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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R. S. & Runco, M. A. (1999). A history of research on creativity, In Robert J. Sternberg (ed.) Handbook of Creativity, (pp.16-31).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요약보기

저자

  • Robert S. Albert: Emeriti Professor of Psychology at Pitzer College
  • Mark A. Runco: Professor of Child and Adolescent Studies at California State University

논문성격: 연구리뷰

연구목적

창의성에 대한 가능한 역사들 중에서 창의성 개념에서의 역사적 변화를 확장적으로 서술하고자 함

논문구성

  • 창의성에 대한 pre-Christian 관점
  • 창의성에 대한 초기 서구 관점
  • 연구의 시초
  • 창의성 연구에서의 제도적, 철학적 선구자
  • 중요하지만 끝나지 않은 논쟁
  • 의도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미치는 영향
  • 적응, 다양성, 자연 선택: 창의성에 대한 Darwin의 경험적 공식
  • Darwin에서 Galton으로의 이동
  • Galton에서 현재로

연구내용

본고에서 시도하는 창의성 개념에서 확장된 역사적 변화에 대한 기술은 실제 창의성에서의 좁은 역사적 변화를 기술하는 것과 쉽게 대비될 수 있음. 내용과 추상성에서의 역사적 차이는 각 창의적 시대의 독특한 정신을 가정하는 시대정신에 대한 연구를 반영함. 유명한 사람의 연구는 우리가 창의성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주로 기여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역사적 관점이 될 수 있음.

저자들의 가정은 역사가 생각과 사건이 확립되고 일어나는 매개(medium)라는 것임. 이 글에서 창의성과 연구의 초기 개념화는 그들의 예외적인 창의적 행동 안에 있다고 봄. 이 방법론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창의성의 의미와 중요성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행동에 나타났는지에 있어 중요함. 이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에서 창의성의 3가지 측면을 통찰함: ①역사적 과정의 중요성은 내용보다 시기(timing)에 놓여있음, ②제도와 동일화 가능한 집단은 이미 창의적인 사람들의 업무와 마음에 있는 중요한 가능성의 기준을 선택하고 결합하려는 것에 비판적임, ③생각과 사건의 관련성은 같은 문제나 가능성을 깊이 고려하는 관련된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단이 있을 때에만 명백해짐. 이는 a)정보와 관심에 비판적인 대중이 함께 존재하고, b)중요성과 의미가 관념적일 뿐 아니라 결과로부터도 온다는 것을 의미함.

자신의 역사가 있는 창의성의 개념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함. 시작과 발달의 역사 대부분 동안 연구와 창의성을 서로 관련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음. 상상, 독창성, 천재, 재능, 자유, 개성과 같은 경쟁 아이디어들과 의미와 구분에 대한 논쟁에서 창의성의 개념이 충분히 조각되기 전에 제도적 사업이 인정되고 널리 장려되기까지 연구 이후 150년이 더 걸림.


창의성의 개념

1. 창의성에 대한 기독교 이전(pre-Christian)관점

창의성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 나타나기 전에, 우리가 창의성이라고 인식하는 것의 인간성을 위한 의미를 잡으려는 노력이 있었음. 기독교 이전의 이해는 보호와 행운의 신비한 힘과 연관된 천재의 개념임. 창의적인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광기와 열광적 영감에 관련되어 사회적 가치를 가지며, 이 관점은 19세기와 20세기 중반 동안 다시 나타남. 천재에 대한 로마인들의 관점은 자신의 자식에게 전달될 수 있는 유명한 남성의 창의적 힘으로 보여졌으므로, 창의성은 남성의 능력이었음.

2. 창의성에 대한 초기 서구 관점

학자들은 창의성에 대한 초기 서구의 관점이 지구에 신이 만들어 놓은 업적에 대한 생각에서 나온 창세기에 있는 창조(creation)의 성서 이야기라는 데에 동의함. 창의성에 대한 이 관점은 2세기 A.D.까지 지속됨. 이 믿음은 창의성의 목표와 이 과정에서 참여자의 역할에 대한 서양과 동양 사고 간의 의미 있는 차이를 반영함. 힌두교인, 공자, 도교 신자, 불교신자에게 창조는 발견이나 흉내의 한 종류였음. 플라톤은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느꼈으며, 그의 시대에서 예술은 이상적 형태를 흉내 내거나 맞추려는 노력으로 봄.

독창성은 초기 역사에서 창의성의 특성이 아니었음. 이 가정은 1200년간 심각한 도전을 받지 않았으나, 중세에 개인의 특별한 능력이나 비범한 능력은 정신 바깥세계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나타남. 르네상스 초기에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 역사적인 순간에 훌륭한 예술가와 장인들의 비범한 특성은 명백하게 그들의 것으로 인식되고 강조됨. 이런 변화들은 르네상스가 명백하게 진행될 때까지 꽤 포착하기 어려웠음.

3. 연구의 시초

르네상스 시대와 많은 철학적 논의가 있는 내내, 과학적 업적들은 문화적, 종교적 패러다임의 발견과 붕괴로 그 힘이 알려짐. 18세기 이성과 개인주의에 대한 2개의 깊은 지적 관점이 서양적 사고를 형성함: 계몽운동은 동일시할 수 있는 일관된 지적 철학이 됨. 제도화된 철학이자 방법론인 자연과학은 형상을 갖춰갔음. 서양 문화를 위한 깊은 변화가 어떻게 성경의 지위로 변화되어 평가될 수 있었는지 모름. 비록 창의성에 관련된 생각들은 1500년에서 1700년 사이에 상대적으로 변하지 않았지만, 예외적으로 연구 아이디어를 위한 창의력이 풍부한 기반에서 다른 변화들이 있었음. 많은 저자들이 독특성의 시작을 믿은 이런 과학적 모델과 기법들의 통합으로부터 진화된 변화의 완성이 현대 서양 문명임.

4. 창의성 연구에서의 제도적, 철학적 선구자

철학과 권위에 대한 사회적 반대에서 비롯된 계몽운동의 확산은 권위, 그리고 과학의 반대와 평행하게 성장함. 결론은 사람들은 인공적인 권위와 사회적 제한이 필요치 않다는 것. 공개적인 지지를 얻은 이러한 사상들은 17~18세기 동안 주장의 근거지가 되는 제도로 급격하게 형성됨. 과학과 과학적 연구는 영국 학술원(Royal Society)에 의해 제도화됨. 영국 학술원의 활동은 동료 과학자들의 리뷰로 구성. 멤버들은 그들의 과학적 업적을 출판할 뿐 아니라 영국 학술원 철학학회(Society Philosophical Transactions)에서의 활동에도 기대. 가장 각광을 받은 것은 멤버들의 명성에 영국 학술원의 엄청난 영향력이 더해져 철학학회지에 일련의 결과를 출판하는 것. “출판”에 대한 기대는 2가지 방식으로 영국 학술원에 의해 제도화됨: 제도로써 과학에 대한 학술원의 책임감에 의해, 과학적 결과의 출판에 대한 강조에 의해. 이런 제도적 요청에 의한 2개의 실용적인 결과가 도출됨: 출판된 간행물에서 개성이 줄어 듦. 개성에 대한 학술원의 초기 고려가 과학에서 실용적인 이득의 발견과 자연의 합법성에 대한 Royal Society의 명시적인 강조로 바뀜.

5. 중요하지만 끝나지 않은 논쟁

18세기 중반 이후 동안 자연 법칙에서 자연 과학의 신념은 널리 받아들여짐. 영국과 유럽의 예술가, 시인, 작가, 철학자들은 18세기 동안 끝나지 않고 논쟁된 2가지 질문을 남김: 생각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의 사회적, 정치적 중요성은 무엇인가?

1700년대 중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창의성과 천재, 독창성, 재능, 공적 교육에 대한 생각임. 논란의 중심에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합법적 범위를 명확히 하려는 노력이 있었음. 사회의 법과 권위에 의해 부과된 독단적인 제한은 자연적으로 “original” 천재에 반대하고 사람들의 자유와 독창성을 파괴하는 방해물을 구성함. 창의성과 재능(talent), 독창적인 천재간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 왔는데, 18세기 말 재능은 교육에 대한 반응으로, 독창적인 천재는 예외적이고 정의에 의해 규정, 관습, 재능을 응용할 의무로부터 면제된다고 봄. Kaufman(1926)과 Engell(1981)은 개인주의의 18세기에 천재, 독창성, 예외성, 타고난 능력, 자유의 관계와 차이에 대한 논쟁을 장기적으로 만듦. 그러나 이 때까지도 창의성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음.

18세기에 있었던 논쟁은 4개의 근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구분을 제공함: ①천재는 초자연적인 것에서 분리됨, ②천재는 예외적이긴 하지만 모든 개인에게 잠재되어 있음, ③재능과 천재는 서로 구별됨, ④그들의 잠재성과 정신적 활동은 그 시대의 정치적 분위기에 좌우됨. 18세기말 억압적인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천재도 재능도 없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짐.

6. 의도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미치는 영향

연구와 창의성에 관련된 중요한 주장과 실제적 관찰을 통합하는 2개의 모델이 있음: ①합리적 과학 모델(rational science model)-주장에서 항상 공식적이고 일상의 연구 결과가 제거됨, ②창의성의 이데올로기-창의성은 정의에서 인간 본성과 사회정치적 상황과 관련성이 있으므로 이데올로기를 획득함.

산업혁명 시기에 과학이 여전히 이성적 인간의 사고가 무엇인지를 증명하느라 바쁠 때, 특히 사회적/정치적 안정성의 관점에서 그 결과의 궁극적인 효과에 대한 생각이 자라남. 더 위협적이고 불충분하게 이해되는 “의도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사회에 나타났으며, 이와 함께 정치적 행동과 사회적 활동이 일어남. 개인주의의 확산이 이런 결과에 대한 용인할 수 있는 설명이 됨. 이런 결과를 인식하는 것은 Adam Smith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그는 의도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

산업혁명에서의 많은 혼란은 2개의 다양하지만 동일하게 영향력 있는 응답을 이끌어냄.

  • Adam Smith의 이성적 토론-“행동의 결과는 종종 행위자를 동기화하는 의도와 다르다”고 말하여 모든 결과들이 좋거나 나쁠 수는 없으며, 그들은 종종 의도되지 않거나 예측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함.
  • Jean-Jacques Rousseau의 낭만주의-낭만주의는 지혜의 민주적인 source와 예술적 영감으로 예술가의 내적 느낌을 표현함.

비록 두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더라도, 연구와 창의성을 위한 결과는 19세기말까지 조화되지 못한 다른 예정표를 가질 것임. Smith가 죽은 지 8년 후에 Malthus의 Essay on Population(1798) 출판은 사회과학의 확립에 기여한 지적, 경험적 발달을 일으킴. Malthus 업적의 중요성은 두 부분으로 나뉨. 한가지는 그의 연구가 Galton 전에 있었던 경험적인 비자연과학 연구라는 점임. 다른 한가지는 사회적 붕괴를 설명하는데 사용한 “존재를 위한 투쟁”이라는 생각이 Darwin(1859)의 자연선택설을 조직화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점임.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창의성에 대한 이해에서 지적인 약진은 Darwin이 준 생존에서 적응의 역할을 나타냄.

7. 적응, 다양성, 자연 선택: 창의성에 대한 Darwin의 경험적 공식

Darwin 이후 창의성의 기본적인 몇 가지 특성(특히 적응적 가치)에 초점을 두는 자연선택 기저에 깔린 과정이 풀렸음. 창의성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문제해결과 “성공적인” 적응을 이끄는 것임.

8. Darwin에서 Galton으로의 이동

심리학적 연구에 직접적이고 창의성에는 간접적인 Galton의 중요한 기여 중 하나는 측정할 수 있는 특정 개인차를 명확하게 하는 넓은 진화론적 다양성의 조작적 정의임. Galton은 개인차 연구와 계획적인 우생학 프로그램이라는 2개의 관심사가 있었음. Galton은 의도되지 않은 사회적 결과로부터 사회를 지키겠다는 그의 소망에서 Adam Smith와 Malthus의 뒤를 따름. 이런 두 연구 관심사는 Galton을 창의성 연구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게 함-특출한 사람을 명백한 창의성의 피험자로 선택하고 통계를 사용함. Galton은 우리에게 앞에서 얘기했던 천재는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초자연적인 것에서 분리된다는 생각과 능력은 모집단에 걸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개인에게 잠재력이 있다는 생각의 증거를 제시하였음.

9. Galton에서 현재로

Galton이 당시 창의성에 관심을 가진 유일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의 업적의 중요성은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배울 때 명백함. Becker(1995)는 19세기 연구에 대한 리뷰 후 그 세기의 주제는 20세기와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림. 19세기 학자들이 집중했던 5개의 기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음: 창의성은 무엇인가? 누가 창의성이 있는가? 창의적인 사람들의 특성은 무엇인가? 누가 창의성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가? 창의성이 노력을 통해 증가될 수 있는가?

위의 질문들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 과학에서 더 중요한 문제이며, 본 글에서는 2가지 설명을 제시함.

1)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 Bethune(1837)는 사고의 새로운 결합을 일으키는 능력에 흥미를 갖고 창의적 천재가 “미래 결합을 위한 아이디어를 저장할 수 있다”고 느낌. Jevons(1877)는 천재는 생각과 행동의 일상적인 관습에서 일탈되어 있다고 생각함. 확산적 사고의 아이디어는 드문 관념적 복잡성을 이해했던 William James(1880)에 의해 공식화됨.

2) 지능(intelligence): Galton은 감각기능에서의 개인차를 측정하면서 감각의 변별이 지능과 정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가정했으며, 1883년 “창의적인 산물”은 “일반 정신 능력(general ability)”에서 나온다고 결론내림. 그 이후 Binet와 Spearman(1904)가 확산적 사고를 포함하는 지능검사를 개발하였음. Terman도 지능검사를 연구하였으나 재능을 구성하는 것으로 편협하게 IQ에 집중하고 창의성과 비학문적 성취를 배제하는 것을 비판함. Cox는 뛰어난 성취를 보인 개인들을 대상으로 Galton의 IQ를 추정하는 Terman의 방법을 확장한 연구를 함. 그녀의 표본은 더 넓고, 많으며 객관적으로 선정되었고 탁월성의 준거로 전문가 평정을 사용함. 그녀의 또 다른 진보는 다른 심리학자들이 추정한 IQ와 표본의 어린 시절 특성으로부터 전기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정보를 사용했다는 것임. 창의성 연구에서 그녀의 발견은 “탁월성을 성취한 청소년들은 높은 지적 능력뿐 아니라 동기와 노력 그리고 그들 능력에 대한 자신감의 지속성, 성격의 강한 정도로 특징 지워진다”는 것임. 1920년대 중반 Cox의 연구는 자아(ego) 심리학의 발전과 일치함. 자아 심리학은 창의성이 단지 무의식적인 추동이 아니라고 제안함. Cox의 업적과 자아 심리학의 방향의 결합은 창의성이 단순히 행동의 한 종류가 아니며, dynamics(무의식)의 한 수준에서 기원하는 것도 아니며, 개인의 한 특성만 표현하는 것도 아니며, 적응적 목적만 갖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함. 창의성에 대한 이런 관점은 창의성이 과잉규정 되는 정신분석적 연구과제에 적합함. Helson(1996)은 1950년대 창의적 성격 연구를 리뷰 하였으며, 모든 종류의 창의적 사람들은 우리 문화의 영웅이 되었다고 봄. 그녀는 관점에서의 변화를 관찰했으나 창의성 연구 역사에서 이끌려갈 만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아님. 지난 50년에 걸쳐 창의성 연구는 경험적 방법론과 인간성에 대한 느낌, 피험자에 대한 존엄, 매일의 창의성에 대한 명백한 존중을 갖고 창의적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통합되었음.


연구의 한계

창의성을 이해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으나 창의성의 다양한 역사 중 처음에 본 논문에서 얘기했던 창의성의 개념보다 큰 덩어리인 창의성에 대한 시대적 관점을 주로 다루었음

연구의 가치

창의성의 개념 고찰하는데 있어 단지 개념적 정의만 다룬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보다 폭넓은 이해를 가능하게 함

키워드

창의성 연구, 역사, 시대정신