전문가는 삼성이 국제화를 위해 양성한 ‘10만대군’인 셈이다.

이 같은 인력의 국제화는 지난해 삼성이 총 수출액 312억달러로 국가 수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경제의 튼튼한 버팀목 역할을 해낸 원동력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아직 삼성의 국제화 수준은 이 회장의 눈높이보다 낮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사장단회의를 주재하면서 “5년 뒤쯤엔 사장단회의를 영어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삼성의 국제화가 어떻게 진행될것인지 보다 명확해지는 대목이다.

노인식 구조본 인력팀장의 말이다. “과·차장급의 외국어능력 향상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2~3년 뒤면 부장이나 임원 인사평가에도 영어 능력을 가점으로 인정하는 등 단계적으로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4~5년 안에 임원들이 영어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다.

실제 물산에서는 올해부터 간부(과장)승진 때 그간 가점으로만 사용하던 영어성적을 필수로 정해 영어자격시험2등급(토익 730점) 이하는 승진할 수 없도록 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신입사원 입사 때 회화능력을 측정,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도입할 계획이다.

황영기 사장은 “전자 등 그룹의 대표 회사 이사회가 영어로 진행되고 등기임원의 3분의 1 정도가 외국인으로 채워져야 국제화의 1단계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삼성의 국제화는 이렇게 쉼없이 진행되고 있다.

김성홍·우인호 기자


2003-01-14 “물류금융 특구조성한목소리 [헤럴드경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측이 국정의제의 하나로 ‘동북아국가론’을 제시하면서 재계가 이에 대해 어떻게 화답할지 주목된다.

삼성 SK 등 주요 그룹들은 오래전부터 한국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동북아중심국가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무관세 무분규, 무규제 등 이른바 3무(無) 환경이 실현되는 경제특구를 주창해 왔고, 손길승 SK 회장은 한ㆍ중ㆍ일 동북아 3국의 협력체제 구축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김재철 무협회장은 한반도의 물류기지화를 주장해왔다.

정부에서도 재계의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지난해 경제특구법을 제정했으나 법 제정과정에서 여러 이해집단들의 목소리를 조정하다보니 당초 의지가 퇴색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는 이에 따라 14일 대통령인수위 측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다시 한 번 촉구하고 후속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동북아국가론 왜 국정 아젠다에 포함됐는가=노 당선자 측이 동북아국가론을 국정 아젠다에 포함시킨 것은 정치, 경제적으로 다목적 포석을 띠고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동북아중심국가론의 개념은 한마디로 한국을 동북아 중심지역으로 육성하기 위해 비즈니스, 물류, 금융의 중심지로 육성하자는 것. 인천 영종도 김포 부산 광양 등 서해안 벨트를 중심으로 개별 지역의 특성에 맞춰 국제도시로 키워야 한국의 미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동북아중심국가로 육성할 경우 향후 중국 일본 한국을 단일 경제권으로 묶는 ‘자유무역지대’(FTA)가 체결될 경우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게 재계의 구상이다.

매년 10% 안팎의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고 세계 최대의 시장인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 일본 역시 설비 공급과잉에 따른 구조조정 해법 일환으로 중국으로의 설비이 전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3국 간의 이런 이해관계가 맞물려 동북아 FTA 체결은 시간문제라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

◆재계 요구사항=재계는 동북아중심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으로 ‘경제특구론’을 오래 전부터 주창해왔으며 정부도 이런 요구를 수용해 지난해 경제특구법을 제정한 바 있다.

경제특구법은 그러나 입법과정에서 노동계, 정치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당초 제정 취지가 상당부분 퇴색됐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재계는 이에 따라 14일 인수위 측과의 간담회에서 규제완화와 함께 정부의 의지를 강력히 주문한다는 복안이다.

사실 재계총수들은 오래 전부터 경제특구의 성공조건으로 규제완화를 강조해 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해 청와대 모임에서 ‘위기론’을 강조하면서 기술, 정보, 교육을 자유화해 외국과 동등하게 경쟁시키고 싱가포르 홍콩 핀란드 등의 좋은 점을 다 도입해 김포 지역에 몇 천만평의 경제특구를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평소 경제특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관세 무규제 무분규’ 등 이른바 ‘3무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 회장은 특히 핀란드 노르웨이 등 강소국들의 성공사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들 나라의 성공비결이 ‘3무’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강소국’ 모델을 우리나라도 적극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서는 영어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며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영어 운전면허시험, 특구 내 영어 문서작성, 외국인 전용 교육시설 등의 후속조치와 함께 달러, 엔, 유로화가 특구 내에서 통용되도록 해 특구를 ‘화폐의 섬’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과 손길승 SK 회장 등은 중국을 한국과 똑같은 시장으로 여기고 핵심 기술까지 이전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김재철 무협회장은 한반도의 물류기지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총수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 만 동북아중심국가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인수위 간담회에 참석하는 L모 상무는 “동북아중심국가론, 경제특구론의 중요성과 추진방법 등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며 “그러나 싱가포르나 중국 등 경쟁국들이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어떻게 뛰고 있는지를 신정부 관료들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L모 상무는 이어 정부의 규제완화 의지와 추진력이 없을 경우 경제특구법은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성홍 기자


2003-01-10 [세계 최고에서 배운다] 1 (3) 인프라 강소국스위스 [조선일보]

*교통 인프라 확충에 예산 10% 쏟아부어

작년 12월 12일 오전 9시30분.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 자리잡은 분데스하우스(Bundeshaus·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 들어가자 국회의원 200명이 복도에 삼삼오오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벨이 울리자 본회의장으로 들어가 투표를 하더니 다시 복도로 나오곤 했다.

이들이 복도를 서성거리는 이유는 국회 안에 사무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에 네 번 의사당에 모이는 국회의원들은 복도를 임시 사무실 삼아 토론을 벌이는 것이었다.

표결 마지막 날인 이날 통과된 40여개 법안 리스트를 보니 ‘고속도로 확장·포장 공사에 관한 법령’이 눈에 띄었다. ‘시계의 나라’ 스위스가 도로 인프라(사회간접자본) 구축을 위해 막대한 돈을 또 다시 고속도로 건설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복도에서 만난 요한 슈나이더 암만 의원은 “스위스에서 생산된 제품을 추가 비용 없이 신속하게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고속도로 시스템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래야 가격 경쟁력에서 다른 나라 제품에 비해 비교 우위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인구 720만명에 불과한 스위스지만, 고속도로의 총연장은 4318km에 달한다. 한국(총연장 2600km)의 1.7배다. 인구 10만명당 길이로 환산하면 스위스가 60km, 한국은 5.53km꼴이다.

고속도로뿐 아니다. 스위스의 일반 도로는 10만km, 철도는 5000km에 이른다. 매년 정부 예산의 10%를 교통 인프라에 쏟아부은 결과다.

스위스 국민의 ‘인프라 집착’은 작년 11월 착공한 세계 최장의 터널 확장 공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스위스 남부의 괴쉔과 피오타를 잇는 기존의 세인트고타드(St. Gotthard) 터널을 확장, 세계 최장인 57km짜리 터널로 탈바꿈시키는 공사다.

공사 기간만 10년이고, 소요비는 무려 47억유로(약 6조1100억원)에 달한다. 기차가 시속 240km로 달릴 수 있도록 최첨단 기술이 투입된다.

슈나이더 암만 의원은 “정부는 인프라 건설에, 기업은 경쟁력 제고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국제 경쟁력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 인프라’ 구축에도 스위스는 열심이다. 과거 스위스의 각 분야 시장(市場)은 카르텔(기업연합)로 뭉친 폐쇄성으로 유명했으나, 스위스 정부는 ‘완벽한 자유경쟁 시스템이라야 국가경쟁력이 길러진다’는 믿음 아래 과감한 수술에 나섰다.

파스칼 쿠츠핀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인 보리스 주르커 박사는 “우선 유통 시장부터 개방해 독과점 체제를 제거하고 있는 중”이라면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오명(汚名)을 씻어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의회는 최근 독과점 체제를 뜯어고치기 위해 경쟁법도 개정했다. 수퍼마켓 시장에 외국기업 진출을 허용했고, 정부조달 정책도 외국 기업에 개방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또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 범위를 넓혔고, 내부 고발자에 대한 면책특권도 주고 있다.

우체국을 민영화했고, 철도·전기 등 국영기업의 민영화도 속속 추진 중이다.

스위스에는 정부가 기업에 지급하는 산업보조금이 한푼도 없다. 기업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르커 박사는 “정부가 특정 산업의 중요성을 결정하기보다 시장이 스스로 결정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스위스에서 금융산업이 발달한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감독’만 하고 ‘규제’는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위스 국민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왜 바꿔야 하느냐는 것이다.

스위스 의회가 최근 유럽연합 가입안을 부결시켜 시장통합에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이 같은 국민정서를 반영한다.

한스 울리흐 스토클링 교육부 장관은 “정치 안정과 세계 최강의 인프라, 높은 생산성이 스위스의 3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스위스의 강점을 살리면서 시장 개방을 해나가면 얼마든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울리흐 장관은 자신감을 보였다.

/베른(스위스)=최우석기자 조선일보·WEF 공동기획 보스턴 컨설팅 그룹 협찬

 

■효율적이고 신뢰받는 정치가 스위스 경쟁력의 숨은 배경

스위스 은행은 ‘비밀계좌’로 유명하지만 은행의 건전성과 고객위주 경영이 경쟁력의 진짜 비결이다. 세계 10대 은행에는 UBS와 크레디트스위스 등 2개의 스위스 은행이 들어있다.

세계경제포럼의 2002년 경쟁력 보고서에 의하면, 스위스는 79개국 중 금융시장(3위), 은행건전성(3위), 국내신용(1위) 등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네슬레·ABB·스와치그룹 등 스위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다국적 기업도 여럿 있다.

고부가가치의 기계수출은 세계 3위다.

이 같은 결과는 정부의 적극적 인프라 구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스위스는 인프라(1위), 공교육(4위), 과학연구기관(5위), 민간 연구개발(R&D) 투자(5위), 기업수준의 혁신활동(3위), 회사의 인력개발(1위) 등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했다.

취리히 공항은 완벽한 항공망을 갖춰 세계의 허브(거점공항)로 기능하고 있고, 인터넷망도 잘 발달돼 있다.

안정적인 노사관계와 존경받는 공공 시스템 역시 스위스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 내각책임제와 연방제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도 정치인·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매우 높다.

정치인의 정직성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싱가포르·덴마크·핀란드에 이어 스위스가 4위를 기록했으며, 이런 정치 환경 아래서 협력적인 노사관계가 정착됐다. 노사협력은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연방제 전통에 따라 중재·합의·협력의 기풍이 살아있고, 다른 복지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노조 조직률(35%)을 보이고 있다. 노동쟁의에 따른 노동손실 일수가 연간 1000명당 0.38일로, 한국의 29.16일과 비교되지 않는다.

스위스는 또 유럽의 복지국가 중에서도 가장 견실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조용하지만, 효율적이고 신뢰받는 정치와 공적 권위가 스위스 경쟁력의 숨은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류상영·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정치경제학 교수

■국회의원 겸직 암만 회장

스위스 건설장비 제조업체 암만사(社)의 요한 슈나이더 암만(50) 회장은 1년에 4번 국회의원 자격으로 베른의 분데스하우스(국회의사당)에 온다. 법에는 연간 3주간 입법활동을 벌이도록 규정돼 있다. 세비(歲費)는 거의 없다. 국회의사당에 사무실도 없다.

1869년에 창립돼 연간 매출액이 5억5000만유로에 달하는 기업 회장인 그가 3년 전 선거에 뛰어든 이유는 스위스 경제에 보탬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일부 국회의원은 돈이 나무에서 나오는 줄 압니다. 그러나 스위스의 국부(國富)는 대부분 해외에서 들어옵니다. 스위스가 국가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돈을 벌 수가 없는 것이죠.” 2001년 기준으로 스위스의 무역의존도는 67%에 달했다.

그는 스위스가 인프라 구축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국가경쟁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위스가 세계에서 도로망이 가장 발달된 나라라고 자랑했다. 작년에 스위스항공이 파산했을 때도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똘똘 뭉쳐 항공 인프라 재구축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스위스는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항공 인프라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죠. 만약 스위스 항공사를 청산했다면 스위스에 대한 국제 신용도가 떨어지고 국민 자존심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는 또 스위스 국민의 공인(公人)에 대한 신뢰도가 세계 상위권인 이유는 시스템 자체가 투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원이 하는 말은 모두 공개된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뭘 느끼고 있는지까지 주민들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느냐가 스위스의 과제”라면서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베른(스위스)=최우석기자


2002-10-22 2020 미래로 가자] 10주제기술이 국가경쟁력이다 (2)대학을 살리자 [조선일보]

■‘강소국’ 핀란드의 선진국 진입 비결

산업혁명 후발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나라는 독일과 일본밖에 없다. 그나마 지난 100년 이상 산업화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럽의 소국(小國)인 핀란드와 아일랜드 역시 산업혁명에서는 다소 소외됐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하는 첨단기술에 단기간 집중한 결과,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다.

유럽의 강소국(强小國)으로 불리는 핀란드가 어떻게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됐는지를 살펴보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다.

핀란드는 인구 500만명에 불과하지만 정보통신 강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현재 핀란드의 1인당 연구개발비는 707달러로 우리나라의 2배를 웃돌고 있다. 노동인구 1000명당 연구개발 인력도 16.4명으로 우리나라의 3배에 가깝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핀란드의 기술혁신 지향적인 국가시스템 구축이야말로 핀란드가 강소국으로 우뚝 선 비결이다.

핀란드 산업정책의 중요한 성공요인은 80년대 초 성장 동력이 약화되었을 때 자원주도의 성장모델을 과감히 버리고 혁신주도형으로 국가 시스템을 완전히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교육과 과학기술의 융합, 1도(道) 1개의 연구단지 육성, 효과적인 산학협동연구 촉진체계 구축 등 국가 기술혁신 시스템을 갖추고 과학기술투자를 대폭 늘렸다. 현재 핀란드의 경제활동인구 중 76%가 이공계로 분류될 정도다.

우리나라는 80년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투자주도형 발전단계를 거쳤다. 그러나 그 성공에 도취하여 90년대 초 혁신주도형 발전단계로 전환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지난 ‘잃어버린 10년’은 우리에게 IMF 외환위기라는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 줬다.

우리나라도 핀란드의 성공을 교훈삼아 국가적인 기술혁신 시스템을 구축하고, 혁신주도형 성장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핀란드의 기업으로부터 배워야 할 또 한 가지는 융합 및 복합 지향적 문화다. 노키아는 전세계에 55개의 연구소를 두고 있고, 중앙연구소에도 30개 국가의 연구원이 골고루 고용돼 있다.

인적자원의 융합·복합화를 통해 전혀 새로운 개념의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손욱 삼성종합기술원장


2002-10-14 [STRONG KOREA] 2주제: 동북아 R&D 허브로 가자 [한국경제]

세계는 지금 연구개발(R&D) 허브(Hub) 경쟁시대를 맞고 있다. 우수한 연구인력과 시설이 있고 연구환경이 뛰어난 곳으로 세계의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따라서 연구개발 거점을 확보한 나라들은 이제 새로운 부를 창출하면서 21세기 강국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갖고 있는 미국은 그 대표적 사례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작지만 강한 나라 ‘강소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에는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시스타가 있으며 핀란드에도 울루라는 연구개발단지가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 한국이 처한 상황은 다소 절박하다. 세계3대 교역권으로 떠오른 동북아에서의 위치부터가 우선 모호하다. 일본을 따라잡기는커녕 중국에도 밀린다는 지적조차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이미 세계의 생산공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국과 맞붙어선 승산이 없다. 그렇다고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해법 중 하나가 바로 미래 신산업을 주도할 국제적인 연구개발 중심이자 신기술의 실험센터인 ‘R&D 허브’로 한국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몇가지 좋은 조짐들이 엿보인다. 다국적 기업인 페어차일드와 머크가 정보기술(IT)분야 우수 인력과 인프라를 활용하기 위해 아시아 R&D 센터를 설립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들 회사는 두뇌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한 중국이나 고비용의 일본 대신 한국을 택한 것이다. 이들 외에도 여러 기업들이 한국을 연구개발 본거지로 활용하기 위해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몇몇 사례에도 불구, 전체적으로 보면 동북아 ‘R&D 허브’를 지향하는 한국의 사정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한국의 산·학·연 연구집적단지라고 할 수 있는 대덕연구단지에는 외국기업 연구소가 단 한곳도 없다. 국제공동연구개발사업을 포함한 국가연구개발사업에 한국에 진출한 외국인투자기업이 참여한 사례도 없다. 최근엔 이공계 기피 현상까지 겹치면서 오히려 제3세계로부터 두뇌를 영입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기술정보의 유통, 기술의 사업화, 지식재산권의 보호, 표준품질 시험 인증, 디자인 등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속히 탈피하지 않으면 한국은 글로벌 경쟁에서도 살아남기 어려울 뿐 아니라 멀지않아 열리게 될 동북아 자유무역시대에 대비하기에도 벅찰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다.

우리에게 당장 주어진 과제는 앞으로 5∼10년안에 글로벌 수준의 연구개발 시스템과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산업의 창출이든 기존 산업의 지식집약화든 키워드는 바로 연구개발 수준의 국제화다.

연구개발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해야 제조업도 서비스업도 변신할 수 있다. R&D 허브는 이제 한국의 생존조건이 된 것이다.

이제 한국경제신문은 스트롱 코리아 프로젝트 제2부에서 한국이 동북아 R&D 허브로 변신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한다.

이를 통해 21세기 아젠다로 내건 과학기술강국을 실현해 나갈 것이다.

김경식 특별취재팀장


2002-08-30 국민 모두가 재산공개하고 사는 나라핀란드 [조선일보]

부패 감시를 위한 국제 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28일 발표한 2002년 세계 각국의 부패 순위에서, 핀란드가 3년 연속 가장 깨끗한 나라로 꼽혔다. 북유럽의 ‘강소국(强小國)’이라 불리는 핀란드의 이 같은 청정(淸淨) 비결은 ‘투명하고 열린 사회’에 있다고 AFP통신이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핀란드에서 부패 수사를 담당하는 국립수사국의 로빈 라르도트(Lardot) 부국장은 “현재 헬싱키 법원에 계류돼 있는 사건 하나를 빼고는, 언제 부패 사건을 다뤘는지 기억이 안 난다”면서 “그런 일은 원래 드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일하게 법원에 계류중인 것은, 인근 노르웨이의 한 회사가 핀란드로부터 다목적 쇄빙선을 값싸게 빌려쓰는 대가로 핀란드 고위 공무원들에게 신용카드를 제공하고 해외여행을 접대한 사건.

이 사건 외에 핀란드인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심각한 부패 사건이라면, 30년 전 헬싱키 메트로 건설 당시에 일어났던 일이 고작이라고 AFP는 전했다.

핀란드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외국인들도 핀란드 사회의 ‘깨끗함’에 감명을 받는다.

핀란드 국제상공회의소의 티모 부오리(Vuori) 사무국장은 “핀란드 사회가 워낙 개방돼 있기 때문에 부패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면서 “누군가 부패 행위를 한다면 주위 사람들이 당장 알아차리게 된다”고 말했다.

핀란드에서는 익명의 은행계좌를 개설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데다, 세무당국이 전국의 모든 계좌에 관해 정보 검색을 할 수 있다고 파시 호르스만하이모(Horsmanheimo) 감사관은 밝혔다.

게다가 공직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핀란드 국민들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과세 자료가 매년 공개되며, 이 발표가 있는 날이면 언론들이 부자와 유명인사, 공직자들의 재산을 대대적으로 기사화한다.

호르스만하이모 감사관은 “이렇게 모든 사람의 재산 상태가 공개된 상황에서, 누군가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으로 값비싼 새 차를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각국의 부패 지수를 조사한 국제투명성기구의 프레드릭 갈퉁(Galtung) 조사팀장은 핀란드 사회의 이 같은 투명성에 곁들여 ‘자치와 자립경제, 강력한 지방정부의 오랜 전통’이 핀란드를 부패 없는 사회로 만든 또 다른 요인이라고 꼽았다.

/이용순기자


2002-08-18 [인재허브국가를 만들자] 강소국의 비밀 [서울경제]

“人材가 국력” 아낌없이 투자

‘네덜란드에선 홈리스(거지)들도 2개국어를 구사한다. 영어는 기본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우리에게 바짝 다가온 네덜란드의 특징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국민들의 탁월한 어학실력. ‘I’m still hungry.’란 간단한 표현으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 히딩크 감독의 언어감각은 사실 네덜란드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장점이다.

이 나라는 유럽 경제로 들어가는 명실상부한 관문국이다. 대표적인 항구인 로테르담항은 유럽 교역물량의 40%가량을 처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2000년 한햇동안만 총 94개의 다국적기업이 네덜란드에 몰려와 생산 및 물류거점을 마련했다.

아시아 허브국을 겨냥해 다국적기업들의 아시아 거점본부 유치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집중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국토면적이 경상남북도를 합친 4만여㎢에 불과한 이 나라가 이처럼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 근로자의 70% 이상이 영어, 독일어, 불어 중 2개 이상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업무숙련도, 일에 대한 열의 등도 나무랄 것이 없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모든 지역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커다란 매력이지만 질 높은 노동력도 중요한 유인요소다.”(이곳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을 통해 조사한 투자 결정 이유)

한마디로 기업이 원하는 양질의 고급 노동력이 넘쳐 흐른다는 이야기다. 현지 근로자들의 이 같은 능력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을 위한 원활한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 등에도 상당한 힘이 되고 있다.

고급 노동인구가 풍족하다는 점은 네덜란드뿐 아니라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싱가포르 등 속칭 강소국으로 꼽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국가 경쟁력에서 인재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핀란드.

이 나라는 스위스의 국제경영대학원(IMD)이 해마다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벌써 수년째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인적자원 부문에서는 지난 97년이후 5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핀란드가 인재관리에 국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냉전체제가 종식되던 1991년 전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는 국경을 접한 이 나라에 최악의 경제 위기를 야기했다. 당시 이 나라가 선택한 위기 타개의 첫걸음이 교육시스템 개선이었다.

‘핀란드=지식기반 사회’라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이 개선작업의 핵심은 ▲국제적 교환 프로그램 장려 ▲평생학습 증진 ▲다양한 언어 교습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 확대 ▲정보전략 현실화 ▲수학과 과학 수준 향상 ▲평가를 통한 교육과 훈련의 질 보증 등이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평생학습 증진. 그동안 ‘훈련을 통한 고용’이란 방향으로 운영돼 실업인구의 취업을 지원하던 평생학습은 이 때를 기점으로 ‘고용에서 훈련’으로 180도 전환했다.

개선방안은 한마디로 국민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국제경험을 축적시켜 주겠다는 것이며 정부가 직접 노동의 질 관리에 나섰다는 점이다.

핀란드는 한발 더 나아가 지난 99년 대학법을 개정, 기업들에게 원천기술 또는 기반기술을 제공해줄 대학체제를 전면 수술했다. 개정법의 골자는 교수들의 연구실적을 냉정하게 평가하겠다는 것. 교수들에 대한 실적평가도 핀란드 내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IMD나 OECD등 외부평가기관에 맡기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연구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교수는 퇴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어찌보면 지식강국 핀란드의 감춰진 힘은 세계 최고의 연구환경을 조성하고 냉혹할 정도로 철저하게 평가하는 것에 있기도 하다.

이재규 대구대 교수는 최근 대은경제리뷰 기고문을 통해 “강소국들이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다. 이들 국가의 성장동력을 살펴보면 예외없이 외부의 유입 자본과 자체 고급인력을 결합시킴으로써 고부가가치 산업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 대부분이 자유롭게 2개 국어를 구사하는 네덜란드, 국가가 나서서 고급 인재들을 발굴, 육성하고 있는 핀란드 등은 경제 4강을 향한 한국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생생한 모델’이다.


2002-08-06 [네덜란드 리포트] ‘네덜란드 경제이래서 강하다 [한국경제]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다. 총인구가 1천6백만명으로 남한인구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국토도 남한의 절반 남짓하다. 하지만 강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4천9백달러(2000년 기준)로 세계 18위, 연간 교역 규모는 8천9백10억달러(2001년 기준)로 세계 9위다.

금융그룹 ING, 전자회사 필립스, 석유회사 쉘, 다국적 식품회사 유니레버 등 세계적 회사들도 이 강소국 출신이다. 또 세계 화훼시장의 60%를 석권, 씨앗 종주국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강소국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 화려한 변신 =1980년대 초만 해도 네덜란드는 각종 규제와 노사 분규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 서유럽 최악의 ‘문제국가’였다. 하지만 현재 네덜란드는 ‘국가경쟁력 세계 4위'(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사업최적지 1위'(영국 이코노미스트), ‘경제자유지수 4위'(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찬사를 받고 있다.

네덜란드는 신데렐라였을까. 그렇지 않다. 유럽의 ‘문제아’가 화려하게 변신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훌륭한 정책적 판단과 기업사랑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가 펴는 모든 정책은 기업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른 나라보다 자유롭게 사업을 꾸려 나갈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을 강화해 왔다.

이런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폴더(간척지) 모델도 탄생시켰다. 1982년 정부, 고용주, 노조 3자가 건설적인 의견교환을 통해 해고를 자제하는 대신 고용주의 안정적 투자를 보장해 주는 노사화합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안정된 노사관계는 경제성장의 바탕이 됐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유휴 인력을 흡수해 유럽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때문에 네덜란드 국민들의 기업사랑 정신은 각별하다. 특히 네덜란드 왕실은 역사가 오래되고 국민경제에 기여도가 높은 대기업에 대해서는 ‘로열’ 혹은 ‘로열더치’란 칭호를 붙여주고 있다.

세계적 정유회사인 셸은 ‘로열더치셸’, 항공회사 KLM은 ‘로열더치KLM’, 필립스는 ‘로열필립스’가 공식 명칭이다. 국민들은 로열 칭호가 붙은 대기업을 늘 존경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로열 칭호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기업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대우가 어떤지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 EU의 경제 모범국 =네덜란드는 경제는 개방적이며 수출 주도형이다. 국내 생산(3천8백5억달러)의 50%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또 최근 3년간 3%대의 건실한 성장세를 유지, 유럽연합(EU)의 경제 모범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유럽지역이 평균 10%대의 고실업에 허덕이고 있는 반면 네덜란드는 90년대 초반 이후 계속 5% 미만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해 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서 “네덜란드가 시장 중심의 영·미식 자본주의와 사회보장을 중시하는 유럽대륙의 자본주의를 훌륭하게 절충해 냈다”고 찬사를 보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현재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맡고 있는 빔 두이젠베르크는 네델란드 경제가 강한 이유로 <>정부의 견실한 재정 운영 <>사회보장제도의 수정 적용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을 꼽았다.

정대인 기자


2002-07-10 국내 대기업, 세계무대선 中企 [한국일보]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기업이 너무 적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도 세계 무대에선 여전히 중소기업 수준이다. 덩치를 키우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국가경제 수준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선 ‘크고 강한 기업’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포브스지가 최근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미국기업 제외)’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모두 21개 기업이 포함됐다. 하지만 ‘대기업중 대기업’으로 꼽히는 ‘톱 100’이내 포함된 기업은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2개뿐이며, 그나마 순위는 삼성물산이 40위→61위, 삼성전자도 70위→92위로 전년도에 비해 크게 뒷걸음질쳤다.

▼일본과 격차

500대 기업중 일본기업은 무려 125개. 100위 이내에 포함된 기업만도 25개나 된다. 도요타(4위), 미쓰비시(5위), 미쓰이상사(6위), NTT(8위), 이토추(9위) 등 비(非) 미국계 ‘톱 10’ 기업 가운데 5개가 일본계 대기업들이다. 50~100위권에 겨우 2개가 들어가 있고, 100~200위도 5개(LG전자 현대종합상사 LG상사 현대자동차 SK글로벌)에 불과한 한국기업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기업까지 포함해 전세계 기업랭킹을 매긴 포춘지 조사에서도 아시아 기업으론 유일하게 일본의 도요타가 10위권안에 포함됐다.

기업규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세계굴지의 기업이 많을수록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국면에 빠지면서 마치 우리나라가 곧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세계적 기업들의 숫자만 봐도 일본기업은 아직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소국(强小國)과 격차

유럽의 ‘작지만 강한 나라’들은 한결같이 세계굴지의 기업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세계 500대 기업중 네덜란드 기업는 우리나라보다 2개 많은 23개. 그러나 3위의 로열더치쉘을 비롯, ING그룹(11위) 아홀드(23위) 유니레버(36위) 포티스(46위) ABN암로(47위) 등 50위 이내에 속한 기업이 6개나 되며, 이들을 포함해 100위권 이내기업은 총 9개에 달한다. 200위권 밖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대기업과는 질적으로 다른 셈이다.

스위스의 경우 500대기업은 15개로 우리나라보다 적다. 그러나 크레딧스위스그룹(16위) 네슬레(30위) UBS(31위) 취리히금융서비스(52위) ABB그룹(100위) 등 100위이내 ‘초대형 기업’은 5개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다. 중국은 500대기업이 3개뿐이지만, 이중 2개가 100위안에 포진했다.

이성철기자


2002-06-24 이건희 삼성회장 ‘3 경제특구론주목 [헤럴드경제]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바짝 다가서고 있어 그 배경이 주목된다. 이 회장은 10여년 전부터 경제특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으며, 이번 정부의 경제특구 준비작업에 이 같은 의지를 크게 반영시켰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주 청와대 모임에서 ‘위기론’을 강조하면서 기술, 정보, 교육을 자유화해 외국과 동등하게 경쟁시키고 싱가포르 홍콩 핀란드 등의 좋은 점을 다 도입해 김포 지역에 몇 천만평의 경제특구를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평소 경제특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無관세 無규제 無분규’ 등 이른바 ‘삼무(三無)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24일 “이 회장이 지난 93년 신경영 선포 이후 줄곧 경제특구의 필요성과 성공 조건들을 누차 지적해 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핀란드 노르웨이 등 강소국들의 성공사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들 나라의 성공비결이 무관세, 무규제, 무분규에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경제특구에 외국 유수 대학 분교를 유치하고 국제대학을 설립해 이공계 핵심인력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서는 영어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며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영어 운전면허시험, 특구 내 영어 문서작성, 외국인 전용 교육시설 등의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복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기업들이 언제까지 핵심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외국에다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하느냐”고 말했다. 정부가 의무차원에서 인재육성 관련 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으며 이는 곧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연결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 회장은 특히 달러, 엔, 유로화가 특구 내에서 통용되도록 해 특구를 ‘우리 화폐의 섬’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규제와 관세를 모두 철폐해 특구를 외국인들의 경제활동 무대로 만들자는 것이 이 회장의 구상이라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다.

무분규는 이 회장의 절체절명의 경영지침. 규제와 관세를 모두 철폐해도 노사분규가 다반사로 일어날 경우 외국인들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으며 이럴 경우 특구지정의 효과는 허사라는 판단이다.

이 회장의 ‘三無 경제특구론’은 일본 중국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일본은 지금 고생하고 있지만 한국을 의식하면서 연구·개발에 고민을 많이 하고 있으며, 대만이나 싱가포르도 미국 시장에 의지하다가 지금은 중국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지난주 청와대 모임에서 밝힌 바 있다. 그는 “같은 화교권으로 통하는 것이 있어 대만의 자금과 기술이 중국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중국이 한국을 쫓아오는 느낌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국제 경제의 ‘중국 쏠림현상’을 우리나라로 돌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三無 경제특구’ 조성이 시급하다는 이 회장의 미래경영전략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김성홍 기자


2002-06-21 삼성, 1억평 경제특구 건설 건의 [매일경제]

삼성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 방안과는 별도로 자체적인 경제특구 건설 방안을 마련해 관심을 끌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21일 “삼성 구조조정본부가 최근 김포-송도-개성을 연결하는 경제특구 건설 연구보고서를 작성해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삼성이 경제특구 건설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이 회장 특별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해 말 우리나라 장기 발전을 위해 작지만 강한 나라인네덜란드 등 유럽 ‘강소국’과 중국 푸둥경제특구와 같은 모델을 만들필요성이 있다며 국내에 경제특구 건설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은 보고서에서 인천 송도매립지-김포매립지-영종도 매립지와 장기적으로는 개성지역을 연결하는 경제특별지구를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제특구를 1억평 규모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수도권 서부 3개 지역에 4000만평 규모경제특구를 건설하기로 한 계획보다 두 배 가량 큰 규모다.

삼성 관계자는 경제특구를 건설할 바에는 경제성이 있는 규모가 돼야 하며 한꺼번에 건설하기 힘들면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용지 확보와 통일시대를 감안해 장기적으로는 북한 개성지역을 포함해 경제특구를 건설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또 송도 영종도 김포 매립지에 물류ㆍ첨단산업ㆍ레저 산업 등을 지역 특성에 맞게 유치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육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김포매립지에 대해서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화훼수출단지와 위락단지보다는 IT(정보기술)ㆍBT(생명공학)관련 첨단 산업단지로 조성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삼성은 경제특구로 지정된 지역에서는 관세와 규제, 노사분규가 없는`3무 지역’으로 선포해서 기업들이 자유로운 환경아래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자체적인 경제특구안을 연구한 것은 수출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국내기업이나 외국기업을 국내에 적극 끌어들이는 것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는 절박한 심정에서 연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가진 김대중 대통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5~10년 후 우리나라가 어디로 갈까 생각하면 어둡고 불안하다”며 “김포지구에 몇 천만평의 경제특구를 지정해 경쟁을 자유롭게 하자”고 건의한바 있다.

삼성은 7월중 바람직한 경제특구 조성 방안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후원하는 등 경제특구 조성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위정환 기자 >


2002-05-21 [조선 데스크] 정치가 경제 이끈 북구드라마’ [조선일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는 운동 경기에 비유하면 ‘무제한급 타이틀 매치’에 해당한다. ‘체급’(인구나 국토면적)과 ‘핸디캡’(부존자원 정도)이 크게 차이 나는 나라들을 일렬로 세워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평가에서 최근 몇 년째 ‘수퍼파워’ 미국과 나란히 최선두를 달리는 나라가 있다. 바로 ‘노키아랜드’란 별명을 가진 핀란드다.

지난해 IMD평가에선 미국이 1등, 핀란드가 2등, WEF 평가에선 핀란드가 1등, 미국이 2등을 주고받았다.

핀란드는 ‘숲 반 호수 반’에, 인구도 우리의 8분의 1쯤인 520여만명에 불과하다. 그런 ‘경량급’ 국가가 어떻게 내로라 하는 세계 헤비급 강국들을 제치고 경쟁력 왕좌에 올랐는지 존경스러울 뿐이다.

핀란드만이 아니다. 그 주변의 네덜란드·아일랜드·노르웨이·룩셈부르크·덴마크 같은 북구권 국가들은 하나같이 국가경쟁력 성적표의 상위권을 휩쓰는 단골 손님들이다. 도대체 이들 강소국(强小國)의 ‘대약진’ 비결은 무엇일까.

특성을 살린 주력산업의 발굴, ‘선택과 집중’의 국가발전 전략, 유연하고 개방된 경제체제, 적극적인 외자유치….

이런 성공 조건들을 좇아가다 보면 하나의 공통분모에 도달한다. 그것은 바로 ‘경제를 견인하는 정치력’이다.

지금 잘 나가는 핀란드는 90년대 초만 해도 그야말로 국가부도 직전이었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소련 특수’가 사라지면서 경제가 급격히 침체했고,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실업률이 한때 20%까지 치솟았다.

그 때 등장한 것이 아티사리 정권이다. 아티사리 대통령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국가재건 운동에 나섰다. ‘목재와 펄프의 나라’ 핀란드를 정보통신대국으로 탈바꿈시키는 대역사에 시동을 건 것이다.

핀란드가 전 인구의 60%가 휴대전화를 보유하며 인터넷 이용률이 전세계 평균보다 100배나 높은 디지털 강국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강한 정치적 리더십이 있었다.

80년대까지 ‘서유럽의 병자’로 취급받던 아일랜드, 심각한 재정적자와 실업난·노사갈등 때문에 ‘유럽의 낙제생’으로 불렸던 네덜란드. 이 두 나라를 회생시킨 것도 ‘정치’였다.

아일랜드 여당과 야당은 지난 87년 정쟁 중단과 함께 ‘경제적 생존을 위한 파트너십 정치’를 선언했다.

네덜란드도 재정적자의 주범인 사회보장제도를 과감히 수술하는 데 정치권이 앞장섰다. 노·사·정 간의 ‘바세나 협약’은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경제회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제 눈을 안으로 돌려보자. 한국 정치는 어떤가.

‘정치인 신뢰도 51위’(WEF) ‘정책의 일관성 56위’(WEF) ‘정치체제의 경제위기 적응력 43위’(IMD) ‘정치불안 43위’(IMD)….

종합적인 국가경쟁력이 20위권인데, 정치경쟁력은 40~50위권을 맴돌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전형적인 모델인 셈이다.

올해 우리는 ‘한국호(號)의 선장’을 새로 뽑는다. 지난 5년이 그랬지만 앞에 놓인 5년 또한 결코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일본·중국으로부터 밀어닥칠 삼각파도의 풍랑도 어느 때보다 거세 보인다. ‘정치가 경제를 견인하는’ 북구권의 성공 드라마를 먼 나라 얘기로만 치부할 때가 아니다.

이준 경제과학부 차장대우


2002-05-16 [삼성전자 강한가] (20.) 이건희 회장 인터뷰..기술경영 중시 [한국경제]

“삼성은 미래에 사업구조나 경영구조에서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기업이 돼 있을 것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1,2등을 하지 못하는 회사나 기업은 문을 닫고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따라 생겨나는 회사나 사업도 있을 것입니다”

국내외 신문및 방송과의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왔던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 단독으로 서면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경영철학과 삼성전자의 경쟁력, 미래상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인공위성이 단계별로 엔진이 떨어지면서 대기권을 돌파하듯이 삼성도 세계 일류가 되려면 한 단계 더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세계적 기업으로 부상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지요.

“먼저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석달 동안 삼성전자에 보내 주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삼성이 진정한 일류기업이 되려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강점을 들어 보라면 삼성전자는 부품사업과 디지털 가전, 통신사업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기업인데 이런 사업부문들이 서로 협력하고 지원하는 시스템 플레이가 잘되는 편입니다. 큰 흐름과 변화를 읽고 외부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영자들이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강점일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꼽고 있는 것은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애사심과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자율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엔지니어 이건희 회장’이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지금은 내로라하는 세계 일류기업들이 기술개발도 같이 하고 마케팅도 같이 하자고 하지만 초기에만 해도 기술을 가르쳐 주기는커녕 돈 주고도 기술을 사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니 제가 나서서 일본이나 미국의 기술자들한테 고개 숙여가며 깍듯이 모시고 하나하나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 자신이 어려서부터 새로운 물건을 보면 뜯어보고 원리를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새로운 기술, 좋은 기술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든 들여오려고 욕심을 많이 부렸습니다.

경영자부터 현장직원들까지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발적으로 기술개발과 공정개선에 힘을 쏟으면서 이제는 일류급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갖추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93년에는 ‘변해야 산다’는 말씀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지난해와 올해는 ‘강소국(强小國)’과 ‘미래에 대한 준비’란 말을 유행시키셨습니다. 삼성만의 얘기가 아니라 나라경제 전체에 대한 말씀으로 보이는데요.

“국가의 힘이란 이제는 경제력입니다. 21세기의 국가 경쟁력은 글로벌 1등 기업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선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삼성이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업 모두가 1등 기업이 되자는 것입니다. 기업이 잘 되면 수출이 늘어나고 고용도 확대되는 등 국가경제가 활성화되고 국민 모두가 혜택을 받게 되는 상승효과가 있습니다.

노키아가 핀란드를 먹여 살리듯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대기업이 10여개 정도만 나오면 지금과는 훨씬 다른 모습이 될 것입니다.”

-지난 93년 소위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고 하셨는데 지금 삼성의 모습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보는지요?

“IMF 경제위기 내내 국민들이나 기업들이 모두 고생을 했는데 삼성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를 강조한 것이 이제 와서 그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인공위성이 발사후 1단계, 2단계로 추진 엔진이 떨어져 나가야 대기권을 넘을 수 있는 것처럼 삼성이 세계 일류가 되려면 다시 한번 그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한 단계 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융합의 시대를 맞아 가장 역점을 두는 사안은 무엇입니까?

“삼성도 지금은 반도체, TFT-LCD,CDMA 등 10여개의 세계 1등 제품을 갖고 있지만 산업구도가 달라지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몇년 전부터 앞으로 5∼10년 뒤에 뭘 먹고 살지를 계속 고민해왔고 작년부터는 그룹의 CEO들에게도 미래를 준비하자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는 무엇보다 지적 경쟁력이 중요한데 지난 20세기가 경제전쟁이라면 21세기는 두뇌전쟁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국가나 기업간의 국제경쟁은 결국 인적 자원의 질이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 준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과 기술이라고 보고 연구개발, 마케팅 등 각 분야의 우수한 인력을 국적에 상관없이 확보해 나가고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래 삼성을 이끌어갈 핵심인력은 어떻게 육성할 계획인가요?

“기업의 경쟁력이나 가치는 그 기업에 우수한 인재가 얼마나 많고 적으냐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어떤 사람이 핵심인력인지 그 자격과 조건을 임직원들에게 알려 주고, 여기에 해당되는 핵심인력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고 중요한 직책을 맡겨서 각자가 스스로 노력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삼성그룹, 삼성전자의 미래상을 어떻게 잡고 있습니까?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사업구조나 경영구조가 지금과는 상당히 바뀌겠지요. 글로벌 시장에서 1등, 2등에 들어가지 못하는 회사나 사업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새로운 기술과 환경에 따라 새로 생겨나는 회사나 사업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면서 고객과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그런 기업 이미지를 갖추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삼성을 이끌어오면서 어렵게 결단을 내렸던 때를 소개해 주신다면.

“지난 93년에 신경영을 추진하면서 ‘새집 짓는 것보다 헌집 고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당시 세계 경제의 축이라는 로스앤젤레스 프랑크푸르트 도쿄 등지에서 밤새워 가며 위기감과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느끼게 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또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임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은 고통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연봉제와 성과배분제도가 시행되면서 직원간 위화감 조성 및 사기저하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패러다임이 참 많이 바뀌었어요. 그 전에는 고생을 해도 같이 하고 상을 받아도 같이 받는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일 더한 사람, 일 잘한 사람이 급여도 더 많이 받고 인센티브도 받아야 하는 것이 일반화된 것 같습니다.

삼성의 연봉제도 처음에는 갈등이 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도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이 받아보자 하는 자극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이런 제도들이 삼성 임직원들에게는 동기부여와 자기계발에 도움을 주는 것 같고 계속하다 보면 기업 경쟁력은 물론 개인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직원들의 충성심이 감소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과거에는 맹목적으로 회사에 충성을 하고 회사는 반대급부로 평생직장을 보장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개인은 자기 능력에 따라 자기 몫을 다하고 회사는 개개인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윈윈(win-win)’의 관계가 바람직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건강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건강 문제로 주위 분들께 걱정을 끼쳐드린 드린 적이 있어선지 지금도 건강을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염려해주시는 덕분인지 건강은 아주 좋습니다. 몇 차례 장시간 회의를 했지만 아무 지장이 없는 걸 보면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아요.

그래도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가벼운 조깅이나 산책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시간 날 때마다 손자와 함께 놀아주고 있는데 그 즐거움 때문인지 마음도 편안해지고 건강도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특별취재팀=이봉구 산업담당부국장(팀장), 강현철, 이익원, 조주현, 김성택, 이심기, 정지영 기자


2002-04-28 삼성은 국민기업입니다” [매일경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은 국민기업”이라고 밝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일 삼성그룹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 제품의 수출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미래에 대비하느냐가 국가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어느 때보다 크다”며 “국가경제의 주축을 이룰 국민기업으로의 역할과 사명감을 깊이 인식해 더욱 분발하자”고 사장단에 촉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회장의 발언은 재계에서 삼성그룹의 독주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나와 그 의미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기업’에 대해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평소 지론인 ‘ 강소국(强小國)’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의 노키아가 사실상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복지를 지탱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삼성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최고 기업으로서의 자부심과 국민복지 지원 등 사회적 책임의식을 모두 강조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이 회장이 불쑥 국민기업론을 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룹의 급속 성장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삼성 제품의 지난해 수출액은 257억달러로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3%에 달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지난해 그룹 매출액이 123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 P)의 22.5%를 기록했다. 이미 일본의 국민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소니의 시가총액을 앞질렀으며 2001년 회계연도(2001년 4월~2002년 3월)의 순익은 무려 19배나 앞섰다. 또 2010년에 전자 부문의 ‘세계 톱3’ 진입을 선언할 만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해 가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의 위력은 가공할 정도다. 삼성전자는 거래소 시장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 삼성전자주가 상한가를 칠 경우 종합주가지수는 30포인트 가량 올라간다.

전자계열사뿐만 아니다. 그룹의 또 다른 주력인 금융 분야도 생명을 비롯해 화재, 증권 등이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재벌에 대한 인식 전환도 국민기업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국제 반도체가격이 급락했을 때 국민은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재벌에 대한 불신의 벽이 누그러지면서 ‘국민 속의 기업’ 이미지를 심을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 회장의 이번 발언은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이 향후 사회적 기여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도 엿볼 수 있다.

삼성은 자신들이 국가에 기여하는 것에 비해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과거 선대 회장 시절의 사카린 밀수사건이나 교묘한 2세 상속 등이 원인이 됐겠지만 ‘1등 삼성’에 대한 경쟁 기업이나 국민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늘 의식해 왔다. 이 회장이 종종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결국 이 회장의 국민기업론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면서 ‘빅(big) 컴퍼니’보다 ‘굿 (good) 컴퍼니’를 지향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볼 수 있다.

이 회장의 국민기업 발언이 향후 삼성의 기업경영은 물론 재계에 어떤 반향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이 회장의 국민기업론에 대해 삼성이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시에 기업간 경쟁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삼성은 오래 전부터 교육 의료 스포츠 등 다양 한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 왔다”고 말하고 “빌게이츠재단과 같은 대규모 복지재단을 설립해 국민복지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국민기업 이미지에 부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는 “핀란드는 인구 300만명의 조그만 국가로서 노키아 하나만으로도 먹고 살기에 충분한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며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삼성 이외에 3~4개 국민기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구현 연세대 교수는 “몇 년 전 코카콜라가 가장 가치있는 기업으로 인정받았을 때 (본사가 있는) 미국 애틀랜타시의 비영리재단을 비롯해 커뮤니티(지역사회) 전체의 부(富)가 높아졌다”며 “삼성전자가 국내에서 창출하는 부가가치도 한국 경제의 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국민기업은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 리딩(선도)기업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며 “삼성전자는 이미 글로벌 기업인 만큼 이에 걸맞게 무리수를 두지 않고 정도(正道)에 맞는 경영권 세습이나 지배구조 등을 갖춰나가면 글로벌 굿 컴퍼니로 거듭나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병준기자 >


2002-04-17 삼성 정책방안 보고서 주장,’한국 국가경쟁력은 약소국…’ [경향신문]

우리나라가 국가경쟁력 면에서 「약소국」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강소국’이나 `일류대국’으로 도약하려면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매력도'(魅力度·attractiveness)를 높여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6일 내놓은 ‘국가경쟁력의 현실과 정책방안’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히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업·금융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디지털 경제에 맞는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왜 약소국인가=보고서는 각 나라를 국가경쟁력을 기준으로 약소국, 강소국, 일류소국, 일류대국으로 나누고 미국과 네덜란드를 일류대국으로, 독일과 일본을 일류소국으로 분류했다. 한국은 2000년 현재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9,800달러로 1만달러 이하이고 인구는 5천만명이 넘지 않은 약소국으로 간주됐다. 지난해 포브스 글로벌지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평가에서 한국은 25개국 중 대만·말레이시아·중국보다도 뒤진 세계 18위였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28위를 기록한 것도 ‘약소국’으로 분류된 이유 중 하나다.

자본시장 접근 용이도 평가에서도 대만·싱가포르·홍콩 등에 뒤져 17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그동안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에는 성공했으나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가 매력도 높여야=보고서는 “한국은 그동안 자국기업이 국내외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투자하는 공격성(aggressiveness) 전략을 구사했으나 앞으로는 자국을 기업하기 좋은 시장으로 만드는 ‘매력도’ 제고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시장에서 낮은 매력도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공격성마저 위축돼 국가경쟁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1982년부터 18년간 경제개혁을 통해 경제번영과 사회적 조화를 동시에 달성한 네덜란드와 개방적 유인전략으로 10년간 3%대의 고성장을 기록한 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우리나라가 향후 추구해야 할 국가모델로 제조업 중심의 폐쇄적 일본형이 아닌 디지털 위주의 개방적 유럽국가들을 꼽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상무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60∼70년대 중반 냉전기에 우방의 지원을 통한 산업화로 첫번째 ‘기회의 창(窓)’을 맞은 데 이어 98∼2005년 지식사회화·디지털화로 두번째 ‘기회의 창(窓)’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박구재기자


2002-04-01 [한국 10년뒤 뭘로 먹고사나] (1)한국경제 시스템 바꿔라 [동아일보]

올해 초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쇼(CES)에서 개막식 기조연설을 했다. 작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하던 연설이었다. 동양 기업인으로는 진 사장이 처음. 1985년 그가 반도체로 미국과 일본을 넘어서겠다며 IBM 왓슨연구소를 박차고 나온지 17년. 당시 지도교수와 동료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지금 삼성전자는 D램 분야에서 부동의 세계 1위가 되었고, 반도체 전체에서도 4위로 올라섰다.

메모리분야 세계 1위 삼성전자는 요즘 고민이다. 한국 총 수출의 10∼15%를 차지하는 반도체는 90년대 한국을 먹여 살려온 1등 공신. 그러나 중국이 코앞까지 따라왔다. 중국은 최근 4년 동안 반도체 수출이 연간 48%씩 늘었고 올해말쯤 한국과의 기술 차이가 3∼5년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인텔이나 IBM이 메모리를 후발 기업들에 넘겨주고 고부가가치의 비메모리에 주력한 것처럼 삼성도 비메모리를 점점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비메모리는 메모리와는 차원이 다른 기초과학과 설계력, 콘텐츠를 요구한다. 한 기업이 모두 감당하기에는 벅찬, 인재와 기술력 등 한 단계 높은 인프라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잡기’ 한계〓삼성전자의 고민은 그대로 한국경제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40년 동안 일본 등 선진국을 본떠 고도의 압축 성장을 해왔지만 이제 ‘따라잡기’ 전략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다. 규모면에서 세계 13위(2000년 기준)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나 기업의 경영효율성과 기술력에서는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수출경쟁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출은 한국경제의 생존 조건.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1970년 14%에서 2000년 44%로 높아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수출시장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중국과 ASEAN 등 후발 개도국들의 비약적 성장 때문이다. 기술력은 아직 선진국에 못 미친 반면 가격 면에서는 후발 개도국을 당할 수 없어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낙균 무역투자실장은 “1달러어치를 수출하면 0.4센트만 손에 들어오는 취약한 수출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립식 대량생산에 의존하는 한국의 수출산업은 수익성이 낮을 뿐 아니라 세계적 과잉설비, 과잉생산으로 통상마찰의 표적이 되고 있다.

▽허약한 기업 경쟁력〓한국 기업의 기초체력 역시 허약하기 짝이 없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이병남 부사장은 “한국 기업들은 6시그마 공급망관리(SCM) 고객관계관리(CRM),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첨단 유행 경영기법은 뭐든지 도입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성과를 거둔 기업, 대표적으로 본받을 만한 기업은 없다”고 단언했다. 낚싯대 하나를 만들어도 글로벌 경쟁력이 필요한 시대에 연구개발부터 생산 마케팅 물류 등 기업 각 분야의 세계적 경쟁력은 아직 한참 낮은 수준이라는 것.

BCG 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업종별 평균수익률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과 평균 3.5% 이상 격차가 있으며, 30대 그룹 총 투자의 58%가 자본비용 이하의 수익성을 나타냈다(2000년 기준).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선진국보다 20%가량 떨어진다.

▽10년 뒤 무엇으로 먹고 살까?〓삼성종합기술원 손욱 원장은 “한국은 기술혁신을 해야 할 10년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부 주도로 중화학공업 등에 설비투자를 집중하는 ‘투자형’ 성장을 해왔다면, 90년대는 이노베이션을 통해 다음의 성장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90년대가 ‘잃어버린 10년’이 됐다는 것이다.

손 원장은 ‘무엇을’ 찾기 전에 ‘어떻게’ 할 것이냐에 지금부터라도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학 물리학 전자공학 기계공학 등 기초 과학기술을 기업에 제공할 연구중심 대학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피츠버그시는 카네기멜론대학을 중심으로 철강도시에서 첨단소재 및 소프트웨어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도 기업 연구소 대학이 모인 산업 클러스터링(clustering)이 기술혁신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

시스템이 바뀌어야 전통산업의 이노베이션도, 신산업의 발달도 가능하다. 앞으로의 산업은 전통산업과 신산업, 신산업 사이의 퓨전과 시너지로 나아간다.

▽경제 발목잡는 사회〓그러나 고비용의 정치와 행정, 대립적인 노사관계, 창의성을 살리지 못하는 교육, 윈-윈의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국민정서 등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각 분야에 도사리고 있다.

손 원장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회의식구조를 상공농사로 역전시키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주장했다. ‘공’ 앞에 ‘상’이 있는 것은 기술이 고객 또는 시장을 지향해야 한다는 뜻. 중국은 전국의 수재들이 이공계로 모이는 데 반해 한국은 과학기술에 너무 소홀해 걱정이라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김원규 연구위원은 “한국이 현재의 기술 자본 인적자원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일본이나 동아시아 지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기업인수합병과 선진기술이전 등 산업 경쟁력을 높일 촉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열 개를 얻고 한 개를 잃어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국민, 조정 능력 없는 정부, 인기에만 눈이 어두운 정치권이 한국경제의 전환을 막고 있다.

신연수기자


■산업 특화보다 다각화로 승부를

최근 한국경제의 발전모델에 대한 논의는 과거 정부주도의 압축성장 모델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작년까지 많이 논의됐던 모델은 ‘강소국(强小國)’. 한국의 한정된 자본과 부존자원 등을 고려할 때 모든 분야에서 1등을 지향하는 것은 무리이므로 ‘선택과 집중’에 의해 한 두 개 기업이나 산업에 특화해 세계 정상급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노키아의 나라 핀란드나, 에릭슨의 스웨덴, 다국적 기업 유치로 성공한 싱가포르 등이 주요 벤치마킹 대상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인구는 890만명, 핀란드는 500만명, 싱가포르는 400만명 수준이다. 반면 한국은 4600만명이 넘는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나라다. 한 두 가지 산업으로는 이만한 식구가 살아갈 수 없다. 최근에는 강소국 모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5400여 품목 수출액을 조사한 결과 인구가 많은 나라일수록 다양한 품목을 수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인구가 많지만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 의존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승록 연구위원은 “한국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가 몇 개 전략산업에 국가와 기업의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것은 카지노에서 대박이 터지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기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더라도, 나라 전체로는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자유경제론자들은 어차피 한국의 제조업은 미래가 없으니, 주력을 지식정보산업과 서비스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과 아시아 후발개도국을 염두에 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처럼 다양한 산업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도 탈공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 법률 컴퓨터 소프트웨어 영화 보건의료 컨설팅 정보통신 등 지식산업은 △평균 이하 지식을 가진 근로자의 고용 창출에 불리하고 △국민소득 신장을 둔화시키며 △수출이 어려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 부품 소재 생산기기 등 하이테크 제조업을 함께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연수기자


2002-03-07 [2020 미래로 가자] (2-1) 소득 3만달러 시대로 [조선일보]

*선진국 가는길 공짜는 없다

2020년 일류국가 건설을 모색하는 ‘코리아프로젝트2020’은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한 두 번째 행동규범(Action Plan)으로,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리고 가져갈 것은 확실히 챙기는 ‘선택과 집중’의 혁신(Innovation) 전략을 제안했다.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리려면 상당한 고통과 희생이 따르지만 선진국가로 도약하는 데 공짜는 없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지금 당장 과거의 폐습을 과감히 잘라내는 범(凡)국민적 혁신작업에 다함께 나서도록 촉구했다.

도약은 모든 것을 끌어안고서는 불가능하다.

세계 5대 강국이었지만 지금은 정치불안과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류국가’로 전락한 아르헨티나, ‘잃어버린 10년’을 허송세월하고도 다시 ‘잃어버릴 10년’을 걱정하는 일본.

이들은 고통분담을 회피하며 대중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펴다 몰락과 정체의 길을 걸은 경우다.

1980년대 무자비할 정도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경제를 회생시킨 미국과 영국, 강소국(强小國)의 대명사로 통하는 아일랜드·핀란드·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고통스런 혁신을 통해 선진국의 위상을 확고히 굳힌 나라들이다.

“고통 없이 도약 없다(No Pain, No Gain).”

이 명제는 인류역사를 관철하는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기획위원들은 입을 모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고통 없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다가 IMF위기를 맞아 고실업, 빈곤층 확대, 천문학적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공짜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택할 것인가.

도약을 위해 버려야 할 것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나눠먹기식 평등주의’, 내가 최고라는 ‘우물안 개구리 의식’, 지역으로 뭉치고 학교로 갈리는 ‘연고주의’가 가장 우선적으로 꼽혔다.

또 ‘창의성을 죽이는 사회 분위기’, 비판을 두려워하고 모든 것을 숨기려고만 하는 ‘두더지 의식’도 버려야 할 폐습으로 지목됐다.

반면, 높은 교육열과 속전속결의 실행력은 좋은 방향으로 살려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버릴 것과 가질 것을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경제정책에서 성장주의와 복지주의를 대립개념으로 파악해, 전자는 버리고 후자는 택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논리로는 선진 미래로의 도약을 이뤄내기 어렵다.

우리가 가려는 ‘3만달러 시대’는 양적성장을 위해 질(質)이 필요하고, 질적성장을 위해 양(量)이 필요한 사회다.

그러나 고통과 희생을 수반한 자기혁신을 위해 선결해야 할 조건이 있다.

‘고통분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대변되는 사회 지도층의 자기희생, 약자층에 대한 배려와 이를 위한 제도 마련은 우리가 ‘다함께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사회적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이준 기자


2002-03-05 2020 미래로 가자 / 미래를 본다 전문가 토론 [조선일보]

21세기 초반 20년은 나머지 80년 동안 우리 삶의 형태와 질(質)을 규정할 중요한 시기다. 2020년을 예측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세우는 작업은 그래서 의미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조선일보는 김진현 전 과기처장관, 황인정 전 한국개발원(KDI) 원장, 김민경 통계청 경제통계국장, 이기원 삼성전자 통신네트워크연구소장 등 4명의 전문가와 함께 바람직한 2020년의 한국상(韓國像)에 대해 토론하는 장을 마련했다.

◆교육이 미래를 푸는 열쇠다

이=지금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2020년을 기약할 수 없다. 이공대나 기술 계통에 우수한 인재가 안 가는 현실은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우리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남보다 앞서는 몇몇 핵심 기술분야를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수 인력이 과학·기술 계통으로 많이 가야 한다.

황=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에서 보람을 느끼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안 되니까 공대 나와서 판·검사하는 세상이 되었다. 미국 유수대학에서 학위를 한 엘리트 두뇌들이 한국에 오면 몇 년이 안 가서 정치권이니, 기업으로 빠져 나간다. 내가 아는 사람은 미 항공우주국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해 호텔 사장을 하고 있다.

김 전 장관=우리에겐 글로벌 엘리트를 만들어내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 같은 IT 전문가 50명, 조수미 50명, 백남준 50명, 박찬호 박세리 100명만 양성하자.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국내의 수십만~수백만명을 충분히 먹여살릴 것이다. 2020년에 필요한 것은 이런 스타 플레이어를 앞세운 서비스·문화산업이다. 공해도 없고, 부가가치도 높은 신종 산업인 셈이다.

◆인식과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이=2020년을 대비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모든 것을 다 대비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남을 탓하는 풍토를 고치는 일이다.

김 국장=케네디가 대통령이 된 뒤 “상원의원 시절엔 아는 것은 적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에는 아는 것은 많아도 할 수 있는 건 서명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개인의 능력보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회 구조를 지적한 말이다. 2020년을 대비하려면 시스템과 제도가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황=30년 전 미래 연구할 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권력과 정치 구조를 봐도 500년 전이나 지금이 다를 게 없다. 공통점은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을 비판해봐야 소용없다. 시스템을 바꿔야 선진 사회로 갈 수 있다.

이=패럼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보면 선진국 제품을 잽싸게 갖다가 우리 것으로 만들어 돈을 버는 것이었다. 이젠 더 이상 남의 것을 베끼기 어렵다. 우리가 창조해야 한다. 과학기술 계통의 기술과 인재가 축적되어야 창조가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2005년까지 엄청난 로열티를 외국에 지불해야 한다. 2020년에는 우리가 외국으로부터 로열티를 받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고령화를 대비하라

황=미래라는 것은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 미래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2020년을 예측하려면 과거와는 다른 어떤 분야가, 어떤 요인이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킬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인구, 기술, 에너지, 경제력 변화, 국제 정치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김 국장=우리나라는 노령화 속도가 선진국에 비해 훨씬 빠르다는 게 문제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100여년에 걸쳐, 미국은 70여년에 걸쳐 노령화에 대비했다. 우리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 노령화는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것도 있지만 출산이 줄어드는 것도 원인이다.

70년대만 해도 1년에 100만명이 태어났다. 2000년에는 63만명으로 줄어들었고 2020년엔 42만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황=선진국은 노령화가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뤄진 데 반해 우리는 도약적, 불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선진국의 3억 인구가 150~200년 걸려서 점진적으로 노령화됐지만 나머지 후진국의 40억~50억 인구는 2020년을 전후해 일거에 노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이는 이들 개도국의 재정·복지부담이 급증하고 가족·결혼제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예고한다.

김 전 장관=노령화는 경제성장 속도에도 좌우되지만 외부로부터 젊은 인구가 얼마나 유입되느냐도 관건이다. 향후 40~50년간 미국이 세계 유일강대국의 위상을 고수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민 등을 통해 인구의 청년화가 선진국 중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BT·나노기술·우주공학 같은 최첨단 엔지니어링 분야일수록 젊은 두뇌가 필요하다.

이=20년쯤 후면 ‘노인’의 정의가 바뀔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면서 65~70세 이상까지 일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김 국장=결혼율이 떨어지면서 싱글(단신)가구수가 굉장히 늘어날 것이다. 75년에는 전체의 4.8%였던 단신가구는 2000년 15%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쯤 단신가구는 40%를 초과할 것이다.

이혼도 급증한다. 지난해 34만쌍이 결혼하고 12만쌍이 이혼을 했다. 결혼과 가족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민을 받아들여라

김 국장=지금 같은 근로형태라면 2020년에는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질 것이다. 노인과 여성 노동력을 적극 활용해야 하고, 특히 외국 이민을 받아들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유엔은 출산 장려보다 이민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 일본도 이민 허용을 고려하고 있다.

김 전 장관=동양에선 이민이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서양은 일찍이 다민족 혼혈의 역사를 갖고 있고, 미국은 건국 초부터 인종의 용광로였다. 하지만 우린 다르다. 우리가 20년 후 흑인 사위를 받아들이고 회교도 며느리를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가. 그걸 할 용기가 없다면 이민을 통한 노동력 충원이란 비현실적인 얘기다.

황=이민이나 외국 노동력 유입은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 가능하다. 현재 중국·동남아 노동력이 한국으로 들어오지만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곧 빠져나갈 것이다.

이=노동력을 양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질을 따져야 한다. 노동력은 단순근로자와 전문가로 나눌 수 있다. 2020년엔 전문 인력이 80%가 되고 단순 노동은 매우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또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민 등을 통해 젊고 똑똑한 인력을 많이 확보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끌어줄 리더와 자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이 풍부한 노장년층 노동력 활용도 중요하다.

◆미래는 돌출적인 변화의 연속

김 전 장관=지난날 한국 근대화 과정을 미래로 연장한다고 해서 새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이 하는 것을 그대로 시간만 단축시켜 적용해서도 안 된다. 창조적인 시스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미래 예측을 제대로 해야 한다.

즉 미래가 어떻게 된다고 예측하는 데 그치지 말고, 과연 그런 게 바람직한 것이냐는 가치 판단까지 같이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황=우리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돌출적이고 불연속적인 변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세계가 국경이 무너지고 인터넷을 통해 지구촌 전체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자본이 순간적으로 한국으로 흘러들고, 또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에 주목하라

김 전 장관=2020년을 예측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게 환경 문제다. 13억 인구의 중국이 근대화하는 과정은 엄청난 환경파괴를 수반할 것이다. 에너지 문제 하나만 보자. 중국의 에너지 소비는 한국 정도 경제 수준이 되면 중동 산유량을 전부 써도 모자란다.

일본 통계에 따르면 2020년쯤 중국인 10명 중 1명이 자동차를 소유한다. 1억4000만대다. 미국 자동차의 절반이고, 일본의 거의 두배다. 현재도 차량보유가 1인당 1000대 이하인데도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세계2위이다. 중국이 세계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이 되면 편서풍을 통해 우리가 다 먹는다. 중국의 에너지 환경 문제는 바로 우리 문제다.

황=중국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부터가 환경 후진국이다. 에너지 소비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석유 수입만 해도 미국, 일본에 이어 한국이 3등이다. 독일, 이탈리아보다 많다.

프랑스는 우리보다 인구도 많고 소비도 더 많은데 에너지 소비는 우리가 많다. 이산화탄소 증가율도 한국이 세계1위다.

이=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우리가 벤치마킹할 대상은 강소국이다. 우리처럼 국토면적과 부존자원이 적지만 강소국이 된 스웨덴·스위스·네덜란드 등이 그 예다. 그들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연구해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김 국장=국가의 존재 이유는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할 부분이 있고,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는 부분이 있다. 수도권 집중 해소나 환경 분야는 규제가 필요한 분야다.

이=정부의 역할은 5~10년 단위의 장기 전략을 세워 일관성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여러 부처의 기능이 중복되거나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렇게 해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김 전 장관=정부는 우선 2020년의 국가 목표를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한국이란 나라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정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이나 아시아의 다른 경쟁국과 미래 전략이 같을 수 없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상당한 저축을 해야 한다. 남북통일 하나 때문이라도 저축을 계속해야 한다. 열강에 둘러싸여 이른바 ‘4강 외교’를 해야 하는 우리는 외교비용도 다른 나라보다 더 쌓아야 한다. /정리=이준 경제과학부 차장대우


2002-03-05 2020 미래로 가자 / ‘코리아 프로젝트기획위원 8 좌담 [조선일보]

*소득 3만불 시대로 가려면

2020년에 소득 3만달러 시대는 가능할 것인가. 40대 젊은 교수들과 전문가들은 ‘힘들지만 못 할 것도 없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이념대립과 세대간 지역간 정치세력간 갈등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한 채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이제부터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소득 3만달러로 상징되는 선진화를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그런 시대를 만들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서울대 송호근(宋虎根·사회학) 교수, 고려대 임혁백(任爀伯·정치학) 교수,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尹淳奉·경영학) 전무, 한신대 김명섭(金明燮·국제관계학) 교수, 서울대 이창용(李昌鏞·경제학) 교수, 한국개발연구원 이혜훈(李惠薰·경제학) 박사, 포항공대 임경순(任敬淳·과학사) 교수, 맥킨지 최정규(崔晸圭) 파트너 등 30대와 40대 젊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모여 그 해법을 모색해보았다.

토론은 2월 15일과 19일, 26일 세 차례에 걸쳐 조선일보사에 모여 각각 3시간 이상씩 난상토론 형태로 이뤄졌다. / 편집자

◆송호근=현 정부는 의욕적으로 출발했으나 결국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다.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30~40대가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프로젝트는 20년 후 우리의 미래를 그리는 상당히 의미있는 작업이다.

먼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자’는 게 경제학적 측면에서 달성가능한지 짚어 보자.

◆윤순봉=향후 10년간 7~8%, 그 후 10년간 4~5%의 성장을 지속해야 가능할 것이다. 중국변수와 디지털변수를 잘 활용하면 못할 것도 없다. 경제발전이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점프와 도약의 순간에 급성장한다. 순차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임팩트(impact)가 필요하다.

◆이창용=과연 6%대의 성장을 20년 동안 계속할 수 있을까? 2020년까지 3만달러 달성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쉬운 목표도 아니다. 특히 지금 우리의 경제 역량이나 규모 등 성장 환경은 고도성장을 목표로 하기엔 70년대와 너무 다르다. 성장신화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더욱이 통일이 된다면 3만달러 달성은 불가능해진다고 봐야 한다.

◆윤순봉=물론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는 모두 비약적 성장기가 있었고, 한 사회의 인적·물적 자원에 내재한 에너지를 폭발시킬 수 있는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 내면 달성 못할 것도 없는 목표이다.

◆송호근=‘3만달러 시대를 열자’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3만달러라는 수치 자체를 우리 사회의 질적(質的) 비약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2020년 우리의 모습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개념이다.

이 경우 3만달러 시대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바람직한 사회로 가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동시에 소득 3만달러 시대에 걸맞도록 어떻게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느냐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임경순=우주론에는 과거의 조그마한 차이가 오늘날의 우주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게 됐다는 인플레이션 시나리오가 있다. 카오스(chaos) 우주론에서의 ‘초기조건의 민감성’ 이론이다. 현재의 아주 작은 차이가 미래에 엄청난 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만큼 시작하는 지금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김명섭=나비의 펄럭임이 폭풍이 될 수도 있다는 것과 같다. 이 때 우리가 할 일은 폭풍이 가져올 긍정적인 영향은 물론 부정적인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가능한 한 긍정적인 영향은 살리고 부정적 영향은 줄여 나갈 수 있다.

◆이창용=100등 하는 학생을 우등생으로 만들어 간다고 해 보자. 100등에서 10등까지 가기 위해서는 매를 때리는 것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10등 안으로 들어가려면 매라는 수단으로는 곤란하다.

우리 경제도 현재 양적(量的) 성장과 질적(質的) 성장의 기로에 서 있다. 앞으로 정부주도, 높은 교육수준과 같은 양적 성장 전략은 한계가 있다.

재경부와 한국은행이 나서서 경제를 챙기고 이끌어 가던 시대는 지났고 노동·복지·건설교통·교육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우리 경제의 성패가 달려 있다.

◆임경순=2020년 3만달러 시대를 열자는 너무 먼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지금 먹고 살기도 바쁜데 뭐 이런 것을 하느냐’고 치부해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높은 산을 오를 때 베이스 캠프를 여러 개 만들듯이 앞으로 5, 10년 후에 우리나라의 경제 및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를 그려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에 따라 우리도 중간목표를 잡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윤순봉=그런 의미에서도 우리 경제는 당분간은 양적 성장을 계속해서 2만달러 정도까지는 가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아니라 중진국으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

우리를 작으면서도 강한 나라, 강소국(强小國)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직 우리는 작으면서도 약한 나라, 약소국(弱小國)이란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남미국가와는 다른 세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도전정신(창업가 정신), 세계 최고의 교육, 근면·성실·집단주의이다. 하지만 최근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다. 이렇게 가면 성장은커녕 거꾸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창용=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로 가면서 사회주의제도를 받아들여 망했고 필리핀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최정규=우리가 외환위기를 한 번 겪었지만 아르헨티나 등 남미국가들과 비교하면서 자신감을 잃을 필요는 없다. 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외환위기 또는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는 미국과 영국을 포함해 100여개국이 넘는다.

외환위기는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그런데 한 번 넘어졌다고 다시는 일어서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겁낼 필요는 없다.

◆이혜훈=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평균적인 교육수준은 높은 편이나 고급인력의 실력이 주요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불과 몇 년 후면 고급인력들의 능력이 고갈될 가능성도 있다. 계속 이들의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학습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인구도 노령화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성장이 둔화되리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김명섭=노령화는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따라서 노령화에 맞춰 행복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일하면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100세 청춘의 개념이다.

◆이창용=분배의 개념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가 소득이 아니라 소득의 원천에 따라 발생하고 있다. 금융자산과 부동산,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양극화현상을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중산층을 상대로 하는 복지정책이 아니라 빈곤층을 상대로 하는 빈곤정책이 필요하다.

◆최정규=그동안 선진국 도약을 위한 수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언제나 빠트리기 쉬운 문제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와 사회적 기여(social contribution) 문제이다.

지도층과 가진 계층이 솔선수범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그 사회는 선진사회라고 할 수 없다.

◆임경순=앞으로 20년이 지나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되려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정말 꼭 가지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중요하다. 특히 3만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손쉽고 작은 일이 무엇인가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다 같이 3만달러 시대로 가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도 생기면서 동참의식도 생길 것이다.

◆송호근=핀란드와 아일랜드는 재도약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또한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내부혁신(innovation)이라는 고통스런 과정을 거쳤다. 결국 우리나라도 혁신이 있어야 재도약이 가능하고 그래야 3만달러를 달성할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일랜드와 핀란드를 벤치마킹할 경우 혁신의 자원을 찾아내는 일이다. 찾아낸 자원을 어떻게 적절히 조합하고 조정하는가도 중요하다. 여기서 혁신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말한다.

◆최정규=세계경영개발연구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 등의 국가별 경쟁력 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은 10위권 이내이지만 정치분야는 40위권 밖으로 뒤떨어져 있다. 정치가 이렇게 뒤떨어진 이유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짚어가면 벤치마킹이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다.

◆임혁백=3만달러 시대의 선장은 결국 정치권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중앙집권적 단일민족국가라는 점이 산업화에는 유리했을지 모르지만 2020년을 내다 볼 때도 적합할 것인가, 분권화 또는 연방시스템의 도입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등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이창용=정치뿐 아니라 언론도 문제다. 외환위기 직전 기아사태가 터졌을 때 정치권과 언론이 여론을 의식해 기아를 살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말을 바꿔 그때 왜 기아를 지원했느냐고 나섰다. 이 같은 정치권 및 언론의 포퓰리즘에 대해 감시하고 제재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계층간, 부문간 갈등만 커질 것이다. 제도개혁 또는 혁신으로 사회적 갈등비용을 줄여 나가면 성장률을 1~2% 정도 높일 수 있다.

◆최정규=정치권이나 언론의 포퓰리즘은 실명제(實名制)가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실명제가 제대로 되면 법치주의 또한 제대로 될 것이다. 법치가 기본이라고 하면서도 법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임경순=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관점 또는 시야의 차이다. 그동안 일상적인 관찰이 가능한 시야에서 돈을 벌다가 현재는 반도체의 시야에 와 있지만 20년 후에는 보이지 않는 나노(nano)의 시야로 간다. 보이지 않는 곳을 개척해야 부가가치가 생긴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는 건축의 세계와 마이크로 또는 바이오의 세계는 부(富)의 축적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임혁백=우리의 근대화는 제도나 시스템을 만들면서 내용과 콘텐츠와 같은 소프트웨어는 모두 외부에서 들여왔다. 그러면서 단기간에 성장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바로 이용할 수 있는 부가가치만을 지식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 인문학과 예술과 같은 잠재적 지식에 대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또 앞으로는 이윤극대화 위주의 시장경제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고실업·고령·장애 등과 같이 비이윤적 접근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다.

◆김명섭=패러다임의 변화는 성장률은 같아도 인간개발, 기업변화 등의 성장요인을 바꿔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2020년경에는 주요국가들이 어디에 가 있을지를 예상해 보면 좋겠다. 예를 들어 중국과 미국이란 산맥이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 위의 산봉우리가 되자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가 중국을 무작정 따라가 중국의 일부가 돼서는 승산이 없다. 중국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중국을 우리의 시장과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송호근=앞으로 경제의 블록화 또는 권역화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헌팅턴의 문명분류와 유사하게 전세계가 7개 권역을 나뉘어 권역별로 서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이질적이기 때문에 내부 경쟁이 어느 권역보다도 치열할 것이다.

◆임혁백=동아시아는 민족, 종교, 언어 등에서 이질성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또 정치체제 및 경제수준에도 많은 차이가 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동아시아의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 지리적으로도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 물류에서도 유리하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동남아의 싱가포르처럼 동아시아의 십자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동아시아는 동남아를 포함하는 개념이 돼야 한다.

◆김명섭=우리나라가 문명의 축으로서 십자로의 역할을 하느냐 또는 외로운 돛대로 남느냐는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다. 대서양 문명을 빨리 퓨전(fusion)해서 아시아로의 전파자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동남아에서 일고 있는 한류(韓流)가 좋은 예다.

앞으로 아시아 4룡의 해안연대, 대만과의 관계 복원, 아세안(ASEAN)과의 관계 강화 등을 통해 우리나라가 보다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잡아 나가야 한다.

◆윤순봉=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전세계적 개방화와 글로벌화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어 블록화 또한 예상보다 빠르게 일어날 것이다. 특히 앞으로의 블록화는 돈 중심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인구와 언어다.

◆김명섭=외국어 하나를 습득하는 데 3000시간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병역이 언어습득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필요하다면 남녀에게 똑같이 병역의무를 부과해서 의무복무기간을 줄여야 한다.

또 조기 교육은 물론 개인의 인생설계에 맞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경쟁력있는 인적 자원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3만달러는 허상이다.

◆이혜훈=후진국 효과와 같은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장점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반면 고령화, 레저수요의 증가와 같은 숙제는 계속 생겨나고 있다. 아울러 최근 정보통신산업의 침체로 주춤하고 있지만 신경제(新經濟) 현상이 다가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리에게 어떤 것이 악재고 어떤 것이 호재인지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송호근=80년대까지의 동력이 활력(vitality)이었다면 디지털화·정보화 시대의 동력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패러다임뿐 아니라 사회패러다임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서 큰 방향성이 중요하다.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복지에서 경제 우위로 바뀌고 있다. ‘경제는 사회다’라는 개념이다.

◆임혁백=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이 뭔지를 설명해야 한다. 소득 3만달러가 돼서 썩은 물을 먹고 썩은 공기로 숨쉰다면 성장의 의미가 없다.

또 선진국이 돼서 경제적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편리해지는 것들이 많아지는 반대급부로 불편해지는 것들은 감수할 수 있다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이혜훈=교육문제만 해도 이미 경제는 물론 사회문제 중의 하나다. 교육비 과다지출은 어느 가정이나 겪는 어려움이 돼 있다. 교육비가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문제에서도 근로자나 노조는 임금이 낮다고 하지만 기업은 임금이 높다고 주장한다.

외국에서는 맞벌이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는 남자만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임금을 두 배로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여성인력의 활용이 더 중요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창용=과거에는 정부가 깃발을 들고 가면 기업들이 따라가면 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요즘에는 깃발이 안 보이니까 민간기업들이 겁내면서 투자가 늘지 않고 있다. 기업가 스스로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넘어야 할 산임에는 틀림없다.

◆윤순봉=정부는 과거와 같은 자원동원(resource mobilization)의 역할을 넘어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 앞으로 정부는 과정개입자가 아니라 사회간접자본의 공급자, 지적(知的) 자극자, 제도 또는 아젠다의 수립 및 개선자(rule setter), 신상필벌(信賞必罰)의 감독자 역할 등을 담당해야 한다.

◆이창용=외국인들은 한국과 일본을 이렇게 비교하기도 한다. 한국은 좋은 말을 타고 왔는데 갈아 탈 때가 됐다고 해도 계속 타다가 거꾸러진 것이 1997년 말 외환위기였다. 이후 한국은 새로운 미국식 말을 갈아타려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일본은 계속 옛말을 고집하면서 넘어진 말을 일으켜 세우려고만 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경제상황은 물론 향후 전망도 어둡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왜 그런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임혁백=한국은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일본은 옛날의 패러다임을 고집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과거와의 단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도적 관성이 강한 분야일수록 과거와의 단절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또한 정치분야를 개혁하지 않고는 3만달러 달성은 불가능하다.

◆김명섭=우리도 과거와 단절하려면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구텐베르크의 활자 개선 및 인쇄기술의 발달이 지식의 축적과 전파에 새로운 장(場)을 연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의 인터넷혁명은 구텐베르크의 혁명 이상의 변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2020년에 걸맞은 미래의 표준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최성환 전문기자


2002-03-03 [기업의 살리자] 본연의 商道 펼치도록 해달라” [파이낸셜뉴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로 기업인들의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그는 ‘나라를 경영하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는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석쇠 위에서 생선을 굽기 시작하면 잘 익는 순간까지 느긋하고 조심스럽게 지켜볼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까지의 기업개혁 성과를 과소평가하며 성급하게 밀어붙여 기업의 사기를 꺾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총수를 ‘범법자’로 만드는 환경=지금 우리 사회에서 기업은 시장경제의 꽃이나 국부창출의 견인차로 대접받기보다는 뜯어고치고 바로잡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은 상황이 다르다. 지난 87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경제·경영학 석학들이 일본에 뒤지고 침체일로에 있던 미국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해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단행본을 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잘 살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잘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이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고 강한 나라, 즉 인구와 자원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대열에 낀 이른바 ‘강소국’들은 대기업이 국가경제발전을 이끌고 있다.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10대 기업 매출액이 전체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웃돌고 있고, 스웨덴과 핀란드도 50%를 넘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휴대폰으로 잘 알려진 노키아라는 일류기업 하나 때문에 나라 전체가 일류가 됐다. 일류기업이 일류국가를 만든 것이다. 노키아의 매출은 핀란드 GDP의 25% 수준이다. 수출 역시 핀란드 총수출에서 20%를 넘는다. 이같은 노키아의 저력은 규제나 간섭보다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는 핀란드의 기업정책이 뒤를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 대기업들의 경우 MIT 석학들의 지적처럼 ‘잘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 또 세계적으로 잘 만들고 있다고 평가받는 제품도 늘려가고 있다. 휴대폰과 반도체,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등 각종 디지털TV와 디지털 가전제품, 자동차 등 수많은 첨단제품이 세계시장에서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면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잘 만들기’에만 집중하기에는 기업을 옥죄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선악의 논리가 지배하는 기업관=출자규제를 포함한 각종 기업규제들이 도사리고 있고,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뒷돈’을 요구해왔다. 이러다보니 해외기업의 총수는 존경의 대상이 됐지만, 국내 기업의 총수는 ‘범법자’가 돼야만 했던 시절을 겪기도 했다.

정부는 하나의 규제를 풀어주면 또다른 규제를 만들어내 기업의 뒷다리 잡기에 여념이 없다는 시각도 많다. ‘오너경영은 나쁘고 전문경영은 좋다’ ‘사업전문화는 좋고 다각화는 죄악’이라는 식의 선악의 논리가 기업을 짓누르고 있다.

스웨덴 왈렌버그그룹은 대표적 오너기업집단이다. 에릭슨(통신), 사브(승용차), 스카니아(트럭), ABB(중기계) 등 세계적 기업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왈렌버그가는 소유지분을 이용해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의장 임면 과정에 개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한다. 그런데도 경제력집중이니 문어발식경영이니 오너경영이라는 비판을 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웨덴 경제의 자랑으로 여겨진다.

네덜란드 유수의 대기업 이름 앞에는 왕실을 상징하는 ‘로열’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세계적 정유회사인 셸의 공식명칭은 로열더치셸이다. 필립스는 로열필립스, 이런 식으로 250여개 대표기업이 이 칭호를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대우그룹 부도, 현대그룹 해체와 같은 대형사건이 잇따르면서 재벌그룹 체제의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이같은 사건들을 빌미로 기업의 사기를 근원적으로 꺾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기업인들은 정부가 네덜란드나 영국처럼 기업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만이라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재벌들의 신규사업 진출을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몰아붙여 금지했더라면 삼성전자가 세계 유수의 반도체기업으로 성장하고 현대자동차가 세계시장을 공략하며 SK가 세계적인 통신사업자로 부상하는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제약하는 족쇄 가운데 하나가 기업의 규모에 따른 차별적 규제”라며 “대기업을 제약하는 출자총액제한, 계열소속 금융기관 보유주식의 의결권 행사금지와 외국기업에만 주어지는 세금감면 등으로 국내 대기업은 역차별당해왔다”고 말한다.

박상용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익을 남겨 고용을 창출하고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기업을 정치인들은 더 이상 설교 대상이 아니라 교훈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친 듯 일하도록 내버려두라=올들어 재계가 정치권을 향해 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거부하고 기업규제를 좀더 완화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정부가 규제를 푼다고는 하지만 기업인들이 피부로 못느끼고 있다”면서 “외국인 주주들과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마음만 먹으면 삼성전자같은 기업도 적대적 인수합병이 가능한데도 기업에 유리한 법개정을 하려면 시민단체 등이 들고 일어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길승 SK 회장은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기업들이 미친듯이 일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라”고 호소까지 했다.

이제는 기업들이 정신없이 일할 수 있도록 기업의 기를 살릴 때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 김수헌 양효석기자


2002-03-03 [기업의 살리자] 외국 강소국 지원사례 [파이낸셜뉴스]

적은 인구와 자원제약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선진국을 일컬어 우리는 강소국(强小國)이라고 말한다. 보통 인구가 5000만명 미만, 1인당 GDP는 2만달러를 초과하는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한 가지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스웨덴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 상위 10개 중 8개국이 강소국(2001년)이다. IMD는 ‘국가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영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국가경쟁력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들 나라는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 한 기업 규모에 따른 규제를 두지 않는다.

스웨덴은 지금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꼽히고 있지만 지난 80년대만 해도 본사를 다른 나라로 옮기려는 기업 이민이 줄을 이었다. 각종 규제와 높은 세율, 사회보장 부담 때문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 나라 정부는 지난 91년 52%에 달하던 법인세율을 30%(현재 28%)로 크게 낮추고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무제한 손비처리를 인정해줬다. 또 특정 대기업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규제장치를 모두 없앴다.

스웨덴은 일주일동안 하루 24시간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는 ‘24/7운동’을 통해 기업활동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있다. 기업설립에 일주일 밖에 걸리지 않으며 노동, 세무 등에 관한 절차도 동시에 완료될 정도다. 스웨덴은 현재 기업가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조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제개혁에 고심 중이다.

핀란드의 경우 정보통신기업인 노키아 경영진들이 핀란드정부가 추진중인 ‘2010년 세계 3대 일류국 건설을 위한 2015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는 등 정부정책의 입안단계에서부터 대기업이 참여하는 사례가 많다.

규제보다는 ‘환경조성정책’을 중시해 양질의 노동력, 훌륭한 인프라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정책 방향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창업자가 안정적인 기업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의결권에 차등을 주는 주식발행을 허용할 정도로 기업경영의 안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 강소국들이 국가역량을 집중하는 부분이 바로 이같은 기업의 활력제고다. 다시 말해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규제완화, 노사정 합의에 의한 국력결집, 기업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인프라 강화 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보유한 국가로 통한다. 개방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조세제도를 운영하며 배당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등 기업의 세부담 경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정된 정치환경과 임금상승률에 힘입어 유럽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인플레를 기록하고 있다. 노사분규도 거의 없다.

법인간 출자지분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한 과세면제 조치를 하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 가운데 다수가 네덜란드에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도 대기업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반독점법 등 기업에 대한 규제는 있지만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없으며 반독점법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우리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출자총액규제다. 이같은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우리나라 외에 일본 밖에 없다. 그나마 일본도 타회사 출자제한을 규정한 ‘주식보유제한’제도를 올해 폐지키로 했다.

정작 우리가 모방해 만든 이 제도를 일본은 경기활성화와 기업경쟁력 강화, 역차별방지를 위해 없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최근까지도 가지고 있었던 30대 기업집단지정제도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다.

외국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진출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지적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복잡한 행정절차다. 영국의 경우 국내기업이건 해외기업이건 가리지 않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이런 시스템을 잘 갖춘 곳으로는 북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B)이 유명하다. IDB는 투자상담, 사업승인, 공장설립, 공장가동뿐 아니라 사후 서비스까지 공장설립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적으로 지원해준다. 투자의향을 밝히면 프로젝트 디렉터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절차진행에 도움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행정관청의 해당 공무원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닐 필요가 없다. 말로만 외자유치를 외치는 우리나라가 서둘러 배워야 할 점이다.

/ 김수헌기자


2002-01-11 글로벌 경영 기반 잘된 나라는아일랜드 1 한국 31[동아일보]

인구 380만명의 작은 나라 아일랜드가 세계화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선정됐다.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잡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와 세계적 컨설팅업체 AT커니가 세계 62개국을 대상으로 지난 한해 동안의 세계화 지수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2년 전과 같은 31위였으나 후진적 금융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은 29위에서 38위로 하락했다. 특히 스위스(2위) 싱가포르(3위) 네덜란드(4위) 스웨덴(5위) 핀란드(6위) 덴마크(8위) 오스트리아(9위) 등 강소국(强小國) 들이 대거 상위권에 포진한 반면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대국들은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세계화 지수는 세계화의 수준을 계량화하기 위해 개발된 척도로 98년 이후 두 번째 발표된 것이다. 세계화 순위는 △무역, 외국인 투자, 자본 유출입 등 세계 경제와의 활발한 교역 정도 △해외여행, 국제전화 사용 등 국민의 해외 접촉 빈도 △유엔 등 국제 사회 참여도 △네티즌 수 등 인터넷 환경 등 4개 부문으로 나눠 평가한 뒤 이를 종합해 산출했다.

1위로 선정된 아일랜드는 영어 사용국이라는 장점을 기업친화적 정책과 결합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일랜드는 98년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던 법인세를 더 낮추고 공기업이었던 이동통신과 은행들을 민영화했으며 통신 인프라도 확충했다. 또 정보기술(IT) 산업에 민감하게 대응해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IBM 등 세계적 첨단기업들의 유럽 본부들을 유치, 미국 실리콘 밸리에 비견되는 ‘실리콘 아일’을 구축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국민의 세계화 수준도 지속적인 관광산업 육성과 이동통신 인프라 구축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선대인 기자


2002-01-10 [fn사설] 세계화 수준 31위의 한국 [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의 세계화 수준은 전세계에서 31위로 랭크되었다고 한다. 조사대상 62개국 가운데 꼭 중간 수준이니 다행이라고 할 것인가. 미국의 컨설팅 업체인 AT커니와 유명 외교 전문잡지 포린 폴리시가 공동으로 세계화 지수를 조사한 결과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이 전혀 없지는 않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이 한국보다 7단계 낮은 38위로 처지고 대만도 우리보다 한단계 낮은 32위에 그친 것을 보면 우리의 세계화 수준도 적지 않게 향상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나라가 벌이는 치열한 세계화 경쟁은 우리의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함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당장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말레이시아만 해도 20위로 랭크되었으며, 싱가포르는 3위로 평가되었다.

일본이 우리보다 뒤진 것도 지난해 겪은 경제적 어려움에 개방도와 인터넷 환경이 뒤져 한해에 9단계가 추락한 결과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12위, 유럽 최대의 독일이 14위에 그치는 등 경제규모가 큰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것은 내수 시장 규모가 워낙 커 수출지향적인 국가보다 수출비중이 작게 평가되고 그만큼 개방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작용한 때문이다.

이 조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국가는 아일랜드다. 인구 380만명에 불과한 유럽 변방의 작은 나라가 2년새 다섯단계가 뛰어올라 세계1위로 부상한 것이다.

지난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서유럽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였던 아일랜드가 세계화 1위로 손꼽히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해외로부터의 투자유치만이 경제부흥의 첩경이라는 판단 아래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30억달러에 불과했던 외국인 투자가 2000년에 205억달러로 늘고 최근 6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9.5%에 이른 것은 그 결실에 다름아니다. 87년 9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1인당 소득이 2만5000달러에 달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IBM 등 세계적 기업의 유럽 본부가 이 나라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부의 세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금년도 경제자유도조사 (해리티지재단)나 세계경쟁력 연감(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에서도 우리의 기업환경은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평가되지 않았는가.

강소국이라 불리는, 작지만 강한 나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2002-01-01 기업이 강해야 나라가 산다 [동아일보]

중국 톈진(天津)의 삼성전자 지사장 사무실에는 이 지역 최고권력자인 중국공산당 톈진시 당서기와 수시로 연락할 수 있는 핫라인이 개설돼 있다. “공장에 수돗물이 잘 안나온다”고 전화하면 공무원들이 즉각 출동해 고쳐놓는다. 각종 법령과 제도를 회사경영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정비해둔 터라 핫라인이 있어도 불만을 털어놓을 일은 별로 없다.

최근 삼성 이건희 회장의 중국방문을 수행한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기업인에 대한 대접이 다르더라”면서 “이러니까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앞다퉈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도와주지 않아도 좋다. 불필요한 규제만 없으면 된다. 미친 듯이 일할 수 있게 내버려달라.” SK 손길승 회장은 작년 7월 전경련 세미나에서 “기업하려는 의욕을 꺾는 반(反)기업 정서가 사라지지 않는 한 투자가 살아나기는 힘들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손 회장은 SK의 중국본사 설립 일정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중국 투자를 늘리는 것이 규제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묘한 여운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인접국의 기업경영 환경을 부러워하고, “국내에서는 사업하기 힘들다”는 푸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 대통령이 앞장서서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한국의 현주소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경제정책의 핵심테마로 설정했다. 장관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이 겪는 애로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4년간 5000여건의 규제가 없어지거나 개선됐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기업하기가 갈수록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도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경쟁국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 외국계 기업 대표는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본부가 드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정부가 기업인을 믿지 못하고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을 향한 감시의 시선을 거두는 순간 방만경영 부당내부거래 외환밀반출 등 온갖 못된 짓을 할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규제의 그물을 촘촘히 쳐놓는다는 것.

물론 정부와 사회구성원들이 기업을 불신하게 된 데는 당사자인 기업의 책임도 크다. 일부기업은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 때문에 생산 고용 투자 수출 등을 통해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주역인 기업이 도매금으로 매도돼서는 곤란하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한국경제의 대표선수인 기업의 손발을 묶어놓고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규제만이 기업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말 한마디를 하거나 직원의 채용규모를 정할 때도 관(官)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과 이런 저런 명목의 준조세 등이 기업을 피곤하게 한다.

정치권이 법인세 인하논쟁을 벌일 때 한 대기업 임원은 “준조세만 줄여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한국처럼 국토와 자원이 빈약한 북유럽의 강소국들이 어떻게 ‘부자나라’의 반열에 들었는지 살펴보면 몇 년째 지루한 ‘규제완화 공방’을 벌이는 한국의 경제주체들이 적지 않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핀란드는 정부가 경제정책을 결정할 때 대기업 경영진을 참석시켜 의견을 경청한다. 정부 정책이 기업 및 시장의 흐름과 동떨어지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조치다.

1980년대초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었던 네덜란드는 ‘바세나 협약’이라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안정적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은 경제의 활력을 유지시키는 핵심 요소다. 경기침체의 돌파구도 생산활동의 주역인 기업의 의욕을 살릴 때 만들어진다.

고려대 어윤대 교수는 “밉든 곱든 기업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조직”이라며 “경영의 본질과 상관없는 요구를 하면 기업은 독창성과 도전성을 잃게 되고 그 피해는 국가경제 전체가 짊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에 대한 간섭을 가급적 줄이고 기업은 시장질서를 충실히 지키는 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남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박원재기자


2001-11-09 <세계일류의 교훈> (4-1) `주변 언어 알아야 강소국` [문화일보]

전지구적 차원의 무한개방, 무한경쟁을 예고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협상 논의가 시작된 가운데 세계 각국은 21세기 생존과 번영, 국익 확보를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강대국 틈에 끼인 나라들의 경우, 남보다 한 걸음 앞서 새로운 국가 전략을 마련하고 추진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도 잘 사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적극적으로 개방에 나서고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는 등 취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영국에 둘러싸인 강소국 벨기에의 경우, 영어는 물론 주변 강국들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다언어 국민이 많다. 자원도 빈약하지만 복합 언어를 구사하는 국민의 능력과 질높은 노동력 덕분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5000달러 이상의 선진국이 됐다.

유럽과 미국의 길목에 있는 아일랜드 역시 지정학적 요건을 최대한 활용, 87년 당시 1인당 GDP가 8000달러로 유럽연합(EU)내 최빈국에서 불과 14년만인 2000년 1인당 GDP 2만5615달러를 기록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적극적 개방 정책과 국민의 어학능력이 크게 기여했다.

존 피츠제럴드 아일랜드경제사회연구소 교수는 “미국계 첨단 정보기술(IT) 산업 및 컴퓨터 소프트웨어, 의약품회사가 더블린에 집중 진출한 것은 아일랜드의 위치와 개방정책, 노동력, 영어사용지라는 점 때문”이라고 말했다. 브뤼셀 자유대 정치학과 구스타프 게라드 교수는 “벨기에와 지정학적 상황이 유사한 한국도 적극 개방에 나서고 주변국 언어를 앞장서 익힐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벨기에·아일랜드〓이미숙특파원

인터뷰 – 카롤리나 레무스비타 노키아 홍보 담당 부사장

“중국시장도 노키아가 장악할 것”

레무스비타 부사장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1998년 4,000만대의 핸드폰을 판매한 이후 세계 1위 업체로 부상한 회사의 부사장답게 거침없는 매너로 노키아의 그간 실적과 비전을 설명했다. 노키아라는 기업 하나로 나라 전체가 일류국가의 반열에 올랐으니 그의 다소 오만한 태도를 탓할 수만은 없을 듯싶었다. “삼성요? 저는 삼성의 핸드폰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노키아에는 노키아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길로 가면 그만이지요.”

세계 시장 점유율 35%. 매년 20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이 거대기업의 성장 비결을 이 콧대 높은 부사장에게 집중적으로 물었다.

▷ 노키아가 1990년대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 비결은 뭔가.

“1992년 요르마 올리아가 CEO로 취임한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전력·TV·타이어 및 케이블·기계 부문 등 비핵심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통신사업에만 전념한 결과라고 본다.”

▷ 노키아의 구조개혁 와중에서 발생한 대규모 인력 교체, 즉 감원과 실업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우리는 사양산업의 직원들을 철저히 재교육해 그들이 직장을 잃지 않도록 배려했다. 재교육에 드는 비용도 회사에서 부담했다. 노키아가 과거산업 분야에서 손을 뗐지만 그 분야는 다른 기업에 인수시켜 유지시켰다.”

▷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의 판매는 부진한 편이다. 그 원인은 뭔가.

“아시아시장, 특히 중국시장은 노키아의 핵심 전략지역이다. 무진장한 저변이 있다는 얘기다. 중국시장에서 우리가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같은 출발선 위에 섰을 뿐이다. 중국시장에서의 (노키아의) 도약을 지켜봐 달라.”

▷ 노키아 이동통신사업의 미래전략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키아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고객이 정한다. 따라서 미래의 전략은 고객의 욕구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연구한 토대 위에서 결정된다. 우리는 어떤 ‘고정된 전략’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인터넷과 이동통신의 결합, 그리고 실용적이고도 아름다운 디자인이 미래전략의 핵심이 아닐까. 그 다음은 모두 고객이 정한다.”

▷ 초일류기업으로서의 노키아의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나.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드웨어적 기술, 디자인, 브랜드파워, 그리고 적응력이다. 우리는 이 네가지 분야에서 모두 톱을 달리고 있다. 그것이 노키아의 힘이다.”

▷ IMT2000 사업의 향후 전망은.

“향후 세계시장의 85%를 IMT2000이 점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일본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내년 이후 이 시장은 급속히 발전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데이터를 오직 하나의 단말기만으로 주고받는 시대가 온다. 노키아 역시 그 시대에 대비한 준비를 착실하게 하고 있다.”

▷ 노키아가 핀란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혹 외국인의 소유지분제한이 존재하나? 노키아에의 외국자본 유입이 향후 핀란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핀란드에는 그런 제한이 없다. 노키아 주식을 외국인이 사들이는 것을 우리는 환영한다. 외국자본의 유입은 경영상의 여러 취약점을 메워주고 노키아의 기업활동 영역을 조정해 주는 기능을 한다. 외국인이 노키아를 소유한다 해도 노키아는 핀란드 기업이고 핀란드 경제에 기여할 것이다. 소유권이 어디에 있는가는 상관 없는 일이다.”

▷ 핀란드 경제에서 노키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한 것은 아닌가. GDP 성장률 5% 중 2%를 노키아가 담당하고 있다. 그럴 경우 정부가 노키아의 기업활동 영역에 개입하려는 경향이 생기지 않을까.

“기우에 불과한 발상이다. 핀란드에서는 정부와 기업간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정부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 기업활동에 간여하지는 않는다. 통신산업에 관한 한 모든 규제는 다 풀려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컨트롤할 일은 존재하지 않고 정부나 기업 모두 그런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2001-11-01 핀란드스위스·스웨덴유럽 强小3 국가경쟁력의 秘密 [월간중앙]

주력산업 선별육성

기동성 있는 구조전환

완벽한 인프라가 원동력

강소국은 적은 인구와 자원 제약에도 불구하고 1인당 GNP가 높은 선진국을 의미한다. ‘월간중앙’은 유럽의 강소국 핀란드·스위스·스웨덴 3국을 방문, 그들이 효율적인 경제와 강한 기업을 일궈낸 비결을 취재했다. 목표지향적 기업경영, 극소화된 정부의 규제와 간섭, 과감하고 전폭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강소3국의 공통된 경제 환경이다.

크기나 역량을 기준으로 국가를 분류할 때 우리는 보통 강대국(强大國)과 약소국(弱小國)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편의상 인구 1억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 이상이면 강대국, 인구나 소득이 그에 못미치면 약소국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의 틈새에는 강소국(强小國)과 약대국(弱大國)이 존재한다.

미국·일본 등을 대표적인 강대국으로 꼽는다면 대부분의 개도국과 후진국은 약소국이다. 중국·인도·러시아 등 인구에 비해 경제력이 약한 나라를 약대국이라고 부른다면 나라는 작지만 강한 나라 스위스·핀란드·스웨덴 등 유럽의 부자 나라를 강소국으로 부를 수 있다. 그밖에 네덜란드·아일랜드·노르웨이 등을 포함한 강소국들의 존재는 인구가 적고 자원이 부족한 한국형 경제에 적지 않은 참고가 된다.

‘월간중앙’이 강소(强小)3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체제하의 한국경제가 위기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경제를 움직였던 재벌체제가 와해되면서 그 대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때 한국경제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IT 중심, 벤처기업 중심으로의 경제시스템 이행도 최근 그 한계를 나타내고 있고, 과거 재벌기업들이 주도하던 수출 드라이브, 대규모 고용창출의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지 아직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유사한 규모의 유럽 소국들은 어떤 경제시스템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이상적인 복지국가를 건설했을까. 위기의 한국경제를 타개할 묘수를 이들의 경제운용 방식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핀란드·스위스·스웨덴은 말그대로 소국이다. 세 나라 모두 인구가 1,000만명 미만이고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다. 면적도 스웨덴·핀란드는 남한보다 3~4배 넓지만 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대국에 비해서는 형편없이 좁다. 그들이 강해진 것은 인구나 땅의 크기 때문이 아니다.

강소국이란 우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지칭한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세계경제포럼이 운영하는 특수경영대학원)의 국가경쟁력 순위 상위 10개국 중 8개국이 강소국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서 보는 것과 같이 강소국들은 전통적인 강국 일본·영국·프랑스·독일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IMD의 국가 경쟁력이 ‘국가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영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강소국들은 협소한 국내시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수출에 주력하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선택한다. 고유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가진 소수의 대표기업들이 강소국 경제를 주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강소국들은 또한 지식·아이디어·기술 등 질적 생산요소의 확충을 경쟁력 유지의 관건으로 삼는다. 이른바 ‘high risk-high return’의 기업가정신 앙양이다. 강소국 정부는 예외없이 기업이 직면한 혁신활동의 장애 요소들을 상쇄시킬 유인책을 쓰는 것이다.

1979년 서울 동대문시장을 방문한 MIT대 홀로몬 교수가 “한국은 내가 방문한 나라 중 모험가적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라고 했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 점에서만큼은 미래가 밝다는 이야기다. 미국 학자 로버트 페얼리의 연구를 보더라도 미국에 살고 있는 61개 소수민족 집단 중 이스라엘인과 한국인의 자영업률(self-employment rate)이 가장 높다. 한국의 경제 구성원들은 ‘high risk-high return’을 받아들일 모험적 기업가정신이 충만하다는 증거다.

강소국 정책의 근간은 선택과 집중

강소국은 주력산업을 선별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편다. 정부의 정책의지가 작용하는 대목이다.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세계경제 추세에 조응하는 전략산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금융, 유통·물류, 전자·화학분야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스웨덴은 정보통신, 자동차, 기계분야를 키운다. 스위스는 정밀기계, 금융, 화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핀란드는 정보통신에서 앞서가고 있다.

네덜란드는 주요 산업에 대해서는 개별기업에까지 직접적인 지원을 한다. 대표적인 철강회사 후고벤스가 구조조정할 때는 정부가 총 소요자금의 3분의 1을 지원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전체 연구개발(R&D) 비용의 46%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23%, 영국의 33%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그러나 강소국 정부는 민간부문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룰을 정하고 인프라를 제공하는 ‘협력자’ ‘안내자’의 역할에 그친다. 다만 국가차원의 전략을 세우고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사회적 역량을 구축해 민간부문을 ‘멀리서’ 리드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상무는 ‘작지만 강한 정부’라는 말로 정부의 역할을 규정한다. 강소(强小)정부론이다. “지본주의(知本主義) 세계경제체제 하에서 정부의 힘은 지식에서 나오고 지식으로 국민을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소국의 정체성 중에는 ‘기동성 있는 구조전환 전략’이 있다. 강소국 경제는 일반적으로 해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한번 기회를 잃으면 경제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이 막대해 스피드와 타이밍이 중시되는 경제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강력하고도 신속한 구조변화를 통해 정보통신분야의 선진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에도 ‘기동성 있는 구조전환의 성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선택과 집중의 성공, 노키아의 힘이 이끄는 나라 핀란드

9월 중순 헬싱키의 분위기는 매우 우울하다. 한달이나 계속되는 여름휴가를 끝내고 이제 지겨운 겨울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여름휴가가 끝나는 9월 초부터 헬싱키는 ‘침묵과 우울의 바다’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밤이 15~20시간이나 지속되는 상황에서 휴가 없이 일에만 몰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헬싱키광장 옆 한 백화점도 그런 분위기를 십분 반영하고 있었다. 백화점 안은 우선 어둡고 인테리어는 우리나라의 대형 할인매장 수준이다. 진열된 물건도 자국 상품 위주로, 평균적으로 한국산보다 질이 낮은 물건이 태반인 것 같다.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옷이나 신발의 가격은 그러나 터무니없이 비쌌다.

헬싱키를 둘러본 사람들은 그래서 “이 도시는 도대체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핀란드인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는 시벨리우스공원에 가봐도 그렇다. 시벨리우스의 작은 흉상과 오르간 형태의 조형물을 덜렁 갖다 놓은 작은 마당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이드는 이곳이 핀란드인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한다.

헬싱키 시내에는 암굴교회나 헬싱키대학 부근의 광장, 러시아정교회 건물 등 볼거리가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도 드물고 행인들의 표정이 우선 너무도 어둡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사는 가이드가 속삭이듯 자신이 얼마나 헬싱키의 겨울을 싫어하는지를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노키아만큼은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되지요.”

핀란드는 호수의 나라다. 남한의 3.4배에 달하는 국토에 6만개의 호수가 점점이 박혀 있다. 섬도 3만여개나 된다. 춥고 어두운 겨울 날씨와 더불어 음울, 폐쇄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나라다. 해마다 10월 겨울이 돌아오면 밤이 15시간 이상 지속되며 시민들의 얼굴은 굳어지고 말수 또한 더욱 적어진다.

핀란드는 또한 ‘정보통신의 나라’ ‘노키아의 나라’다. 고립되고 폐쇄적인 지형이 정보통신강국으로 만든 지리적 요인이다. IT를 국가적 전략사업으로 채택한 것 자체가 핀란드의 자연환경을 고려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핀란드는 어디까지나 노키아를 선택하고 집중적으로 키워 정보통신의 강국이 된 나라다.

헬싱키 교외 아름다운 핀란드만(灣)에 자리잡은 노키아 본사는 온통 유리로 뒤덮인 건물이다. 겨울이 긴 핀란드의 기후를 감안해 최대한의 채광을 확보하고 투명한 유리를 통해 ‘Connecting People’이라는 노키아의 구호를 상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노키아하우스의 사무실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넓은 카페테리아, 복도에 만든 전시실, 브리핑을 위한 회의실, 그리고 화장실 외에는 모든 곳이 통제구역이었다.

2만6,000개의 유리를 이어 만든 이 건물의 동쪽 창을 통해 아름다운 핀란드만을 바라보는 조망이 그만이다. 홍보담당자는 이 노키아하우스 건물의 테마를 ‘투명함, 독창성, 그리고 인간적 친화감’으로 설명했다. ‘인간적 친화감’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건물 내부는 나무·면사·종이 등 자연재를 대거 활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노키아는 현재 세계 이동전화 단말기시장의 35%를 점유하는 공룡기업이다. 흔히 ‘작은 나라의 거대 기업’(A big company in a small country)이라는 표현으로 불리는 회사다. 500여만명의 핀란드 인구 중 3분의 1이 노키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올 지경이다. 이쯤 되면 노키아가 핀란드이고, 핀란드가 곧 노키아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노키아에 대한 핀란드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어서 노키아 이외의 이동전화를 쓰는 핀란드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노키아는 최근 5년간 수출과 부가가치 창출에서 33%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핀란드 경제의 고속성장을 견인했다. 4%의 GDP 성장률 중 노키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이른다. 노키아는 헬싱키 주식시장의 ‘황제주’다. 시가총액의 60%가 노키아의 몫이다. 세계적인 컨설턴트회사 ‘인터브랜드’의 평가에 의하면 노키아의 브랜드가치는 말보로 담배 다음으로 세계 11위를 유지하고 있다.

노키아 홍보팀이 기자에게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 차세대 단말기는 카메라 겸용 이동전화기. 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무선 컴퓨터로 데이터를 전송하면 단 1분만에 사진이 모니터에 뜨도록 고안된 상품이다. IMT 2000이 보편화되면 카메라를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 홍보팀의 설명이었다.

노키아는 1865년 펄프 및 제지 사업을 주업종으로 창립된 유서 깊은 회사다. 1990년대 초반에는 화학·고무·전기·전자 등의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했고, 현 회장인 요르마 올릴라 취임후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3세대(3G) 무선통신장비 및 인프라를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선정해 집중 투자하고 있다.

핀란드는 노키아의 힘을 앞세워 전진하는 나라다. 핀란드는 IMD 발표 세계 국가경쟁력보고서 1999년, 2000년 2년 연속 세계 3위를 기록했다. 1994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은 4%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다. 이러한 고속성장의 배경에는 물론 노키아가 있다. 노키아가 최고 브랜드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비밀(secret code)은 무엇일까. 노키아는 분명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나 인텔의 컴퓨터칩 같은 대체하기 힘든 상품을 생산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CEO 올릴라는 그 비밀코드를 이렇게 설명한다.

핀란드 경제의 아킬레스건

“우리의 비밀코드는 비밀코드가 없다는 데 있다. 이동전화기는 누구나 한대씩 갖고 아무 전화기하고도 통화할 수 있는 기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만의 비밀을 갖지 않는다. 항상 표준화에 관심을 갖고 우리의 경쟁자들과 늘 손을 잡는다. 필요하면 그들의 기술을 사들인다. 그래서 가장 편리하고 우수한 단말기를 만들면 그만이다. 이것이 우리의 ‘공개된’ 비밀코드다.”

노키아는 향후 인터넷의 활용이 ‘mobile’ 상태로 집약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표명한다. 홍보담당 부사장 카롤리나 레무스티나는 ‘이동 인터넷시대’의 도래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 목소리가 노키아 전화기에 명령하면 어떤 것을 즐길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우선 이메일로 메시지와 화상을 내려받을 수 있겠지요.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동영상으로 뉴스를 볼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살 수도 있고 간단한 비즈니스를 처리하기도 합니다. 결국 전화기와 컴퓨터와 인터넷이 결합되는 세상이 오는 것이죠….”

최근 핀란드에 외국자본이 몰리고 있는 이유는 핀란드의 높은 기술력과 생산성 때문만은 아니다. 핀란드는 인근 러시아 및 EU국가로의 진출을 위한 중요한 물류기지다. 잘 발달된 사회간접자본을 풍부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핀란드 진출의 메리트 중 하나다. 산·학·관(産學官)협력체제에 의한 출중한 연구개발 체제, 풍부한 고급 기술인력도 투자자의 입맛을 돋우는 메뉴다.

핀란드가 노키아를 중심으로 산업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은 1993년부터다. 핀란드 통산산업부는 이해 ‘국가산업전략’(National Industrial Strategy)을 수립했다. 핵심내용은 산업정책을 ‘산업별 접근방식(Sectoral approach)’에서 클러스터(Cluster approach)로의 전환이다. 8개의 산업별 클러스터를 선정하고 이중 정보통신 클러스터를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51%가 정보통신 클러스터에 지원됐다.

핀란드 정부는 많은 중소기업들을 산업 클러스터에 연계시킴으로써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협력을 강화했다. 정보통신 클러스터에는 3,000여개의 중소기업을 입주시켰고 이 중 노키아의 1차 하청업체만 300여개에 이를 정도다.

북유럽 강소국 전문가들은 핀란드 성공의 핵심 동인을 엄청난 규모의 R&D로 꼽고 있다. 국내총생산(GDP)대비 R&D 투자액이 3.5%로 스웨덴에 이어 세계 2위다. 핀란드 정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오히려 R&D 투자를 늘렸다. 재정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R&D 투자를 늘리기 위해 노·사·정(勞使政)이 사회보장 예산을 축소하기로 합의할 정도다. 미래의 비전을 위해 투자하는 지혜가 강소국 핀란드를 만든 1등공신이었다는 점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001-11-01 『일류 기업이 일등 국가를 만든다. 기업이 되는 나라는 국민이 살고 나라가 강하다』[월간조선]

[강소국 여행기] 스위스ㆍ핀란드ㆍ스웨덴: 一流 기업이 일등 국가를 만든다

趙南俊 月刊朝鮮 편집위원(njcho@chosun.com)

강소국(强小國)은 「강하면서 작은 나라」를 뜻하는 최근에 만들어진 造語(조어)다.

인구와 국민소득에 따라 大中小와 强中弱(분류기준·인구 1억명 이상 大國, 5000만명 이상 中國, 그 미만 小國, 1인당 국내총생산액 1만5000달러 이상 强國, 1만 달러 이상 中國, 그 미만 弱國)으로 분류한다고 하면 세계 모든 나라는 9개의 범주로 나누어진다. 强大國(강대국), 强中國(강중국), 강소국(强小國), 中大國(중대국), 中中國(중중국), 中弱國(중약국), 弱大國(약대국), 弱中國(약중국), 弱小國(약소국)이다.

이 중에서 강대국(strong and big country), 약소국(weak and small count ry)은 눈에 익은 말이지만 강소국(small but strong country)과 약대국(we ak but big country)은 생소한 말이다.

强大國과 弱小國의 합성어 같은 냄새를 풍기던 강소국이라는 말은 최근 들어 구체적인 定義(정의ㆍdefinition)를 부여받고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작지만 강한 나라.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구는 적지만 경제력과 소득이 높은 스위스,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아일랜드 등 5개국을 지칭하는 단어로 굳어져 가고 있다.

기자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초청으로 국내 다른 週·月刊誌의 경제분야를 맡고 있는 기자들 12명과 함께 지난 9월15일부터 23일까지 이들 5개국 가운데,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등 3개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9월15일(토요일). 미국 월드 트레이드센터 테러사건으로 세상이 뒤숭숭한 가운데 하는 여행이라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인천공항을 떠난지 1 3시간이 지나자, 비행기는 첫 번째 방문국인 스위스의 취리히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우리 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대한항공 KE 917편 보잉747점보機. 항로를 보니까 중국 上海, 北京의 북쪽을 거쳐 소련을 횡단하는 루트였다.

거리는 약 9000km. 함경북도 회령에서 제주도까지 8회를 왕복하는 거리다.

우랄 산맥을 넘어 모스크바를 경유한 비행기는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스위스로 향했다. 불과 몇 년 전에 自國영토를 약간 침범했다는 이유로 민간여객기인 대한항공 007機를 미사일로 격추시킨 나라를 통째로 횡단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흥분과 함께 스릴이 느껴졌다.

인구 117만명의 취리히는 스위스 최대의 도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성남市 보다 약간 큰 市勢(시세)지만, 스위스의 인구는 720만명에 불과하다. 취리히는 세계 80여 개국, 180개 지역과 연결된 세계적 허브(Hubㆍ中樞)공항 중 하나. 취급 여객규모 세계 9위, 화물 규모 세계 7위라고 한다.

하지만 공항의 모습은 인천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고층을 찾아보기 힘든 취리히 도심의 건물들은 대부분 낡아 보였고, 주말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거리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융프라우의 절경 관광

한국인이 경영하는 코리아 레스토랑에서 된장국과 돼지고기로 저녁을 먹고 숙소인 인터라켄市를 향해 떠났다. 밤 10시쯤, 융프라우(독일어로 「숫처녀」라는 뜻)가 눈앞에 펼쳐진 인터라켄市 도린트 호텔에 도착했다. 숙소는 거대한 호수가 내려다 보이고 雪山(설산)의 連峯(연봉)이 가로 누운 절경에 자리잡고 있었다.

9월16일(일요일). 오늘은 자연 인프라 스트럭처 견학이라는 美名(미명)하에 유럽의 지붕이라는 알프스 산맥의 융프라우를 관광하는 날이다. 해발 400 0m가 약간 넘는 융프라우 바로 아래 해발 3454m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전철을 타야 한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전철은 세 번을 갈아탔다. 너비 1m짜리 철도를 30분가량 타고 올라갔다가 중간에서 0.8m짜리 狹軌(협궤)열차로 갈아타고 한 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1m짜리로 換乘(환승)하여 한 시간, 토털 두 시간 반 동안 산길을 빙빙 돌아 목적지에 올랐다.

중간 역은 석회 동굴. 이곳에서 잠깐 멈추는 사이, 바깥으로 향한 작은 문을 열고 나갔다가 얼어 죽는 줄 알았다.

눈보라가 몰아쳐 주변 산세를 전혀 구경할 수 없었다. 산 아래에서 내리던 비가 고도가 바뀜에 따라 함박눈으로 변해 산바람을 타고 사람들을 후려치고 있었던 것이다. 출국 前, 초겨울 날씨라는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추울 것으로는 생각지 않고 있다가 곤욕을 치렀다.

마지막 부분은 레일 중앙에 자동차 기어모양의 톱니바퀴를 달아 열차와 맞물리게 함으로써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가게 만들어졌다. 기차삯은 1인당 100달러라고 한다. 꽤 비싼 편이었지만, 산꼭대기까지 기찻길을 뚫은 사람들의 고생을 생각하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착지는 「얼음궁전」이라고 이름 붙은 곳. 만년빙 속에 개미굴 같은 길을 뚫어 구경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궁전 안 나무 계단, 나무 손잡이 곳곳에 한국인의 이름들이 낙서돼 있었다. 어딜 가나 한국인의 이름이 안 보이는 곳이 없다. 현지 가이드가 경고했다.

『뛰지마라, 천천히 걸어라』 잘못하면 큰일난다고 했다. 산소가 부족한 高山 지대니만큼 뛰다가는 숨이 가쁘고 쓰러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低酸素症으로 일행 중 한 사람 실신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점심식사 도중 갑자기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지더니 옆으로 쓰러져버린 것이다. 반주로 포도주 두 잔을 마셨는데, 자기도 모르게 정신을 깜박 놓았다는 것이다.

많은 일행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호소했다. 低酸素症(저산소증)의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기자는 전혀 그런 低酸素症을 느끼지 못했다. 비록 1000m 내외의 낮은 지대지만 3년 동안 군대생활에서 밥먹듯 산을 타본 경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반가운 것은 해발 3454m의 스넥코너에서 한국의 라면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인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만든 사발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그들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어 보았더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최고」 라고 칭찬했다. 사발면 한개 값은 5달러(6500원). 뜨거운 물을 부어 주면 7달러(9100원)라고 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換乘하기까지 약간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었지만 많이 그쳐 있었다. 산악인들이 오르기 어렵다고 꼽는다는 그 유명한 아이거 北壁(북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두 컷 찍었다.

9월17일(월요일)은 원래 A, B조로 나눠 한 조는 골프를 치기로 했지만 전날 내린 비로 골프장이 휴장했다고 해서 일행 모두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목적지는 에게르킹겐市에 있는 실트호른. 이번에는 케이블 카로만 2970m 高地를 정복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케이블 카를 세 번 갈아타고 꼭대기에 올랐다. 케이블 카 안에 설치된 기온계는 갈아탈 때마다 곤두박질치더니 꼭대기에서는 零下(영하) 10도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케이블 카 등정에서는 큰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올라갈수록 폭설로 변해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눈 때문에 시야가 가려 그 좋다는 주변 경관을 전혀 구경하지 못한 것이다. 頂上에 만들어진 식당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내려와야 했다. 소득이라면 실트 호른과 식당건물을 배경으로 찍었다는 영화 007의 한 장면을 구경한 것이랄까.

내려오는 길에 케이블 카 바깥으로 한국으로 치면 한겨울의 雪景(설경)이 펼쳐졌다. 스키어 가운데 이곳까지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왔다가 스키로 下山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곳곳이 낭떠러지인데 어떻게 스키로 내려갈 수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2001-11-01 [현지취재] 강소국 스위스 경제의 [신동아]

[현지취재] ‘하이디의 나라’에서 ‘하이테크의 나라’로

강소국 스위스 경제의 힘 남한 면적의 절반이 채 안되고 인구가 720만명에 불과한 스위스. 이렇다 할 부존 자원도 없는 이 나라가 1인당 GDP 3만3470달러, 국가 신인도 세계 2위, 기술 무역수지 세계 2위의 남부러울 것 없는 부국으로 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형삼

양적인 척도를 들이대면 스위스는 보잘 게 없는 나라다. 전체 면적이 4만1284㎢로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도를 합친 넓이가 채 못되고 인구라야 720만명에 불과하다. 마테호른, 융프라우, 아이거를 위시한 알프스 영봉들이 빼어난 위용을 자랑하지만,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악지대에선 경제성 있는 광물자원이나 농업자원이 거의 나지 않는다. 여름이 짧고 서늘한 탓에 농작물 재배도 수월치 않아 농촌에선 대개 비탈마다 넓은 초지를 조성하고 소를 키워 우유며 치즈를 생산하는 데 만족한다. 실제로 스위스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단일 민족, 단일 언어권에서 온 사람이라면 이 나라 국민이 과연 하나의 깃발 아래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스위스는 나라는 작지만 무려 26개 주로 나뉘어진 연방국가다. ‘칸톤(Canton)’이라고 불리는 각 주들은 독자적인 헌법과 법률을 토대로 철저한 자치행정을 실시한다. 지방색도 뚜렷하며, 국민의 64%가 쓰는 독일어를 비롯해 프랑스어(19%), 이탈리아어(8%), 레토로망슈(1%) 등 공용어가 4개나 된다. 북부와 동부, 중부지방은 같은 독일권이지만 각양각색의 방언을 사용한다.

더욱이 스위스 인구의 20%는 다국적기업, 국제기구 등에 근무하거나 비즈니스, 혹은 유학차 스위스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이다. 하지만 스위스 국적을 가진 나머지 주민도 따지고보면 각 언어의 모국에 속하는 사람들인 만큼 민족적·언어적 의미의 스위스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지상주의 전통

그러나 스위스는 작지만 강한 나라, 즉 ‘강소국’의 전형이다. 스위스의 지난해 GDP(국내총생산)는 2412억달러로 한국의 절반 규모지만, 1인당 GDP는 3만3470달러로 한국의 3.5배에 이르며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스위스의 1인당 GDP는 EU(유럽연합) 국가 평균에 비해 60%, 유럽 최고 수준인 독일과 오스트리아보다도 40% 이상 많다.

지난해 스위스 경제는 3.6%의 성장률을 기록, 199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미국 유럽 등 세계 경제의 침체로 올해 성장률은 1.8% 수준으로 둔화될 전망이지만 내년에는 다시 2%대를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연방경제부 데이비드 시즈 차관은 “우리에게 적정한 성장률은 2.0∼2.5%선이다. 우리는 현재 수준에서 더 이상 비약적으로 성장하기보다는 이 수준을 유지하는 데 목표를 둔다. 스위스는 노동력 시장이 작기 때문에 경제규모가 더 커져봐야 이를 감당할 능력도 없다”며 여유를 보였다.

지난 3월 영국의 국제경제 전문지 ‘유로머니’는 스위스의 국가 신인도를 100점 만점에 96.75점으로 평가했다. 185개 조사대상국 중 2위였다. 한국은 62.53점으로 47위였다. 스위스의 국가채무는 GDP의 53.8% 규모로 유럽 국가 중 최저 수준(EU 국가 평균은 76.7%)이다.

해마다 280여 개 영역의 경쟁력 지수를 산출, 합산해 국가 경쟁력 순위를 발표하는 IMD(국제경영개발원)는 올해 순위에서 스위스를 10위에 올려놓았다. 지난해의 7위에서 세 계단 떨어졌지만, 올해에도 독일(12위), 영국(19위), 프랑스(25위) 등 유럽의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을 따돌렸다. 스위스는 자본비용(2위), 노사관계 안정성(2위), 정부 효율성(6위), 금융시장 효율성(6위), 인프라(9위) 등의 영역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제가 성숙한 만큼 스위스 GDP의 70%는 서비스산업 부문에서 창출되지만, 제조업은 여전히 스위스 경제와 산업을 떠받치는 대들보 노릇을 하고 있다. 스위스의 제조업은 고부가가치 기계 수출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할 만큼 과학기술 수준이 높다. 특히 정밀기계, 금속가공기계, 발전설비 및 선박용 터빈, 인쇄기기, 정밀측정기기 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이디의 나라’에서 ‘하이테크의 나라’로 거듭난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가 선정한 2001년 세계 500대 기업에는 노바티스(26위) 로슈(48위) 네슬레(50위) UBS(61위) 크레디트 스위스(85위) 취리히 파이낸셜 서비스(105위) ABB(172위) 등 스위스 기업이 11개나 포함됐다(한국은 삼성전자225위, SK텔레콤 270위, 한국통신 297위, 한국전력 403위 등 4개). 하지만 이들은 스위스에 본사를 뒀을 뿐 실제로는 전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 활동을 펴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다. 예컨대 다국적 식품회사인 네슬레는 총 매출액의 2%만을 스위스에서 창출하고 있으며, 11명의 톱매니저 중 스위스인은 3명에 불과하다.

스위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주역은 회사도 작고 생산량도 적지만 우수한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내는 중소기업들이다. 스위스 기업의 99%는 정규근로자가 250명 이하인 중소기업이다. 주로 시계 제조업으로 출발한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오랜 기간 장인정신을 담은 제품을 만들며 축적해온 정밀가공기술에 전자공학을 결합, 이를 의료기기에서 우주비행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면서 각종 첨단 정밀산업기술의 선도자로 성장했다.

많이 일하고 많이 받는다

데이비드 시즈 차관은 “우리는 값싼 제품은 만들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나라도 작고 자원도 없는 우리에겐 ‘두뇌’밖엔 믿을 게 없다. 그래서 많은 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그들의 비즈니스 활동을 고무해왔다. 그 결과 시계 계측기 방직기계 의료기기 등의 제조업은 물론, 제약 의학 화학 등 생명공학, 은행·보험 등 금융서비스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다. 작게는 볼펜 끝에 들어가는 좁쌀만한 볼에서 크게는 우주선에 설치하는 로봇에 이르기까지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의 명성은 자타가 공인한다. 세계인이 쓰는 볼펜 10개 중 9개에는 스위스제 볼이 들어 있다. 우리는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과 서비스에는 관심이 없다.”

스위스 전통 제조업의 상징인 시계산업은 금욕정신과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정착된 캘빈의 종교개혁기에 시작됐다고 하는데, 스위스 시계가 세계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게 된 것은 이런 신앙적 기반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지금도 연간 약 1억 개의 시계를 생산해 그중 95%를 수출하는데, 세계 시장의 13%, 아시아 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스위스 사람들은 치밀하고 재주 많고 근면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인구 규모가 작고 고령화 수준이 높다는 약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양질의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의 총인구 대비 취업인구 비율은 54.4%(1999년)로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영국(46.5%), 독일(43.7%), 프랑스(38.4%) 등과는 커다란 격차를 보인다. 실업률에서도 EU 12개국 평균이 8.3%에 달하는 반면, 스위스는 불과 2%대로 완전고용상태에 가깝다.

스위스 근로자의 생산성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급여수준은 높지만 생산성이 높고 근로시간이 길어 임금 코스트의 경쟁력이 높다. 연평균 근로시간이 1856시간(2000년)으로 선진국 중 가장 많은 반면 결근·병가 일수는 가장 적다.

스위스와 독일 엔지니어의 임금 코스트를 비교한 사례를 보자. 연간 급여는 스위스가 4만3568마르크, 독일이 3만2772마르크다. 하지만 복리후생비 등 간접비를 포함하면 연간 총 인건비는 각각 6만5198마르크, 6만7712마르크로 독일이 다소 높아진다. 연간 근로일수는 262일로 같다. 그러나 국경일, 휴가, 병가 등을 뺀 실제 근로일수는 스위스가 226일, 독일이 206일이다. 여기에 하루 평균 근로시간인 8.50시간(스위스)과 6.42시간(독일)을 곱하면 연간 총 근로시간은 1921시간, 1322시간으로 스위스가 독일보다 1.5배나 많다. 그 결과 스위스의 시간당 실제 인건비는 33.9마르크로, 독일(51.2마르크)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노사관계도 안정적이다. 지난해 IMD는 스위스가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국가라고 평가했다(한국은 46위). 노사분규로 인한 연간 노동손실 일수는 근로자 1000명당 0.38일로 한국(29.16일)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연방경제부 이레나 크로네 공보관은 “노사 모두 적대적인 자세를 지양하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풍을 오래 전부터 견지해왔기 때문에 큰 갈등은 빚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내실있는 직업교육 스위스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꼼꼼한지는 그들의 일상 곳곳에서 짐작할 수 있다. 농촌에는 기계를 이용한 과학영농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지만, 농부들의 손을 만져보면 젊은층도 하나같이 마디가 굵고 울퉁불퉁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손을 놀려대기 때문이다.

뒷마당에는 집집마다 장작더미들이 가지런히 층을 이루며 쌓여 있다. 과거에는 갑작스런 폭설로 장작을 잃어버리면 꽁꽁 얼어붙은 냉방에서 밤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겨울이 오면 장작을 정리해 쌓아두는 습관이 붙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들 기름으로 난방을 하고 장작은 거실 벽난로의 운치를 살리는 부분 난방용으로나 사용하는데도 옛 습관을 못 버리고 있는 것.

스위스인들은 웬만한 집 수리나 자동차 정비 정도는 자기 손으로 해결한다. 그래서 농가는 물론 도시 가정들도 손때 묻은 갖가지 공구를 다 갖춰놓고 있다. 수십 종의 연장과 공구를 창고 한쪽 벽에 빽빽히 걸어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공구가 걸린 자리마다 그 공구의 이름을 써놓고 모양까지 그려놓았다. 누가 무슨 공구를 가져다 쓰든 나중에 제 자리에 정확하게 걸어놓도록 하기 위함이다.

취리히에 거주하는 교민 김용학씨는 “스위스 사람들은 타고난 일벌레들”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스위스에서는 연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다양한 현안을 내걸고 1년에도 20차례가 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민의를 반영한다. 몇 년 전에는 스위스인의 근로시간이 너무 많다는 지적에 따라 급여는 그대로 둔 채 근로시간을 축소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했는데, 예상을 깨고 부결됐다. ‘부존자원도 없는 우리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오직 근면과 성실 덕분’이라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20여 년을 산 나도 깜짝 놀랄 만한 결과였다.”

교육 시스템 또한 내실있는 직업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스위스 청소년들은 9년 간의 의무교육을 마치면 적성과 장래희망에 따라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교원양성학교, 직업학교 등으로 진학한다. 의무교육을 마친 학생의 4분의 3 정도가 직업학교에 진학해 3∼4년 동안 도제수업을 받는다. 이들은 직업학교에서는 이론적인 부분만 배우고, 그 외에는 자신이 선택한 직종과 관련있는 인근 기업으로 출퇴근하면서 현장실습 위주로 배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아진다.

이처럼 도제수업을 통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직업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사회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스위스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미국, 독일, 스웨덴 같은 나라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IMD에 따르면 스위스 청소년의 과학·기술의 대한 관심도는 10점 만점에 7.43점으로, 핀란드(7.31) 프랑스(7.12) 독일(6.78) 미국(6.60) 일본(5.48) 등의 기술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다. 스위스는 학생 1인당 교육투자액도 세계 최고이며,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 수와 특허건수도 단연 세계 1위다.

‘시장을 존중하는 작은 정부’

교민 김용학씨는 “스위스 청소년의 대학 진학률은 20%에도 못 미치지만 고등학교만 나오면 3개 국어 정도는 어려움없이 구사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등 제도교육에서 외국어 교육을 강조하는데다, 다민족·다언어·다문화 국가이고 외국인이 많이 살다보니 대부분의 스위스인이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 특히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영어가 공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스위스인들은 이런 여건 때문에 외국어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개방성과 포용성, 조화와 협상의 전통이 몸에 뱄다고 한다. 이는 외국 기업을 끌어들이거나 다보스 포럼 같은 각종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데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한다. 세계무역기구(WTO) 국제노동기구(ILO)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국제결제은행(BIS) 등의 국제기구가 스위스에 본부를 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스위스는 GDP의 약 3%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는데, 투자액의 4분의 3은 민간부문에서 나온다. 각 대학의 과학·기술분야 연구소들은 전담 사무소를 두고 이들 민간부문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한다. 정부의 R&D 예산은 기초연구에 중점적으로 지원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기술수출액을 기술수입액으로 나눈 기술 무역수지 순위에서 스위스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 있다.

스위스 기업의 경쟁력은 ‘시장을 존중하는 작은 정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정부의 최우선 정책목표는 ‘가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인근 강대국인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유리한 기업환경을 만들어 첨단분야의 외국인 투자와 다국적 기업 본사를 유치하는 데 주력한다.

그렇다고 파격적인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에 유리한 투자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할 따름이다. 기업 인프라, 안정된 통화정책, 낮은 세금정책, 지적재산권 보호, 행정절차 간소화, 정치 안정, 노사관계 안정, 양질의 노동력 등이 그런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스위스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연방경제부는 수도 베른 시내의 교차로 한 모퉁이에 있는 허름한 건물에 입주해 있다. 한 대뿐인 엘리베이터는 그나마 공간이 협소해 단체로 방문할 때는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연방경제부는 국내 및 대외 경제정책 파트로 분리돼 있었으나 글로벌화의 진전으로 국내외 경제정책을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관할부서를 일원화했다.

연방경제부는 자신의 임무영역을 거시적 차원으로 제한한다. 즉 ▲대외적으로는 상품·서비스 교역 및 해외 투자를 관할하고 스위스의 대외 경쟁력 향상과 국가간 경제협력에 주력한다 ▲대내적으로는 연방 차원의 산업·경제정책을 수립하고 각 주의 균형적 경제발전을 조정·지원한다는 것이다.

주정부의 독립성을 보장, 실질적인 경제정책은 주정부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연방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해 경제발전을 측면에서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이처럼 연방정부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정치적 자율권과 자치행정권을 부여받은 26개 주정부는 서로 경쟁하면서 기업활동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연방경제부 이레나 크로네 공보관은 “스위스에 투자하려는 한국 기업인들은 ‘힘없는’ 연방정부보다는 재량권을 많이 가진 주정부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그들이 내거는 조건을 비교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기업 스스로 살 길 찾게

스위스는 상위 10대 기업의 시가총액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5%(한국은 61%)에 달할 만큼 소유 및 경제력 집중도가 높지만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차별적인 규제는 없다고 한다.

“스위스는 인구가 적고 자원이 부족해 해외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 독점이나 카르텔도 명백한 경쟁제한 행위만 없다면 사회의 부를 증진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용인해왔다”는 게 변호사 겸 컨설턴트인 우르스 루스텐버거 박사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EU 출범 등에 대응하려고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등 경쟁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업합병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대하다는 것.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별다른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권리는 외국인에게도 내국인과 차별없이 부여한다. 영주권자는 물론 임시 체류허가를 받은 외국인도 스위스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회사를 창업하거나 기업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 회사를 세울 때는 정부로부터 특별히 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고, 관련산업 조합에 가입하거나 상공회의소 등의 승인을 얻을 의무도 없다. 회사 지분의 일정 비율을 스위스인이 보유해야 한다는 따위의 규정도 없다.

스위스 정부는 과거부터 특정산업을 육성하거나 기업을 지원하는 등의 시장개입정책도 추구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두면 결국은 살 길을 찾게 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카메라산업과 자동차산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도 정부는 이들을 구하려고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기업들이 자발적인 혁신을 통해 살아 남았다. 그 결과 한 카메라 회사는 세계적인 거리측정 광학기기 전문업체로 거듭났고, 승용차산업이 자취를 감춘 대신 청소차, 스키장용 자동차 등을 만드는 특수차량업체가 활기를 띠고 있다.

스위스에는 식품, 서비스 관련산업, 정밀기계, 화학, 섬유 등 5개 ‘클러스터(Cluster)’가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우리말로는 ‘산업단지’쯤으로 번역되는 클러스터에선 대기업, 중소기업, 대학, 연구소가 상호보완 기능을 하며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바젤, 베른 지역을 중심으로 유전공학·나노테크놀로지·IT분야의 새로운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다.

이들 클러스터도 정부가 주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국내외 민간기업들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혁신하고 변모하고 협력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정부는 1997년 유전공학 연구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메드테크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키고 이를 통해 유전공학 R&D 분야의 과학자와 기업체를 연결, 산학협력체제를 가동했다. 1992년 이래 생명기술 중점 육성 프로그램(Swiss Priority Program Biotechnology)을 통해 제약, 식품, 생명공학 분야의 R&D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정부 지원이 불가피한 분야의 ‘준비된 기업’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세제와 금융 메리트 스위스는 선진국 중 조세 부담이 가장 적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스위스 기업의 법인세 및 자본소득세 납부비율은 선진국 중 가장 낮다. 자회사의 지분 매각 등에 따른 기업의 자본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기업의 의무적인 사회보장비 부담도 미국이나 유럽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낮으며, 특히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등 사회민주주의 성향 국가들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상무는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이중과세를 막기 위해 연방, 주, 지자체 모두 세금을 면제하며, 거주회사(居住會社, 본사는 특정 주에 있지만 생산·영업활동은 다른 지역에서 하는 회사)에게는 주와 지자체가 면세혜택을 주고, 신설기업에 대해서는 최장 10년 동안 법인세와 자본소득세를 면제하는 ‘조세면제기간(Tax holiday)’을 적용한다”며 “스위스는 이처럼 낮은 조세부담률을 해외로부터의 투자 유치를 위한 강력한 인센티브로 내걸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위스는 정치적 안정, 낮은 인플레이션(지난 10년간 평균 인플레이션율이 1% 이하), 통화가치의 안정, 고객정보의 철저한 비밀유지, 선진 자산운용기법 등에 힘입어 세계 각국의 자금이 몰려들면서 국제적인 금융시장으로 입지를 다졌다.

스위스 은행산업은 근로인구의 4%를 고용하고 있으며 국가 전체 부가가치의 10% 이상을 창출한다. 세계 10대 은행 중 2개(UBS, 크레디트 스위스)가 스위스 국적이며, 127개의 외국 은행을 포함해 총 375개의 은행이 스위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위스 금융시장은 은행, 보험, 투자은행 등의 업종 경계가 없는 유니버설 뱅킹 체제를 도입해 자금 운용의 효율성을 높여왔다.

스위스 은행들이 운용하는 자산은 2조달러에 이르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외국에서 들어온 돈이다. 전세계의 고액 예금자와 기관투자가들이 앞다퉈 돈을 맡겨와 스위스는 세계 자산운용시장에서 35%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스위스는 런던과 뉴욕, 프랑크푸르트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역외금융센터로 자리를 굳힌 지 오래다.

엄청난 자금이 몰려드는데다 저축률까지 높다보니 낮은 이자율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 스위스 금융시장의 평균 대출금리는 4.29%로 미국(9.23%)의 절반 수준이며, 같은 유럽의 스웨덴(5.82%) 네덜란드(4.79) 핀란드(4.71%) 등보다 낮아 경쟁력에서 앞선다.

버블 조짐이 나타났던 199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인위적인 금리정책 없이도 4%대 금리가 유지돼왔다. 이 때문에 스위스는 자본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은행은 장사가 잘돼 좋고, 기업은 싼 이자로 돈을 빌려 쓸 수 있으니 피차 실속을 챙기면서 조화롭게 스위스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2001-11-01 삼성경제정부, 경기침체 비상대책 세워야” [세계일보]

테러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31일 ‘문명충돌과 신국제질서’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 경제는 금융과 기업부실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같은 상황에서 대외여건 악화는 국내경제 침체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이를 감안해 정책의 우선 순위를 재조정,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특히 미국 테러사태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경제 우선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고 유럽과 중국이 상대적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대외정책 좌표와 방향을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대외관계에 탁월한 핀란드 스위스 등 강소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전통적인 대미 우호관계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 이슬람국가 등 다른 문명권과의 외교채널을 보강하고 민간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경우에도 앞으로 국가 리스크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해외사업을 조정해야 하며 전쟁-정정불안-테러 위험이 있는 지역에서는 사업철수 또는 축소를 단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강호원기자


2001-10-29 [기업 살려야 나라가 산다] 3: (13) ‘우등국네덜란드 [한국경제]

유럽의 ‘작은 거인’ 네덜란드. 노·사·정 합의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우등국가로 거듭난 대표적인 케이스다.

네덜란드 경제회생의 모델은 ‘폴더(Polder)’로 집약된다. 폴더란 바다를 간척해 만든 평지. 폴더모델의 중심엔 바세나(Wassenaar Agreement)협약이 자리잡고 있다. 노·사·정 대표가 82년 체결해 네덜란드 경제개혁의 시발점이 된 협약이다.

네덜란드는 70년대 초부터 80년대 초까지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었다. 70년 로테르담항, 72년 화학회사인 AKZO 등 대기업 노조의 잇단 대규모 파업은 네덜란드 경제를 치명적으로 멍들게 했다. 설비과잉으로 제조업체가 25개중 한개 꼴로 도산했으며 매월 1만명씩 실업자가 쏟아져 실업률이 12%까지 치솟았다.

81년부터 83년까지 4년간 일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만 30만명에 달했다. GDP성장률은 81년 마이너스 0.5%, 82년 마이너스 1.2%를 기록할 정도였다.

82년 출범한 루버스 내각은 급기야 과감한 경제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임금인상억제, 노동시간 단축, 임금보다는 고용중시’등에 대한 노·사·정 합의를 제시했다.

네덜란드 노·사·정은 그해 12월 헤이그 북쪽의 부촌인 바세나에서 ‘임금억제를 통한 고용창출’에 합의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노조측은 임금인상 억제, 임금 물가연동제 시행유보 등을 받아들였고 회사측은 노동시간 5% 단축, 노동기회 재분배로 고용창출(Job Sharing) 등을 수용했다. 당시 노조측 대표가 윔 콕 현 수상이다.

폴더모델 덕분에 네덜란드는 90년대 들어 경제성장, 고용창출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매년 3∼4%씩 경제가 성장했고 지난해 말 현재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인 3.5%로 낮아졌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증가됐고 신규고용 인센티브 부여 등 고용정책이 효과을 발휘했다.

경제회생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정부의 과감한 결단력및 정책 일관성과 함께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한 노사간의 신뢰가 네덜란드를 강소국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폴더모델은 지금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2001-10-18 문제는 속도 [주간조선]

요즘 우리 재계에서는 ‘강소국(强小國)’이란 다소 생소한 말이 회자(會炙)되고 있다.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이 처음 사용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쨌든 ‘작지만 강한 나라’라는 표현이 눈길을 당긴다.

한국 경제는 IMF쇼크를 전후하여 영ㆍ미식(英·美式) 시스템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도입하는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최고 국가들에서나 작동되는 국가운영 시스템이 과연 작고 약한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기능을 발휘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대안으로 ‘강소국’을 얘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스위스 등 강소국의 특징은 우선 국내시장이 협소하고 지하자원이 빈곤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여건이 너무 흡사하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흉내내다가 망해버리듯이 한국이 태생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무작정 강대국을 흉내낸다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은 더 이상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 어렵다.

강소국 하면 기동성(機動性)도 빼놓을 수 없다. 핀란드는 유목 민족의 후예답게, 스웨덴은 바이킹의 후예답게 누구보다 스피드를 강조했다.

이들 국가의 특징은 ‘큰 놈이 작은 놈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 빠른 놈이 느린 놈을 잡아먹는다’는 철학이었다. 기동력에 관한 한 한국은 희망있는 나라임이 여러 연구보고서에서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소국에 가보니 그곳에서는 정부가 기업에 ‘엉뚱한’ 규제를 하지 않았다. 핀란드 같은 나라는 아예 노키아란 대기업 하나가 국가경제 전체를 일류로 이끌고 있었다. ‘특혜’니 하는 불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가 전체가 먹고 사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세계적 스타 기업을 만드는 데 있음을 국민 전체가 동의했다.

스웨덴이나 스위스도 마찬가지. 강소국 관료들은 ‘누가누가 기업에 서비스를 잘해주나’라는 경쟁을 벌이는 듯했다. 외국 기자에게도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기업 서비스를 한다”는 점을 서너번 반복 설명했다.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는 ‘실리콘 밸리’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평가받은 IT단지. 이곳을 조성할 때 스웨덴의 대표적 기업인 에릭슨이 모든 플랜을 세우고 기업과 대학 유치를 했으며 그때 공무원들은 “말하라, 무엇을 도와야 하는가”라며 에릭슨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최근에 전직 고위 관료를 만났더니, 흔히 신문·방송이나 잡지에 ‘외국 공무원들의 기업 서비스 정신’ 기사나 프로그램이 나가면 우리 공무원들 사이에는 “일부러 우리나라 공무원들 흉보려고 기사를 과장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만일 공무원들이 계속 그런 자세를 견지한다면 해외출장을 백번 다녀와 기사를 써봐야 시간 낭비, 돈 낭비가 될 뿐이다.

(최홍섭 주간조선 기자)


2001-10-18 세계의 강소국 스웨덴 [주간조선]

전문화된 기술-속도전으로 세계시장 제패…

“자유경쟁이 경쟁력 강화” 관료주의 철저 배격

스톡홀름을 여러 차례 방문했거나 스웨덴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보면 웃을지 모르지만 스톡홀름에 첫발을 디딘 순간 ‘이렇게 잘사는 줄 몰랐다’고 느꼈다.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스톡홀름은 파리나 빈에 못지않게 예스러운 건물들을 잘 유지하고 있고 거리 곳곳이 화려하면서도 정갈했다.

하지만 현지 한국 주재원은 꿈 깨우는 말을 했다. “눈덮이고 해를 보기 힘든 겨울에 한번 와보세요. 분위기가 완전 달라집니다. 이런 기후 때문에 바이킹(Viking)이 되어 세계 정복에 나섰고 요즘은 대기업들이 바이킹이 되어 전세계에서 돈을 모아오고 있지요.”

올레 해드크비스트와 가니 레이치로가 지은 ‘바이킹 경영학(Viking’s seven lessons)’(도서출판 들녘)이란 책에 보면 스웨덴 기업들의 특징으로 ‘전문화된 기술로 무장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간다’ ‘관료주의(官僚主義)를 배제하고 속도를 중시하는 슬림화된 조직을 만든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 정신을 가진다’ 등이 소개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첨단기술을 지향하고, 민간기업이 경제를 주도하며, 겁없이 도전한다는 것이 스웨덴 경제의 전통이다.

실제로 스웨덴 경제는 이같은 원칙에 따라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GDP 대비 연구개발(R&D)비 투자비중이 3.9%로 세계에서 단연 1위다. 노벨상을 만든 ‘발명왕국’에 걸맞은 수준이다.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30분쯤 달리면 나오는 시스타(Kista) 사이언스 파크. 원래 정부의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됐던 이곳은 지금 ‘세계 무선(無線) 인터넷의 산실’이자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2위의 IT단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350여종 이상의 세계 정상급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GSM 무선통신 기술은 단연 세계 최고다. 단지 내에 700개 회사, 2만8000명의 종업원, 3300명의 학생이 거주한다.

단지 내부를 가로질러 걷다보니 건물 곳곳에서 연구의 불꽃이 튄다는 표현이 그리 과장이 아님을 느꼈다. 놀라운 것은 이 단지가 정부 주도가 아니라 개인기업인 에릭슨(Ericsson)이 초창기부터 발전과 성장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이 단지에서 근무하는 인력 중 1만2000여명이 이래저래 에릭슨과 관계되어 있다. 지금은 노키아, 컴팩, HP, 마이크로소프트, IBM, 인텔 등이 모두 입주해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지 않았다. 정부는 스웨덴왕립공과대학과 스톡홀름대학의 정보통신학과를 이곳으로 이전해주고 지난 88년에는 정보통신대학까지 설립했다.

비영리 재단인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의 페르 안데르스 헤드크비스트 소장은 “대학에서 수많은 우수 인력과 기술을 쏟아놓으면 그것을 기업경영에 곧바로 활용하는 산학협동(産學協同) 시스템이 아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판 바이킹들을 대거 쏟아내는 기지인 셈이다.

물론 최근 불어닥친 전세계적 IT경기 침체는 스웨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키아, 모토로라와 함께 세계 3대 휴대폰 업체인 에릭슨은 올 들어 휴대폰시장의 침체로 고민하고 있다.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52% 감소했고 52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스톡홀름에 있는 에릭슨 본사를 방문했다. 안내 직원은 “A 빌딩으로 가라”고 했다. 그쪽으로 갔더니 다시 “착오다. B 빌딩으로 가라”고 해서 옮겼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시 A 빌딩으로 돌아가라”고 말해 또다시 장소를 옮겼다. IT경기 침체의 직격탄(直擊彈)과 그로 인한 1만명 단위의 ‘감원(減員) 열풍 때문일까. 세계적 업체답지 않게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에릭슨의 마드 임프가드 마드센 이사는 “회사측은 휴대폰 생산을 아웃소싱하고 일본 소니와 신제품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등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라며 “우리가 세계 무대에서 IMT 2000, WAP, 블루투스 등의 무선 이동통신 기술표준을 주도하고 있으므로 연구개발 인력의 감원은 하지 않으면서 미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정부가 시장에 나서기보다 ‘자유경쟁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정책 기조를 갖고 있다. 스웨덴 산업ㆍ고용ㆍ통신부의 스웬 조그렌 국장은 “정부는 기업보다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른다”면서 “따라서 정부는 시장기능이 원활히 작동될 수 있도록 조력자(助力者)의 역할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장 돌아가는 상황 몰라”

스웨덴 최대 그룹인 왈렌버그(Wallenberg)가(家)는 1856년부터 5대째 대(代)물림을 하고 있지만 정부가 시비거는 일이 없다. 왈렌버그 소속 계열사들은 시가총액이 스톡홀름 주식시장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유럽과 스웨덴에서 시장점유율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에릭슨(통신), SEB(은행), ABB(중기계) 일렉트로룩스(가전), 스카니아(트럭) 사브(승용차) 등 쟁쟁하다.

눈길 끄는 대목은 정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이 회사의 친족경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 특히 경영권 방어를 위해 차등(差等)주식제도를 허용, 오너 일가가 소유한 주식에 일반주식보다 10배나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다. 스웨덴의 기업법 전문변호사인 마그누스 구스타손씨는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규제보다 측면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24/7(일주일 7일, 하루 24시간 행정서비스 제공)’라는 구호를 내걸고 원활한 기업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회사를 설립하는 데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으며 노동이나 세무 절차도 회사 설립과 동시에 끝내도록 해주고 있다.

스웨덴에선 80년대만 해도 본사를 다른 나라로 옮기려는 기업들의 이민이 줄을 이었다. 각종 규제와 높은 세율, 사회보장 부담 때문이었다. 실제로 세계적 에너지·엔지니어링 업체인 ABB, 굴지의 가구업체인 이케아(IKEA) 등이 이웃 나라로 본사를 옮겼다.

초우량 기업의 이탈에 충격을 받은 스웨덴 정부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91년 52%에 달하던 법인세율을 30% 이하로 대폭 낮추었다. 기업의 연구개발비에 대해서는 무제한 손비(損費)처리를 인정해 주었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규제도 모두 없앴다. 공정거래법도 명백한 경쟁 제한의 근거가 있는 경우로 적용을 제한했다.

스웨덴이 강국으로 떠오른 데는 정부가 국제 비즈니스 언어인 영어교육을 철저히 시킨 덕도 있다. 스웨덴은 전 국민의 98% 이상이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영어 발음이 너무 좋아 “영국인이세요”라고 되묻곤 했다. 유럽대륙에서는 가장 영어실력이 좋다고 한다. 스웨덴 출신 팝그룹 아바(ABBA)의 영어 발음이 그래서 자연스럽게 들렸던 모양이다.

스웨덴의 여행 가이드는 “정부의 적극적인 방침으로 대부분 방송이 영어로 진행되며 특히 TV 영화의 경우 일체 더빙을 하지 않고 자막으로 처리된다”고 말했다.

비록 지금은 여러가지로 어렵지만 스웨덴 기업들은 곧 다가올 경기 회복기를 겨냥하여 세계시장을 부지런히 누비고 있다. 그들에게 바이킹 경영학은 교과서로 통하고 있다.

◈고대윤 삼성전자 스웨덴법인장 “신기술ㆍ신제품에 대한 호기심 많아”

고대윤 법인장은 스웨덴과 핀란드 시장의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북구(北歐; Nordic)통.

–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구 강소국의 시장 특성은.

“이들은 대부분 장인 기질이 있어 스스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DIY(Do It Yourself)문화의 발상인 ‘이케아’가 스웨덴 회사다. 신기술이나 신제품에 대한 호기심도 많다. 기업 입장에선 이곳에 신제품을 먼저 내놓으면 정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북구(北歐)에서 성공한 제품은 어느 나라에 가도 성공할 수 있다.”

– 북구 강소국들 IT업계의 특징은.

“북구는 넓은 땅, 긴 겨울, 암반 지형, 수많은 호수 등으로 식량 등 부존자원이 없다. 인구도 적다. 생존 차원에서 외부와의 교신이 필요했고 유럽 내륙과 달리 양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피해도 거의 없어 산업 인프라도 튼튼하다. 올 초 발간된 세계적 IT 통계기관인 IDC의 ISI(정보화 사회지수)를 보면 스웨덴이 1위, 노르웨이가 2위, 핀란드가 3위를 각각 기록했다. 미국은 4위, 한국은 19위에 불과했다. 이곳 정부는 자기들은 기업보다 잘 모르니까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겠다는 자세다. 온갖 통신규제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없앴다.”

– 삼성전자는 스웨덴에서 어느 정도 활약하고 있는가.

“유럽에서 삼성의 GSM 애니콜 휴대폰은 상당한 고가 인기품이다. 새로 나온 애니콜 모델을 사려면 한달 이상 기다리기도 한다. 스웨덴의 경우 삼성 A300휴대폰은 소비자가가 대당 40만원으로 가장 비싸다. 이쪽에서는 흔치 않은 플립형, 폴더형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삼성의 TFT-LCD와 DVD는 판매 1위, 전자레인지는 2위, TV와 휴대폰은 3위를 달리고 있다.”

(스톡홀름=최홍섭 주간조선 기자)


2001-10-18 [IT초강국 북유럽을 가다] 세계적 불황을 극복하는 IT 강국들 [주간한국]

세계적 불황을 극복하는 IT 강국들 ‘선택과 집중’이 강소국을 만들었다

미ㆍ소련으로 양분됐던 동서 냉전시대의 관심은 ‘강력한 국가’와 ‘세력 패권의 확장’이었다. 막강한 군사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외교 역량이 가장 강조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세계화 시대에 돌입한 요즘 ‘규모의 국가’는 그 의미를 잃고 있다.

유일한 초강대국이자 세계 경찰국인 미국은 이제 무지막지한 테러의 주 타깃이 될 뿐이다. 이제 21세기의 이상적인 국가 형태는 단순히 강대국이 아니라 작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를 첫손 꼽는다. 세계화 시대에는 강한 군사력보다 견실한 경제력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같은 북유럽의 강소국들과 그곳의 세계 초일류 기업들의 정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IT 열풍이 훑고 지나간 뒤 몰아치는 세계적인 불황의 후폭풍을 헤쳐나가는 북유럽 선진국들의 지혜와 노하우를 살펴 본다.

과감한 투자로 위기를 기회로

‘It’s about communicationbetween people. The rest is technology.’(중요한 것은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나머지는 기술의 몫이다.)

스톡홀름에 위치한 세계적인 무선통신 및 네트워크 장비 제조업체 에릭슨의 본사 건물에 들어서면 금으로 도금된 이 표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바이킹의 후예들인 스웨덴 국민들에게 에릭슨은 자국 최대의 기업이라는 수준을 넘어 국민적 자부심의 하나이다. 125년의 오랜 전통을 가진 세계 3대 휴대폰업체로 스웨덴 총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에릭슨이 이 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한마디로 국민 기업이다.

불과 1년전 파이낸셜 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순위에서 43위에 오를 정도로 위세를 떨치던 에릭슨은 최근 세계적인 IT 불황 여파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IT 호황기였던 지난해 한 주당 20달러까지 폭등했던 자사 주식이 올해 들어서는 3.3달러로 무려 84%나 폭락했다. 올해 1/4분기 휴대폰 매출이 전년 대비 52%가 감소하면서 무려 57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세계 경기 흐름이 심상치 않자 에릭슨은 16만여명의 직원 중 1만3,000만명의 정규직원을 감원하고 컨설턴트 등 5,800여명의 일용직 사원의 계약을 해지하는 발빠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전세계 29개국에 퍼져 있던 지사도 8개로 흡수통합하는 ‘몸집 줄이기’에도 이미 착수했다.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올해에도 1만명 가량의 직원을 추가 감원하고 조직을 단순(simple)ㆍ집중화(focused)하는 전면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할 계획이다.

이처럼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세계선진 각국과 초일류 기업들이 필사적인 ‘생존 전략’에 돌입하고 있다. 1~2년전만 해도 폭발적인 IT 열풍에 들떠 장밋빛 청사진을 그렸던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이제는 뼈를 깎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등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특히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은 강대국(强大國)들과 달리 북유럽의 강소국(强小國)들은 우리와 국토, 자원, 교육 수준 등 경제ㆍ사회적 상황이 유사해 불황 극복의 벤치마킹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같이 작지만 강한 나라들은 작은 땅덩어리에 빈약한 부존 자원에도 불구하고 첨단 산업을 통한 해외 수출로 이를 극복해간다는 점에서 우리와 상황이 비슷하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이들보다 2~3년 늦게 IT 분야에 뛰어든 후발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점에서 이나라들의 선례는 큰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노키아는 핀란드의 절반 6만여개의 호수로 둘러싸인 핀란드는 1982년과 1990년초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소련 연방 해체로 인한 러시아 시장의 붕괴와 수출 가격 하락, 여기에 은행 부실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금융 위기 상황에 몰렸다.

1997년 IMF 외환위기에 처했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핀란드는 이런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바로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돼 ‘선택과 집중’의 묘미를 십분 발휘한 것이다.

핀란드 정부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자 경제 체질을 변화시킬 기회라고 판단, 과감한 산업 구조 개편 작업을 단행했다.

우선 농업, 식품, 펄프 같은 전통 산업을 잠시 제쳐 두고 노키아라는 경쟁력 있는 무선전화회사를 중심으로 첨단 정보통신산업과 중화학공업 분야를 집중 육성했다.

그 예상은 멋지게 적중했다. 정부와 핀란드 국민들의 전폭적인지지와 1990년대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IT 열기에 편승, 노키아는 세계 최고의 휴대폰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노키아는 핀란드의 절반’이라는 말이 있듯 핀란드 경제에서 거의 절대적인 위치를 군림하고 있다. 현재 핀란드 한해 GDP 성장율의 5%중 2%, 총수출의 24%가 노키아라는 한 개 회사의 몫이다.

여기에 핀란드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65%, 핀란드 비즈니스 부분 R&D의 45%, 총고용의 1.1%를 노키아가 담당하고 있다. 1998년 핀란드 전체의 산업생산증가율 5%중 노키아를 제외할 경우 오히려 1%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정도다.

노키아가 이렇게 급성장하는 데는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핀란드 정부는 1993년 국가산업전략(National Industrial Strategy)을 수립, 과학 단지를 조성하고 정부 R&D 예산 배정하는 등 정보통신 분야에 특화된 지원을 했다.

또 1994년 전문가위원회를 발족해 IT 관련 인적자원을 지원하는 등의 산업 인프라 구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기업은 미래에 대한 투자와 사업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정부는 뒤에서 기업에게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다.

핀란드 경제연구소의 페카 일래 투자부문 연구담당은 “IT붐이 일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에 ‘앞으로 정보통신이 비약적인 발전을 할 것’이라 확신하고 정부와 민간 기업이 합심해 다른 나라보다 2~3년 먼저 투자한 것이 결실을 거두었다”며 “한 기업에 너무 집중돼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노키아는 주식 분산이나 판매 네트워크가 세계화된 국제적 기업이지 핀란드만의 것은 아니다. 노키아는 앞선 기술력을 지니고 있어 또 한번 도래할 것으로 보이는 IT열풍에서 주도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등주식제도로 자국기업 경영권 보호

‘발트해의 맹주’ 스웨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북유럽에서 가장 ㅠ많은 인구와 시장 규모를 가진 스웨덴은 핀란드와 비슷한 시기에 금융 위기를 겪었다. 과도한 사회보장세 징수와 까다로운 직원 해고 절차 등으로 기업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기업이 속출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19세기 빈곤한 농업국가에서 일약 최고의 사회보장제도를 가진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스웨덴은 외국인으로부터 자국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차등주식제도를 실시했다. 차등주식제도란 창업자들에게는 의결권이 높은 주식을 인정하는 것으로 에릭슨의 경우 창업 관련 주주들은 일반 주식에 비해 한 주당 10배의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소유하고 있어 적은 주식소유 비율로도 회사 경영권을 행사한다.

그러면서도 연구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 첨단산업을 육성했다. 스웨덴은 현재 GDP 대비 R&D투자에서 3.9%로 핀란드(3.1%)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있다.

임금인상 억제, 노동시간 단축, 고용 촉진

발트 3국이지만 네덜란드의 경제위기는 스웨덴이나 핀란드와는 조금 달랐다. 네덜란드는 1, 2차 오일 쇼크 뒤인 1980년대초에 이어 1990년대초 국민들의 노동 기피로 인해 재정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면서 통제 불능의 상황을 맞았다.

당시 네덜란드는 매달 1만명의 실업자가 급증, 실업률이 12%에 달하기도 했다. 이런 네덜란드를 다시 살린 것은 ‘폴더 모델(Polder Model)’이라고 하는 경제 개혁이었다.

네덜란드는 노사정이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고용을 촉진하는 내용의 바세나 협약을 체결하고 공기업의 민영화, 소비성 정부지출 억제를 통한 재정 건실화, 대형 인프라와 기술ㆍ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 사회보장 축소, 시장경제원리 도입 등의 정책을 실시해 유럽의 모범생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네덜란드는 실업률 3.5%(2000년말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정밀기계, 금융서비스에 역량 집중

북유럽은 아니지만 유일한 EU 가입국이 아닌 스위스도 시계, 전기, 정밀금속, 금융서비스 같은 특화된 산업에 역량을 집중해 경제 위기를 넘겼다.

스위스는 전국토의 80%가 산악지대로 우리와 유사하다. 하지만 이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꾸준한 연구 개발과 개방된 금융 시스템으로 통해 유럽 최고 부유한 국가가 됐다. 스위스는 인구 비례로 특허 취득 건수와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이곳에서 30년을 살았다는 김종학씨는 “2년전 한국의 중견 건설업자가 스위스에 와서 세계 최고의 터널 관측 로 봇 제작사를 가자고 해서 함께 갔더니 뜻밖에 취리히 외곽의 3층 규모의 작은 회사여서놀랐다”며 “이런 작은 중소기업에서도 세계 최고의 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스위스를 선진국으로 이끄는 저력”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윤순봉 경영전략실장은 “북유럽 국가들이 적은 인구, 빈약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사회보장을 갖춘 선진 부국으로 성장한 데는 경제 불황기를 기회 삼아 오히려 미래에 가능성 높은 산업에 대해 아낌 없는 투자를 한 결실”이라며 “국내에서는 기업의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가 많지만 이 나라들은 정부가 교육과 기업환경 조성 등 막후에서 인프라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세계 초일류기업을 탄생시켰다”고 진단했다.

국가 경제 정책이나 기업 활동의 성패는 ‘통제와 규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미래에 대한 비전,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실질적인 투자와 역량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2001-10-18 IT초강국 북유럽을 가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클러스터’ [주간한국]

산·학·연 협동연구개발의 메카인 첨단과학단지

세계적 권위를 인정 받는 국제경영대학원인IMD가 최근 발표한 2001년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다소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일본 같은 강대국들이 10위권밖으로 밀려 있는 반면 핀란드(3위) 룩셈브루크(4위) 네덜란드(5위) 스웨덴(8위) 스위스(10위) 등 작은 국가들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 경쟁력이란 ‘국가가 자국 내 기업에게 국제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느냐’, 다시 말해 한 국가가 인력 확보, 자금 조달, 조세, 물류, 노사관계 등 기업 활동을 해나가는 데 얼마나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느냐를 총괄적으로 판단한 기준이다.

그래서 이 순위는 다국적기업들이 지사 설치나 자본 투자를 결정하는데 평가 기준으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그 국가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여 주는 척도라 할 수 있다.

정부·기업의 연구프로젝트 공동 수행 북유럽 국가들이 이처럼 높은 국가경쟁력을 인정받는 데는 클러스터(Cluster)라는 새로운 산업 정책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클러스터란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밀집해 형성된 대규모 타운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업, 그리고 산학 협동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도록 조성된 21세기형 첨단 과학 단지를 말한다.

이 곳에서 정부나 기업의 프로젝트를 기업과 연구소, 그리고 대학이 함께 공동 수행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연구 개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대표적인 클러스터는 세계 IT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들 수 있다.

북유럽 강소국들이 IT 선도국으로 부상한 데는 정부와 기업이 이런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한 효율적인 산업 정책을 펼친데 기인한다.

핀란드의 경우 1993년 국가산업전략의 하나로 행정구역별로 1개씩 공과대학을 설립하고 이 학교를 중심으로 과학 도시(Technopolice)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현재 헬싱키(에스푸시), 울루 지역, 템페레등 총 19개의 사이언스 파크가 이뤄져 있다.

또한 핀란드는 이와 함께 정보통신, 금속, 에너지, 화학, 건설 등 8개 산업별 클러스터를 선정,이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꾸준히 실행해 왔다.

울루 사이언스파크는 핀란드의 상징인 노키아의 R&D 센터로 유명하며, 헬싱키 공대가 있는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는 북유럽 최대의 민간 벤처 인큐베이터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정보통신 클러스터를 미래 성장엔진으로 지정, 총 R&D 예산의 51%를 이 부분에 집중 투자한다.

스웨덴에는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2위이자 유럽 최대의 첨단기술 클러스터라고 할 수 있는 시스타(Kista) 사이언스파크가 있다.

이곳에는 현재 스웨덴 왕립공과대학(KTH)과 스톡홀름대학의 정보통신 학과, 그리고 정보통신대학(IT University) 등 명문대학과 노키아, IBM, 컴팩, HP, ICL, 마이크로소프트, 선마이크로시스템 등 세계 초일류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이곳은 현재 학생 3,300명, 기업과 연구소 직원 2만8,000명이 거주하고 있는 스웨덴의 성장 엔진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정부의 군사 훈련장이었으나 에릭슨이 이곳에 연구소를 차리면서 각국의 정보통신 업체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 지금은 유럽 IT의 메카가 돼버렸다.

시스타의 페르 앤드스 헤드크비스트 학장은 “정부는 대학을 유치하고 기반 인프라를 조성하고, 선도 기업은 연구소를 개설해 기업 활동과 연구하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면서 세계 초일류 기업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며 “스웨덴이 오늘날 IT 선진국이 된 데는 시스타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2001-10-15 [기업 살려야 나라가 산다] 2. 규제 공화국: (5) 대기업이… [한국경제]

[대기업이 ‘죄악’ 인가]

SK그룹은 중장기 발전전략의 하나로 4~5년 전부터 추진해온 신용카드 진출 계획을 보류했다. 당초 올해쯤 SK(주)와 SK텔레콤을 통해 2천억~2천5백억원을 투자, 기존 신용카드 회사를 인수하거나 신규로 카드회사를 설립할 예정이었으나 출자총액 제한이라는 규제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현대자동차는 외국 지분이 50%를 넘어 경영권 안정을 위해서는 대주주(현대모비스) 지분의 확대가 필수적이나 역시 출자총액 제한에 묶여 애를 태우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등 11개 그룹 39개 계열사가 공정거래법상의 출자총액 제한으로 인해 70여개 사업에 대해 신규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투자를 계획했다가 추진하지 못한 투자 계획분만 5조원에 달한다. 출자 제한에 묶일게 뻔해 아예 계획조차 세우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10조원에 이른다고 전경련은 추정했다.

현 정부는 지난 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경영투명성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 재무구조 건실화 등을 위해 대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했다. 출자총액 제한, 대규모 내부거래에 대한 이사회의결 의무화, 부채비율 2백% 이내로 억제,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중에는 시장 기능이 작동하게 하기 위한 것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문제는 투자나 자금 조달과 같이 기업 경영에 직접 개입하거나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등과 같이 국제 기준을 넘어 기업의욕 자체를 꺾는 규제가 그에 못지않게 많다는 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국내 총 투자액의 약 25%를 차지하는 30대 기업집단의 설비 투자가 10% 축소되면 경제성장률은 약 1.5%포인트 정도 둔화된다. 대기업이 투자에 제한을 받고 있으니 경제가 활력을 회복할리 만무다.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등의 미래사업 육성을 외친다.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이들 신(新)산업이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 없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관변 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강봉균 원장까지도 “기업의 규모가 크다고 문제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며 투자활성화 등을 위해 출자총액제한은 푸는게 옳다고 말할 정도다.

유럽의 강소국(强小國) 네덜란드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10대 기업 매출비중은 무려 1백78%(해외법인 매출포함)에 이른다. 한국(46%)의 약 4배다.

스위스(1백42%) 핀란드(70%) 스웨덴(65%) 등도 한국보다 대기업 비중이 훨씬 높다. 우리식 잣대로 보면 경제력 집중이 아주 심각해 대기업이 온갖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나 이들 나라 정부나 국민들은 그다지 문제삼지 않는다.

자원이 부족하고 내수시장이 협소한 나라일수록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대기업을 육성해야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여기서도 명확해진다. 전성철 세종대 부총장은 더 나아가 “기업은 끊임없는 투자를 통해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며 “문어발식 신규 투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분산 투자함으로써 불경기에 살아남을 수 있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

그는 세계 최고기업인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이 1980년대 들어 10년동안 3백83개의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고 2백32개 기업을 매각한 것을 예로 들었다. 같은 기간 GE의 매출액은 2백70억달러에서 1천3백억달러로 급증하고 시가총액은 1백50억달러에서 5천억달러로 늘어났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자본·상품시장이 모두 개방돼 대기업에 대한 규제(경제력 집중 억제)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담보하는게 아니라 외국 기업에 우리 시장을 내주는 결과만 초래하기 십상이다.

중소기업 고유 업종처럼 돼 있던 자동차부품 1회용면도기 연필시장 등이 외국 기업의 수중으로 넘어간 것이 이를 잘 입증해 준다.

대기업은 글로벌 경제전쟁의 주력군이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가뜩이나 심각한 반대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와 결국 스스로의 전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김홍열 기자


2001-10-04 북유럽 선진 [뉴스메이커]

과감한 다이어트, 발 빠른 변신의 성공

-스위스·핀란드·스웨덴 등 북유럽 강소국의 선진 하이테크 현장을 가다-

우리 경제가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한국 경제를 견인할 성장 엔진은 점차 식어가고 있다. 이럴 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은 경기 부양과 같은 ‘반짝 대책’보다는 모두 나서 우리 경제의 기본 골격을 다듬고 다시 짜는 지혜를 모을 때라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처럼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하면서도 잘사는 나라들은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특히 북구 유럽에 있는 작은 나라들은 국토가 좁고 자원이 빈약함에도 1인당 GDP가 2만달러를 넘어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문화와 주변 여건이 달라 그들의 성장 모델을 우리가 그대로 차용하기는 어렵지만 부자가 되는 비결만큼은 벤치마킹해볼 만하다. 이에 따라 〈뉴스메이커〉는 스위스·핀란드·스웨덴 등 북구 유럽 강소국(强小國)의 활기찬 경제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 [스위스] 하이디에서 하이테크의 왕국으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요들송, 시계, 세계 독재자들의 비자금이 숨겨진 은행…. 스위스를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다.

스위스는 어디를 가도 목가적인 분위기가 짙게 풍긴다. 거대한 빌딩 옆에 초지가 있고 거기에 배부른 양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아담하고 작게만 보이는 농촌의 작은 공장은 쉼없이 돌아가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정밀 기계부품은 세계를 휩쓴다. 자연과 산업,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절묘한 조화를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한 나라가 스위스다.

스위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4천달러에 이르는 부국이다. 면적은 경상남·북도를 합한 규모에 불과하지만 노바티스, 로슈, 네슬레 등 세계 500대에 드는 기업이 11개나 된다. 자원이 없고 농지가 적은 까닭에 일찍이 금융산업이 발달해 전체 GDP의 10% 이상을 차지한 다.

스위스가 강국이 된 것은 역시 기계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부가가치의 정밀기계, 금속 가공기계, 인쇄기기, 의료기기 등은 ‘메이드 인 스위스’를 최고로 쳐준다. 그렇다고 이들 제품을 거대 기업들이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오로지 한 분야에 매달려 세계 시장을 휘어잡았다. 이로 인해 인구 비례로 따져 노벨상 수상자 배출과 세계 특허 소유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스위스 경제기획원(SECO)의 데이빗 시즈 원장은 “스위스 정부나 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최고의 제품만 만들려고 노력한다”며 “스위스가 3.5%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기업들이 창의성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잘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 경제에 대해 “스위스는 어떤 나라보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로 한국도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며 “기업들은 수익성이 없는 사업은 애초 시작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기관의 아이랜카 크로네 수출기획 담당자는 “스위스는 선진국 중에서 조세 부담이 가장 적은 나라로 이는 해외 자본 유치에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며 “기업에 대해서는 자본 소득에 대해 국세를 물리지 않는 등 기업 친화적인 세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 올림픽조직위원회로 유명한 로잔에 있는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는 스위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이다. 이곳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지수는 세계가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IMD가 발표한 올해 국가경쟁력 지수에서는 핀란드(3위), 룩셈부르크(4위), 스웨덴(8위), 스위스(10위) 등 강소국들의 순위가 높다. 이와 관련해 IMD 피터 로랜지 학장은 “이들 국가는 기업의 생태계가 잘 형성돼 있고 정부의 효율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며 “한국은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주력 산업 육성이 필요하며 소비자 구매력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핀란드] 노키아 신화는 계속된다

백야(白夜)의 나라 핀란드. 중세와 러시아풍의 건물들로 채워진 수도 헬싱키는 오랜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겨울의 문턱에서 자꾸 줄어드는 햇빛 때문인지 음울하게 젖어들고 있다. 그러나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핀란드인들은 조용한 가운데 기적을 일궈내고 있다.

핀란드는 1991년 한때 경제성장률이 10% 이상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다. 소련 붕괴 후 수출에 큰 타격을 입고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동반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위기 극복을 위한 성장 엔진을 정보화 사회 전략에서 찾음으로써 94년 이후 연평균 성장율이 4%대로 올라섰다.

핀란드 통상산업부는 1993년 ‘국가산업전략’을 수립해 정보통신· 금속·에너지·화학 등 8개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특히 정보통신 분야에 매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51%를 쏟아부었다. 또 민·관·정간에 밀접한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해 산학 협동체제를 공고히 했다.

핀란드 경제연구원(ETLA) 패카이라 안티라 투자 담당자는 “핀란드 산업은 기업-학교-연구소가 상호 유기체로 연결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다”며 “이 같은 협조 관계 속에서 섬유나 펄프에 의존하던 산업구조가 1990년을 기점으로 정보통신으로 전환됐다”고 설명 했다.

핀란드 경제를 말할 때 노키아를 빼놓을 수 없다. 노키아는 핀란드 최대 기업으로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다. 노키아가 핀란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전체 GDP의 3.3%, 수출의 24%를 노키아가 담당한다. 이 회사는 펄프 및 제지 사업을 주 업종으로 1865년에 설립했으나 92년 현 회장인 올릴라가 취임한 후 과감한 구조조정과 함께 통신 사업에 역량을 집중, 지금은 세계 500대 기업 중 12위에 올라 있다. 이 회사 지분의 90%를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지만 핀란드인은 자국 회사라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카롤리나 네무스비타 홍보담당자는 “노키아의 성공 신화는 세계 기업사에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노키아는 휴대전화뿐 아니라 새로운 통신 사업에서도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핀란드 내에서조차 노키아에 대한 의존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키아가 잘못될 경우 핀란드 경제 전체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IT 산업의 침체로 단말기 제조업체인 노키아가 경영상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ETLA 관계자는 “지식 산업에서는 회사가 없어질지라도 경험과 지식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점에서 핀란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 [스웨덴] 모든길은 정보통신으로 통한다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 북부에 위치한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Kista science park). 1970년대 초까지 정부의 군사훈련장으로 쓰이던 이곳이 지금은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첨단산업 기술 단지가 됐다. 이곳은 에릭슨의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80년대부터 IBM 등 세계적인 기업이 입주하기 시작해 지금은 650여 개 기업이 들어서 있다.

스웨덴 정부는 산학 협동을 촉진하기 위해 스웨덴 왕립공과대학과 스톡홀름 대학의 정보통신학과를 이곳으로 이전하고 1988년에는 정보통신 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왕립대학에서는 지난해에만 IT 전문 인력이 3,500명 배출됐으며 2005년에는 7,000명이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 인력이 양산되면서 스웨덴은 세계 제일의 정보통신 왕국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사이언스 파크는 스톡홀름시와 대학이 이끌어간다. 이에 따라 스톡홀름시와 사이언스 파크의 원할한 교류를 위해 조만간 모노레일을 깔 예정이다. 또 전문 인력을 조기에 양성하기 위해 IT 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사이언스 파크에는 세계 어떤 기업이라도 임대료만 내면 자유롭게 입주할 수 있다. 임대료는 평당 우리 돈으로 5만원 정도로 매우 싼 편이다. 비영리 재단으로 사이언스 파크를 운영하는 회사인 일렉트럼의 앤더슨 헤드키비스트 사장은 “우리는 입주하는 회사가 편안하게 연구·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며 “여기에 입주하면 연구원들이 많아 상호 경쟁을 유발하고 인력 충원도 쉬워 세계 여러 기업이 입주 문의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스톡홀름시에 있는 에릭슨은 스웨덴의 자존심이다. 본사 1층에 마련된 홍보관에는 미래의 정보통신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장비가 전시돼 있다. 지능형 냉장고, 네트워크를 이용한 미래의 가정, 인터넷 시계 등…. 자신들이 미래의 정보통신 시장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 회사는 노키아, 모토로라와 함께 세계 3대 휴대전화 업체 중 하나며 통신교환장비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휴대전화 시장의 침체로 고전 중이다. 에릭슨은 현재 광대역과 이동통신을 접속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이 회사 홍보담당자는 “에릭슨은 올해 1~2월에만 1만4백 명을 해고했으며 올해 안에 추가로 1만 명을 더 퇴직시킬 방침”이라며 “지금은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과거에 늘 그래왔듯이 에릭슨은 앞으로도 첨단장비를 가장 먼저 개발해 시장을 선점해나갈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취리히·헬싱키·스톡홀름/윤길주 기자 >


2001-10-04 정부 최소화기업들이 나라 이끈다 [주간조선]

정부 최소화…철저한 개방경제로 기업규제 완전철폐

‘하이디의 나라(Heidi-Land)에서 하이테크의 나라(High-Tech Land)로 바뀌었습니다.’

스위스를 소개하는 스위스 경제당국의 브로슈어에는 이런 구절이 큼직하게 적혀 있다. 아름다운 알프스와 요들송으로 알려진 동화(童話)적 이미지의 스위스는 고급 첨단기술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작지만 강한 나라’로 변신했다.

스위스는 땅의 크기가 남한의 3분의 1로 경상남북도만 하며, 26개의 주(州; Canton)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이다. 켈트족(族)과 게르만족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4개 국어(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마니시어)가 사용된다. 700여만명의 국민들 중 외국인 비중이 20%를 넘는다. 융프라우나 마테호른을 비롯한 알프스의 관광지대는 보기에는 좋지만 쓸 만한 광물자원이나 농업자원이라곤 거의 나지 않는다.

이렇게 열악한 여건을 딛고서 스위스 경제는 언제나 세계 최고 수준에 꼽힌다. 작년에도 스위스 경제는 3.5%의 실질성장률을 기록, 10년만에 최대 호황을 구가했다. 물론 올해는 미국 경기 침체 여파로 성장률이 1.6% 정도에 그칠 전망이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성적이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도 3만3470달러로 한국의 3.5배나 된다. 국민들의 구매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고품질, 고가 제품을 선호한다. ‘스위스에서 팔리면 다른 유럽국가에서는 자동적으로 잘 팔린다’는 것이 무역업계의 정설이 되고 있다.

20세기 이전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 속했던 스위스가 강소국(强小國)으로 변신한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청교도(淸敎徒)정신에 입각한 성실 근면한 국민성, 민족과 언어와 지역이 서로 다른 데도 이를 분열의 핑계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건전한 경제 발전 경쟁을 벌이도록 만든 정치 지도력 등이 모두 작용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보면 철저한 개방경제 기치 아래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전히 없애다시피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기업들을 국가의 간판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성공의 요인이었다.

스위스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들을 위해 만든 자료에는 반드시 ‘협조적이고 유능한 정부(helpful and competent authorities)’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의미를 물으니 “열심히 뛰는 기업들이 가는 길을 관료들이 쓸데없이 가로 막는(발목을 잡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 한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스위스는 일찍이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이라는 정치적 특징과 철저한 고객비밀보장(1934년부터 ‘눔머른 콘도’라는 비밀계좌제도를 시행)을 활용하여 전 세계에서 거액의 예금을 유치하고 있다. 최근 검은 돈에 대한 범죄 수사와 2차대전 당시 유태인 계좌문제 등으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을 받고 있으나 끄덕하지 않는다.

KOTRA 취리히무역관 은지환 과장은 “국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규제도 없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테러사태로 전 세계 돈이 다시 스위스를 향해 몰려들면서 ‘스위스프랑’ 주가는 더욱 올라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상무는 “스위스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민간주도형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농업 부문은 특별 보호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 개입을 극도로 기피해 왔다”고 말했다.

스위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시장을 존중하는 작은 정부’에 있다. 스위스는 아예 강한 정부가 불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연방정부 아래 상당한 자치권을 지닌 주(州)와 하부 지자체(地自體)가 있다. 연방각의는 연방의회에서 선출된 7명의 각료로 구성되고 이들이 돌아가면서 1년씩 대통령직을 맡는다.

스위스는 최근 경제 관할 부처를 ‘스위스 연방경제부(SECO)’로 통일시켰다. 조직 내에는 다시 7개 세부 부서가 있지만 한국의 재정경제부나 공정거래위원회처럼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경제 기구는 없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아서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을 ‘▲대내적으로 연방 차원의 산업·경제정책을 수립하고 각 주의 균형적 경제 발전을 조정·지원하며 ▲대외적으로는 상품·서비스 교역 및 해외투자를 관할하고 대외경쟁력 향상과 국가간 경제 협력에 주력하면 된다’고 정하고 이를 엄격히 지키고 있다.

스위스대사관 관계자는 “좁은 국토, 빈약한 자원, 열강에 둘러싸인 지정학(地政學)적 위치와 같은 불리함을 특유의 제도로 극복했다”면서 “정부는 안정적인 거시(巨視)경제 여건과 연구개발투자의 지원에 주력하고 기업활동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간섭이나 규제가 없다 보니 핵심 대기업들이 국가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10대 기업의 매출액(3426억달러)이 스위스 GDP 규모(241억달러)를 넘는다. 10대 기업의 시가총액이 증시(證市)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紙)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한국은 4개뿐이었지만 스위스는 노바티스(Novartis·11위), 로슈(Roche·48위), 네슬레(Nestle·50위), ABB(172위) 등 11개나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스위스에만 연연하지 않는 초국적(超國籍) 기업들이고, ‘고용’ 측면에서 국민경제 기여도가 낮지만 국민들의 사랑은 대단하다.

네슬레의 경우 본사가 스위스에 있지만 총매출액의 2%만을 스위스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11명의 톱 매니저 중 스위스 사람은 3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민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스위스는 세계 10대 은행 중 2개(UBS, 크레디 스위스)나 보유한 금융 강국이다. 농지가 적고 자원이 적어 일찍부터 금융·보험업이 발전했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기업들의 발목을 잡거나 통제하는 곳이 아니다. 4%대의 낮은 금리와 신속한 자금 공급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버블 징조가 나타났던 9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는 인위적인 정부정책없이도 4%대의 대출금리가 유지됐다.

예금은행과 투자은행간의 업종 경계가 사라져 겸업(兼業) 규제가 없다. 자회사 형태로 보험업에도 참가할 수 있다. 금융 환경이 자유로워 127개 외국은행을 포함, 모두 375개의 은행이 스위스에서 활동 중이다. 돈이 많이 몰리다 보니 이를 활용할 기회도 많아진다.

스위스의 제조업은 철저하고 꼼꼼한 국민성을 바탕으로 ‘고부가 틈새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요체다. 종교개혁가 캘빈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시계산업의 경우 연간 약 1억개를 만들며 그중 95%를 수출한다. 현재 세계시장의 13%, 아시아시장에서는 40%를 차지한다.

작년에는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다.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저가품보다는 금, 강철, 텅스텐, 티타늄 등의 소재를 사용한 고가품 위주로 수출이 이뤄진다.

노동인구의 10%가 종사하고 있는 화학산업도 세계적 강자다. 바다가 없으면서도 선박용 터빈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정밀기계, 금속가공기계, 사진재료, 의료기기 등도 모두 세계 톱클래스다. 의료기기산업은 500여개 기업, 3만여명이 종사한다. 이들은 주로 수도 베른을 비롯하여 바젤과 제네바 지역에 밀집하여 대학·연구소·병원 등과 산학(産學)협동체제를 구축했다.

스위스 경제는 글로벌 대기업 이외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즐비하기에 가능했다. 스위스의 어느 여행 가이드는 “한국의 대기업이 꼭 필요한 첨단 부품을 구하러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스위스 업체를 찾아 왔다가 자그마한 2층 주택이 그 회사의 전부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세계적 경쟁력 갖춘 중소기업들 즐비

규제가 없다 보니 스위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식품·서비스 관련 산업, 정밀기계·화학·섬유 산업 등 5개 산업 클러스터(Megacluster; 일종의 산업단지 개념)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레 형성했다.

최근엔 바젤이나 베른 지역을 중심으로 유전공학·나노테크놀로지·IT 분야에서 새로운 클러스터가 형성 중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적극적으로 부지를 마련해주고 조직을 형성해준다. 가령 유전공학(遺傳工學) 연구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메드테크 이니셔티브’라는 조직을 출범시켜 R&D(연구개발) 분야의 산학 협력체제를 만들어준다. 스위스 연방경제부의 이레나 크로네 부장은 “정부의 최우선 정책목표는 ‘가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며 특히 인근 강대국인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더 유리한 기업환경 조성에 주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컨벤션산업 유치 등으로 기업들에 ‘먹을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스위스는 UN 회원국이 아니지만 상당수의 국제기구 본부를 유치했다. UN유럽본부(제네바), ILO(제네바), 국제결제은행(바젤), IOC(로잔), UNCTAD(제네바) 등이 대표적이며 다보스 포럼은 이제 세계최고 경제 토론회로 발전하고 있다.

최고의 금융 서비스와 함께 낮은 세금으로도 기업하기 좋은 경영 인프라를 구축했다. 로슈 그룹이나 스와치(Swatch) 등 상당수 스위스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지주(持株)회사에 대해서는 연방·주·지자체 모두 과세(課稅)를 면제하는 등 선진국 중에서 기업의 조세 부담 수준이 가장 낮다. 신설 기업에 대해서는 최장(最長) 10년 동안 법인세 및 자본소득세를 면제하는 조세 면제기간(Tax holiday)을 적용하고 있다.

경제의 소유 및 집중도가 높지만 한국의 공정거래법이나 증권거래법처럼 그것만을 이유로 적용되는 차별화된 기업규제는 없다. 105년 역사의 로슈그룹은 현재도 창업가 후손들이 자본의 10%에 해당하는 주식으로 전체 의결권의 50%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나 국민이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는다. 스위스는 가족 소유 기업과 지주회사를 통한 그룹 경영방식이 발달되어 있다.

적은 인구, 빈약한 자원에서 독점(獨占)이나 카르텔 자체가 명백하게 경쟁을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국부(國富)를 증진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이 스위스 사회다. ‘제약 부문의 가격 담합 행위’ 정도가 정부가 직접 규제를 가하는 수준이다.

기업간 합병 보고의무 등 기업 결합 관련 규제가 도입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기업간 합병을 규제한 사례는 아직 단 한건도 없다. 오히려 주력인 의료, 화학, 엔지니어링, 서비스 부문에서 대형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 전략을 지원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규제 대신 보호를 해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농업을 제외하고는 산업 보호도 금기시한다. 스위스기계전기공업협회 루카스 지그리스트 박사는 “스위스에서 카메라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에도 이를 살려 보려는 정부의 노력은 없었다”면서 “기업 스스로 살길을 찾았다”고 말했다.

첨단 분야의 외국인 투자와 다국적기업 본사를 유치하는 것도 주요 정책 목표. 다만 무조건 파격적인 투자 인센티브를 직접 제공하는 것보다 유리한 투자환경을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가령 기업 인프라, 안정된 통화정책, 낮은 세금정책, 지적재산권 보호, 행정 절차 간소화, 정치 안정, 노사 안정 등에 초점을 맞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토지매입 허가제를 지난 97년 10월부터 폐지, 생산·영업·서비스 업무용도로 구입하는 토지는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임금과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데도 많은 기업들이 몰려드는 것은 바로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 간섭 등 간접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외세의 위협 속에 타협과 양보의 전통을 지켜온 덕분에 노사 분규는 거의 없다. 다민족(多民族) 다언어(多言語) 사회인데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와 협상이 몸에 배어 있다.

스위스에서 ‘노조가 극단적인 파업을 했다거나 사용주가 공장을 폐쇄했다’는 신문기사는 거의 볼 수 없다. 노사 분규로 인한 노동 손실일수가 연간 1000명당 0.38일로 한국(29.16)과는 비교할 수 없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41.7시간으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높다.

삼성경제연구소 윤 상무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고 부존자원은 거의 없는 스위스가 세계 최강의 경제를 유지하는 데는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쉬즈 스위스 연방경제부 장관 “기업에 간섭도 특혜도 없다”

지난 9월 17일 스위스 수도 베른에 있는 연방경제부에서 데이비드 쉬즈 장관을 만났다.

– 스위스가 세계적인 첨단기술 국가로 변신하게 된 비결은 무엇인가.

“스위스가 예전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류(類)의 동화와 알프스로 대표되는 관광국으로만 인식됐으나 지금은 다르다. 산은 많지만 나오는 게 없다. 쓸 만한 광물조차 없다. 우리는 낙담하지 않고 머리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기업활동을 장려했다. 시계, 전기, 방직기계에서부터 은행, 서비스, 보험에 이르기까지 ‘메이드 인 스위스(made in switzerland)’는 유명해졌다.

우리는 값싼 것은 하지 않는다. 최고의 품질에 가장 비싼 제품과 기술만 만든다. 볼펜에 들어가는 작은 심을 보라. 10개 중 9개는 스위스 제품이다. 시계는 물론이고 우주비행사들의 부착물 중에서 스위스 제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인구 비례로 따져서 연구개발 인력이 가장 많고 특허도 가장 많다. 물론 노벨상 수상자도 최다이다. 최근에는 나노(Nano) 산업 같은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낮은 일은 다른 나라들로 보내야 한다.”

– 그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자유방임으로 기업을 풀어놓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인가.

“스위스는 자유로운 경제를 지향한다. 기업에 간섭하지도 않고, 특정 회사에 특혜를 주는 일도 없다. 기업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만들어준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들을 뒤에서 받쳐주고 기업들이 경영을 힘들지 않게 하도록 인프라를 잘 구축해주는 일이다. 지난 50년간 큰 정치적 변화가 없을 정도로 정치체제가 안정되었다. 기업활동에 방해를 주는 스트라이크 같은 것은 스위스에 없다. 우리는 매우 작은 나라지만 투자하기에 좋은 나라다.”

– 스위스는 연방국가이고 주별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런 것이 기업활동에 영향이 있지 않은가.

“지방자치단체별로 투표가 많다. 심한 경우 1년에 30회 투표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의회와 행정부가 모든 것을 독점하지 않고 국민들이 참여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여러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 잘 어울린다. 자치정부들이 서로 기업 지원을 위한 경쟁을 벌인다.”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

경영현장의 생생한 정보, 교육현장에 이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본부가 있는 스위스 서남쪽 로잔. 제네바에서 차를 타고 40분을 달리면 나온다. 예술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레만호(湖)를 앞에 두고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 국제경영개발원)(http://www.imd.ch)가 자리잡고 있다.

레만호는 프랑스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어 로잔은 프랑스어 영향이 강한 곳이다. IMD는 전 세계 각국에 경쟁력 랭킹을 매겨 매년 국제사회를 긴장시키는 곳. 하지만 명성에 비해 건물들이 간소하고 허름했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전문대학보다 시설이 나아보이지 않았다.

IMD는 국가경쟁력비교연구 이외에 MBA(경영학석사)를 양성하는 비즈니스 스쿨을 두고 있다.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선정한 MBA스쿨 랭킹으로는 전 세계 7위, 유럽 1위를 기록했다. 학교측은 20개의 개방형 최고경영자 과정을 개설, 연간 70여개국 5000여명의 경영자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정 기업과 계약을 하고 주문형 교육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스위스에 있으면서도 세계화된 연구 및 교육을 위해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교수진 및 연구진은 55명에 이르는데 교수진은 단순히 강의뿐 아니라 연구는 물론 각종 컨설팅업무까지 함께 해준다. 경영현장의 살아 숨쉬는 정보를 직접 교육현장으로 이전하고 있는 것이다. 공개적인 철학이 ‘Real world, real learning’이다.

IMD에는 최근 한국인 연구원이 한 명 합류했다. 미국 코넬대에서 학위를 받은 조희재(趙稀栽) 박사. 그녀는 “IMD는 어느 연구기관보다 개방적이고 기업 방면에서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국제적 성가를 높이는 곳”이라고 말했다. IMD가 매기는 국가경쟁력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얼마나 그 나라에서 기업하기 좋은가를 가리키는 등수로 보면 된다.

이화여대 수학과 졸업 후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IMD의 MBA과정에 입학한 김효영씨는 오는 12월 학위 취득을 목표로 지금 정신이 없다. 김씨는 “토론과 발표로 매우 꽉 짜인(intensive) 프로그램이 인상적이고 도움이 많이 된다”면서 “졸업 후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IMD를 이끌어나가는 피터 로렌지(Peter Lorange) 원장은 비즈니스 감각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 교육기관으로서 IMD의 강점은 무엇인가.

“최신 정보와 데이터에 입각한 경영전략을 연구한다는 데 있다. 55명의 연구진·교수진이 여기저기서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교재를 만드느라 땀흘리고 있다. 교수 방법도 매년 새롭게 하고 있다. 프로그램 참석자들은 계속 토론하고 서로 배워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문제와 실천적 지식을 강조하고 있다. 교수진은 ‘추진’해주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국제적인 기구다. 지난해 67개국 사람들이 방문했다. 교수진도 19개국에서 왔다. 스태프도 29개국에서 왔다.”

– IMD의 관리철학은 무엇인가.

“우리는 전통적 개념을 거부한다. 관료조직처럼 자기만의 영역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에게 통하지 않는다. 관료적 왕국을 허무는 것이 목표다. 우리가 믿기로는 유용한 자산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지 그 사람의 직위나 직책에서 나오지 않는다. 평생고용이란 원칙을 포기했다. 모든 교수가 계약직이다. 성과에 따라 대우가 결정된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교수진만 남아 있다.”

– 유럽에는 LBS(런던비즈니스스쿨)이나 인시아드(프랑스 소재) 같은 세계적 MBA 스쿨이 있다. 그들과 비교할 때 스위스에 있다는 것이 약점은 아닌가.

“영국이나 프랑스는 모두 자기 나라의 경험을 기초로 코스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스위스만의 경험을 고집하거나 하지 않는다. 글로벌화된 인적 구성에 맞춰 다양한 문화적 체계를 흡수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 혹시 한국의 경영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삼성과 LG를 비롯한 많은 한국의 대기업들이 우리에게 임직원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식 교육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제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잘 알아야 한다. 유럽의 경제 규모는 미국보다 작지 않다. 그런 점에서 IMD는 미국과 유럽을 총괄하여 가장 국제적인 시각에서 교육을 시켜줄 수 있다. 한국의 경영자들이 참된 국제 감각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IMD가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와 WEFA(와튼계량경제연구소)에서 내놓는 순위를 보면 서로 다른 경우가 많다. 어느 것을 믿어야 하는가.

“우리와 조사방법이 다르다. WEFA는 정부 자체의 강점과 약점을 따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기업 관점에서 만들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 기업을 하면 가장 좋을 것인가를 먼저 따진다. 만일 정부관리라면 WEFA 보고서가 더 유용할 수도 있다. 다만 WEFA의 질문은 대부분 주관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260개 조사문항 중에서 4분의 3이 객관적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취리히-베른-로잔=최홍섭 주간조선 기자)


2001-10-04 정부와 기업은 찰떡궁합’ [한겨레21]

[경제/경제인] 2001년10월10일 제379호

정부와 기업은 ‘찰떡궁합’

유럽 국가들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 펼쳐…

정부가 터를 닦으면 기업은 경쟁력으로 화답

정부가 작을수록 좋다? 북유럽지역이 정보통신 분야에서 최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기업자체의 혁신과 함께 정부차원의 육성책에서 비롯된다.

외환위기를 겪은 뒤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은 구시대의 유물로 폐기처분됐다. 자유방임, 완전경쟁만이 최선으로 추앙받았다. 정부의 기능은 작을수록 좋으며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는 자유방임의 논리가 득세했다.

유럽지역 나라들은 어떨까? 이들 나라의 경쟁력도 오로지 자유경쟁 시장에 맡긴 결과일까? 자국 산업·기업에 대한 보호 장치는 전혀 없는 걸까?

이와 관련해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상무는 “자유방임 시장은 강대국처럼 내수시장이 충분하고 시장내부에서 완전경쟁이 작동하는 나라에서나 가능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한보사태를 예로 들어보자. 만일 미국에서 한보사태가 터졌다면 부도가 나든 매각이 되든 월스트리트에서 하루 아침에 결론이 내려지고 다음날에는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선 거의 1년에 걸쳐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다 결국 외환위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세계 최고·최강인 미국에서나 통하는 완전경쟁 시장 모델은 우리처럼 좁은 시장에는 맞지 않는다는 게 윤 상무의 설명이다.

강대국의 시스템도 작은 나라에서 부작용

유럽 국가들의 예도 자유방임에 맡기기보다는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게 실제 모습에 더 가깝다. 국가 차원에서 주력산업을 선정하고 국가의 힘을 집중시키는 산업정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은 정보통신 자동차 기계분야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스위스가 정밀기계 금융 화학분야에서, 핀란드가 정보통신에서 앞서가고 있는 것도 정부의 인프라(기반시설) 구축에 힘입은 바 큰 것으로 평가된다.

핀란드는 93년 정부 주도로 국가산업 전략을 수립, 정보통신산업을 미래 성장사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으며 또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절반 이상을 정보통신산업에 쏟고 있다. 스웨덴이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을 교육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하고 있는 데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자국기업에 유리한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인 ‘차등주식 제도’를 두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는 의결권에 차등을 두어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자국민들이 의결권이 많은 주식을 보유토록 함으로써 해외자본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불평등 조항은 해외투자자들의 불만을 불러와 외자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곤 하지만, 자국기업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맡기고 있다.

스위스도 이런 제도를 두고 있다. 배당·증자·매매 등에서는 똑같은 권리가 부여되지만 의결권은 차등화된 보통주, 기명주, 주식증서 3종류의 주식발행이 가능하다. 기명주식의 경우 기업이 주주명부에 등재될 수 있는 자격요건을 제한하기 때문에 기업이 원하지 않는 주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기업들은 주주등재의 요건으로 스위스 국적과 거주를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외국인의 주식 보유를 제한하고 있다. 스위스의 대표기업인 네슬레, 스위스유니온뱅크(UBS) 등이 대부분 성장과정에서 의결권이 부여된 주식을 보유하고 자금조달에선 기명주와 주식증서를 활용했다.

이들 나라의 제도를 국내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역공의 논리로 적용하는 것은 물론 곤란하다. 나라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럽 소국들의 모델 또한 세계화의 거센 도전에 맞닥뜨려 일정부분 수정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도 헤아려야 한다.

스위스 정부는 90년대 초반부터 의결권 없는 주식의 발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던 이자율이 80년 후반의 경제버블과 긴축정책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된 것을 반영한 조처였다.

이 때문에 의결권 있는 주식과 의결권이 없는 주식 사이의 프리미엄 격차가 줄어들고 외국인의 주식보유한도폭이 커지면서 경영권을 위협받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핀란드도 95년까지 ‘대기업에 대한 외국인 소유 규제법’을 두고 있다가 유럽연합(EU) 가입을 계기로 폐지했다. 스웨덴의 에릭슨은 차등의결권 제도를 활용, 최고 1천배까지 차이가 나는 주식을 발행하기도 했으나, 최근 10배로 축소했다. 자국 기업에 대한 단단한 보호막을 그대로 두고는 해외자본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도 이들 나라는 독자적인 발전 모델에 대한 고집은 여전히 꺾지 않고 있다. 스위스는 EU 가입에 대한 반대 정서에서 볼 수 있듯이 스위스 고유의 전략을 선호하고 있다. 핀란드, 스웨덴도 독특한 기업지배 구조의 줄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 클러스터(산학연구 단지) 육성, R&D 투자를 통한 힘의 집중을 통해 특정산업을 키우는 전략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들 나라의 자국 산업·기업 보호는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부는 정책 입안 및 기업 인프라를 지원하는 구실에만 충실할 뿐이다. 클러스터의 예를 든다면, 정부는 터를 닦고 기업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만 전념한다는 것이다.

자국기업 보호정책… 미국식 왕도 아니다

핀란드는 노키아라는 세계적인 기업 하나가 부상하면서 나라 전체가 경제위기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일약 일등 국가로 떠올랐다. 노키아의 매출은 핀란드 GDP의 24%에 이른다. 또 이 나라 전체 수출의 20%, 민간 R&D 투자의 3분의 1을 노키아가 맡고 있다. 노키아의 성공은 개별 기업의 혁신과 국가 차원의 산업정책이 절묘하게 결합한 데서 나온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닮아가는 개혁을 강요당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식이면 무조건 옳다는 인식이 퍼지고 정부의 역할은 극도로 줄이는 게 최선이라는 논리가 팽배했다. 그렇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려진 각종 개혁조처는, 설사 불가피했다손 치더라도 우리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 강소국들의 예 또한 우리 몸에 그대로 맞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각 나라에 맞는 고유한 발전모델이 있다는 시사점은 엿볼 수 있다. 우리 몸에 맞는 옷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IMF 졸업을 선언한 마당에서 최소한 미국식 일변도로 치달아온 지난 3년에 대한 반성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취리히·헬싱키·스톡홀름=김영배 기자


2001-09-20 불황돌파, 일등상품개발로 승부건다 [헤럴드경제]

‘일등기업, 일등경제를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제시한 새 좌표다.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는 경제성장 잠재력을 세계 일류상품의 발굴·육성으로 재충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21세기 개방경제체제 아래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우리의 수출기반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일등상품, 일등서비스, 일등콘텐츠로 승부하는 길밖에 없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특히 대부분의 중·저가기술 상품시장을 중국에 빼앗기고 있는 현실을 놓고 볼 때, 또 반도체 수출실적에 목을 매다시피하고 있는 ‘반도체 천수답 경제’를 시급히 탈피해야 할 우리로서는 일등상품의 다양화가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자동차, 컴퓨터, 선박, 석유화학 등 5개 제품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41.5%에 달해 소수품목에 편중돼 있다. 게다가 세계점유율 1위인 제품은 대만의 122개에도 못 미치는 76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품목 42000개 가운데 △미국 924개 △일본 326개 △홍콩 206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D램,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단말기, 셋톱박스, 초고속인터넷, LNG선, 여자골프 등은 당분간 일등상품 지위를 유지하고 냉연강판, 폴리에스테르 섬유, 인삼 든 약간의 위기 요인이 있긴 하지만 일등상품으로 재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일등상품을 보유한 일류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은 세계 최강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경제가 침체의 수렁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가운데 국제경쟁력을 갖춘 초일류기업들은 어려운 여건을 뚫고 이익을 남기며 성장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극심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실제 지난 2/4분기 실적을 보더라도 시티그룹, 마이크로소프트(MS), 제널럴일렉트릭(GE), 인텔 등 미국의 간판기업들은 월가의 기대치 이상의 영업실적을 거뒀다.

필립스 에릭슨 노키아 등 이른바 강소국(强小國) 소재 일등기업들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최고가 아니면 지구촌시장에서 버텨낼 수 없고, 일등상품의 부재는 곧 국가경제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을 생각하면 일등상품의 발굴·육성은 국가적 최우선 과제다.

이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21세기 개방경제체제에서는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민간기업이 희망과 자신감을 갖고 일류상품을 개발해나갈 때 정부는 연구개발(R&D) 자금 확충과 마케팅 지원 등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의 선봉장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최근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일등만이 살아남는다”며 “단순·평면적 경영방식을 지양하고 앞으로 5~10년 뒤의 주력상품 개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이 회장은 특히 “계열사별로 핵시경쟁력 강화를 위해 우수인력확보에 적극 나서고 세계 일류가 가능한 분야에 대한 R&D투자에 집중하라”고 당부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일등상품 개발에 발벗고 나섰다. 산업자원부는 최근 21세기 수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오는 2005년까지 차세대 일류상품을 500개 육성키로 했다.

이번에 선정된 일류상품에는 반도체, TFT-LCD, 디지털TV, 에어컨, 냉연강판, 폴리에스테르 섬유, 오토바이용 헬멧, 자수정, 모자, 인삼, 라면, 김치 등 점유율 1위 제품 32개와 냉장고, DVD플레이어,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굴삭기, 동물성장촉진제, 상용차, 피아노 등 점유율 2~5위의 23개로 구성돼 있다.

차세대 일류상품으로는 유기EL,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온라인게임, 당백질칩, DNA칩, 항암제, 미백화장품, 표면탄성파 필터, 블루투스칩, 위궤양치료제, 유전자치료제, 생체인식기, 탄소섬유, 공기압밸브, 문화공연 등이 선정됐다.

산자부는 차세대 일류화 촉진전략으로 일류상품 전용 R&D자금을 조성하고 민간·정부합동의 메치펀드 형식으로 2010년까지 2조원을 들여 핵심부품 및 소재를 해마다 50개씩 개발, 사업화하기로 했다.

또 해외마케팅·홍보를 위해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개최 이전에 미국과 유럽지역을 대상으로 대규모 일류상품 로드쇼를 정부합동으로 실시하는 한편 해외유명 인증비용의 70% 이내에서 업체당 최고 700만원까지 지원키로 했다.

재계는 이와 관련, “일등상품은 의욕만 있다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세계 일류상품 발굴·육성’이 현실성이 없고 정부주도와 지원만으로 하겠다는 접근 방법도 문제가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효율적인 투자 및 재원조달계획과 인재육성 방안, 디자인 마케팅 전략은 물론 이 같은 전략을 일관성 있게 종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발굴된 상품에 대해서는 일등자리를 굳힐 때까지 집중지원하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등상품 창출을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 외에 산업경쟁력, 효율적 인프라, 자율과 창의의 사회분위기 등이 갖춰져야 한다”며 “현재와 같은 기업 위축이 계속될 경우 기존 일등상품들의 쇠퇴마저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권영일 기자


2001-08-22 6월엔 유럽으로이번엔 일본으로 이건희회장 아이디어 찾기’ [조선일보]

지난 16일 일본으로 건너간 이건희(이건희) 삼성 회장이 일본 반도체업체와 통신업체의 최고경영자(CEO)들을 집중적으로 예방하고 있다고 삼성 고위관계자가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일본 주요 기업 CEO들과 만나 IT(정보기술)산업 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삼성생명 등 주력 계열사의 장기 경영전략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만나는 일본의 CEO 중에는 도시바와 소니의 최고 경영자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보에게도 반도체산업의 미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도록 자주 주문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앞서 이 회장은 지난 6월 말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삼성 유럽본사를 방문,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삼성 현지법인 대표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연초부터 네덜란드·핀란드·스웨덴 등 유럽의 강소국(强小國·작지만 강한 나라)의 기업 환경에 깊은 관심을 표시해 일부러 유럽을 방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가 적고 자원이 빈약하지만 강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유럽 강소국들을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의 발전 모델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

이와 관련,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회장이 유럽을 방문하기 전 유럽 강소국들의 발전 비결을 분석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해 이 회장에게 별도 보고했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9월 초순쯤 귀국해서 유럽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하면서 정리한 경영 구상을 각 계열사에 다시 주문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일본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총회 참석차 러시아를 잠시 방문했었다.

/조중식기자


2001-08-17 [매경춘추] 강소국 핀란드의 경쟁력 [매일경제]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 말은 T. Peters의 ‘초우량기업을 찾아서(In search of Excellence)’에 나오는 정의 중의 하나이다. 최근 단순히 작은 것뿐만 아니라 작지만 강한 국가나 기업, 즉 강소국(强小國)의 개념이 화제가 되고 있다.

북유럽 발트해 연안의 핀란드는 네덜란드나 스웨덴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강소국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의 현재 보여지고 있는 경쟁력과 영광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70년대에서 8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OECD 가맹국 중 최고인 평균 5%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핀란드 경제도, 80년대 서방경기의 혼미와 대소련 경제의 붕괴 등으로 말미암아 심각한 불황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핀란드 정부와 기업들은 자율적 위기의식과 강도높은 구조조정, 산업구조 개편으로 90년대 중반이 후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핀란드 경제성공의 가장 큰 열쇠는 강력한 산업 구조조정에서 찾을 수 있다.

핀란드는 전통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제지·펄프 산업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 전체적인 공감대 형성 및 업계의 자발적 노력과 정부의 금융·세제지원 등을 바탕으로 30개가 넘는 기업들을 인수합 병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3개 대형회사로 만들었다.

세계 제 2 위의 제지회사인 Stora-Enso나 4위 기업인 UPM-Kymmene 같은 회사들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또한 Nokia는 제지사업에서 새로운 IT 분야로의 변신을 Vision으로 삼고 선택과 집중을 통한 개별기업 구조조정에 성공해 세계적인 정보통신업체로 도약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핀란드 정부가 구조조정과 개혁에의 강한 비전 및 의지를 가지고 적기에 모든 조치를 주저하지 않고 책임있게 실행해갔다는 데 있다.

또한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들이 경제부국을 목표로 일치 단결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오늘을 일구어 낸 것이다.

우리의 구조조정과 개혁도 강소국 핀란드의 빛나는 경쟁력의 원천을 벤치마킹하여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01-08-02 국내대표기업을 키우자 [헤럴드경제]

최근 우리 경제 회생의 대안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이른바 강소국(强小國)들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에는 필립스와 KLM이, 핀란드에는 노키아, 스웨덴에는 에릭슨과 볼보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각 분야에서 미국 일본 독일 등 강대국의 세계 최고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저런 기업들을 키웠을까’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우리는 왜 저런 기업들이 없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한때 대우자동차가 세계경영을 모토로 지구촌 시장 공략에 나섰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난파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그 동안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몇몇 다른 기업들도 IMF 외환위기 이후 몸을 움츠리고 있어 이들에 필적할 기업이 나타나기가 당분간은 어려 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건희 삼성 회장이 ‘국내 대표기업 역할’을 강조해 눈길을 끈다.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비전자·서비스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 사장단회의를 갖고 국내 대표기업으로서 국가경제 활성화에 대한 사명감을 인식할 것을 주문했다. 삼성이 손대는 업종은 세계적으로 선진화시키는 것은 물론 문화를 바꾸는 정도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국내 기업을 대표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삼성 혼자만으로는 힘들다. 삼성 자신의 피나는 노력과 함께 국민과 정부의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에릭슨과 노키아를 키운 것처럼, 국민들이 기업을 사랑하고 정부는 기업들이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생산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도 신바람이 나서 국가에 보은을 하지 않겠는가.

권영일 산업부 기자


2001-08-02 “삼성이 경제활성화 앞장” .. 이건희 회장 주문 [한국경제]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협력업체들을 육성해 생산기반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중국 등 신흥국가의 추격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밤 그룹 영빈관인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중화학 서비스 등 12개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의학을 포함한 바이오사업에 대해서는 리스크가 큰 만큼 면밀히 분석하고 중장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핵심 대기업들이 국가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네덜란드 스웨덴 등 ‘강소국(强小國)’들에서는 경제위기 때 이들 대기업들이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며 경제활성화에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삼성은 지난 5월 전자업종, 6월 금융·물산 계열에 이어 이날 중화학 서비스업종을 마지막으로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마무리했다.

이 회장이 사장단회의에서 강조한 것은 크게 3가지다.

이 회장은 우선 5~10년 뒤에 돈을 벌 수 있는 미래사업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룹의 주축인 전자의 경우 D램 가격변동에 취약한 면을 드러냈으며 생명도 저금리시대에 접어들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는 것.

또 조직문화와 의식의 선진화도 강조했다. 그동안 대규모 이익을 실현하고 성과배분제 외부전문인력 수혈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이완될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성택 기자


2001-08-01 (초점)사장단회의를 통해 이건희 삼성회장의 경영 키워드” [이데일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31일 한남동 소재 승지원에서 올들어 세번째 사장단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사장단회의엔 삼성중공업 삼성테크윈 종합화학 정밀화학 제일모직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sds 등 12개 관계사 사장단이 참석했다. 이번 사장단 회의는 지난 5월의 전자계열사 사장단회의와 6월의 금융및 물산 계열사 사장단 회의의 연장선이라고 삼성그룹측은 밝혔다. 이날 회의는 오후 6시께 시작돼 자정 가까이 돼서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올들어 세번째로 열린 사장단회의를 통해 이 회장은 일관된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세번의 사장단회의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이 회장의 경영 키워드는 “향후 10년 이후에 삼성의 핵심사업”과 “인재육성의 중요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기업의 역할” 등이다.

이 같은 키워드는 이 회장 나름의 현실인식과 위기돌파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이 회장은 선문답 형태의 대화를 통해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는 스타일이어서 이 회장의 지시사항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삼성의 전략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다.

사장단 회의를 통해서 드러난 이 회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보다 “삼성의 미래 수종산업”이다. 이 회장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조직의 내실을 다지고 미래의 새로운 기회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세계 일류화가 가능한 부분에 대한 선택과 집중으로 각사가 5년후 10년후 성장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자사장단회의와 금융사장단회의에서 “10년 후 삼성이 먹고 살 수 있는 수종산업을 찾는데 노력을 경주해달라”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전자계열사는 물론 삼성생명 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들도 장기적인 “미래형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시스템lsi는 그중의 하나다.

이 회장은 또 대기업의 책임과 역할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네덜란드 핀란드 등 강소국들이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오일쇼크와 러시아 시장 붕괴 등으로 경제위기에 직면했을 때 경제회복에 대기업들이 크게 기여했다”며 “국내 대기업으로서 삼성도 국가경제에 대한 역할과 사명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평소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이회장의 지론과도 연결돼 있다.

이에 덧붙여 이 회장은 “삼성이 손대는 업종은 세계적으로 선진화시키는 것은 물론 문화를 바꾸는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며 “각사가 조직 인력 시스템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적응시켜 전문성을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인재육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이 회장은 “세계 일류가 된다는 것은 제품이나 기술뿐만 아니라 조직문화와 조직구성원들의 의식도 일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미래의 핵심경쟁력은 우수인력에 있으므로 미리미리 장래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지난 5월의 전자계열 사장단 회의에서 “우수인력을 스카웃하는데 비용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31일의 사장단 회의엔 에스원 이우희 사장, 제일기획 배동만 사장, 삼성중공업 김징완 사장, 삼성종합화학 고홍식사장, 제일모직 안복현사장, 호텔신라 이영일 사장, 삼성에버랜드 허태학 사장, 삼성엔지니어링 양인모 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 15명이 참석했다.


2001-08-01 삼성사장단회의 중장기계획분석 [헤럴드경제]

삼성이 최근 사실상 비상경영에 들어간 가운데 전자 계열사 및 물산·금융 계열사 사장단회의에 이은 12개 독립계열사 사장단회의를 끝으로 그룹의 올 하반기 및 2002년 이후 중장기 경영계획을 확정지었다.

이건희 회장은 이번 사장단회의에서도 그 동안 캐시플로우 역할을 해온 반도체를 대체할 만한 세계 일류화 상품을 조기에 확보하자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미래에 대비해 사업구조를 전환(고도화)하고 △ 수익성 확보를 위한 질적인 구조조정의 지속적인 추진 △선진 경영체제 의 구축 △우수인력 확보를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 등을 사장들에게 주문 했다.

이 회장은 이에 앞서 지난달 21일 삼성생명과 화재·증권 등 금융관계사 6사와 물산 사장단회의를 무려 7시간 동안, 지난 5월 29일에는 삼성 전자와 SDI·전기·코닝 등 전자관계사 사장단회의를 6시간 동안 각각 주재한 바 있다.

이 회장의 이날 발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협력업체 육성과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의식을 꼽은 점이다. 협력업체 육성과 관련, 그는 최근 신흥개도국들이 급격히 우리를 추격해 특히 중국의 경우 이미 일부 산업분야에서는 우리보다 앞서는 기술과 국제경쟁력을 갖췄다며 협력업체들을 적극 육성해 생산기반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곧 삼성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또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국내 경기부진과 관련해 최고경영자들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 회장은 이날도 최근 화두가 된 작은 국가의 큰 기업 역할을 강조한 ‘강소국’(强小國)론을 제시하며 ‘국내 대표기업으로서 국가경제 활성화에 대한 역할과 사명감’을 역설했다.

즉 핵심 대기업들이 국가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네덜란드 핀란드 등 이른바 강소국(强小國)들이 지난 80년대와 90년대 초반 각각 오일쇼크와 러시아 시장 붕괴 등으로 경제위기에 직면했을 때 필립스, 에릭슨, 노키아 등 대기업들이 경제회복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이들처럼 국가경제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경영에 힘써줄 것을 사장단에 당부했다.

이런 차원에서 그는 삼성그룹 전체가 올 상반기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그룹 전체적으로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을 격려했다.

이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제일모직의 경영사례를 예로 들면서 “3년 전 적자를 면치 못했던 이 회사가 임직원이 똘똘 뭉쳐 노력한 결과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며 계열사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로 제시했다.

이에 덧붙여 이 회장은 “삼성이 손대는 업종은 세계적으로 선진화시키는 것은 물론 문화를 바꾸는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에 따라 각사가 조직과 인력, 시스템을 시대의 변화에 적응시켜 전문성을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영일 기자


2001-08-01 “내년초 경기회복 대비“…이건희 회장 지시 [매일경제]

<서양원> 삼성이 내년 1분기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본격적인 점검에 들어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각 계열사 사장들에게 “본격적인 경제회복기에 대비해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31일 저녁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전자와 금융·물산 부문 이외 12개 관계사의 15명 사장들과 가진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이같이 지시했다.

이 회장은 또 “국내 대표기업으로서 국가경제활성화에 대한 역할과 사명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침체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지시는 에릭슨 노키아 등 대기업들이 핀란드와 네델란드 경제를 살린 것처럼 경제활성화에 적극 나서 ‘작지만 강한 경제’, 다시 말해 ‘강소국'(强小國)을 만들자는 뜻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이 회장은 특히 ” 각사별로 핵심경쟁력 강화를 위해 우수인력확보에 적극 나서고 세계 일류가 가능한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R&D)투자에 집중해 5~10년뒤 성장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각 계열사별로 몇가지씩 개선사항을 주문했다.

삼성SDS에 대해서는 유·무선통합시대에 적합한 소프트웨어 콘텐츠 네트워크를 차질없이 구축해 정보화시대를 열어나가라고 지시했다.

계열사 중 드물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종합화학에 대해서는 생존을 위한 원가절감에 나서는 한편, 재무구조를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삼성정밀화학에 대해서는 바이오산업의 잠재위협을 면밀히 분석한 후 사업에 나서라는 신중한 접근자세를 당부했다.

삼성중공업에 대해서는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저임금과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고 지적한 후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 회장은 또 계열사 가운데 3년연속 흑자를 내는 것은 물론 갈수록 흑자규모가 커지고 있는 제일모직에 대해서는 “사장과 임직원들 하나로 똘똘 뭉쳐 이룩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치켜세운 뒤 “다른 계열사들로 이 같은 노하우를 본받으라”고 당부했다.


2001-07-31 [기업천국을 만들자] ‘재벌=죄벌인식고쳐 일할맛나게 [서울경제]

부정적시각. 잘못된 정서 과도한 규제가 의욕 꺾어

기업은 경제전쟁의 국가대표 선수다. 기업이 더욱 커지고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국가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생활도 향상된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대외적으로는 통상압력, 대내적으로는 잘못된 국민정서, 후진적인 정치관행, 과도한 규제 등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미친듯이 일할 수 있도록 우리를 내버려달라”(손길승 SK회장)는 말에는 우리 기업인들의 의욕과 애로가 동시에 담겨있다.

이제 우리는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한다. 서울경제신문은 창간 41주년을 맞아 기업의 신바람나는 경영활동을 통한 경제재도약의 방안을 모색키위해 ‘기업천국을 만들자’는 시리즈를 15회에 걸쳐 게재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차라리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게 좋을 것이다.” 최근 기업인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는 말이다. 여기에는 우리 기업ㆍ기업인들이 느끼고 겪는 경영의 현실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이는 우리 기업인들이 동남아는 물론 미국이나 유럽등 외국에 나가 정반대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진들이 미국에 반도체공장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텍사스주 오스틴을 방문했을 때의 일은 결코 ‘특별케이스’가 아니다. 이들 일행은 호텔방에 들어서자 TVㆍ냉장고등 모든 가전제품이 삼성전자 제품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들은 특히 이 배려가 지역민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외자유치에 적극 나선 주지사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더욱 감명을 받았다.

이같은 정반대의 현상이 왜 발생할까. 해답은 간단하다. 많이 변했다고 하나 아직 기업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병락 서울대교수는 이와 관련, “정부관료를 포함한 사회지도층, 소위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단정한다. 우리의 지성인들은 남(특히 기업)을 비판하는데 주력하는 반면 미국의 지성인들은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는등 남에게 베푸는 것을 최고의 지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기업은 도둑’ ‘기업은 정부의 것’ ‘큰 기업을 때려야 생기는게 많다’는 지성인들의 잘못된 인식은 기업ㆍ기업인들의 의욕을 꺾고 있다. 산업사회에서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기업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기업을 비하하는데 급급, 이 땅에서는 기업할 생각이 없어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업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것은 정경유착이나 총수전횡 등 기업의 부도덕성만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재벌=죄벌’이라는 국민정서를 만든 것이다. 장순영 한양대교수는 “항간에 알려진 기업들의 나쁜 면은 실제보다 왜곡된 경우가 많다”며 “기업할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서는 잘못된 국민정서부터 바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기업가 정신이 높아질 리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최근 국가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31위, 기업에 대한 신뢰가 47위에 불과할 정도로 기업신뢰는 나락으로 추락해있다.

기업가 정신 3위에 랭크된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것이 마이크로 소프트ㆍ제너럴 일렉트릭(GE)등 초일류기업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네덜란드ㆍ핀란드ㆍ스웨덴 등 땅은 작지만 경제강국인 ‘강소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도 필립스ㆍ노키아ㆍ에릭슨 등 ‘스타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기업을 ‘경제 국가대표선수’로 키워 경제강국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제 우리는 가장 쉽고 평범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정부와 국민이 기업을 아끼고 키워주지 않으면 나라가 살 수 없다’는 점이다. 해답은 명확하다. 기업을 기업으로 바라보고, 기업인들을 제대로 평가하면 된다. 물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경제국가대표’로 키우는 것은 기본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돈을 잘 버는 기업인은 애국자로 취급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원성을 들으면 세금내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소연하는 한 그룹 회장의 속마음이 더 이상 확산돼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도 고용하는 것 자체로 훈장을 받을 자격을 주는 프랑스의 사례를 도입할 때가 됐다. 경제강국들의 대선 캐치프레이즈가 ‘일자리 창출’에 있는 것이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현대의 영웅은 기업”이라고 말한 것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한번 무너진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면 사회적인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기업은 설 땅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제조업 붕괴론’이 설득력을 더하는 가운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때다. 결론은 분명하다.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올바른 평가. 그것이 출발점이며, 목표여야 한다.

/특별취재팀 이현우 산업부장(팀장), 정문재·고진갑·권구찬·최형욱·정승량·조충제·고광본기자


2001-07-12 [글로벌뉴스] 스웨덴핀란드 IT 강한가 [매일경제]

<김종영> 최근 강소국(Small But Strong Country)이라 불리우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 등은 강대국과는 달리 국가 규모는 작지만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부자 나라들이다. 인구가 몇 백만명에서 많아야 1000만명에 불과하다.

작은 내수시장과 자원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부국을 이룬 이들 강소국은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보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IT산업에 집중= 강소국들은 한정된 자원과 능력을 80년대와 90년대에 정보통신 분야를 중심으로 주력산업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현재의 입지를 구축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구 소련 붕괴 이후 90년대 초반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 주도 아래 정보통신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핀란드는 정보통신산업에 정부 R&D 예산의 51%를 투자하는 등 스웨덴과 함께 GDP(국내총생산) 대비 R&D 예산 비율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다.

이같은 환경 아래 스웨덴의 에릭슨과 핀란드의 노키아는 세계 정보통신산업의 최강기업으로 입지를 굳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각자의 나라와 국민을 먹여 살리는 대표적인 기업이 됐다.

특히 1865년 설립된 노키아는 제지업체에서 통신업체로 변신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노키아는 60년대에 통신사업에 진출한 이후 80년대 사업 확장기를 거쳐 90년 들어서는 전력과 TV, 타이어, 케이블기계 부문 등 비핵심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고 통신사업에만 주력, 마침내 휴대폰 분야에서 부동의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섰다.

핀란드 국가연금개발기금(SITRA)의 올리 린드블라드 부사장은 “혁신적인 기술개발과 벤처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성공을 거둬온 핀란드의 경제성장 동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핀란드와 스웨덴은 작년 이후 IT 산업의 침체로 대표기업인 노키아와 에릭슨의 실적이 나빠지면서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다. 에릭슨과 노키아는 최근 시장의 좋지 않은 상황을 반영하듯 감원계획을 발표하는 등 경영 효율화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노키아와 에릭슨 모두 시장상황에 따른 변화에는 익숙한 듯 크게 동요하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한세대 발전한 3세대 이동통신시대에 대비하는 주요 부문에 대한 투자는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노키아의 홍보담당 아리야 수민넨 이사는 “노키아는 현재의 기술을 재평가하고 모바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3세대 이동통신 시대 등 장기적인 기술개발에 주력하면서 미래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첨단기업 육성= 핀란드 수도 헬싱키 인근 에스푸시에 위치한 ‘오타니에미 사이언스 파크’는 북유럽 최대의 창업 인큐베이터다. 핀란드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헬싱키공대(HUT)와 핀란드 기술연구소, 200여개의 첨단 기업체가 있고 5000여명의 연구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그 중심에 첨단기술과 창업 아이디어로 무장한 기업 250곳이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노폴리(Innopoli)가 있다. 제2의 노키아, 에릭슨을 꿈꾸며 창업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정부와 창업보육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바로 이들 기업이 첨단 핀란드의 미래를 준비하고 이끌어갈 자산이다.

핀란드에는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 외에도 노키아의 연구개발(R&D)센터가 있는 울루 지역 등 10개의 사이언스파크에 정보통신 산업단지가 집중돼 있다. 핀란드 정부는 기술개발센터(TEKES)를 통해 응용. 상업목적의 기업 R&D활동에 예산을 배분하고 있다. TEKES는 기업-대학-연구소간의 협력채널로 99년에 2억7000만달러를 기업에 지원했고 이중 53%가 중소기업에 지원됐다.

이노폴리의 일포 산탈라 사장은 “새로운 첨단 기술을 가진 기업을 국제적 경쟁력을 갖도록 키워 성공적인 새 기업체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북서부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 2위의 정보 기술(IT)산업단지인 시스타 사이언스파크가 있다. 이곳에는 에릭슨을 비롯해 컴팩, 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 유수 기업을 포함, 700여개 이상의 IT 업체가 입주해 있다. 2만7000여명의 전문인력들이 활동하는 이곳은 무선통신기술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고 있 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부는 기업보다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른다. 따라서 정부는 시장기능이 원활히 작동되도록 조력자의 역할만 하면 된다” 스웨덴 산업부의 스벤 스요그렌 국장의 말이다.

강소국의 공통점 중 하나는 최적의 기업환경을 제공해 세계적 대기업을 키워냈고 이를 통해 국가 자체도 강해졌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즈 선정 500대 기업을 보면 네덜란드의 경우 필립스, 셸, 유니레버 외에도 ING베어링과 ABN암로 같은 금융회사를 포함해 모두 14개 회사가 있고 스웨덴은 세계적 통신회사인 에릭슨 등 7개, 핀란드는 휴대폰 세계 1위업체인 노키아 등 2개가 있다.

이들 국가에서 정부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최대한 억제하고 기업은 시장질서를 존중한다. 핀란드는 기업 설립 활성화를 위해 허가 및 통보절차를 축소해 96년에는 6주나 걸리던 창업기간을 2000년에는 2-3주로 단축시켰다. 또 실업자가 창업시에는 창업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 10개월까지 매달 450-800달러의 창업보조금을 지원한다.

스웨덴은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동안 기업활동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24/7 운동’을 전개하는 등 신속한 행정시스템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개인에 대한 세금은 많이 물리는 대신 대기업에는 세제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기업 투자유치 환경을 조성해놓고 있다.

에릭슨의 홍보담당 피아 기데온 이사는 “스웨덴은 규제철폐를 통해 에릭슨과 볼보, 스카니아 등 국제적인 대기업을 키우는 풍토”라며 “개인의 세금은 많지만 세계적 기업에 세금혜택을 주는 등 스웨덴의 세금제도는 대기업에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2001-07-06 강소국을 가다 / ()노사정 폴더모델‘-네덜란드 [한국일보]

네덜란드엔 춘투(春鬪)대신 춘협(春協: Spring Consultation)이 있다. 파업으로 인한 휴업일수가 연평균사흘(1996~1998년)에 불과, 유럽연합 국가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제조사기관인 EIU는 안정적 정치환경과 노동시장 등을 들어 네덜란드를 ‘향후 5년간 세계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나라’로 꼽았다.

20년 전만 해도 네덜란드는이런 나라가 아니었다.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네덜란드는 81~82년 연속 마이너스성장에 물가 상승률이 6%를 넘는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했다. 연쇄도산으로 매달 1만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와 파업은 끊이질 않았다.

침몰 직전의 네덜란드 경제를 건져낸 것이 바로 국민적 합의에 의한 경제개혁, 즉 ‘폴더(Polder) 모델’이었다. 폴더란 바다를 메워 만든 평지라는 뜻. 13세기 이래 전 국토의 20%이상을 간척했던 국민적 화합과 협력이 바로 폴더모델인 것이다.

2류국가 전락의 위기감속에서 노사 양측은 82년 11월 헤이그 북쪽 작은 마을인 바세나에서 임금억제와 고용촉진을주고 받는 대타협안(바세나 협약)을 도출해냈다.

노조는 ▦임금인상자제 ▦임금의 물가연동제 유보(실질소득 9% 감소) ▦고용주의 사회보장세 부담완화(근로자추가부담)를 받아들였고, 사용자측은 ▦노동시간 5% 단축을 통한 추가고용 ▦사회보장 골격유지를 수용했다.

정부 역시 사회보장 남발축소, 공기업 민영화등 과감한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컨설턴트인 브리에스씨는 “바세나협약은 합의를 기초한 폴더모델의 상징으로 그 정신은 현재까지도 네덜란드 경제운용의 기본골격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바세나협약 이후 노사관계의 초점은 ‘임금인상’에서 ‘고용유지’로 바뀌었으며, 이런 실용주의 노선을 주도했던 노조지도자는 현재의 네덜란드 총리인빔 콕이다.

임금 합리화와 일자리 재분배(job-sharing) 정책으로 26만5,000개의 새로운 고용이 창출됐고, 실질성장률은 다른 유럽국가보다 1%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유럽 특유의 사회복지제도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노사간 양보로 고질적 실업을 해결함으로써 ‘네덜란드병’이‘네덜란드의 기적’으로 바뀐 것이다.

네덜란드의 노동시장은 유럽에서 가장 유연한 곳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해고는 좀처럼 용납되지 않지만, 높은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과 사업장별 다양한 근로계약형태로 사실상 완전고용을 구가하고 있다.

마스트리트 경영대학의 소테 교수는 “네덜란드의 성공은 합리적 임금, 사적 직업알선체제, 파트타임 활성화를 통한 여성과 젊은 노동력의 활용 등 노동시장의 성공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허브경제

네덜란드는 ‘허브(hub: 중심축) 경제’다. 독자 내수시장이 협소한 경상남ㆍ북도만한 면적의 네덜란드가 생존하는 길은 ‘유럽의 관문’이되는 것뿐이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은 물동량 1위의 유럽 최대항구로 유럽내 50개 지역으로 이어지는 논스톱 컨테이너 운송망을 갖추고 있다. 스키폴 공항은 세계 10대 화물센터의 하나로 꼽힌다.

네덜란드에는 소니 미쓰비시 나이키 등이 유럽지역본부를, 애플 시스코 리복 등은공동서비스센터를, 컴팩 에이서 휴럿패커드 제록스 3M 등이 유럽물류센터를 두고 있다. 삼성전자 물류센터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 경제 전체가 하나의 물류기지이자, 외국기업의 거점인 셈이다.

허브경제의 필수조건은 규제완화다. 네덜란드는 지난 5~6년 동안 기업관련 법규를 단순화, 간소화, 나아가 폐지하는 쪽으로 고쳐왔다. 2006년부터는 창업 관련법이 완전 폐지될 예정이다. 에너지 철도 통신 등 인프라 산업도 민영화 및 개방했다.

네덜란드가 쉘 필립스 유니레버 등 세계 500대 기업을 14개나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기업하기 좋은 환경’ 때문이다. 대형항공업체 포커사가 도산했을 때도 정부는 아무런 자금지원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만큼 관(官)의 시장개입은 없다.

그러나 전반적 탈(脫)규제속에서도 엄격한 규제의 영역은 있다. 위진버겐 전 경제기획청 사무총장은 “공공목적과 건전한 시장경제발전을 위해 경쟁(독점규제), 환경, 의료분야에 대한 규제는 존재해야 한다”며 “같은 맥락에서 기업의 금융기관 소유도 금지된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2001-07-05 강소국의 조건 [헤럴드경제]

꽃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는 히딩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인해 우리와 친숙하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귀화한 서양인인 박연이 네덜란드인이었으며 ‘하멜 표류기’를 써서 조선을 서방세계에 알린 하멜도 같은 나라 사람이었으니 이래저래 인연이 깊다. 게다가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은 것도 비슷하다.

네덜란드는 지난 80년대 초 오일쇼크와 과도한 사회보장 지출, 이로 인한 국민들의 노동기피로 정부재정이 통제불능 상태에까지 이르렀었다.

헤이그 정부는 경제회생을 위해 기업규제를 완전 철폐하고 기업의 진입 및 퇴출 장벽을 완전 제거했다. 외국기업에 대해서도 자국기업과 똑같은 경영여건을 제공했다.

경직된 노사관계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풀어나갔다. 82년 노·사·정 대표가 체결한 ‘바세나 협약’은 네덜란드 경제개혁의 시발점이 됐 다.

네덜란드의 경제개혁 프로그램인 폴더 모델(Polder model)은 시장기능 강화, 공기업 민영화, 사회보장제도 개혁 등을 골자로 하고 있어 DJ 정부가 집권 초기 추진했던 정책과 흡사하다.

20년이 지난 지금 네덜란드는 스웨덴 핀란드 등과 함께 유럽의 대표적인 강소국(强小國)이 됐다. 반면 우리는 계속적인 경기침체 속에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헤이그 정부는 처방에 앞서 먼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으며 이는 네덜란드가 경제기적을 이룩하는 토대가 됐다. 그리고 인기에 영합해 편법을 쓰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했다.

외국의 좋은 제도는 모두 갖춰놓고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방향타를 놓쳐버린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2001-07-05 강소국 열풍<>/ 노사 단합으로 다시태어난 네덜란드의 경제[세계일보]

유럽 열강의 패권시대가 시작되던 17세기.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세계 해상무역권을 장악했다. 350여년이 지난 지금, 네덜란드 사람들 사이에서는 과거의 영화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움트고 있다.

인구라야 고작 1500만명에 불과한 네덜란드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유럽의 물류기지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유럽의 모든 길은 네덜란드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유럽 변방의 소국인 네덜란드가 ‘유럽 변방의 소국인 네덜란드가 ‘유럽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변화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네덜란드의 상인정신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네덜란드 경제 변화의 가장 큰 원동력은 ‘위기 탈출을 위한 노사 대화합’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1973∼82년 10년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네덜란드는 이 기간동안안으로는 과잉생산, 밖으로는 경쟁력 약화로 전례없는 불황에 허덕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79년 2차 오일쇼크가 몰아닥치면서 마이너스 경제성장에 실업률은 12%로 치솟았다.

과잉설비투자에 따라 제조업체 25개 중 한 곳은 도산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컨설팅업체인 바르트 더 프리스사의 폴란더 엔 반데레이 이사는 당시 상황을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던 영국과 달리 북해천연가스 수입으로 외환위기만은 면했지만, 네덜란드 경제는 사실상 파국상태였다”고 말했다.

이같은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네덜란드가 짜낸 방안이 노사 대타협이다. 노사대표는 82년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고용창출에 노력한다는데에 전격 합의했다. 이를 ‘바세나협약’이라고 부르고 있다. 임금인상을 1%억제하면 10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노동시간을 2.4% 단축하면 24만명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배경을 이룬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같은 상황에서 시장기능 강화, 고용촉진, 공기업 민영화,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비롯한 경제개혁 정책(폴더모델)을 추진했다.

쓰러져가던 네덜란드 경제는 이렇게 해서 되살아났다. 주목되는 점은 네덜란드 노사화합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덜란드 노사 대표는 93년 ‘뉴코스 합의’를 통해 임금인상 억제와 고용창출에 힘을 모으기로 다시 다짐했다.

파업기업의 연간 평균휴업 일수가 96∼98년의 경우 네덜란드는 3일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아일랜드는 68일에 달하며,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26일, 24일이다. 유럽 강대국과는 판이한 노사관계가 네덜란드에 구축된 것이다. 반데레이 이사는 “네덜란드가 유럽 최대 물류기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손을 잡고 미래를 열어가는 노사문화가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암스테르담=강호원 기자


2001-07-05 강소국을 가다 / () 노키아가 만든 IT신화핀란드 [한국일보]

핀란드는 노키아(Nokia)의 나라다. 산타클로스의 고향이자 동화적인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를 국가경쟁력 세계 3위, ‘어린이와 강아지만 빼면 모두가 휴대폰을 갖고 있다’는 정보통신의 신세계로 변모시킨 것도 바로 노키아다.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시장의 3분의1을 휩쓸며 ‘모바일(Mobile)’ 혁명을 주도하는 최고의 통신업체. 지난해 인터브랜드사의 세계 브랜드 가치조사에서 비(非)미국기업으론 유일하게 톱 10에 진입(5위)했고, 포춘지 선정 존경받는 기업순위에서 세계 8위로 기록됐다.

500만명의 인구소국(小國)에서도 얼마든지 세계 정상의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노키아를 통해 입증됐다. 노키아는 현재 핀란드 전체수출의 23%, 연구개발(R&D)투자의 20%, 헬싱키 증시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1998년 핀란드의 실질성장률은 5%였지만노키아를 빼면 마이너스 1%에 불과했을 만큼 노키아는 핀란드를 먹여 살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키아의 성공스토리는 한국기업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1865년 시골마을 제지회사로 출발해 고무ㆍ전선분야로 사업을 넓혀간 노키아는 1970년대까지 목재 고무 금속 전선 화학 전자 통신 등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전형적인 ‘문어발 그룹’이었다.

확장일변도의 사업노선은 핀란드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한계에 봉착했고 80년대말 경영난으로 최고경영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위기를 맞기도 했다.

노키아를 오늘의 반석위로 끌어올린 인물은 ‘유럽의 잭 웰치’로 불리우는 요르마 올리라 회장이었다. 씨티은행 출신의 재무전문가인 올리라 회장은 92년 최고경영자(CEO) 취임후고무 펄프 제지 가전 타이어 등 120여년간 노키아를 이끌어온 전통산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모든 역량을 이동전화 단말기와 정보통신에 선택ㆍ집중하는파격적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 우물을 파기 위해 뿌리나 다름없는 ‘모태(母胎)업종’까지버린 것이야말로 한국의 대기업과 근본적으로 차별되는 대목이다. 올리라 회장은 “1위가 될 수 있는 것만을 살려야 한다. 기적은 변화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경영슬로건을 제시했다.

과감한 R&D 투자는 노키아의 또 다른 강점이다. 전세계 15개국에 55개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노키아는 전체 직원의 무려 32%(1만9,000명)가 R&D인력이며, 순매출의 8.5%를 R&D투자에 쏟아붓고 있다. 노키아가 보유한특허는 1,000개가 넘는다.

노키아의 홍보담당 아리아 수오미넨씨는 “제품주기가 짧은 통신산업에서 살아 남으려면 R&D를 통한 핵심기술 확보가 가장 우선”이라며 “노키아에는 변화를 수용하고 창조적인 것을 추구하는 유전인자 같은 것이 있다”고말했다.

■핀란드 산학연구단지 헬싱키 외곽 에스푸에는 ‘오타니에미(Otaniemi)’란대규모 과학단지(Science Park)가 조성되어 있다.

헬싱키공대와 핀란드기술연구소, 과학기술정보기구 등 수많은연구소와 벤처기업이 몰려있는 핀란드 최초의 산학연구단지다.

오타니에미는 젊은 벤처인들을 위한 일종의 ‘창업 인큐베이터’다. 대학과 연구소에서 배출된 수많은 우수인력들의 창의력과 기술력을 사업화하기 위한 각종 교육ㆍ경영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으며, 유리한 조건의 창업기금도 대기하고 있다.

창업보육기관인 이노폴리(Innopoli)의 산탈라 사장은 “현재 평균 직원수 7명 안팎의 벤처기업 250여개가 오타니에미에서 ‘부화’단계를거치고 있다”며 “지난해에만 40여개 벤처기업이 성공해 이곳을 떠났다”고 말했다.

현재 핀란드에는 이처럼 ‘인큐베이터’ 기능의 산학연구단지가 전국적으로 18개가 조성되어 있다. 이중 10개는IT특화 단지로, 핀란드 정부는 국가 R&D 예산의 50% 이상을 이곳에 집중투입한다.

모든 단지는 정부가 세운 이공계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어, 대학의 연구성과는 곧바로 산업기술로 이어진다.

벤처기금은 통상 정부와 기업, 투자은행이 공동조성한다. 핀란드연구개발기금(SITRA)의 린드블라드 부사장은“한번 투자하면 평균 2년, 때론 10년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6개월도 못돼 원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우리나라의 사채성 벤처캐피털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이성철기자


2001-07-04 [작은 나라의 초일류기업] () 대기업 중심의 산업육성모델 [한국경제]

[작은 나라의 초일류기업-북유럽 3국에서 비결을 배운다 (中)]

세계1위의 휴대폰 메이커인 핀란드의 노키아. 이 회사가 핀란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연간 4천만대 이상의 휴대폰을 판매, 세계시장 점유율이 35%에 달하는 이 회사는 지난 5년간 연평균 33%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하며 핀란드 경제를 이끌어왔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노키아는 헬싱키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60%, 제조업 고용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IT경기가 침체국면에 빠져들면서 지나치게 높은 “노키아 의존도”가 국가경제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정작 핀란드 내부의 시각은 다른다.

“노키아는 펄프와 철강 등에 집중된 핀란드의 경제섹터를 다양화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별 경기사이클의 변화에 따른 충격을 오히려 줄여준다”(핀란드 국가연금개발기금(SITRA) 올린 린드블라드 부사장) 노키아의 성공에는 정부와의 긴밀한 상호 협조가 한 몫을 했다.

핀란드 정부는 정보통신산업에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51%를 퍼붓고 있다. 노키아도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수립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R&D 예산의 집행권을 갖고 있는 총리 직속 과학기술정책이사회(VTTN)에 노키아의 COO(최고운영책임자)가 멤버로 참석할 정도다.

핀란드 정부의 산업별 클러스터(Cluster: 영역) 육성정책 중 주력부문인 ICT(Information Computer Technology: 정보 컴퓨터 기술) 분야의 핵심주역이 노키아다. 부품 및 장비, 서비스업체 등과 형성하고 있는 광범위한 기업간 네트워크의 핵심에 노키아가 자리잡고 있다.

노키아라는 초일류기업을 중심에 놓고 정부의 산업정책을 입안함으로써 다른 기업들도 더불어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전략이다.

북유럽의 강소국(强小國)들은 이처럼 주력산업에 집중 투자하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으로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획일적 평등이라는 명분보다는 실리와 효용을 중시하는 기업친화적 사회 분위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스웨덴의 대표적 기업인 에릭슨은 지난 3월 계열사인 일렉트로룩스와 제휴, 이투홈(E2Home)이라는 디지털 가전업체를 설립했다. 계열사간 시너지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에릭슨은 이미 인터넷 냉장고와 웹폰, 인터넷 라디오 등 첨단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세계적인 가전업체인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제휴할 수 있었지만 파트너로 자국기업인 일렉트로룩스를 택했다. 문어발식 사업확장이라는 비난보다는 전체 사회에 이익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평가하는 여론이 조성돼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러한 기업친화적 사회 분위기와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에릭슨은 스웨덴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IT국가(IDC자료, 2000년)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배당과 시세차익에 집착하고 기업경영에 무관심한 주식펀드보다는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기업가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기술혁신과 연관산업의 발전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면서 스웨덴 경제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스웨덴의 유력일간지인 Aftonbradet의 에릭슨에 대한 평가다.

스톡홀름=이심기 기자


2001-07-04 강소국 열풍<>/스웨덴핀란드의 IT산업 [세계일보]

“정부예산 51% R&D투자”

헬싱키 근교 핀란드만 기슭에는 ‘노키아 하우스’가 자리잡고 있다. 노키아 하우스는 1997년 강철과 유리 나무로 지어진 건물로, 노키아 세계 전략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이 건물이 ‘핀란드의 자존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17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불모지나 다름없던 핀란드에서 노키아가 세계 최고의 이동전화 단말기 제조업체로 부상하면서 핀란드의 미래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키아의 세계시장 석권에 따라 스웨덴의 에릭슨마저 최근 단말기 자체생산 중단을 선언한 만큼 핀란드인 사이에서는 ‘노키아는 곧 핀란드’라는 의식마저 확산되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정보통신(IT) 강국이면서도 걸어온 길은 서로 다르다. 스웨덴의 경우 에릭슨이 125년 전통을 갖고 있을 정도로 일찌감치 통신산업에 발을 들여 놓은데 반해 핀란드는 90년대초 뒤늦게 정보통신 산업에 뛰어든 후발국가다. 공통점은 인구 888만, 517만의 소국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두 나라는 에릭슨과 노키아라는 간판기업을 내세워 보이지 않는 ‘세계시장 분할전쟁’을 벌이고 있다.

노키아의 아리야 수민넨 부사장은 “노키아는 3세대 시장에서도 세계 단말기시장을 35% 이상 점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릭슨의 피아 기데온 대외담당 부장도 “단말기 생산을 포기한 것이 아니며 디자인과 판매망에서 앞선 일본 소니와 제휴, 시장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유럽 소국 기업인 에릭슨과 노키아의 이같은 세계적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경제 전문가들은 “선택과 집중 전략이 성공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다른 나라들이 미래 경제변화를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정보통신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택하고, 집중적인 투자에 나선 결과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갖게 됐다는 뜻이다.

스웨덴과 핀란드에는 실제 거미줄과 같은 산-학협동 연구체제가 구축돼 있다. 핀란드는 지역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과학도시를 건설했으며, 이 결과 전국에는 우리나라의 대덕연구단지와 같은 19개의 사이언스파크가 만들어져 있다. 또 정부예산의 51%를 정보통신 기술개발에 투자한다.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500㎞ 떨어진 올루시에 만들어진 올루사이언스파크의 경우 도시 자체를 ‘올루테크노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주식시장에 상장할 정도로 사이언스파크에 대한 핀란드의 지원정책은 대단하다. 올루사이언스파크는 노키아 연구개발(R&D)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에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유럽 최대의 첨단기술단지인 시스타 사이언스파크가 들어서 있다. 이 곳에는 에릭슨은 물론 노키아 컴팩 HP IBM ICL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선마이크로시스템즈 등 내로라하는 세계 IT업체들이 모두 입주해 있다. IT 전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서다. 스웨덴 투자청(ISA)의 라스 베딘 생명공학 담당책임자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힘은 IT산업으로부터 나오고 있으며 IT 경쟁력은 정부와 산-학 협력체제 아래 이루어지는 대규모 R&D 투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

헬싱키=강호원기자


2001-07-04 강소국을 가다 / (-2) 스웨덴 에릭슨 성공 비결 [한국일보]

북유럽은 쾌적한 환경이 아니다. 국토의 3분의 2 이상이 경작 불가능한 삼림과 호수로 덮여 있고, 연중 절반은 낮, 나머지 절반은 밤뿐인 극단의 세계다.

하지만 이들의 국가경쟁력(스위스 IMD 집계)은 세계 정상권이다. 핀란드 3위, 네덜란드 5위, 스웨덴은8위다(한국은 28위).

노키아(핀란드) 에릭슨 사브 스카니아(이상 스웨덴) 필립스 쉘 유니레버 ABN암로 ING(이상 네덜란드) 등 이름만 들어도알 만한 세계최고의 기업들도 무수히 있다. 정부는 기업을 방해하지 않고, 기업은 한눈을 팔지 않는다.

북유럽의 성공비결은 ‘선택과 집중’에 있다. ‘모바일(Mobile)’은 대표적인 예다. 인구에 비해 국토규모가 비교적 넓고, 삼림 등 오지가 많았던 탓에 과거부터 통신의 필요성이 높았고, 결국 선택과 집중으로 북유럽은 정보통신의 메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텔사는 북유럽(특히 스웨덴)시장에 대해 “첨단기술을 이해할 수 있고, 소비자 모델을 평가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평가했고, 삼성전자 고대윤(高大潤) 스웨덴 법인장도 “북유럽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은 일단 세계적 경쟁력을 검증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유럽의 성공전략은 스웨덴 최고 기업인 에릭슨의 사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876년 설립된 에릭슨은 구한말 고종황제 시절 왕실에도 전화기를 공급했을 만큼 1세기 넘게 통신ㆍ전자분야로 선택ㆍ집중한 스웨덴의 간판기업이다.

현재 모바일 인터넷분야에서 세계시장 29%를 점유하고 있는 업체로, 세계 140개국에 단말기를 수출하고 있으며, 23개국에 연구소, 8개국 증권시장에 상장됐을 만큼 문자 그대로 세계적 기업이다. 스웨덴내 매출액은 전체 매출의 5%밖에 되지 않는다. 스톡홀름 외곽엔 ‘텔레폰플랜’이란에 릭슨 타운까지 조성되어 있다.

에릭슨 피아 기데온 이사의 말은 ‘세계기업 에릭슨’의 위상을 단적으로 대변해준다. “스웨덴 경제가 요즘 어려워지고 있지만 에릭슨은 스웨덴 경제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우리는 세계경제를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릭슨의 힘은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나온다. 세계 IT시장 불황으로 에릭슨도 현재 1,200명에달하는 대단위 감원을 추진중이지만, R&D 인력만큼은 한 명도 줄이지 않는다는 데서 ‘미래에 대한 준비’자세를 읽을 수 있다.

에릭슨의 전략 마케팅 담당자인 래리 우드씨는 “2003년이면 모바일 인터넷 인구가 유선 인터넷 인구를 능가한다. 아무리 지금이 어렵더라도 이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집중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2001-07-04 강소국을 가다 / (-1) 와이어리스랜드스웨덴 [한국일보]

볼보(Volvo)의 나라, 프리섹스의 천국, 아바(Abba: 1970년대 인기그룹)의 고향.

그러나 더 이상 스웨덴은 이렇게 일컬어지지 않는다. 21세기 스웨덴이 꿈꾸는 세상은 ‘와이어리스랜드(Wireless land)’, 즉 ‘무선통신의 세계’다.

스웨덴은 현재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국가다. IT평가기관인 IDC/WorldTimes의 국가별 IT종합점수집계에서 지난해 스웨덴은 5,062점을 얻어 미국(2위: 5,041점) 일본(10위: 4,093) 영국(3,807) 독일(13위: 3,558점)을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한국은 2,931점으로 22위).

인구의 절반 이상이 PC를 보유하고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4명 중 3명은 휴대폰을 갖고 있다. 3명 중 1명은 은행업무를 창구 아닌 인터넷으로 취급한다.

국가 전체인구가 서울 시민수보다도 적은 880만명에 불과한 인구소국(小國)이지만, 21세기의 화두인 IT와 모바일(Mobile)에 ‘선택과 집중’을 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강국이 된 것이다.

스웨덴의 ‘와이어리스혁명’ 중심엔 ‘시스타(Kista) 사이언스 파크’가 있다. ‘와이어리스 밸리’로불리는 시스타는 실리콘 밸리에 이어 세계 랭킹 2위, 유럽 최대로 등록된 첨단 과학기술단지다.

스톡홀름 북서부 인근200만㎡ 대지 위에 위치한 시스타는 에릭슨 마이크로소프트 IBM 오라클 인텔 휴럿패커드 노키아애플 등 세계 700여개 첨단 IT업체의 연구소들이 밀집해 있다. 이 지역은 연구인력만 2만7,000명, 이들이 보유한 세계 1등 기술은 무려350여종이나 된다.

노키아 스웨덴법인의 키모 오율바 사장은 “시스타를 보면 왜 하이테크 기업들이 스웨덴으로 오려고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평했다.

1970년대 초까지 군사 야적장이던 시스타를 세계적 첨단 산업단지로 변모시킨 것은 정부 아닌 기업이었다. 스웨덴의 간판통신업체인 에릭슨과 IBM이 연구소를 설립하자,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입주했고 스웨덴 정부는 이 곳으로 스웨덴 왕립공대(KTH)와 스톡홀름대학의 정보통신 관련학과를 이전시키는 동시에 정보통신대학을 설립했다.

굳이 임대료나 세금을 깎아주지는 않았지만, 과학과 기술이 있는 곳이면 기업은 찾아왔다. 시스타의 마케팅 매니저인 마티아스 배크만씨는 “시스타의 성공비결은 완벽한 산(産)ㆍ학(學)협력체제에 있다.

대학에서 배출된 우수인력과 우수기술이 기업경영에 곧바로 활용됨으로써 서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스웨덴은 시스타를 중심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1%를 투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IT와 통신투자(8%)역시 세계 최고였다. IBM이나 인텔은 미국기업이지만, 시스타에 있는 한 스웨덴 경제의 주체다. 전문가들은 시스타, 그리고 스웨덴이 적어도 향후10년간은 세계 무선통신 혁명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성철기자


2001-07-04 핀란드스웨덴 유럽 소국경쟁력 비결은스타기업 키워 세계로 질주 [조선일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20분쯤 달리면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Science Park)가 나온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규모의 IT(정보기술)산업단지이다. 스웨덴 최대 IT기업인 에릭슨을 비롯해 IBM·인텔·노키아 등 70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곳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에는 요즘 고층 건물들을 짓는 타워 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미티아스 벡맨 시스타 홍보 담당자는 “연구기관과 입주 기업들이 10여개의 새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라며 “3년 후면 과학단지 규모가 지금보다 2배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가 스웨덴의 간판 IT단지라면, 핀란드는 오타니에미 사이언스 파크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세계 유명 250여개 벤처기업이 들어서 있고, 여기에서 일하는 고급 연구인력만 5000명이 넘는다. 오타니에미 중심부에서도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기관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인구가 500만~800만명 남짓한 북유럽의 작은 나라다. 두 나라는 IT단지에서 나오는 부(부)를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핀란드는 93년 정부 주도로 국가산업전략을 수립, 정보통신 산업을 미래 성장 사업으로 집중 육성해왔다.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51%를 이 분야에 쏟아붓고 있다.

스웨덴도 지지않는다. 스웨덴은 매년 GDP의 11% 정도를 교육과 소프트웨어에 투자한다. 유럽에서 지식 분야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다. 그 결과는 국가경쟁력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올 연초 발표한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핀란드를 국가경쟁력 3위 국가로, 스웨덴을 8위 국가로 평가했다. 독일(12위)·영국(19위)·프랑스(25위)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내수(내수) 시장과 빈약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경쟁력은 오히려 강하다는 얘기.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상무는 두 나라의 성공 비결에 대해 “정부는 기업 활동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고, 기업은 핵심적인 경쟁력을 강화해 스스로 세계적인 선두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요약 설명했다.

네덜란드도 땅은 작지만 두 나라에 못지않은 경제 강국이다.

이들 세 나라는 ‘스타 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지난해 세 나라의 10대 기업 매출액이 그 나라 경제규모(GDP기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164%(해외법인 매출 포함), 핀란드 70%, 스웨덴 65%에 달하고 있다.

특히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는 헬싱키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하고, 핀란드 전체 수출의 23%를 감당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또 정부가 기업 활동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지난 1월 위생·환경·안전 분야를 제외한 기업 창업 관련 규제를 모두 철폐했다.

2006년에는 창업법 자체를 폐지해 기업 창업을 더 쉽게 할 계획이다. 에스 반 바인베르겐 네덜란드 전 경제부 사무총장은 “정부는 좋은 기업 환경을 만들기 위한 사안과 관련된 경우를 제외하면 기업에 개입하지 않고, 지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핀란드도 마찬가지이다. 국가 장기 발전 연구와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시트라’(핀란드연구개발기금)는 1971년 정부가 7000만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출발했으나, 출발 직후부터 추가 기금 조성과 지원 대상 선정 등 모든 운영을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리 린드벌레트 시트라 부사장은 “정부로부터 계속 돈을 지원받으면 간섭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헬싱키·스톡홀름=조중식기자


2001-07-03 [작은나라의 초일류기업] () 정부규제가 없다 [한국경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의 실현. 국가 경쟁력이 높은 나라들의 공통점이다.

특히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3개국은 적은 인구와 좁은 국토, 제한된 천연 자원 등 열악한 조건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손꼽힌다. 이들 강소국은 자국 기업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안정된 경제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이들 나라의 성공 전략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네덜란드는 지난 80년대 초반 최악의 경제 상황을 겪었다. 오일 쇼크와 과도한 사회보장 지출, 이로 인한 국민들의 노동기피는 정부재정을 통제불능상태로 몰고 갔다.

GDP(국내 총생산)는 매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매월 1만명씩 실업자가 발생했다. 제조업체 25개 중 1개꼴로 도산하면서 81∼83년 30만명이 해고당했다.

경제회생을 위해 네덜란드 정부가 내린 결론은 기업규제의 완전 철폐와 기업의 진입 및 퇴출장벽 완전 제거. 외국기업에 대해서도 세제혜택이나 보조금 지급 등의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자국기업과 균등한 경영여건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뒀다.

경직된 노사관계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풀어나갔다. 당시 경제기획청은 1%의 임금인상을 억제하면 매년 10만명의 신규 고용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노사를 설득했다.

회사대표들에게는 노동시간을 5% 단축해 노동기회를 재분배하도록 요청했다. 노조도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임금과 물가의 연동제 실시를 2년간 유보하는 데 합의했다.

헤이그 북방 5㎞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바세나에 모인 노사정 대표는 82년 11월 임금억제를 통한 고용창출을 골자로 한 ‘바세나 협약’에 서명했다. 네덜란드 경제개혁의 표본이 된 ‘폴더 모델(Polder Model)’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90년대 들어 EU(유럽연합)국가들보다 1%포인트 높은 3∼4%의 경제성장률을 매년 달성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커지면서 실업률은 오히려 3.5%(2000년 말)로 떨어졌다.

네덜란드 정부는 80년대 후반부터는 기업 진입 및 퇴출장벽을 제거,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 파산의 위험을 고려한 엄격한 창업법이 오히려 창업을 억제한다는 판단에 따라 2006년까지 창업법 자체를 폐지키로 했다.

네덜란드 경제부는 94∼98년 사이 창업한 기업들이 28만개의 새로운 일자리와 GDP의 3%를 창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웨덴의 경우 투자청(ISA)은 창업관련 행정지원 시스템을 대폭 개편, 1주일내에 모든 기업의 설립 절차가 완료되도록 하고 있다. 13∼16세 청소년층의 발명품을 특허와 창업으로 연결시켜주는 ‘핀업(FinnUpp)’프로그램을 정부 주관하에 실시하고 있다.

특정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규제 장치도 모두 없앴다. 공정거래법의 적용도 명백한 경쟁 제한의 근거가 있는 경우로 제한했다.

스웨덴의 경우 대부분의 산업에서 1∼4위 기업이 총 매출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핀란드도 10대 기업의 시가총액이 헬싱키 주식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집중도가 높지만 별도의 규제는 없다.

스웨덴, 핀란드의 경우 법인세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 GDP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은 덴마크(52.4%)가 가장 높으며 스웨덴(35%), 핀란드(33.3%)가 각각 뒤를 잇고 있다. 반면 기업의 연구개발비에 대해서는 무제한으로 손비처리를 인정해주고 있다.

반 빙베르헨 암스테르담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극도로 단순화시켜 생산 유통 판매 등 모든 경제활동 단계에 걸쳐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게 경제정책의 목표”라고 밝혔다.

암스테르담=이심기 기자


2001-07-03 스칸디나비아 3 IT정책 현지점검 [서울신문]

‘바이킹을 잡으면 세계가 보인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구 3국이 미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못지않은 고소득으로 정보통신, 디지털가전 등 고가품 소비가 많은 데다 소음규제 등 각종 규제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제품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북구시장= 스웨덴 900만명, 핀란드 500만명, 노르웨이 440만명에 인근의 덴마크(530만명), 아이슬랜드(20만명)를 합해봐야 2,400만명을 넘지 않아 시장규모면에서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안팎에 이르는 고소득국인데다 IT(정보통신)지수 상위 5개국에 4개국이 포함될 정도로 가전 및 정보통신의 최고 선진, 최다 보급시장이다. 특히 에릭슨(스웨덴), 노키아(핀란드) 등 자국의 토착기업이 세계적인 정보통신 기업으로 재탄생할 정도로 인터넷, 컴퓨터 및 통신응용 부문이 세계 최고수준이다. 전 세계주요 전자업체들이 진출할 정도로 다국적 기업의 활동도 왕성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미국은 세계 교역시장의 40%를 차지하는 거대시장이지만 북구시장은 4%도 안된다. 배후의 러시아, 리투아니아 등까지 합쳐 3억명 수준이다. 국내기업들은 시장규모만 보고 바로 미국시장을 두드리지만 미국시장은 리스크도 크다. 규모가 큰 만큼 마케팅 비용도 많이 들어 실패할경우 위험부담이 크다.

삼성전자 스웨덴 법인 고대윤(高大潤) 법인장은 “중국과 러시아 시장은 양이 있지, 질이 있는 시장은 아니다”면서 “북구는 소득이 높은데다 미국보다 높은 제품수준을 요구하는 검증된 시장”이라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스웨덴 지사 편보현(片普鉉) 부지사장도 “많은 기업들이 규제가 까다롭고 시장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북구시장을 건너뛰어 바로 미국시장을 노크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이곳을 먼저 공략한 다음 미국에 진출하는 것이순서”라고 말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스웨덴 등 북구 3국이 규모는 작지만세계 일류의 ‘강소국’(强小國)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기업하기 좋은 토양때문이다. 대학-연구소-민간기업으로 이루어진 사이언스 파크를 조성, 대학-기업간 산학협동,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창출했다. 스웨덴의 시스타, 핀란드의 오울루,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가 이에 해당한다.

정부도 민간부문에 직접 개입하기 보다 정책입안을 통해기업경쟁력 강화를 유도하고 기업인프라를 지원한다. 스웨덴 산업부 스벤 조렌 고용통신국장은 “정부는 기업보다 시장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른다”면서 “따라서 정부는 시장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만 하면 된다”고말했다.

경쟁정책도 명백한 경쟁 제한 행위만을 규제할 뿐 우리나라처럼 기업규모에 따른 규제는 없다. 핀란드 ETLA경제연구소페카 이라 안티라 연구이사는 “특정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해서 경제력 집중으로 해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스톡홀름 임태순특파원]


2001-07-03 ‘강소국 열풍<>/작지만 강한 북유럽 경제 [세계일보]

작지만 강한 나라’ 열풍이 세계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세계적인 정보통신 경쟁력을 가진 스웨덴과 황무지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세계 이동전화 단말기시장을 장악한 핀란드, 유럽의 물류기지로 탈바꿈하는 네덜란드는 모두 인구 700만∼1600만명에 불과한 소국이다. 그러나 경쟁력에 관한 한 세계 최강이다. 미국과 유럽 초강국의 다국적기업들조차 최근에는 이들 국가 기업과 경쟁에서 패하기 일쑤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강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북유럽 국가에서 일고 있는 경제재편과 강화되는 경쟁력 실상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2차 세계대전 이후 성장국가군을 3개로 나누었다. 이 연구소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앵글로색슨 국가를 첫번째 성장국가군으로, 1960∼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거듭해온 동아시아 국가를 두번째 성장국가군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세번째 성장국가군에는 북유럽의 경제소국들을 대거 포함시켰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세번째 성장국가군과 관련해 “북유럽 소국들이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등장한 정보기술(IT) 산업을 바탕으로 세계경제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90년대 이후 네덜란드와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 변혁의 바람이 몰아닥치고, 이에 따라 이들 국가의 산업경쟁체제가 밑바닥에서 뒤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는 곳은 핀란드다. 핀란드 경제는 93년만 해도 금융위기를 맞으며 파산 일보 직전 상태로 치달았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핀란드는 세계적인 이동전화 단말기 제조업체인 노키아의 주도 아래 정보통신 초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노키아는 세계 이동전화단말기 시장의 35%를 장악하고 있다. 핀란드 인구는 99년말 현재 517만명에 불과하다.

북유럽 지역에서는 강국으로 분류되지만 인구는 고작 888만명에 불과한 스웨덴도 이동통신의 기술표준을 주도하는 에릭슨과 전기-전자 장비제조업체인 ABB, 가전제품 생산업체인 일렉트로룩스, 자동차사인 볼보를 앞세워 21세기 초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네덜란드 역시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통해 유럽의 물류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이제 ‘유럽의 모든 길은 암스테르담으로 통한다’는 말로 뒤바뀔 정도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관문으로 변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경쟁력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경쟁력 평가기관인 AT커니가 미래준비지수를 산출한 결과 스웨덴과 핀란드는 나란히 1,2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미국 IDC의 2001년 세계 10대 IT강국 선정에서도 스웨덴과 핀란드는 1,2위를 차지했다.

이들 국가가 이처럼 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척박한 경제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단결된 힘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의 룩 수트 교수는 “북유럽 도시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집중된 투자’와 ‘지역경제 혁신’이 유럽경제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컨설팅업체인 바르드 사의 폴란더 엔 반데레이 이사는 “네덜란드의 경우 ‘폴더모델’로 불려지는 82년과 93년 두차례에 걸친 노사 대타협이 네덜란드를 유럽의 물류기지로 변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노키아의 네트워크 부문 아리야 수민넨 부사장은 “핀란드는 10년전만 해도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다”며 “당시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노키아는 정보통신산업을 택했으며 이후 이 부문에 집중투자를 했다”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강호원기자


2001-06-28 삼성그룹 지금은 위기 상황살길 찾아라” [주간조선]

반도체 적자 위기에 저금리로 삼성생명도 경영 악화

이건희 회장이 직접 나서 “강소국 배우자” 강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최근 잇따라 계열사 사장단들을 자신의 숙소인 승지원(삼성 영빈관)으로 불렀다.

지난 5월 28일 윤종룡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자 계열사 사장단에 이어 6월 20일에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금융 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자정을 넘어서까지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회장이 사장단을 그렇게 불러 모으는 데는 ‘지금이 위기 국면이다’라는 특유의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을 받쳐주던 제조업체인 삼성전자, 돈줄 역할을 해오던 금융회사인 삼성생명이 이런저런 이유로 심하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회장이 직접 나서 채찍을 가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이 회장은 ‘위기 의식’을 유달리 강조하며 삼성 특유의 시나리오 경영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시나리오 경영이란 국내외 경제 여건을 최상, 평균, 최악으로 구분한 뒤 단계별로 투자 규모와 인력 운용 등을 달리하는 기법. 지금은 최악을 가정한 대책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장기적으론 ‘5~10년 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하는 전략까지 세워야 한다.

삼성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하반기 환율, 반도체가격, 금리 등 경제 주변 여건이 최악의 상황으로 바뀔 경우에도 대처할 수 있는 경영전략을 마련하라고 계열사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위기 의식이 혼자만의 것으로 그친다면 별개 문제다. 하지만 삼성은 한국 수출의 10%가 넘는 반도체 주역이고, 그동안 가장 좋은 경영 실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적자’의 위기에 한국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가 과연 2분기에 D램 부문 적자를 기록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던 64메가SD램은 이제 1달러 밑으로 떨어졌고, 128메가SD램도 1달러대로 추락했다.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두 제품은 이제 생산원가를 밑돌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설비의 감가상각(減價償却)을 끝내고 수율(收率; 불량률의 반대 개념)도 매우 높아 “만들면 만드는 대로 돈이 된다”던 삼성전자도 이제 원가 이하에는 견딜 재간이 없다.

삼성전자 고위층은 예상 밖의 추락에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반도체 가격 하락이 단순한 공급 과잉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 IT경기 침체로 PC 수요가 줄어들면서 빚어졌다는 점에서 속수무책이다. 반도체 감산(減産)도 검토 중이지만 약간의 가격 회복에 도움을 줄 뿐 워낙 PC 수요가 없으니 그마저 별 효과가 없다는 판단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중순부터 시작된 D램 가격의 하락에 대응, 전체 D램시장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SD램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램버스D램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높였다.

삼성전자가 불황이라던 올 1분기에 1조2436억원에 이르는 세후(稅後) 순이익을 기록한 것은 램버스D램의 덕분이었다. 램버스D램 마케팅은 세계 최대 CPU(중앙처리장치) 업체인 인텔과의 합작품이었다. 연초 인텔은 ‘펜티엄4 프로세서’를 내놓으며 이를 삼성전자의 램버스D램과 함께 묶어 시장에 싸게 공급하는 전략을 폈다. 삼성전자로선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미국시장에서 PC 수요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동맹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격 하락은 거의 전 품목에서 무차별로 진행 중이다. 하이닉스(한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미국), 인피니온(독일) 등은 SD램에 생사(生死)를 걸다시피해 공급만 늘리다보니 가격은 상식 이하로 내려갔다.

장기 공급 계약 없이 현장에서 곧바로 사고파는 현물(spot)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64메가SD램은 연초 개당 3.19달러선에서 계속 떨어져 최근 ‘심리적 마지노선’인 1달러 이하로 추락했다. 수출 주력품인 128메가SD램도 지난해 7월 18.20달러, 12월 7.32달러에 이어 지난 5월 중 평균 수출 단가는 개당 2.87달러로 내려갔고 드디어 6월 22일에는 개당 1.97~1.99달러까지 떨어졌다. 사상 처음 1달러대로 내려갔다. 삼성전자가 최초로 개발한 256메가SD램도 올 1분기 평균 가격이 22달러에서 최근 8~9달러로 폭락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SD램은 부진해도 램버스D램은 짭짤하다”면서 램버스D램 생산량을 월 1000만개 정도로 늘렸으나 이마저도 가격이 하향세로 돌아섰다. 회사측은 또다른 고속제품인 DDR이나 EDO 등도 노크를 해보지만 이 제품군을 받아줄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 미국 업체들이 재고 과다를 이유로 반기는 표정이 아니다.

이에 따라 올 2분기 삼성전자의 순이익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인 메리츠증권 최석포 연구위원은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세후 순이익은 1분기보다 무려 48%나 감소한 6424억원으로 예상된다”면서 “물론 그 실적도 대단하긴 하지만 ‘엉망인 회사가 적자를 내는 것’보다 ‘초일류 회사의 순이익이 절반 정도 감소하는 것’이 주는 충격은 훨씬 크다”고 말했다.

5900억(SK증권)~7350억원(한국투자신탁증권) 등 증권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삼성전자 순이익에 대해 모두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이같은 순이익도 사실은 CDMA 휴대폰 단말기와 유럽쪽 GSM단말기 수출이 비교적 호조를 보였기에 가능했다. 삼성전자 내부로는 ‘쉬쉬’ 하지만 D램 쪽은 이제 적자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삼성전자로선 현금 수익원으로 기대받던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 부문도 골치거리. 최석포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LCD 부문은 대만측의 무차별 참여에 따른 지속적인 공급 과잉으로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15인치 LCD가격은 개당 280달러선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의 540달러선에 비해 절반이나 떨어졌다.

말로만 떠들어온 비(非)메모리 반도체도 아직 제대로 돈벌이를 해줄 수준은 못된다.

대신증권 진영훈 연구원은 좀더 과격한 실적 전망을 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2분기에 D램과 TFT-LCD 부문이 적자를 기록할 것이며, 그중 D램 부문 영업손실은 32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면서 “램버스나 DDR 같은 대안을 찾는다 해도 올해 안에 삼성전자가 실적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미국의 PC와 반도체산업이 전혀 살아날 기미가 없어 3분기에도 삼성전자의 순이익은 5000억원 이하로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PC 수요 회복 여부는 오는 10월쯤 선보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시스템 ‘윈도XP’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것도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윈도ME가 시장의 외면을 당한 적이 있고 소비자들도 이제 PC 이외의 각종 휴대용 정보통신기기를 찾는 형편이이서 윈도XP가 히트를 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올 가을부터 인텔의 펜티엄4 프로세서에도 기술적으로 SD램을 장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구닥다리’ PC를 찾을 소비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삼성전자는 D램 세계 1위답게 시장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 공급량만 늘리는 시시한 D램 업체들을 탈락시킬 시장 조종력도 지니고 있다. 부실 업체들을 탈락시키고 나면 삼성전자로서는 훗날 시장 지배력을 훨씬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가 없어 보인다.

또 다른 우려는 지금처럼 D램에만 의존하다간 5~10년 뒤 먹고살 것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지난 90년대 초 한국이 일본 반도체 업체들을 제압하기 시작할 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특히 대만, 싱가포르 등 화교(華僑) 국가들의 반도체 도전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싱가포르는 향후 12인치 반도체 웨이퍼 가공공장(fab)을 5개나 유치할 계획이고, 중국도 최근 베이징 근처에 20여개, 상하이 인근에 30개의 가공공장을 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로서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들의 존재가 대단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분위기를 인식한 이건희 회장은 최근 삼성전자측에 “막대한 자금을 들여 반도체 라인을 증설해 투자 리스크를 안기보다는 연구개발과 기술인력 투자를 확대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 안전하고 더 이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유일하게 정보통신 기기와 일부 디지털 가전제품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삼성전자의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황태자’ 이재용(李在鎔) 상무보가 있는 전략기획실 산하에 ‘가전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팀’을 구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젊은 오너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거함 삼성생명, 저금리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삼성의 위기감은 효자 노릇만 하던 삼성생명이 몇가지 악재를 맞은 데서도 나타난다.

가장 큰 문제는 역(逆)마진이 발생할 정도의 저금리(低金利). 천문학적 자산운용을 한다는 삼성생명은 금리가 1%포인트 내외만 떨어져도 수천억원의 수익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일부 보험상품의 경우 국공채(國公債) 수익률 6%대를 훨씬 뛰어넘는 7.5%의 이율(利率)로 확정부 배당을 내줘야 하기 때문에 경영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생명은 자산 54조원 중에서 4조원 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근 연간 임대(賃貸)보증금이 평당 350만원을 넘지 않으면 사지 말라는 지침을 세웠다. 임대보증금이 그 기준을 넘으려면 서울 시내의 유명 건물 정도나 해당될 정도다. 비록 저금리시대로 부동산이 새로운 투자처로 구미를 당길만 하지만 임대가 잘 되지 않는 요즘 분위기를 감안, 부동산 투자를 사실상 중단하고 있다.

회사의 한 간부는 “일단 역마진이 생기는 일시납 및 저축성 상품의 비중을 낮추는 동시에 자금 부담을 주는 만기(滿期)환급형 상품의 판매를 줄여 나가기로 했다”며 “대신 만기가 돌아와도 보험금을 주지 않는 이른바 소멸성 보험을 주력 상품으로 키워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삼성생명에는 최근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지난 98년부터 판매한 ‘여성시대 건강보험’이 주인공. 이 상품에는 ‘요실금 수술비 500만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한다’는 특약(特約)이 붙어 있었다. 공짜로 요실금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말에 가입자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회사측은 히트 상품이라고 좋아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요실금 수술을 한 보험 계약자들의 보험금 청구가 급증했고 회사측이 진상 파악에 나섰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일부 계약자들이 실제론 불과 몇달치의 보험료만 내고 요실금 수술은 물론 의사들이 그것과 동시에 하면 좋다고 권장하는 속칭 ‘이쁜이’ 수술까지 같이 해버리고 500만원의 보험금을 타내는 사례가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요실금 수술의 본인부담 의료수가와 비(非)의료보험 대상인 이쁜이 수술을 합쳐봐야 200만원 안팎이어서 너도나도 보험에 가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여기엔 일부 생활설계사들의 부추김도 한몫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삼성생명측은 3월부터 이 상품의 발매를 중단하고 관계자 문책에 나섰다. 일부 보험 계약자들은 금융감독원 등에 민원(民願)을 제기하기도 했다. ‘관리 제일’의 삼성이 뜻하지 않은 판단 착오로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이다.

회사측은 긴급 처방으로 그룹 내 최고 재무 전문가로 꼽히는 유석렬(柳錫烈) 삼성증권 사장을 삼성생명 자산운용부문 사장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현장 책임 경영을 위해 부장급이 맡던 지점장에 임원급을 대거 내보내면서 긴장감도 불어넣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은 미국 컨설팅업체인 맥킨지로부터 정밀 컨설팅을 받고 있다. 컨설팅이 끝나는 7월 말 이후엔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될 전망이다. 인력 감축 및 영업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운용 수익에 따라 보험금이 달라지는 실적배당형 변액보험 상품 개발에 주력하며, 외국계 생보사(生保社)들이 강세를 보이는 ‘종신보험’ 등 신규 영역 개척에 힘을 쓰기로 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인력 구조조정을 위해 보험설계사 2만여명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거나 일부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비상장(非上場)인 삼성생명 주식은 그룹측에서 주장하는 70만원에 훨씬 못미치는 20만원 안팎에 띄엄띄엄 장외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삼성자동차 채무문제도 지연되고 있다.

삼성생명은 6월 말 상세한 사업내역을 공개하기로 했다. 급격한 사업구조 재편 바람이 삼성생명에 불어닥칠 전망이다.

◆’강소국(强小國)을 배우자’로 돌파구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와 이재용씨 과세(課稅) 건은 삼성그룹을 망령(亡靈)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주제다. 삼성은 최근 구조조정본부장 보좌역에 비서팀장인 이창렬(李昌烈) 부사장을 선임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5월 말 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을 불러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 생보사(生保社) 상장건, 국세청의 세액 추징, 참여연대의 공세 등에 대해 구조본의 역할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 “회장단의 지시사항이 전달도 안되고 수행도 미흡하다”고 질책했다고 한다.

이번 인사는 그런 지시가 나온 뒤에 단행됐다. 이창렬 보좌역은 회장의 관심사항을 직접 챙기고 있다. 기존 난제를 처리하는 데 삼성의 대응방식이 어떻게든 달라져야 한다는 회장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안팎으로 악재(惡材)만 돌출되자 삼성그룹은 관(觀; Perspective)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삼성이 이런 시기에 돌연 선택한 대안은 ‘강소국(强小國)을 배우자’는 것. 강소국이란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등을 지칭한다. 크기는 작지만 필립스나 노키아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들을 갖고 있어 국제경쟁력이 뛰어난 국가들이다. 삼성은 경제연구소를 통해 이 개념을 확산시키고 현지 견학을 실시하는 등 대대적인 강소국 배우기 붐을 조성할 계획이다.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을수록 이를 삼성그룹 같은 대기업이 앞장서 돌파하면서 국가 경제를 되살려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강소국으론‘에는 정책당국자들에 대한 삼성의 불만도 개입되어 있다. 삼성 관계자는 “강소국들은 대기업에 대한 규제보다는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잘 지원해주고 육성하고 있으니 현 정부도 좀 배우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행정규제 탈피를 위해 ‘계열사 본사(本社)의 해외 이전’ 같은 고단위 처방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 용어 설명

▲SD램: ‘Synchronous DRAM’이다. Synchronous(同期式)는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메모리 반도체의 주파수(周波數) 대역 차이로 인한 속도차를 맞추기 위해 D램에 채용된 기술. D램 중에는 가장 보편적인 제품이다.

▲램버스D램: 현존하는 메모리 중 가장 빠르다. SD램보다 8~10배 빠르다. 지금까지 인텔의 펜티엄4 프로세서에는 램버스만 장착 가능했다. 현재까지는 삼성전자와 도시바, NEC가 램버스D램을 생산할 수 있다. 반도체 회로 설계 전문 업체인 램버스사(社)의 이름을 따서 램버스D램으로 명명됐다.

▲EDO:’Extended Data Output’의 약어(略語)로 D램의 초창기 제품이다. 그런데도 최근 EDO가 주목받는 이유는 PC시장 다음으로 메모리를 많이 사용하는 서버나 워크스테이션 업체에서 EDO를 꾸준히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 등 전반적인 성능은 SD램에 뒤처지지만 안정성은 높아서다. 대부분 D램업체가 생산을 철수한 상황에서 삼성전자만이 만들고 있어 무주공산(無主空山)이었다.

▲DDR:’Double Data Rate’를 가리킨다. 서버와 고화질 멀티미디어 기기에 주로 사용되는 메모리이다. SD램 생산설비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데이터 전송량을 2배(Double Rate)로 향상시킨 제품. 삼성전자는 현재 세계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DDR은 특허문제가 없고, SD램을 만든다면 기술적으로 DDR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D램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최홍섭 주간조선 기자)


2001-06-26 강소국 벤치마킹 바람 [국민일보]

‘작지만 강한 나라’ 강소국(强小國)을 벤치마킹하자는 논의가 재계에서 활발해지고 있다. 강소국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

이회장은 지난달 28일 삼성의 전자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모델로 미국과 일본같은 강대국은 경제규모를 고려할 때 비현실적일 수 있다며 적은 인구와 자원 제약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높은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등의 유럽 국가들을 본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회장의 관심에 따라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들 유럽 강소국의 경영여건과 국가전략에 관해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최근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류국으로 가는 길’ 등의 보고서를 펴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유럽 강소국 모델의 특징을 핵심 대기업이 국가경제 견인,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는 사회시스템, 정부의 선택과 집중으로 주력산업 육성 등으로 요약했다.

LG경제연구소도 지난 14일,‘유럽 소강국들의 경쟁력 비결’ 보고서에서 국가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강국의 위치에 오른 비결로 선택과 집중에 따른 산업 특화, 개방과 경쟁을 통한 해외시장 진출과 외국인 투자 유치,지식지향형 사회 인프라 구축,유연한 노동시장과 효율적 복지시스템 등을 들었다.

하지만 유럽 강소국의 사례를 경제규모와 처한 여건의 차이를 간과한 채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우선 이들 나라는 인구 500만∼1500만명의 말그대로 소국이고 제조업 등 전통산업의 비중이 낮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남한 인구만 4600만명이 되는 등 훨씬 복잡한 경제구조를 가졌다는 점이다.

강소국들이 국가 자원을 정보통신(IT)분야의 소수 대기업에 집중 투입하는 발전전략을 세운 것은 이러한 소규모 경제이기에 가능했다는 반론이다. 또한 이들 국가의 안정된 노사관계와 유연한 노동시장의 배경에는 잘 정비된 사회복지시스템과 사회민주주의 정권 집권 등의 역사적 경험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소의 이종화 박사는 “1년 매출이 핀란드 GDP의 24%를 차지하는 노키아가 최근 세계 이동통신업계의 불황으로 곤란을 겪자 핀란드 전체 경제가 흔들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일찍부터 대외 개방에 나섰고 사회적 합의의 전통이 뿌리내린 점 등 이들 국가에게 배워야할 점이 많은 것은 틀림없지만 국가모델로 삼는 데는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병우기자


2001-06-21 [편집국에서] 상생만이 살길이다 [한국일보]

1980년대 초반 네덜란드는 2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제2차 오일쇼크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와제조업체들의 연쇄도산도 큰 원인이었지만, 과도한 사회보장부담과 임금인상 및 심각한 노사갈등으로 경제의 활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다. 이른바 ‘네덜란드병(病)’이었다.

네덜란드가 20년전 ‘작고 병든 나라’에서 오늘날 ‘작지만 강한 나라’, 즉 강소국(强小國)으로 재도약할 수 있었던 결정적 동인은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합의였다. 파국으로 향한 평행선을 달리던 네덜란드 노조와 경영자단체는 82년 ‘바세나 협약(Wassenarr Accord)’이란 대타협을 도출해냈다.

경영자단체는 노조가 요구한 5% 노동시간단축과 노동기회재분배를 통한 고용창출(job-sharing)을 수용했고, 대신 노조는 임금인상과 불필요한 분규억제를 약속했다. 노조는 특히 임금의 물가연동제 2년간 유보함으로써 실질임금이 9%나 줄어드는 것을 감수했다. 고용주가 사실상 전담하던 사회보장세를 노동자들이 일부 분담하는 것도 받아들였다.

실질소득감소와 실질부담증대를 초래하는 조치가 마음에 내킬 수는 없었지만, 네덜란드노조가 합의안에 도장을 찍었던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밖에 없다는 냉정한 현실인식 때문이었다.

노사간 한발씩의 양보로 대국적인 ‘상생(相生)의 미학’을 실현한 네덜란드는 임금인상률 둔화 속에 기업경쟁력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기업의 투자수익률이 82년 5%에서 95년17%로 올라갔고, 결국 오늘날 남부러울 것 없는 강소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가뭄과 무더위로 지친 국민들을 더욱 불안케했던 최근의 민노총 파업사태는 오늘날 한국경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사람과 물건을 싣고 하늘을 날아야 할 비행기가 활주로에 늘어 서있고, 병든 환자들이 병원대기실에서 발만 구르는 모습, 석유화학공장에 힘찬 기계소리 대신 근로자들의 구호소리만 들리는 장면은 가희 ‘한국병’이라 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97년 환란 이후 노동자들이 치른 대량해고와 고용불안, 급여감소 등을 감안하면 그들의 불만과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구조조정의 고통을 정부, 기업보다 노동자들이 일방적으로 짊어졌다는 주장도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판을 깰 수는 없는 일이다. 불과 3년전 초토화를 경험했던 한국경제는 판을 깨고 다시 짤 수 있을만큼 넉넉하지도, 탄탄하지도 않다.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외국인투자가들이 발길을 돌리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파업사태는 판을 깨자는 것과 다를바 없다. 이번 파업에 국민반응이 어느 때보다 냉담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변화다. 이젠 ‘구조조정’이란말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조가 ‘구조조정 중단’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는 모습에 식상함과 거부감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성공할 수 없고, 그렇다면 노조의 주장과 의사표현도 경제사회적 변화에 맞게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의 노조를 ‘전투적’ ‘호전적’ ‘적대적’이라고 평가한다. 10년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노동운동의 패턴이 이렇게 달라지지 않은 나라도 없다.

‘춘투’가 유명무실해진 일본, ‘노동의 종언’이란 말까지 나오는 미국을 닮자는 얘기는 아니다. 파업은 약자일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최후 무기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아껴쓰고 설득력있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보장해주고, 해고가 생존의 문제로 직결되지 않는 선진복지국가와 수평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들보다 훨씬 절박하기에 노사간 ‘상생의 미학’은 더욱 절실한 것이다.

배정근 경제부장


2001-06-20 “한국경제 아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삼성경제연구소 [매일경제]

삼성경제연구소는 20일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면 장기불황 등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소는 이날 ‘일류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보고서에서 기업·금융부실을 조기에 처리해야 하며 필요하면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한 뒤 투명한 절차에 따라 과단성있게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년말 기준 제조기업의 차입금 의존도는 42.8%로 미국 27.8%, 일본 33. 1%보다 훨씬 높으며 은행의 무수익여신비율은 6.6%로 미국 1.16%, 일본의 1.3%를 크게 웃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소 류상영 수석연구원은 “99년 하반기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는 듯했으나 구조조정의 고삐를 늦춘 결과 작년말부터 경제가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면서 “다시 외환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10년간의 장기불황에 허덕이는 일본과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최근 정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25개국을 대상으로 1인당 국민소득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경쟁력을 결합해 평가한 결과 현재의 일류국은 미국, 핀란드, 스웨덴 등의 순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현재 일류국 순위 18위지만 발전가능성은 14위이며 중국은 각각 23위, 19위, 일본은 각각 7위, 15위라고 덧붙였다.

한편 연구소는 우리나라가 21세기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사회를 이룩한 핀란드와 아일랜드 등 작지만 강한 유럽의 강소국(强小國 )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01-06-18 LG경제유럽 강소국을 배우자” [한국일보]

개방과 경쟁, 선택과 집중형 산업정책, 강한 금융산업, 지식기반경제, 유연한 노동시장과 효율적 복지시스템.

LG경제연구원은 17일 ‘유럽소강국(小强國)의경쟁력 비결’ 보고서를 통해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벨기에 등이 인구 2,000만명 미만의 작은 규모임에도 세계 정상의 경쟁력을 갖춰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된 원동력을 이 같이 5개로 제시했다. 또 우리나라의 구조조정도 ‘강소국(또는 소강국)’모델을 지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우선 강소국들이 자원의 열세를 과감한 개방정책으로 극복했다는 점을 들었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 개방도’ 조사에서 핀란드는 2위, 네덜란드 7위, 덴마크 9위, 스웨덴 11위 등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49개국 중 43위에 머물렀다.

둘째, 강력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핀란드의 노키아, 스웨덴의 에릭슨, 네덜란드 필립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을 육성했다.

셋째, 제조업 기반의 취약성을 강력한 금융산업육성으로 해소했다. 스위스는 UBS와 크레딧스위스, 네덜란드는 ING와 ABN암로 등 세계적 금융기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룩셈부르크는 은행자산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8배가 넘는다.

넷째, 지식지향형 사회인프라 구축전략이다. 국민 1인당 연구개발비는 스웨덴 774달러, 핀란드가 707달러로 우리나라(366달러)의 2배 수준이며, 노동인구 1,000명당 연구개발인력도 핀란드(16.4명) 스웨덴(15명) 스위스(12.7명)가 우리나라(6.3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 국가의 연간 특허출원은 10만 건이 훨씬 넘는다.

다섯째,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유럽 소강국들의 노사관계는 매우 협력적이며, GDP대비 사회보장비 지출도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다.

이성철기자


2001-06-15 이건희회장 강소국으론엘지경제연 구체 분석 [한겨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최근 한국 경제의 발전모델로 ‘강소국으론‘을 제시하면서 이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강소국론이란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달리 국가 규모는 비록 작지만 경쟁력을 갖춘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 ‘강소국’을 우리 경제의 발전모델로 삼자는 것이다.

엘지경제연구원은 14일 발표한 ‘유럽 소강국들의 경쟁력 비결’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강소국을 향한 구체적인 발전전략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네덜란드, 덴마크, 룩셈베르크, 벨기에, 스웨덴, 스위스, 핀란드 등 유럽 7개국은 국가 규모가 작으면서도, 국제경영개발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 등 세계 유수의 전문기관들이 평가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이어 “이들 국가는 작은 국토와 인구, 부족한 천연자원, 강대국 틈새에 낀 국제정세 등 주어진 조건이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하다”며, “그렇지만 이들 국가는 이미 선진국의 입지를 굳힌 반면,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차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들 국가가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강국의 위치에 오른 비결로 #선택과 집중에 따른 산업 특화 #지식지향형 사회 인프라 구축 #유연한 노동시장과 효율적 복지시스템 등을 들었다.

특히 선택과 집중에 따른 산업 특화와 관련해 “유럽의 소강국들은 모든 산업 부문을 골고루 육성하면서 성장하기는 힘들다는 점을 일찌감치 깨닫고 자국의 특성에 맞는 산업구조를 발전시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소득도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결국 모든 분야에서 최고를 지향하는 미국 같은 강대국은 중국이나 인도 등 ‘약대국’의 발전모델은 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같은 ‘약소국’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부족한 천연자원을 대체할 인적자원 육성을 위해 투자를 집중한 것도 이들 국가의 강점으로 꼽혔다. 1996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 비중은 #스웨덴 8.3%, #덴마크 8.1% #핀란드 7.5% #벨기에 5.6% #스위스 5.4% #네덜란드 5.1% 등으로 우리나라의 3.7%보다 월등히 높다.

끝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효율적 사회복지 시스템이다. 보고서는 네덜란드가 지난 83년 경제위기를 노사정 대타협인 ‘바세나협약’을 통해 극복한 사례를 한 예로 들었다. 당시 사용자쪽은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안정을 약속했고 노동계는 임금인상 억제를 받아들였다. 여기에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과 교육훈련 확대 등 사회보장 정책의 개혁으로 뒷받침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안재승 기자


2001-06-08 창간 47주년 특집 / 태생적 小國선택과 집중 [한국일보]

경제개발이 시작된 1960년대 이래 한국경제의 목표는 오로지 선진국이었다. 선진국들은 모조리 ‘모델’이 되었고, 미국도 베끼고, 일본도 베끼고, 독일도 베끼는 ‘백화점식’ 구조가 만들어졌다.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선진국이 되겠다는 마스터플랜은 존재하지 않은 채, ‘선진국 베끼기’가 유일한 발전전략이었다.

그러나 뒷걸음질치는 경쟁력, 잠식되어가는 세계시장 등 위기의 현실은 목표도 전략도 없이, 맹목적으로 선진국을 지향했던 과거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잘못됐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 한국은 약소국

잘 산다고, 혹은 크다고 다 강대국은 아니다. 경제적 강대국이 되려면 높은 소득수준(강국)과 대규모 시장(대국)을 함께 갖춰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을 강(强)국, 1만~2만달러를 중(中)국, 1만달러 미만을 약(弱)국으로 분류할 때 9,600달러의 한국은 약국에 속한다.

또 인구 1억명 이상을 대국, 5,000만~1억명을 중국, 5,000만명 미만을 소국으로 본다면 우리나라(4,600만명)는 소국에 들어간다. 세계경제 안에서 한국은 ‘약소국’인 것이다.

물론 국가위상이 소득과 인구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구는 국민경제 시장규모를 결정하는 핵심요소로, 잠재성장력과 직결된 노동력 공급원이자 지식창출의 원천이다.

세계적 경제학자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국가경쟁력의 결정요소를 부존자원, 기업경영환경, 시장크기와 질, 인프라 지원산업 등 4가지를 꼽았다. 부족한 부존자원, 과잉규제와 경쟁부재의 경영여건, 협소한 시장, 미비한 인프라 등 어딜 봐도 한국은 경쟁력에 한계를 갖고 있다.

■ 왜 강소국인가

전형적 강대국(소득 2만달러, 인구 1억명 이상)으론 미국과 일본이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도 넓은 의미에선 강대국(정확히는 강중국)들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는 약대국(소득 1만달러 미만, 인구 1억명 이상)으로 분류할 수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발전모델은 미국 일본식 강대국이 아니다. 미국ㆍ일본식의 강대국 전략을 베끼고, 전 분야에서 이들과 경쟁하겠다는 과거식 발상은 분명 환상이다. 자신감 부족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이 다른 만큼 갈 길도 다른 것이다.

한국의 모델은 ‘강소국’이다.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싱가포르 등이 대표적인 ‘강소국 클럽 회원국’들이다. 인구 5,000만명 미만의 작은 내수시장과 국토 자원 생산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부국(富國)으로 발돋움한 ‘일류소국’이야말로 한국경제의 새 발전 패러다임인 것이다.

포터식 국가경쟁력 모델을 원용한다면 부존자원과 시장크기의 한계를 경영환경개선과 인프라ㆍ산업확충, 시장의 질적 제고로 극복해 경쟁력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다.

■ 강소국의 조건

강소국 모델에 단일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각국 여건에 맞는 ‘맞춤형 전략’이지만, 그럼에도 강소국들의 성공배경엔 몇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선 ‘선택과 집중’이다. 시장과 자원이 협소한 나라에서 전 분야 1등을 하겠다는 발상만큼 무모한 것도 없다. 강소국들은 한결같이 부가가치가 높은 확실한 전략분야와 틈새시장에 역량을 투입함으로써 일류소국이 될 수 있었다.

둘째, 최적의 기업환경이다.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네덜란드는 14개, 스위스 11개, 스웨덴이 7개를 보유할 만큼 강소국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정부는 기업을 규제하지 않고, 기업은 공정한 경쟁질서를 훼손하지 않는다. 강한 기업 없이 강한 국가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정치안정과 사회통합도 필요조건이다. 사용자와 근로자,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윈-윈’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는 곳이 바로 강소국들이다.

강소국이 되기까지 한국경제가 갈길은 너무도 멀어 보인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경제 패러다임 무엇이 문제인가

“분에 맞지 않는 강대국형 성장전략, 구조조정 일변도의 패러다임”

모든 산업을 최고로 육성하겠다는 백화점식 풀세트(full-set) 발전전략은 특출한 1등 몇 개도, 광범위한 1등 후보군도 만들어내지 못한채 부실과 과잉투자를 낳았다. 이후 줄이고 자르는 구조조정으로 경제시스템은 바로 잡히고 있지만 구조조정 자체가 전략과 목적이 돼버리면서 정작 우리나라를 10, 20년 먹여 살릴 대표산업육성전략은 실종됐다.

▽분에 넘치는 풀세트 전략

1990년대 중반 세계화 전략은국내기업의 무모한 해외진출을 부추겼고 이 결과 해외법인 부실화는 아직도 우리 경제를 옥죄고 있다. 강경식(姜慶植) 전 부총리가 주도했던 ‘21세기 국가과제(NationalAgenda)’ 또한 IT(정보기술)ㆍBT(생명공학)에서부터 대부분 전통산업까지 모든 것의 일류화를 망라, 어느 것 하나 제대로된 게 없는 대표적사례다.

현재 신산업 육성정책도 마찬가지다. 삼성경제연구소 전영재(田永宰) 박사는 “천문학적 투자성과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를 우주항공ㆍITㆍBT(생명기술)ㆍNT(극미세기술) 등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자칫 전부를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설픈 선택과 집중

정부의 벤처ㆍIT 일변도 정책으로 벤처기업 수는 1만개를 넘어섰고 인터넷 이용률은 일본의 2.5배에 달하지만, 공단지역의 인터넷 전용선 보급률은 여전히 미미하고 기술집약적 첨단부품ㆍ소재의대일 무역적자는 작년말 80억달러를 넘어섰다.

선택에서 배제된 전통산업은 경쟁력 한계를 노출했고 집중 지원됐던 신산업은 기대에 못미치면서 우리경제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주훈(金周勳) 장기비전팀장은 “IT와 굴뚝, 대기업과 벤처간 융합이 진정한 경쟁력이지만 시도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일변도와 전략 부재

전문가들은 지난 3년여동안 산업별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부채비율 200%를 획일적으로 적용한 것이 전략 부재를 노출한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산업연구원 김도훈(金道勳) 산업정책실장은 “확장이 불가피한 산업, 자기자금만으로 세계 유수기업을 추격할 수 없는 산업은 차입경영을 인정해야 했었다”고 지적했다. 줄기찬 구조조정만 있었지 정작 가뿐해진 몸(기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전략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또 구조조정이 ‘도그마(고정관념)’로 고착되면서 ‘대기업=악(善), 벤처기업=선(惡)’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경제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이 결과 제조업체 연구개발투자(R&D)는 96년 2.75%(매출액 대비)에서 97년 2.65%, 98년 2.64%, 99년 2.46% 등으로 계속 낮아졌고 설비투자 등 기업의 활력도 위축돼왔다.

유병률기자


2001-06-08 창간 47특집 / 강소국 만들자 / ()’분야1환상을 버려라 [한국일보]

한국경제의 발전 패러다임을 새로 짜야 한다. 현실적 한계를 외면한 장미빛 선진국 지향주의, 전 산업분야에서 모두 최고가 되자는 무모한 1등주의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발상과 전략의 대전환 없이는 경쟁력 추락을 막을 수 없고, 머지않아 세계시장에서 한국은 설 땅조차 없어질 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생존을 위해선 이제 작지만 강한 나라, 강소국(强小國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7일 통계당국과 민간연구기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54위(1999년 기준), 인구규모는 세계 25위이다.

연간소득 1만달러 미만의 약국(弱國)인 동시에 5,000만명에도 못미치는 인구와 국토ㆍ부존자원까지 부족한 소국(小國)이다. 국제경영개발원(IMD) 경쟁력평가에서 49개국중 28위, 포브스지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25개국 중 18위로 기록됐을 만큼 질적 수준도 세계 하위권이다.

약소국 지위 탈출만큼 절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인구 국토 자원의 태생적 한계를 가진 우리나라로선, 미국 독일처럼 고소득ㆍ거대시장의 ‘강대국’은 지향점이 될 수 없다. 대신 물리적 규모는 작아도 강한 경쟁력을 가진 ‘강소국’이야말로 한국경제의 새로운 발전모델이 돼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尹淳奉) 상무는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은 더 이상 거대 선진국이 아니라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싱가포르처럼 규모의 왜소함을 경제적으로 극복한 나라들”이라고 말했다.

강소국의 제1 조건은 ‘선택과집중’이다. 역대정부마다 귀가 따갑도록 설파했던 ▦첨단정보기술(IT)산업에서부터 재래 의류ㆍ봉제업까지, 설계에서 완제품까지 모조리 세계정상이 되겠다는 무차별 1등 전략이나 ▦‘○년이내에 세계 ○위의 경제대국이 되겠다’ ‘○년안에 미국 일본을 따라잡겠다’는식의 과시형 목표설정은 이제 버려야 한다.

몇 개 안되더라도 확실한 경쟁력을 갖춘 선점산업과 선진국들이 손대지 않은 틈새시장을 골라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강소국 생존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중소ㆍ벤처기업 수준이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민한 몸놀림으로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벤처성공학’이야말로 21세기 한국경제의 발전패러다임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성철기자


2001-05-30 삼성, 세계일류화 제품에 역량집중 [한국경제]

삼성은 5∼10년 후의 주력상품 개발과 기존 제품의 세계 일류화를 앞당기는 데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삼성은 지난 28일 서울 한남동의 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이건희 회장 주재로 삼성전자 등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열고 이같이 하반기 경영전략 방침을 확정했다고 29일 발표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6시간동안 계속된 마라톤회의를 통해 삼성전자는 2백56메가 D램의 주력제품화를 앞당기고 램버스 D램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의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삼성SDI와 삼성코닝은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와 2차전지 등 승부사업에, 삼성전기는 첨단부품 개발과 기술력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은 선행기술개발, 세계 표준화 유도 등 경쟁력 우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투자의 선택과 집중이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수요예측 시스템을 강화, 경기둔화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고 핵심인력을 조기에 확보할 것”을 당부했다고 삼성측은 전했다.

한편 이 회장은 이날 작은 국가의 큰 기업 역할을 강조한 ‘강소국(强小國’론을 제시, 눈길을 끌었다.

네덜란드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면서 강국의 위치를 확보했다는 것. 이들 강소국의 예처럼 대기업들이 국가경제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경영에 힘써줄 것을 사장단에 당부했다고 삼성측은 전했다.

이날 회의에는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및 사장단과 삼성전기 이형도 부회장, 삼성SDI 김순택 사장, 삼성코닝 박영구 사장,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이심기 기자


2001-05-30 이건희회장 전자사장단회의 직접 주재했나 [문화일보]

이건희 삼성 회장이 28일 밤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삼성전자와 SDI, 전기, 코닝 등 전자계열 4개사 사장단회의를 무려 6시간 동안이나 직접 주재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측은 이회장이 지난해 4월과 11월에 전자계열 4사 사장단회의를 주재하고 각각 ‘중장기 경쟁력 조기 확보’와 ‘디지털제품의 일류화 전략’을 언급한 사실을 들어 올 하반기 경영계획을 논의하는 정례 성격을 띠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그러나 이번 삼성 사장단회의가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기업체 홍보·기획임원 오찬간담회 직후에 개최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간담회 자리에서 당시 배석한 진념 경제부총리가 유독 삼성전자 임원에게 “삼성전자에 불만이 있다. 삼성전자 주가가 현재보다 10배 이상은 돼야 할 것으로 보는데 해외 기업설명회(IR)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업지배구조가 불투명해서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따사롭지 못하자 정부의 고심이 깔린 수출 증대와 기업가치 제고에 부응하려는 삼성의 노력이 심야 사장단회의로 이어졌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만찬을 겸해 6시간 동안 진행된 마라톤회의에서 이회장은 각 계열사에 5∼10년후의 주력상품 개발과 핵심인력 조기확보를 지시했다. 또 한국이 핀란드와 스웨덴처럼 나라는 작지만 세계적 대기업이 경제를 이끄는 강소국(强小國)이 될 수 있게 최고경영자들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업무보고에서 반도체 시황이 하반기에 회복될 것으로 보고 현재 생산량의 10%인 256메가D램을 연내 주력제품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램버스D램·S램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의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삼성SDI와 삼성코닝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패널(PDP: 벽걸이TV)·2차전지 등 신규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는 삼성전자 윤종용부회장과 사장 9명, 삼성전기 이형도부회장, 삼성SDI 김순택사장, 삼성코닝 박영구 사장, 구조조정본부 이학수사장 등이 참석했다.

<문성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